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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3장 1절~7절 - 증인이 되라주일설교 요약 2023. 5. 21. 06:41
이사야 43:1~7
증인이 되라
김양재 목사
성경은 이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예수님의 이야기예요. 그런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똑같이 죽어지고 썩어지고 죽어지면 영광스럽게 부활할 줄 믿습니다. 오늘 도대체 내 인생에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숨이 쉬어지지 않는 환경을 가지고 오신 분들 있을 거예요.그동안 1,184통의 주보 전도 편지를 보냈어요. 아빠에게 엄마 아빠에게 형에게 할아버지에게 오빠에게 등등 이렇게 보시고 오늘 오신 분이 계신다면은 어떤 상황에서도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부활의 증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이사야 43장 10절에도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다고 하세요 12절에도 증인이라고 하시니 오늘 이제 증인에 대해서 듣겠습니다.
첫 번째,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고 나의 정체성을 알아야 합니다. 1절, 2절이에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너와ƒ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1절에 어떤 하나님인가요?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를 지으신 하나님, 두려워 말라고 명령하신 하나님,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시며 구속해 주시고 지명해 주시는 약속의 하나님을 이제 이 한 절에 다 담아냅니다. 이걸 누구한테 말하는가 하면 2절에 물과 불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우리가 말씀하시는 분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말씀이 그냥 지나가는 사운드로 들리지 않고 보이스로 들리기 때문이에요. 모든 국경과 세대를 뛰어넘어 그리고 언어와 문화를 초월해서 통하는 언어가 있는데 영어도 중국어도 아니고 바로 고난입니다. 고난은 말씀이 들리는 최고의 공용어 맞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한 말씀과 내 인생의 해석이 너무 중요하죠. 하나님이 오늘 두려워 말라고 해요. 왜입니까? 그 하나님이 내가 너를 지명하에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해 주시기 때문이죠. 그런데 오늘 누구보고 말합니까? 야곱아 그래요. 야곱은 돈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사기꾼의 거짓말쟁이에요. 그러니까 당연히 아내를 4명이나 두고 자식은 낳았다고도 하기 싫고 열둘이나 까놓았어요. 첫째는 서모비라와 동침을 하고 둘째 셋째 아들은 살인자이고 넷째 아들은 며느리하고 동침하고 딸은 강간을 당했어요. 콩가루 중에 콩가루 집안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많고 많은 성경의 인물 중에 하필이면 오늘 야곱아 부르시는 거예요. 그 야곱 보고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시는 거예요. 우리가 여기서 해석을 하려면 구속사적인 말씀 묵상을 해야 되는데요. 이 특징을 쉽게 말하면 야곱의 아들들 중에 제일 괜찮은 아들은 애곱의 총리인 요셉이에요. 예수님의 계보를 이을 사람으로 요셉이 딱 어울리지만 하나님은 며느리와 음행한 유다를 이제 선택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죠. 예수님의 직계 조상은 잘난 요셉이 아니고 수치스러운 유다라는 시각으로 성경을 보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성경을 봐도 내가 기복산에 있기 때문에 고난이 올 때는 해석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요셉같이 인간 승리한 사람이기 때문에 유다는 있는 줄도 몰랐고 또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저는 요셉 같은 사람이에요. 1+1은 2 여야 되고 내가 망하고 가난해도 4대째 모태신앙이고 저는 이제 칭찬받기 위해 제가 누구보다 참고 누구보다 더 욕심을 버리고 이러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적용을 해서 교회 잘나가고 착하고 공부 잘하고 순종 잘하니까 학교도 잘 가고 소위 결혼도 잘했죠. 그래서 기쁘고 기쁘고 기쁘게 거기까지는 너무 좋은데요. 그러니까 예수 믿으면 잘 된다의 모델이었어요. 그런데 용광로의 불 같은 결혼생활로 들어가니까 고난이 오니까 해석이 안 되는 거예요. 항상 기뻐하라가 안 되는 거예요. 고난이 올 때 회개를 하는 게 아니라 아니 내가 왜 복을 못 받지? 그러니까 평생 교회 다녔는데 이 기복산에서 이혼과 자살을 생각한 게 결론이에요. 착함으로 하나님의 기쁨 말고 내 만족의 기쁨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땅 끝까지 내려가니까 전적인 은혜로 주님이 찾아오셔서 드디어 나를 구원하신 구속사가 깨달아졌어요. 무시받고 낮고 낮아지니까 큐티를 한절 한절 묵상하면서 바로 이 유다가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된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하면 내 죄가 보이는 것이 신세계였어요. 성도의 목표는 예수님이잖아요. 그죠? 그런데 그 예수님의 직계 조상인 유다를 깨달아야 되는 거잖아요. 물론 요셉도 예수님의 12 자녀 중에 지파 중에 하나예요. 근데 최고의 지파가 유다 지파예요. 그러니까 유다를 깨달은 것이 인생이 해석되기 시작한 포인트였어요. 인간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곧 죄에 대해 모른다는 뜻이고요. 그러면 사람에 대한 분별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언젠가 꽝 터지게 돼 있어요. 저도 꽉 터졌잖아요. 죄를 모르면 인간을 모르는데 결혼인들 제대로 하겠습니까? 사람인들 제대로 보겠습니까? 