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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도행전 28장 7절~10절 - 성령의 고침
    주일설교 요약 2023. 1. 1. 04:19

    2022 12 4 

    성령의 고침

    사도행전 28 7~10

    김양재 담임목사

     

    사도행전 28 마지막 장에    절이 너무 이제 의미 심장하다고 생각이 돼요. 지난주에 성령의 공의로 돌이켜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미 이루어진 구원이지만 아직 이루어가야  구원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제  모습을 보면 새로운 존재가   맞나 싶을 때가 많아요. 되었다 함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냥 고침이 아닌  성령의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고침 받음은 복음전파 때문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고침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첫째로 가장 높은 사람을 고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7절이에요. ‘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이전에 멜리데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보블리오가 바울이 맹독성의 독사가 물었는데 조금 상하지 않은 소문을 들었어요. 그래서 보블리오는 아픈 아버지를 고칠 목적을 가지고 바울 일행인 우리를 영접합니다. 멜리데인이 영접했던 2절의 영접은 프로스안바노인데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거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여기 7절에  보블리오의 영접은 아나데코마이로 높은 사람을  모시는 영접으로 원어는 그렇게 다르더라고요. 가장 높은 사람이 블리온인데 사람이  높은 사람을 모시듯이 바울을 영접했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276 다가 아니고 2절에는 모두라고 그랬는데 모두라는 판타스라는 단어가 빠져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 바울과 누가와 아리스타고와 선장 선주 율리오 정도 이렇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하루도 아니고 이제 사흘이나 보블리오는 이렇게 바울 일행을 아주 그냥 극진히 좋은 음식 편안한 잠자리를 주면서 심신이 회복하도록 도왔어요. 그는 이제 대토지를 소유했을 정도로 대단한 부자고 권세도 있고 그렇지만은  가지고   없는 일이  생겼어요. 그러니까 부자들은 이렇게 몸을 치면은 다른   들어오는 거죠. 고침 받고자 우리는  자녀가 병만난다 그러면은 진짜 영혼이라도  정도로 그렇게 우리는 가족 앞에 장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침 받고자 바울을 높은 사람 모시듯이 영접을 했네요.

    보빌리오라는 이름의 뜻은 평민 대중적이라는 보빌리오 이것이 퍼블리오스 영어로 퍼블릭이라 뜻과 이제 비슷한  같아요. 그러니까 일반인, 대중적 블리오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살인자라고 외칠  대중적 인기를 위해서 가장 앞에 나서서 바울을 손가락질했던  번째 사람인 거예요. 가장 높은 사람이란 뜻이 바로   번째 사람이란 뜻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렇게 살인자라고 비난하던  보블리오의 말투와 행동을 생각할   상처를  블리오를 용서하기가 쉽지 않죠.  사람이 대장이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옳고 그름의 가치관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거예요.  세상에 법칙은. 그러나 항상 이제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이제 상대방이 욕을 하든지 나를 너무 떠받들어주든지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생각이 들죠.  사람도예수가 없으니까 저러지 게다가 추장이고 부잔데   그렇겠어. 그런데  멜리데인을 전도하려면  상처의 원흉인  사람을 껴안는 것이 가장 복음 전파의 지름길이에요. 이게 하나님의 세팅된 환경이에요. 결국 바울이 독사에게 물려도 상함이 없으니까 결국 가장 높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세상은  특별한 동정으로 섬기다가 금세 살인자가 됐다가 금세  신이시 하는  변덕이  듯하는  세상의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 높은 사람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가장 높은 사람을 고치고 그가 변하여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만큼  세상은 서열이 중요하고 겉모습이 중요해요 그런 사람이 변하기가 쉽지는 않지만은 변하면 중요한 일을  수가 있게 되죠. 우리는 진짜  손흥민 선수 같은 사람이 예수 믿으라고 한마디 하면얼마나 좋을까 이런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지요. 어떤 성도님이 담임 목사님이 집사 시절에 강의할 때도 이렇게 녹취를 하고 은혜를 받을  있었을까?  몸빼바지 입은  목사님 어머니가 화장실하던  당시에도  어머니를 존경할  있었을까 하는 플을 제가 읽었어요.  시절이나 지금이나  에스겔의 간증이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이고  메시지도  틀은 같아요. 그래도 직분과 지위가  복음을 복음을 게도 하고  게도 하는  이제 경험하면서 왔어요. 그런 이것을 인정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장 높은 보블리오를 내가 만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자발적으로 그가 만나자고 하니까 이게  기회입니까?  떡입니까 이렇게 생각할  있어야 돼요. 

