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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7장 20절~26절 - 성령의 안심주일설교 요약 2022. 10. 30. 09:57
2022년 10월 23일
성령의 안심
사도행전 27장 20절~26절
며칠 전 뉴스를 보니까 전 세계에 모든 직장 중 제일 좋은 직장을 포브스에서 선정을 했다는데요. 이제 5위가 애플이고 4위가 구글이고 3위가 아이비엠이고 2위가 마이크로소프트에요. 그런데 1위가 어디인 줄 아세요. 세계 1위가 바로 놀랍게도 삼성전자라는 거예요. 포브스가 전 세계 57개국 근로자 15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이라니까 신빙성이 있어 보여요 설문 항목을 보니까 회사의 평판 생산물과 서비스의 품질 직원에 대한 대우 발전 가능성 등이 있더라고요. 이런 항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으니까 정말 최고 맞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 굉장히 긍지가 느껴지죠. 부럽게도 우리들교회에도 이 회사 다니시는 분들이 있죠. 그런데 이제 생각을 해보면 그 1등을 유지하려니까 얼마나 날마다 광풍일까. 그 안에서 훨씬 더 큰 불안을 경험하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진짜 낙담이 되어서 너무 스트레스가 쌓이니까 이제 그 목장도 교회도 이렇게 떠나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시겠죠. 그런데 이게 남들이 인정하는 좋은 직장이다. 보니까 진짜 말씀이 들리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각자의 광풍 속에서 이제는 안심하라의 말씀이 들려야 할 텐데요. 오늘은 성령의 안심에 대해서 들어보겠습니다.
성령의 안심은 첫째 미리 들은 말씀대로 되었기 때문에 안심할 수가 있습니다. 20절 21절이에요.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음에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니’ 아름다운 곡물이 배에 한가득 있어도 먹을 수가 없어요. 하늘로 솟구쳤다. 내려오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어떻게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배 멀미로 속에서 진짜 똥물까지 나올 지경인데요. 어떤 사람은 공포에 사로잡혀서, 어떤 사람은 배 미창에 차고 있는 물을 퍼내느라 겨를이 없어서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 다 지금 깊은 절망에서 먹지를 못하고 있어요. 이때 20절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떠나지 말라고 말렸는데도 떠났지만 바울도 같이 그곳에서 잠잠히 광풍을 겪어야 했습니다. 내가 보니 하고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떠나니 이들이 남풍이 와도 북풍이 와도 바울에게 얼마나 눈치를 주었을까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냥 같이 가는 것이 십자가 길이에요. 내 남편이 안 믿고 내 부인이 안 믿고 내 자식이 안 믿는데 한 가족이기 때문에 같이 배를 탔기 때문에 아무리 이야기를 안 들어도 도망갈 수가 없어요. 믿는 나는 바울처럼 그 자리에서 같이 풍랑을 겪으면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성도의 갈 길이에요. 내 식구에 대해서 그래서 애통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불신 결혼을 하는데 남 결혼에 재 뿌릴 일 있냐? 어떻게 하지 말라고 하겠어 이러지만 그래도 반드시 하지 말라고 얘기해야 합니다. 훗날 지금이라도 예수 믿어라 이 말을 하기 위해서 말을 안 들어도 해야 돼요. 지금 지나고 나서 보면 바울의 말이 옳았다는 것이 증거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교회에 늘 울려 퍼지는 간증이 바로 이 말이에요. 들어만 두면 아 그때 내가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일찍 가서 목장에 닻을 내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그때 자녀의 말에 기울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할 때가 온다는 거예요. 지금은 안 들어도 말이죠. 지금은 선장과 선조와 배의 그 기구들을 의지하기 때문에 안 들려요. 바울의 말이 안 들리죠. (들리는 때가 온다는 거죠)
청년부 출신 부목자가 있는데요. 거의 개척할 때 왔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난주 나눔에 뭐라고 나눔을 했냐 하면 말씀보다는 세상 전문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교회 말씀 공동체 목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닌데 세상 경험이 많아지다 보니 좀 현실성 없는 이상적이라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마음이 든다. 이런 나눔을 했더라고요 세상도 잘 모르면서 교회 내에서 어떻게 산다는 것이 좀 나이브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장인어른 장례식 등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많은 경험에서 하나님과 말씀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 나눔을 했어요. 좀 잘 나간다 싶으면 이러는 거예요. 그래도 지금 있잖아요. 19년 동안 교회를 떠나지 않았어요. 들은 말씀이 어디로 가겠어요. 그런데 오죽이나 안 들리면 아직도 부목자겠어요. 진짜 안 들리는 게 딱 이해가 되시죠? 아내가 참 안타까워하죠. 그래도 들은 말씀이 있으니까 안심하라 이건 거예요. 이런 나눔을 한다는 게 안심하라가 된다는 거예요.
