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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교회/QTIn/2023 표어 이제는 안심하라 (행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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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도행전 28장 3절~6절 - 성령의 공의
    주일설교 요약 2023. 1. 1. 04:03

    2022년 11월 27일

    성령의 공의

    사도행전 28 3~6

    김양재 담임목사

     

    여러분 지난주 성령의 피난처로 잘 피하셨나요. 멜리데가 피난처란 뜻이죠. 영국의 청교도들이 피난처 찾아서 떠난 미국이라고 영원한 피난처는 아니었죠. 영원한 피난처에는 공의가 완전해야 되는데요. 오늘 본문에 공의로 번역된 디캔은 공명정대한 처벌의 여신인데요.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도 법정에서 판결되는 판결이 공명정대하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100% 죄인이기 때문에 100% 옳을 수가 없죠. 그래서 우리는 공평과 정의를 부르짖지만 무엇이 공의일까요. 멜리데 사람들은 성령의 공의를 모르죠. 결론부터 말하면 최고의 공의는 예수가 그리스도신 것이에요. 그것이 복음이고요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공의에 대해서 생각을 해봅니다. 


    첫째로 뜨거움으로 독사가 나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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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입니다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지난주 본문에 멜리데 원주민들이 따뜻한 불을 피워 바울과 일행을 영접한 것처럼 지난주 우리들 교회가 따뜻했는지 많은 분들이 영접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불이 꺼지지 않아야 되겠죠. 이 불은 어떤 불입니까? 특별한 동정, 특별한 친절로 피워진 불이에요. 상대방에 얼어있던 몸과 마음을 녹이기 위해 선한 의도로 피운 불이에요. 그런데 비와 추위로 불이 조금씩 꺼져갔나 봐요. 그래서 바울이 이 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 손수 나무 묶음을 거두어 불을 지피려고 했는데 그만 독사에게 물렸어요가만히 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몸을 일으켜 수고한 바울의 손이에요. 박수 받아 마땅한 손인데 그 손이 죽음을 상징하는 독사에게 물렸습니다. 그냥 스친 게 아니고요 꽉 물렸고 심지어 독사가 손을 문 채 지금 매달려 있어요.  

     

    이 독사는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독사와 같은 어원입니다. 그러면 생각나는 게 있죠. 뱀으로 인해 선악가 들어와서 이제 죄가 들어왔죠 그래서 벌을 주셨어요. 창세기 3 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니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자의 후손은 니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오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그러니까 계속 뱀이 원수가 되어 세상 끝날까지 성도를 괴롭힌다는 뜻이에요. 그러므로 이 땅에서는 영원한 피난처가 없다는 것을 바울이 날마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만이 사단의 머리를 칠 수가 있다고 미리 얘기하셨어요. 그러니까 예수 믿으세요. 이게 얼마나 복음인지 몰라요. 이게 공에요.  제 계시록 책에도 말을 해놨지만 계시록 12 17절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사단이 강같이 토해내는 여러 교류가 실패로 끝나자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엄청난 적대적 감정을 가지게 됐어요. 세상은 믿는 사람에게 아주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바울에게 이제 배 타고 널 조각 가지고 왔는데 또 죽을 수밖에 없는 복병이 또 왔어요. 우리 예수를 믿어도 너무 무서운 상황이 우리에게 쓰나미처럼 몰려옵니다. 그냥 어찌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이렇게 몰려옵니다. 여러분도 오늘 그래서 오셨습니까? 

     

    이번 주에 엊그저께 편지를 하나 받았는데 엄마도 어린 나이에 돌아가시고 20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이제 키우는 미혼모래요 낮에는 아이를 케어하고 밤에는 아이를 재우고 cctv를 연결해놓고 시급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동안 예수 믿는 믿으라 그러면 아주 거절했는데 지금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저와 제 아이를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싶다고 이런 편지가 왔어요. 제가 이제 답을 드렸지만은 이렇게 씨씨티비를 연결해놓고 시급을 받으며 일한다니 우리나라는 인구절벽 시대에 무엇이 공인지 우리는 참 의문을 가집니다. 이런 자녀는 나라에서 좀 키워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태원 참사에서도 무엇이 공인지 다들 질문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가 하면 똑같은 아이 엄마가 아이가 한 달 되었을 때 남편이 집을 나갔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제 책을 선물 받고 다 읽고 우리들 교회를 와야 되겠는데 너무 멀고 올 수가 없고 지방이고 그런데 연락을 했을 때 목자님이 자신을 태우러 그 멀리 오시고 끝나면 데려다 주시기를 한 주도 빠짐없이 해주셔서 그 사랑으로 지금까지 10년 동안 자녀를 데리고 교회 출석 중이라고 하십니다. 지금도 굉장히 남편이 안 돌아왔으니까 힘들 텐데 그런 말은 전혀 안 하고 눈물로 우리들 그 교회에 지금 너무 감사하다고 하세요. 

