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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교회/QTIn/2023 표어 이제는 안심하라 (행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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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태복음 5장 8절 - 팔복산의 시력
    주일설교 요약 2023. 5. 21. 06:37

    팔복산의 시력
    마태복음 5장 8절
    김양재 목사
     

    여러분은 시력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이제 안구 건조증은 있지만 생각보다 시력이 좋아요. 그러니까 안경 안 끼고 지금 이렇게 설교를 하잖아요. 너무 놀랍죠? 분노 조절 장애를 줄여서 분조장이라고 한대요. 분조장에 대한 처방은 어떤 상담학 교수가 말하기를 울어야 한대요. 그래서 이제 많이 울수록 분노가 이제 사그라진다고 하는데요. 팔복산을 산행을 하다 보니까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이제 그 긍휼의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아요. 그래서 눈은 뿌열 때가 있지만 저도 울어서 그런지 이렇게 시력이 유지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분조장들이 눈물이 안 나는 게 문제예요. 분조장들은 우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팔복산의 시력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는데요. 바로 여섯 번째의 복 청결의 복입니다.
     
    우리가 갓(GOD)인지 골드(GOLD)인지 멀리서 보면 잘 몰라요. 가까이 가서 봐야 알겠잖아요. 그래서 오늘 팔복산의 시력 첫 번째는 거짓된 내 마음을 보는 시력입니다. 이건 다초점 시력이 아니에요.  8절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세상에서 이제 유일하게 두 눈으로 각각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생물이 있는데 바로 카멜레온이라고 합니다. 카멜레온은 색만 다양한 게 아니라 눈의 초점도 다양해서요. 한눈으로는 높은 곳에 먹이를 보고 한눈으로는 물에 뜬 곤충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눈을 주신 이유는 이것 저것을 보라고 따로 두 눈을 주신 게 아니라 한 물체를 정확한 시력으로 서로 도와서 보라고 주신 두 눈이에요. 두 눈이지만 일원론이에요. 그런데 한눈으로는 팔복산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 같은데 갓을 사모하는 것 같은데 한 눈으로는 기복산 골드를 앉으나서나 사모하니까 이게 두 마음을 품은 거죠. 청결의 반대는 두 마음인 거예요. 
     
    우주의 별 하나 보기에도 부족한 게 우리 시력이에요. 요즘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은 시리우스라고 하는데요. 지구에서 약 8.6광년 떨어져 있다고 해요. 빛이 9년 가까이 이동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니까 킬로미터로 계산하면 약 70조 5336억 킬로미터라고 해요. 너무 멀어서 가늠이 안 되죠. 그런데 별 하나도 이런데 하물며 이 별과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볼 수가 있겠습니까? 불가능해요. 맨눈으로는 태양도 볼 수 없잖아요. 우리 시력이 태양빛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사도 바울도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신다고 디모데전서에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만일 팔복산의 시력이 좋은 시력 좋은 눈이라고 하셨다면 아무도 하나님을 보는 복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근데 눈이 아니라 의외의 조건을 말씀하세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고 하나님을 본다고 그랬죠. 마음이 청결해야 되겠는데 예레미아 17장 9절에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누가 하나님을 볼 수가 있겠습니까? 좀 잘 생각해 보세요. 
     
