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우리들교회/QTIn/2023 표어 이제는 안심하라 (행27:22)

Today
Yesterday
Total
  • 느혜미야 13장 23절~31절 - 불신결혼
    주일설교 요약 2022. 5. 17. 11:13

    본문: 느혜미야1323~31절 (2016년 1월 31일)

    제목: 불신결혼

    설교자: 김양재

     

         미국의 주간지 타임이 특집기사로 로맨스에 과학을 다루었다. 56가지 설문을 통해 사진을 보여주고 제목을 붙이게 한다음 협상가, 건축가, 탐험가, 연출가 용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각자에게 맞는 타입으로 소개해주는 중매산업을 다룬 것이다. 심리테스트와 비슷한 질문을 통해 그 사람의 테스토스테론, 옥시토신 분비정도 등을 알아 볼 수 있게 하여 첫 소개팅 자리에서 그들의 화학물질이 서로 반응하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이 중매 성공 비결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중매는 과학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평생을 같이 할 배우자를 찾는 중매가 과학일까요? 데이터와 화학반응으로 좋은 상대를 만난다고 하여 행복한 결혼 생각이 보장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침대는 과학일지 모르지만 중매는 과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도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중매하려고 하나님의 열심으로 보냈습니다. 결혼에 필요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믿음이다. 우리의 자녀와 배우자를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중매자가 되어서 믿음의 결혼을 위해 힘써야 한다. 오늘은 이제 모든 것에 완결판, 십일조와 안식일을 지나서 모든 것의 완결판인 불신결혼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째, 불신결혼의 배후에는 악과 음란이 있다. 23절입니다. ‘그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그 때에는 느혜미야가 바사에 가있는 동안 십일조와 안식일이 무너진 그때이다. 이럴 때를 보는 사람이 여전히 느헤미야 밖에 없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야식과 유다교인들이 불신결혼을 시키고도 아무 관심이 없는데 느헤미야가 또 그 심각성을 보았다. 유다사람이 아스돗, 암몬 모압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고 한다. 암몬과 모압은 가나안길 천국길을 방해했던 조상의 원수 이다. 아스돗은 5장에서 성벽 중수를 극렬하게 방해했던 족속이다. 결혼을 하는데 조상의 원수, 내 원수, 가족의 원수라도 상관이 없다. 그 사람이 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만족시켜 준다면 그런것 다 제쳐놓고 결혼을 한다. 왜 이렇게 되었나요. 십일조 관리하는 방을 도비야에게 내어 준 것을 악하다고 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도 악하다고 했다. 그런데 27절에 불신결혼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악한 것이다. 십일조 안식일 지키지 않는 결론이 불신결혼으로 간다. 예수님이 이 세대의 특징이 악하고 음란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물질이 우상이라서 온갖 방법으로 공부하고 성공을 향해 가다가 돈 벌었는데 우리가 돈이 우상인데 돈이 아까워서 어떻게 십일조를 드리겠습니까. 안식일도 경제활동을 하느라고, 돈 벌겠다고 못 지킵니다. 그렇게 돈을 벌다가 하나님께 드리기가 어렵죠. 자동적으로 그 돈가지고 음란으로 가게 된다. 음란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솔로몬도 돈이 생기니 음란으로 갔다. 믿음없이 돈 많은 집 치고 편안 집이 드뭅니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두번이혼을 하고 남성 편력이 있는 유명한 모델과 대통령이 되고난 직후에 세번째 결혼을 했다. 그 모델의 누드 사진이 전세계 잡지에 실렸어도 전혀 굴하지 않고 결혼을 했다. 그 여자도 이혼 전력이 있다. 사르코지의 두번째 부인도 자신이 주례를 맡았던 결혼식의 신부였는데 사르코지가 그 부인을 빼앗아 두번째 결혼을 하고 그리고나서 세번째 결혼까지 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일국의 대통령을 지냈다. 프랑스가 가톨릭 국가로 믿는 나라이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파리대학을 나오고 얼마나 질주를 하면서 그 자리까지 왔겠습니까. 이렇게 왔지만 최고의 지도자 조차도 백성들에게 보여줄 윤리와 도덕이 아무것도 없다. 아무 죄의식이 없이 최고의 음란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남자들이 다 사르코지를 부러워 한다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어떠세요? 가슴에 손을 얹고 나눠보세요. 사르코지가 부러운가 안부러운가. 오늘 나눔에서 다뤄보세요. 이 세대야 말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 가슴을 치지 않는 시대이다. 서로 선호도가 다를 수 있어도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모든 것의 배후에는 돈이 있다. 물질 없이 어떻게 여자를 데려올 수 있겠습니까. 권세, 지위를 가지고 돈이 있기 때문에 특히 이방 여자를 취하는 것이다.

