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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장 19절~25절 - 고침 받읍시다주일설교 요약 2023. 7. 13. 01:22
오늘은 6.25 가 73주년 되는 날입니다. 저는 양가가 실향민 집안이에요. 그래서 북한에서 815 광복전에 서울로 피난왔고 625전쟁전에는 부산으로, 낙동강 일사후퇴 전에는 제주도로 피난가서 그럴때마다 모든 재산을 버리고 떠나는 경험을 한 집안들이에요. 일촉측발의 은혜로 우리가 자유를 찾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없으면 어찌 예배를 드리겠는가 하는 늘 보고 들었습니다. 남북 이스라엘이 계속 싸우듯이 우리도 남북이 대치가되어 싸우는 것이 70년이 넘었습니다. 잘 사는 길이 다른 것이 아니고 구원을 위하여 사랑과 심판으로 고침받게 하시는 것이더라구요.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고침 받을 것인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고침받기 원해야 합니다. (19절) 그 성읍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요단강을 갈라서 동편에서 서편으로 다시 건너온 엘리사는 곧 여리고에 도착을 합니다. 그런데 거기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하소연을 하네요. 여리고가 위치는 좋은데 물이 나빠서 농사가 안된다는 거에요. 물은 모든 것의 근원 아니겠습니까? 물이 나쁘니까. 이 뜻이 유산된다는 뜻이에요. 생명이 죽어간다는 거에요. 겉모양은 아름다운데 아무리 경치좋고 사람과 돈이 몰려도 다들 잠시후에 시들시들해지고 아이 울음소리가 안 들리고, 죽어간다는 뜻입니다. 여호수아 6장 26절에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재건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 그랬씁니다. 그런데 300년 후 이스라엘의 아합시대에 사마리아 성을 쌓고 상아공을 지으니 부러운 것이 없는 시대가 되어서 여리고성 건축하지 말라는 성경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거에요. 우리 하나님과 God을, 골드하고 갓을 멀리서 보면 똑같다고 했잖아요. 이때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뜻의 히엘이란 사람이 이름은 최고로 경건하게 지었지만 말씀을 어기고 재건했다가 두 아들이 죽는 저주를 받았다. 열심히 재건을 했는데 저주 받는 일이 일어난 것이잖아요. 그러면 항상 우리가 근원을 살펴봐야 하는 거에요. 이 사람 이름 너무 잘 지었잖아요. 그런데 이름은 큐티하며 십자가의 의미가 있는 구속사적으로 겸손하게 짓는 것이 좋아요. 그때 큐티하면서 구스하고 했을때 세라라는 이름이 나왔는데 큐티하면서 세라라는 이름을 지어야 겠는데 성이 김씨 인거에요. 그래서 고민하셨는데 평원님이 손녀 이름을 그냥 김세라라고 지었어요. 다말의 다, 유다의 유 다유로 지었어요. 굉장히 구속사적인 이름이잖아요. 네 이름은 왜 다유야 다 물어보잖아요. 우리 손녀딸은 상기잖아요. 상기하자6.25 해서. 6.25때 태어나서요. 여자인데 왜 상기야 물어보면 맨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이런식의 큐티를 하면 서 이름을 지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저주받았던 여리고에도 때가 되니까 우리를 고쳐달라고 엘리사에게 찾아오는 사람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주님과 같은 말이에요. 목적은 기복적인 것 같지만 하나님의 선지자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고침 받기 원해서 왔어요. 그런데 지난 주일에 선지생도 제자라고 하면서 스승의 시체찾겠다는 이 고집을 부리는 제자들과 이 저주의 여리고, 욕심의 도시에 살면서 문제를 선지자에게 가져오는 여리고 사람들 중에 누가 믿음이 좋은거에요? 고정관념을 늘 내려놓아야 한다. 20절에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그런데 엘리사가 이 초신자들을 호호불어 가는 거에요. 물의 문제를 듣자마자 뭔가 해결책을 주는 것이 새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라는 거에요. 이 말을 들은 여리고 사람들은 곧 가져왔어요. 제자들처럼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고 고집부리지 않았고, 토 달거나 묻지 않아요. 선지자가 말하자마자 곧, 즉시 새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왔습니다. 선지자 제자 입장에서 보면 여리고 사람들이 이방인들이잖아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적도 없을테도 엘리야, 엘리사가 행한 기적을 직접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죠. 