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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왕기하 1장 1절~6절 - 잘 물어야 합니다
    주일설교 요약 2023. 5. 21. 06:50

    잘 물어야합니다.
    열왕기하 1:1-6
    김양재 목사
      
    chat gpt는 요새 생성형 대화하라고 서술해 주기 때문에 인간과 대화하는 것처럼 즉석에서 이렇게 답변을 제공해준다고 하죠. 게다가 거기는 학습 능력이 있어가지고 그 사전에 아무리 학습한 것이 한정적이라도 데이터만 모이면 상승 속도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르고. 그래가지고요 지금 1억 4천만 개의 일자리가 지금 없어진다고 그러잖아요. 대화까지 하니까. 그런데 거기는 가짜 뉴스도 정보에 포함되기 때문에명령 의도와 관계없는 대답을 이제 불쑥불쑥 하기 때문에 이제 질문을 잘해야 원하는 답을 이제 얻을 수가 있다고 그래요. 예를 들어서 우리 중,고등부 애들도 이제 그 chat gpt가지고 이제 시험장에 들어갈 수가 있는데 핸드폰이 다 있으니까. 그런데 이제 아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우리가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다가 지금 그거는 몇 단계를 거쳐야 되는데 chat gpt는 그냥 말만 하면 딱 정보가 오잖아요. 

    그런데 답을 잘 받으려면 질문을 잘해야 되잖아요. 이제 서로 대화하는 chat gpt는 안녕 그랬는데 ,서로 대화하려고 안녕했는데 안녕은 한국에서 인사말로 쓰는 답입니다. 이렇게 이제 정보가 나오는 거죠. 나는자기하고 대화하려고 했는데. 질문 의도와 이렇게 다를 수 있기 때문에 AI의 그 오류를 바로잡는 그 조련사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수억의 연봉을 받아도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거예요. 제가 읽어보면서 전부 다 이게 굉장히 또 절망적이다 싶지만은 큐티를 하는 우리들은 질문의 대가들이잖아요. 그래서 chat gpt 시대도 잘 물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AI의 대부 이거를 만들어낸 힌튼 박사는 이제 구글에 사표를 냈다는 거예요. 인공지능은 핵폭탄보다도 위험해가지고 세계적인 규제가 지금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돈이 다발로 생기는 그 자리를 내려놨어요. 여러분 우리가 강에서 이렇게 바다로 나가려면 역사를 알아야 되고 세계 정세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저 지금 비행기 타고 다니는데 짚신 신고 다니는 내가 최고다 이러면 안 돼요. 그거는 우리 그 시대의 문화를 또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제가 이제 팔복산에서 유다 얘기를 많이 했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요셉 후손이 얼마나 유다를 괴롭혔는지 우린 역사를 통해서, 열왕기서를 통해서 그걸 또 알아야 돼요. 요즘 우리가 세계에 6위라고 또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혼잡한 시대에 잘 묻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 듣겠습니다.


    첫째로 ‘묻긴 물어야 되는데 잘못 물으면 배반은 따라옵니다’. 1절, 2절이에요.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 하니라’

    열왕기하는 시작부터 1절에 죽음과 배반이 나오네요. 아합이 죽자 모압이 배신했다고 해요. 열왕기서를 설명을 드리은 왕들이 너무말 안 들어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간 후에 이스라엘을 왜 망하게 되었는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쓴 역사서예요. 개인적으로도 고난이 닥치면 우리는 왜 내게 이런 일이야 하고 묻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 열왕기하 당시가 포로로 가기 직전이니까 가장 영적으로 이제 혼잡한 시대인데 그때에 망하기 전에 풍요를 잠깐 허락하셨어요. 풍요하면 안 듣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안 물어요. 아합이 이런 시대에 열왕기하에 굉장히 풍요하던 시대의 왕이었죠. 그런데 아합이 죽었어요. 모압은 또 누군가요?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큰 딸하고 동침해가지고 낳은 아들의 후손으로서 여호와의 총회에 못 들어오고 그리고 이제 다윗에게 정복을 당했어요. 오랜 세월 속국으로서 멍에를 벗기 위해서 호시탐탐 틈을 보다가 아합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에 대해서 반역을 일으킨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의지하는 아합이 죽었고 무시하던 모압은 배신을 했어요. 우리의 이야기 똑같애요. 의지하던 아합은 죽고 무시하던 모압은 배반을 한다 누군가 아합은 누구고 모압은 누군가?