직장인들 제대로 가겠습니까? 내 소견의 옳은 대로 이제 가게 되니까. 그러니까 늘 두려워할 일이 많죠? 내가 잘 된 것 같아도 1등 하려고 이기고 이기려니까 늘 두려운 게 많죠. 그런데 오늘 야곱아 두려워말라 그 이유는 너를 지명하여 불렀고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의 것이래요. 야곱 같은 사람 보고. 우리의 정체성은 창조주 하나님의 신부라는 거예요. 너는 내 거야. 그 하나님이 찾아오셨기 때문에 내가 엄청난 부자가 와서 당신 내 부인이다 그러면 부족할 게 없잖아요. 부자만 찾아와도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이 너는 내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그때부터 얌전하게 그 말을 듣게 되는 거죠. 그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4대째 모태 신앙에 제 신앙생활에 아주 그냥 분수령은 요셉이 아니고 유다의 구속사가 믿어지는 것이 하나님을 알고 나의 정체성을 알게 되는 분수령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부터 4대째 모태 신앙인 제가 증인이 되어서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수십 년을 이렇게 외치고 오는 줄 믿습니다. 요셉과에 속했을 때는 전도를 한 적이 없어요. 내 잘난 맛에 사는 거예요. 예수 믿어서 축복받아서 잘 산다 이거밖에 할 줄 아는 말이 없었어요.
적용 질문이에요
나를 창조하시고 지어가시는 하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립니까? 구속사의 유다를 얼마나 이해하시는지요?
그런데 나를 창조하시고 지으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나를 지명해 부르시고 하셔야 될 일이 있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잖아요. 영국의 로얄 패밀리도 그 왕족이 되려면 뭐 웃는 거, 옷 입는 거 말하는 거 모두 훈련을 빡세게 받는다는 거 세상에 로열 패밀리도 이렇게 훈련을 받아야 되는 것처럼 그러니까 그 귀티가 말을 못한다는 거예요. 왕족이 다르더라고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받아야 훈련 받아야 될 훈련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귀티를 넘어서 왕티가 난 줄 믿습니다.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두 번째 물과 불에 순종해야 되는 거예요. 이게 훈련이고 양육이에요. 이 얘기는 다른 말로 말하면 주님이 아시는 고난에 순종을 해야 되는 거예요. 맨날 우리는 하나님도 몰라 당신이 어떻게 알아 맨날 이게 주제가잖아요. 자 다시 한 번 2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어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그러니까 그동안 이제 예수를 믿으면 이제 복 받는다. 고난이 다 피해간다. 우리 우리 100년 전서부터 또 몇십년 전까지도 너무 못 사는 우리나라니까 그때는 이 말이 맞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10위권에 들어와서 죄악이 너무 관영해졌어 때문에 말씀도 구속사로 봐야 되고 말씀도 자세히 봐야 돼요.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물과 불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지금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전하는 거예요. 그것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니까 그때 지금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는 거예요. 성경을 자세히 봐야 되는데 우리는 날마다 물과 불을 없애 주시옵소서 이게 기도제목이잖아요. 나에게 물과 불은 없어. 예수 믿는데 능치 못한 일이 없는데 이러면서 그래도 이제 하도 이제 물과 불에 순종하라고 하니까 정 그러면 바다 보다는 강물, 강물보다는 시냇물, 시냇물보다는 접시물, 이왕이면은 생수, 생수 중에서도 에비앙 이러면서 끊임없이 그 구체적인 기도라고 하는 거 있죠. 그리고 또 불도 지난다니까 횃불 말고 촛불 여러분은 접시물에서 그렇게 증인이 되고 싶어요? 홍해바다에서 증인이 되고 싶습니까?
한번 나눠보세요 접신물인지? 홍해바닷물인지? 접신물하기도 이상하고 홍해바다도 싫고 이것도 저것도 다 싫어 그죠. 우리가 100프로 죄인이라 남들이 모든 것이 다 잘되고 고난도 없이 접신물에서 애비양물에서 이렇게 증인이 되겠다고 하면 절대 은혜가 안되죠.
우리는 홍해바다 간증 횃불 간증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이제 더 느낌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너무나 멋지게 지은 보석바가 지은 예루살렘 성마저 다 불타게 하셨어요. 그 과정을 겪어간 사람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죠. 그런데 그 이스라엘 백성을 세계에서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물과 불을 지나간 나라는 세계적인 사람이 되는 거예요. 할레루야 우리의 고난이 감당 못할 만큼 큰물과 불입니까 거기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증거하는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내가 고난을 정하려는 것이 얼마나 교만인지를 깨닫고 지금 나의 환경이 내 몸에 딱 맞는 물과 불임을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물과불을 지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침물하지도 타지도 않게 하는 이 신비한 체험을 증거하는 우리가 돼야 하는데요.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알고 내 인생을 알면 내가 고난을 정해서 당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들은 늘 구체적이라고 그러면서 이왕이면 자식 고난은 좀 없었으면 좋겠고 일단 돈은 한번 줘보이라니까요. 그러면 내가 예수 잘 믿고 증인되겠어요. 근데 하나님은 돈 주면 안 될 걸 만세전부터 아세요 그래서 안 주시는 거예요.
