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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6장 32절~7장 2절 - 말씀을 들을지어다주일설교 요약 2024. 3. 6. 03:36
2023년 12월 31일
말씀을 들을지어다
열왕기하 6장 32절~7장 2절
김양재 담임목사
'성령의 나라'라는 올해 첫 주 설교 기억하시죠? 그런데 이제 마지막 주 설교가 '말씀을 들을지어다'예요. 작년 사도행전에서 난파된 배가 한 섬에 걸리면서 올해 표어가 이제는 안심하라였는데요. 이 말씀을 떠올려야만 할 힘든 상황들이 참 많았어요. 정말 많은 군대들이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세계를 겹겹이 에워싸고 가슴을 철렁철렁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속에 생색과 억울함, 책임 회피와 불신앙, 분노와 미움 등 수많은 군대의 귀신들로 나타났습니다. 그렇지만 결론은 올해 마지막 날 이렇게 우리가 여기에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잖아요. 이제는 안심하라 맞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드리고요. 여러분들도 불안 속에서 안심하며 살아내느라고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 서로 감사하고 축하하고 격려하는 박수를 서로를 위해서 한번 칠까요? 주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참 잘했어요. 그런데 이제 생색과 억울함의 정체를 알았으니까 됐어 그러면 됩니까? 여러분 어떤 상담을 받아도 그것은 병명만 인식한 것이에요. 내 속에 군대 귀신을 쫓기 위해서는 이 만고의 진리가 뭔가 하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장 쉽고도 어려운 처방인 거예요. 오늘도 여전한 방식으로 이 어려운 말씀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늘 말씀으로 또 잘 들어보겠어요. 항상 성경은 인간론이라고 했는데 오늘은 장로들과 여호람과 장관이 보여주는 인생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어요.
말씀을 들으려면 첫째 말씀의 집에 함께 앉아 있어야 합니다. 이 장로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게요. 32절에 그때에 엘리사가 그의 집에 앉아 있고 장로들이 그와 함께 앉아 있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아들이 내 머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사마리아가 아람군에 에워싸여 끔찍한 재앙을 당하고 있어요. 여호람 왕은 엘리사 때문이라고, 엘리사를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그냥 펄펄 화를 내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 엘리사가 뭘 하고 있죠? 엘리사가 이스라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사역을 했잖아요. 근데 이때는 사마리아 집에 가만히 머물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여호람 왕에게 공격과 방어할 때를 알려주지 않았어요.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 알려주지 않기가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엘리사는 혼자 있지 않네요. 누가 같이 있나요? 사마리아의 원로들 장로들, 즉 이스라엘 전체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에요. 그런데 이 장로들이 웬일입니까? 지금 엘리사의 집에 함께 앉아 있네요. 히브리어로 여기 앉아 있다는 동사 야시아브는 거주하다 머물다는 뜻도 있어요. 거주할 처소를 세웁시다 할 때 바로 그 거주를 말합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제자들이 거주하는 초소는 엘리사 선생님 앞에서 앉아서 배우는 신학교라고 했는데 기억나시나요? 따라서 지금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엘리사와 함께 앉아 있다는 것은 연말 모임하듯 한가하게 지금 놀고 있는 게 아니고요. 엘리사로부터 말씀을 듣기 위해서 그의 집에 모여서 함께 앉아 있다는 거예요. 에스겔이 8장 20장에 이스라엘이 망하기 직전과 망한 후에 선지자 앞에 물으려고 왔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 8장에 그 망하기 직전에 들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망한 후에 오니까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고 했죠. 오늘 말씀이 들리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사는 길이에요.