소문만 듣고 선지자의 능력을 신뢰햇습니다. 선지자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들교회 성도들은 여리고 성도같은 분들이 많아요. 전혀 처음 믿는 분들이 많이 와서 세례를 많이 받잖아요. 도리어 오래된 사람들이 큐티를 안하는 많더라고요. 믿음은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순종하는 것이에요. 그것은 무지나 맹목적인 것이 아니에요. 내가 아닌 하나님이 진짜요 정답임을 아는 거에요. 믿음이 진짜 지식이고 지혜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가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적용질문
여러분은 고침받기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러면 목장에서 나누고자 합니까?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한다라고 생각합니까? 온라인 성도 여러분들은 언제까지 온라인 예배 드릴 예정이세요? 목장에서 나누지 못하잖아요.
두번째는 고침받기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말씀으로 고침받습니다. (21절)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내가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내가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겠노라라고 발람에게 이야기 했었는데 오늘 어떻게 고치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으로 고쳤어요. 그것이 엘리사가 한 말과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이르렀대잖아요. 이것이 공동체에서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면 맑은 엘리사의 샘물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여리고 백성이 말씀에 순종하여 소금을 새그릇에 담아 가져오자 엘리사는 여리고의 흐르는 샘물의 근원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제사때마다 소금을 치잖아요. 소금 언약을 기억해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말씀의 소금을 딱 던지는 거에요. 물 근원은 문제의 근원을 상징합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문제는 현상이잖아요. 그 근원은 따로 있어요. 바로 우리의 죄 잖아요. 이 죄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현상문제들만 아무리 해결하려고 해도 문제가 끝없이 이어지죠. 아무리 시체를 찾아도 바로 앞에 있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다른 시체를 계속 찾는 거죠. 지금 여리고의 문제는 히엘이 재건한 거잖아요. 하지 말라는 것을요. 그것을 모르고 소독약 넣고 뭐하고 이러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죄에 물든 내 영혼을 봐야 하는데 내 본질은 안보고 날마다 기도하면 돈 번다. 건강해진다고 하는데 시체 찾아 되는 것과 같아요. 나의 병든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질때 그때 고침을 받는 거에요. 그래서 항상 근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내 삶의 결론인거에요. 이 문제가 생긴 것은 삶의 결론인거에요. 그것을 아무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마리아가 계속 우는데 자기가 왜 우는지도 몰라요. 예수님이 양육을 해 주시잖아요. 그래서 공동체에서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내가 이 물을 고쳤다.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 것이라. 주님만이 고칠 수 가 있으신 거에요. 우리가 문제에 대해서 공동체에 묻고 말씀으로 처방을 받으면 내 상식으로는 당신이 나보다 옳소이다가 도저히 안되는거에요. 말씀에 순종해서 말도 안되는 적용을 해서 고침을 받은 지체들이 매주일 허다한 증인으로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한번 해볼만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까 이것보다는 내가 어디로 가야하나 뿌리로 가야하는 거죠. 본질로 가야 하는 거죠. 그 본질에 소금을 딱 뿌려야 하는 거죠. 이 방법을 이 세상에서 가르쳐주는 곳이 없어요. 그래서 매일, 잠시는 효과가 있지만 현상적인 것만 치료하려고 하니까 안되는 거에요. 