    여러분 아무리 아이를 키우고 힘들어도 그렇게 키우려면 더 좋은 게 있어야 돼요. 더 좋은 게 있어야지 그 아이를 키우는 거죠. 그냥 잘 키워 그래서 잘 키워주는 게 아니잖아요. 더 좋은 게 있어야 돼요. 두 자매 모두 뱀의 협박을 받고 사단으로 지금 끌려갈 뻔한 것이 보이죠. 이제 그렇지만 한 분은 편지를 주셨고 한 분은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있으니 이런 환경에서도 감사하니까 더 좋은 게 있어서 그냥 그 멀리에서도 정말 혹시 저기 정말 10년 동안 이렇게 지방에서 맨날 실어나른 목자님 너무 훌륭하시고요. 정말 더 오고 싶을 때는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이렇게 버스 타고 애를 데리고 그렇게 오셨다는 거예요. 또 한 목자님은 본인은 공군사관학교 출신인데 바람 두 번에 가출해 주식에 그래서 목장에 오면 이혼해 주겠다고 이게 웬 떡이냐 그러고 왔다가 지금 부부가 다 목자가 되셨어요. 그런데 이번 주 나눔에는 빚 독촉을 받을 때 너무 힘들어 빚독촉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사단과도 손을 잡겠다. 외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이런 얘기를 목장에서 나누셨어요. 주의 말씀처럼 어떤 광풍도 광풍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없는 것이 광풍이라는 말씀이 정말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자 이렇게 얼어붙은 마음들이 녹아지기 시작하니까 계속 따뜻함을 유지하고자 나뭇가지를 던져서 선한 의도의 결과로 바울이 독사에 물렸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위해 따뜻함으로 다가가고자 할 때 그렇게 숨어있던, 어두운 데 숨어있던 독사가 이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나온 거예요. 그리고 오늘 바울을 꽉 물은 것처럼 이렇게 우리 마음속에는 알지 못하는 독사가 다 숨어 있어요. 없었던 것이 생긴 게 아니에요. 오늘 본문에 보면 숨어있던 독사라고 하죠. 

     

    저도 제 속에 숨어있던 독사를 몰랐죠. 나의 독사가 체면과 교양과 사회의 규범으로 통제되고 있을 때는 몰라요 근데 뜨거움이 달려오니까 견딜 수 없던 독사가 어둠에서 밖으로 뛰쳐나온 거죠. 그래서 나뭇가지를 넣은 가장 가까운 바울을 콱 물었어요. 그리고 지금 계속 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한 의도로 따뜻함으로 전도했지만 지난주 전도대회 때도 독사 같은 독설로 죽음에 이르는 상처 주는 말에 물리신 분들 많죠. 가족 전도를 위해 남편을 위해 아내를 위해 자녀를 위해 불을 피우고 밥해주는 적용을 했지만은 숨어있던 독이 섞인 말과 눈빛으로 물린 분 많을 거예요. 그런데 내가 나 위해서 전도하냐 그러면 우리의 숨어있던 독사가 또 나오는 거예요. 상대가 독서를 날리면 나에 숨어 있던 독사가 또 나오는 거죠. 한편 이렇게 따뜻하니까 사실 숨어있던 독사가 나오니까 사실 잘 된 일이에요. 얼어 있으면 계속 숨어 있다가 계속 미우면 살인을 할 거 아니겠습니까 실체가 드러나게 하신 거예요. 싸우는 부부는 이혼 안 해요. 교회 안이 있는 부부가 다 얼음장 같으죠 아시죠. 후라이판 집어던지는 여기 암흑의 초님 이혼 안 하잖아요. 그렇죠 정말 그 교양 있는 사람들이 차가워요. 그러면은 이렇게 이제 실체가 드러나서 이제 싸워야 돼 싸우는 게 참 좋은 거예요.