이들이 왜 이렇게 심각한 모임을 하고 있겠어요? 지금 나라가 큰 위기에 빠졌잖아요. 망하게 되었잖아요. 근데 이것이 성을 에워싼 아람군 때문이 아니고요. 나를 에워싼 군대를 통해서 내 안에 진짜 원수를 보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임금님께서 진짜 원수인 자기 죄를 보지 못하는 거예요. 오히려 있는 대로 성을 내면서 그냥 엘리사 자기를 도와준 엘리사 선지자를 죽이겠다고 하고 있어요. 진짜 망하게 된 거예요. 진짜 심각한 위기의 영적 위기예요. 육적인 위기는 거기서 회개하면 사실 하나도 위기가 아니에요. 그런데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영적인 위기는 고칠 약이 없는 거예요. 답이 없는 위기입니다. 답이 없는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엘리사 선지자가 거주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집에 들어가 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앉아 있어야 합니다. 뭔가 내가 원하는 게 있는 듯한 모압땅이 앞에 보인다고 말씀의 떡집 베들레햄을 떠나면 망하는 거예요. 여러 왕처럼 이렇게 자기 처소에 가만히 앉아서 자기 생각으로 자기 감정으로 화내고 슬퍼하고 판단하고 절망하면 안 돼요. 그러면 더 큰 죄악만 싸울 뿐입니다. 지금 여호람 왕도 분노하다가 결국 진짜로 엘리사를 죽이려고 지금 사람을 지금 보내고 있죠. 답이 없는 문제에서 내가 중심이 되려 하고 나를 주인공으로 여긴다면 더 깊은 문제로 빠지고 말아요. 왕국 같은 자기 처소는 늪이에요. 늪이에요. 답이 없는 남편, 답이 없는 아내 앞에서 내가 중심이 되고 내가 주인공이 되려 하면 이혼밖에 할 게 없어요.
그런데 이혼은 문제 많은 결혼에 대한 답이 아니에요. 더 큰 고난으로 빠져드는 늪인 거예요. 우리가 그런 간증을 얼마나 많이 듣습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장로들이 이렇게 선지자와 함께 앉아 있었던 적이 없어요. 우리가 11기상 20장 21장에 보면 장로들은 항상 그 이상은 아편에 있었어요. 또 이세벨의 지시대로 나봇을 죽인 주동자들도 다 장로들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망하게 되었으니까 먹을 게 다 없어져서 심지어 자기 자식까지 잡아먹는 삶아 먹는 백성이 생기니까 드디어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온 거예요. 자기들이 섬기는 왕이 너무 고집이 세고 이상한 거 알아도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것이 대단하니까 날마다 그냥 왕 앞에서 지당하십니다. 전하 이것만 외치다가 이제 정말 다 죽게 생겼으니까 자신들의 왕궁과 저택과 요새에서 어떤 답도 찾을 수가 없게 되니까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먹을 게 하나도 없게 되니까 그제서야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이제 말씀의 집에 와서 앉았어요. 답이 없는 문제가 생겼다고 원망하며 화내지 마시고요. 그 문제로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씀의 집인 교회에부터 가게 되었다면 잠깐의 힘든 고난으로 영원히 사는 영생을 얻었으니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호람이 지도자잖아요. 한 사람이 위정자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다 지도자예요. 만인제사장 시대에 우리로 말하면 평원, 초원, 목자, 부목자 다 아니겠습니까? 근데 욕심이 내려놔지지 않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늘 펄펄 뛰는 거예요. 육이 질그릇이 아니고 아직도 금 그릇이기 때문에 천지분간이 안 되는 거예요. 이제 개미 군단이 이만한 지렁이가 죽었는데 그거를 달려들어서 영차영차 하면서 개미 집으로 끌어가는 것을 보았어요. 그런데요. 세상에 순식간에 지렁이를 옮기더라고요. 여기서 이렇게 먼데 정말 근데 그래서 제가 그걸 따라가 봤잖아요. 근데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내가 한 번 밟으면 끝이잖아요. 언제 죽을지 그걸 모르고 정말 열심히 부지런히 의롭게 먹을 것을 그렇게 모으더라고요. 세상에 의인들의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의인이고 죄인이고 하늘에서 보면 다 똑같이 저 하나에 불과하잖아요. 그죠? 아니 보이지도 않아요. 그래서 이제 부부 목장에서 권찰님이 목자님 고발하는 나눔을 하는데 우리 남편 목자님이 아들에 대한 욕심이 내려놔주지 않아서 내가 답답하다고 아들이 하루 종일 게임하고 방에 들어 누워 있었지만 지금은 밖에 나왔는데 그것에 만족이 안 되는 남편이 안타깝다. 나는 우리 아들이 목자님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생 우리 아들은 아무것도 안 해도 목자님한텐 최고의 은인이다. 그런데 목자님은 왜 자꾸 욕심을 내는지 모르겠다. 아들이 저에게 고생하셨어요라고 하는데 야 너한테 고생했다는 말도 들어보고 너 사람 된 것 같다. 평생 수고했다는 말을 처음 들었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아이가 움직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도리어 목자님을 위해서 지금 기도하고 있어요. 이 목자님이 그냥 아들이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서 회사에서 사원들은 말을 잘 듣는데 아들만 안 들어 그것 때문에 맨날 비교하는 거예요. 여호람 같은 목자님들이 참 많아요. 아내들도 그렇지만 남편들도 더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이렇게 같은 말씀의 집에 앉아 있으니까 이런 나눔도 같이 하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 말씀의 집에 같이 앉는 게 말씀을 듣는 비결이에요. 아셨어요? 또 한 분은 목장에서 제가 살아온 세월을 막 쏟아내는데 듣기 싫어하지도 않고 같이 울어지고 제 소리가 막 찢어지고 갈라진 목소리인데도 다 들어주시는 게 너무 이게 능력이라는 걸 알았어요. 또 한 집사님은 우리가 누구 곁에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좋은 공동체에 묶여가다 보니까 세상적으로 잘난 사람들도 힘든 일이 생기면 다 저한테 물어옵니다. 어떻게 살아내야 하냐고 살려달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이럴 때 전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지금 이제 여러분들이 살아갈 길을 가르쳐주는지 알겠죠 아니 그러니까 이제 일대지를 내가 결론을 말씀드리면 이 장로들이 대단한 장로들이 지도자들이 망하니까 엘리사에게 말씀 들으러 왔다 이 얘기예요. 한마디로 말하면은 아프거나 망하거나 육이 무너지니까적용 질문이에요.