    그런데 상처  지도자에 대해서 원수 갚을 생각만 한다면 서로 고침 받을 길이 없는데 요즘 아주 우리나라를 보면 그냥  그래요.  조각 붙들고 겨우 상륙했는데 나를 살인자라고 동네   떠들었어 추장이면 다야 부자면 다야 나를 살인자라고 했어 죽을 때까지 나는 용서 못해. 이러면 이거 믿는 사람이에요? 믿어도 죄는 죄야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상처를 그냥 외칩니다. 맞아요. 그런데 부자가 하늘 나라 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워서 전도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에요. 그런데 바로  높은 사람이  집으로 일단 초대를 해주면 여러분은  이때 내가 암살을 해야 되겠구나 복수를 해야 되겠구나. 나의 명예를 실추시킨 저들을 죽이리라 이게  세상 정치죠 그런데 믿는 우리는 저들이 예수를 몰라서 사랑도 용서도 모른다는  알아야 해요. 사람은 사랑을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잖아요. 정치만 그래요? 부부간에도  정치 원리가 그대로 적용이 돼요. 

     

    남편이  많은 무단 외박과  많은 돈을 술값으로 날렸으면 오픈할 내용이 있을 텐데  결백하다고 하니까 분노가 올라와서 남편의 뺨을 200대를 때렸대요 그런데 남편이 처음에 말을  하다가 때리면 때릴수록 이제 진실이 나온다는 거예요. 때리다가 본인 손이 멍이 들어가지고 손에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이제 나왔다는 거죠.  하냐 하면 받은 상처를 돌려줄 수만 있다면 때린   배로 맞아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그렇게 열흘 남짓 지나고 남편을  때려가지고 동네 주민 신고로 경찰이 왔는데 다들 아내가 맞은  알고 괜찮냐고 물어보고 돌아갔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정말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이 뭐냐. 사랑을 하면서 우리는 말씀의 원칙대로 하루하루 사는  이게 사랑의 비결이에요. 우리가 무슨 사랑을  할 수가 있겠어요. 그리고 이거는 교회 오기 전에 일인데 이제  목자를 하고 계신데 이게 속은 자보다 속인 자가  나쁘다고 했는데 과거의 일은  하나님이 도말하셨다고 하는데 맨날 과거 과거 그렇지만은 저는 아내가 이렇게 하는 데는 남편도 아주 징하게 하는  있는  같아요. 얼굴만 봐도 때리고 싶은가 봐요. 그냥  그러니까  부부간에  똑같아서 싸우는 거거든요. 

     

    바울은 너무 분한 상태에서도 자기가 가해자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존재 자체가 가해자라고 그랬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니까. 따라갈  없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가해자 살인자 의식을 가지고 그리고 이제 독사가 물고 있는   보여주니  적용이 소문이 났어요. 그러면 기회가 오는 거예요. 여러분들의 적용이 소문이 나야   믿습니다.  기회가 왔지요. 그가 바울에게 죄를 졌잖아요. 가장 높은 사람이 바울을 죽도록 놔두고 살인자라고 했잖아요. 그러니 나에게 피해를 끼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얼마나 쉬워요. 내가 가해자면 복음  전해요. 나는 가해자의 인식을 가져야지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복음 전하기가 너무 쉽죠. 바람을 피거나 잘못했을 경우 지금이 복음 전할 때다 하면서 기회를 놓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항상 옳고 그름 문제로 그냥 보면 죽이고 싶고 그래서  되니까 죽고 싶고 이걸로 결론이 나는 거예요. 부자들이 얼마나 계산을 하는데 그냥 불렀을 리는 없죠. 벨릭스 총독, 베스도 총독 아그바왕  믿음이 있어서 바울을 사랑해서 바울을 불렀나요?  부자들이 권세를 가지고도  초라한 노인인 바울을 보고 돈을 바라는 거로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블리오가 그냥 불렀겠습니까 우리 인생은  인생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런 원리를 날마다 성경을 통해서 들어야 되는 거예요. 이거 어렸을 때부터 들어야 돼요. 그럼 학창시절 회사 생활 이게  성경이 인간론이잖아요. 이것을 하나도  듣고 학교에서 공부만 해서 공부 잘해서   에스대 가면은 길고 짧은 거는 지나봐야 되는 거예요. 이런 설교를 날마다  시간씩 듣는 사람과  듣는사람 정말  설교 들으면 정말 너무 정말 너무 지혜롭고 똑똑하다고 똑똑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성경이 인간론이에요. 경영학 교과서에요. 상담학 교과서에요. 어떤 거를  갖다 붙여도 성경에 답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복음 전할 기회로 삼아야 해요. 열매 맺는 것은 주님이 하실 일입니다이제  높은 사람은 변화되면 크게 쓰임 받는다고 그랬는데 과연 보블리오는 후에 순교자가 되었다고 해요. 바울이 그걸  보고 죽었잖아요. 그러니까 나중까지 생각할  없어요. 오늘 오늘 전하면 돼요

     

    적용해 보세요. 
    부자면 다냐 학벌만 좋으면 다냐 하면서 역차별하는 것이 있나요?

