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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왕기하 3장 21절~27절 - 이기고도 진 싸움
    주일설교 요약 2023. 8. 10. 05:54

    2023 86일 주일예배

    열왕기하 3 21~27

    이기고도 싸움 

    김양재 담임목사

     

    우리들 교회는 번만 오면 이혼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분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이혼을 철회했습니다. 그런데 달을 약속하고 오신 남편에게 약속을 지킨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송으로 가서 그분은 변호사도 쓰고 이렇게 썼는데 이겼어요. 그래서 이혼이 됐어요. 근데 이런 싸움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 싸움인 거예요. 시간이 흘러 아내가 돌아가시고 남편이 그때 교회에 인사하러 오셨는데, 아직도 어떻게 그렇게 교회가 약속을 지킬 수가 있냐고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반대로 구원 때문에 남편에게 약속을 지켜서 이혼해 주신 분도 계세요. 이건 졌지만 뒤로 남았어요. 요즘에 사이가 너무 좋아져서 도리어 합치기 직전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업도 된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이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죠. 인생의 목적이 작은 일이 되면 이겼으나 싸움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기고도 싸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어요. 

    첫째로 지는 싸움은 자기 욕심으로 이제 결정하기 때문이에요. 21절이에요. ‘모압의 모든 사람은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이상이 모여 경계에 있더라’. 

     

    우리는 이제 20절까지 엘리사의 예언을 통해서 이제 골짜기에 개천을 파니까 물이 공급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압에 대한 승리에 대한 예언까지 주어졌어요. 그러니까 모압왕 메사는 이제 이스라엘 연합군이 쳐들어온다는 첩보를 듣고 총동원령을 내립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며 절박하게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이상이 모든 남쪽 경계에 모인 것은 전쟁에 사활을 걸었다는 거예요. 22 절에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고 피와 같음을 보고모압의 군사들이 사활을 걸고 이제 일찍 일어났다는 거예요. 얼마나 불신자들도 부지런한지 몰라요. 부지런히 매우 신속하게 일치단결하여 움직였다고 하는 거예요. 

     

    예컨대 불신자들도 생애를 바쳐 명품을 만들어내는 화가, 음악가, 건축가 장인들의 정신이나 이제 자신이 지닌 사상을 목숨을 걸고 전하는 이런 정신 등은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전쟁을 이기고 이겨서 사활을 걸고 부지런히 살아서 영혼과 위인이 사람도 많아요. 그런데 좋은 음악과 그림인 작은 일이 인생의 최종 목적이 되어 구원에 이르지 못한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그러면 이겼으나 싸움인 거예요. 작은 일에 이겼으나 큰일에 실패한 것이죠. 왜냐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하게 움직였지만은 착각의 함정에 빠졌어요. 

     