아직도 이제 그 초소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감정으로 화내고 슬퍼하고 판단하고 절망하는 내 생각과 고집과 상처는 무엇입니까? 말씀의 집에 거주하고 있는 것을 얼마나 감사히 여깁니까?
말씀을 들으려면 첫 번째 뭐라 그랬죠? 이제 말씀의 집에 앉아 있어야 돼. 함께 함께 앉아 있어야 되죠. 그죠? 이거 이 대지만 계속 외워도요. 그리고 적용 질문만 외워도 오늘 사회에 나가서 다 상담해 줄 수 있어요. 친구들 만나도 딱 내가 처방 나갈 수 있어요. 이게 바로 리더십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자꾸 들으세요.
말씀을 들으려면 두 번째는 구원을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여호람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어요. 32절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아들이 내 머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의 주인의 발소리가 그의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무리와 말을 할 때 그 사자가 그에게 이르니라. 왕이 이르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오
엘리사는 여호람이 자기를 죽일 사람을 보낸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함께 있는 장로들에게 그 사자가 집에 오면 문 열어주지 말라고 했어요. 엘리사가 사람이 무서워서 숨는 게 아니고요. 아무것도 모르고 왕명에 따라 칼 들고 엘리사 죽이려고 온 사람 왔다가는 또 불말과 불병거 죽기밖에 더 하겠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이 있죠. 지금 그럴 때가 아닌 거예요. 전도할 때도 대상자가 아닌 사람하고는 싸우지를 마세요. 지금 진짜 상대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 엘리사는 분별하고 자기는 왕을 직접 만나겠다는 거예요.
이렇게 늘 진짜 상대가 누군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큐티해라. 이렇게 되는 거 만일 큐티해야 해요. 애먼 사람 잡지 않도록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항상 묻고 구해야 합니다. 마침내 왕이 보낸 사자가 도착했어요. 그러니까 왕의 명령이다. 문을 열어라 사자 문 밖에서 외쳤을 거예요. 근데 장로들은 그동안에는 여우라함한테 쩔쩔 매던 사람들이 다 망했잖아요. 여우람에게 나올 게 없잖아요. 이제 그러니까 절대로 열어줄 수 없다 이런 거를 반역이라 그러지 않아요. 딴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때 그럼 여호람 옆에 있어야 돼요. 지금 나라가 망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는데 이렇게 맞섰겠죠. 근데 진짜로 곧 여호람왕도 도착합니다. 그리고 직접 엘리사에게 말해요.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오 여호람은 끝까지 이 재앙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고 탓합니다.
