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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교회/QTIn/2023 표어 이제는 안심하라 (행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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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왕기하 3장 1절~8절 - 여호와 보시기에
    주일설교 요약 2023. 7. 13. 01:30

    여호와 보시기에

    열왕기하 3:1~8

    김양재 목사

     

    갈멜산에서 위로를 얻고 사마리아로 돌아온 엘리사에게 아주 힘든 사역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고난 가운데 기회가 있다라고 했는데요. 위기를 기회로 삼는 아주 중요하지만 사실 우리가 자주 겪는 문제는 찾아온 기회를 져버려서 위기에 처하는 일인 것이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 여호사밧과 여호람도 그런데요 그러면 어떻게 기회를 져버리지 않을 있겠습니까? 여호와 보시기에 생각하는 것이 비결이에요? 하는 말이지만은 가장 쉽고도 어려운 것이 묵상이고 여호와 보시기에 어떨까? think하는 것이 바로 큐티입니다. 그래서 오늘은여호와 보시기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여호와 보시기에 앞뒤가 다른 개혁은 악한 거예요. 앞뒤가 다른 사람은 이게 악한 거예요

    1절에서부터입니다. 유다의 여호사밧 열여덟째 해의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동안 다스리니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조상을 없이하였음이라 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1~3

     

    이렇게 이스라엘 남유다는 서로 왕을 이렇게 얘기하죠. 가장 성군일 , 여호사밧 왕일 여호람이 이제 왕이 됐어요.하나님의 말씀대로 아하시아가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죽자 그의 이제 동생 여호람이 왕이 되었어요. 형보다 10년이나 길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성경의 평가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입니다. 그런데 여호람에 대해서는 악을 행하였으나 하고 무조건 악하다고 하지는 않고요. 그러냐면 바알의 주상을 없이 했기 때문에 그의 부모와 같지는 않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부모가 유명한 아합과 이세벨인데 그들이 섬기던 바알 주상을 제했다니 이거 대단한 개혁 아닙니까? 그가 부모를 객관적으로 보았다기보다는 자기가 보니까 대단한 아버지 아합과 형인 아하시아의 결말을 봤어요. 22년이나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권세를 휘두르던 아버지를 보좌하던 팔백오십 명의 바알 선지자들이 엘리아에 의해서 죽임당하는 보았어요. 그리고 이제 무명의 병사가 무심코 화살에 맞아 허무하게 죽은 사건을 겪었죠. 그런데 형인 아하시아는 사건 앞에서 여호와 보시기를 생각하지 않았어요. 내가 왕이라는 자기 도취에 빠져서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바알 세굽이라는 똥파리에게 묻고, 엘리아 선지자의 말도 듣지 않다가 거기도 이제 오십인씩 번을 병사들을 죽이고 왕이 2 만에 죽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하고 형의 죽음을 겪은 후에 왕이 되었어요. 내가 왕이 되었다 지금 기뻐할 때가 아니에요. 이때는 여호람 자신과 자신의 가문인 오므리 왕조와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였던 거예요. 여호람은 아버지나 형이 살던 대로 하다가는 이거 나도 위태로울 있겠네 생각을 모양이에요. 그래서 아압이 만든 궁정 바로 앞에 기둥 우상인 바알의 주상을 없앴어요. 이것 하나만도 대단한 일이라서 성경은 부모처럼 악을 행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종교 개혁을 했어요.그러나 거기까지였어요. 그가 바알 주상을 없앴으나 3 절에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죄를 따라 행했다 따라 행했다 이거는 뒤를 따라갔다는 정도가 아니고요 이게 다베크라는 단어인데 집착하다 내지는 고소하다 의미로 달라붙었다 말이에요. 그러니까 단순히 여로보암의 행동을 답습하거나 모방한 아니라 강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여로보암에 죄악을 완전히 달라붙어서 답습하고 고수해 나갔다는 거죠. 2 절에 바알의 주상을 없앴다. 동사는 수르 동사거든요. 근데 그게 사역형으로 쓰이게 돼가지고 주상을 파괴한 아니고 그냥 이렇게 옮긴 정도였어요. 그래서 이렇게 척결할 의지가 없어요. 여호람에게는 3절에 여러보암의 길을 떠나지 아니했다에 떠나다도 쓰르동사가 똑같은 단어로 쓰였는데요그러니까 지금 여호람이 바알의 주상을 없이 했지만 없앤 척만 하고 여로보암의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겉으로는 그가 우상을 버린 같으나 속으로는 우상 생배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음을 동일한 단어 사용을 통해서 가지는 없애고 가지는따라 행했다가 이원론이 아니고 일원론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의 로사르맨맨나라는 원어는 여호람이 여로보암의 죄악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답습된 죄악에서 헤어나오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심각성을 지금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니 잠시 후에 이제 예후가 반란할 북이스라엘 곳곳의 바알 신당들과 바알 제사장들이 여전히 가득한 거예요. 여호람은 한마디로 앞에서는 개혁을 했지만 뒤로는 돈과 권력에 붙어서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것이 여호와 보시기에 얘기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다들 여로보암의 길을 붙어서 갔을까요? 열왕기상 12 25절에 보면 여로보암이 에브라함 산지의 세김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거기서 나가서 부누에를 건축하고 26절에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겠네 걱정을 하는 거예요. 솔로몬의 밀러 건축을 비판했던 여로보암이 반역을 해서 왕이 되자마자 건축 건축을 했어요. 이처럼 비판을 해서 왕이 사람은 자기도 비판을 받을까 얼마나 독재를 하는지 몰라요. 스스로 모든 것을 하다가 정권을 빼앗았기 때문에 이제 돌아가리라 하며 자기처럼 배신할 자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착각은 상상의 나래를 피고 구체화되기 시작해서 확실한 세상에 자기 나라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정치가 그렇잖아요 이게 무의식적인 두려움이에요. 자기의 부지런으로 왕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부지런을 떨고 건축을 하며 건축을 하고 하지 않으면 이제 불안한 거예요. 사람은 스스로 스스로가 이렇게 특징이니까 하나님만 이렇게 바라보면 의존증 환자처럼 보이고 찌질해 보이고 믿어도 있거든요?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다고 계속 구호를 외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못하는 사람을 무시합니다. 그러다 자신이 뭐든지 스스로 하다가 스스로 되는 일이 생기면 자신을 용납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자살을 해대는 거예요. 