    23절입니다. ‘이르되 이는 피라 틀림없이 왕들이 싸워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이스라엘 연합군이 마실 물이 없어서 고생한다는 것을 모압 군대가 파악했겠죠. 그래도 이제 상대방 병력이 워낙 많으니까 공격할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에게 임해 골짜기에 물을 가득 채운 아침에 모압 군대도 골짜기 건너편에서 골짜기에 가득한 물을 보았어요. 근데 어떻게 일인지 그들이 보는 방향에서는 햇빛을 받은 물이 피처럼 붉게 보인 거예요. 그러니까 피처럼 붉은 물을 보자 모압은 이는 피다 소리 쳤어요. 누구의 피라고 해요? 쳐들어온 나라가 서로 싸워 죽인 피라고 하는 거예요. 틀림없이 피라는 거예요. 확신을 합니다. 여러분 가짜 뉴스가 이렇게 생성이 되는 거예요. 확신은 나름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요. 일단 밤새 비가 내리지 않았잖아요. 골짜기에 물이 있을 리가 없죠. 게다가 색까지 핏빛이니까 틀림없이 피인데 적군이 지금 물이 없으니까 자중 질환에 빠질 있다는 것도 합리적인 예상입니다. 왜냐하면 나라가 평소 사이가 좋거든요. 게다가 이제 물이 없으니까 서로 싸우다가 죽였다 이거는 거죠. 그러니까 모압 사람들요 특히 그중에 군사 전문가가 틀림없다고 이제 확신할 만합니다. 이렇게 얘기해 줬어요. 우리 남편은 의사인데 자기 암을 몰랐어요. 그러니까 마지막에는 이렇게 전문가 말보다 들어야 있어요. 그들은 이스라엘 연합군과 맞장을 없다는 너무 알았기 때문에 연합군이 서로 싸워서 퇴각하는 그것이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일이 지금 일어난 거죠. 바라는 대로 보고 듣는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것은 소망이지만 육신의 눈으로 욕심을 바란다는 것은 망상입니다. 욕심의 크기만큼 망상을 확신하게 되는 거예요. 틀림없다며 그래야 한다면서 욕심을 주장합니다. 이것이 모압이 빠진 착각의 함정이에요 기복의 함정이에요. 결과 어떻게 됩니까? 공격할 제일 중요한 정찰을 했어요. 소홀히 여겼어요. 너무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여긴 나머지 너무도 확신이 컸기 때문에 정찰 하나쯤이야 이건 틀림없어. 잡아야 . 이거 놓치면 . 앞뒤 가리지 않고 지금 돌진하는 거죠. 제일 중요한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리고는 자기 확신으로 망하는 길로 돌진해요.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기본 중의 기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생략했습니다. 이전에 여호람도 기본 중의 기본인 준비를 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큐티를 하면서 원칙을 지켜야 되는 거는 얼마나 기본인지 몰라요. 근데 우리는 전부 이번 프로젝트는 이거 완전히 이기는 거야. 기분이 너무 좋고. 그런데 완전히 해서 가지고 와서 계약을 해야 되는 거예요.하기 전까지는 아닌 거예요. 근데 그냥 팔고 팔고 됐어 됐어. 그렇게 해서 망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이거 정찰을 해봐야 되는 거예요. 모압은 불신자고 하나님의 대적이에요. 아무리 사활을 걸고 부지런하고 경계를 잘하고 준비를 잘해도 본질이 세상이기 때문에 그건 지는 싸움을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이 기도만 하는 믿는 사람이 있으면 착각하게 하시는 일이 있어요.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믿음, 결혼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단편에 나오는 동화예요. 이거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래도 다시 읽어드리는 아니고 얘기해 드릴게요. 촌장이 농부인 파옴에게 해가 떠있는 동안에 표시한 땅을 모두 가져가라. 하루 동안 걸어서 제자리로 오는 만큼의 땅이 천루불이다. 천루불에 내가 원하는 땅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농부 파옴이 밤에 잠도 자고 흥분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 동이 트면 가야 되니까 그걸 기다려서 이제 새벽부터 가서 기다리고 있는 거죠. 그런 얘기는 동화에 없어요.그래서 이제 동이 트는 것만 바라보다가 해가 뜨면서 출발을 했는데 가다 보니까 땅이 갈수록 갈수록 비옥한 거예요. 도저히 이건 포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이제 그래도 잠을 자서 피곤한데 물도 먹고 도시락도 먹고 왜냐하면 시간도 아까워. 가야 . 조금 쉬지도 않고 오늘 하루쯤은 죽어도 좋아. 이러면서 땅이 생기는데 하면서 그냥 뛰었죠. 그리고는 그냥 해가 지면서 이제 동시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왔습니다. 촌장님에게 그리고는 거기에 엎드러졌어요. 그래서 이제 파옴 파옴 그랬더니 엎드려졌어요. 영원히 일어나는 거예요. 파옴이 차지한 땅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200미터였습니다. 파옴이 사활을 걸고 부지런하게 그렇게 착각의 함정에 빠져가지고 작은 일인 땅을 얻었지만 일인 생명을 잃었어요.

     

    왜냐 정찰을 하지 않았잖아요. 그렇죠? 그렇게 준다고 해도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여러분들 무슨 어떤 일이 있어도 하루만 시간을 버세요. 싱크해 보셔야 돼요. 결혼도 그렇고 동업도 그렇고 해도 하여튼 하루만 하루만 생각을 해보세요. 인생의 특징은 욕심이고요. 욕심의 특징이 조급함이에요. 조급함이 탐심해요. 그러니까 사람이 욕심이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여요. 그래서 이렇게 사기를 당하고 이제 그러는 거죠. 

     

     

    적용 질문입니다. 사활을 걸고 부지런하고 착각하고 살며 틀림없다 확신하다가 기본의 기본인 정차를 소홀히 해서 싸움은 무엇입니까? 

    항상 가장 기본이 중요한 거예요. 기본을 하지 않으면 여러분 하지를 말아야 . 

     

     