배의 기구들을 다 버려도 아직 바울이 리더가 되지를 못해요. 그러나 이제 리더가 될 때가오니,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먹지 못하고 이제 절망과 허기에 사로잡히게 되니까 이제 드디어 밥 심이잖아요. 사람 힘이 쭉 빠집니다. 힘이 쭉 빠져요. 바로 그때 십자가, 지혜, 타이밍이죠. 바울이 일어서서 말합니다. 이때쯤에는 내 집에서 나를 세워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도 한계 상황에서 저절로 예수 믿는 내가 리더가 됩니다. 보십시오! 21절에 처음으로 ‘바울이’ 하고 주어가 됩니다. 여러분 이 ‘바울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다 망하고 나니까 내 옆에 바울이 있었다는 것이 가장 인생의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권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몰라요. 그러니까 바울이 이제 말을 하면서 ‘너희들이 내 말을 안 들어서 타격과 손상을 입었구나’하는 얘기는 짧게 1절만 해야 돼요. 그렇게 엄마 말 안 듣고 불신결혼 하더니 꼴좋다. 아니 바람피운 남편 돌아왔는데 내가 그 여자 조심하라고 그랬어 안 그랬어. 때마다 그렇게 사절 오절을 하면 징합니다. 징해! 1절만 하세요. 그래서 바울도 21절 한 절만 했어요.
그리고 22절부터 26절까지는 이제 안심하라 이걸 많이 합니다. 떠나지 말라고 그렇게 여러 번 간절히 권했지만은 이제 광풍을 당했잖아요. 이때는 해야 할 일이 위로하는 거예요. 22절 ‘내가 너희를 권하오니 이제는 안심하라’여기서 이제는 언제입니까 이미 9절 10절에서 들은 말씀이 기억날 때예요. 너 이 항해하면 타격을 입을 거야 그러니까 말씀 안 들으면 광풍이 온다고 했기 때문에 아 광풍이 와서 말씀대로 되었구나. 성경 말씀대로 됐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한 번 말씀대로 됐기 때문에 다시 권하는 말씀을 들을 것이기 때문에 안심이라는 거예요. 억지로라도 들어두면 이 광풍이 그냥 객관적으로 나쁜 상황이지요. 그러나 택자에게는 구원으로 갈 가장 좋은 상황이 된 것이에요. 이 광풍 때문에 그 말씀이 천둥처럼 들리게 되었기 때문에 내가 말씀 안 들어서 주식으로 손해 봤지만은 여기 붙어 있으면 안심할 일이라는 것이에요. 이해되십니까? 되셔야 합니다.
안심하라는 단어는요 마치 ‘휴 이제 살았다’와 같이 안도의 순 기쁨 예 숨을 내신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절망해서 소망을 가져라. 이제부터는 광풍당한 그들을 구원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기에 하나님 말씀 안 듣고 주식하고 비트코인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재혼하고 바람피우고 나가서 타격과 손상이 있다 해도 지금부터 또 다시 구원의 대상인 거예요. 안 들어도 권해야 되고, 힘들어도 보내야 할 사람은 믿는 나입니다. 18절부터 다시 보니까 풍랑으로 심히 애쓰는, 우리가 심히 애썼다 그랬잖아요. 그래서 지금이 우리가 270명이 우리인가 바울과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우리인지 좀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데 죄수들이 뭐 그렇게 심히 애썼겠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거는 바울과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맞지 않을까요. 그것 알아주는 자 없어도 막상 광풍이 오니까 심히 애쓰고 힘들어하는 사람은 또 믿는 사람이잖아요. 부모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누구보다 핏방울이 땀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성도의 가는 길이 이런 거예요. 그냥 네가 내가 말한 대로 해서 안 돼서 곧 셈통이야. 나 너하고 절교할 거야 이딴 소리 하시면 안 돼요. 안 들어도 들어도 우리는 내 식구고 내 백성인 거예요. 배가 광풍에 처했는데 출세한 사람 백부장이 나를 도울 수 있습니까 돈 많은 사람 선주가 나를 돕습니까 경험 많은 선장이 나를 도와주겠습니까? 경험과 돈과 권세는 도움이 안돼요. 요새 정치를 보세요. 이게 하나도 나를 도와줄 수 없어요.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바울은 희망을 말합니다. 표류하는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적은 광풍도 모래톱도 아니었어요. 그들의 가장 큰 적은 절망인 거예요. 바울이 겁에 질린 사람들에게 안심하라 말한 것은 너무나 적절한 위로이자 격려였습니다.