    어떤 집사님이 커피숍에 취직을 한 지 이제 3주가 지났는데 예전에 가게 사장을 했고 종업원으로 일하는 건 처음이에요. 나이도 많아 취직하기도 어려운데 옛날 사장을 했을 때를 이제 생각해가지고 너무 열심히 해야 된다는 생각에 그냥 설거지도 열심히 하고 쉬지 않고 테이블도 닦고 그랬더니 어느 날 나이가 한참 어린 상사가 와가지고 아무개 님 제가 할 말은 해야 되겠는데요. 왜 음료 만들 생각은 안 하고 그렇게 테이블을 30분이나 닦으면서 빈둥빈둥 대시는 거예요. 이랬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우리 마음에 드는 생각은 말씀이 딱 생각나면서 당신이 옳습니다. 인정을 해야 되잖아요. 속으로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아니 두꺼비같이 생긴 종업원이 나를 무시하네 그냥 내가 사장일 때 너 같은 거 뽑지도 않았어 이러면서 내가 얼마나 테이블을 많이 닦고 빨리 닦고 청소했는지 cctv를 돌려서 보면 되잖아 이제 그렇게 속으로 그러면서 그런 속으로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아 네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지만 내 힘이 생기면 저 상사를 내가 눌러야지 이제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제 카멜레온 얘기했잖아요. 죄송합니다. 대답했지만 그 마음은 어떻습니까 그 짧은 시간에 미움, 판단, 정죄, 옳고 그름, 무시, 비하, 비교, 교만, 쫙 감정이 파노라마 치는 거예요. 여러분 이제 목장에서 목자에게 또 직장에서 상사에게 가정에서 남편에게 혹은 아내에게 우리의 마음은 어떤가요? 여러분 청결합니까? 이럴 경우에 청결한 게 가능이나 합니까? 그런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물은 아무리 쪼개도 물이잖아요. 그렇죠? 일원론이라고요. 그런데 만물보다 더러운 것이 안과 밖이 다른 사람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겉으로는 이러는데 카멜레온이야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초점의 생활을 죄의식도 없이 이렇게 하는 거죠. 나는 팔복산 기복산 다 사랑할 수 있어. 당시 바리새인 등 종교 지도자들이 그런 양면적 마음의 상태를 지녔어요. 곧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얻고자 누가복음 16장에도 얘기를 했죠. 그러다 보니 각종 불의와 결탁하게 되고 자신들의 종교 기득권을 지키고자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까지 자기 유익에 안 맞으면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못 박은 거예요. 왜죠? 자기의 더러움을 결코 몰라요. 우리가 몸을 씻기 위해서 목욕탕에 갈 때 있잖아요. 내가 몸에서 향기가 나고 그냥 때도 없고 매끈한데 누가 목욕탕 가요? 이렇게 더러운 걸 알 때가 가는 거잖아요. 근데 이처럼 마음을 청결하기 위한 출발은 바로 내 마음이 더러운 걸 아는 사람이에요. 우리 모두 죽음 너머 하나님이 너무나도 희미하게 보이기 때문에 인생의 방향이 이 밑동 잘린 나무를 위해서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적 시력이 좋아진다는 것은 내가 밑동이 잘리고 그을린 더러운 나무라는 것이 보이는 거예요. 보이지 않으면 이제 청결과는 거리가 멀은 거죠.
     

    [적용질문]
    여러분의 눈은 다초점 시력으로 카멜레온처럼 기복산 팔복산을 이렇게 지금 왔다 갔다 하며 다 보고 있습니까?
    바리새인처럼 앞에서는 웃고 속으로 정죄하는 비율이 몇 프로인가요?
     