저도 이제 죄를 모르니까 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결혼생활의 물과 불에 넣어서 13년 갇혀 있게 하셔서 구원하신 것이라는 것이 이제 깨달아졌어요. 이 물과 불에 갇혀 있지 않았다면 저는 이제 100프로 이혼했을 것이고 세상 물정 모르는 자유부인 되었을 것이고 몸버려 돈 버려 그냥 순식간에 했을 것인데 갇혀 있었던 것이 축복을 넘어서 얼마나 하나님의 용서라는 것이 깨달아졌어요. 지금도 여러 가지로 갇혀 있죠. 남편 한 사람 순종하면 됐는데 지금은 눈만 뜨면 수많은 사람에게 제가 순종 해야 되고 또 대신 깨달아 들어야 돼. 설교 준비해야 되는 엄청난 갇힘이 자발적으로 계속되니까 주일에 교회 오면 정말 눈물이 안 나는 적이 진짜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어떤 분은 목사님은 뭐 이렇게 날마다 회개를 하냐 그러는데 그냥 그 당시 정점이라면 정점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너무나 이제 밑바닥 인생을 오래 살면서 겪지 않아도 될 일과 감정을 참 많이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어요. 내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계속 오고 가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하나님을 부루짖을 수밖에 없고 회개 할 것밖에 없게 해주시는 이것이 하나님의 용서하심이고 은혜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 모두 이 갇힌 환경이 하나님의 용서하심이라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힘들수록 하나님의 은혜요 용서하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요 인생이 밑동 짤린 나무처럼 짧잖아요. 갈수록 이게 믿어지는데 거기서 인간이 100% 죄인이고 악하고 음란하다면 내가 마지막까지 그 용서하심에 은총을 느껴야 되잖아요. 근데 힘드니까 날마다 진짜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는 얼마 안 남았는데 끝까지 주님의 자녀로 삼아주셔야 되는데 내가 사생자가 아니고 이렇게 갇혀있게 하셔서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가게 하신 이것이 얼마나 그 용서하심, 사심의 축복인지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구속사적으로 해석하는 거예요. 갇혀 있는 게 저주가 아니고 용서하심의 축복이라구요.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자꾸 이혼해야 되겠어요? 지금 이혼해서 얼마나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지 여러분들 지금 보고 계시잖아요. 그죠? 여러분 유다가 하나님의 용서를 절절히 깨달았겠습니까? 총리 요셉이 그 용서를 절절히 깨달았겠습니까? 바로 이것이에요. 눈에 띄는 고난과 죄패가 있게 되면 그 용서를 깨닫기가 참 쉬워져요. 총리가 깨닫기 어렵잖아요. 근데 우리가 택자라면 시기마다 다른 각자의 물과 불에서 그때마다 들리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또 회개를 하게 하셔서 해석이 되는 거예요. 이 눈물은 이제 흘리고 끝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늘 나를 살리는 회개가 이런 물과 불에서 터져 나오더라고요. 할레루야!
적용 질문이에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물과 불을 지나고 있습니까?
자식 불, 돈의 불, 건강의 불, 배우자의 불, 등등을 지금 이걸 없애달라고 기도합니까?
내 몸에 딱 맞는 물과 불이라고 지금 용서를 경험하고 계십니까?