     

    나눠보십시오.

    나와 자녀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무엇인가? 안 믿는 이성친구와 교제하는 것을 느헤미야처럼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까? 합리화 할 이유가 얼마든지 있어도 결국에는 돈을 좋아하는 나의 악과 음란 때문에 불신결혼을 시키고 싶고 하고 싶다는 것을 인정합니까?

     

         두번째는 불신결혼의 결과로 문제아가 생깁니다. 24절입니다.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아스돗 방언이 블레셋 말인데 유다 말을 못하는 것이 왜 심각합니까? 유다말이 하나님 말씀을 듣는 통로인데 그것을 못하니까 예배를 드릴수도 성경을 읽을 수도 없습니다. 엄마가 블레셋 방언을 하고 유모와 여종이 모두 블레셋 말을 하니까 아이들이 유다말을 절반 쯤 하다 다 못하게 된다. 유다사회는 모계사회로 엄마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때문에 아내가 중요하고 여자가 중요하다. 유대에는 여자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치고 남자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과의 결혼으로 포로로 잡혀가고 여러 징계를 받았는데도 돌아와서도 여전히 이방문화에 세멸화 되어서 이방 사람과의 결혼을 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무너지고 국가가 사라질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몇 대째 믿음을 지켜오다가 안 믿는 여자가 집에 들어왔어요. 온 가족이 믿음이 사라질 수 있다. 2627절입니다.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르시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그를 범죄하게 하였나니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느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느헤미야가 가장 처참한 불신결혼의 예로 솔로몬의 이야기를 한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그 지혜를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다윗과 밧새바의 불륜으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태어났어도 다윗의 아들들 중에서 왕위를 계승한 정말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맛본 사람이다. 삼천개의 금언을 짓고 성전을 완성하고 일천번제를 드리고 그렇게 대단한 솔로몬이 하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일이 현실로 일어난 것은 이방여인 불신 여인을 취했기 때문이다. 이방여인이 그로 범죄케 했다고 했다. 각 국의 공주들 데려왔다. 세상적으로 모든 최고의 학벌을 가졌겠죠? 열왕기상 11장을 읽어보시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말할 수 없는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무역으로 세계 강국을 이루게 하셨다. 십일조 신앙, 안식일 신앙 성전을 짓고 예배를 열심히 드리던 솔로몬이 달라졌다. 솔로몬이 여자에게 미쳐서 여호와를 떠났다. 하나님이 두번이나 눈에 보이게 나타나셔서 진노하시고, 갖은 말씀으로 돌이키라고 하셔도 솔로몬이 돈과 권력이 생기니까 사르코지는 세번 네번이지만 솔로몬은 천번이잖아요. 말씀이 안들린다. 심지어 예루살렘 앞 산에 이방신을 위한 산당까지 지어 여자들에게 바쳤다. 솔로몬이 이러면서 아들 르호보암에게는 잠언을 썼어요. 자기는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안들으면서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듣는다고 썼어요.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음녀의 호림에 넘어가지 말라고 보석같은 잠언을 썼어도 아들 르호보암에게 보여준 삶은 천명의 여자를 바꿔가며 거느린 것이다. 여기에서 어떻게 문제아가 안나오겠습니까. 어린 나이에 못 볼 것을 보고 자란 르호보암이다. 생각해보자. 천명의 여자와 하루도 안빠지고 잔다고 해도 여자 한명이 솔로몬을 만날 차례를 기다리려면 3년 더 넘게 기다려야 한다. 차례가 안돌아오는 여자들은 외로움에 한이 되어 자기가 섬기던 밀곰신 등을 섬기면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거에요. 오뉴월 여자의 한이 서릿발이 맺힌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르호보암에게 선한것이 있었겠습니까? 은쟁반에 옥구술 같은 기가막힌 말을 아버지가 해도 아버지의 삶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결국 나라를 지키지 못했고 하나님이 경고하신대로 열지파를 잃어버리고 남북이 갈라지고 후에 바빌론 포로로 끌려가게 된 모든 원인이 솔로몬에게 있었다. 이방여인을 취한 것이 범죄 중의 범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적용