    거슬러 올라가면요. 배신 중에서도, 모든 이스라엘의 반란 중에서도 치명적인 반란은 자국에서 일어난 반란이었는데요. 바로 우리가 좋아하는 그 요셉의 후손, 에브라임의 후손 여로보암이 북쪽 열지파와 합세해서 반란을 일으킨 여기가 북이스라엘이에요. 그래서 북이스라엘 남유다의 열아홉명의 북이스라엘 왕과 스무명의 남유다 왕 중에서 반란으로 세워진 북이스라엘은 선한 왕이 단 한 명도 안 나왔어요. 모두 그러므로 배반과 반역의 역사였습니다. 그냥 믿는 북이스라엘도 이런데 세상은 어떻겠습니까? 그냥 배반과 반역의 역사인 거예요. 그래도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내 인생에 이렇게 왕을 세우는 거예요. 돈, 명예, 남편, 아내, 자녀의 왕을 막 세우는 거예요. 그보다 큰 천하의 왕이신 하나님을 세워야 되는데요. 내가 세운 왕은 한계가 있잖아요. 그런데 왕은 너를 압제하고 착취할 뿐이다. 그래도 하나님이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왕이 필요하다 그러잖아요. 그 왕은 하나님이 아니잖아요. 자기 왕국을 세우잖아요. 자기 왕국을 위해서 모든 것이 도구가 되고 수단이 되니까 백성을 압제하고 착취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백성을 그렇게 부리잖아요. 또 그 가정에서는 이겨야 되니까 거기서도 이제 계속 압제하고 착취하니까 가정이 불행해지고 회사에서도 모든 것이 도구가 수단이 되니까, 이겨야 되니까 불행해지고, 나라가 불행해지고 가정이 불행해지고 왜냐하면 이겨야 되니까, 자기 왕국 세워야 되니까. 그래서 이제 그다음부터 열왕기에서 여로보암은 우상숭배의 대표자인 악인들의 원류로 평가를 하고 그 사람들이 나가가지고 하나님 자리에 금송아지를 갖다 놓고 이걸 하나님이라 그러고 섬기라 그랬거든요. 그리고는 찌질하다고 유다 후손인 남유다를 계속 괴롭혔습니다. 그러므로 소위 죄가 없는 총리 요셉의 후손들의 이 경건을 가장한 영적 교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에요.

    그들은 믿는 사람이잖아요. 열왕기를 봐도 역대기를 봐도 유다의 후손 다윗을 따라야 할 기준이고 요셉의 후손 여러보암은 부정적인 평가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물론 창세기에 요셉이 등장했던 구절 구절에서는 요셉에게 본받아야 될 점이 너무너무 많죠. 그러나 전체적으로 구속사적으로 볼 때는 유다라는 얘기예요. 여러분 이거를 잘 분별해야 됩니다. 요셉을 욕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제 여기에서 아합이 누굽니까?  북이스라엘의 경우 오므리 왕조에서 오므리와 아합이 다스릴 때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어요. 시돈 왕 엡바의 딸 이세벨과 정략 결혼을 하고 또 남유다의 거룩한 성군인 여호사밧 왕의 아들 여호람에게 자기 딸 아달랴를 시집을 보내는 등 영육간에 모든 정략, 결혼, 외교를 통하여서 경제적으로도 찬란하고 상아궁을 지으면서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우상숭배의 악으로 인해서 아합에게 징계를 내리려다가 아합의 아들 세대에 심판을 내리겠다고 열왕기상 21장 29절에 있어요. 그래서 지금 아들 시대에 재앙이 왔어요. 그리고 모압을 통해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기억나십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 아합이란 최악의 왕이 죽었으면 이제 그걸 반면 교사 삼아서 회복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빌딩 지하실이 끝이 아니라고 그 밑에는 지하 주차장이 있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아합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악행의 끝이 아니라 악행에 대한 심판으로 내려지는 재앙이 이제 시작일 뿐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모압을 아버지와 딸이 동침해서 나온 민족이라고 그렇게 무시했던 북이스라엘은 바로 그 모압에게 배반을 당했어요. 여러분들 아합이 악합니까 모압이 악합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과거를 가지고 문제 삼으면 안 돼요. 과거를 묻지 마세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실은 이렇게 보세요. 아합과 모압 중에 누가 더 악해요? 그런데 믿는 북이스라엘은 맨날 모압을 무시하는 거예요. 유다를 무시하는 거에요. 시아버지하고 동침한 유다 무시하고 모압은 아버지하고 동침했다고 무시하고요. 물론 모압은 하나님을 잘 안 믿죠.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여덟 번째 왕이 아하시야입니다.  16장 25절부터 보면 오므리가 그전에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했고 30절에는 아합이 그 이전에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악하게 행했고 그 아들 또 아하시야는 아버지의 길과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고 그러죠. 계속 조상의 길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악하고 더 악하고 더 악했더라가 지금 이제 북이스라엘의 왕들의 이야기예요.