지금 이게 그 관성이 있어서 그냥 팔복으로 갔다가도 기복으로 날마다 돌아가거든요. 이거를 축복이라고 용서하심이라고 생각을 못하는데 계속 물과 불에 있다 보니까 이게 좀 되는 게 있는 거예요. 증인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고 하나님이 주시는 물과 불에 순종해야 되는 거예요 그게 훈련이고 양육이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세 번째는 나에게 속량물로 주신 애굽이 있다는 거예요. 증인되기 위해서 3절 4절입니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 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성령의 의도를 무시하지 않으려면 이렇게 성경을 차례차례 자세히 읽어야 합니다. 물과 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거룩하신 분이래요. 구별된 분이시래요. 그분이 구원자라고 하세요. 근데 그 구원자인 그분이 애굽을 속량물로 주셨대요. 여러분 이스라엘은 400년 노예노릇 하다가 누구 때문에 구원됐죠? 누구 때문에 구원됐죠? 누구? 이스라엘이 누구에 의해서 구원됐어요? 이제 모세라고 그러죠. 그건 참 지당하신 답이에요. 근데 이제 이렇게 구속사적으로 생각해보면은 애굽이 학대해줘서 출애굽을 했잖아요. 애굽이 공로자죠. 구원자이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이렇게 이제 속량물이 되고 대신이 된 그 애굽 구스 스바는 나를 힘들게 하는 자이지만 그러므로 내가 아주 고마워해야 될 대상인 거예요. 현대인의 성경은 내가 너를 자유롭게 하려고 이집트와 이디오피아와 스바를 네 몸값으로 내어주었다. 아니 이스라엘이 무엇이라고 고센 땅에서 그 노예 생활하고 있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가장 강대국인 애굽을 몸값으로 줍니까? 이게 하나님의 놀라운 이제 법칙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왜 훈련시켰어요? 광야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나의 죽어질 것들이 죽어지지 않으면 절대 나오지 못해요. 그래서 이제 여호수아하고 갈렙밖에 못 나왔는데 예를 들면 우리가 이제 애굽같이 강대국인 돈이 많고 권력이 있고 아니면 도박을 하고 폭력이 세고 그러니까 도저히 감당 못할 이 강대국인 그런 이제 남편, 시부모, 배우자, 애굽이 나를 건져내기 위해서 지금 수고하는 거예요. 드디어 400년이나 수고했어요. 거기는 돈이 많을 때도 있었고 굉장히 잘해줄 때도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학대했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돈이 많아도 구원이 안 되고 권세가 있어도 안 되고 정말 결국은 학대를 하니까 구출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 밑에서 구원되기가 어려워요. 내가 즐기고 악할수록 나를 건져내기 위해서 애굽 모든 식구들이 수고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도박으로 집을 날린 사람을 보고 이제 그 도박을 내가 끊을 수가 없었는데 그 사람한테 왜 도박 끊어라 이렇게 하기보다 당신 때문에 내가 구원받았다 당신 나를 위해 너무 수고했다는 말이 잘 안 나오겠지만 기도하면서 연습을 해야 돼. 내가 당신 때문에 구원받았다 당신 나 때문에 수고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이 들리면 그 애굽을 속량물로 주시는 거예요. 나의 구원을 위한. 그러니까 구속사는 이렇게 한걸음 더 나가야 되는 거예요.
우리들 교회는 탈북 청소년 학교를 지금 20년째 돕고 있어요. 그 아이들은 무서운 김정일 정권을 피해서 정말 지긋한 가난 굶주림을 피해서 감시를 뚫고 부모를 버리고 살겠다고 이제 남한에 왔어요. 그 애들이 얼마나 두려울까 생각해 보셨어요? 살겠다고 왔는데 배고픔이 해결되니까 이제 그 고향에 있는 엄마 아빠 생각을 하니까 처형당했다는 소문도 있고 지금 이제 교화소에 가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 그리고 나서 이제 남한에서의 미래가 두렵죠. 웬만하면 나오지 않죠 우리는 먹을 것만 있으면 안나와요. 거기서 그 두려움과 여러분의 두려움이 비교가 되십니까? 그러니까 이제 사흘 굶으면 못할 게 없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압록강을 넘었어요. 얼마나 배가 고프면 부모가 처형될 걸 알면서도 탈출했겠어요? 그러면 이 아이들을 누가 탈출하게 만들었습니까? 김정일 정권이 탈출하게 만든 거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남한에 왔고 구원을 얻었어요. 생명을 얻었고 음식을 먹게 되었고 예수까지 믿게 되었어요. 영육간의 구원을 다 얻었어요. 그래서 제가 창립 1주년 기념 예배 때 가서 축사를 했어요. 그날 큐티 본문이 이사야 43장이었어요. 너희가 이곳에 온 것이 누구 때문이냐. 거기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먹고 살았으면 왔겠느냐. 너무 힘들고 배고파서 왔는데 너희를 이곳에 와서 예수 믿게 한 김정일 정권과 너희의 북한 형제들을 잊어서는 안돼. 너희 생명을 대신한 그들 때문에 너희가 지금 살고 있는 거잖아. 열심히 공부해야 된다고 너희는 삼성그룹에서 견학도 시켜주고 제주도도 견학을 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데 우리들교회는 지금 이 좋은 나라에서 제주도도 못가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러니 너희만 힘들다고 하지 마라. 너희를 왜 이렇게 아름답고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주겠느냐. 대신이 된 그런 김정일이 있고 또 한쪽에서 너희 부모, 형제들이 있고 그러니까 그 북한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되고 간절히 예수님께 기도해야 된다. 여러분들 애굽이 이해가 좀 되십니까?