    이렇게 독사가 물 때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까요? 어머나 독사다 야 이거 불 때문이야 불 꺼 그러겠죠. 난리가 나겠죠. 그러니까 내가 괜히 그 목장은 가가지고 말이야 목장 불 꺼 근데 오늘 바울은 어떠합니까 독사가 그 손을 그냥 물고 있어요. 독사가 문체로 매달려 있다고 합니다. 물고 있는 지라로 번역된 카뎁세는 신약에서 딱 여기서만 사용된 동인데요. 즉시 손을 털어버리지도 않고 그냥 물린 채로 있습니다. 바울이 감각이 둔해서 그럴까요. 아니겠죠. 내가 특별한 동정으로 구원의 불을 피웠을 때 상대방 마음속에 숨어있던 독사가 독사 같은 눈빛 독이 섞인 말투로 나를 공격할 때 그래 이제 나 불 안 피워 아무리 잘해줘도 오해만 받는데 내가 왜 해 하면서 불을 꺼뜨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물어도 그냥 물린 채로 지금 있어야 되겠죠.  바울은 물린 채로 있습니다. 물린 채로. 상대방의 이 독이 섞인 말들을 지금 다 받아내고 있어요. 여러분들 이렇게 받아내는 것이 성령의 공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가정에서 회사에서 나라에서 정치를 하다 보면 이보다 더한 공의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 서로 독사 같은 그걸로 서로 상처 주는데 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받아내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적용해보실래요 

     

     [적용질문]

    이 뜨거움에 나온 치명적인 한마디 독사의 말과 행동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누구를 죽어라고 지금 물고 있나요.? 아니면 잘 물리고 있나요?

      

    성령의 공의는 뜨거움으로 내 속에 니 속에 독사가 나와야 돼요 그걸 인정해야 돼요 성령의 공의 두 번째는 그건 뭐 진실로 살인한 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4절이에요.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물린 채로 있는 건 그래도 구원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독사가 나를 문 이 사건을 보면서 리데 사람들이 특별한 동정으로 불을 피우고 영접을 했는데  사람들이 그 멜리데의 독사가 얼마나 맹독성이 있는 거를 누구보다도 잘 알아요. 독사가 물면 그냥 죽는 거예요. 죽어가는 바울이에요. 그런데 이 독사를 떼어주거나 응급 처치를 해주거나 걱정해주거나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뭐라고 합니까?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도 합니다. 그냥 살인한 자도 아니고 진실로 살인한 자라고 전적으로 완전히 살인한 자래요. 이제 바울이 살인자라는 말까지 듣네요. 범죄자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범죄자가 되었어요. 그리고 살인자라 손가락질 합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을 살인범이라고 생각하며 공의의 디케이의 여신이 그를 죽인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우리가 알아야 돼요모두가 지금 살인범으로 몰면, 그 사람은 멜리데 사람들이 다 살인범으로 몰잖아요. 지금 바울을 졸지에 지금 바울이 살인범이 된 거예요. 바울이 바다의 광풍에서도 살게 되었지만 그는 살인자이기 때문에 독사에게 물린 것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심판이라고 여겼어요. 그들의 문화예요. 헬라의 시에는 바다의 풍랑을 피해 리비아 해안에 표류한 살인자가 독사에 물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인 거예요.

    여기서 공가 무엇이겠는가 이거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분이 평생 죄 짓고 살다가 이 죄악에서 돌이키자마자 천국 갔는데 그 사람은 선한 일을 행할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이 사람 천국 갔습니까 지옥 갔습니까 어디 갔어요? 혼방의 대답이 나오네요. 라고 하면 사람들은 다 과거의 죄와 현재를 같이 놓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거에 제가 한 가지라도 있으면 내 삶 전체를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은 인터넷 시대라서 한 번 죄 지으면 전 세계 알려져서 이사도 못 가요. 그런데 이제 에스엘 18장을 이렇게 보면 과거의 죄와 오늘의 죄를 같이 심판하는 것이 아니에요. 지금 이 시간 오늘의 심판의 근거인 거예요. 내 죄는 일생을 평균해서 심판을 하는 게 아니에요. 내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오늘 내가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는다고 인정하면 즉시 내 죄가 다 도말되는 거예요.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는 천국 백성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겉으로 드러난 거 하나도 없이 착하고 그냥 교회 열심히 나가 구제 봉사하다가 조금 어려운 일이 생기니까 하나님 원망하고 어떻게 예수가 있으면 이럴 수가 있어라고 오늘 죽었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죠. 왜냐하면 오늘을 시점으로 지금 시점으로 심판하시기 때문에 근데 그게 공평하다는 거예요. 마지막이 중요해요 성령의 공의에 대해서 오늘 다시 한 번 여러분들에게 각인되시면 좋겠습니다. 