    나를 부르는데도 용서 못해 하면서 가기 싫은 높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상한 질문도  있어요. 높은 사람을 알지를 못해가지고  권찰님이 직장 목장 권찰님인데 남편 목자는 체면을 너무 중요시 여겨서 싫은 소리를 못해서양육이  된대요 그래서 내년에는 주중 목장으로  가셔서  치열하게 나누고 양육을  받으시는  좋아요. 아주 우리 멋있어요. 그래서 남편 목자를 약간 디스 했죠. 

     

     번째는 이렇게 아픔 속으로 들어가 기도하고 안수할  고침을 십니다.아픔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8절입니다. ‘보블리오의 부친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하매 지난번에 성령의 공의는 결국 고침으로 연결돼야  공의가 무서운  아니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느껴지게 되는 거죠. 보블리오가 당연히 그냥 부르지 않았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아니 아무리 아픈 것도 문제가 되면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기 때문에 이제 바울을 불렀지만  사람이 교양이 9단이 돼서 사회적 체면이 있기 때문에 먼저 바울 일행을 융숭하게 대접하고 그 다음에 부친의 병을 사흘 후에 오픈했어요. 바울은 혹시 알았어도  블리오가 오픈할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을 앞장서서 살인자라고 했으니까 사흘 동안이나 아픈 아버지를 놔두고 환대하고 먹이고 쉬게  거예요. 여러분 괜히 높은 사람이 되는  아니더라고 그죠. 오자마자 빨리  고쳐요 이래야 되는데 이런 것도  여러분 높은 사람 되려면 이런   외우세요.  보블리오 부친은  열병은 지금 보면 말라리아 하고  이제  소화기 계통의 질병이잖아요. 우리가 3년째 코로나에 시달리고 있지만은 지금도 이렇게 무서운데  당시에는  속수무책이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격리되고  심하면   년도 가고 아니면은  그냥 며칠 만에  죽었다는 거죠. 굉장히 무서운 이제 이렇게 풍토병에 걸렸는데 블리오는 아마 자신의 집에 이런 아픔이 없었다면  바울이 뱀에 물려 독사에 물려서 살아났다는 얘기를 듣고도 그냥  지나쳤을 거예요.  부자들은 어떤 간증을 들어도 표적을 봐도 나와 상관이 없지요. 부자들은 배가 불러요 그러니까 돈이 있고 돈이  해결해 주면 공동체  들어와도 배부르고 등이 따신데 아니  힘든 얘기를 내가 가서 들어 그러니까  공동체 얘기 아무리 해도 당연히 심드렁하고 간절함이 없죠. 그래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게 진리 중에 진리입니다. 그런데 불리오가  불렀는가 하면 간절한 아픔이 생겼잖아 그러니까 그렇지 않으면  불러요. 그러니까  고난이 축복이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바울은 이런 멜리대에서 복음을 전하려면은  보블리오를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이미  상처입은 치유자가 이미 돼야 되는 거예요. 내가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 보블리오가 불렀잖아요. 그러니까 강풍 후에  죽음에 이르는  상처인 사를 지금 경험하게 하셨어요. 지나고 보면 최고의 복음 전하는 비결이 되기 때문인데 당할 때는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내가 예수 믿고 가면 뭐든지 복음 전하는 비결이 되는 거예요. 감사만 하시면은. 그런데  독사의 상처가 보블리오를 만나게 하는 상처가 됐기 때문 그러면 독사 물렸을  가만히 있었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아프냐 그런데 육의 상처보다  아픈 것은 이렇게 마음의 상처인 거예요. 그러니까 독사에 물렸는데 사람들이 살인자라고 그랬잖아요. 그게 훨씬 아픈 거예요. 

     