우리들교회가 더디가는 것 같아도 근본을 치료하니까 정착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22절에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엘리사가 그대로 했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목자님들이 다 처방을 하면, 목자님들이 한 말과 같이 고쳐진 일이 한 둘이 아니에요. 목자를 여러분들이 우습게보시지만 목자도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고쳤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이 신뢰하시니까 하나님을 의지해서 처방을 내 놓는데 같이 의논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거죠. 그렇다고 목자들이 동으로 가라 서로 가라 이런 이야기는 안해요. 꿔줘라 말아라 이런 이야기도 안해요. 물론 그렇게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물이 고쳐졌대잖아요. 오늘 나쁜 물과 같은 여러 문제들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오셨다면 참 잘오셨고, 재대로 찾아오셨어요. 오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믿으시고 순종하실때 주님이 그 믿음을 절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거해서 고쳐주잖아요. 저도 말씀에 의거해서 여러분들을 고쳐주면 좋겠어요. 저한테는 능력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의거해서 여러분들이 모두 고침을 받을지어다. 그래서 즉각적인 순종으로 이 물을 고쳤으니의 말씀이 우리에게 모두 있기를 원합니다. 본질을 생각할 때 교만해지고, 바람피는 것에 대한 저주의 뿌리에 근원에 소금을 뿌려야 하는데요. 근원을 잘라내기 위해서는 가지 말아야 할 곳도 있고 보지 말아야 할 것도 있고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도 있고, 연민에 사로잡히지도 말고 끊어야 할 것 끊어야해요.
오래간만에 유명한 주식집사님 근황을 전하겠어요. 이 분은 주식으로 망해서 예전 큐티모임붙 오셨어요. 지금까지도 주식나눔만 하세요. 정말 주식만 끊으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 같은데.. 머리 좋은 그 분이 어떤 회사 주식을 사기만 하면 주식이 떨어지고 그 회사가 망한다고.. 그래서 20년이 훨씬 넘었잖아요. 이 분 의사선생님이잖아요. 결론은 남은게 없어요. 병원도 날라가고요. 다 날라가고요.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에요. 여리고처럼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 저주가 있는 거에요. 집안 식구들 모두가 애통해서 고쳐달라고 해야 되겟는데 제가 되겠는데 애통의 정도가 약한 것 같아요. 그게 의사가 되서 그렇지 않을가 생각을 하는데요. 혼자 힘으로는 절대 못 끊어요. 이 분은 오래 전에 임플란트를 뉴욕에 가서 배우고 오신 분이고 너무 잘하셔서 병원 진료만 해도 너무 잘 사실텐데 주식을 하셔도 그분만 따라 다니는 환자가 많아요. 그런데도 컴퓨터 켜 놓고 주식과 환자를 같이 보시죠. 그 좋은 머리로 계속 하는대도 몇번 흥하니까 흥해서 도리어 더 망하는거에요. 주식을 사실은 영원히 30년전에 사 놓고 묻어 놨으면 엄청 부자가 되었을텐데 맨날 단타만 하시니까. 단타를 넘어 선물까지 하시고.. 오래되다 보니까 그 남편 내려 놓고 아내가 남편 약재료 가지고 기쁘고 즐겁게 복음을 전하기는 하시는데 남편 때문에 너무 우울한 거에요. 그 집안에 내려오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온 집안이 우울해요. 그래서 제가 남편 야단치다가 방법을 바꿨어요. 우리 권사님 집사님 그러시면 되는거에요? 남편 내려 놓고 기쁘고 즐겁게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지. 목사님은 남편 야단치다가 나한테 왜 그러세요? 그 집사님은 주식해서 무슨 바람을 피는 것도 아니고 오직 정말 아내 밖에 몰라요. 아내 밖에 모르는데 결과가 뭐에요? 병원도 집도 다 날라갔는데 이런 기가막힌 일이 있을수가 있어요. 20년이 지나보니까 귀가 막혀서 그래서 근황을 전하는 바에요. 우리 가운데 20년동안 중독이 안 끊어질 수도 있다는 거에요.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현상만 생각하고 좋은 이야기만 하잖아요. 진정한 고침은 아픈 이야기도 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그 집사님은 저를 좋아하고 저도 좋아해요, 안되는 것이 있어요. 말씀을 근원에 대고 지져야 되는데 말씀으로 고침 받아야 하는데, 예배 드리고 양육받고 사람 살려야 하는데 집사님이 절 좋아하지만 주식 보느라 양육 받을 시간이 없네요.