    지는 싸움은 욕심 때문에 결정하고 번째 이기는 싸움은 그래서 하나님께 물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모압은 졌잖아요. 이스라엘은 이기는 싸움을 할까요? 모압의 배반으로 여호람이 여호와께 묻지도 않고 군사들을 소집하는 일과 모압 사람들이 그들의 신인 그모스에게 묻지 않고 군사들을 소집하는 과정은요 겉으로 똑같아요. 모압왕이 전쟁에 패배하자 27 오늘 왕위를 이을 자식을 그모스에게 제사 드렸잖아요. 여호람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뒤늦게 여호와께 묶어 소재드렸잖아요. 그것도 성격에 있어서 똑같애요. 그런 의미에서 여호와께 드린 여호람의 태도는 그모스에 대한 모압 사람들의 태도와 다를 없어요. 믿는 사람도 불신자도 똑같은 행태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불평을 하는 여호람에게는 연약해도 진정으로 여호와께 물어보는 여호사밧이 있어요. 형식적인 말고 그래서 골짜기에 개천을 파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우상인 그모스신과 여호와의 차이점을 전혀 모르는 모압은 이미 지는 싸움을 이제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러분들 겉은 비슷해도 시아버지와 동침한 며느리 다말과 아버지와 동침한 롯의 딸들은 완전 천양지 차이잖아요. 다말은 구속사의 주인공이고 롯의 딸들은 완전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망한 사람의 멸망의 정말 주인공이에요. 사사기에 입다가 전쟁에서 이기게 해주시면 먼저 나오는 사람을 내가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겠다고 선언을 했더니 딸이 나왔습니다. 그거나 오늘 모압왕이 아들을 번죄로 드린 거나 뭐가 차이가 있어요 행위로는 도저히 이거 해석 불가입니다. 근데 에베소서 2 8절에서 보죠. ‘너희는 은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건 너희에게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설교는 도덕책이 아니에요. 논리 책도 아니에요.좋은 얘기는 삶이 변하지 않아요. 성경은 믿음의 책인데요. 이건 은혜, 믿음, 구원이 아니면 이해가 안되는 거죠. 근데 은혜가 아니면 설교를 들어줄 수가 없어요. 맹렬한 분이 나서 떠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목자님이 하나님의 , 구원의 일을 하지 못하던 인생이었는데 다른 사람이 구원해도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아침마다 여전히 큐티하고 예배드리고 목장 나가는 것이 일을 이루는 비결임을 가르쳐주시니 은혜가 된다. 여기 지금 구원과 은혜가 들어가는 나눔을 그냥 평범한 나눔에도 이게 자기 입으로 시인하는 거예요. 목자님도 너무 우리들교회에 감사한 공동체가 있고 귀한 큐티인이라는 교재가 있는데 구조에 틀에 붙어 가기만 하면 이다. 이렇게 떠나면 분명 죄의 길로 같다. 그래서 이제 나는 공동체를 떠나면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렇게 우리들 교회는 은혜로 변한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 말씀을 좋아하세요 은혜도 모르고 구원도 믿음도 모르면은 말씀이 어려워요. 그래도 여기에는 은혜 받은 분들이 비교적 많기 때문에 같이 붙어 계시기만 하면 그게 전염이 되더라고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으면 그리스도의 말씀이니까 그래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가도 이제 은혜가 임해 이제 들리시더라고요. 성경을 자세히 보는 것이 하나님께 묻는 것이 있어요. 왜냐하면 의중을 알게 되면은 순종하는 쉽기 때문이에요. 이제 22절을 다시 보면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불고 피와 같음을 보고 해가 비친 그물은 말이죠 정관사가 붙어서 하나님에 의해 약속되었고 연합군의 갈증을 해결했던 바로 그물이에요. 비침으로는 떠오르다라는 뜻으로 모압의 군사들이 해가 떠오르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물을 목격했다는 것을 나타내요. 그러니까 아침에 똑같은 물을 봤는데 이스라엘에게는 물이 흘러내리는 구원의 물이 되는 구원의 아침이고 모압에게는 피로 똑같은 물인데 피로 보이는 멸망의 물이고 아침 아니겠습니까? 이쪽에는 생명의 물이 이쪽에는 패망으로 인도하는 물이 되었어요. 

     

    여러분 지금 똑같은 물이잖아요 그죠? 똑같은 물과 환경인데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너무 다르고 어쩌면 똑같은 물이 여기는 구원의 물인데 저기 심판의 물이 수가 있어요. 여기는 생명의 물인데 여기는 피다 이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지역 감정 진영 논리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여러분들 아셔야 되는 거예요. 이쪽에서 피다 그러면 여기는 따라갈 수가 없어요. 모압은.  그러니까 이게 부하뇌동이 되는 것이고 가짜 뉴스가 생성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성도들 우리 성도들은 똑같은 환경에서 큐티를 하며 똑같은 물이지만 나에게는 나를 구원하신 약속의 물이구나 이렇게 해석을 하니까 이게 이기는 싸움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모압은 이렇게 묻는 거를 몰라요. 그래서 저주예요. 어떤 경우도 부지런히 사활을 걸고 경계 이거 하지만 묻는 몰라 하나님께 묻는 몰라요. 그래서 하나님께 묻고 의뢰하며 가면 이게 이기는 싸움인데 그게 너무 쉬어뵈어서 모압과들은 너무 쉬운 아니에요 어려운 열심히 해서 실력을 나타내야 되니까 근데 교회를 다녀도 이렇게 묻지 않으면 모압과 다를 것이 없는 거예요. 

     

    이스라엘 24 25절이에요.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에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이스라엘은 골짜기에 지금 개천만 파고 있었더니 그냥 모압들이 들어와서 우린 정당방위 했을 뿐인데 도망가기 시작한 거예요. 사활을 걸고 부지런한 모압에 비해 이스라엘은 특출한 하나도 없어요. 그냥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따라서 승리의 열매를 거두기만 하는 거두기만 하면 됐어요. 그리하여 결국 노략하기 위해서 의기양양하게 연합군의 진을 향했던 모압군대는 뜻밖의 기습으로 도망하게 되었고 지리멸렬 부서지게 되었어요. 이유를 없는 패배가 어떻게 설명이 됩니까? 그래서 여기서 계속 이스라엘이 모압을 이겼다는 얘기가 생생하게 24, 25 나오잖아요. 이게 미완료형으로 사용되어서 여러 성읍들이 계속적으로 초토화가고 되어 있음을 그냥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저도 여러분들에게 전도를 영접하는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렇죠? 그냥 열심히 개천 파고 있었더니 그렇게 정복이 되는 거예요. 내가 잘한 아무것도 없는데. 