믿음 없는 그가 보기에는 그렇겠죠. 자기는 아람 군대를 그때 죽이려고 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선지자가 살려 보내라고 했고 그 말씀에 순종했는데 이렇게 포위되어 망하게 되었으니 이 재앙이 여호와 때문이다 외치고 또 외치지 않았겠습니까? 사실 아람과의 싸움도 엘리사가 얘기해줘서 이겼잖아요. 여호람은 감사라는 걸 몰라요. 그래서 여호람의 결론이 뭡니까? 하나님을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근데 여기서 기다리는 기다리라는 말은요. 그냥 하염없이 속절없이 기다리는 게 아니고 기대하고 소망하는 기다림이에요. 구원이 올 줄 믿고 바라며 기다리는 거예요. 다윗이 시편 38편에서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주를 바랐사오니가 바로 주를 기다린다와 같은 말이에요. 또 시편 130편에서는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또 고라자손도 시편 42편에서 내용어나 니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거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다들 이렇게 바라고 기대하는 거예요. 이처럼 평생 광야를 지나는 고난을 겪은 다윗도 대대로 조상의 부끄러움을 떠안고 찬양대로 섬긴 고라 자손도 수치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기다리고 바라고 소망했어요. 이것이 하나님이 만세 전에 택하신 성도의 특권인 거예요. 전후 좌우가 다 막힌 상황에서도 기다릴 수 있는 특권이 택자에게는 있습니다. 반드시 구원을 베푸실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늘 지도자들은 성도들에게 뭘 바라면 안 돼요. 실제로 모세도 홍해바다 앞에서 다들 죽이려고 했잖아요. 그런데 홍해가 갈라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니까 목장에서 목자는 항상 목원들이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거를 이제 기대하고 가면 돼요. 초원들은 목자들이 죽이려고 다 기대하고 있고 저는 이제 또 여러분 모두가 2만 명이 저를 죽이려고 이제 기다리고 있어요.
항상 그렇게 생각하면은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여기시면 안 돼요. 저는 여호람을 보니까 참 끝도 없이 끝도 없이 말을 안 듣더라고요. 여호람은요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포기하는 거예요. 사건 하나 생길 때마다 여호람은 소망을 버려요. 왜 그렇습니까? 기다리는 것 자체가 너무 싫기 때문이에요. 그 대단한 금송아지 섬긴 아합과 이세벨이 뭐든지 다 해주면서 키웠는데 기다릴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어려서 고생은 금지고도 못 사는데 아무리 얘기해도 안 돼요. 왕인데 기다려야 할 일이 뭐가 있었겠어요? 사실 여우람은 이미 메마른 골짜기에 물이 가득 채워져 살아난 기적을 경험했어요. 그때도 난리를 쳤잖아요. 나아만의 나병이 낳은 것도 보고 아니 낳은 것을 보고를 받았을 거예요. 아람이 기습 공격을 할 때마다 공격 지점을 미리 알려줘서 막을 수 있었던 그 기적도 경험을 했어요. 어려서부터 먹고 사는 건 아버지 엄마가 다 해결해 주고 나라의 왕이 되니까 그때부터는 전부 이스라엘이 믿는 나라라고 엘리사가 다 해결해 주었어요. 그걸 우리가 다 보고 왔잖아요. 그런데 지금 사마리아가 둘러싸여 재앙 한 번 일어나니까 또 그런 기적들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망했다고만 하는 거예요. 우리 뮤지컬 상속자가 구속사적으로 이렇게 각본을 쓰고 이렇게 연극을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들으면 잊어버려 지지 않는 거예요. 그냥 팩트 위주가 아닌 거예요. 하나님께 소망을 둘 필요가 없다고 하는 거야. 망했다는 거예요. 그냥 인내가 하나도 없어요. 불신앙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왕자 공주 많아요.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필요한 게 없어서 너무 착해요. 다 그리고 너무 일류예요. 머리를 잘 물려받아서 그러니까 뭐가 죄가 있겠어요? 그죠? 죄가 없는 사람들이 인내를 못해요. 기다리지를 못해요. 그래서 조금 힘들면 늘 망했다가 입에 붙었어요. 너무 유명한 배우가 너무 착하다 그러죠. 근데 너무 초인류가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너무 의인이 되어가지고 기다리지를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자살을 했다고 하죠. 왜 왜 이럽니까? 요새 왜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꺼떡하면 다 죽습니까? 너무 유명한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유명한 사람이 자살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다 따라서 이러는 거예요. 이거 정말 어떡하면 좋아요. 믿음이 없으면 우리 모두 갔겠죠. 오늘 야고보서도 마지막에 기다리라고 해요. 길이 참으라고 해요. 그러니까 그 옆에 그 대단한 친구들 많은데 한 사람도 여기에 대해서 해석해 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영적 진실성의 결론은 인내라고 했습니다. 겉으로 엄청 화려하고 말한 대로 이룰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왕이라고 해도 주님의 말씀 앞에 진실하지 못하면 한시도 참아내질 못해. 그러니 사람과 사건에 의해 이리일비 오락가락 오르락내리락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반대로 겉으로 보여줄 것 하나도 없는 세상 지위 권세가 아무것도 없어도 말씀 앞에 진실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인내를 해요. 인내를 하는가 아닌가로 딱 분별이 됩니다. 하루하루 인내합니다. 날마다 인내합니다. 언제까지요? 끝까지 주님 앞에서는 그날까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인내를 합니다. 인내는 그냥 억지로 꼭 참는 게 전부가 아니죠. 인내는 소망이에요.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기 때문에 나를 에워싼 군대가 가져온 재앙 때문에 불행하지 않고 그것 때문에 자신을 보며 자신이 거룩해져가는 것을 보고 감사를 하는 거죠. 이 땅에 의지하고 소망할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주님이 계신 그 나라를 더욱 기다립니다. 천국이 너무 좋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땅에서 겪는 그 고난을 쫙 지나갈 수가 있는 거예요. 더 좋은 게 있기 때문에 지금 고난을 참을 수가 있어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그러므로 인내해요. 여러분들이 늘 참고 세상만 바라보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생각해 봐야 돼요. 여러분 인생의 목적의 종착점은 구원이에요.