한 집사님의 나눔을 보니까 3인 1조로 과제를 했다는 거에요. 딸이 아빠의 양육 숙제를 도와주다가 변화되고, 아내가 남편과 같이 양육을 받으며 숙제를 도와줬는데 남편이 더 변화되고요. 그래서 이번 양육을 통해서 10개의 주일 설교를 모두 듣게 되서 감사하고, 숙제를 해 줘야 하니까 반 강제적으로 들었는데 듣고나서 조금 변했다는 거에요. 그 과제에 집사님, 백수남편, 백수 딸 이야기를 안 쓸수가 없어서 썼더니 그것을 딸이 읽고 부모 생각하더니 알바 한다고 나왔다는 거에요. 양육 마무리 즈음에는 남편이 취직이 되서 감사했는데 놀란 것은 남편이 양육을 날로 먹지 않고 목사님 책 10권을 다 읽겠다고 하더니 지금 9권째 읽고 있대요. 달라진 것은 아침에 일어나서 큐티를 저보다 먼저하고 아침에 큐티를 못하면 저녁에 와서 내가 오늘 큐티를 못했네 이러면서 한다는 거에요. 저만 안변하고 남편과 딸이 모두 변했어요. 양육하시는 분들도 사명을 가지고 우리 자신들보다 더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래서 살아나는 것을 또 나누어 주시는 거구나. 지금까지는 십일조를 교회에 드린다고 생각했어요. 십일조가 신앙고백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는데 이미 남편은 저에게 십일조 하라고 다 맡겼는데 제가 그것이 안되니까 십일조 떼어먹고, 선교헌금, 월정헌금 내 마음대로 했어요. 하나님 이제 계산 끝났어요 했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이번에 처음 농지연금 나왔는데 그 밤에 나오자마자 바로 드렸어요. 십일조를 썼나 안썼나 그러다가 하나님이 아시겠지 하면서 자유함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십일조를 드렸는데, 글쎄 양육을 어찌되었건 권하고 싶습니다. 양육받으면서 1%로라도 나에게 들렸다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에요. 이것이 말씀으로 지지는 거에요. 그래도요. 주식집사님은 온가족이 우리들교회 다 나오고 모두 좋아하세요. 여기서 다 신결혼 했어요. 소망이 있습니다. 이제는 주식에 소금을 뿌려서 그 짐을 내려 놓으시길 바랍니다. 주식의 짐을 내려놓으세요. 이렇게 주식이 무섭더라고요.
적용질문
오늘 말씀의 소금으로 잘라야 할 나의 근원적인 부패함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끊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리고 같은 우리 집안을 위해 고쳐달라고 찾아가야 할 엘리사는 누구고 어디에요? 이것때문에 양육으로 지질 생각은 없으신가요?
양육을 받고 안받고는 하늘과 땅 차이에요.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여러분 안변해요.