    문제 자녀의 방황이 불신결혼의 결론인 것을 깨닫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말로는 믿음을 강조하면서 세상의 가치관을 온 몸으로 보여주면서 자녀의 불신결혼을 조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번째 그러므로 불신결혼은 막아야 한다. 느헤미야가 어떻게 막았는지 보겠습니다. 솔로몬 왕도 대제사장 엘리야식도 불신결혼의 예외가 없는 모습을 오늘 우리가 보았다. 25절입니다. 이 불신 결혼에 대해서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느헤미야는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고 때리고 머리털을 뽑았어요. 여기서 불신결혼을 막을 사람은 느헤미야 한 사람밖에 없는 것을 본다. 유다 귀인과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대제사장들까지 혼인으로 원수와 동맹을 맺고 가서 잘 살면 되지 불신결혼이 무슨 상관이야. 믿게하면 그만이지 하고 있으니까. 지금 느헤미야가 목숨을 걸고 막고 있다. 거기에 말할 수 없는 영혼의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고통으로 이땅에서 주님을 만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책망하다라는 리브 동사는 11절에서 십일조 문제로 민장을 꾸짖을때와 17절에서 안식일을 안지키는 유다 교인들을 꾸짖을때 사용한 것과 같은 동사로 불신결혼을 책망한다. 십일조, 안식일, 불신결혼이 각각 사안은 달라도 영적으로는 다 똑같은 종류의 죄악이라는 것이다. 몸의 털을 뽑는 것은 심한 모욕인데 이 동시대에 선지자 에스라는 에스라 93절에서 불신결혼을 막기 위해 자기 수염을 뜯었다. 유다 공동체 정체성이 무너지는 일이기에 심한 모욕으로 경고를 한다. 이방여인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문자적으로 민족적 혈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믿음과 불신의 문제인 것이다. 믿음의 모델로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신과 불신을 보여주시는 것이지 모압과 암몬과 아스돗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불신결혼을 막아야 할 지도자들이 이방인과 통혼을 했고 이것이 심각한 일이다. 교회 예수 천명, 수 만명이 모인다고 해도 불신결혼을 심각하게 어기지 않으면 백년 후 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불신결혼으로 태어난 자녀들이 유다 말을 못 쓰고 성경을 못 읽게 되었듯이 교회도 무너지게 된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의 결혼이 정말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결혼을 막기 위해 어떤 조롱과 모욕도 지나치지 않다. 결혼 전의 조롱은 일시적인 것이다. 불신결혼 후의 고통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어떤 모욕을 주더라도 결혼 전에 막아야 한다.