저도 이제 남편에게 무시받은 것 때문에 내가 구원받은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우리 남편이 애굽 역할만 하고 몽둥이 역할만 하고 구원받지 못하면 어떡합니까? 가족은 구원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믿은 하나님이 이제 너무 좋으니까 그의 구원을 위해서 그 때문에 내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기도를 하게 되었죠. 죽기로 작정하면 무엇이 나를 침몰케 하겠습니까.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나의 속양물이 된 애굽과 구스 스바를 그렇게 미워하고 원망하는 거예요. 그들은 나 때문에, 나를 힘들게 했기 때문에 속량물로 끝나야 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우리가 기도를 해서 안 돌아왔을지라도 우리는 기도해야 돼요. 내가 누구 때문에 구원받았는지.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얻은 것은 바로 여러분의 애굽과 구스와 스바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서 속량물이 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김정일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죠. 바로도 10가지 재앙을 다 겪어도 강팍했고 끝까지 쫓아오다가 자기 악으로 그냥 바다에 수장이 됐어요. 어쩌면 우리의 애굽도 평생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만 믿게 해놓고 자기의 악으로 죽을 사람도 많아요. 나를 믿게 한 식구들이 애굽의 역할만 하고 몽둥이 역할만 하고 안 믿는다면 어떡해요. 아무리 돌아올 확률이 희귀해도 그들이 돌아오도록 증인이 돼야 합니다. 바로나 김정일이나 세상에서는 금수저예요. 그래서 돌아오기가 낙타가 바늘길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죠. 그래도 우리는 끝까지 그들에게 증인이 돼야 합니다.
바울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처럼 저도 세상적으로는 좋은 곳에 시집을 갔죠. 성실한 남편이었지만 가고 보니까 너무 깊은 물과 뜨거운 불이었어요. 피아노 치는 사람이 시집 온 첫날부터 걸레질이 전공이 돼서 이제 빨래를 했어요. 모세가 40년 동안 양치기의 생활을 하듯 매일 빨래와 걸레질과 청소의 연속이었습니다. 부자집에 시집을 왔는데 돈을 주질 않아서 저의 상대적인 빈곤감이 얼마나 심했는지 몰라요. 디모데 후서에 보니까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그 권면한 것을 보니까 내가 예수를 믿으면 당연히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하는 걸 몰랐어요. 저는 이제 고난 대신에 행복을 찾았기 때문에 디모데후서 삼장에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고 했는데 첫째가 자기를 사랑하죠. 그러니까 자기를 사랑해서 인정을 받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죠. 제가 이제 공부도 잘하고 이래야 돼. 이기고 이기려니까 인정받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고 그 다음에 돈을 사랑했다고 그래요. 돈을 사랑했게 돈 좋아 결혼을 했죠. 그러니까 이제 자기의 긍지가 하늘을 찔러요. 자긍해야 했기에 걸레질만 하면서도 주제를 모르고 나와 비슷한 레벨의 사람들을 만나도 위축이 되고 만나지 않아도 위축이 되고 그죠. 제가 막 학부형 모임 가도 내가 사는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 이상하잖아요 괴리감을 느끼고. 제가 행복을 선택한 결과 결론은 말세의 고통에 이르는 19가지 죄악이 차례차례 저에게 이르게 돼서 제가 이제 결론이 고통이었어요. 그리스도의 군사된 자로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에 범사에 총명이 없었습니다. 돈 없는 자체가 너무 두렵고 이렇게 남편에게 맞는 것이 두려우면 그것이 그대로 상대방에게 보이는 거예요. 근데 지금 우리들 교회는 목장 예배에서 이런 것을 이제 나누면 워낙 큰 것을 터뜨리는 지체가 있기 때문에 저절로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이제 훈련의 양이 차서 때가 끝나면 위로가 들려지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세요.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애굽을 속량물로 주신 이유는 나 잘 살라고가 아니고 증인되라고 세계 선교하라고 기도의 범위를 넓히라고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주셨기 때문에 애굽을 속량물로 주셨는데요.그렇게 이제 복욕의 때가 끝나니까 그게 뭔가 하면 물과 불 가운데로 지나도 침몰치 않고 사르지 않는 신비를 제가 체험하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이제 남편이 불쌍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므로 세계 선교도 좋지만은 우리는 남편에게부터 식구들에게부터 증인이 돼야 합니다. 그 사람은 부모에게 효자고 나에게도 열부고 아이들에게도 자부, 좋은 아빠인데 그 사람도 장로 아들로서 도덕과 윤리를 못 벗어나요. 그러니까 그 마음에 평강이 없는 거예요.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는데도 기도하지 않는 그 매마른 심령이 불쌍했어요. 주님이 없기 때문에 열심히 병원 일을 해도 인생의 주제가가 돈 쓰지 마라 밖에 나가지 마라 하는 것이 그냥 그게 인생의 목적이에요. 돈 아끼고 사는 것. 근데 이제 그런 것 때문에 나는 너무 무서운 이 애굽 때문에 이제 원망하다가 제가 남편이 뭐라 그래도 나가지 말라고 그래도 돈 안 줘도 이제 상처를 안 받는 이 신비한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이제 남편을 계속 보면서 기도하게 되었어요. 그 기도만 하면 되나요? 제가 받은 은혜 때문에 저는 당연히 증인이 돼야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 나는 남편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해요가 아니에요.