    제 남편이 마지막 가기 전에 예수 이름을 인정해서 이게 공의를 행함으로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다고 인정해 주시고 죄를 도말해주시고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한다고 정확하게 인주셨어요. 바로 이거예요. 18 27 8절입니다.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존하리라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아멘.

    성경적으로 공를 오늘 설명드렸어요. 바로 이 공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은 공롭지도 공평할 수도 없어요.  오직 예수 이름만이 공의로운 거예요. 

    그런데 멜리데 사람들이 특별한 동정으로 영접을 했잖아요. 그런데 믿는 우리는 구원 때문에 그들의 특별한 동정을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그들은 구원을 모르기 때문에 이제 그들에게는 동정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멜리데가 특별한 동정을 했지만 그들의 양심은 옳고 그름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순박해배지만 지금 그냥 안절히 못 가 금세 배반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적인 동정을 항상 객관적으로 잘 판단해야 하고 늘 경계해야 된다는 거예요. 제가 지난번에 너무 특별한 동으로 은혜를 많이 받아가지고 이 설교를 할까 말까 굉장히 망설였어요. 지난번에는 특별한 동정이 최고라 그러더니 오늘은 또 아니라 그러네요. 이게 구원이 없으면 약간 헷갈려요. 그렇죠 근데 이게 너무 중요한 얘기가 돼서 제가 우리 항상 우리의 동정은 구원에서 출발하는 동정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리데인들은 처음에는 특별한 동정으로 영접하다가 금세 살인자라고 하다가 또 금세 육절에서는 신이시여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원의 동정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니까 일관성이 있어요. 우리가 부족해도 일관성이 있어요. 근데 인간의 동정은 사람은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기 때문에 변덕이 죽을 끓여요 변덕이 죽을 듯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오늘 제 믿음이 없는데 착해 이딴 얘기 들으시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 동정보다는 구원이 필요한 인생인 거예요.  인간은 환경에 따라서 날마다 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동정을 유발하고 동정에 경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요즘 빈곤 포르노라고 들어보셨나요. 신문도 안 보시네 여러분은 오직 큐티만 하셔 좋아요. 모음을 유도하기 위해 곤경에 처한 이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해서 동정심을 일으키는 영상이나 사진 등을 말하는데요. 1980년대 당시 한 방송에서 앙상하게 말한 아프리카 어린이의 몸에 파리 떼가 그냥 다닥다닥 달라붙은 영상을 송출하니까 수억 대에 수억 달러 수억대가 아니고 수억 달러에 팔십 년대에 수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모금하자 다른 단체도 다 따라하면서 빈곤 포르노가 시작이 돼서 우리가 막 물론 지침을 잘 지키는 기독단체들도 있죠. 많아요. 근데 우리가 지금 보면 방송에서 다 그런 영상 송출되잖아요. 
    그러니까 구속사적으로 특별한 동정을 해야지
     이렇게 인간적으로 동정을 하고 받으면 배반 당할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러므로 항상 목적은 구원이어야 그것이 공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성령의 공의를 나타낼까요. 바울은 지금 독사에게 물려서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나는 선한 의도로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웠는데 그래서 독사에까지 물렸는데 살인자라고 손가락질 해봐요. 그런데 우리가 큐티 왜 합니까 항상 Think 해봐야 되죠.  생각해보면 바울 입장에서 이거 맞는 말 아니에요? 스데반을 생각하며 7 52절에 유대인들에게 뭐라 그러냐 하면 이제 너희는 그 스데반 의인을 잡아준 자여 살인한 자가 되나니 이게 똑같은 단어예요. 이 살인자가 내가 스테반을 죽인 살인자다. 내가 예수님을 죽인 살인자다 이렇게 자기 죄를 다시 직면하며 자기 실체를 인정하니까 이 섬김의 손이 독사에 물린 손이 된 일에 대해서도 원망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물고 있는 독사를 보는 거예요. 독사가 손에 매달려 있어요. 매달려 있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셨다고 할 때 쓰인 단어예요. 

     

    주님이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고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매달리셨잖아요. 주님이 나무에 달리심으로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어요. 독사처럼 우리를 물어 죽였던 죄와 사망을 주님이 십자가에서 멸하셨어요. 히브리서 2 14절에 예수님이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서 우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다 멸하셨어요. 마찬가지로 우리모두 독사에 물려 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있는 독사로 그저 존재 자체가 가해자인 것을 인정해야 돼요 우리가 다 믿기 전에 죄인이었잖아요. 그래서 미움으로 살인을 하고 음력으로 가늠을 하고 이렇게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정확히 볼 수 있고 내가 어떠한 죄인인지를 아는 정확한 자기 인식으로부터 성령의 공의가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너는 살인자야 손가락질 할 때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받아야 할 손가락질을 대신 받으시고 내가 맞아야 할 돌팔매를 대신 맞으신 것 이것이 공입니다. 