         느헤미야는 모욕을 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2728절입니다.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결혼한 대제사장의 증손자를 내 쫓고 자리를 빼았았다. 십일조 문제에서 대제사장 엘리아십을 꾸짖지 않았죠. 민장들을 꾸짖던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렀던 불신결혼 만큼은 두고 볼 수 없어 이 제사장을 쫓아냈다. 왜입니까. 십일조는 돌이킬 기회가 있죠. 불신결혼은 하고 나면 돌이킬 기회가 없잖아요. 가장 중요한 것이 불신결혼이라는 것은 그만큼 불신결혼에 구원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지혜고 타이밍이고 그것은 사랑이다. 늘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경이 보여주고 있다. 느헤미야가 이야기하면 대제사장이 깨닫고 돌아와야 하는데 느헤미야의 권고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고 끊지 않았기 때문에 쫓아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적용해서 안 믿는 배우자를 집에서 내쫓아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결혼 전에는 불신결혼을 하지 말란 뜻이고 이미 결혼을 했다면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나의 이방 가치관을 쫓아내라는 뜻이다. 느헤미야가 쫓아냈다고 해도 제사장으로서 회개하며 안 떠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제사장 직분을 버리고 떠났다. 왜 그랬을까요. 직분과 비교가 안되는 장인 산발랏의 돈과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증손자 제사장이 므낫세인데 산발랏이 그를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과 똑같은 성전을 그리신 산에 세워줬다고 한다. 그래서 므낫세가 그리신 산의 성전에 제사장이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하고 똑같은 성전을 지워줄 재력이 있으니까 그 제사장 직분을 던지고 산발랏에게 간 것이다. 돈이 많으면 누구의 말도 안들린다. 느헤미야가 왠 느헤미야, 아이쿠 별 꼬락지 다 봤네 이러면서 느헤미야를 전혀 존경하지 않는다. 뭘 말라비틀어진 느헤미야야? 나한테 말할 사람이 그 누구야? 그래서 30절에 보면 내가 이와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믿음대신 권세를 택한 제사장은 떠나야 한다. 그가 떠나야 이스라엘 공동체가 살아난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 목적으로 떠날때 요한복음 1331절은 예수님은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다고 하셨다. 유다가 떠났는데 예수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았다고 하는 것, 명예와 권력과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어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도저히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 불신과 의심으로 공동체를 흔드는 사람은 떠나게 둘 수 밖에 없다.