세번째, 심판으로 고침받습니다. (23절)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벧엘은 아브라함이 단을 쌓고 야곱이 단을 쌓았던 영적으로 유명한 장소였어요. 그런 곳에서 요셉의 후손인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다윗왕조를 배반하고 예루살렘에 예배 드리러 못가니까 백성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금송아지를 모셔놓고 예배를 드렸어요. 금송아지니까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하니까 돈신을 섬기는 것이죠. 그런데도 교회에서 섬기면 돈 나온다고 하니까 금송아지 예배인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많이 가는 거에요. 여로보암의 죄가 가장 큰 죄악이라고 열왕기서를 통해 끊임없이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영적교만이 하늘을 찌른 벧엘이 되었는데 자신들이 정통적인 믿음의 집안이라고, 예수하면 자기 집안을 빼놓을 수 없다고.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배반을 해서 나갔는데, 금송아지 섬기고 있는데 점점 더 살고, 사마리아성을 쌓고 상아궁에 살면서 아주 금송아지로 기복이 온 몸에 배었기 때문에 기복자체가 신앙인줄 알아요. 우리가 무당, 점쟁이 찾아가듯이. 그래서 팔복산으로 올라가는 하나님 잘 믿는 엘리사 같은 사람을 보면 완전히 다른 믿음이야. 저거 이단이네 하며 대적을 하는 거에요. 여기서 작은 아이들은 어린이라기 보다는 청소년, 청년 이런 젊은이들을 말해요. 이런 사람들이 수십명이 우르르 엘리사 앞으로 나왔어요. 창세기 8장 21절에 사람이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했잖아요. 10위권으로 들어온 한국도 금송아지 맘몸신을 섬기기 때문에 다음 세대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이들이 엘리사를 몰랐을리 없죠. 얼마전 엘리야와 함께 이곳에 머물렀었잖아요. 하지만 이들은 벧엘의 금송아지 우상에 완전히 사로잡힌 삶을 살기에 선지자를 알지만 실제론 몰라요.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알지만 존재는 몰라요. 안다해도 인정하지 않아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다 눈에 번쩍번쩍 보이는 금송아지 우상이 더 좋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을 금송아지 우상처럼 믿으면 이제 돈을 경배하는 거잖아요. 경배자가 돈이니까 하나님은 당연히 관리자로 놓게 되는 거죠. 돈을 하나님처럼 생각하게 되니까 자손들이 하나님을 관리하는 조상들을 보고 영적 교만에 빠질수가 있습니다. 자녀들을 저주하려면 영적교만에 빠지시기를 바래요. 사람을 모독하면서 신체적인 것으로 모독하면 정말 나쁜 거에요. 사람은 정말 장애아건 아니건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인거에요. 내가 이쁘게 낳고 내가 장애아를 낳은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외모를 비하하는 것은 최고의 악질적인 죄악이에요. 대머리는 나병환자가 머리를 깎아야 하잖아요. 대머리하면 나병, 부정하다, 사기꾼이고 거짓말쟁이다란 뜻의, 대머리여가 모독한 것인데 이 세상은 부부간에도 외모 비하가 많고 정말 최악이다. 제 남편도 저에게 외모 비하적인 발언을 했었죠. 환자에겐 그렇게 친절한데 객관적으로는 인정할 수 없는 외모 비하의 호칭으로 저를 불렀어요. 알려드리면 여러분들이 부를까봐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저에게 목회하면서 지금 여러분의 비난을 들어내라고 미리 훈련 시킨것이구나 생각이 드니 미리 심판을 겪ㅇ서 고침 받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자꾸 비하의 말을 들으면 사람이 자꾸 비하된다구요. 사실 대머리보다 더 모욕적인 것은 올라가라 에요. 신체적인 조롱은 엘리사 자신에 대한 것이니까 괜찮아요. 그런데 대머리여 올라가라 때문에 아이들이 죽었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문제제기를 하신 거에요. 왜 그것때문에 죽었을까 경청해서 들어야해요. 