     

    26 모압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찬 군사 700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도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이제 본문을 직역하면 전쟁은 그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요. 전쟁은 모압보다 강했다는 거예요. 

    모압보다 강했다는 거는 하나님이 강하시다는 거죠. 이스라엘이 뭐가 있어요? 나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이 때마다 시마다 나를 도와주시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느껴지세요? 진짜 나의 정말 피난처 반석 어떤 얘기를 해도 저는 이제 제가 이렇게 교회를 하는 이해가 돼요. 이건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신 거예요. 

     

    에돔은 마지막으로 칼찬 군사 700명의 특공대 나라 군대인 제일 약체 에돔을 공격하려고 했지만은 그것도 전력 차이가 워낙 엄청나서 뚫을 수가 없었어요. 이상 있는 없어요. 군사적으로. 완전히 궁지에 몰렸어요. 이제 궁지에 몰리면 신자는 하나님 도와주세요가 저절로 나오는데 모압은 끝까지 나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안해 이러면서 물을 자를 모르고 이제 마지막에 그모스의 제사를 드리잖아요. 그러니까 대상이 다른 죽을 그모스 신이어 이러고 죽겠어요.우리는 그냥 주여가 저절로 나오잖아요. 근데 사람들은 그런 얘기 해요. 여러분들 힘들고 아파 죽겠는데 어떤 교통사고 이런데 부처님 그런 사람 봤어요? 공자여 이러는 사람 봤어요? 믿는 사람도 하나님 하더라고요 그죠? 그러게 믿는 사람도 진짜 하나님 하더라고요. 모든 욕은 갓에서부터 나와요. 그렇죠? 이게 모두 하여튼 이스라엘이 일이 없어요. 여로함이 모압왕보다 잘난 것이 없어요. 여로함이 오직 잘한 거는 여호사밧으로 인해 여호와께 물었다는 그러니까 옆에 여호와께 물을 사람이 사람도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거는 이제 복권 거예요. 반드시 물어봐야 돼요.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침이 없어요. 목장에 그렇게 물어보라고 외치는데도 아유 확인 하나쯤이야 묻는 하나쯤이야 이렇게 확실한데 굳이 이러면서 생략하고 건너뜁니다. 목장에서 묻는 거는 사소한 일이 아니에요. 묻는 것은 내가 욕심으로 혼자 결정하지 않겠다는 신앙 고백이에요. 그렇다고 어려운 일입니까? 아니죠. 욕심을 내려놓는 어렵고 자존심을 꺾는 어려운 것이지 묻는 자체가 어려운 아니에요. 아무리 확실하게 보이는 일이라고 해도 아무리 내가 제일 전문가라고 생각되는 일이라 해도 어떤 일을 결정할 때는 반드시 공동체에 물어보시기를 바래요. 여기 군사 전문가가 모압이 없었겠냐고요? 이북에 군사 전문가가 없겠냐고요? 우리가 없겠냐고요? 여기 너무 형편없는데 하나님께 물어본 하나 때문에 다음에 군사 전략을 가르쳐줬어요? 골짜기에 개천파라고 그랬지. 그러니까 무슨 귀신 시나라 까먹는 이런 얘기만 계속 혈기 처방만 하잖아요. 그죠? 그걸 해야 돼요. 진짜 험한 십자가 끝까지 붙드는 적용을 이제 하면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거예요.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큐티하면서 하나님께 물어본 것밖에 없고 교회 하면서 공동체 물어 물어본 것밖에 없는데 이렇게 구원받는 자를 더하게 해주셨어요. 땅에 구원받는 자를 더하게 해주시는 것보다 일이 있을까요 있을까요? 없죠. 그러니까 정말 우리 여러분들이 일을 하는 주인공인 믿습니다. 그것이 가장 이기는 싸움이에요. 

     

     

    적용해 보세요. 

    내가 전문가라도 물어야 사소한 일은 무엇일까요? 똑같은 환경에서 구원을 맛보고 있습니까? 심판을 맛보고 있습니까?

     

     

    저는 이제 이번에 우리들교회 큐페 각종 큐페 얘기를 하고자 해요. 이건 진짜 세계적인 대안 같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큐페에 가서 말씀 듣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나눔하며 이번에는 방언 받은 친구들도 있는데요. 이런 경험은 평생에 어디를 가도 잊혀지지 않을 최고의 추억이며 가도 잊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올 경험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여기를 보내신 거는 너무 크게 미스하신 것이고 다음에 너무너무 안타깝게 기도해도 아이들이 아이들은 하나님이 기도를 기억하시는 믿습니다. 그것 때문에 너무 애통하잖아요. 그거 하나님 기억하십니다. 