[적용질문]
이 절망의 사건 가운데 미리 들은 말씀을 기억하고 안심할 수 있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목장에서 집에서 듣기 싫지만 반복적으로 권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온 가정이 흔들리는 위기의 항해 속에서 바울처럼 주어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국내 비트코인 전문가인 부목자님이 지난주 일에 부목자 모임이었거든요. 우리끼리만 알자며 비트코인을 멀리하라는 담임 목사님 말씀에 동의가 된다고 이렇게 나눔을 하시더라고요. 또 컴퓨터 분야 교수인 또 한 부목자는 젊은이들이 영끌해서 주식 열풍일 때 담임 목사님이 주식하지 말라고 했는데 일억원어치 샀다가 지금 사천만 원을 손해 보고 있다고. 우리끼리만 알자면서 그러니까 들은 말씀대로 불순종을 했죠. 그래서 손해를 보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손해를 봤어도 부목자 모임에서 이런 걸 나눔 할 수 있다는 게 안심하라의 근거가 된다는 거죠. 이런 말씀을 듣지도 않고 이러면 이게 풍랑에 휩쓸려 가는 거죠. 그런데 이런 일이 진짜 있네요. Think 양육 교사 주식회사 40억 잃은 집사님이 훈련생으로 오셨어요. 그런데 아내가 남편을 지금 우리들 교회로 인도하고 이혼 안 하고 구속사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이거 듣는 것으로 모두 면제.. 그걸 기뻐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십억의 배가 지금 파손된 거죠. 미리 들은 말씀으로 광풍이 오니까 도리어 ‘야 이 정도 이거 40억 이 정도 잃어서 여기 와가지고 말씀 듣고 훈련 받으면 휴 살았다. 안심이다.’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이런 아내 남편 또 식구들이 돼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에요. 이해되십니까? 목사님이나 되쇼! 이렇게 생각을 하죠. 사십억이 누구 이름이오?
성령의 안심 두 번째는 과거에 들은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들은 말씀 때문에 안심하고 현재는 가이사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고 사명 때문이에요. 그래서 22절에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모든 것이 없어지면 안심하기가 쉽습니다. 죄 지을 확률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죠. 생명의 손상이 없기 위해서 지금 베는 손상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내 하드웨어가 다 부서져야 돼요. 안심하라의 근거는 배가 파손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있어야 할 일인 거예요. 그런데 망망대해 풍랑 가운데 배가 손상을 입는데 어떻게 아무 생명에도 손상이 없겠어요. 배가 상하면 생명도 상할 것이 너무 분명하지 않겠어요.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안 가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23절 24절에서 말합니다. 23절 앞에 원어에는 ‘왜냐하면’이 있거든요. 23절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내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니까 왜 배는 상하는데 아무도 죽지 않느냐 이제 그런 질문에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이미 바울에게 말씀 하셨다는 거예요. 두려워하지 말라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느냐? 로마에 도착해서 가이사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의 생명이 손상되지 않겠죠. 그런데 뿐만 아니라 이 배에 탄 모든 항해자들을 다 바울에게 주셨다고 해요. 여기서 ‘주셨다’는 말 안에는 은혜가 들어 있습니다. 은혜로 주셨다. 호의로 베풀어 주셨다는 뜻이 있어요. 그러니까 무슨 말인가요? 바울 한 사람 때문에 바울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나머지 그 배에 탄 사람들 모두를 은혜로 바울과 함께 살려주신다는 말씀이에요. 그냥 하나님이 항해자들을 살려주신다고 해도 되는데 바울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울을 통해 바울이 가이사 앞에 서야 하는 것이 사명이기 때문에 이런 사명이 있는 한 내 식구뿐만 아니라 배에 탄 죄수들의 영혼 구원의 일이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거예요. 바울을 통해서 영혼 구원의 일이 이루어지게 하셔야 되기 때문에 바울에게 항해자들을 내게 주었다.