    그런데 말이죠. 금송아지를 계속 섬기면서 저걸 하나님이다. 돈 신을 섬기는 거죠. 문자적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고 그러고 섬기래요. 그리고 대대로 악을 행하는데 이 사람들이 대대로 내려오면서 이렇게 아합시대에는 상아궁에서까지 살아요. 죄의식도 없이 이 후손인 아하시야는 이 악한 부모들에게 효도를 하면서 악한 길을 죄의식도 없이 살아가요. 아하시야는 너무 효자예요. 하나님의 은혜로 아합은 나중에 마지막에 겸비하여 그 재앙을 아들 시대에 내리겠다고 하셨죠. 한마디의 회개도 하나님은 막 그냥 그걸 받아들이시고 이제 아하시야 시대가 됐잖아요. 아하시야는 아하시야 악으로 죽지만요. 부모가 하라는 대로 다 했다는 것은 부모의 구원 나의 구원을 책임지지 못해요. 부모가 하라고 그러는 게 다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기 오므리 아합은 흠이 없어. 할아버지,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 돼 이거죠. 결국 아합의 우상 숭배가 자녀 시대가 돌입해서 1절에서 모압의 배반으로 결론이 나고 2절에는 그 아들의 질병을 가져오고 3절에는 경고를 가져와서 4절에서는 아예 죽음을 가져온다고 지금 한 절 한 절 그렇게 이게 부모의 결론인 거죠. 여러분 내가 권력과 재물을 남기고 죽으면 그 권력과 재물 때문에 나를 배반하고 자녀를 배반하고 집안을 배반할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전에 한 편의 코미디 영화 같은 기사를 읽었는데요. 이 부동산 재벌집에 떼강도가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함께 인질로 잡혀 있던 집사, 가정부, 운전기사, 주차 관리인 등등이 다 공범이었다는 거예요. 그 떼강도 행세를 했던 사람들도 이 부동산 재벌의 다 주변 인물이었다는 거예요. 평소 전화 통화 내용을 듣고 금고에 수백억의 비자금이 있으리라고 생각한 이들이 공모를 했는데 막상 집에는 300만 원밖에 없었대요. 너무 억울하니까 가서 20억 찾아오라고 그랬는데 자금 담당 직원이 신고를 해가지고 이제 덜미가 잡혔죠. 어떻게 평소에 살았는지 모르지만 그 사장은 말 그대로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었다는 거죠. 자기 편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도 자기 편이 없어도 돈이 있으니까 배반당하는 거예요. 돈이 없으면 배반당할 일이 없어요. 그런데 돈은 가졌지만 주의 온통 나를 배반할 사람뿐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끔찍하고 불쌍한 인생입니까?
    아합이 상아궁에 살면서 부자 나라를 만들고 정치를 잘한 왕이에요. 그런데 죽자마자 이렇게 배반당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물질을 자녀들에게 주면 그 자녀가 물질 자랑을 해대니까 배반과 약탈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부모예요.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배반 당하지 않는 삶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돈도, 나도, 내 자녀도 아무도 지킬 수가 없어요.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이렇게 말씀으로 계속 양육시켜 놓는 것은 금보다 더 귀한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아셨어요.


    적용 질문이에요. 
    내가 의지하는 아합은 반드시 죽어요. 내가 무시하는 모압도 나를 반드시 배반한다고 해요. 부모로서 나는 어떤 결론을 자녀에게 남겨 줄까요? 유명 메이커 값비싼 물건으로 치장한 아이들을 학교와 거리에서 배반의 대상이 되게 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나는 부잔데 아이들은 너무 빈곤하게 검소하게 그렇게 키우면은 그 아이들은 억하심정을 가지는 거죠. 그러니까 뭐든지 치우치면 안 되는 거예요. 항상 그래서 말씀으로 설명을 해주면서 그렇게 치우침 없는 이런 거를 나누면서 아이가 설득이 돼야지 무조건 너는 아끼고 살아 이러면은 사단의 밥이 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없다고 무조건 치장을 하고 있다고 무조건 아끼고 이게 다 문제아가 되는 거예요. 남보다는 항상 내공이 튼튼한 아이들을 키우려면 그래서 부모가 솔직해야 부모가 이타적으로 살아야 되는 거예요.


    잘 물으려면 그러므로 잘못 물으면 배반이 따르고 두 번째는 결과보다는 이유를 물어야 되는 거예요.  2절 이제 다시 한 번 읽어요 ‘아하시야가 사마리에 있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며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애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병이 났겠나 물어보라’

    1절에 배신의 사건이 있자마자 그리고 아하시야의 추락 사고가 이어졌다는 거예요. 아무런 손을 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엘리야는 이 다락에서 사르밧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렸고 엘리사도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렸습니다. 똑같은 다락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살겠고 하나님을 배신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인데요. 아하시야는 모압의 배신 이전에 본인이 하나님을 이미 배신하고 있는 거죠.  바알세붑 물으라고 하잖아요. 급할 때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왕이 다락 난간에 왜 올라갔는지 몰라요. 아마 이랬을 거예요. 그 대단한 아버지 아합을 이어서 내가 왕이 됐구나. 그러니까 막 너무 기쁨을 만끽하려고 다락에 올라갔어요. 우리 영국 황실 보면 맨날 다락 같은 데서 손 흔들잖아. 난간에서 다 흔들잖아요. 한편은 또 모압이 배반했어도 아직 나는 땅이 많아. 그리고 이제 자기 도취에 지금 젖어가지고 흡족해 하는거죠.  그러다가는 자기 도취의 난간에서 반드시 떨어질 날이 이렇게 오는 거예요. 떨어지고 나면 내가 왜 저기 올라갔었지 이게 자연스럽잖아요. 그런데 아하시야에게 내린 재앙이 너무도 심각해요. 왜 떨어졌지 이런 이유는 생각하지를 못해요. 아하시야의 유일한 관심은 이 병이 낫겠나? 하나님이 인생에 고난을 주실 때는 그 걸음을 잠시 멈추고 삶의 방향을 생각해봐라 지금 이런 뜻이 있는데 우리는 항상 왜를 질문을 해야 되는 거예요. 이게 살리는 질문인 거예요.