     

    유년부에 간증을 아이에 간증을 읽어드릴게요. 얘가 초등학교 1학년이에요. 근데 얘는 엄마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거 자기가 썼어요. 안녕하세요. 유년부 1학년 아무개에요. 저는 살까지만 해도 자동차를 만드는 아빠와 의사인 엄마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들이 기억나요. 하지만 엄마는 제가 다섯 아빠와 없다며 집을 나갔어요. 엄마는 아빠 집에 와서 저를 때마다 엄마와 같이 살래 아빠와 같이 살래를 물었어요. 저는 이런 질문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엄마와 아빠는 제가 7 이혼을 하게 되었고 그때 이혼이란 말을 처음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할머니 집에 살게 되었는데요. 그때 아빠가 우리들 교회라는 곳에 가면 저처럼 엄마 아빠가 없는 친구들이 있으니 마음을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아빠의 말대로 이야기를 알고 있는 교회 친구들은 마음을 응원해주는 같아 위로가 되었고 자신감이 많이 생기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들교회가 좋아요. 그러던 중에 엄마를 달에 정도 만났어요. 그때 엄마 집에서 다른 삼촌을 함께 봤어요. 그런데 엄마를 만날 때마다 커지는 엄마 배를 보면 엄마는 배가 이렇게 커라고 물어봤는데 나중에 엄마 속에 아이가 있다는 것과 엄마가 삼촌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저는 매일 울었어요. 저의 죄는 이혼한 우리 가정을 전혀 모르는 동생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동생과 싸우고 동생을 미워해요. 친구 같은 아빠에게 동생과의 사랑 때문에 투정 부리고 떼를 쓰는 거예요. 저의 적용은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그리고 동생과 함께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큐티를 하는 예쁜 어린이가 되고 싶어요.  오늘 큐페의 주제가 복음의 능력이라고 하는데 복음의 능력이 우리 가정에 생겼으면 좋겠어요. 기도해 주세요. 저의 이야기를 통해 저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친구들이 살아나길 저도 기도할게요. 

     

    기가 막히지 않아요? 저는 정말 이기고도 지는 싸움은 이혼이라고 생각이 돼요.  우리 아이들은 여기 와서 철이 들어가지고 자기 죄를 보고 집안 식구를 위해 기도하고 상처가 약재로가 돼가지고 다른 친구들까지도 이렇게 기도하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길고 짧은 대봐야 되니까 우리는 아무도 손가락질 것이 없는데 얘는 심판받을 환경에서 혼자 지금 생명의 물을 맛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우리 공동체에 보내고 큐티를 시켜야 되는 거예요. 이걸 애들이 공부 잘한다고 환경 좋다고 어떻게 이렇게 보낼 수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먹고 살면 다가 아닌 거예요. 우리는 레아도 돼야 되고 라헬이 돼야 되고 레아는 라헬을 부러워할 아니고 이렇게 같이 믿음의 동역자로 알고 가야 되는 거죠.

     

     

    번째는 싸움은 욕심이고 이긴 싸움은 하나님께 묻는 거예요.  이겼으나 싸움은 그건 가지를 남겼기 때문이에요. 25절에 성업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겼어요’. 이겼는데 이렇게 정복하지 못한 길하레셋이 있는 거예요. 길하레셋만 초토화시켰는데 여기를 초토하지 못했는데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약속했는데 말씀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잖아요. 완전한 승리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럴까요? 이건 단지 시간의 문제가 아니에요. 물이 없을 그렇게 슬프다를 외치던 여호라 왕도 엘리사에게 묻자고 있던 여호사밧도 막상 전쟁이 시작되니까 자취를 감춘 거예요. 이스라엘 군대 뒤로 숨어서이 이상 하나님을 찾지도 묻지도 않았어요. 무슨 뜻입니까물이 생겨 이제 있게 되자 왕들은 그새 하나님을 잊었어요. 자기 수중에 있는 군대 힘을 의지했습니다. 자기 군대가 모압 군대를 압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 없게 됐어요. 그래서 가장 강한 요새 길하레셋 앞에서 거기가 강했어요. 빨리 하나님께 물어야 되는데 물이 있으니까 살만 하니까 묻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제 27절에 격노하는 거예요. 정말 내가 도와줬는데 어떻게 그렇게 십리도 가서 발병이 나냐 니가 했다고 그럴 거냐그러니까 이렇게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할 때도 번째 여리고성일 때는 아주 그냥 저기 뭐야 싸움 없이 성이 무너지는 기적으로 승리를 얻었잖아요. 그러니까 그다음 아이성에서는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소수의 군대만 보냈다가 크게 패했잖아요. 그때나 이때나 조금만 뭐가 되는 같으면 금세 하나님을 잊는 것이 인간의 진짜 이게 악하고 없는 인간의 본성 같아요. 