         그래서 29, 31절에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지금 십일조, 안식일, 불신결혼 할 때마다 나를 기억해달라고 하나님 나를 기억해달라고 그들을 기억해 달라고 한다. 느헤미야는 29절에서는 죄를 범한 그들을 기억해달라고, 31절에서는 내가 백성들에게 가르쳤다고, 십일조를 드리도록 가르쳤다. 그러니까 나를 기억하사 복을 달라고 기도한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을 두려워하면 불신결혼을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상급을 최고의 상급으로 여기지 않으면 불신결혼 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대제사장 엘리야십도 느헤미야의 말을 안들었는데 누가 이 말을 듣겠습니까? 불신결혼을 막는 것이 너무나 외롭고 힘든 길이기에 하나님께 기억해달라고 계속해서 간구한다. 여러분 십일조하라는 소리보다 불신결혼 하지 말라는 소리가 훨씬 어려운 이야기다. 막상 여러분들이 그 입장에 닥치면, 모든 것을 갖췄는데 하지 말라고 하면 떠난다. 교회를 떠난다. 솔로몬 외에도 성경에는 많은 불신결혼의 예가 기록되어 있다.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유다왕의 계보에서 성군인 여호사밧 왕이 있었다. 역대하 21장에 보면 여호사밧이 성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 여호람을 북이스라엘에 아합과 이세벨의 딸과 불신결혼을 시켰어요. 아합이 우상을 섬기는 악한 왕이었지만 상아궁을 지을 정도로 정치를 잘하고 제물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왕이 우상을 섬기는 아합과 이스벨의 딸의 며느리로 맞았다. 이게 성군인 여호사밧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은 아합의 북이스라엘이 요셉의 후손이요 강성한 왕가의 딸이니까 얼마나든지 합리화할 이유가 있었다. 열왕기하 11, 역대하 22장에 보면은 사돈관계가 된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바알의 딸로 바알의 딸이고 바알을 섬긴 왕의 딸이에요. 세상적으로 보면 아버지도 왕, 남편도 왕, 아들도 왕입니다. 딸 아달라도 유다로 시집을 갔지만 엄마 그대로 닮아서 아버지도 왕, 시아버지도 왕, 남편도 왕이었다. 그야말로 로얄 패밀리 중의 로얄 패밀리였다. 그럼에도 권력욕이 얼마나 대단한지 만족을 못하고 아들 아시야가 죽었는데 손자들을 자기 손으로 다 죽이고 왕의 씨를 진멸하고 스스로 여왕이 되었어요. 여자가 권력욕이 없는 것이 아니에요. 무섭게 공부하고 무섭게 성공했을 때 이런 결과가 나온다. 결국 열왕기상 21장에 하나님께서 이들을 다스리셔서 아합과 이세벨을 포도원에서 개 들이 그 피를 핧는 비참한 죽음 맞이하게 하셨고 역대하 23장에 아달랴도 왕궁에서 쫓겨나 백성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아달랴로 인해서 유다왕의 계보가 끊어질뻔 했어요. 그것은 불신결혼으로 인해 예수님의 계보가 끊어질뻔한 엄청난 위기가 온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에 예수님의 계보에서 유다왕들이 언급될 때 놀랍게도 아달랴의 아들 왕 4대는 모두 빠져있었다. 아달랴 뿐 아니라 아들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월성신을 섬기고 포악을 떨던 므낫세도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갔어요. 자식을 우상의 제물로 불태워 바친 아하스왕도 올라갔어요. 그런데 정말 보이지 않는데 명맥은 이어갔지만 아하시야, 아달랴, 요하스, 아마샤는 네 왕이 그 예수님의 계보에서 빠진거에요. 유다왕의 계보에 올라갔는데 그 계보에는 빠진거에요. 예수님의 계보를 위협하는 불신결혼은 도덕적인 죄와는 비교가 안되는 무서운 죄이다. 불신결혼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아달랴의 족보이다. 여호사밧이 자기 아들 여호람을 불신결혼 시켰지만 여호람은 자기딸 여호사보앗을 대제사장과 결혼 시켰다. 왕족이 대제사장과 결혼하는 것이 참 힘든 일인데 이렇게 믿음의 결혼을 시켜서 여호사보앗이 아하시야의 아들이자 자기 조카 요하스를 그 어머니 아달랴가 손자들을 죽이는 가운데 성전에 숨겨서 살려냈다. 이 믿음의 결혼 덕분에 예수님 족보가 살아났다. 자 그래서 이제 이런 같은 이야기가 여호수아에도 또 있어요. 느헤미야에도 열왕기에도 있고 여호수아 236,8, 11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론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이하며 서로 왕래하면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우리가 덫이나 올무는 먹이로 위장이 되서 처음에는 그 정체를 모른다. 나의 불신결혼이 이방세력이 어떠한 악영향을 끼칠지 모르기에 하난도 해로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덫에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다. 결국 사냥꾼에 의해 생명을 잃게 된다. 그것은 공포뿐 만 아니라 실제적인 채찍과 찌르는 가시가 된다. 실제적인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가나안 땅에 거한다고 해도 아무리 교회를 다니고, 겉으로 멋있는 돈과 모든 것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이 수반되지 않으면 멸망의 땅이다. 영적인 아름다운 땅을 멸시했기 때문에 육적인 아름다운 땅에서도 멸절이 되도록 하시는 것이다. 혼인이라는 것은 육체의 결합일 뿐 아니라 영적인 결합이기에 불신결혼은 심각한 배교이다. 오늘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멸절하리라 당하리라 하신다.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지 말라는 것이 고난과 핍박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고난과 핍박이 오기도 하지만 영원한 생명으로 나가는 구원을 이루는데 결정적으로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느헤미야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유언을 하면서 멸절하고 망하고 하면서 진노의 말을 훨씬더 많이 했다. 이렇게 강조에, 강조를 해도 여호수와 시대에 사람들은 가난안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불신결혼 했다. 우리가 불신자와 결혼해서 그럭저럭 살고 믿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잘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망하는 인생이다. 제가 이 불신결혼을 교회 다닌다고 신결혼이고 안다닌다고 불신결혼이 아니다. 정말 우리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불신결혼이고 이방인과의 결혼이 수많은 이방우상을 집으로 가져오기도 한다. 안믿는 사람은 공부가 우상이고 명예가 우상이고, 외모가 우상이고 학력이 우상이어서 다 그 우상을 섬기기에 바쁜 것이다. 여호수아가 숨기지 직전에 이방나라 이름을 부르지도 말라, 가지도 말라, 섬기지도, 절하지도 말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하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이론적으로 그냥 교훈을 하는데 딱 한가지 구체적으로 적용실례를 이야기한 한가지가 불신결혼이다. 이것이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이다. 네가 부모가 되어 마지막 숨지기 전에 해야 할 말은 불신결혼하지 말라이다. 골로새서도 총체적인 악이 불신결혼이라고 했다. 창세기에도. 어디서나 불신결혼 끝도 없이 이야기 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주제가 불신결혼은 안된다는 것이다. 유언으로까지 말하는 여호수아의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오늘 여호수아서에도 나와 있는데도 김목사만 저렇게 불신결혼을 반대하더라 이러시겠습니까? 김목사가 아니라 느헤미야, 여호수아 마지막 죽으면서 이야기하는 이 마음을 아시기바랍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올무가 되고, 덫이 되고, 가시가 되고 채찍이 되어서 너무 힘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죽기전에 마지막 했던 사역도 바로 신결혼 사역이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베필을 구하기 위해 종 엘리에셀을 보내서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해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했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자녀의 결혼에서 부모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결혼은 오로지 자녀의 선택에만 맡기고 지들끼리 좋으면 되지 뭐 그러면 안됩니다. 자녀가 믿음의 결정을 하도록 도와줘야 하고 자녀가 믿음의 결혼을 소원하도록, 어떻게 삶으로 본을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믿는 사람들끼리 결혼해서 교회를 아주 형식적으로 다니는 이 부부들이 너무 많아요. 삶으로 본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기복이 짝 깔려 있기 때문에요. 이건 너무 중요한 겁니다. 불신결혼은 완전히 부모의 책임이고 부모는 온몸으로 세상을 좋아하면서 오직 립서비스로만 믿음을 들먹이고 너는 믿음의 결혼을 해라 그러면 그게 먹히겠습니까? 어떤 부모님은 잘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안의 형제와 오랫동안 사랑을 키워온 딸의 결혼을 몇년간 반대합니다. 속으로는 남자의 직업이 못마땅하면서 겉으로는 이렇게 협박한다. 내가 기도해보니까 너희들이 결혼하면 하나님이 친다고 그러더라. 도대체 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다니는데 이렇게 기복신앙에 젖어 있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우리들교회라고 없겠습니까? 다음에는 그걸 좀 알려드려야 겠어요. 결혼 좀 시키라고. 협박을 좀 해야 겠습니다.