제가 이제 병원에서 전도를 하기. 시작했는데요 그 전까지는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그러니까 다 못한다 못한다 였는데 출애굽할 때 마라 쓴 물에 나뭇가지를 넣으니까 그게 먹을 물이 되었어요 단물. 나무까지가 십자가입니다. 저도 너무 쓴 환경이라서 나갈 수도 없고 전도할 수도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렇게 말씀을 보고 이 신비한 체험을 하니까 증인이 되려고 하니까 아 이 병원에서 큐티 모임을 하고 병실에 들어가서 전도 하면 되겠구나 길이 보이더라고요. 그때까지 그런 생각이 안 난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원장 부인이 산모들에게 전도를 하면 사실은 여러 가지 손해를 보기로 작정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도 그게 십자가 나무까지를 길러 놓는 거예요. 유익을 얻고자 하면 못하는 거죠. 그래서 이제 못 나가게 하니까 몰래몰래 전도하고 몰래몰래 공부하고 그 당시 병원에서 제일 서러운 사람은 딸 낳은 산모예요. 격세지감이죠. 그 병실에 들어가서 내가 딸 부잣집 막내 딸이다 딸도 나 같은 딸만 나면 된다. 되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산모들이 원장 부인이 들어가서 막 젊은 삼십대 여인이 들어가서 막 하니까 너무 놀라가지고 영접을 합니다. 그래가지고 이제 전도했다 너무 좋은데 거기까진 좋았어요. 그런데 글쎄 나중에 퇴원할 때 병원비를 깎아달라고 그러는 거잖아. 이거 너무 난처한 건데 나는 돈 안 주고 나가지 말라고 하는 거 이거 다 나는 순종하겠는데 복음 전한 사람에게는 깎아줘야 되잖아요. 이제 그냥 고민고민하다가 이제 남편이 밥 먹으러 올라오고 이러면 잠깐만 앉아보라고 그러고 무릎을 딱 꿇고 201호 환자 좀 깎아주면 안 돼요? 이러면은 그냥 남편이 보템이라는 게 하나도 없다고 입원실에 들어가지 말라고 그랬는데 또 들어갔냐. 다시는 돌아가지 말라 이제 막 이러고 그러죠. 그러면 그냥 알았어요. 이거는요 하겠다는 말도 아니고 안 하겠다는 말도 아니에요. 그냥 애매모호한 신비한 표정으로 구원의 얘기를 지금 하는 거예요. 알았어요 그러면 그 다음 날 또 전도 합니다 또 화를 버럭 내면 알았어요. 그러니까 무슨 말을 들어도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면서 알았어요 남편이 너무 바쁘니까 저는 이제 저보고 간호사가 오면 면접을 보라고 그래서 무조건 예수만 믿는다고 그러면 와요 와 내가 이제 이러잖아 그러면 예수만 믿으면 다냐 일을 잘해야지 그러면 내가 예수 믿는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을 뽑아줘야지 누가 뽑냐. 손해 보면 채워주시지 않겠냐 속으로 어떻게 그걸 감히 겉으로 하겠어요. 그래서 또 알았어요. 이렇게 이제 신비한 체험을 했기 때문에 온유함으로 쌓아두었기 때문에 남편이 마지막 때에 병원에 믿는 사람으로 다 채워져 있었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원장님 위해서 기도하라고 영접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을 해요. 여러분도 한번 전도해 보고 조롱을 받으면 혈기가 나서 관둬라 관둬 내가 너한테 다시 전도 하나 봐라 그러지 말고요 내가 만난 예수님 때문에 화내지 말고 신비한 표정으로 신비한 증인이 되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은 다 전도하는데 이 남편에게는 전도를 하지 못하니까 이렇게 이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냥 남편은 점점 사람들하고 만남이 이렇게 적어지면서 이제 저녁마다 저를 데리고 나가서 외식을 하고 그 다음에 특별히 술을 따라놓고 혼자 마시고. 저는 이제 그걸 보고 있습니다. 저는 술 먹는 게 너무 싫어요. 그런데 부활의 증인이 돼야 되니까 너무 싫다 그럴 수도 없고 또 술이 좋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너무 좋아할 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바로 이 구원의 표정은 좋지도 싫지도 않은 신비한 표정이에요. 가만히 앉아 있는 거야. 내가 물과 불을 잘 통과하면 이 신비한 표정이 나온다니까요. 그리고 리더십이 주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편이 점점 저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연구를 하는 거예요. 너무 좋다고도 안 하고 너무 싫다고도 안하고 야단 칠 말이 없어. 이제 지금까지 병원에서 24시간 붙어 있으니까 아이들 이제 학교도 있고 그런데 이사갈까 우리 이러면 너무 뜰 듯이 좋잖아요 그렇지만은 또 제가 뭘 알겠어요. 그냥 뭐 이러저러하면 괜찮을 것 같긴 하지만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요. 제가 뭘 알겠어요 이러면요 꼭 제가 하자는 대로 하는 거 있죠. 그 리더십이 딱 지어져가지고 그다음에 내가 이렇게 막 전도하잖아요. 그리고 큐티 모임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알게 모르게 거기 카리스마가 이제 들어가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욕을 해도. 여러분도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면 쫓아다니고 문자 확인하지 말고 이렇게 신비한 표정으로 신비한 대화를 하기 바랍니다.