     

    제가 누구보다 강박 관념으로 살았던 사람이에요. 버스가 늦게 가도 불안하고 시간을 보면서 시간에 텐데 하면서 불안하고 연습해야 되고 인간관계를 하려면 여기도 가야 되고 저기도 가야 되고 가만히 있으면 이제 큰일 같은 이렇게 두려움에 떨어요. 좋은 노예와 나쁜 노예의 차이는 우리 노예지만은 그럴 자격증이라도 따는 좋은 노예예요. 그렇지 않으면 나쁜 노예라고 하지만 여호와께서 보시기엔 똑같다는 얘기예요. 그것이 예수 믿기 전에 모습입니다노예 근성은 주인이 올까 무섭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야단 맞을까 두렵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결혼 생활을 하고 지금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겉으로는 여로보암이 얼마나 개혁의 아이콘이잖아요. 지파가 합세해서 지금 반역을 했는데 다음에 북으로 가보니까 백성들이 남유다 예루살렘으로 예배 드리러 갈까 백성들의 마음을 붙잡아야 되겠는데 가장 유서 깊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벧엘 거기서 성소를 바꿨죠. 절기도 바꾸고 거기서 이제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거 하나님이다. 그러고 예배를 드리라고 그랬어요. 이미 모세 시대에 그런 전력이 있었죠. 이렇게 바꾼 것이 열왕기상 12장에 보면 절기를 지키는데 중에서도 번째 장막절은 이렇게 추수 때가 북쪽은 추우니까 뒤에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로보암이 마음대로 뒤로 8 15일로 절기를 정하니까 백성들이 좋은 거예요. 절기를 지키러 가려면 그게 너무 너무 이제 험악한 산과 이거를 거쳐가야 되는데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까 백성들의 필요와 맞아떨어졌습니다. 레위인을 폐하고 어용 제사장인 보통 사람들을 제사장이라고 정하니까 이것도 민주적이라고 좋아했어요. 왜냐하면 당시 제사장들은 그래도 믿음이 있잖아요. 모두 남쪽으로 갔어. 여기는 제사 드릴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소위 자기 마음대로 소명이 없는 돈이 있고 학벌이 있는 사람을 세웠다는 거죠. 한마디로 스스로 있다가 주제가였는데 그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 예를 들면 순종해야 것은 신결혼의 성전인데 불신 결혼하면 내가 믿게 거야를 부르짖는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성소를 바꾸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는 것에 민심이 따랐다는 거예요. 소위 인권 시대인 거예요.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거예요. 이제 이런 개혁으로 왕이 민심을 얻게 되었어요.그런데 국적으로 지파나 갔기 때문에 다수결의 원칙으로 그것이 법이 됐습니다. 여러분들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셔야 해요. 이렇게 민심을 얻게 되니까 누구도 여로보암의 길을 떠난 자가 없게 되었어요. 교회 밖에 이단들은 차라리 쉬웠어요. 근데 교회 안에서 믿는 같지만 눈앞에서 보이는 금송아지 신을 화려하게 보여주면서 예배도 현란하게 드리면서 기복을 부르짓는데 글쎄 실제적으로 북이스라엘의 아합이 상아궁을 지으면서 정치를 소위 정치를 너무 잘하고 살게 되니까 만몬신에 그냥 따라붙어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왕들은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게 해준 여러보암 초대 국부는 날이 가도 시간이 가도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르고 모든 왕은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가고 성경 외에 북이스라엘의 경전을 만들어서 추앙을 했어요북이스라엘이 망할 때까지 그랬어요. 명도 회개하지 않았어요. 여로보암이 잘못됐다고 얘기한 사람이 없었어요사실 남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유다의 관용어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못하였다가 관용어잖아요.