         느헤미야 1장부터 7장까지 성벽 중수가 끝나고 8장부터 13장까지 힘든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느헤미야가 책임자를 배치하고 언약을 갱신하고 도장을 찍고 개혁을 주도했지만 느헤미야가 바사로 돌아가자마자 대제사장이 도비야와 연락을 하고 십일조방을 내줬고 십일조가 무너졌고, 경제적인 이유로 안식일을 범하고 대제사장의 증손자까지 이방여인과 결혼시켜 모국어를 잃었다. 감격스러운 성벽 낙성식을 거행하고 모든 일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종합선물세트처럼 문제가 터진다. 성경이 진실한 기록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도 다 들어야 한다. 우리가 십일조하고 안식일 지키고 문제가 안생깁니까? 병에 안걸립니까? 다 똑같이 생긴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감격속에서 평생 살다가면 좋겠지만 죽을때까지 수많은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이것이 있어야 될 일인거다. 문제를 만나는 거다. 이상한 일로 여기면 안된다. 십일조 해 놓고 이상한 일로 여기시면 그것이 기복적으로 헌금을 했다는 뜻이다. 때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다. 신앙고백이 있는 자녀를 키워내야 하고 신앙고백이 있는 자녀들끼리 결혼을 시켜야 한다. 그 외에는 다 불신결혼이다. 말씀을 듣기를 싫어하는 거다. 그냥 저는 진짜 한주일도 안빠지고 교회오면 눈물이 난다. 나눔을 읽고 믿음이 없는 그분들이 생각하면 뭘 할때마다 그 나눔들이 생각난다. 인간이 최고로 무서워하는 높이가 11미타라고 해요. 공수부대 훈련시에 11미터 높이에서 한번 뛰어내리고 나면 더 높은 곳에서 얼마든지 뛰어내린다고 한다. 11미터에서 못 뛰어 내린다는 거에요. 그 최초의 십일조가 바로 그 11미터다. 너무너무 못한다는 거에요. 어떤 사람은 나눔을 보니까 십일조 결사반대, 내 돈이 아까운데 교회에 돈을 내냐. 믿음의 초보요 신앙고백이 안 된 분도 계세요. 그런데 최초의 십일조가 아깝고 무서워서 안하고 그래서 안식을 안지키고 불신결혼으로 가면 인생에 많은 문제들 앞에서 거의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최초의 십일조를 지키는 사람이라면 주일에 돈 벌 욕심으로 안식일을 범하지 않을 거다.