종착점이 구원이기 때문에 지금 어떤 힘든 코스도 포기하시면 안 돼요. 지금 멈추면 손해예요. 지금 다 영끌족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하여튼 간에 이 땅에서도 멈추면 손해 때가 많아요. 지금 코스가 아무리 넓고 편해도 종착력이 죽음뿐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십자가 뒤에 영광이 옵니다. 좁은 길을 지나면 크고 화려한 정말 천국 문이 나옵니다. 오늘도 이 구원을 바라고 기다리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말씀이 구원의 지도이기 때문에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있어요. 또 말씀이 구원의 안경이기 때문에 자꾸 세상 소망 찾으려고 눈을 돌릴 때마다 구원의 안경을 딱 끼고 예수 프리즘의 안경으로 자신을 제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지도를 잘 들고 안경을 잘 끼고 천국까지 잘 따라가야 하겠죠. 함께 따라가실 거죠. 올 한 해도 구원을 기다리는 소망으로 마지막 날까지 왔잖아요. 오늘까지 살아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내년도 하나님의 구원을 끝까지 바라보시면서 날마다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부목자님이 아내가 어느 날 전화를 해서 차에서 자살한 사람을 뉴스에서 보았다고 당신은 꼭 살아있으라고 해서 그날 밤에 많이 울었어요. 근데 이제 그때 아내의 말 때문에 살아났지만 그때 내가 이 목장에 왔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을 했어요. 아무게 집사님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또 아무개 집사님은 사업을 할 거야 말 거야 물었을 것 같고 목사님은 제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해줬을 것 같아요. 정말 파워 오브 파워 킹오브킹 그때 우리 공동체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을 해보았어요. 빗자루라도 잡아서 일을 해야 되는데 얼어죽을 자존심이 있어서 몇 년 동안 그것을 내려놓지 못했어요. 아내는 아이들 키우면서 이 일을 하고 힘들었을 텐데 아내의 말 한마디 죽지 말라는 그 한마디가 너무 고마웠어요. 그러니까 그렇지 구원은 인내해야 하고 좋은 공동체가 너무 중요합니다. 이런 목장 그냥 목장 모임 하나 왔었으면 그렇게 안 갔을 텐데 그 나의 아저씨 얼마나 예수 믿는 영화 같아요.
그죠? 또 어떤 집사님도 목장에서 내가 꼭 적용하지 못해도 다른 사람 적용한거 들으며 물들며 이래서 공동체가 필요하고 물어보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대요. 자기도 이제 어떤 집사님도 권면을 많이 들으면 왔는데 지나고 나니 다 맞는데 이제 당시에는 마음이 상하고 내 상황을 하나도 모르면서 왜 저런 얘기를 하지 그랬는데 이번 여자 목장의 목자님은 정말 최고의 목자님이다. 근데 이분이 목자님이 고난이 많아서가 아니래. 목자님은 큰 고난이 없는데 자기 안의 죄를 잘 보신대요. 이런 게 복장이에요. 꼭 고난이 많아야가 아니에요. 자기 아내 죄를 잘 보는 사람은 남들을 절대로 불편하게 하지 않아요. 늘 이렇게 겸손하게 제가 뭘 알겠어요? 고난이 없어가지고 그런 것도 모르네. 난 여기 와 앉아 있는 게 영광이야. 이렇게 목자님이 얘기를 하니까 내가 이렇게 적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요.적용 질문이에요.