     

    근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무슨 차이가 있냐 하면 남유다는 끝에 가서는 회개를 했다는 거에요. 여로보암이 르호보암하고 그러니까 로호보암이 여로보암의 상대가 되죠. 너무 연약하죠. 근데 마지막에 회개를 했어요스마야 선지자의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여로보암하고 싸우질 않았어요. 여로보암하면 아무 선지자 얘기를 들어 스스로 자기가 결정하니까 남유다는 다들 연약했지만 마지막 회개를 했어요우리 인생이 회개밖에 있어요. 근데 반역을 사람들의 특징이 회개를 한다는 거예요반역 당한 사람은 복수할 필요가 없어요 사람들은 이미 회개가 되는 벌을 자신들이 받고 있기 때문에 그래 불쌍히 여겨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가 솔로몬도 죄가 있고 로호보암도 죄가 있어요그렇게 안타깝게 잠언을 써도 로오보함도 죄가 있고 성군인 아사왕도 죄가 있고 종류가 다를 죄가 있어요. 그런데 거기서 성군은 어떤 사람을 성군이라고 하냐 하면은 가운데서 누가 누가 죄를 보나 영적 계보를 이어가는 구속사인 거예요. 근데 남유다에는 이런 왕이 있었는데 북이스라엘에는 명도 없었다는 . 근데 여로보암도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하고 남유다도 북쪽으로 가면 된다 금송아지 섬기니까. 

     

    그럼 여러분들은 누구 말을 듣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분별이 돼서 교회는 자기만 옳대. 이렇게 되는 거죠. 정말 말씀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분별이 됩니다말씀을 통한 끝없는 통찰력이 있어야 분별할 수가 있는데 우리에게는 근본적으로 기복 신앙이 있고 자립 신앙이 하도 돼서 하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저주 받는다 그러면 무서워서 아무데도 가요. 그래서 목사님들이 성도를 보호하기 위해서 아무곳이나 가지 말라고 해야 되는 거는 맞아요. 그러나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이거를 이제 분별을 해야 되는 거죠

     

    그런데 이제 어떤 부목자님께서 오신 얼마 됐지만 너무 열심히 일해서 벌써 부목자가 되셨네요

    근데 이분은 그냥 아주 우리들교회 와가지고 이제 시험이 들었어. 죄를 까놓고 고백하는 새벽 설교를 들으면서 판단될 때가 너무 많고 성가대가 없는 것도 아쉽고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적어도 주일 강단에 기름 부은 목회자를 세워야지 어떻게 장로를 세울 수가 있냐 그런데 얼마 목사님은 장로님을 개쓰레기로 사셨다고 했는데 개쓰레기와 같은 인생도 이렇게 쓰시는구나는 생각이 문자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마음대로 금송아지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생각할 있죠. 

     

    근데 북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정권을 위해, 이익을 위해, 이해타산을 위해 예배를 마음대로 바꾼 것이고요

    우리들교회는 구속사적인 시각으로 만인제사장 시대에 이타적인 목적으로 구원을 위해 하나하나 적용한 예배를 생명보다 귀하게 생각하는 적용들인 거예요. 근데 이타적인 목적을 가지고 가는 것은 다윗처럼 열다섯 광야를 거치지 않으면 되는 일이에요이게 소명인지 소명이 하나도 없이 일하는지 분별이 되는 거죠근데 우리들 교회는 그런 소명자들 사명자들이 우리를 살리고 있어요. 진정한 예배를 드리게 해주는 거죠. 진정한 내위인인들인 거죠물론 시발은 학교, 교회에서 교회를 학교 체육관에서 드리다 보니까 생겨난 특징이기도 합니다그런데 내가 살아야 우리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정말 나라가 살게 되겠죠 내가 사는 너무 중요해요. 여러분들이 분별이 되냐 하면은 유다가 며느리와 동침한 것은 구속사로 가정에 예수님이 오셨잖아요. 근데 롯이 딸들과 동침한 것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가는 악이였어요근데 똑같이 행위로 보면 뭐가 잘못인지 몰라요 여러분은. 이게 똑같은 행위인데 성령이야. 말이 이해가 되는 거예요소명이 있는지 없는지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이렇게 모르는 거예요근데 열매로 보아 알라고 했는데 우리들 교회는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기 때문에 열매가 있잖아요그러니까 앞뒤가 같아야 개혁인데요. 겉과 속이 다르면 앞뒤가 다르면 아무리 화려하게 거룩하게 예배를 드려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예배가 있다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예수 믿고 앞에서는 , 담배, 사람 먹는 입는 여자 남자 끊었는데 뒤로는 여전히 그리워하며 갈망하고 떠나지 못한 죄가 무엇입니까?