     남편이 갑자기 갔는데 저보고 아주 그냥 눈도 깜짝 하지 않고 무슨 죄를 지셨노 저한테 이제그러는 거예요.   자동차 팔아달라니까 죽은 사람 차니까 반값인  알죠. 그러니까 이렇게 내가 아픈 것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말들 있잖아요. 그게 내가 당한 일보다  훨씬 힘들 때가 많아요.  아이를 잃었는데 아유 괜찮아 다시 나면 되잖아요.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진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몰라요 당해보지 않아가지고. 그러니까 이제 바울은 자기가 이미 이렇게 상처를 입어봤기 때문에 이제 영접에 기꺼이 응하죠. 누가는 바울이  보블리오의 부친에게 들어갔다라는 단어를 사용해요. 들어가서 기도하고 안수하여 안수는 그에게  손으로 얹어 그를 치유했다는 뜻인데요. 자신의 손을 환자의 몸에 얻는 행위는   아픔이 나의 아픔이라는 고백이에요. 그러니까 그때 격리를 했는데 가서 손을 얻는 거는 내가 전염돼도 괜찮다 이런 뜻이 있잖아요. 아주 그때 굉장히 무섭게 격리를 했죠. 나병이 걸려도 격리하고 성경에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이거는 이제 안수, 손을 얹었다는 거는 내가힘이 있어 너를 고치겠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  사람과 저는 똑같애요  사람과 나는 똑같이 주님의 치료가 임해야  아픔이 있어요.  사람의 아픔이 저의 아픔이에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고쳐주세요.  표현인 거예요.  목장에서  우리가 같이 기도하면서  집사님의 아픔이 저의 아픔이에요. 다들 기도하잖아요. 기도 제목 내놓고  눈물로  집사님의 아픔이 저의 아픔이에요. 안수하니까 병이 났습니다. 그래서 정말 이런 안수 기도가 이렇게 필요한데요.

    헬리나우웬은 상처 입은 치유자에서 고통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누가 그것을 없앨  있겠는가   집안에 갇힌 아이를 구하려면  속으로 들어가야되고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을 구하려면 사막 안으로 직접 들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을 가장 힘들게  블리어에게 바울은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는 거죠. 믿는 우리는 어떤 경우도 치유자가 돼야 되는 거예요. 상처를 크게 입혔을수록 그에게 들어가서 안수하고 손을 얹고 기도해야 돼요 기막힌남편과 아내가 자녀가 이렇게 살아내는 성도들이너무 많은데도 우리가 아무리 들어도 우리는  손가락 아픔이 제일 크기 때문에 너무 그냥 이렇게 와서 닿지를 않아. 목장에서 서로가 가해자인 것을 우리가 존재론적으로 가해자인 것을 인정하면 나눔이 너무풍성할 텐데요. 우리는 목장에서 우리를 가르쳐도 힘들고 위로해주지 않아도 힘이 들어요. 언제나  편만 들어주고 칭찬만 해줘야지 목장이 좋다. 그래요. 그런 이제 거기까지만 가면  되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  존재 자체가 가해자라는 얘기를 생각을 하고 서로 듣고  이제   경청해야 됩니다. 


     여자 목자님이 목사님 설교는 잘못 알아들었었는데 목장 때문에 우리들  왔다는 거예요.  얘기를   있어서.  목장은 한심한 나를 드러내는자리인데 끊임없이 깨질 수도 있고 지랄을   있는 곳이라는 믿음으로 그래도 처음부터 와서 자기는 그분들을 이제 믿었었던  같다고 하는데 사실은 이렇게 목장 말고는  데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목장에서 목자님이 작정하고 나에게 처방을 해주시니까 엄청 상처를 받았는데 그런데도 세월이 지나도여전히 똑같다는 거예요.   되는  때문에 괴로웠는데 그래도   떠났냐 하면 여기가 마지막인 곳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 생각해 주는  얼마나 감사해요. 그만큼 음란하고 악한 나를 직면하는  힘들어요. 우리의 상처는 드러내기도 아프고  드러내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냥 힘들어요. 그냥  저기 하나님 앞에서 나를 보지 않으면은  힘들어요. 들어내도 힘들고  드러내도 힘들고 그럴 바에 빨리 드러내고 수술하고 새로운 살이 도달하는   낫잖아요. 목장이 괴롭고도 마지막인  맞아요. 나를 보게 해주는 . 근데 자기를 보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어렵다잖아요. 자기 보는  너무 싫어한다잖아요. 왜냐하면 지옥 에서 올라온 자존적인 교만이 있기 때문에. 맞아요. 목장이 목장 말고  데가 없어   남자 부목자님이 자기는 예전 생각해 보면  모임을 갖게 되면  하는 얘기가 옛날 학창시절 뻔한 얘기밖에 없는데 그런데 믿음의 공동체라는  정말 설교만 있는  아니고 우리가 이렇게 듣고나눌  있는 목장이 있기 때문에  나눌려고 산책하면서도 다시 말씀을 듣게 되고 적용 질문을 생각하게 되고 그게 정말   갖고 think   있는 질문과 말씀이 있으니까 그래서 목장에서 나눔도 기쁨이지만은 특별히 학벌, 직업, 나이 이런  관계없이 이렇게  죄를 터놓고 나누고 처방하고  가장 좋은 식사가 공짜 아니겠습니까 이러면서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맞아요. 그러니까 사실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친구들 모임에서 나누는 얘기가  뻔해요. 근데 목장에서는 날마다 주제가 다르고 나를 보게 해주는 진짜  기가 막힌 기가 막힌 곳이라고 생각이 돼요. 우리의 삶은 모두 독사에 물려 있어요.  때부터 죄인인 것이  증거거든요. 그래서 이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이제 무너진 이거를 회복하기 위해서 상처를  보블리어의 집에 들어가는 거고 이제 거기 누구도 해결할  없는  아픔 속으로 내가 먼저 아픔을 당해봤기 때문에 들어가서 이제 안수하는 거죠. 그러나 실제로 고치신 분은 누구예요. 안수했다고 바울이 고쳤습니까? 바울에 들어가  기도가 안수가 주님이 앞서가신 일을 따르는 일이자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 일이니까 주님이 바울을 통해 블리어부친을 고치셨죠. 주님이 고치셨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고치셨어요. 그러니까 내가 잘난 척하면  되는 거죠. 