     
    한 부목자님이 나눔을 하는데 저는 최고의 부목자로 불리고 싶어요. 목자가 되지 못하는 부목자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예요. 제가 우리들 교회 처음. 와서 목장을 나갈 때 그때 저희가 알코올 중독 목장이었는데요. 인본적이셨던 부목자님과 권찰님께서 이제 약간의 언쟁을 하시는데 저는 부목자님을 위한 답시고 바리새인처럼 입바른 소리만 했죠. 권찰님은 너무 말이 많고 예전에 여자 집사님들은 말씀도 잘 안 하셨는데 지금은 너무 말이 많고 각자들 죄만 보고 가면 되지 저 부부에게 병원 가라 마라가 뭐가 중요하냐고. 그런데 그렇게 자기가 얘기를 했는데 그 주일에 목장 보고서를 담임 목사님께서 전부 다 읽어주시면서 실명은 안 나왔지만 저의 나눔을 지탄하시며 말씀을 하셨어요. 너무 창피하고 분하고 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이를 바득바득 갈았는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입바른 소리만 하는 본질은 보지 못하는 바리새인이라는 걸 알았어요. 근데 그 부분을 목사님께서는 꿰뚫어 보시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목장 보고서 읽어드릴 때 이가 바득바득 갈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제가 알았어요. 그래도 저는 이 욕을 다 먹으면서 가기 때문에 오래 사는 것 같아요. 이제 욕했는데 저만 모르고 있지만 그게 다 영적으로 오잖아요. 많이 욕해 주시면 제가 오래 살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거짓된 자기 마음을 보는 시력 두 번째는 마음이 청결한 시력입니다.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라고 시작을 하잖아요. 이거 헬라어로 카르디아인데 이걸 히브리어는 래브라고 해요. 근데 마음의 그 뜻은 그러니까 마음, 심장 심장이 무슨 일을 하죠. 쉬지 않고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며 계속적으로 뛰면서 온몸에 피를 공급해서 발끝에부터 손끝까지 구석구석 신선한 피를 공급하는 일을 하잖아요. 죽어 있고 멈춰 있는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끊임없이 박동하는 심장이에요. 결국 이 심장이 뛰어 혈액이 온몸에 전달되면 우리 몸이 어떻게 됩니까 매일 지속되고 반복되는 이 작업을 통해 우리 몸에 있는 나쁜 노폐물들이 다 빠져나가고 몸 구석구석까지 영양분 영양분과 산소가 공급되는 거죠. 그러니까 청결해지는 것은 심장 박동으로 말미암아 노폐물이 계속 흘러내려가는 거죠. 밖으로 순환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심장만 살아있으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이 바르게 뛰기만 하면 그 말씀이 내 구석 내 몸 구석구석을 청결케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심장이 잘난 심장이 어디 있고 못난 심장이 어딨어요. 그냥 하루 종일 뛰는 거예요. 뛰는 거예요. 심장이 하루 종일 뛰는 거예요. 마음이 심장이라면 이 청결은 헬라어 카다로스라고 하는데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순도 100 프로의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지난주 이제 피겨 선수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차준환 이혜인 선수가 은메달을 땄는데요. 그들이 연기를 끝내면 중계석에서 클린입니다. 클린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회전 수나 랜딩 엣지 등 완벽했다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주님도 저도 이제 그 내 인생 여정 끝났을 때 클린이다라고 외쳐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클린이 무슨 뜻인지 모르죠. 그러나 순도 100%의 청결을 인간은 이룰 수가 없다고 했어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존재의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요. 우리 유한한 존재가 주님의 무한한 존재를 감당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보다도 거리보다도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죄가 가로막혀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게로 오시기 전에는 이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 그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힐 자가 이 세상에는 없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오시기 전에는 아무리 똑똑해도 죄를 모르는 거예요. 죄를 모르는 사람하고 죄를 아는 사람하고 사니까 인생은 갈등 충만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하늘이 어두우면 별을 볼 수가 없잖아요. 시력이 좋고 하늘이 맑아도 별이 빛을 내지 않으면 또 볼 수가 없어요. 근데 별빛이 수십 수백 수천 수만 광년 떨어진 거리를 뚫고 우리 눈까지 오기 때문에 우리가 별을 볼 수가 있어요. 할렐루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별 하나도 그런데 우리가 그 별을 만드신 하나님을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청결하게 한다고 해도 주님이 그 빛을 비춰주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청결은 내가 노력해서 수양을 쌓아서 되는 게 아니에요. 팔복은 내가 노력해서 얻는 복이 아니에요. 팔복은 말 그대로 복이에요. 선물이에요. 지금 산에 올라온 너희가 누리는 이 복, 바로 이 청결의 복은 주님 앞에 내가 얼마나 더러운지를 깨닫는 사람이 누리는 복인데요. 하나님이 찾아오시면 어떤 일이 생기냐 하면 이 계속된 고난 속에서 나는 착하고 나는 공부 잘하고 나는 나는 나는 이러다가 내 모습만 보다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제 하나님 찾아오시는 거는 내 죄가 보이는 거예요. 감당할 수 없는 내 죄가 보이는 거예요. 이제 나에게로만 향하던 내 눈을 들어서 그걸 보이게 해주신 하나님 앞에 직면하게 되는 거죠. 하나님 말씀이니까 말씀을 보게 된 거예요.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러 씻어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그러니까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예수를 믿으면 우리 인생의 모든 죄악의 더러움을 물로 씻는 물세례를 받잖아요. 그런데 깨끗하게 하는 것은 물이 아니라 오늘 말씀이라고 해요. 말씀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맨날 나는 나는 그러다가 제 악을 보고 제 시선이 말씀으로 향했잖아요. 그렇죠? 제 모든 간증이 그 말씀 속에 지금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 것이죠. 그러니까 주님이 내 마음을 청결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청결한 새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이것이 예수 앞에 나의 더러움을 고백하는 청결의 복인데요. 에스겔 36장 26절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진리의 성령님이 이렇게 오시면 이게 새 마음이고 그것이 이제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되는 거죠. 내 더러움을 알아서 예수께 나오는 자들에게 바로 이 새 마음 청결한 마음 이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새 마음 새 영을 주신다는 거예요. 이것이 청결의 복이에요. 그런데 심장은 막 움직여야 되잖아요. 고여있는 물은 썩잖아요. 흐르는 물은 산소가 공급돼서 깨끗해지듯이 우리의 마음 역시 계속적으로 공급을 받고 흘러가야 청결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목장은 은혜가 있어서 모이는 게 아니고 은혜가 있던 없던 모여야 돼요. 심장은요 이 몸이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그냥 돌아가 맨날 맨날 돌아가요. 그러니까 좋은 심장 나쁜 심장이 없고 최고의 심장은 날마다 돌아가는 심장 그러니까 날마다 모이는 목장이 최고의 목장이에요. 이유를 대지 않고 아니면 죽어요. 심장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잖아요. 여러분들 목장 모임 안 하면 죽어요. 알아요? 그러니까 그 목장에서 늘 마음속에 있는 죄악과 숨은 부끄러움들이 입을 통해 고백되어지고, 오늘 아까 간증하신 집사님이 예배 수요 예배 다 오겠는데 목장 가기 실 테잖아요. 거기서 고백해야 되니까 그러니까 목장에 가기 싫어서 교회 안 나오는 사람들은 다 죄가 있어요. 하여튼 목장 가기 싫다는 사람들은 뭐가 있어요. 있어. 근데 고백되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제 내가 이렇게 노폐물들을 다 이렇게 흘러 떠내려 보내는 것처럼 내 죄를 떠내려 보내면 거기 이제 새로운 영양소가 자리 잡게 되잖아요. 이게 청결이에요. 그 말씀이 공급되어지는 거죠. 우리의 우리들교회 시스템이 얼마나 청결 시스템인지 몰라요. 왜냐하면 우리 속에는 미움, 탐심, 악한 생각, 정욕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아요. 그런데 그런 미움과 시기 질투가 흘러내려가지 않고 우리 마음속에 그대로 담겨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지 않겠어요? 이 미움이 그게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어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망가져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목장이 안 나오고 혼자서 좋아하다 미워하다 잘 되면 교만하고 안 되면 미워하고 그렇죠? 이 모든 그것들이 썩어 고인 물은 썩잖아요. 썩어서 맨날 흘러 떠내려가야 되는데 그래서 이 공동체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썩는 거예요. 악한 생각과 마음들이 생겨나지 않는 게 청결이 아니고요. 눈 뜨면 생각나 있고 눈 뜨면 또 자라나 있어요. 눈 뜨면 그냥 내 옆에 있는 식구들이 쳐 그 다음에 이제 이렇게 그냥 눈만 뜨면 죽을 때까지 미운 마음이 생겨나지만 그게 맨날 싹이 자라 근데 목장에서 고백하고 큐티하고 고백하고 이제 공동체에서 그걸 흘려 잘 보내고 나눔과 묵상을 통해서. 그래서 내가 보내는 것만큼 조금씩 조금씩 차지니까 금세 달라지는 게 안 보일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자꾸 이렇게 신선하게 하면은 내 몸도 청결해지는 것처럼 마음도 청결해지는 거죠. 