     

    27절에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맏아들을 데려와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전세가 기울게 되니까 이제 모압 왕은 모압의 신인 그모스가 가장 기쁘게 여기는 아들을 태워 이제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거예요. 몰렉 부상에게 섬기는 번제 번제로 아들을 드렸어요. 그거를 모압 이스라엘 유다와 에돔 사람들이 같이 봤어요. 이거는 너무나도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시는 이제 우상이에요. 레위기 18 21절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러 통과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이렇게 자녀마저 자기 욕심의 수단으로 지금 불태운 거예요. 자녀를 사랑한 아니죠 욕심의 수단으로 불태운 거예요. 자기의 나라에 왕위를 갖고자 그러니까 모압왕 메사가 자기 아들을 이렇게 그모스에게로 번제로 바치자 거기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했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향한 모압의 분노가 왕이 계승자를 불태울 정도라 이런 뜻이 되겠지만은 처절한 분노와 살의에 압도가 되었는지 이스라엘에게 이런 경로함이 임하자 이렇게 대대적으로 일으킨 전쟁과 군대를 물리는 거예요. 그리고 길하레셋의 요새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갔더라는 표현은 객관적인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패배하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지금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럴까요? 히브리어로 임하매는 경도함이 임하매는 15절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 에서 있더니와 같은 단어입니다. 엘리사가 자기 연약함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찬양할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임했잖아요. 그런데 살려주신 하나님을 금세 잊고 자기 힘으로 뭔가 이루어보려는, 이루어 보려는 이스라엘 위에는 손이 아닌 격노함이 임했어요. 외형은 모압의 격노함이지만은 사실은 하나님의 격노함인 거예요. 선지자를 계속해서 보내 말씀하시고 경고하시고 반복적인 사건으로 부르시는데도 전혀 돌이키려 하지 않는 여호람과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격노함인 거예요. 자식을 불에 태워 우상에게 바치는 죄악과 똑같이 심판받아야 죄악이라는 거예요. 이긴 싸움을 하다가 우상에게 드리는 끔찍한 제사를 보고 전의를 상실하고 이스라엘이 빈손으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이 지금 돌아갔잖아요. 

     

    이거를 다시 해석을 해보면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나의 소유물로 여기고 그래서 자식 우상이 그게 다라니까 같아도 자식 때문에 무너진다고요불택자는 믿음이 약해지는 것이 자식이에요. 택자는 그래도 그런 사건으로 강해지는 것이 자식이에요. 자식 때문에 택자는 믿음이 강해지고 불택자는 믿음이 약해져요.  자식 우상은 모압이나 이스라엘이나 전의가 상실되는 데는 차별이 없어요. 신자 불신자 차별 없이 자식 문제 앞에서는 서로 고소하고 고소하고 고발하고 그러는 사람들이 교인들도 똑같다는 거예요. 피해자 가해자가 교인이라는 거예요. 학폭에서 고발하고 서로 사과 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격노하시는 거예요. 작은 일과 일을 구별을 못하는 거예요. 주님은 여호람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마른 골짜기가 물로 가득 채워지지만 그거는 작은 일이다. 그보다 일은 모압을 제압하는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순종할 생각이 하나도 없는 여호람은 큰일과 작은 일을 완전히 뒤집어 생각했어요. 하나님이 작다고 하시는 일은 크게 여기고 크다고 하시는 일은 작게 여겼습니다. 여호함은 오직 눈에 보이는 물을 얻는 이거밖에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물이 채워지자 정작 문제인 모압과의 전쟁을 작게 여기고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아요. 작은 일을 해결해주면 여러분은 구원의 문제는 여러분의 관심 밖이에요. 그래서 오직 물이 있고 자기 지금 군대가 많아요. 그래서 계속 이기고 있어요. 그러니까 길하레셋 이거 너무 기도해야 제목인데 기도 하나도 해요. 군대 뒤에서 숨어서 나타나지도 않아. 그래서 길하레셋 이게 너무 기도 제목인데 중요한 일과 작은 , 급한 중요한 이게 분별이 하나도 되니까 여호람 같은 사람 이런 분별이 돼요. 

     

    원자력 회의를 하고 자전거에 대한 회의를 하면요 우리는 내가 아는 자전거니까 그런 거는 회의를 길게 해요. 근데 원자력 발전소 이런 모르잖아 그건 그거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만에 회의가 끝나. 내가 아는 자전거는 시간 시간 회의를 . 그게 중요한 일은 아니잖아요. 근데 자기의 가치관 따라 회의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하는 거예요. 그게 왕이라도 똑같다고요.그러니까 지금 길하레셋이 얼마나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요새인데 영원히 계속될 이스라엘의 운명과 관련된 것인데 전혀 모르니까 그거를 남긴 기도 하니까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하는 거예요. 

     

     

    적용 질문이에요. 

    누군가의 격노함을 당하고 있다면 여러분 그것이 상대방이 아니고 하나님의 격노함인 것을 깨달으시나요? 