    그런데 아하시야는 죽이는 질문만 하는 거예요. 바알세붑에게 이제 물어보라고요. 아하시야는 ‘왜’ 이거 관심 없어요. 복잡한 생각 딱 하기 싫어요. 아하시야는 예전에 아버지가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었는지 그렇게 우상숭배를 하다가 개와 개들이 피를 핥아서 아합과 이세벨이 다 죽었잖아요. 근데 아무것도 거기서 배우지 못해요. 하나님은 여로보암 때부터 선지자를 보내 부지런히 경고하셨어요. 엘리야도 보내고 이제 엘리사도 보내고 그런데 누구도 심각하게 듣지 않아요. 왕이 되려고 지위와 권력을 가지려고 누리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 오르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요. 들리는 것도 없어요. 따르는 사람, 칭찬하는 사람 당신이 최고입니다 외쳐주는 부하들만 보이니까 자기 실체를 볼 수 없는 영적 맹인들이 되어 버립니다. 이게 정말 심판이고 가장 심각한 재앙인데요.

    아합을 다시 생각해보면 열왕기상 22장에 아합이 아람의 길르앗 라못은 다 본래 우리 것이니까 유다의 그 선한 여호사밧 왕 보고 같이 치자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호사밧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물어봅시다 그랬더니 그쪽 아합의 가짜 선지자 400명이 당연히 이깁니다라고 장담을 합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물을 만한 선지자가 더 없냐고 이러니까 아합이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있긴 있지만 그 사람은 맨날 나한테 흉한 일만 예언해서 미워한다고. 근데 그 미가야가 불려와가지고 이제 아합이 죽을 것이라고 예언을 했어요. 아합이 화가 나가지고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물을 먹이고 가두라. 여러분 이렇게 바른 말을 해주면 옥에 갇히네요. 목장에서도 바른 말을 해주면 다 싫어해요.  그런데 미가야 말대로 아합은 죽게 됩니다. 우리가 밑동이 잘린 나무인 것을 생각하면서 알려주는 게 얼마나 복입니까? 잠시 후에 죽는 게 사실인데, 지금 듣기 싫어하는데 400명의 제사장들이 모조리 폐하가 옳으십니다 이러면서 다 이긴다고 그러는 거예요. 지금으로 말하면 목사라 그래야 되나요? 자기 영혼에 내린 무서운 죄앙은 생각하기도 싫고 사욕을 쫓을 선지자를 두고 날마다 내가 잘 돼 안 돼 그러면 잘 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주는 그러니까 복을 빌어 그러면 또 다 아하시야의 복을 빌고 아합의 복을 빌고. 그래서 천국 가는 길을 막는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기도만 받으면 뭐가 잘 될 것 같지만 이 400명이 북이스라엘에 이게 믿는 나라잖아요. 왕들을 위해서 매일 맨날 축도해 주는 거예요. 미가서 3장 5절에서 8절 보면 예언자라는 자들이 나의 백성을 속이고 있다. 입에 먹을 것을 물려주면 평화를 외치고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전쟁이 다가온다고 협박한대요. ‘예언자들아 너의 날이 끝났다 이미 날이 저물었다. 내 백성을 곁길로 이끌었으니 너희가 다시는 환상을 못 볼 것이고 다시는 예언을 하지 못할 것이다. 성견자들이 부끄러워하며 술객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니 그들이 얼굴을 듣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주님께서 주님의 영과 능력을 채워주시고 정의감과 함께 야곱에게 그의 죄를 꾸짖고 이스라엘에게 그의 범죄를 꾸짖을 용기를 주셨다’. 

    나는 야곱의 허물과 죄를 보이리라 이러는 거죠. 그러니까 고난 얘기를 하면요. 교회 교인들이 50%가 줄고 죄 얘기하면 아무도 안 나온대요. 그러니까 우리들교회는 죄 얘기 안 했으면 여기 어떻게 모래알처럼 많이 모였을까? 죄 얘기해도 이 정도로 왔으니까 그만큼 죄얘기를 싫어해요. 그러니까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에 조금만 고난이 와도 참고 견디질 못해요. 그러니까 늘 조급하고 불안하고 손 쉬운 해결 방법처럼 보이는 걸 늘 찾아요. 그러니까 사기당하고 사이비에 빠지고 우상에게 넘어가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힘든 거 못 참아요. 