하나님이 내리셨다며 불평하고 원망하며 망했다며 펄펄 뛰는 재앙 같은 사건은 무엇입니까? 생각만 해도 기뻐서 저절로 기다리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배 목장 양육 아니면 목장 개편이에요. 하나님을 기다리는 소망이 있습니까?
예전에 우리 6개월에 한 번씩 꼬박꼬박 개편을 했는데 그러니까 다들 6개월만 지나자 6개월만 지나죠. 이랬는데 여기 1년이 너무 길다는 얘기가 있네요. 예. 글쎄 이제 진짜 6개월에 한 번씩 해야 될 소폭도 개편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래서 날마다 바뀌니까 우리 대인관계에 너무 도움이 돼요. 늘 새로운 사람 만나는 연습을 하잖아요. 말씀을 들으려면 아까 첫째 뭐라 그랬죠? 말씀의 집에 함께 앉아야 돼요. 두 번째는 네 구원을 기다려야 된다고 했어요.
세 번째는 내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을 의지해야 합니다.이건 오늘 이제 장관 단수에 장관 이런 사람들이 다 있지 않겠습니까? 1절 2절이에요. 7장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수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수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때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오.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니가 니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소망하지도 믿지도 않는 여호람 왕이에요. 정말 그 바닥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호람에게 엘리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말씀을 전합니다. 이 여호라함은요. 엘리사가 자기들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걸 모르고 날마다 불평하면서 죽이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목자님들은 이런 것들을 예비를 해야 돼요. 내가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줘도 말씀이 안 들리면 그냥 목자를 죽이려고 해요. 내가 세게 말을 해야지 여러분들이 덜 놀랄 것 같아서 뭐라고요? 늘 목자를 죽이려고 해요. 죽여라 죽여라 그래서 죽이세요 이렇게 하면 되는 거 죽이세요 나를 그냥 죽여주니까 너무 감사해요. 내가 죽지를 못해가지고 집사님이 죽여줘가지고 내가 죽어지네. 할렐루야 전혀 이 위기 앞에서 굴하지 않고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듣고 전합니다. 하지만 엘리사도 이제 이런 여호람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이제 힘에 붙여졌던 것 같아요. 힘에 부치는 자녀 남편 아내들이 너무 많죠. 정말 우리가 내가 아무리 참으려고 그래도 나도 이제 지쳤어. 지쳤어. 그런데 지쳤는데 부부 간에는 이혼해야 돼 그러는데 자녀들은 이혼을 못하잖아요. 그래서 자녀의 고난이 최고예요. 그러니까 자녀로 생각을 하세요. 남편과 아내를 내 새끼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그렇게 이혼 소리 안 나와요. 예 진짜 그건 늪이에요. 늪 그래서 이제 그가 지금까지 하지 않던 특별한 표현을 씁니다. 여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오늘 제목이죠. 사실 이 표현은 선지서에서 선지자들이 아주 자주 쓰는 표현이에요.
예레미야서에서 아주 많이 나오고요. 미가서 아모스서에도 등장을 합니다. 근데 11개서에서는 딱 세 번만 나오는데요. 미가야 선지자가 아 왕에게 말할 때고 지금 오늘 엘리사가 여우라에게 말할 때 나중에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 왕에게 말할 때예요. 그러니까 지금 엘리사가 여호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주 특별한 상황이라는 걸 표시하는 거예요. 이젠 엘리사가 그냥 더 이상 말하기가 너무 힘이 들어서 적용에 적용을 해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외치는 상황인 거예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표현도 선지자들의 관용 표현이지만은 엘리사는 여라 왕에게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거예요. 왕이시여 이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꼭 들어야 돼요. 내 얘기가 아니에요. 얼마나 말을 안 들었으면 이렇게까지 하겠습니까? 그래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이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말입니다. 저도 이제 결혼 주례할 때마다 장례 인도할 때마다 오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저한테 계속 정보를 주는 거예요. 우리 엄마 아버지 누구 누구 오늘 가요 목사님 알아서 하세요 이렇게 그래서 저는 많이 앉아 있어도 꼭 한 사람 한 사람 놓고 제가 하는 거예요. 정말 집요하게 외칩니다. 이 결혼식 장례식은 가장 교양을 차려야 하는 자리잖아요. 그러니 그냥 우리 결혼식마다 울어요. 다 근데 예레미아에서 결혼식에서 울고 장례식에서 웃으라 그랬어요. 안 그래요? 장례식은 이제 천국 가니까 웃어야 되고 결혼식은 아무리 좋은 부부가 결혼을 했어도 아픔과 죽음밖에 없는데 울어야지 성경대로가 맞아요. 그래서 실컷 울면 또 이 구절을 딱 인용해 가면서 결혼식에서는 우는 게 아주 좋은 결혼식이다. 다들 구원 때문에 그렇게 하니까 신랑 신부가 울고 다들 그렇게 그러니까 이제 그런 말씀을 전하면 무시와 조롱을 당하죠.