     

    누가 때렸어요? 그건 걔가 때린 아니고 하나님이 때렸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는데 여러분은 앞에서 맞은 것만 억울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가 서로 부부 간에 육탄전 벌려서 오늘 회개를 했지만은 서로 정말 몰라요. 그렇지만은 그것도 사랑의 언어가 터치하는 건데 하필이면 그래 맨날 뒤통수를 . 너무 고생을 많이 하고 청년부 때부터 가지고 너무 외로워요. 집사 너무 외로워요. 눈물이 지경이에요. 그런데 그런데까지 이해가 되잖아. 나타난 행동 이것이.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항상 이렇게 격노함을 당하고 있다면 그게 하나님의 격노함인 거를 깨달아야 되는데 거기까지 가기는 우리가 쉽지가 않아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은 언제나 나에게 도움을 주시지 않아요 자기네들이 마음대로 전쟁하고 모압 왕의 가증한 인신 제사와 함께 격노함으로 끝맺어진 전쟁의 결과를 통해서 보면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행하는 자들에게 대해서는 이스라엘이건 이방인이건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으세요.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항상 편을 들어주시는 아니에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편이 되어서 그분의 의도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지 내가 하나님 믿고 교회 다닌다고 언제나 편만 들어주는 아니라는 것을 지금 모압과의 전쟁을 통해서 교훈을 받아야 되는 거죠.  결국 이스라엘은 이기고도 싸움을 했을 아니라 남겨둔 하나인 모압의 길하레셋은 두고두고 이스라엘에 가시가 되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거예요. 그래서 모압 족속은 훗날 다시 강성해져서 이스라엘을 침공했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두고두고 죄를 범하게 하는 아주 올무 노릇을 했던 것이에요. 

     

    우리가 스갸라 9, 뉘헤미아 13 같은 보면 나오잖아요. 하지 않아야 싸움을 시작을 해가지고 물질, 생명, 시간, 재물의 손해도 엄청났을 아니라 후손에게까지 짐을 무거운 짐을 얹어준 거죠. 내가 이혼하고 이런 것들이 나는 지금 좋을지 몰라도 무거운 짐을 진짜 지어주는 거라는 거예요그러니까 죄의 뿌리는 철저하게 뽑아야 한다는 거예요. 하나 남겨둔 거는 그냥 무거운 짐이 되어서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모든 무거운 것들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라는 거죠. 무거운 것은 짐이고 어떤 장애에요? 수영 선수라면 머리가 장애가 되겠죠 그러면 모자를 쓰든지 잘라야 돼요. 마라톤 때는 그렇게 내가 옷차림이 무거운 장애를 무거운 짐을 지고 하면 되죠. 군화 쓰고 투구 쓰고 다이아몬드 목걸이하고 밍크 코트 입고 뛰면은 비웃지 않겠어요. 단거리 경주도 아니고 영원히 뛰어야 되는데 자신은 스스로가 멋있는지 우스운지를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거예요. 인생은 장거리 경주라서 시작점과 골인 지점을 알았을 꼬인 후에 얼마든지 천국 좋은 집에 영원히 것을 생각하고 뛰는 동안에는 러닝셔츠 바람으로 운동화 신고 뛰어야 되는 거예요. 목적이 확실하면 옷차림도 정해지는 거예요. 그러면 남들이 박수 쳐줄 텐데 혼자서 밍크 군화 이러고 그렇다고 밍크를 입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고 그러니까 때에 맞는 옷차림을 해야 되는데요. 어쩔 없이 예수 믿는 우리들은 믿음의 증인이고 구경거리 거예요. 믿는 사람도 나를 구경하고 믿는 사람도 나를 구경한다고요. 예수 믿으면서 이제는 인생이 없다 구경거리가 수밖에 없다 인정하고 가야 하는데 절대로 나는 구경거리가 거야. 이러면 이기고도 싸움을 하게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자기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오늘 집사가 자기가 그렇게 터치하는 싫다는데 그게 얼마나 남이 힘들어하는지 지금까지 몰랐다는 몰랐다는 20 동안. 그러니까 이번에 이렇게 크게 경을 치잖아요. 근데 인제 알았대요. 혼을 내야 돼요. 그러니까 이제 알았대. 그러니까 이렇게 사건이 오기 전에는 그런데 그렇게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해결됐지 모두가 받아주면 그것도 해결이 되잖아요.그러니까 심판의 사건이 와야 이거가 해결이 되는 것도 있어요. 

     

    적용 질문이에요. 여러분이 아직 남겨놓은 사소한 죄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와서 얽매이고 있습니까? 이겼으나 싸움이 무엇입니까?   앞으로 남고 뒤로 믿진 것이 무엇이냐는 얘기예요.