    바울은 정말 예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삶과 생명을 바쳤어요. 그런 바울이
     지금 유대인들에게 무시당하고 로마인들에게 무시당하고 뱃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이제 더 나아가 생전 처음 본 유대인들은 말도 섞지 않는 이방인 그중에서도 야만인인 이 원주민들에게까지 저 인간은 살인한 자야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때에도 존경받아야 할 나이와 위치임에도 살인자야 이런 말을 들으니 제가요 바울 같았으면 내가 살인한 것은 맞는데 그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이었는데요. 그때 내가 기독교를 조금 오해해서리 주저리주저리 뱀을 달고 있으면서 내가 이렇게 물려있는 거 안 보여요 하면서 저는 변명을 늘어놓았을 것 같아요. 그거 몰라서 그랬는데 왜 그래요. 이 세상에 남들은요 과거의 죄를 문제 삼고 지금 아무리 잘해도 그 삶 전체를 두고 판단해야 한다고 계속 생각하는 거예요.그러니까 아무리 달라져도 용서 안 해요. 니가 옛날에 그랬잖아 이게 주제가예요. 네가 옛날에 바람 폈잖아 네가 내 인생 망쳤어. 구원은 그러니까 이 세상은 그렇게 날마다 과거를 문제 삼지만은 구원은 과거의 죄를 문제 삼지 않아요. 그런데 내 자신은 그 과거를 인정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 바울처럼 살인자였다는 거 그러니까 이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존재 자체가 가해자에요. 예수 믿기 전에 다 죄인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살인자 의식을 갖고 있어야 되는 살인자가 무슨 할 말이 있어요. 때마다 바울을 일으키는 것은 자기가 살인자라는 인식을 하는 거예요.누가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일을 당해도 나는 살인자지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살
    자지 기독교인들을 잔멸하고 유대인들을 배신했던 누구에게도 변명할 수 없는 살인자지 이 생각을 이 생각이 바울을 결국 늘 살려주시는 거예요. 살인자인데 뭐가 두렵겠어요. 받을 벌을 받으면 되죠. 그러니까 내가 존재 자체가 가해자니까 누가 뭐라고 얘기를 해도 이제 우리는 물고 있는 거를 가만히 기다릴 수가 있는 거예요. 왜 나를 무냐고 이제 이러는 게 아니고  예수를 아직 성령의 공의를 모르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완전히 피해자 의식 속에 사는 거죠. 그냥 죽을 때까지 나는 피해자인 거예요. 그러니까 집에 이제 피해자하고 가해자가 있는 피해자 보고 피해자는 모든 사람을 가해자라고 그러고 예 그러니까 우리는 그것으로 이제 적용을 하라고 가서 내가 살인자다 그렇게 얘기를 하면은 그 피해자께서는 예 그거 적용이지 이러고 안 받아들여요 적용이잖아 그래서 나는 내가 가해자처럼 생각하고 사과를 했는데 그게 또 적용인 거를 정곡으로 찔렸잖아요. 사실 적용으로 한 거잖아요. 우리가 뭐 선한 게 있겠어요. 하나님이 하라 그러니까 그러니까 또 그냥 그때 또 절절절절 매면서 그냥 너 적용이지 그러면은 그러니까 진정성이 없어 이러잖아요. 맨날 주제가가 진정성이 없어요. 그러면 우린 또 찔려가지고 그게 사실이니까 그러니까 그냥 늘 오버랩 되고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가 기본적으로 존재 자체가 가해자라는 걸 알아야 돼 살인자라는 걸 알아야 되는 그러니까 이게 안 되니까 맨날 너는 왜 사과를 안 해 사과를 해도 진정성이 없어 이거 아직 피해자가 돼서 그래요 그러니까 피해자가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니까 바울이 가만히 있는 거잖아요. 금 독사의 손이 물린 채로 가만히 있는 거잖아요. 바울은 자기가 가해자라는 걸 아니까 이 손물고 매달려 있는 독사가 두렵지가 않아요. 독사가 가져올 죽음이 무섭지 않아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마귀를 멸하셨기 때문이죠.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이에요. 적용해보세요.

     

    [적용질문]

    늘 나의 과거가 인정되나요. 늘 남의 과거만 문제 삼나요. 
    여러분은 피해자인가요 가해자인가요 그냥 그 얘기로 하나 딱 나눠보면 여기 지금 안 써 있지만은 여러분은 피해자예요? 가해자예요? 