    여러분 청소할 때 뭐부터 하죠? 창문부터 열어야 되잖아요. 창문도 안 열고 그렇게 빗자루를 그냥 휘둘러 대면은 더 방이 더 더러워지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입부터 열어서 고백을 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몸의 창문이잖아요. 아니 눈도 창문이고 이것도 창문이고 내보내야 돼 내보내야 돼. 그래서 심장이 좋은 게 나쁜 게 없고 그냥 날마다 움직이는 거 이거 그러니까 믿음이 없어도 날마다 목장 오고 교회 오고 이런 사람은 그냥 기본적으로 천국은 갈 것 같아요. 그리고 맨날 나는 믿음 없어 이러는 사람 최고야 말씀 하나도 안 들려 그러는데 맨날 와서 앉아 있어 그 사람은 청결한 사람이에요. 오늘 그러잖아요. 래브는 또 다른 뜻이 있는데 집이란 뜻이 있어요. 배우고 연구하는 집 뭘 배우고 연구하나요? 말씀을 끊임없이 공급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노폐물을 버린 자리에 거기가 말씀의 집이 돼서 채워져야 되는 거죠. 이게 청결한 자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이제 청소 청결이 제 전공이잖아요. 근데 여러분 그렇게 네 명의 여자가 하루 종일 청소를 하는데 그 다음 날 보면 또 할 게 있어요. 하루라도 청소 안 하면 더러워지는데 청소를 하는 사람은 안 하면 죽을 것 같은데 한 달을 안 하는 사람은 안 해도 괜찮아 근데 점점 이제 망가져가는 거죠. 제가 해보니까 청소의 여왕이잖아요. 제가 그 사명의 자리에서 날마다 잘 닦고 비비고 문지르며 고백되어지고 이렇게 이제 그 흘러간 죄의 빈자리를 말씀으로 채워놓는 게 오늘 청결이라고 하네요. 우리는 당신이 옳습니다 하고 이렇게 이제 당신이 옳습니다. 하려면 내 죄를 볼 수밖에 없어요. 근데 여기서 심장은 날마다 여전히 가장 중요한 청결의 비결이에요. 심장은 날마다 움직여야 되고 여전히 움직여야 돼요. 이 최고의 영적 비결입니다. 이게 바로 묵상이죠. 작년에 사도행전 했을 때 닫고 비비고 문지르고 생각나십니까? 근데 왜 여자들만 네해요. 녹취를 안 하셨구나. 다시 한 번 죄악을 쏟아내고 흘려보내며 그 자리에 말씀을 채워놓는 게 청결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들교회 청결 시스템이 제대로 돼 있죠. 거기 안 들어오면 여러분만 손해예요. 
     