    이것이 성경에 그대로 있는데 성경대로 살고 설교하는 것이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더라고요. 근데 저는 남편 때문에 생명을 걸어봤잖아요. 근데 구원해주셨잖아요. 제가 성경 읽은 대로 깨달은 대로 얘기를 했는데 근데 정말 쉽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사건 해결에 앞서 말씀으로 해석을 해야 되는데요. 사건을 주신 이유와 목적을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아이들도 학교에서 시험 볼 때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수록 정답을 잘 맞출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큐티하면서 think 해야 돼요 이거를 해야지 출제자의 의도를 아는 거예요.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 지금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돼요. 그거 하면 세상 책은 어떤 것도 해석이 되는 거예요. 근데 자꾸 그렇게 공부하느라고 학원 가느라고 이게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건이라는 문제도 그걸 허락하신 주님의 의도와 뜻을 알아야 풀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정확하게 해석해서 풀어야 해결이 저절로 따라오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날마다 사건이 왔을 때 이 사건 끝나는 거야? 언제 끝나? 그렇지 말고 왜 왔을까? 내가 생각해야 될 일은 뭐지? 내가 봐야 할 죄악은 뭐지? 이런 구속사적인 질문을 하고 응답을 기대하시기 바래요 그런데 날마다 이게 언제 끝날까 그러니까 결과보다 이유를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적용 질문이에요.
    결과만 너무 궁금해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밑에 깔린 내 욕심이 보입니까? 사건이 온 이후를 깨달아서 자유롭게 된 일이 있습니까


    그래서 잘 물으려면 뻔하지만은 우리는 세 번째 하나님께 물어야 해요. 아무리 뻔해도 여러분 하나님께 안 묻거든요. 모든 답은 하나님께 있죠. 3절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애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가느냐’

    북이스라엘도 분명 하나님의 지금 택함 받은 백성이잖아요. 그런데 병이 들게 되니까 블레셋의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났겠는지 물어보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 왜 하나님한테 안 묻고 이러는 거예요. 이제 뭐 이것이 알고 싶어요. 첫째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기가 싫어요. 왠줄 알아요? 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이 유다와 대결하려고 지금 이제 열 지파 데리고 나가가지고 브엘사부터 단까지 금송아지를 세웠어요.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은 반란해서 나가가지고 처음부터 우상을 숭배했던 거죠. 근데 이후에 아합은 사마리아에 바알을 신전을 건축하고 바알 숭배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더욱 심각해져요. 바알을 섬기던 시돈왕 엡바의 딸 이세벨과 불신 결혼을 했기 때문이에요. 근데 반역해서 나간 순간 하나님의 성전은 그들이 인정하든 안하든 지금 남유다 예루살렘에 있잖아요. 그게 늘 걸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하나님께 뭘 물어보는 그 순간 자기가 유다보다 못하게 된다고 여기게 되는 거죠. 그래서 자신을 하나님보다 이렇게 더 높였던 그 교만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뭐라고 얘기를 하면 여러분 가운데서는 아니 뭐 저 목사가 하나님보다 더 높아? 목사가 뭐라고 나한테 이러고 저러고 얘기를 해 이렇게 얘기를 하는 적이 많이 있죠. 그러니까 지금 이러는거야 아하시야가 절대로 하나님한테 안 묻는 거야. 내가 진다는 거예요. 나는 목자한테 안 물어. 목자한테 진다는 거예요.

    둘째로 아하시야는 욕심을 채우려고 기복 신앙을 추구했기 때문에 바알세붑에게 묻고자 했습니다. 아하시야는 모태 바알 교인이에요. 그래서 바알에게 복을 비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랐어요. 우리로 생각하면 교회를 다니는데 돈 신을 믿고 복을 비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거죠. 그러니까 부모에게 보고 배운 게 사건이 올 때마다 자기가 원하는 답을 준비하고 있는 400명이나 되는 바알 선지자들을 부르는 걸 보고 자랐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바알 섬기던 부모가 하루 사이에 비참하게 다 죽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사마리아 신전에 있는 바알이 아니라 원조 원래 고향인 원조 에그론의 바알세붑을 지금 찾아가라는 거죠. 원조 바알세붑, 바알이 이건 정말 이제 기복신앙의 그거죠. 이게 기복신앙의 기본 구조고 공식인데요. 늘 내 욕심이 기준이에요. 욕심을 채워줄 만한 우상을 찾아 열심히 섬겨요. 그러다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갈아탑니다. 제사를 바꾸고 신전을 바꾸고 도시를 바꾸고 신을 바꾸고 하지만 내 욕심의 만족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사명이 없으면 기쁨이 없고 만족이 없고 감사가 없어요. 그리고 맨날 환경을 바꾸는 거예요. 이런 방황이 끝이 없는 거예요.