    오늘 내가 예수 이름으로 구원 받았습니까 다른 사람도 예수 이름으로 구원 받았음을 인정하시고 이제 그만 용서해 주시면 어떨까요. 

    여러분에게 살인자 인식이 있습니까 상대가 나를 비난하며 말할 때 변명하며 인정하지 않는 게 무엇입니까
    서로 주님이 나를 위해 죽어주셨는데 그렇게 난 당신 바람 핀 거 인정 못해 또 그냥 내 인생 엄마가 망쳤어 아버지가 망쳤어 이제 이 얘기를 언제까지 하실 예정이신지 한번 본인한테 물어보세요. 

     

     

    그러니까 성령의 공의는 이 아주 뜨거운 가운데서 내 독사가 나와야 되고 예 그리고 이제 살인자 인식이 있어요.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기도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해 주시고 말은 그렇게 하는데 그게 완전히 관용어로 기도를 해요. 살인자 인식이지 뭐예요. 그렇게 하면요. 하나님이 나를 무시받게 하시는 게 아니고 성령의 공 세 번째는 돌이켜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합니다. 5절입니다.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버리에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잠시 동안 배임이 물고 있었지만 이후에 바울은 이 짐승을 불에 떨어버립니다. 앞절에서는 독사라고 나오고 5절에서는 짐승이라고 나오잖아요. 상대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독사는 받아줄 수 있지만 그 독사의 권세 짐승의 권세는 떨어버려야되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공에요. 죄인은 사랑하지만 죄는 미워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두가 내가 다 참고 간다. 이게 아니고 그러니까 굉장히 분별을 잘해야 되죠 뱀 같은 지혜가 있어야 돼요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지금 도와주지 않을 수도 있어야 되고 또 감옥에 가게 할 수도 있어야 되고 그러니까 좁은 길인 거죠. 그러니까 죄인은 사랑하지만 죄는 미워해야지 그 사람이 주님을 믿을 거 아니에요. 이 짐승은 요한계시록 11장에 등장하는 그 짐승하고 같은 단어예요. 무적행으로부터 올라오는 거대한 권세의 세력들인 거죠. 그런데 이 짐승을 어디다 떨어버립니까 바로 특별한 동정으로 피우고 있던 그 불에 떨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독사에 물렸다고 불에 떨어버려야지 그 불을 꺼뜨리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흘렸던 눈물 헌신 그리고 말씀으로 목숨 걸며 결단했던 적용들 바로 그 불에 이 짐승의 권세가 불살라 지는 거예요.하나님의 권세는 살리는 권세라면 이 짐승의 권세는 죽이는 권세예요. 내가 말씀대로 적용하고 사명을 위해 간다면 어떤 권세도 나를 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평소 때라면 그냥 이 살인자야 엄마가 내 인생만 쳤어 나가 죽어 병신 엑스에스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는 크게 상해야 하는 것이 바로 죽이는 권세 짐승의 권세입니다. 그런데 내가 구원을 위해 불을 피우고 내가 어떠한 자인지 늘 십자가 앞에서 인정하고 간다면 그 어떤 권세도 우리를 해할 수가 없어요. 어떤 독이 섞인 말들도 나의 존함을 손상시키거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기한 가치를 폄하시킬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독이 섞인 말투나 눈빛도 내가 구원과 사명이라는 십자가를 길러 놓고 간다면 조금도 상함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성령의 공의는 조금도 상함이 없는 정도가 아니에요. 


    6
    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그가 붙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바울 보고 살인자라고 했던 그 원주민들 그들은요 지금 죽어가고 있는 바울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요. 그것도요 오래 기다리면서 지켜보고 있어요.죽나 안 죽나 예 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악합니다. 도와주지도 않고 너는 죄 지었으니까 죽어 그러니까 사람에 대해서 기대하시면 안 돼요 어저께까지 나를 특별한 동정으로 대접해 줬어도 절대로 믿음의 대상이 아니에요. 부모 형제 그냥 뭐 부부 간에 믿지 않으면 절대로 믿음의 대상이 아니에요. 악에는 한계가 없어요. 그러니까 보고 있으면 붙든지 쓰러져 죽어야 하는데 그걸 오래 기다렸다고 그랬어요.그렇게 특별한 동정을 베풀었던 멜리데인들이 바울이 죽기를 지금 오래 기다리면서 어떻게 그 저 인간은 인간이 아니야 그런 남편도 있고 아내도 있고 많아요. 사단이 들어가면 못할 짓이 없어요. 아주 죽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 죽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 것 때문에 여러분들이 일희일비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욕을 퍼붓고 폭력으로 독설로 상대를 물면 그 상대가 붙든지 쓰러져 죽어야 되는 게 맞잖아요.