    [적용 질문] 
    고난 주간을 시작으로 아직도 이렇게 내 마음속에 그냥 끼고 흘러가지 않고 고백되지 않고 또아리 틀고 있는 죄가 무엇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큐티하십니까? 말씀을 채워 넣으려고 큐티를 하십니까? 그 육적으로 여러분 청소 얼마나 자주 합니까?
     

    청소 너무 청소를 열심히 하는 것도 문제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결벽증이라는 병이 있어요. 결벽. 너무 안 하는 것도 문제고 너무 하는 것도 문제고 발란스를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목장에서 늘 부족함. 수치 죄 이런 것들을 나누는 거예요. 흘려보내는 거예요. 서울시 보람 일자리 관리자를 채용하는 면접이었는데 이제 면접관이 각자의 단점이 뭐냐고 물어봤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두 사람은 단점이 다 없다고 그랬는데 저는 저의 단점은 성격이 급한 것이라고 하면서 요즘은 트레킹과 독서를 하면서 많이 완화되었어요. 그래서 약재료로 그 급한 성격을 많이 사용한다고 했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그냥 약재료로 많이 사용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면접관이 무슨 약인데요. 그러면서 그 질문을 한 것이 마치 내가 정신질환의 약을 먹는다고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면접관이 약이요 하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는데 세상에 제가 98명 가운데 39위를 했는데 그 약재료만 뺐어도 붙었을 건데 여러분 미션 수행을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약재료를 누가 알아들어요. 서울시 공무원 시험 보면서. 그러나 저는 모든 일자리에 사람을 살리는 성도들이 진입을 했으면 너무 좋겠습니다. 이렇게 면접을 잘하고 이러면 그 관리자 채용하는 그 자리에 얼마나 우리가 이렇게 맨날 그 목장 했던 것들이 쓰임을 받겠습니까? 여러분도 면접 그렇게 하지 말라고 아무 데 가서나 약재료 얘기하지 마시라고 우리는 알아듣는 얘기 우리는 너무 하니까 알아들었는데.

    또 한 분은요 자기는 현모양처가 예수님 믿기 전에 가장 큰 꿈이었는데 그 현모양처를 넘어서 지금 부목자가 됐잖아요. 근데 내가 한참 얘기하는데 나한테 부목자님 그러니까 내가 뭔가 된 것 같은 느낌인 거예요. 근데 어떤 분이 부목자라고 안 그러고 집사님 그러는 거예요. 근데 그때 기분이 확 상하면서 나 부목잔인데 막 미운 거예요. 인정받는 게 그거였나 봐요. 워낙에 나는 맹추라는 소리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서 정말 너무 엄마가 커서도 맹추라고 하는데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흘려보내는 거예요. 이런 얘기를 목장에서 드러내놓고 하는 사람은 이제 청결의 산으로 이제 가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들 이런 나눔 듣고 그 부목자 하나 가지고 이런 사람이 더 문제예요. 아유 정말 그러니까 이런 나눔을 할 때 막 격려를 해드리고 나도 그랬는데 집사님도 그랬어요. 아유 세상에 난 더 했다니까 이렇게 반응을 해주셔야 되는 거예요. 아셨어요? 정답을 하면서 아니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그 직분을 가지고 그래요. 이러면서 정답 얘기하면서 밥맛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간이 진짜 참 악하고 또 음란하고 죄인이에요. 선한 게 하나도 없어요. 카멜레온이에요. 팔복산의 시력은 거짓된 내 마음을 보는 것이고 그 다음에 이제 마음이 청결, 심장 또 집, 노폐물을 다 버리고 거기다 말씀으로 채워 놓는 거 이게 청결이라고 그랬어요. 딴 게 아니라 우리들교회 식으로 하면 그냥 되는 것 같아요. 