     스스로 있다고 착각하며 앞뒤가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여호와 보시기에 앞뒤가 다르면 악한 거예요 번째는 뇌물을 받은 자가 똑같이 악합니다.

    4 5절이에요. 모압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1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떠나지 못하는 죄가 있기 때문에 지금 모압이 쳐들어오고 배반하는 일이 생겼어요. 모압은 다윗 이후로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어서 조공을 바치고 있었어요힘을 쓰고 있었죠. 모압은 롯이 딸과 동침에서 낳은 모압의 후손이에요근데 이게 모압이 여호와의 총에 들어오니까 세상에서는 노릇해야 되는 마땅해요다윗왕이 이들을 굴복시킨 일에 이스라엘의 조공을 바치는 속국으로 남았잖아요그러니까 세상은 아무리 왕이라도 이렇게 믿는 자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믿는 자를 훈련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믿지 않으면 그렇게 살다가 사망을 월급으로 받고 이제 지옥으로 가게 있는 거죠그러니까 모압은 노릇하는 마땅해요. 우리 믿는 사람은 어디서나 주인이에요. 파출부를 해도 주인이고 부활을 해도 주인이에 주인 의식을 가져야 되는데 그러다가 이제 믿는 사람을 이제 믿는 사람이 모압이 믿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엄청난 조공을 지금 받치고 있잖아요모압은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뉜 후에 독립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어요. 믿는 자가 지금 분열했잖아. 남북 이스라엘로 그러면 세상도 분열해요부모가 이혼을 하면 애들도 분열을 해요그러니까 믿는 자가 하나 되는 너무 중요합니다그렇게 되면은 모압이 조공 들이기가 싫어지는 거죠. 우리 느헤미야서에 보면은 교회가 제사장이 있지 못하면 백성들은 즐거이 헌금을 하지 않아요 들이기가 싫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세상은 어떻게든지 돈이 다니까 내는 싫어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마침내 때가 왔어요분열된 이스라엘이라도 복이스라엘에는 강력한 아합왕이 있다가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리니까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제 반란을 일으켜 독립을 하죠 이상 조공을 바치지 않았어요. 돈이 얼마나 생명줄인데 멀쩡하게 돈을 바치겠습니까? 나에게 오는 것이 없으면 호시탐탐 노리고 배반할 준비를 합니다. 

    겉으로는 양을 치는 자가 되기를 자처했던 메사가 속으로는 칼을 갈면서 이스라엘을 배반할 기회를 잡아 이제 노리는 거예요. 교회도요 겉으로는 아주 양을 치는 자가 되기를 자처했지만 신앙 고백이 있는 사람들이 직분을 가지고 그래서 기본이 우리가 같은 돈을 어떻게 수가 있어요. 이거 신앙 고백이에요. 우리들 교회가 신앙 고백이 있는 사람이 비교적 많으니까 20 동안 이렇게 왔지 아니면 그냥 직분 다툼 세력 다툼 그냥 이래서 옛날에 갈라졌을 거예요분열했을 교회가 분열하면 집안도 분열한다니까요. 얼마나 많은 가정이 이혼을 했겠습니까? 

     

    하지만 사건은요 모압의 반역을 보면서 그러니까 어떻게 감히 그럴 수가 있어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목자가 어떻게, 목원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러는 아니고 하나님을 반역한 누가 나를 반역하면 내가 하나님을 반역한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며 회개하라고 주신 사건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을 위해서 세상이 영육간에 수고를 한다니까요벌어서 나를 주고 영적으로도 나를 힘들게 해서 수고를 하고 있어요. 영적으로도 힘들게 수고를 하고 육적으로도 벌어서 나한테 바친 믿는 사람 우리 선교사들이 이렇게 들어와서 수고를 했기 때문에 모든 지금 재벌 기업들이 믿는 우리들을 위해서 지금 수고하고 있는 믿습니다그렇게 생각하는 맞아요. 여러분 인정하든 하든 예수가 들어가면 나라 전체는 살아져요. 근데 그걸 수고하는 사람들은 모압처럼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수고를 하고 있어요여러분들 이거 가지고 누리시면 되는 거예요 말인지 하나도 몰라. 그러니까 모압의 배반은 아하시아와 여호람에게 하나님을 배반한 죄악에서 떠나라고 주신 기회란 말입니다. 어떤 사건이 오면은 사람을 욕할 아니고 모압이 배반했는데. 내가 하나님을 배반했잖아여로보암이 배반했잖아요. 조상의 죄를 회개하고 죄를 회개하고 이래야 텐데 맨날 속국이었다고 모압을 무시하는 거예요 세상에 무시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이스라엘이 잘난 뭐가 있어요. 근데 자꾸 서열을 정하고 차별한다니까요

     