    이런 아하시야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 엘리아를 통해 에그론으로 보낸 사자들을 통해 한 가지 질문을 하는 거예요. 아니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까닭을 물으십니다. 지금 간접적으로 아하시야의 불신과 그 기복적 욕심 때문임을 지적하시는 거잖아요. 지금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이렇게 살아계신데 아하시야가 믿기를 거부하니까 네가 바알세붑을 찾지 않냐. 그런데 하나님은요 너무 불쌍하지 않아요? 자기가 만들어놓은 백성이 하나님이 없다그러고 그런데 이 세상에 제사장 나라로 세운 남유다하고 북이스라엘 중에 북이스라엘이 이렇게 하나님을 멀리하고 돈 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겨 대니까 그런데 계속 찾아가서 말씀하시잖아요. 자기 마음이 욕심에 꽂혀 있으니까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은 너무 싫고 그저 무엇이든 들어줄 것 같은 우상을 찾아서 방황한다는 거예요. 아하시야가 그 잘난 부모를 두고도 너무 못 깨달으니까 엘리야를 통해 직접 화법으로 말씀을 해주시는데도 안 들어요. 여러분은 무엇이 이렇게 든든해서 하나님을 못 믿어요? 자식, 돈, 명예, 아버지, 엄마가 너무 든든해요? 그래서 못 믿어요?

    근데 이 사자를 보내서 묻기 전에 지금 또 엘리야를 통해서 가로 막았잖아요. 또 기회를 주신 거예요. 너 거기 가서 묻지 마라. 징계가 목적이 아니고 돌아오라고 사랑으로 지금 가로막았어요. 그런데 여러분들도 교회를 다니면서도 고작 한다는 것이 무당 찾고 점쟁이 찾아서 이 결혼해도 돼요? 동쪽의 학교 가면 붙어요? 그냥 날마다 이런 거 물으러 다녀요. 비참하게도 에그론은 불모의 땅이라는 뜻이고요 바알세붑은 파리의 왕이라는 뜻을 가진 에그론의 신이에요. 아마 파리 모양의 우상이거나 파리가 이 모든 질병에서 보호해준다고 믿은 우상으로 이제 추정이 되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여러분 우리가 있잖아요. 벌은 가장 큰 벌을 여왕벌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파리는 가장 큰 파리를 여왕 파리라 그러지 않고 뭐라 그러죠? 똥파리라고 하잖아. 그러니까 지금 파리의 왕, 똥파리에게 물으러 가냐 이 말을 하는 거예요. 이거 팩트예요. 어떤 주석에도 없지만 제가 생각한 거예요. 생각하니까 너무 재밌더라고 똥파리. 여러분 다 기억날 거 같아요. 똥파리에게 물으러 댕기지 말라고요.

    처음 큐티를 하다 보면 사건 적용만 돼가지고 날마다 뭐 물어보래요. 그리고 결론부터 알려고 하기 때문에 이제 상담자들이 그 결혼 해라 하지 말아라 병이 낫는다 안 낫는다 이런 결론만 말해주면 다들 너무 영험하다. 그러니까 물으라고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는 부모의 악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이미 모압의 배신과 자신의 병을 통해 징벌하셨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바알세붑의 똥파리 신에게 물어보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열심히 물으러 다니는 대상은 고작 똥파리신 같은 바알세붑 같은 존재일 뿐이에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대상을 찾아가서 내 문제를 물으러 공동체를 떠나고 목장을 이렇게 떠나요. 예수 점쟁이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교묘하게 예수 믿고 다니면서 그런데 나한테 좋은 내용으로 해주면 더 열광해요. 올해 대학교 꼭 붙겠어. 시집 가겠네. 취직하겠네. 몇 장 몇 절 봐. 뭐 이러면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오늘 똥파리신이라는 거 이것만 기억하시면 설교 끝.

    이렇게 불신과 욕심으로 우상에게 물은 결과는 4절부터 6절 죽는다 이 얘기해요.’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라 엘리애가 이에 가니라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하니 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하라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니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성경의 한 절이 너무 중요한데요. 반복해서 죽으리라가 4절에도 나오고 6절에도 나오고 16절에도 그냥도 아니고 반드시 죽으리라, 반드시 죽으리라.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다 그 길로 가기 때문에 다 반복해서 말씀을 하세요. 사단는요 선악과 먹으면 정령 죽으리라 했는데 죽을까 하노라 그러면서 먹었잖아요. 그렇죠. 말씀 몰라서 선악과를 먹었겠습니까 정녕 죽으리라 하신 걸 알고 있지만은 하와가 유혹을 너무 강하게 하기 때문에 죽을 거 알면서 다 선악과를 먹어요. 죽을 거 알면서 불륜을 행하고, 죽을 거 알면서 전부 다 동업을 하고 코인을 하고 마약을 하고 그래요. 우리의 죄성입니다. 에그론의 바알세붑을 반복하며 강조하시는데 말씀으로 인도 함 받는 것이 얼마나 큰 능력인데 네가 고작 똥파리 신에게 물으러 가느냐고 호통을 지금 치시는 엘리야를 통해서. 그러니까 우리니까 오늘 결혼해라 마라 어디를 가라 말아라 너무 확신에 차서 말해주는 거는 다 이상하게 여겨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의논을 하지만 답을 주는 데가 아니에요. 이렇게 해서 인도함은 당신이 받아야 한다. 