    자 이제 세 번째는 하나님을 보는 시력입니다.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며 그러니까 이제 더러운 지를 깨달아 날마다 내 죄 고백하고 말씀으로 채운 자는 오늘 하나님을 본다고 그랬어요. 여기서 그들이 그들이 본대요 3인칭 남성 복수 주격 인칭 대명사가 독립적으로 사용되었는데요. 그러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들 바로 그 사람들만 내 죄를 고백하고 말씀을 채워놓는 그 사람들만 하나님을 볼 수 있음을 분명히 하는 거죠. 근데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그랬잖아요. 니고데모 보고 우리 주님이. 거듭난다는 말은 중생, 다시 살다 뭐 다 같은 말인데 그러니까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가 없어요. 지금. 볼 수 없어요. 제가 주님을 마음속에 있는 주님을 날마다 생각하고 지금 동행하지만 그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을 진짜 뵈옵는다는 생각만 해도 제가 그냥 우리가 제가 늘 축조할 때 내 사랑하는 주님 할 때마다 눈물이 이렇게 제가 울먹울먹해 그 생각만 해도 제가 눈물이 앞을 가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는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그 머나먼 거리 물리적으로도 도저히 만날 수가 없는데 죄가 또 딱 가려져 있다 그랬잖아요. 근데 그거를 내가 회개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주님이 찾아오셔야 회개도 될 수가 있어 주님이 찾아오시는 게 제일 중요한 거니까 청결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욥이 고난을 당하고 마지막 42장 5절의 결론이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만 듣다가 이제 눈으로 주를 뵈었나이다 했어요. 그러니까 눈으로 본다는 건 거룩하시고 영이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인지하는 것이죠. 본다라는 말은 안다라는 말과 같은 뜻인데요. 에베소서 1장 18절에 마음의 눈을 밝혀서 보게 해달라고 하지 않고 알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셨어요.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서 마음의 눈을 밝혀서 이제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그러니까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말이나 안다는 말이 같은 말입니다. 자신의 것을 청결하게 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을 때는 욕이 하나님을 귀로만 들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 말을 했던 시점이 언제에요? 자녀들이 죽고 재산이 다 날아가고 아내가 자기를 저주하고 떠나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자신을 비방하고 더 나아가 온몸이 병들어서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죄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으니 욥의 절친한 친구들이 멀리서 욥을 보고 그가 욥인 줄 몰라볼 정도가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죄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던 욥이 동방에서 의인이었잖아요. 그런데 이런 휘몰아치는 고난 후에 욥이 이렇게 고백을 하는 거예요. 내가 주께 귀로만 들었다가 이제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영적 시력이 생겼어요. 영적 시력 고난이 오지 않으면 영적 시력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근데 자꾸 기복산 팔복산을 같이 가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거야 여러분들이. 이 고백 후에 욥이 뭐라고 말합니까 주님을 본 후에 주님께 막 따집니까?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요. 내가 착하고 공부 잘하고 의롭고 예배 잘 드렸는데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하나님이 진짜 계셔요? 다 이러죠? 이거 해석이 안 되는 게 전부 다 이제 하나님이 틀렸다는 거야. 그런데 눈으로 본 욥이 한마디도 그렇게 원망 안 하고 바로 이렇게 6절에 이어서 그러므로 내가 눈으로 주님을 보았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거두어 드리고 티끌과 죄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나이다. 이게 영적 시력이에요.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건이 해석되는 것이고 사건이 해석되는 것은 하나님이 100% 옳으신 것이고 99%도 아니고 100% 옳으신 것이고 인간은 100% 죄인이고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돼 있는 거예요. 다시 하나님을 본다는 거는 사건이 해석되는 거고 하나님이 100% 옳으신 것이고 그건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되는 거예요. 요한일서 4장 12절에 보면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청결하여 계속 내가 내가 회개하고 말씀을 채워놓고 그래서 주님을 보는 사람은 곧 사랑하는 사람인 거예요. 정말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는 것인데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주님을 보는 사람이에요. 주님의 사랑을 모르면 이런 주님의 사랑을 모르면 자꾸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되죠. 보이는 것의 매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시선에 메여요 주께 받은 은사도 다 비교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내가 본 주님이 더 크다 내 영적 시력이 더 좋다 내 은사가 탁월하다 이런 기복적인 가치관에서 떠나지를 못하는 거예요. 주님의 사랑을 알아야 돼요. 내가 마음이 청결해서 주님을 보는 게 아니에요.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보여주시기 때문에 볼 뿐이에요. 나한테 선한 게 1도 없어요. 그래서 사랑이 더 중요한 거예요. 