본문에 들어가서 준비된 귀로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저주받은 여리고를 엘리사에게 겸손하게 찾아갔는데 이 영적인 벧엘은 영적교만에 빠져서 엘리사를 저주하고 있잖아요. 그냥 배척하는 정도가 아니고 저주하고 있습니다. 올라가라는 스승 엘리야의 승천을 우습게 여기고 빈정거리면서 너도 네 선생처럼 올라가봐, 승천해봐 이러는 거에요. 큐티 좋아하시네 너나 해. 승천의 사건을 조롱한 것은 엘리야를 조롱한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을 조롱한 것이다. 네가 무슨 선지자야. 꺼져. 여호와 신은 필요없어. 교회가서 기도해도 돈이 나와야지.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이러는 거죠. 팔복 같은것 좋아하네 . 아하시야 다 죽었잖아요. 이세벨과 아달리야는 살아있잖아요. 그러니까 물질 우상 이런 것이 굉장히 무섭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서 여전히 무섭게 조롱하는 거죠. 또 옛날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자란 말은 심기일전해서 예배하러 가자는 뜻이었지만 지금 엘리사에게 벧엘로 올라가란 말은 금송아지 경배하러 가라 이거에요. 이것은 선지자를 시험하고 모욕하는 공격이에요. 그 선지자를 세우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거고, 적극적인 불신이고 반역인거에요. 그들은 당신이 다할 것이 무엇이냐. 당신은 농사꾼이라도 부자아니냐. 돈 좋아하는 사람이 돈으로 가장 공격을 합니다. 자기들이 벧엘의 가치관에 젖어 살면서 벧엘로 예배하러 가는 사람 돈을 갈취하면서 또 벧엘로 올라가라고 노래를 부르는 거에요. 특별히 젊은 아이들이 조롱을 했다는 것은 부모가 개입이 되어있다는 거에요. 특히 선지생도 50명이 으뜸되기 원해 시체 찾다가 못 찾으니까 분했겠죠. 그러면 안 좋은 소문이 나겠죠. 우리들교회에도 목세와서 말씀이 안들리면 다른 곳에 가서 말 나오겠죠. 소문이 나서 벧엘의 부모들까지 개입이 된 것 같아요. 여러분들 이렇게 대머리 올라가라고 조롱을 할정도의 일이 생겼다면 교회에 문제가 왜 없겠어요. 차라리 안 다녔으면 안 다녔지. 아이들 앞에서 교회를 조롱하고 목회자를 조롱하면 분별력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비판을 하면서도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 자신이 몰라요. 제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시아버님이 훌륭하신 분이에요. 사업을 성공하셨잖아요. 장로님이 되시니까 목회를 사업으로 보시는 면이 분명히 있으셨을거에요. 믿음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고 나중에와서 믿으셨으니까. 그러니까 아버지를 우리 남편은 너무 존경하는 거에요. 아버님이 대통령 감이라고 그러세요. 항상 승리를, 성공하셨으니까 당회에서 훈수를 두시고 비판이 나오고. 그것을 자녀가 듣는거죠. 우리집은 알름알름 하게 깨끗하고 당회를 베푸는 집이지만 겉으로는 기가막히게 좋지만 앞으로남고 뒤로 밑지는 거에요. 남편이 왜 한국교계를 대표해서 비판해야 하는 사명을 뛰고 이 땅에 태어났나 생각해보면 여기가 근원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아버님이 늘 훌륭하신 거죠. 바람도 안 피세요. 진짜 모든 것이 따라가야 할 점이 너무 많으세요. 그것에 비하면 친정부모님은 어머니는 믿음으로 아버지는 성품이지만, 한번도 비판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우리 엄마가 화장실 청소하는데 누구를 비판하시겠어요. 서울에 곧 올라오셔서 화장실 청소하시고 천국가는 그날까지 그거 하시다가 천국가셨는데 당연히 앞으로는 인정 못받았지만 밑진 것 같지만 오랜 시간 뒤에 뒤로 남았잖아요. 우리가 이 맘몬 세상가치관으로 볼때 그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누가 화장실 청소하는 어머니를 존경하겠어요. 무시 받았겠죠.어려서부터 무시 받는 것을 봤잖아요. 인생에 너무 유익하다는 생각이에요. 여러분은 무시 받으면 큰일 날 줄 아는데, 사사건건 교회가 하는 일을 못 마땅해하고, 사역자들 이름을 불러대고 그러시면 안되요. 그대로 자녀들에게 갑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을 보고 그냥 지나가면 안되서 (24절)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엘리사가 자기 힘이 아닌, 자기 이름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으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니까 여호와가 그것을 행하셔야겠죠. 