바울하고 가이사하고 뭔 상관이 있어요. 알지도 못하는 전 세계 최고의 질서의 우두머리 그 사람을 지금 전도하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항상 내가 질서에 순종하고 그 사람을 전도하려고 애쓰고 그 나의 어떤 인격이 아니라 항상 사명이 있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 전도하려고 할 때 내 식구들은 나에게 다 주실 줄 믿습니다. 내 식구들은 내가 지금 알죠. 바울하고 가이사하고 뭔 상관이에요. 그런데 계속 사명의 지경이 지금 넓어지는 거잖아요. 인생은 사명 때문에 왔다가 사명 때문에 갑니다.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애쓸 때 하나님께서는 내 가족도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죠. 바울에게 사명이 있기 때문에 너와 함께 행선하는 사람도 죽지 않는다는 거죠. 여러분에게 사명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과 한 배 탄 사람은 죽을 수가 없어요. 구원의 근거가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안심할 수가 있는 거예요. 집안에서 사명이 있는 한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 때문에 전부 다 죽을 수가 없는 거예요. 구원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카드 빚이 있고 남편은 부정맥이고 살 수가 없다고 하는 분이 있지만 그 기가 막힌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지금 증거 하는 것이 사명이에요. 현재가 선물이잖아요.
지금 현재는 사명 감당해야 돼! 과거에는 들은 말씀으로 안심하고 지금 사명을 감당해야 되기 때문에 현재 그래서 안심하는 거예요. 내가 자꾸 무슨 일이 올 때마다 도박으로 피하고 뭘로 피하고 피하는 거는 하나님을 피하는 거예요.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지금이 가장 중요하고 현재가 선물이고 현재 메멘토모리가 되려면은 카르페디엠 그러니까 이제 현재를 잘 살아라 이거잖아요. 그 현재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거부하는 것이 자꾸 현실 도피하는 거예요. 예루살렘에서 증거해야 로마에 가서도 증거 할 수 있게 해주신다고 하는 거죠.
1대지가 과거라면 2대지는 현재 지금 증거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남편이 배신을 했어요. 내가 불신 결혼했기 때문에 이것이 내 삶의 결론이다. 내가 회개할 것밖에 없다. 이것이 증거 하는 거예요. 자식이 집 나갔어요? 내가 아이를 말씀으로 키우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이제 돌이켰다. 그런데 내게 평강이 있다. 이것이 예수를 증거 하는 것이에요. 내가 뭐 한 다음에 주를 증거 하겠다. 그거 아니에요. 어떤 사람도 사명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사명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바울은 하나님을 이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설명합니까?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설명을 해요. 소속사가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연예인들 굉장히 소속사 좋아하대 그래가지고 그 유명한 예를 들어서 bts가 속한 소속사라 그러면 우리가 그냥 뻑이 가잖아요. 그러니까 이 소속사가 훌륭하면 그냥 거기 들어가만 봐도 우리가 막 이렇게 막 어머 이제 걱정 없다. 거기에 들어갔으니까 소속사가 하나님이요 그러면 하나님은 바울을 어떻게 여기시나요.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너는 내 것이라고 하세요. 바울은 하나님의 소유예요. 그 누구도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떼어낼 존재가 없어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것이 우리 입장에서는 섬김이고 예배인 거예요. 하나님 관점에서는 구원이고 구속입니다. 우리는 이 최고의 소속이 주는 힘을 이렇게 경험하게 되는 거예요.
세상의 인류 학교나 인류 기업에 소속이 되면 많은 부분에서 안심을 잠깐 좀 얻을 수 있겠죠. 그러나 인류가 될수록 더 불안하고 걱정하고 절망할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에요. 큰 노력으로 쟁취해야 되고 쟁취한 것을 더 큰 노력으로 지켜야 하니까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제가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제가 우리들 교회 목사라는 거는 이거는 그야말로 욕인 거예요. 성령 받지 않고 목사를 하라고 그러면. 매사에 제가 걱정을 해야 하는 거죠. 도마 위에 올라가 있으니까 뭐 한마디만 해도 그냥 제치기만 해도 폐병 걸렸다. 이렇게 나오니까 진짜 그래서 성령의 안심을 여러분들이 경험을 하셔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 속한 우리의 소속은 우리가 쟁취하는 게 아니에요. 모든 믿는 자에게 거져 주시는 은혜예요. 은혜로 받으시니까 내 자격이나 공로로 받은 게 아니고 그러니까 잃어버릴까 두려울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뭐 값싼 소속이에요. 어떤 인류보다도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소유인 것이죠. 그러니 이런 대단한 자존감이 생겼으니까 저절로 이 소속사에 들어오라고 사명이 생기지 않겠어요. bts가 어디에 속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들어와서 일류가 되니까 너도 여기 들어와라. 자존감이 생기면 사명도 저절로 생겨요. 자존감이 없으니까 사명이 없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 백성인데 내 힘으로 생긴 거에요? 은혜로 주어진 거죠. 똑같은 사건에서 이제는 안심하라 말할 수 있는 바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족들에게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 식구들에게 이제는 안심하라. 나는 돈 없고 병들고 힘들어도 이제는 안심하라 말해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내가 파손됐을지라도 이제는 안심하라 말씀이 여러분에게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또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래요.