우리가 아무리 내가 베토벤 소나타를 치고 악보를 아무리 보고 공부를 해도 그냥 듣고 참 그 베토벤 음악이 좋네 하는 사람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아니에요? 악보를 아무리 보면 뭐 해요. 듣고 좋아해야지. 그게 사랑해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지. 악보 보고 음악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건 아니잖아요. 옛날 우리 부모님들이 없던 시절에 훨씬 주님을 사랑했다고요. 우리가 보면 감동이 있잖아 부모님들한테 못 먹고 못 살던 그러니까 바로 이게 사랑이 중요한 거예요. 이 사랑을 주셨기 때문에 이제 눈으로 보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귀로 듣다가 이제 눈으로 보는 적용을 하게 되면 무조건 내가 회개하나이다가 되는 거예요. 사랑을 받아 누리는 복을 맛보았기 때문에 나를 살려주신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래서 당신이 옳도다 하면서 이제 또 내가 카멜레온 같은 마음이 속에 있잖아요. 그러니까 자꾸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게 맞긴 맞는데 아직 내가 100% 인정이 안 되는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이 회개의 눈물을 흘리기 때문에 사랑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이 눈물을 흘려야 되는 거예요. 내 죄가 주홍같이 붉은 게 보여야 되는 거예요. 사람이 하루의 눈을 2만 5천 번을 깜빡거린다는 거예요. 그렇게 눈을 씻어내야 건강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육 간에 이렇게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시력이 좋아지는 줄 믿습니다. 영육 간에 다 원리가 같아요. 그러니까 나의 이 사건의 현상을 넘어서 이제 청결하게 되니까 눈이 맑아져서 하나님을 희미하게 보다가 확실하게 보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신 성경 말씀이 깨달아지는 거예요. 제가 이게 깨달아지니까 우리 남편 사랑하게 됐죠. 청결하게 돼서 기가 막힌 그 하나님 그냥 영겁의 시간을 지나도 못 만날 하나님을 만나게 됐으니까 그래서 이게 이게 순환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눈으로 본다는 거는 무조건적인 긍휼을 원하시는 통로가 우리가 돼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사랑으로 이제 나타나야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5.18 당시 나라가 위험했다고 하죠. 우리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제 우리 나라는 다 살아났잖아요. 그렇죠 근데 이제 역사가 옳고 그름을 어떻게 평가하는 거는 역사에 맡기고요. 그게 옳다면 100년이 지나도 진실은 시간이 가면 다 나타나니까 맡기고 그러나 그 당시 한 사람이라도 무고하게 고통을 받고 상처를 받았다면 지금 그게 대표성이 있잖아요. 무조건 사과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구속사의 적용을 지난주 전도사님 아드님께서 하더라고요. 저는 큐티는 제가 하는데 적용은 덜 믿음 없는 제 남편이 한다고 했잖아요. 너무 의로워가지고. 그런데 뭐 믿음으로 했건 아니건 무조건 죄인이라고 하니까 잘 잘못을 떠나서 다들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죄인이 백대나리온 중에 아무리 용서해도 내가 50 못 받은 것은 용서하지 못하겠다. 이제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믿는 우리는 조상의 죄도 내가 다 껴안고 모두가 죄 탓입니다. 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모두 죄인이잖아요. 바로 이거예요. 그렇지만 우리가 인생이 카멜레온처럼 하나님을 알려면 성령님의 강권적인 도움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하루아침에 다 깨달아지는 게 아니고 또 믿음에는 불량이 있다고 그랬어요. 에베소서 1장 17절 18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줘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우리가 맨 처음에 하나님을 알 때는요 코끼리 뒷다리만 보고 코끼리라고 그래요. 그다음엔 등을 보고 다리하고 등을 보고 코끼리라 그래. 그런데 이제 전체를 보고 아 코끼리구나 할 때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시야가 달라졌어요. 그러니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자꾸 알아가기를 기도했잖아요. 어떤 이제 1월에 등록하신 신자님께서 목장 나누면서 목장이 방학하면 스타 목사님 교회 가서 말씀을 듣고 기도해보고 싶다. 이렇게 나눴어요. 그러니까 이제 제 설교가 어렵든지 아직 집사님이 코끼리 뒷다리만 보고 계신지 둘 중에 하나겠죠. 그렇죠? 그러니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라고 누구에게 기도를 했냐면 에베소 교인들에게요.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 사도가 여긴 2년 6개월이나 성경을 잘 가르친 곳이에요. 믿음이 있는 곳이죠. 그런데 그들에게 로마 감옥에서 편지를 쓴 거예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믿음이 누구보다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이게 원어로는 빈자리가 없도록 순도 100%로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한 거예요. 믿음은 자라가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적용이 또 따로따로 있어요. 있는 자는 더 부해진다고 믿음이 있는 에베소 교회에 보내신 바울의 편지는 우리들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줄 믿습니다. 당신이 옳습니다. 하니까 여러분들의 마음이 청결해져서 다들 하나님을 보게 되니까 해석들을 너무 잘하셔서 사람들을 지금 살리고 계신 거예요. 이 청결한 마음으로 누군가가 한 교회라도 이 죄와 계시의 정신이 더해지면 나라도 치유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항상 당신이 옳습니다. 우리가 바람 핀 남편이 뭐가 잘했다고 당신이 옳습니다. 해요 그런데 우리가 늘 그렇게 하니까 지금 다 돌아오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이제 그 나라의 치유도 그러니까 큰 게 아니에요. 바람 핀 남편 한 번 용서하면 나라의 치유가 일어나요. 