     

     

    아깐 초등학교 1학년 얘기를 했는데, 청소년 쿠페에서 간증한 중학교 2학년 아이에 간증입니다. 저는 유부남 목사인 아빠와 처녀인 엄마 사이에서 혼외자로 태어났어요. 제가 11개월 아빠는 떠나셨고, 미혼모로 저를 키우신 엄마는 제가 여섯 저를 데리고 외할머니 집으로 돌아오시고, 믿지 않으시는 외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우리들교회를 다니게 되었어요. 이제 10살이 되면 아빠를 만날 거라는 얘기를 어딘가에서 듣고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 만날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어요. 4학년이 되었을 아빠 호적에 올라가 있는 저를 엄마가 법적 보호자로 바꾸는 일로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아빠에게 번째 가정이 있어 우리와 없다는 알게 되었어요. 나는 아빠와 함께 없는지 궁금했는데 아내와 자녀가 있다니 아빠가 조선시대 사람인 같아서 엄마가 들려주시는 얘기가 신기하게 들렸는데요. 간증문을 쓰며 생각해 보니 그렇게 생각할 있었던 감사합니다. 근데 올해 1월에 엄마가 갑자기 쓰러진 일이 있었어요. 온몸에 암이 전이 되어 유방암 4 판정을 받으시고 지금은 항암 치료 중에 계신데요. 공동체에서는 아빠와의 만남이 필요하다고 해서 저는 아빠와 편하게 만나게 되었는데요. 이혼 가정에서 자라 원망이 많으셨던 엄마와 할머니와의 관계도 회복시켜주신 모습을 보며 엄마의 사건은 축복의 사건임을 말씀으로 우리 가족이 함께 나누며 인정하게 되었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저는 엄마 없이는 말씀도 깨닫지 못하고, 엄마가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엄마를 끔찍하게 생각해요. 그런데도 마음대로 행동하고 입장만 생각하는 게으른 아이에요.  항상 저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지 않고 엄마만 이상한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고난이 있음에도 제가 원하는 하고 있는데도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 엄마는 제가 결혼할 때까지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환자의 경계를 지키면서 엄마의 역할을 감당하려고 애쓰는데 저는 엄마에게 스스로 있는 해주기를 바라고 말과 행동으로 힘들게 합니다. 이제는 스스로 있는 의지가 생기기를 원합니다. 저의 구원을 위해서 사명을 감당하시는 엄마를 통해 눈높이에 맞춰 때마다 저의 삶을 구속사로 듣게 하시고 마음이 꼬이지 않고 담대하게 전할 있도록 우리들 공동체를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엄마와 같은 성악을 전공하고 있는데 엄마가 이루시지 못한 꿈을 엄마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엄마의 암이 모두 사멸되고 할머니가 되실 때까지 사실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기가 막히죠 근데 우리 아이들은 여기 와서 말씀을 보면은 이렇게 지금 심판의 일이 구원의 일로 바뀌고 그뿐만이 아니고 이제 고난만 있는 아니고 자기 죄를 보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항상 이렇게 고난만 얘기하면 돼요. 요셉의 고난 유다의 자기 죄를 있어야 되는데 초등학교 1학년에도 자기 죄를 보고 얘도 자기 죄를 보고 그리고 이제 누구라도 주님을 만나면 집에 중심이 돼서 모든 집안 식구를 위해서 기도하고 친구들 위해서 기도하고 모두 기도해 주는 이런 사람으로 바뀌니까 이게 정말 다음 세대의 대안이 아닌가 이렇게 쉽고 여러분은 이런 자리에서 이런 아이들의 간증을 아이들이 듣지 못하면 그건 너무 손해 보는 것인 거죠.  그러니까 이런 청소년부 이렇게 주일학교의 큐페가 이제 제주도에서 내일부터 2 3 큐페 프로그램 그대로 제주도에서 감리교 협회에서 이제 초청을 해서 가서 그대로 합니다. 200 명이 등록했다고 해요. 그래서 아이들도 가서 간증을 합니다. 이거 완전히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우리들 교회 다음 세대 아닙니까 여러분 기도 많이 해주시고요. 다음에 아이들도 이렇게 해석을 하는데 정말 저는 이기고도 싸움이 이혼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씀 맺습니다. 이기고도 싸움은 지는 싸움은 욕심으로 결정하고 이기는 싸움 하나님께 물어요. 이기고도 싸움은 하나를 남겼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99% 합격은 불합격인 거예요.  하나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험한 십자가를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결혼, 가정 중수, 직장을 위해서 끝까지 험한 십자가를 붙들어야 돼요. 애벌레가 끝까지 해서 나와야지 힘들다고 가위로 잘라주면 아무것도 되는 거예요. 자기 힘으로 나와야 되는 , 결혼이라는 이걸 끝까지 지키는 자녀들에게 보여줄 최고의 선물이라는 거예요. 내가 조금 힘들다고 이렇게 물이 없다고 그렇게 포기하고 그냥 떠나면 되는 거예요. 끝까지 그거를 정복해야 되는 거예요. 싸움에 빠뜨렸잖아요. 이긴 싸움에 험한 십자가 끝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켜야 가정은 지켜야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정을 지키기 위한 내가 힘들다고 이긴 싸움에 떠나면 되는 겁니다.

     

    ref: 2023년 8월 6일 주일예배 녹취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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