    그래서 6절에 그때에 여호람왕이 사마리아에서 나아가 이스라엘을 둘러보고 이제 이때는 아하시아를 이어 왕이 되었을 때인데 자기 형은 모압을 이렇게 진압하지 않았어요답답해가지고 지금 사마리아 다스리던 나가서 이스라엘을 둘러보고 점거하고 이게 유명한 파카드예요방문하다. 전국 일주 여행을 하는 아니고 군인들이 얼마나 되는지 직접 살펴봤어요그래서 아주 그만큼 반란 진압에 열심을 냈어요여호람은 사실 열심으로 바알의 주상만 아니라 제단과 신전도 없애고 단과 벧엘의 금송아지 우상을 없앴어야 했죠. 모압의 반란을 통해 조상과 자신의 반란을 회개했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앉으나서나 복수만 지금 생각하는 거예요구원의 기회를 놓쳤어요. 감히 니가 나를 반역해. 하나님은 구원의 열심으로 우리 모두를 사람 사람 돌아보시며 방문하세요우리는 혼자 동시에 여러 사람을 vip 대할 없죠. 심지어 가족도 동시에 그렇게 못합니다하지만 하나님 우리 모두를 순간 vip 대하시며 파카드 방문하시는 거예요누가 중요하고 중요하고가 없어요.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 지금도 일하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이 나를 찾아와 내게 말씀하시는 사건이에요. 아무리 억울하게 당하는 사건, 모압의 배반과 같이 견딜 없는 사건도 하나님이 나를 방문하시는 사건인 거예요. 그런데 이제 우리는 고난을 당하면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주인공이고 나는 피해자 조연이고 그래서 감독이신 하나님은 나를 돌보시지 않고 이런 생각이 우리의 주제가예요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가 있어. 이것이 어쩔 없는 우리의 태생적 한계이고 벗어나야 한계이죠그러니까 이런 거는 그대로 거기서 달라붙어 있어야 한계가 아니에요이런 아니에요.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들지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을 끊어내야 되는 거죠저절로 생각이 들죠.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는 없어나는 하나님 앞에 정말 빈정이 상했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이 아니라 내게 말씀하시는구나 말씀을 내가 들어야 하는구나 하나님께는 내가 구원받아야 주인공이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당하는 배반을 통해 내가 주님을 배반했던 , 배반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고 회개해야 합니다이것이 구원의 기회를 잡는 것입니다

     

    그러니 뇌물을 주고받은 모압의 메사나 여로함이나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는 악한 자라 이겁니다

    아셨습니까? 항상 구원에 초점을 맞춰야 되는 거예요

     

    적용해보세요. 모압의 배반 같은 사건이 있습니까? 여전히 복수하고 싶습니까? 내가 생각하고 회개해야 배반은 무엇입니까? 뇌물을 주고받은 적이 있습니까?

     

     

     

    남편이 술을 먹고 업체에서 받은 이제 돈을 받아왔는데 뭉치를 그냥 당장 돌려주라며 남편의 얼굴에 집어던졌대요그래서 남편이 돈을 다시 업체에 돌려주러 나갔는데 마시고 잃어버렸대요우린 정말 이럴 돌아버려 진짜. 데리고 살아요 말아요 진짜. 근데 교회에서 양육받고 두려움에 떨던 때였기 때문에 보험을 해지해서 업체에 갚아주라고 했대요남편이 들었대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그래서 이사 돈이 나왔다잖아요그래서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적용을 했더니 보상해 주신 같다 이랬지만은 여기서 중요한 거는 사건을 통해서 정말 나의 죄를 봐야 되는 거죠. 자기의 지나친 도덕적인 기준으로 옆에 있는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자꾸 그러니까 자기한테 숨긴다 뭐라 그럴 같으니까. 자기가 시간 양육을 받았는데도 저는 나눔을 하지 않고 얼마 전부터 이제 겨우하는데. 남편이 사건을 너무 많이 만드니까 남편 뒤에 숨어서 자신을 이렇게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하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이런 굉장히 우리가 유혹이 되는 거죠이제야 말씀이 저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리기 시작했고 나눔을 하게 되었기에 그동안 제가 남편에게 불편한 아내였고 남편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에 밖으로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너무나 인정이 되고 나를 위해 수고한다는 것이 인정이 됩니다이것이 어떤 경우에도 모압이 나를 배신해도 나는 죄를 봐야 된다는 말입니다

    아셨죠? 

     

     

    여호와 보시기에 그러므로 우리가 앞뒤가 다른 악한 거예요뇌물을 주고받은 자는 똑같이 악하다고요 그러니까 내가 언제 받는다고 그랬어 자기가 놓고 갔지 이런 .아니 달라고 그러지도 않고 이제 와서 그거를 이렇게 배신을 뇌물을 주는 자는 배신해요. 아셨어요? 뇌물을 그러니까 주고받고 똑같이 악하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는 똑같이 악하다 이거예요. 그래서 번째는 그래서 여호와께 묻지 않으면 악한 자인 거예요.  