     
    남편이 제 새 옷에 남편이 가기 전이니까 사단이 총 공격 했잖아 샴푸를 이렇게 퍼부으면은 그냥 제가어떻게 해야 되나요. 나 도저히 지금 못 살겠다. 이혼하자 내가 이 말 한마디를 못하냐 이래야 되는데 제 속에 남편 구원이라는 사명이 있으니까 제가 남편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난 당신의 종이다. 나 같은 거 하고 살아줘서 고맙다 그러니까 오래 기다려도 이상히 여기잖아요. 이혼 도장 찍고 신고하고 난리를 쳐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이상이 없고 따뜻한 불을 여전한 방식으로 피우니 이들이 어떻게 말합니까6절 함께 읽겠습니다.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아멘 

     

    내 인생은 살인자로 끝나야 할 인생이에요. 그저 망해야 할 인생이었는데 이제 이 손가락질 봤던 바울을 보고 원주민들이 신이라고 말해 바울은 신이 아니잖아요. 바울이 믿는 하나님을 인정한 것이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죠. 바로 제 남편이 마지막에 저에게 용서를 구하고 예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을 신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천국에 갔고 하나님은 에스엘 18장에서 이것이 하나님의 공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남편이 갑자기 죽었는데 불공평한 것이 아니고 공평하다고 말씀해 주시고 이것이 그가 공의를 행한 것이라고 예수 이름을 인정하고 공의를 행한 것이라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러니까 난리 법석을 치고 옳고 그름을 따지고 상대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여전히 내 모습을 인정하고 불을 피운다면 그냥 나를 살인자라고 손가락질하며 무시했던 그들이 나를 신이라 하나님의 자녀라 말하는 거예요.  얘기는 뭔가 하면은 내가 이렇게 여러분들이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할 적용을 길러놓으면 너무 놀라서 예수가 있긴 있나 보네 이러는 거예요. 모든 식구들이 예수가 있긴 있나 봐 이게 바로 신이셔 하는 거예요. 할렐루야 이게 성령의 공에요. 내 열심으로 살았을 때는 살인자였지만 돌이켜 말씀 앞에 나를 직면하고 회개함으로 전혀 새로운 존재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가 태어나는 것처럼 새로운 창조 성령으로 말미암아 복음 안에서 태어난 전혀 새로운 존재로 나를 빚어가시는 줄을 믿습니다. 바울을 보고 살인자라고 정확하게 말했던 원주민들이 듣고 보니까 바울이 진짜 살인을 했잖아요. 그러나 이번에도 원주민들은 정확하게 말합니다. 당신은 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사람들의 변덕거린 말을 통해서 항상 상처받지 말고 그때마다 들어야 할 말을 들었네 이렇게 생각하시는 게 적용에 아셨습니까 항상 예수 믿는 나를 위해 옆에 사람들이 수고를 하는 거예요. 


    한 부목자님이 명절에 아이들과 동태전을 붙여서 먹고 한대요 근데 작년에는 대구전을 했더니 아이들이 동태전을 쳐다도 안 본대요. 올해는 민어전을 했더니 이제는 동태전 대구전을 쳐다도 안 본대요 근데 민어전이 아무리 맛있어도 제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전은 우리들 교회의 패자 부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교회는 무너지고 깨진 패자들이 인정받지 못해도 우리들교회 와서 말씀의 널조각에 의지하여 구원받아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패자 부활전의 교회라고 생각합니다.아멘 

     

     [적용질문]

    그러니까 여러분들 사랑해야 할 죄인은 누구고 미워해야 할 죄는 무엇인가요? 바로 이게 공인 거예요. 내가 예수 믿으면 아무나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 막 너무나 이상한 판결이 막 나오는 거예요. 진짜 그러니까 우리는 애들이 아무것도 모르는데 애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게 사랑이 아니잖아요. 사랑해야 할 죄인은 누구고 이게 공과 사를 분별하면서 미워할 죄를 죄를 죄 때문에 십자가의 길로 낳고 적용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내 인생은 공평하다고 생각합니까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가해자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불공평하다는 얘기가 안 나오죠 내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는데 내 환경이 지금 뜨겁다고 겨우 불 붙기 시작한 목장 예배 불을 여러분들은 꺼뜨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는 없어 안 나가 이러면서