    적용해 보세요. 

    여러분은 상처 입은 치유자입니까 상처받은 피해자입니까?

      쉽게 서로가 가해자 인식을 하나요. 피해자 인식을 하나요.

     

      여자 목장에 이렇게 목자님께서 다른 목자님 보고 우리들 교회 초등학교 3 4학년 아이들을  섬겨보시라고.  봉사를 통해서 우리 집사님이 아주 치유함을 느끼게   같다고 왜냐하면 자기 아이들이 3~4학년  많이 힘들었었기 때문에 상처를 그때 받아서 치유가 됐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까지는 좋은데 저는 매사 귀찮아하고 모든 일을 힘들어하는 스타일이라서 제가 교회 봉사를 하면 남편이 교회에서 아이들을 홀로 챙겨야 되는데 이게 가능할까? 남편에게  얘기를 하니까 남편이 도리어 뭐라고 그러냐 하면 봉사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후의 일들은 걱정하지 말아야지  남편  너무 훌륭하셔서 박수   쳐주고 싶어요. 그러니까 상처 입은 유자는 대단한 상처만을 의미하는  아니에요. 우리들 교회 이렇게 목장에서 권유해 주시고 정말 최고입니다. 그런데  처방이 아마 나중에 간증할 일이  거예요.  최고인지. 그래서 내년에도 곳곳에서 많이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고침  번째는  번째 정말 가장 높은 사람 중요하고  번째는 아픔을 가지고 들어가서 정말 기도하고 안수해서 낫게 해야 되는 거죠. 상처 입은 치유자로. 그렇게 되면  번째는 공동체와 함께 사명이 이어지는 거예요. 우리는 그냥 상처만 낳게 해주는  목표가 돼서는  되는 거죠. 9절입니다. 이러므로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거기서 끝이 아니죠. 가장 높은 보블리어  사람이 고침을 받자 다른 병든 사람들이  바울에게 나왔어요. 근데 문자적으로 나머지 병든 사람들이 나왔다 그랬어요. 그런데 모든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받았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병든 사람들 중에서는 바울에게 오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블리오 부친의 소식을 듣고 나도 고침을 받고 싶다며 나온 사람은  고침을 받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자기 집을 떠나 바울을 보러오는 수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침 받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현장 예배의 축복이 이렇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언제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고침받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람이 받은 주님의 치료는 언제나 우리를 여럿으로 공동체로 부르십니다. 교회가 그렇잖아요.  세상에 혼자 있는 교회가 어디 있겠어요.   혼자 믿으면  혼자 예배드리면 되지   혼자 말씀 묵상해요. 이렇게 혼자 교회는 주님의 사전에는 없어요. 심지어 홀로  분이신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공동체로 계시잖아요. 물론 북한처럼 특별한 경우도 있지만은 그러나 그들도 지하에서 끈끈이  이제 지체가 있으리라고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이렇게 교회  보기 싫은 지체가 있고 조직이 마음에  들고 리더십이 인정이  된다 해도 주님이 여럿을 함께 부르신  교회 공동체를 떠나면  됩니다. 여럿이 함께 고침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붙어만 있으라고 제가  외칩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아도 그저예배의 자리에 와서 앉아만 있으라고, 들을 말도 없고  말도 없어도 그저 목장 예배에 가서 함께  먹고 앉아만 있으라고 날마다 이제 부르짖죠. 붙어만 있으면  고침을 받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보니까  그런 고침을 경험하셨죠. 고치다의 원어가 바로 테라 페이인데 이게 테라피 영어 테라피의 어원이에요. 기본적으로 고치다는요 섬기다 돌보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고침 받는 그냥 섬기고 돌봐야 돼요. 의사가 환자를 돌보는 일이 고침이기 때문에 고치다 치료하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는데 신약에서는 대부분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 대해서 이게 쓰였어요. 예수님께서 갈릴리부터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다니시면서 힘쓰셨던  치유사역이 바울의 손을 통해 이제 멜리데 섬에서도이루어지는데요.