    7 8절이에요. 가서 유다의 여호사밧에게 사신을 보내 이르되 모압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올라가리다 나는 당신과 같고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는지라 여호람이 이르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까 하니 그가 대답하되 애돔 광야길로니이다 하니라

     

    여호람이 직접 다니며 군대를 소집했는데도 수가 충만하지 않아요그래서 사돈이기도 유다의 여호사밧왕에게 사신을 보내서 모압 정벌에 함께 하겠느냐고 물었어요형식을 묻는 것인데 내용은 요청 내지 협박이에요. 여호사밧의 대답만 봐도 있는데 여호사밧은 고민을 해야 되잖아요근데 즉시 가겠다. 그래요 우리는 하나니까 당연히 함께 하겠다불과 3 전에 아합이 아람을 치려 하면서 여호사밧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었죠그때도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모스로 가서 싸우시겠느냐 그랬더니 여호사밧이 나와 당신은 갖고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다. 다윗의 후손 여호사밧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말 후손이고 조상인 여호사밧이 사단의 후예인 아합과 이스라엘의 위세에 완전히 눌려서 네네네네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에 나가서 이렇게 네네네네 하면 돼요우리 세상은 나를 위해서 돈을 벌고 수고하는 거예요아셨어요? 삼성이 나를 위해서 수고하고 있다고요자기네들은 모르지만. 우린 그걸 알아요. 결국은 믿는 사람을 위해서 수고하고 사망을 월급을 아니 삼성이 받는다는 아니라 이제 믿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여호람은 사돈 어른께 예의를 갖추는 듯이 그러면 어느 길로 갈까요? 그러니까 여기서 이제 뭐라 그러냐 하면은 모압왕 모압이 나를 배반했다고 모압이 나를 배반했다고 그러니까 당신은 나와 함께 가시겠냐고 1인칭 대명사 전멸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전쟁이 민족적인 무슨 국가적인 차원의 전쟁이 아니라 극히 지금 모압왕 메사의 여호람에게 개인의 복수로 전락을 시키고 있는 어떻게 그것이 나를 배반할 수가 있느냐 그러니까 전쟁도 동기가 악하면 돼요이타적이어야 . 이타적인 일에 우리가 나서야 되는 거지 누구 개인의 복수를 위해서 목장에서 그렇게 기도를 해주는 아니에요. 그리고 이제 어느 길로 올라가냐 이것도 물을 필요가 없는 질문이에요지도를 보면 모압에 들어갈 있는 경로는 둘이에요북쪽에서 남진하는 것이고 하나는 남쪽에서 북진하는 건데  그렇게 이제 북쪽에서 남진하려면은

    그렇게 이제 아르노강과 협곡을 건너야 하는데 그러면 거기는 모압의 아주 요새 도시들을 만나니까 거기는 수가 없어요그런데 남쪽은 굉장히 가기가 어렵고 힘들지만은 그러니까 아직 남쪽은 남유다의 지배 아래에 있는 거예요그래서 가는 길에 애돔이 있으니까 정벌에 끌어들일 수도 있는 거예요이거 물어볼 필요가 없는 건데 여호사밧은 아합이 죽은 전쟁에 같이 있었어요아합의 최후를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아들 아하시아의 죽음도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도 들었겠죠 근데 모든 사건들을 보고 여호사밧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아합이 같이 싸우러 가자고 때는 그래도 여기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물어보자고 했었어요기억나십니까? 선지자도 미가야 선지자도 이렇게 불러서 그랬었는데 지금 여호람의 요청을 듣고는 물어보자는 말도 꺼내지 않아요. 자신을 압도하는 아합 앞에서는 하나님한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손아랫사람인 여호람이 와서 자기에게 형식적으로라도 물으니까 일국에 이제 그냥 그때는 아합이 북이스라엘이 강했다고 그러니까 거기에 왕이 와서 물어보니까 그만 그냥 여우사밧이 우쭐해졌어요. 하나님 생각도 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에게 눌리는 사람 앞에서 우쭐한 거보다 구원을 위해서는 훨씬 좋은 겁니다뭐라고요? 눌리는 우쭐한 것보다는 낫다 말이에요 뭔지 몰라. 우리는 항상 하나님 일을 하려면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고 있어야 되는데 어떤 분을 이렇게 제가 어디 집회를 가면서 차를 타고 가면서 물었어요이번 주일 설교 들으셨죠? 제가 그랬더니 느끼셨어요? 그랬더니 졸려서 들었는데 이러시는 거예요이건 가지가 가지인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말씀 생각하지 않으면서 주회를 한다고 그러면은 이게 이제 굉장히 파토가 많이 나는 거죠그래서 애당초 하나님께 물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여로함과 잠시 우쭐하여 하나님을 잊은 여호사아밧이 작당을 하니까 브레이크 고장 트럭처럼 이제 질주를 하는 거예요. 3 사고를 기억하지 않을 없는 길을 지나면서도 멈춰서 물을 생각도 하지 않아요사고 다발 지점이라는 표지를 보면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사람은 복수심에 사람은 우쭐함에 도치 되어서 묻지를 않아요. 그래서 결국은 구원의 기회를 놓치는 거예요.