    적용이에요.
    산기도 다니는 건 뭔가 공을 들인 것 같아서 뿌듯한데 큐트하고 말씀 듣기는 힘이 하나도 안 들지만 그런데 날마다 힘들어 지친다고 느낀적은 없습니까? 내 문제를 누구에게 묻고 있나요? 하루 동안의 대화에서 내가 묻고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얼마나 묻고 있습니까? 실제로 적어가하면서 한번 체크를 해보세요. 확률에 의해 조작되는 신문의 운세 코너를 습관적으로 읽고 있지는 않습니까? 운세가 좋은 날과 운세가 나쁜 날에 마음이 어땠습니까?
    우리가 자꾸 이상한 곳을 찾아다니며 묻는 이유는 십자가 지는 삶이 너무 싫기 때문이에요. 뭔가 합리화할 거리를 찾고 싶고 권위 있는 누가 이렇게 하라고 해서 했다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 물어보러 다닙니다. 그런데 이제 남편의 외도 문제가 갑자기 드러나서 이제 아이가 하나 생겼어요. 굉장히 기가 막힌 일인데 이제 가진 게 많은데 그런데 그 아이 엄마가 어느 날 결혼을 한다고 그러면서 아이를 키우라고 데려왔어요. 굉장히 갓난쟁이는 아니지만 그 정도로 어린 아이인데요. 사실 지금은 힘들지만 그 아이를 키우는 게 가장 최선의 길인 거죠. 또 아이를 키우라고 데려왔으니까 그런데 나의 그 배반 당한 감정이 너무 큰 거예요. 그래서 아니라고 어렸을 때부터 키워야지 그 지금 있는 자녀들하고도 격의감이 없이 그리고 이제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이 집안이 살아나는 비결이다. 이게 십자가 지지만은 아이들에게도 예수 믿게 하고 모두가 돌아오게 할 최고의 찬스다. 그렇게 내가 집사 시절에 이렇게 얘기를 해줬는데 너무 싫지 그렇죠? 자기 집에 혼외자가 들어왔다는 거 알리기도 싫지 그렇죠? 그래가지고 이제 뭐 유명한 목사님한테 가서 상담을 했더니 사람은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다. 자매님은 이걸 할 만한 그게 못 된다. 경제적으로 허락하다면 걔를 홈스테이해서 외국으로 보내라. 그 갓난애를 보내라. 그렇게 해주니까 그냥 너무 기뻐하면서 보냈어요. 그리고는 이거 다 끊고 종교도 옮겼어요. 여러분 그러니까 우리는 눈앞에서 당장 이렇게 되는 것 때문에 이렇게 유명한 사람의 그 처방을 너무 지금 이제 기뻐하면서 권위 있는 누가 얘기할 때 상담을 공부하고. 그러니까 이게 이제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되어질 일에 정말 이걸 십자가를 길로 놓으면 되는데 결국 내 문제를 누구한테 묻는가는 너무 이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엊그제 저한테 편지를 보내신 집사님이 계신데 남편이 이제 나가서 한 달 이상 이제 안 들어오니까 이렇게 이제 목사님, 남자 초원님 두 분하고 이제 저와 남편이 한 자리에 이제 모였다는 거예요. 어떻게든지 남편을 돌아오게 하려고 모였는데 아내는 그냥 말씀 녹취하고 맨날 성경 말씀 들으면서. 하여튼 살겠다고 나갔는데 초원님이 자리에 제대로 앉기도 전에 저에게 큰소리를 치시고 제가 그 흘리는 눈물을 보시고 눈물 뒤로 숨는다며 혼을 내시고 제가 이제 공황장애 이제 발작을 가졌는데 그래서 또 왜 시작이 어떻게 싸웠냐고 그래서 동생 상을 당한 주에 남편과 싸웠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또 동생의 죽음 뒤에 숨는다고 호통을 치시고 그리고 동생의 죽음은 남편 입장에서 남의 일이라고 소리를 지르시고 저처럼 센 여자는 센 사람이 훈련해야 한다면서 본인 목장으로 보내라고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며 오늘 목사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의를 위해 박해를 받으라잖아요. 박해 받으세요 하면서 박해인지 학대인지를 받다가 혹시 몰라서 막 심한 발작으로 쓰러져서 뭐 이렇게 막 그냥. 남편 이야기는 다 맞고 제 얘기는 듣지도 않으시고 만나기 이전에도 제 얘기는 단 한 번도 듣지 않으셨고 오직 남편 편만 들으시며 저는 그 자리에서 이상한 여자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초원님은 남편에게 아내분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것 아니냐며 질문을 하니 남편은 아내에게 가스라이팅 당했다며 억울해하고 그렇게 저는 그대로 다들 아내 집사님이 죽어 져야겠네요. 이 소리만 듣고 남편은 초원님과 나가버렸습니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으니 초원님이 저런 여자랑 사느라고 아주 힘들었겠네 라면서 집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서 욕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우리들교회는 가정 살리는 교회 아닙니까? 남편은 여전히 제가 돌아오라고 사정해도 돌아오지 않고 초원님을 등에 업고 의기양양해 하면서 제 말은 다 가스라이팅이라며 이혼을 요구합니다. 목사님 초원님을 치리해 주십시오 이렇게 이제 보냈어요. 아 그래서 제가 이 금세 답장을 했죠. 그러니까 이제 남편이 약하고 집사님은 너무 믿고 그러니까 모두가 남편 편을 들어줘야 되는 게 맞는 거라고 거기서 더 더 있잖아 오바하면서 그게 이제 마땅한 거라고.