    마가복음 마지막  16 18절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유명한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절이 바울에게 그대로 문자적으로 이렇게 이루게 하신 거예요. 이거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특별 총인데요.그걸 이제 think  해봐야 되잖아요. 문자적으로 멜리데는 금세 떠날 것이기 때문에 마구 기적을 베풀어도 상관이 없어요. 누가  노릇을 하지 않아요. 예수님도 기적을 베푸시고는   떠나셨어요. 그런데 날마다  곳에서 치유 사역을 계속하는 거는 아주 위험합니다. 선교지에서는 그게  가능하지만은 우리가 복음전하고 떠나야 되는 것은 양육은 성령님이 시키실 거니까요. 그러니까 그때는 정말 멜리데인들이 모두 야만인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치유 사역을 보지 않으면 믿을  없잖아 특별한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주신 특별한 은총인데 그것이 계속되어지는 고침의 역사만 원하시면 이제  되는 거죠. 그럼 뱀을 집어도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아니하는 표적은 어떻게 지금 이제 21세기 한국에 남한 그중에서도 서울 경기에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적용해야 될까요. 기독교가 들어온 지도  세기가 지났고 10권에도 들어가고 축구 16강에도 들어가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어요. 그러면 이게 적용이요  성경에는 보면은요  수준에 맞게 적용하게   있어요. 그래서 오늘  구속사적으로  구절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볼게요.

     

    마가복음 16 9절에서부터 이제 11절까지는 예수께서 안식  첫날 이른 아침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이제   일을 예수님이 이제 십일절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이제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이제 이제 알렸어요. 그랬더니  믿었어요.  얘기를 했더니  믿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외쳐줄 사람은 똑똑한 사람 마음씨 좋은 사람이 아니라 일곱 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는 거예요. 막달라 마리아는이른 새벽에 제자들과 남자들도  가는 무덤에 갔어요. 저는 우리들교회가 이렇게 귀신 들린 사람, 눌린 사람, 아픈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사모하는 교회가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신경질 , 귀신, 여자 귀신, 남자 귀신, 공부 귀신, 음란 귀신  일곱 귀신만 물러가기를 바랍니다. 그랬는데 막달라 마리아가 전했는데 십일절 보면  제자들 예수님께 양육받은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어요. 아마 전하는 사람이 정말 창녀였고 귀신 들렸기 때문에 믿지 못했을  있죠

     

    제가  남편의 구원을 에스겔 말씀으로 전했을   곁에 여인들을 모두 기뻐했어요. 근데 제자들이 믿지 못했던 것처럼 많은 남자분들이 저의 말을 믿지 않더라고요  이제  그중에는 하여튼 심각하게 듣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평신도인 제가 에스겔을 읊어대니까 집중해서 듣지 않았어요. 저와 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만 공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큐티 모임에는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이제 많았잖아요. 그래서 저와 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만 공감을 했는데 그래서 제가 50  때까지는 남자 모임도  했다고 그랬잖아요.   이야기를 남자들과  무슨  이렇게 그런 분들에게 전하는 일을 한참 하다가 마침내 포기했어요. 3 정도 지나니까 이제 가까운 데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고 목사님들도  이야기를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성경을  때마다 어쩌면 이렇게   이야기르 하시는가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제자들 예수님에게 직접 교육을 받았는데도 이렇게 믿지 못했어요.  12 13절에 그러니까 예수님이  제자들 중에  사람한테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세히 풀어주시니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가지고  다른 제자에게 이걸 전했어요. 지금13절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그때도 제자들이 믿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믿는 것이 남자들의 주제가인  같아요. 남자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그렇게 해도  믿어지십니까? 언제나 설교 끝나면 여자들은 다은혜 받았다고 그러는데 남자들은  오늘도 어렵네요. 그렇게 나가시는 거예요. 그런데도 와이프가  오라 그러니까 오는 거예요. 그래도 오는  어디에요. 

     

    그러니까 지금 9절서부터 계속  믿는   믿고 믿고  14절에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역시 믿지 아니함일로라 그러니까 제자들이 지금 믿었다는 내용이 마가복음 16 마지막 장에 전혀 없는 거예요. 복음을돌려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배척할  쓰는 완악이라는 단어를 써서 바위 같은 마음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생전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꾸짖으실   번도 사용하지 않은 강력한 용어로 예수님은 애정을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치셨는데 제자들은 이렇듯 완악하고 믿음이 없었던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은 부활의 몸이기 때문에 음식을 드시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들의 수준으로 낮아지셔서 음식을  같이 드셨어요. 그러니까 여자분들이 우리 남자들의 수준으로  낮아져야   같습니다. 기꺼이  내려가 주시기를 바래요. 그런데 우리들교회도 그렇고 큐티 선교회때도 그렇고 그때 큐티 선교회 때도  명이 나왔는데 여자들이  명이 나오면  하겠어요. 일을   일을. 그러니까 그냥  명의 남자가    . 여러분들 여기 어저께 와가지고 전부  카펫 깔고 의자 깔고    남자야 저는 남자들만 존경해. 남자들이 없으면 교회가   교회가. 여자들은 입만 그러니까  일은요  완악했던  제자들이  하잖아요. 