         어떤 분은 우리들교회와서 처음으로 신앙생활 시작하고 정말 열심히 주일예배를 다니는데 어쩔수 없이 일을 해야 한다. 두주일에 한번씩. 못오는 날 주일예배를 두세번씩 듣고 십일조도 하고 하는데 안식일 안지켜서 그치만 목사님이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다고 해서 위로를 얻었다고 제가 그런 분 보고 안식일 안지킨다고 그러는것 아니다. 안식일을 지키면서 안믿는 사람과 연애하기는 너무 힘든거죠. 불신결혼 위험도 줄어들 거에요. 그래서 십일조와 주일성수훈련을 철저하게 시키는 것이 불신결혼 막는 지름길이다. 안 믿어진다고 세례를 안받고 십일조를 안하고 주일을 성수를 안하면 당연히 자녀들은 불신결혼으로 이어진다. 십일조와 안식일을 목숨처럼 지키는 사람이 안믿는 배우자와 살 생각이 들겠습니까? 제가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교회에 재정을 위해서 여러분들보고 십일조를 하라고 합니까? 저는 십일조 설교를 거의 한적이 없어요. 죽자고 하는 것은 불신결혼이야기에요. 성경대로 있었기 때문에, 느헤미야에서 연거푸 나와서 했었어요. 성경에 본문에 나올때는 하지만 성경대로 안식일을 지키게 하고 십일조를 비교적 하게 하고, 그리고 불신결혼을 하지 않게 했더니 교회가 부흥되었어요. 상상치도 못했어요. 훼파된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시킨 능력의 지도자 느헤미야가 마지막에 정말 피를 토하듯이 십일조, 안식일, 불신결혼 설교로 마무리한다. 이것은 잔소리가 아닌 축복의 메세지로 들으시길 바란다. 느헤미야처럼 저도 십일조, 안식일, 불신결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세가지를 잘하게 하는데는 절대적으로 지도자가 중요한 것을 봤다. 느헤미야가 사라지니까 아무도 안해요. 이것을 어떻게히면 좋은가 그 생각이 든다. 십일조 설교를 듣고 거부감이 분명히 드는 분들이 있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십일조가 날마다 제물이냐 하나님이냐 선택하는 것. 선택하는 훈련을 햇으면 불신결혼 앞에서 어마어마한 부가 있고, 외모가 있고, 권력이 있어도 십일조 훈련을 해 본 사람은 불신결혼을 안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십일조 아깝다고 십일조 설교는 기분이 나빠도 불신결혼 설교는 기분이 안나빠요. 눈앞에 보이는 것만 아까워서. 그렇죠?