지금 영호남이 무시하는 거 보세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될까 근데 인생에서 끝까지 기다려야 할 단 하나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더 귀한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구원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애통하면서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하는 것이죠. 아까 세례 간증에서도 17년 전에 전해놨는데 오셨다 그러잖아요.엘리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제 무엇입니까? 포위 공격으로 천정부지 올랐던 물가가 내일이면 뚝 떨어질 거라는 거예요. 밀가루 한 수화는 밀가루 약 7.3l예요. 일주일 식량이 되는데요. 그것이 한 세겔이라고 하니까 한 달 월급이 좀 안 되는 가격입니다. 그래도 많이 비싼 거잖아요. 근데 비둘기 똥 4분의 1 값 이 다섯 세게 나갔던 거를 생각하면 지금 하루새 일어날 수 없는 물가 하락이 일어난 거예요. 그렇게 엘리사가 딱 얘기를 해주니까 왕을 수행하고 있는 이 장관이 나섭니다. 이 사람은 보통 장관이 아닌데요. 얼마나 모든 일을 다 했는지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장관이 왕이 이 사람 말이라면 다 듣는 거예요. 왕이 의지하는 손을 가진 사람이에요. 손은 능력이잖아요. 왕이 믿고 맡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장관입니다. 아람 왕에게 나만 같은 존재 아니겠어요? 정조에게 홍구경 같은 존재 아니겠어요? 여러 왕의 비서실장, 경호실장을 다 겸하는 대단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 장관이 나서서 엘리사에게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하늘에 창을 내신다고 해도 이런 가격 폭락이 어떻게 있겠는가 엘리사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들으라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 장관은 그 말씀대로 될 리가 없다. 그렇게 될 가능성은 일도 없다고 단정합니다. 말씀을 믿지도 않고 말씀이 전혀 들리지도 않는데 이 사람은 믿는 이스라엘의 장관인 거예요. 뿐만 아니라 이 장관은 하나님이 하늘에 창을 내신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요. 여러분 상식으로 상식 믿음은 상식을 넘어서면 아니지만 또 상식을 넘어서는 게 있는 거예요. 그런데 다윗이 시편 8편에서 뭐라고 노래하는지 아세요?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또 창세기에서도 보면 노아 때 하늘의 창문이 열려서 홍수가 났다고 했어요. 창세기와 시편이 여호람 당시에 이미 다 있는데 성경을 알았더라면 여호와께서 하늘의 창을 내신들 이런 말 못하죠. 이 장관이 성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거예요.우리 참 유명한 분들이 참 성경을 모르더라고요. 교회는 다니시는데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던 거예요. 여호람은 자기하고 똑같은 사람을 옆에 둔 거예요. 보는 눈이 그 안경이 세상 안경이니까 세속사의 안경이니까. 예. 어떤 저주 같은 얘기도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이 세상에 못 들을 얘기가 없거든요. 다윗처럼 자기 죄를 보면 아무리 혁혁한 공을 세우고 남북 이스라엘을 통일했어도 선지자가 와서 얘기하면 잠잠히 있을 수가 있어요.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합한 자가 되어 사울을 용서하고 수많은 전쟁에서 이겼지만은 자기가 죄 지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아무 소리 안 하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사람이 자리가 올라갈수록 자기 자리에서 죄를 인정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내가 그렇게 유명하게 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이제 죄 지을 때는 저기 이렇게 목동일대 그죠 이렇게 다 그렇게 지금 고대 근동의 왕은 하나님 자리에 있는 것인데 그때 여자 하나 데려와서 동침했다고 그 당시에 왕보고 죄라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근데 우리 믿는 사람은 절대 진리 성경의 원칙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죄를 인정하니까 그냥 나단이 와가지고 그냥 칼이 떠나지 않겠다고 막 얘기를 하고 바스세바와의 사이에서 난 아이는 죽는다고 얘기를 하고 모두 저주 같은 얘기를 했는데 그때 다윗이 나단을 죽이려고 했어요.