    결국  얘기를 하면서  배경으로 십오 절이 나오는 거예요.  이르시되 너희는 온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이 있고 믿지 않는 사람은  받겠지만은 이러면서  말도  되는 제자들에게 하나도 공로가 없이 그래도 온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을 주시고 이러면서 17 18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그들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이렇게 완악하게 믿지도 않는 자들에게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엄청난 명령을 주셨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복음 전파하는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고 내가 말씀을 따르고 복음을 전파하면 표적이 따른다는 거예요. 전파하지 않으니까 표적이  따르는 거예요. 이런 배경으로 뱀을 짓고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아니하겠다고 하셨는데요. 그러니까 복음을 전파하되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해야  표적이 따르는데  십자가를 모르니까 복음을 전파하러 댕기면 저절로 십자가를 지게  있잖아요. 그러니까 먼저 이렇게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사람들이 장땡이다. 이거예요. 내가 믿음이 있어서 나가는  아니고 에스겔 아내를 하루아침에 데려가고 슬퍼하지 말라 그러잖아요. 이와 같이 선지자가 되라고. 그러니까 진정한  무엇인가? 이거 뱀을 짓고 독을 마셔도 해를 당하지 않는 것은 이미 내가 그렇게 치유를 한번 받았으면 그때부터 진정한 표적은  옳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방원을 표적으로 주신다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독사에 물려도 당신이 옳아요. 내가 살인자예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이게  방원이라고요.


    믿는 자에게 따르는   방원을  쓰면  거꾸로 뱀을 집어도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 표적이  따라다니게   믿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여기까지   아니고 저는 이렇게 거룩에 이르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이 있는데도 그저 눈만 뜨면 일어나서 복음을 전하니까 나는 형편없는데 복음 전한  때문에 하나님께서 표적을 너무나 많이 보여주신  믿습니다. 내가 내가 잘난  진짜 하나도 없어요.  잘난  없는  아니까 두렵고 떨리는 거죠. 그래도 오늘은 내가 그냥 아침부터  오늘 전해서 하루 종일 전했어 그럼 하나님이  방언을 쓰는 놀라운 표적을 주시는  믿습니다.
     

    아내의 집사가 이혼할 결심을 하고 목장에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 왔다는 거예요. 남편과 이혼할 결심을 하고. 그래서 목장에서 이제 오늘 마지막 인사하려고 나왔다 그랬더니  목장에서 이혼한 경력이 있는 부목, 목원 식구들이  그냥 다들 그냥 벌떼같이 일어나서 권면을 하는데 순간 은혜가 임하고 감동을 받자 이혼을 그렇게 결심했던 마음이  녹아내리고 목장 교회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사라졌다고 간증해 주셨어요. 할렐루야. 목장이 아니었으면 내가 말씀 듣고 큐티에도 이혼할 뻔했고 공동체 떠날 뻔했는데 목장 공동체를 통해 정말 이혼 결심이 순간 사라지는 놀라운 체험을 했대요. 이혼을 선언한 그날남편이 목장이 끝난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미안해   방언을 썼잖아요. 그래가지고 지금 남편이 그냥 예배 목장 양육에 집중하며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나눔을 했습니다. 저는 매주  어떤  읽어야 될지 너무 골치가 아파요. 너무  읽어야   많아가지고   너무 격무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래도  곤란해서  읽고  읽고 하네. 어떤 사람은 어쩌면 20 동안    번도  읽어 내가 어떻게하겠어요. 이게 바로  방원이에요. 

     