         십일조 설교는 듣고도 떠나도 불신결혼 하지 말라는 것은 그때는 안 떠나도 막상 할 때가 되면 떠납니다. 정말 기분 나빠합니다. 대제사장 엘리야십도 불신결혼도 했는데 누가 이야기하겠습니까. 아다시피 이렇게 힘든 메세지를 날마다 전하는 것은 여러분을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닌 복을 받기 위해서다. 문자적으로도 말라기 3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이 구절을 오늘 처음 읽었어요. 12년만에. 복 받으라고 이 구절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다. 자신이 있으시니까 시험하여 보라고 했는데 여러분도 내가 죽은뒤에라도 시험해보시길 바랍니다. 이번에 십일조 나눔을 했어요. 그랬더니 십일조 간증들이 많더라고요. 안하는 분들도 꽤 많더라고요. 저는 그 지경인지 몰랐어요. 안하는 분들도 솔직하게 안한다고 해주시니 그것도 감사해요. 아주 베짱이 든든하세요. 말씀하신 것은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공개적으로 십일조 하냐 안하냐 물어보는 교회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막 물어보세요. 여러분들을 위해서. 저는 우리들교회를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은 십일조를 한 신앙고백을 한 분들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라 생각해요. 정말 100% 십일조 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해요. 온통 신앙고백이 있다면 소도 잡고 말도 잡고. 여기는 100%, 그교회는 진짜다라는 소리를 듣게 될 거에요. 믿음의 결혼을 한 사람들이 모일때 튼튼한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세워질거다. 그래서 지나고 보니까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들교회가 창립한지 12년 되었어요. 청년부에 2000명이 넘는 부흥이 일어났고, 청년들이 신결혼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기 때문이에요. 청년들이 나와서 매주 예배때마다 간증합니다. 우울증, 낙태, 혼전 순결 못지켰고, 아이까지 낳았다고. 시집 장가 안간 청년들이 이렇게 얘기하니까 혼삿길 막힌다고 걱정했지만 간증으로 믿음의 공동체에서 검증이 되었기 때문에 간증한 청년들이 결혼도 잘되고 잘 사는 것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치열하게 신결혼을 했기 때문에요. 지금 알다시피 31만쌍이 결혼을 하고 12만쌍이 이혼하는 시대에요. 거의 40%에 가까이 결혼이 깨어지는 상황에서 2000명이 넘는 우리들교회 청년부 아이들이 문제가 많은데 단 한커플도 이혼을 안했다는 것은 정말 불신결혼을 안하고 최고로 우리들교회를 축복하신 것은 아무도 이혼을 안했다는 것이고, 신결혼 했기 떄문에 이혼을 안했어요. 이 아이들이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했기 때문에 신결혼에 대한 너무나도 확고하기 때문이다.

     

    적용

    머리털을 뽑고 때리고 책망하는 느헤미야의 사랑으로 불신결혼을 막고 있는가? 엄마는 말이 안통해 아빠는 광신자야 이런 말을 듣기 싫어서 교양있게 방관합니까?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막는다고 막아지겠습니까? 자녀의 불신결혼을 막기 위해 지금부터 십일조와 안식일 신앙을 지키며 믿음의 결혼으로 인한 축복의 본을 여러분들이 보이셔야 자녀들이 불신결혼을 안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하나도 안 섬기면서 자녀들이 신결혼 하겠습니까? 모든 신앙은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수될 줄 믿습니다. 참으로 우리들교회에 온전한 십일조를 하는 성도들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복을 받으시는 거에요. 하나님이 그들의 신앙고백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우리들교회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생각하고 여러분들도 그 대열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