276명 중에서 백부장 선장 선주가 리더입니까? 예수 믿는 바울이 리더예요. 그런데 선장 선주 우리 빌립보 감옥에서도 봤지만은 군인들이 다 도망가니까 그 간수는 자결하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리더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276명 이거를 데리고 지금 가야 되는데 거기서 나는 돈 없고 병들어 힘들어 이제 어쩔 수가 없어. 리더의 최고의 덕목이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안 되는 거죠. 힘든데 나처럼 죽어라 이렇게 하게 되는 거는 정말 이거는 최악이라고 여겨집니다. 아무리 파손됐을지라도 이제는 안심하라 그런 비전을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안심하라 바울이 지금 돈 있습니까? 명예 있습니까? 초라한 늙은이잖아요. 죄수잖아요. 이제는 안심하라 예수 믿는 사람은 어디서나 그 리더의 역할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주어가 돼서 모든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해야지 나는 책임지고 죽는다 그러시면 이제 안 되는 거에요.
갑자기 소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살아오면서 로마행의 비전을 주셨어요. 한 사람이 무엇을 소망으로 삼는가에 다 같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합니다. 276명 중에서 이 바울 한 사람이 여길 다 살린 거예요. 그러니까 저도 이렇게 제가 적용을 하면 저 목사 한 사람의 소망이 야망이 되지 않으면 제가 사명이 있는 한 행선하는 자를 다 내게 주셨다는 것처럼 우리들 교회에 승선한 여러분들이 다 천국행 배를 타고 함께 갈 걸 믿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를 해주셔야 되겠죠. 정말 끝까지! 그러니까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여러분들은 그냥 타고 갈 것 같아요. 제가 문제인 것 같아요. 제가 수많은 남의 자녀들을 우리들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정말 물질을 써가며 눈물을 흘려가며 섬겨요. 또 남의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목자님들이 밤중에 찾아가고 병원 가고 교도소 가고 직장도 찾아가고 그것도 그냥 냉대를 받으면서 또 내 자식을 어찌 할 수 없기에 주요 내 자녀를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고백하며 이 청소년부 선생님들은 남의 자식들을 열심히 신방하며 먹을 거 먹이고 섬기십니다. 함께 배에 탄 이 자녀를 주님 책임져 달라는 고백으로 우리들 교회 청년부 이 엘더님들은 이 정말 청년들을 심방하고 자신들의 재물을 써가면서 그렇게 성깁니다.
부목자님이 이제 아들의 주일학교 선생님의 섬김에 대한 감동을 나눠주셨는데요. 하여튼 아들이 친구와 pc방에서 누군가 떨어뜨린 카드를 주었는데 친구가 그 카드로 편의점에 들어가 물건을 샀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물건이 전자담배인 것을 나중에 알았대요. 요새 중이가병 아시죠? 아들은 밖에 그냥 서 있었다가 집에 왔는데 죄책감이 심하게 들었는지 친구와 이제 파출소에 가서 자수한다고 했다는 거예요. 저는 아들에게 그냥 가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하고 갑자기 늦은 밤에 아들의 교회 선생님이 생각나 전화를 드렸더니 그 선생님이 그냥 들으시더니 결제를 이미 했냐고 부당거래로 바로 절도죄가 될 수 있다고 그리고 아들이 직접 결제를 하지 않았어도 같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공범이 될 수 있고 그렇게 소년 분리원에 간 사례가 있는데 그게 민산이다라고 하시면서 직접 바로 오시겠다고 하셨어요. 우리 부목사님 아들이에요. 그래가지고 이 선생님 늦은 밤에 오셔서 같이 파출소에 동행하시고 같이 가주는 것만 해도 너무 위로가 되는데 카드 결제 취소하고 물건은 반품하고 카드사에 연락해서 카드 주인 연락처를 알아내어 연락까지 하게 되었고 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카드 주인이 괜찮다고 넘어가면 다행이지만 또 절도죄가 될 수 있다면서 함께 기도하자고. 밤 12시가 다 되는 시간까지 선생님이 사모님하고 같이 오셔가지고 그렇게.. 그냥 또 그래가지고 그 산 물건이 전자담배잖아요. 그런데 그런 자잘한 내용은 그 아들과 아내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그래야 교회 선생님과 아들의 신뢰가 깨지지 않으니까 우리끼리만 알자고요 여러분 말하지 마세요. 세심한 배려와 사랑에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고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그 다른 친구도 같이 교회에 같이 가자고 영혼 구원의 기회로 삼자고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이렇게 이제 놀랍게 그냥 전자동으로 다 오셔가지고 그냥 이렇게 해주시니까. 아내는 지금 열흘째 자기는 차갑게 대하며 말도 안 하고 있는데 교회 선생님 부르고 선생님이 그냥 지혜자의 모습으로 잘 처리해준 이야기를 듣고는 많이 마음이 풀렸으니까 이 선생님 때문에 부부관계까지 지금 회복이 되고 아들도 너무 놀라고. 여러분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그렇게 모두 구체적으로 이렇게 도와준 내용이 너무 길어서 제가 이제 일부 때는 길어서 지금 확 줄였습니다. 놀라세요. 놀라셨죠. 아니 놀라셨죠? 놀라시죠 하면서 제가 강요하는 것 같아가지고요.