     

    여러분 땅은 노예예요. 세상은 세상에 노릇하잖아요좋은 노예 나쁜 노예 뭐예? 좋은 노예는 자격증만 있다노예 이거 밖에 악하기도 마찬가지로 사망을 월급으로 받는다고요이게 우리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물으려고 하지 않고 물어도 자기한테 유익하게 해주겠다고 생각하는 엉뚱한 똥파리에게만 가서 물어요. 하나님께 물어야 하는데 평소에 말씀을 듣지 않으니까 사건이 오면 하나님은 생각도 나요 감정만 생각하고 눈앞에 윙윙거리는 똥파리만 보이는 거예요그래서 믿는 묻는 공동체에 붙어 있는 너무 중요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만큼 중요해요 이런 것까지 물어봐 이게 우리 주제가 아닙니까? 하지만 이런 것까지 물어보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공동체 안에 있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는 거예요 물어보면 이상합니다. 우리는 전문가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의 고정관념이에요. 맞죠 전문가 찾아 묻는 너무 필요합니다근데 어떤 전문가라도 자기 분야를 넘지 못하잖아요모든 것을 아시며 모두를 각각 주인공처럼 살펴보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어요여호와 보시기에 하나님께 물어야 돼요그거는 말씀에 물어야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아무리 정신과 의사가 대단해도 정말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한계가 있는 거예요우리는 우리의 이렇게 공동체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정신과 가서 진단을 받는 거는 병명을 알고 인정을 하라고 가지만은 그다음에 약물 처방을 받을 있지만은 우리의 이렇게 집단 치료 목장은 천금을 주고도 이렇게 이런 치료는 받을 수가 없는 거예요 목장이 얼마나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여러분들 아셔야 교회는 그냥 사람의 모임이 아니에요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잖아요. 교회 공동체에서 묻는 것이 그리스도께 묻는 것이고 말씀에 묻는 것이고 예수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 모여도 주님이 계세요.우리의 미련하고 연약한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혼자 성경을 내게 주신 음성으로 들으니까 교회를 통해서 지체들의 음성으로 듣게 하시는 거예요 하반기 목장이 이제 시작되었는데요 물으시고 많이 물으시면서 붙어가시기 바랍니다. 제발 여러분의 생각과 습관과 전통에 달라붙어가지고 판단하고 비난하지 마시고요. 주님께 붙으시고 말씀에 붙으시고 목장과 공동체에 붙으시기 바랍니다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구원으로 부르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는 비결입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여전히 묻기를 싫어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요즘 눌려 있습니까? 우쭐합니까? 제가 눌려있는 낫다 그랬죠 이번 목장에서 무엇을 물어보겠습니까? 

     

     

    생각해 보니까 우쭐 적은 없고 평생에 눌려 있었던 같아요그래서 정도로 제가 목회를 하는 아닌가 진짜 우쭐할래야 우쭐 수가 없어요. 인생은요 우쭐할 수가 없어요. 그나마 눌려 있는 신간에 좋아요눌려 계세요 

     

    지난주 개의 상반된 사례를 들려드리면 이제 오신 10 되신 목원 성도님이 10 전에 법원 앞에서 이혼 날짜 잡고 그날 만나기로 했는데 다른 교회 권사님이 우리들 교회를 등록시켜주시고 가셨대요.우리들 교회 가서 살아나라고 자기가 시간씩 걸려서 년을 왔는데 작년에 번도 만난 남편을 만나서 훼파된 가정을 중수할 건지 말씀 안에 한배를 타고 믿음의 항해를 함께 하겠는지를 물었더니 남편은 신앙에 대해서 너무 적대적이고 이혼을 요구해서 저도 이제 말을 들은 다음부터는 날마다 이혼하고 싶고 이혼 생각밖에 한다고 목장에만 나오라고 닥달하는 소리가 너무 스트레스고 그래서 이제 너무 이렇게 마음이 상하셨더라고요그래서 제가 처방을 드린다면은 이게 십여 동안 다니셨는데 아직도 목원이신 거예요 양육이 되신 거예요. 큐티 양육 녹취 이런 하나도 하면 가치관이 변하세요 설교만 듣고는 변하기가 어려워요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인데 남편을 보면서 남편 모습이 남편 속에 있구나 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그리고 이제 남편을 만났는데 남편이 아직도 결혼 재혼을 하지 않아서 너무 가능성이 있는 아니에요? 감사하셔야 되는데 그럴 때는 가서 아우 제가 아내 노릇 못해서 너무 미안해요당신이 나보다 옳아요 얘기만 해야지 가지 중에 선택하세요. 이러시면 되는 거예요. 선택 사람 선택할 능력이 없어요그냥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얘기만 해야 되는데 그래도 지금까지 버티셨는데 정말 이혼은 하지 마시고 양육받기를 권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너무 혼자 지가 오래됐다그래도 결혼 생활을 했잖아요. 근데 이혼해야 필요가 뭐가 있어요 나이도 많은데. 저도 13 결혼 생활에 혼자 사은 지가 35년인데 같은 사람도 그럼 재혼을 해야 될까요? 그러니까 생각 이렇게 지금 그야말로 금면류관이 앞에 있는데 이거를 이제 인생이 없는데 아직 양육을 받아서 뭐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양육받으시기를 바래요.