제가 증인되기로 결단하고 살면 지나고 나서 오늘 이 증인이 되라 다시 생각을 해 보니까 증인되는 데는 필요한 응답을 다 주신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조금만 병원 2층 살림집에서 이제 반은 병실이고 반은 살림집인데 거기에서 구역 예배를 이제 가서 드렸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대민봉사를 하니까 구역 예배를 드린다고 그러니까 차마 이제 거절을 못했는데 거기서 우리 간호사들이 다 밥을 먹어야 돼요. 근데 예배가 길어지니까 밥을 이제 못 먹잖아. 그러니까 인터폰이 계속 와가지고 안 가. 안 내보내. 막 이러면서 그러니까 을러대니까 내가 예배보는 게 너무 두렵잖아요. 근데 거기 그 당시에 막 20만 원 50만 원짜리 셋방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형편이 그나마 제일 낳아서 다른 집에는 갈 데도 없는 거예요. 그냥 애 둘 데리고 한칸방에서 살고 이러니까. 그래서 제가 나는 돈 안 줘도 좋고 나가지 못하게 해도 좋으니까 제발 예배드릴 처서 하나만 달라고 근데 그거는 이제 불가능한 거예요. 근데 난 증인이 되고 싶은데 이게 가능하기나 한 기도제목입니까? 그런데 그 이층에 살림집이 있고 병실이 같이 있으니까 굉장히 불편하잖아요. 이제 옥상에 3층에 올라가서 아무래도 살림집을 삼층에 만들어야 되겠다 그래가지고 2층 다 입원실로 써야 되겠다고 그래서 3층에 살림집을 옥상에 올라가서 자그마케 한 24평 이렇게 정도로 지었어요. 그런데 3층 남편이 이제 2층에서 저 살림집에서 있다가 환자가 오면 계속 내려가서 운동을 할 시간이 없다고 그게 운동이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3층에서 하루를 오르락 내리락 하더니 힘들어서 다시 2층으로 철수 이렇게 됐어요. 그러니까 살림집만 지금 넓어진 거예요 병실은 하나도 안 넓어지고. 돈 일원도 안 주던 남편이 예배 처소를 지금 돈을 얼마를 들여서 지어준 거예요. 거기 쓰는 사람이 없으니까 당연히 기가 막혔어요 그 사람이 예배 쳐서 지어준 게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잖아요.
이제 3층에서 제가 예배를 드리니까 제가 전화가 필요했어요. 병원 전화로 상담을 해야 되니까 산모들이 우리 병원이 전화가 불통이라고 이제 상담 시작했는데 우리 남편이 그 다음 환자 볼 때까지 내가 그때까지 전화를 하고 있어요. 막 전화하지 말라고. 그래서 내가 전화하나 놔달라고 했더니 니가 사업을 하냐? 전화가 왜 필요하냐고. 그래서 아니 그러면 내 돈 가지고 좀 놓으면 안 될까. 그랬더니 니 돈이 어딨냐고 니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내 돈이지. 화를 엄청나게 냈는데요. 제가 또 여기서 기도했어요 주님 증인돼야 되고 큐티 모임하고 이러는데 전화 하나는 있어야 되는데 전화 한 대만 놔주세요 했더니 하루는 전화국에서 이렇게 왔다가 전화 이 청색 전화를 하나 놓으면은 이사 갈 때 백색 전화가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수십 년 전에 얘기를 모르겠지만 그 당시 전화가 비쌌어요. 비싸기 때문에 그게 이렇게 놨다가 혹시 이사 갈 일이 있으면 이제 비싼 전화가 된다고 하니까 당장 놓으라 그러는 거예요 근데 전화 달러 오는 날 수술이 길어져가지고 제 마음대로 달았어요. 그래가지고 2층은 전선이 이렇게 보여서 굉장히 안 좋고 그 3층이 안 보이니까 그래서 달았다고 한마디를 안 하는 거 있죠 내 3층이 어떻게 전화를 앉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생각해 보니까 이타적인 주님의 일은 다 이렇게 응답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십삼년 남편이 간 다음에 십삼 년 동안 열세 개의 큐티 모임을 한 게 아니라 그 이전 병원 개업했을 때부터 그렇게 마음 조려가면서 부들부들 떨면서 큐티 모임을 한 거가 이렇게 8년쯤 되더라고요. 다 합치니까 20년이 넘어요. 근데 제가 생각해도 여러분 저기 병원이 얼마나 열악해요. 그죠 병실도 있고 이런데 거기서 나는 병원하고 상관없이 혼자 지금 예수 믿고 원장 사모가 돼서 어떻게 그렇게 그걸 오픈하고 참 신기하죠. 근데 일관되게 그 증인이 되는 그 소원을 주셨어요. 이 물과 불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주님의 일은 주님이다 하셨는데요. 그렇게 그당시에 전도하고 양육한 것을 주님은 지금 다 이렇게 기억하셔서 우리들 교회를 되게 하신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이제 5절 6절에 보면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도 어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 하며’
자 이렇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렇게 남편 순종을 이제 하면서 이게 언제까지 이렇게 가야 되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죽음은 죽으리라 안희숙 씨 같이 막 딱 순교하고 감옥에서 딱 죽고 그게 훨씬 좋을 것 같다는 그니까 그 정도로 정말 유다의 구속사가 깨달아지니까 그런데 이제 이렇게 순종을 하고 나니까 지금 이제 강남 한복판, 판교 한복판에서 교회를 하시게 하는데요. 글쎄 지금 동서남북에서 이렇게 전철 타고 버스 타고 모여들지 그 누가 알았습니까? 지금 동서남북에서 모여든다고 그랬죠.