적용해 보세요.
바로 지금 내 삶에서 증거해야 할 나의 사명은 어떤 것입니까?내가 서야 할 가이사 앞은 어디인가요?
이타적으로 나아갈 때 나와 함께 탄 내 식구들도 구원해 주실 것을 믿나요?항상 성령의 안심은 현재 증거 해야 되는 거예요. 내 삶을 증거 해야 되는 거예요. 어떤 것도 오늘 장로님 내외가 저런 기가 막힌 얘기를 간증하는데 우리는 나는 지금 못해 나중에 다 은퇴하고 나서 아니면 잘 살고 잘 살게 된 다음에 뭐 이런 얘기 이제 핑계치 마시고요.
성령의 안심 세 번째는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실 하나님을 믿기에 안심할 수 있는 거예요. 과거, 현재에서 이제 미래로 말씀하신 것 안 들었다가 광풍 왔으니까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실 하나님, 이것을 믿기 때문에 안심하는 거예요. 그래서 과거 현재의 미래를 다 안심할 수 있습니다. 25절 26절 ‘그러므로 여러분이 안심하라 내가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바울이 안심하라는 말을 두 번이나 하는데요. 22절에서는 ‘이제는 안심하라’ 25절에서는 ‘그러므로 안심하라’ 앞에서는 들은 말씀이 있으니까 안심하라고, 여기는 약속의 말씀이 있으니까 안심하라고, 과거에도 너는 택자였기 때문에 안 들었어도 너는 택자였기 때문에 안심했어야 되고 지금 안심을 앞으로도 안심을 할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9절에서 권할 때 안 들어서 광풍 왔으니까 이제 들어야 한다는 걸 알았잖아요. 반면교사가 됐잖아요. 그래서 듣던지 안 듣던지 우리는 주식을 해도 비트코인을 해도 교회를 와야 되는 거예요. 예배를 드려야 되는 거예요. 바람을 펴도 우리는 목장에 와야 되고 비트코인을 해도 목장에 와야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세상에 그동안 바람 피는데도 목장에 오시느라고 너무 수고하셨네.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격려를 하셔야 되는 거예요. 아셨어요? 그러니까 옳고 그름으로 자꾸 정죄하고 이러시면 이제 안 되는 거예요.
이렇게 풍랑에 휩쓸려 망망대해에서 방황하다가 침몰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한 섬에 걸릴 것이라고 약속의 말씀을 전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안심하라고, 바로 그 한 섬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예수님도 광풍에서 걸어오셨어요. 그렇게 광풍에서 배 멀미가 심할 텐데 예수님은 주무셨어요. 예수님과 이렇게 한 방향으로 같이 가다 보면 어느 날 보니까 목적지에 도달해 있는 거예요. 목장에서 같이 가다 보니까 어느 날 목적지에 도달하고 있는 거예요. 바울만 지금 심히 애쓰고 기도하고 276명은 다 벌벌벌벌 떨잖아요. 그렇죠? 누구와 함께 가는가가 너무 중요하고 예수님 주무셨다고요 바울에게 눈에 보여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안심의 근거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죠. 눈앞에 사람을 의지했다면 사람이 없어지면 사라질 안심이죠. 누구 옆에 있는가가 너무 중요해요 로마 선교를 위해서 지금 276명이 조난당할 위기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꽂힌다면 한 섬에 걸리리라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할 것을 믿습니다. 한 섬 예수 그리스도 많은 환란이 한 섬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합니다. 나의 유라굴로 광풍이 한 섬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합니다.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확신과 평한 가운데 거한 바울의 모습은 폭풍에 상황에 매몰되어 낙담한 사람들에게 매우 충격적으로 비춰졌을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때 전도를 해야 되는 거예요. 기가 막힌 상황에서 같이 예수 믿고 천국 가자고 얘기를 해야지 그렇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런 얘기 좀 하지 마시고요 바울은 그 배에 타고 있는 모두가 무사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폭풍은 수그러들지 않고 상황은 전혀 변한 게 없음에도 바울이 이렇게 안심하라고 외칠 수 있었던 그 근거가 말씀 때문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도 교회가 큐티를 하고 목장에서 나누니까 다 안심하잖아요. 무슨 사건이 일어나도 다 안심하잖아요. 광풍 속에서도 말씀을 붙들고 있는 한 사람이 있으면 그 가정은 소망이 있는 거예요. 그 공동체는 살아나는 거예요. 바울이 가장 인생이 어두울 때 언약의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지금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소개하는 거죠. 자신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당신에게도 될 거다 이렇게 하나님을 전합니다. 2천 년 전에 나를 위해 죽어주신 말 구육간에 태어나신 구운 것도 없고 풍채도 없고 아름다울 것도 없는 그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어주셨기 때문에 이 한 섬에 우리가 걸리기를 원하는 거죠.