화를 낸 것이 아니에요. 대머리에 상처받아서 되갚아준것이 아니에요. 그들의 불신과 반역에 심각한 죄악을 선지자로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심판을 내린 것이죠. 암곰은 새끼를 지키기 위해 공격력이 최고조에 다른 사나운 곰이에요. 두마리가 42명을 찢었어요. 여러분들 가운데 너무 내가 정신을 못차리니까 상상할 수 없는 말이 안되는데 악을쓰고 나를 공격하더라 그렇다고 하면 근원을 생각해봐야 한다. 하나님이 암곰을 우리집에 우리 회사에 허락하셨다는 것이죠. 어떻게 억울하냐 이것이 아니고 그 불량배 무리 중 42명이 일부라하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무리로 몰려다니면서 엘리사를 보고 이 대머리야 사기꾼에 거짓말쟁이, 그렇게 조롱했다면 어떻게 살겠어요? 너무 무섭지 않겠습니까? 불교나 유교식으로 해석하면 어떻게 할까요? 엘리사도 어쩔수 없어 자기 흉보니까 42명이나 죽였대 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나는 절대 조롱하지도 받지도 말아야지. 이런 적용도 해야 되지만 이것은 인본적인 적용이고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일겅야 해요. 어떤 사건도 최종 목적은 구원에 있는 거에요. 왜 이 아이들이 찢어졌는가, 바로 반역의 조롱에 동참한 나머지 청년들을 회개케 하여 도시 전체가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고 나아가서 이 기록을 읽는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거역했던 죄에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고 부르시는 초청의 말씀인 거에요. 초대교회의 아나니야와 삽비라의 생명을 가지고 가서 교회의 태생을 막는 것은 징계햇잖아요. 지금도 엘리사가 사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십자가 짊의 갑절의 영감을 막아서 교회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치리정도가 아니고 생명을 취하셔야 한느 거고 그것도 42명이요. 얼마나 벧엘이 얼마나 문란하고 악한지 몰라요.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 심판의 사건들은 나를 회개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나팔소리에요. 그런데 그 소리가 크다 작다 나쁘다 이런것만 따지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절대 여러분들은 고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판단은 내려 놓고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깨달아야 한다. 내 안에 죄악을 찾아서 회개해야 한다. 우상의 소굴인 벧엘에 갇혀있던 내 삶이 하나님의 승리가 있던 갈멜산으로 향하는 거룩한 삶이 되는 거에요. 거기서부터 사명이 기다리는 사마리아로 가는 귀하게 쓰임받는 복된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25절에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산으로 가고 기가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엘리사가 여리고에서 복을 가르치고 벧엘에서 저주를 가르친 것처럼 말씀을 통해서 우리 복과 저주를 가르쳤다. 언제나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엘리사 가 마음이 너무 아픈거에요. 어쨌든 42명이 죽었잖아요. 그래서 저주의 사역 후에 엘리야가 아세라 바알 선지자 850명 물리쳤던 승리의 장소 갈멜산으로 달려갔어요. 거기서 스승님 제가 젊은 아이들을 42명이나 죽였네요. 너무 힘들어요. 하는 마음으로 갈멜산으로 갔으리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엘리사가 가야 할 곳은 사마리아 성인데 뜬금없이 왜 갈멜산으로 갔겠습니까?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이세상 풍요의 신 물질의 신 섬기는 자들을 물리친 사건이나 교회다니고 믿음 좋은 장소인 벧엘에 살아도 여전히 금송아지를 섬기는 이들을 물리친 것은 같은 사역이다라는 것을 깨달았을거에요. 