     

    근데 반면에 예를 들린다면은 이거는 제가 이제 이거를 학벌을 얘기하는 거를 양해를 해주세요이분은 하바드에서 석사를 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하기를 마치고 파리에 있는 OECD 본부에 들어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5 국어에 능통한 남편과 중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일본 가서 공부하고 4 국어에 능통한 아내하고 결혼을 했는데 그래서 이제 아우 일곱 아들과 딸이 있는 거예요결혼 이들은 이루고 성공인 알았는데 전쟁이 시작되고 그냥 너무 힘든 결혼 생활을 했다고 하는 거예요그래서 OECD 휴직하고 우리나라에 1 예정으로 들어왔다가 우리들 교회를 소개받고 다니게 되었는데 이제 휴직이 6 말에 끝나는데 이제 양육을 이제 받은 거예요띵크 양육을. 그런데 남편은 이제 파리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아내는 남고 싶다고 말을 했는데 think 양육을 마치는 6 말이 다가와도 결정을 못하고 있다고 편성 당일에 전화를 해보니까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고 7 4일까지 파리 본부에 연락을 주기로 했는데 결정을 못했다고. 독일에 사시는 부모님은 화까지 내시면서 빨리 돌아오라고 근데 드디어 7 어제 그제 잠언 큐티를 하면서 말씀이 있는 곳에 정착하기로 했다는 거예요그런데 OECD 직원을 포기하는 것은 평생 보장되는 직장이고 집도 주고 노후 연금도 아주 빵빵한데 이걸 내려놨다는 거예요. 근데 아내는 자기 남기를 원했지만 솔직하게 남편이 가자고 하기를 바랬다는 거예요그런데 이게 남편이 뜻밖의 결정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부가 사실은 양육 받아서 후에라도  유럽에 이제 가게 되면 사명을 감당하는 부부가 되기를 원하는데 여러분 이렇게 모든 갖췄어도 가정이 훼파되면 이건 울리는 꽹가리가 되는 거잖아요저는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 부부의 결정이 여호와 보시기에 선한 결정이라고 믿습니다기름을 부어주시고 기회를 구원의 기회로 잡으시면 좋겠어요. 또한 우리들 교회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이분이 환경이 바뀌어지자 음란이 나와서 바람까지 가게 되어서 도저히 창피해서 이혼하고 공동체를 떠나려고 했더니 벌떼처럼 달려오신 공동체 식구들로 인해서 이혼 하게 됐는데 가장 중요한 공로자 저희 초등학교 아이가 교회에서 보는 사람과 목사님들에게 우리 아빠 바람 피웠어요 하며 떠들고 다녔는데 저는 정말 너무나 화가 났었는데 목자님께서 아이의 그런 행동과 말은 공동체에서 붙어가니 살아나게 부모님을 보고 교회에 우리 살려주세요 엄마 아빠가 이혼하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거라고 걔가 그냥 외친 거라고 해석을 주시니 말을 들으니 제가 분수령적인 회계를 수가 있었고 지금은 이제 같이 아이하고 소년부에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 시간마다 적용 질문으로 아이와 나눔을 이제 같이 하고 있다는 거예요그러니까 죽을 같은 환경과 사건이 아닌 나의 죄성을 낳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지금 이게 가정이나 지금 이제 매주 이렇게 살아나고 있잖아요. 그냥 어디를 가면 이렇게 가정이 살아나겠습니까? 공동체에서 도와주고 하지 않습니까? 여호와 보시기에 얘가 얼마나 정말 합당한 일을 했어요 초등학교 아이가 우리 아빠 바람펴요 펴요. 살려주세요. 그런데 우리들 교회는 이런 거를 아무도 손가락질 하지 않아요그냥 내일처럼 달려들어서 지금은 교사를 하시고 살리고 계십니다.

     

    말씀 맺을게요. 여와 보시기에 앞뒤가 다른 개혁은 그러므로 악해요앞뒤가 다른 사람들도 악한 거예요. 뇌물을 받은 자는 똑같이 악해요근데 이거를 어떻게 줘야 될지 줘야 될지 여호와께 묻지 않으면 이건 이제 악한 자가 되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가 가장 중요해요근데 일은 너무 힘들어서 안에 한계를 넘어 주께서 모든 주신 시간은 헛된 것이 없습니다주의 알기 어려워도 이유 있음을 알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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