주일학교 선생님이 그 사람이 잘생기고 스펙이 있고 그게 우리 무슨 상관이에요. 그냥 아들 위해서 달려와 주시고 같이 파출소까지 같이 가주셨다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구세주가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나를 도와줄 사람이 풍채도 있고 스펙도 있고 상관이 없어요. 나를 위해 죽어주시는 예수님은 풍채가 없어요. 내가 앞으로의 앞날을 알기 원한다면 예언기도, 환상기도 따라 다니지 말고 바울 사도처럼 살아야 되는 거죠. 자기 부정과 십자가를 잘 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앞날을 알 수가 있어요. 우리는 성경을 끼고 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환상, 예언기도 안 받으러 가도 여러분들이 너무 앞날을 잘 알고 있어요. 언제나 길이 보여요 우리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자기를 부인하면 십자가가 지혜이고 타이밍이라고 그랬잖아요. 타이밍을 알게 해주시는 거예요. 언제가 구원받을 때인지 지금이 갈 때인지 나갈 때인지 말을 할 지 안 할 때인지 이런 예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 자기를 부인해야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거예요. 내 십자가를 져야 주님을 의지하면서 행할 때에 앞날이 보이고 이것이 안심의 근거가 되는 줄을 믿습니다.
적용해 보세요.이 광풍의 사건에서 내게 주신 약속의 말씀, 기억해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것이 나에게 진짜 안심의 근거가 돼야 되는데 무엇보다도 나와 내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 한 섬에 걸리기만을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에 말씀이 있음을 안심하라의 근거가 되는 줄 믿습니다. 들은 말씀 때문에 망해도 이제 한 달 전에 교회를 떠났다가 돌아오셨는데 오늘 말씀 들은 말씀이 있어서 오셨잖아요. 오늘 완전히 자기한테 하는 얘기라고 들은 말씀이 얼마나 안심의 근거가 되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무조건 데려다가 말씀을 들려놔야 돼요 공동체에 오게 해야 돼요 정말 이분은 광풍 가운데 이분도 들은 말씀이 있어서 직장생활 십오년 하면서 세상에 죄를 짓고 다녔는데 그냥 늘 관행으로 접대를 하거나 골프를 치는데 직원들하고 룸사랑도 갔던 것을 이렇게 죄의식 없이 그런 거를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회사의 누군가가 비리로 내부 고발을 했답니다. 그리고 또 두 번째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또 누가 찔렀다는 거예요. 세 번째는 회사에서 오래 만나는 여자가 또 걸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광풍이 지금 쓰나미로 왔는데 회사 뭐 저 결혼 다 난리가 났는데 그래도 이분이 부목자로 억지로 말씀을 들어주셨네요. 그러니까 그냥 여자 목장 부분 목장에서 다 들고 일어나가지고 지금 다 이혼을 말리고 처방으로 담임 목사님 말씀을 요약을 지금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광풍이 오니까 안 들리던 말씀이 이제 큐티가 되고 사도행전 말씀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말씀이 지금 재밌다고 하는 거예요. 지난주도 참 재미있더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세요. 그러니까 광풍이 오니까 들은 말씀으로 안심이 지금 되는 이런 그래서 우리는 누구도 정지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그때부터 다시 구원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맨날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참고 인내하는 거죠. 인내하는 게 뭐 일을 악물면서 인내하는 게 아니고 품어야 되는 거지 그 뜻이에요. 품어서 내가 영적 자녀로 낳아야 되는 거예요. 그럴려고 인내를 하는 거지 일을 가면서 이빨 빠지게 그렇게 내가 참아서 복수하리라 제가 맨 처음에 시집살이 하면서 내가 참아서 훌륭한 며느리라는 얘기를 반드시 듣고야 말겠어요. 이거 이런 거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문제가 생겨서 지금 별거하고 있는 지난주에 간증하신 세종 서울 부목자 부부 있잖아요. 그런데 간증 끝나고 나서 이제 또 부목자 모임 갔더니 초원의 처방이 돼서 아내의 그 아랫집을 방문한 거예요. 그래서 그 물이 샜잖아요. 