그래서 위로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너무 중요하고 말씀으로 해석을 해야 해결이되요. 그런데 늘 현상만 고치러 다니니까 평생을 시체찾아 삼만리, 현상찾아 삼만리, 제일 중요한 근원의 뿌리를 찾아가야 하는데 외로운 사역의 길에서 스승 엘리야를 생각하면서 충전을 하고 앞으로 북이스라엘, 사마리아에서 힘든 사역을 하기 위해 힘을 얻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결과적으로 북이스라엘이 얼마나 힘든 상대인지 엘리야 같은 대단한 선지자도 엘리사같은 선지자도 말씀을 전했지만 북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아무리 바울이 전해도 유대인들은 지금도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그러나 그냥 그러니까 내 아이들이 변하고 우리집 식구들이 변하고 이래야 내가 잘 사는 것이 아니고 때가 될 때까지는 그렇게 하다가 안되도 여전히 사명을 위해서 나의 약재료를 가지고 나아갈때, 지금 우리가 은혜를 받잖아요. 유태인이 안믿어서 전세계가 은혜를 받잖아요. 이스라엘이 안 믿어서 전 세계가, 저에게까지 역사가 ..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내 식구가 너무 안믿으면 하나님께 맡기고 여러분은 맨날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으로 지지고 볶으시면 돼요. 그것만 하시면 맛있는 음식이 나와 다른 사람들이 먹게 될 줄 믿습니다. 지지고 볶으면 다른 사람들이 먹을 재료가 되요. 내 남편 내 아이가 안 돌아와서 우울하잖아요. 이것을 내려놔야 하니까. 장애로 아이가 나온 다음에 목사님의 믿음이 얼마나 좋아졋는지 몰라요.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에고, 자존적인 교만, 나 밖에 모르는 것 여기서 탈피를 못하니까 시체찾아 삼만리 하는 거죠. 애들이 오늘 찢어죽여질 말을 하는 것은 부모의 삶의 결론이에요. 남편이 술먹고 들어온다고 나가 자빠져 죽어라 이런 말을 하나요? 왜 안하겠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찢어죽일 말을 한다면 넌 어떻게 그 모양이니 할 것이 아니라 내 모습을 먼저 돌아보고 애통해하며 통곡해야 한다. 회사가 그만둘때 그만두더라도 결혼도 헤어질때 헤어지더라도 독이되고 저주가 되는 말은 절대 하지 말고, 농담이더라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정말 찢어 죽일 말이 이런거에요. 영육으로, 육적으로 비하하고 영적으로 비하하고요. 걔네들이 어디서 배웠겠어요? 부모에게서 배우는 거죠. 그러므로 여리고의 저주라도 고침받기 원하니까 사랑의 능력으로 고쳐주셨잖아요. 정말 우리는 안 믿는 집에서 내가 태어난 집에서 안믿는 집으로 시집가서 우리는 소망이 없다고 하는데 죽기 1초전이라도 소망이 있습니다. 벧엘의 교만은 심판하셔서 우리에게 경고를 하셨어요. 여리고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고쳐주셨어요. 벧엘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셨어요. 한쪽은 구원으로 고쳐주셨고, 한쪽은 심판으로 경고하셨지만 이것또한 고침받기 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인줄 믿습니다. 심판과 구원은 동전의 양면이에요.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구원으로 연결이 되는 거에요. 심판을 받아야 구원으로 연결되니까 이것또한 사랑의 사인이에요.
적용질문
내 아이들이 곰에게 찢어 죽임을 당할 말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사역자, 목회자 또 남편, 아내, 자녀, 부모, 시부모, 상사, 부하에 대한 표현은 어떻습니까? 신실한 표현을 얼굴과 언어에 나타내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원망하는 심판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모든 사건의 목적은 구원임이 얼마나 인정됩니까?'주일설교 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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