    그러니까 멜리데 섬에 원주민들이  은혜를 받았잖아요. 어떻게 하죠. 10절에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것을 배에 실었더라. 이제 보블리오와 순박했지만 기복적이었던 원주민들은 그냥 진짜 단순히  고치는 고침이 아닌 진짜 치료와 치유 이거를 경험했던  같아요. 저마다 이해관계도 다르고 276명도 다르고 멜리데 섬의 사람들도  성격 문화  다른데 그걸 하나 되도록, 우리 되도록 감동시킨 것은 바울의 한결같은 모습이었죠. 우리가 부부간에 둘이도 하나가  되는  전체를 그러니까  중심은 바울이 본을 삼으며 부지런히 쫓아간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이에요. 바울은 로마로 가야 하는데 나에게 허락한  순간에 나에게 붙여준  사람을 고치려는  마음 구원을 향한   순간  순간이 결국 로마인 거예요. 이미 바울은 매일매일 로마에 도달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3개월에 걸친 계획되지 않은멜리에서의 체류는 하나님을 전하는 절호의기회가  거예요. 그러니까 날마다 로마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로마로 가는 바울 일행의 사명에 동참합니다. 후한 예로 바울 일행을 대접하고 떠날  필요한 물건들을 배에 실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파손돼서  버렸던 물품을 하나님이 채워주는 거죠. 그동안에 필요한 것들은  버렸고  필요한 것들만  채워줍니다. 그래서 이때 회심해서 멜리데 사람들이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거예요. 보블리오는 멜리데의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가 순교했다 그러고 여기는 지아 카타콤이 있으므로 멜리데 섬이 복음화 되었다는역사적인 사실이 지금 입증되는 거죠. 

     
    믿는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은인이 돼야 하는데 일단 눈에 보이는 은혜 베푸는  가장 쉬운 방법이잖아요. 그래서 뱀과 독사 눈에 보이는.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고요 마가복음 16장에서도 그냥 고쳐주는 것만 다가 아니라고     고쳐줬는데 날마다 고침 받으러 날마다 똑같이 가면 우리가 언제 성숙하고 언제 거룩해지겠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너무 수준이 낮지만은 복음은 전파돼야 하니까 뱀에서 독에서 표적을 주신 거예요. 그러고 떠나야 되는 거예요. 성장가야 돼요 거룩을 이루어 가야 돼요   성숙해져가면은 바울처럼 강풍과 독사와 시기와 질투와 모함과 매맞음 당할 때마다 해를 받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고침의 열매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인 거예요. 

     

     

    적용 질문 드릴게요

    공동체에 들어가서 기뻐하고 있습니까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이제 고침받고 사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내년에는 어디서 후한 예로 대접하고 섬기시겠습니까

     

    공동체 고백입니다. 공동체 속에서 사명을 다한 김재남 집사님이 11 13 주일에 미국에서  친구 전도하고 17일에 목장 예배하러 가다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25일에 소천하셨어요. 이분은 개척 때부터 오셨는데 아주 똑똑하신 남편 같이 유학 갔다가 남편이 먼저 한국에 오셨어요. 그리고는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이제 아들 둘을 키우시면서 그냥  아들 둘이 교회를  나오는 에요. 정말 이십 년동안 믿 때문에  기도하시고 진짜 혼자서 20년을 남편도 없이 아들들도 없이 정말 이름도 없이 섬겨주셨어요.  아들들의 믿음 때문에 기도하시고 한결같이 목장 섬기시다가 한마디 유언도 못하시고 가셨는데요. 그분이  주도 빠지지 않고 매주 같은 기도 제목을 올리셨는데  주에 올린 기도 제목이 완전 유언이 되셨어요. 그래서 첫째가 준과 우리는 준과 용의를 너무  알아요. 맨날 기도 제목 올리셔서 준과 며느리와 용의의 영혼 구원과  주님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번째 용의가 주일에   있는 곳으로 옮길  있어 교회에   있기를.  담배 게임이 끊어지고 재정 관리 잘하기를  남동생이 주님 영접하기를  친정 엄마 집이 팔려 작은 집으로  있기를. 준이 외국에 있는데 준에게 영문 큐티인을 보냈는데 거부하지 않고  부부가 계속해서 읽을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이분이 연명 치료  하고 시신 기증하고  주도 빠지지 않고 매주 같은 기도 제목으로 유언을 이렇게 남겼어요. 생전에 매일을 마지막처럼 죽음을 완벽하게 준비하도록 정말 주님이 마을님 삶을 인도하셨음에 너무 감사드리고요. 생전에 20  동안 아들들과 같이 신앙생활 못했지만 죽은 뒤에 하나님이 방문하셨다고 이제 오늘 이렇게 어머니 천국 행을 인하여서  아들들이 참석을 했는데 우리들 교회가 진짜  기도했어요.  용의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줌과 용의의 믿음 위에서 기도했는데  반드시 어머니의 유언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거예요. 어머니가 너무 안타까워하셨기 때문에  제목을   세계에 지금 알려드리는데오늘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줄래요  용으 일어나 볼래요  우리 박수로 너무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너무 정말 읽어드릴  많지만은  일은 평생에 잊지 말라고 오늘 이제 정말 정말 성령의 고침 받고 어머니 뒤를 이어서  아빠하고도 아들들하고도 평생의 신앙생활을 못하고 가셨는데 여러분 이렇게 큐티를 하면 오늘 하루하루가 죽음의 준비라는 거를 김재남 집사님을 통해서 이렇게 보여주시는 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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