그래서 피해 보상을 좀 해드리겠다고 가서 말씀을 드렸는데 이미 다 저기 뭐야 수리를 저기 했다고 그런데 이 남편이 있잖아요. 그 집에 보고 자기는 피해 보상해주러 갔는데 다 했다. 그러면 될 건데 감정이 안 좋아진 아내를 위해 조심스럽게 그 아저씨께서 우리 아내에게 사과를 좀 해주실 수 없을까 이걸 부탁드렸다는 거예요. 여러분 물이 샜는데 문을 열어줘야지 안 여니까 발길질로 문을 두들겼는데 이거 누가 더 잘못한 거예요. 그런데 그냥 거기 마침 아저씨가 안 계셔가지고 이 아내 되시는 분이 우리 아저씨 성격이 그거는 좀 어려울 듯하다 하시면서 본인이 아내를 만나드리겠다고 자기가 사과를 대신 하겠다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 훌륭하신 아내분이 계시대요 그분도 예수 믿지 않나 싶어요. 예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 이렇게 진짜 이게 성령의 안심 아니겠어요. 아내가 싫어한다고 가서 우리 아내에게 사과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 남편 날이 갈수록 너무 훌륭하세요. 주님께서는 저의 찌질함을 아시고 조치를 해주셨다고 할렐루야래요. 할렐루야 이렇게 적용 좀 하고 사시라구요. 오늘 내가 힘들어 그러면 밑에 층에 내려가서 우리 아내한테 사과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적용 좀 하세요.
지난주 말씀의 찬양이 큰 물결이 일어나 나시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지난주 설교를 이제 한 구절로 요약해주는 찬양이었는데 이 찬양은 톱 레이디 목사님이 쓰셨어요. 이분은 38년 짧은 인생을 살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늘 가난했고 폐병 걸리고 그러니까 그 찬양을 쓴 때가 32세 땐데 이게 폐결액 중에 진짜 광풍 중에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그리고 38세에 돌아가셨는데 오래 살고 적게 살구가 아니라 정말 전 세계인이 정말 부르는 찬송실을 쓰고 갔으니까 이 어마어마한 주의 일을 사명을 감당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톱 레이드 목사님이 또 다른 찬송을 한 곡 썼는데 바로 죽기 2년 전에 갑자기 심한 벌판에서 심한 폭우를 만났는데 정말 따스한 날에 부는 미친 바람 유라굴로 같은 폭풍으로 만난 거예요. 너무 두려워하면서 피할 곳을 찾다가 커다란 이 바위를 발견하고 그 바위 틈새에 몸을 숨긴 후에 이 맹렬한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는데 그 바위 틈에 숨는 순간 굉장히 그 안도감을 느끼면서 그때 바위 바위 틈에 이렇게 자기를 숨겨주시는 자신을 위해 죽으신 그 만세 반석 예수님을 떠올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의 품에 안기면 다가올 심판도 하나도 두렵지 않다는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됐고 그래서 금새 찬송가를 적어가지고 바로 쓴 것이 494장 만세반석에 열리니 그러니까 이 풍랑 일어나요. 고요한 바다에 만세 반석 열리 이 두 개만 쓰고 갔어도 인류의 어마어마한 지대한 오래 살고 짧게 살고 이게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이 갈라진 바위 틈새처럼 창에 찔려 갈라진 예수 그리스도의 이 옆구리의 그 보혈 아래로 피하면 어떤 죄인이라도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으로 피할 때 참 안식이 있다는 이런 내용인 거죠. 폭풍어가 불어 닥쳐도 바위 틈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밖에는 유라굴로 광풍이 그러니까 이렇게 정말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맞바람 피해서 왔더니 안에서 유라굴로 광풍이 내적으로는 핍박이고 내적으로는 유혹이고 우리는 항상 이렇게 사단의 시험 가운데 그냥 삼킬 자를 두루 찾는 것처럼 이렇게 집어삼킬지라도 만세 반석 되신 예수 안에 내가 거할 때 우리는 살았다. 안심이야 외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나 같은 죄인을 받아주시는 은혜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성령의 안심입니다. 광풍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만나니 이 광풍이 성령의 강풍이 되고 그 예수의 말씀이 들리니 이제는 안심하라 성령의 안심이 내 삶에 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주일설교 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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