    제가 있잖아요. 이번에 미국에 갔는데 자매는 저를 너무 잘 알고 좋아하고 너무나 근데 이제 결혼 생활이 힘들다고 그랬어요. 남편을 만나본 적이 없는데 아주 직업도 좋고 그래요. 그랬는데 나를 만나러 왔다고요. 나는 이제 와이프는 청년 때부터 너무 잘 알고 그래서 그랬는데 그 이상한 남편이 올 거를 생각했는데 미국 서부에는 다 해변가가 쫙 있잖아요. 근데 갔는데 해변가에 제가 오기 전에 그 모래사장에 하트를 그려놓고 거기다가 김양재 써놨어요. 그 남편이요. 우리들 꽤 설교도 듣고요. 그 남편 정말 박수 쳐줘야 되지 않아요? 그래서 보자마자 제가 너무너무 칭찬을 해주고 제 설교도 막 다 외우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지금까지. 그래서 막 칭찬을 해주고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싸우는 거예요? 왜 와이프는 때렸어요? 그랬더니 지금까지 때린 적 한 번도 없다는 거예요. 이제 그렇지만 자기가 이렇게 화를 내고 이제 이런 건 잘하지만은 여러분 그런 남편이 어디 있어요. 안 그래요? 그래서 내가 이런 남편이 어딨냐고 계속 그랬더니 아니 목사님은 왜 모르시면서. 아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이게 계속 그래가지고 제가 이 얘기를 해줬어요. 나보고 틀렸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아니 거기서 사는 게 문제지 와이프 올려주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지금. 이해되세요?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계속 띄우고 그래도 둘 중에 약간 믿음이 좋은 사람은 계속 눌러주고 이래야지 중재가 되는 거 아니겠어요. 화평케 하는 자는 그렇게 하는 거예요. 아셨어요? 

    제가 이제 얘기를 했죠. 아니 우리 저기 목사님 초원님 둘 아니 할 일 없다고 지금 이게 저기 뭐야 우리 집사님 부부 만나러 갔겠냐고 살리려고 갔죠. 제가 막 아내를 야단치니까 정말 일부러 야단쳤는데도 아유 우리 집사가 있잖아요. 그냥 나보고 목사님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이러는 거. 여러분 이게 말이 돼요. 그래서 그동안 내 힘들었다는 게 진짜야 가짜야 막 이런 생각이야. 근데 여러분들 진짜 가짜에 굉장히 공감이 되세요. 지금? 근데 집집마다 이렇게 맨날 문제가 많은데 그래서 감사함으로 이걸 받으시면 좋겠다고 너무 집사님 가정 살리려고 한 거다 그랬더니 금세 답이 왔어요. 잘 봤죠. 이 집사님을. 제 죄를 직면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해주시니 너무 감사하고 목사님의 말씀이 무조건 옳소이다가 됩니다. 오늘 남편을 찾아가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 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답이 왔다니까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혹시 또 이럴 때는 이렇게 또 답을 해주셔야 되는 거예요. 아셨어요? 아 그게 어저께 아침에 답이 온 건데 저녁 때남편을 모시고 들어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남편을 초원님들이 만나준 게 효험을 발휘한 거지 안 그래요? 제가 썼어요. 그 남편을 외롭다고 친구가 있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이렇게 잘 물어야하고 누구한테 물어야 되고, 누구한테 야단을 맞아야 되고, 그러니까 여기서 이 부인 편만 들어주면 그거 깨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상을 잘 찾아서 물어야 되는 거예요. 아셨어요? 되게하는 화평케 하는 중재자를 찾아가야지 나만 옳다고 하는 아합의 400명 아하시야의 400명 가짜 선지자한테 찾아가면 안 되는 거예요. 아셨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누가 처방할 때마다 저가 말만 하면 목사가 하나님이야? 완전히 하나님 자리에 있네 자기가 뭐라고 나보고 하라 말라 이런 얘기를 제가 한두 번 들었겠어요. 내가 여러분들 가정 살리려다가 내가 정말 지옥을 몇 번을 갔다 왔나 몰라. 진짜 내가 이게 하나님 사명이 아니면 그 욕을 먹고 여기까지 오겠습니까 네 말씀을 맺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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