내가 나가서 대단한 주의 일을 하겠다고요 지금 여러분 자리에서 증인이 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기본기가 안 되어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자기 자리에서부터 아내의 자리 정말 목원의 자리 목자의 자리 그렇게 올라갈 때마다 그 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항상 저는 이제 똑같이 이렇게 전한 것 같아요. 그러면 7절에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우리가 물과 불에 들어가면 상처와 흔적이 있잖아요.그죠 근데 이렇게 구속사를 못 깨달으면은 은혜받을 때는 은혜를 받는데 그다음에 집에 들어가면 이제 상처를 집어넣었다가 조금 이따가 다시 상처 꺼내서 묵상하고 그다음에 집회 오면은 또 상처 꺼내가지고 해결됐다가 집에 가면 다시 꺼내서 묵상하고 우리는 상처를 위해 창조된 인생이 아니에요. 물과 불에 들어가서 증인이 되라고 그랬지 그 상처를 위해서 창조된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된 인생입니다. 그니까 상처를 묵상하지 말고 이제 나의 물과 불에서 이 불의 흔적에서 주님의 증인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의 품질이 좋고 나쁘고 자녀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이게 상관이 없는 거예요. 전혀 상관이 없는 거예요. 제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댁 얘기를 하고 남편 얘기를 하고 자녀 얘기를 하면서 뭐 잘 됐단 얘기 별로 안 했는데 여기까지 왔어요. 내가 물과 불에 그냥 가기만 하면 내가 그 물과 불에 간다고 이제 얘기만 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그것을 증거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의 사명은 오직 그 하나예요. 하나님이 보실 때 다 똑같아요. 다 똑같은 물과 불이에요. 짧은 인생이잖아요. 좋은 물 나쁜 물이 없어요. 뜨거운 불 덜 뜨거운 물이 없어요. 그냥 나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나의 물과 불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기만 하면 되는 줄 믿습니다. 증인이 되라는 그러니까 내가 주님을 만난 사람은 못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근데 요셉의 하나님을 내가 믿을 때는 하나도 증인이 되지 못했어요 근데 이제 유다의 구속사가 깨달아지면서 그 전에는 한 번도 전도를 못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는 한 번도 뒤를 쳐다보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증인이 돼서 수십 년을 살아온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전도도 안 되고 내가 맨날 불평하고 이러면 여러분들이 아직 유다의 구속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걸 위해서 여러분들이 구체적으로 기도를 하셔야 돼요. 나도 이 구속사가 깨닫게 해달라고 깨달아지게 해달라고 할렐루야.
적용 질문이에요
나를 위해 속량물이 된 자를 위해서 신비한 체험으로 말로 표정으로 증인이 되고 있습니까?
내가 암초 없애달라고 그럴 땐 인생 원망인데 이제 구속사를 깨닫고 말씀이 들어오니까 그 암초가 그대로 있는데 맨날 날아당기잖아요. 성령의 파도를 타고 맨날로 날라 맨날 날라 당기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이 암초를 여러분들이 증거하셔야 되는 거죠. 내가 암초가 있는데도 성령의 말씀으로 이렇게 넘어 당긴다고 할렐루야. 말씀을 맺어요 증인이 되라는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나의 정체성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특별히 오늘 그 유다의 구속사가 이해가 돼야 되는 거죠. 이건 아주 분수령적인 일인데 여러분 이걸 어렸을 때 제가 못들었잖아요. 제가 근데 우리 미취학 취학 청소년 청년 아이들이 이걸 듣는 거예요 지금. 이거는 어마어마한 일인 거 있죠. 제가 그렇게 어렸을 때 들었으면 그렇게 자살 타령에 이혼 타령 안 하죠. 여러분들이 뭔 애굽 남편이 힘들다고 이혼 타령을 해요 어마어마한 지금 축복이 증인이 되는 축복이 오는 건데 이 구속사를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가르쳐놔야 되는 거야. 우린 요셉만 최고라고 하기 때문에 애들이 고난이 오면 해석이 안 되는 해석이 물과 불에 순종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아시는 고난에 순종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속량물로 불러주신 애굽을 위해서 우리가 신비한 표정에 체험 있어야 되고 그 체험의 증인이 돼야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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