     

    양육 숙제예요. 아버지는 다섯 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치며 본인의 생각이 늘 옳다고 생각하여 친척들과 가족들에게 외면을 당하여 외토리처럼 혼자 지내십니다. 그리고 늘 당신은 피해자고 다른 사람은 가해자로 생각하시며 물질만이 자신을 지켜줄 거라 생각하십니다. 아무도 찾아보지 않는 분이었지만은 저는 니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계명에 외면하지 못하고 명절 때는 찾아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술을 드시고 첫 번째 어머니이신 어머니가 다섯이나 돼서 참 분별하기 어렵겠어요. 첫 번째 어머니이신 저희 어머니를 욕하시고 당신의 형제들과 찾아보지 않는 형의 형수를 원망하고 저주하며 저와 아내를 괴롭혔습니다. 이 독설을 듣고 듣고 때로는 나도 관계를 끊고 싶다라고 생각했지만 예수 믿는 내가 참아야지 그래도 들은 말씀이 있어 예수 믿게 해준 부모가 최고의 부모라는 말에 의지해 힘들어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 술 드시고 똑같은 말을 들으니 너무 괴로웠습니다. 아내도 힘들어하고 찾아간 손자 손녀들도 힘들어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아버지께 최선을 다하는 아내가 있어 우리가 이럴 때 진짜 너무 독설을 하면요. 아들 부자 간에도 싸움 나죠 근데 그런 어려움을 아내 때문에 순간순간 잘 넘어갈 수 있었는데 그런데 아내가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 영접해야 하지 않겠냐며 영접기도를 하게 하시자고 저에게 권면하였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너무 싫어서 그래도 명절에 가야 되니까 따라는 갔어요. 근데 아버지가 의심 많은 성격이라 설마 영접하시겠어 하면서 의심의 생각이 그냥 뭐 다 꽉 차 있으니까 그랬는데 아내가 아버지에게 영접을 권면하였는데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아내의 영접 기도를 따라 하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너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데 그리고 이제 이분이 대구에 사시는데 서울로 초대해가지고 이 전도 축제 때 초대를 했는데 아버지가 예배를 드리면서 이렇게 영접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게 된 거예요. 할렐루야 정말 있을 수 없는 일들이 현실로 일어나니까 정말 내가 하지 못하니 아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제 또 아버지가 목장에 나가시는 거예요. 늘 불평불만으로 목장이 마음에 안 들어 무슨 나눔을 하는지 모르겠어 짜증을 내십니다. 정말 되었다. 함이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짜증을 내시면서 말씀을 듣고싶어 하신대요 그리고 목장에 대한 궁금증이 또 폭팔이셔요 예 그러니까 이 아버지를 얻고 구원을 위해 돌아가실 때까지 참고 인내하며 잘 섬기는 것이 저의 사명임을 깨닫고 잘 인내하겠습니다. 정말 엘리트이신 분들이 자꾸 교양 있는 얼굴로 안 믿어진다고 하는데 이런 분은 다섯 번 결혼 다섯 번 이혼 네 공평하지 못해 보이지만 이런 분이 한 가지 의인 예수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신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그러니까 착한 게 악한 거죠. 믿기가 제일 어려우니까 그러니까 이게 고난을 겪어보지 않으면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요 착한 사람이 최고가 아니고 믿는 사람이 최고 근데 우리가 다 이렇게 보면은 세례 간증이고 볼 때 다 애들이 속 새기지 않고 이러면 전부 다 그냥 형식적으로 믿었다. 목장도 안 갔다. 그냥 나는 그냥 음주 가무예 다 이랬는데 그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고 옆에 식구들이 수고했다고 생각하면 내가 가해자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가해자 이 인식이 저절로 살인자 인식이 저절로 있어지니까 그날부터는 다른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완전히 생명의 생명으로 젖 붙여지는 역사가 있으니까 우리들 교회가 전도대회 한 번도 안 해도 이렇게 계속 오는 거잖아요


    할렐루야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의 공이는 뜨거움으로 독사가 내 속의 독사 니 속의 독사가 나와야 되는 거예요.그럴 때 그 독살을 보면서 내가 진정으로 살인자임을 인정해야 돼요 나는 가해자거든 죽을 때까지 내가 가해자구나 이것만 잊지 않으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돼요 오늘 여러분들 가운데 이게 들리시면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돌이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거예요. 바울이 인생 내 인생 여전 끝나고 갈 때까지 우린 사단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지만은 예수 인도하셨네 그 고백만 있으면 성령의 공의를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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