    사역자가 아님에도 이제 이렇게 근무지에서 최선을 다해서 가정을 살리는 법원 이혼 담당 공무원인 부목자님의 나눔인데  면담하는 내용들을 근거로 재판에 거의 8~90% 정도의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자리래요. 청년부에서 별 고난도 없이 결혼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이 가정을 얼마나 소리 없이 살리고 있는지 몰라요. 지난 3월에도 정말 떨리는 마음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우리들교회를 5명을 소개했다는 거예요. 한 분은 아내분과 성격이 맞지 않아 이혼 소송 중이셨고 근데 그분은 가정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상담도 많이 받고 말할 수 없는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좌절 중이셔서 우리들교회를 딱 말씀드렸는데 탐방을 가보겠다고 했고 장로님을 연결해 드렸는데 그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장로님이 장례식까지 갔다오시고 교회 등록하셨다잖아요. 그러니까 이 집사님 너무 놀라가지고.

    또 이제 어느 분은 남편의 외도가 확실한데도 인간적으로 이제 이혼을 안 하시겠다고 하셔서 보통은 반소장을 제기하고 같이 열심히 싸우는데 너무 힘드시지 않냐 그랬더니 그 얘기만 들어도 막 우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또 자기는 너무 가정을 지켜내고 싶다고 하셔서 우리들교회 말씀드렸더니만 가서 큐티도 주문하시고 목사님 설교 찾아서 보시고 그래 가지고 이제 목장을 또 가겠다고 또 그러니까 여기에 부목자님인데 여기에 목자님은 굉장히 바쁘신 것 같아요. 맨날 연결해 드리느라고 거기도 이제 등록하시고 목장에 편성되셨는데 제가 이러나 싶을 정도로 놀라는 중에 이렇게 느낀 것은 제가 맡은 업무를 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건넬 수도 없고 기도하면서 분별하면서 일을 해야 되겠지만 정말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명을 잘 감당해야 되겠구나 근데 우리들교회 분들은 데리고만 오면 정말 자기 일처럼 이렇게 척척 연결해 주시고 한 영혼도 놓치지 않으시려고 하는 모습에 저는 정말 감동받았어요. 공무원이 이렇게 이혼 말리는 것이 나라 살리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한 달에 다섯 분을 인도했다고 그러는데 제가 어느 인터뷰를 보니까 한 변호사가 9년 동안 천7백 명 이혼을 시켰다는 거예요. 그것이 너무 휴머니즘이 돼가지고 힘들어하는 과정에서 빨리 고통을 저기 뭐야 끝내라고 그렇게 도와드리는 거라고 여러분이 1700명 이혼을 하는데 이런 분들이 곳곳에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라 치유하는 게 이렇게 여러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목장에서 듣고 본 대로 한마디만 하니까 이렇게 지금 와서 이혼을 말리게 되고 몰라서 그렇지 오면은 다 이혼을 접는 거예요. 아까도 1부 끝나고 이혼을 접겠다고 소송 중이셨는데 접겠다 그러시고 나가신 분이 계셨어요. 저는 대단한 거 보는 게 아니고 우리가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당신이 옳도다 하니까 눈물이 나고 하나님을 보니까 그냥 성경책 붙들고 살잖아요. 우리들교회가 다 이게 진짜 우리들교회 얘기 아닙니까 이게 청결이에요.
     
    또 권찰님이 자기가 30대 때 임신 중 사산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너무 위중해 병원 측에서 장례 준비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집사님, 권사님들이 피를 나눠주려고 순번을 정해서 기도해주는 그런 긍휼함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그 이후로 주님을 만나고 나도 받은 은혜를 나눠야지 했어요. 그래서 큐티하면서 공동체 얼굴을 떠올리면서 기도합니다. 어떤 한 분을 위해서는 하루 종일 기도할 때도 있어요. 지난주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전도사님 사모님이 떠올랐어요. 나도 죄인이고 너도 죄인이고 우리가 다 죄인인데 너무나 다 돌을 던지잖아요. 구원받더라도 우리가 죗값은 이 땅에서 받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값을 너무 톡톡히 받고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적어도 나는 저분을 향해 돌 앉혀야 되겠다는 생각에 울컥했습니다. 이런 나눔을 이렇게 들었어요. 바로 이런 거예요. 이 사모님도 진짜 가정 지키려고 왔어요. 그리고 전도사님도 기도로 그 집 안에서 지금 처음 있게 된 집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식구들 모두 구원받아야 될 긍휼의 대상인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찾아가시기를 기도해 주셔야 되는 거예요. 저 아드님도 우리가 다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말은 그렇게 해서 믿음으로 연결이 돼야 되는데 피해자 가해자 모두 영적 시력을 갖추어서 이 고난 주간의 팔복산의 청결을 맛보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다 구원받아야 될 똑같은 정말 우리는 정말 죄인인 거예요. 여기서 옳고 그르다 이러시면 이제 안 되는 거죠.
     
    [적용 질문]
    하나님을 귀로 듣다가 눈으로 본 경험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지금 현재 해석이 안 되는 내 사건은 무엇인가요 그래서 하나님 틀리다고 막 지금 그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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