바로 이거예요. 이거. 그러니까 나는 남편에게 참 훈련을 많이 받았는데 사소한 거는 다 남편 뜻대로 했죠. 앉으려 많고 서래문서고 나가려면 나가고 들어오려면 들어가고 이런 거 다 한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러나 큰일이나 그 영적인 본질적인 일들은 내가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면은 내 손을 내려놓으니까 내가 기도한 대로 다 되었어요. 큐티 모임도 했고 큐티 모임을 위해서 3층에 전화도 놔줬어요. 들었잖아요. 그죠 이건 영적인 일이잖아요. 오직 비결은 하나님 말씀을 들은 것밖에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때가 되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하루 만에 이렇게 물건 가격을 하락시켜 주시고 그 모임이 이렇게 이렇게 부흥이 돼서 우리들 교회까지 이어졌잖아요. 그죠? 그리고 오늘 대구체플까지 지경이 넓어졌잖아요. 대구 체푸름 가만히 있다가 하늘에서 교회가 하나 뚝 떨어졌어. 지금 이 기가 막힌 거 아니에요 정말 이 허벅지를 꼬집어야 될 일이야.우리들 교회는 뭔 돈이 많다고 지금 대구와 광주에 왜 그걸 했겠어요? 무슨 이익을 보겠다고정말 영남 호남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가정 중수 인구 절벽 말씀 묵상 그런 운동이 일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애껴도 쓸 때는 쓴다 이거예요. 안 그래요 능력이 출중한 장관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제대로 듣지 않기 때문이에요. 제대로 듣지 않는 것은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관심이 없기 때문이고요. 관심이 없는 것은 곧 사랑이 없는 것이에요. 사랑이 없으니 말씀을 믿지 않아요. 그러니까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사랑을 할 줄 몰라요. 왜 사랑이 없을까요? 사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에요. 왜죠? 저의 손에 힘이 있어요. 왕이 의지할 만한 손 아니겠습니까? 이 나라에서 제일 강한 능력자예요.
자기 손에 충분한 힘이 있는데 무슨 선지자가 필요하고 선지자를 보내신 하나님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찾을 필요도 없고 사랑할 이유도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이렇게 스펙 좋아하다가 평생에 사랑받지 못해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사랑 자체시잖아요.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처럼 다 가지려고 하면 결국 사랑이 필요 없게 되고 말아요. 그러니까 뭐 다 이루어지면 다 떠나잖아. 그렇죠 사법고시라도 패스하면 또 떠나고 뭐가 병원이 잘 되면 떠나고 다 그러잖아요. 뭐 갖출수록 갖출수록 사랑이 떠나가는 것 사랑이 필요가 없어요. 무서운 벌이죠. 아마도 이 능력자 장관은 사마리아 서민들이 굶어죽는 상황에서도 왕 옆에서 그 음식을 사내진미를 먹으니까 이 아람의 아람군의 포위 제왕이 제왕이 되질 못했어요. 절박하지도 않고 매달릴 지푸라기를 구할 필요도 못 느낀 거예요. 밀가루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자기와 뭔 상관이 있겠어요 그래서 엘리사는 이 장관에 대해서 비극적인 예언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제 밀가루 가격이 폭락하는 것을 니가 니 눈으로 보겠는데 그걸 먹지는 못한다. 너 내일 죽는다 이 뜻이에요. 죽는다 죽는데도 하루 뒤의 일을 모르고 그렇게 여러분들이 교만한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안 믿어지는 자는 지위가 높을수록 눈으로 보는 거는 많겠죠. 많기에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사는 거예요. 산부인과 의사는 우리 남편 산부인과 의사인데 그렇게 여자를 의심해요. 여자들에 대해서 날마다 자기 직업 직업상 검사는 모두를 또 범죄자로 봐요. 의사도 보는 게 많잖아요. 그죠 의심하게 되고 그러니까 누리지를 못하는 거예요. 누리지를 못하는 거 이게 영적인 나병입니다. 아람 장군은 육적인 나병을 앓았기 때문에 간절함이 있었잖아요. 그 선물 가지고 와서 선지자 집까지 찾아갔잖아. 자존심이 확 상했지만 벌떼 같은 종들의 설득을 듣고 요단 강물에 들어갔잖아요. 근데 이스라엘의 능력자 장관은 손에 큰 힘이 있다 보니까 오히려 영적인 나병 환자가 되었어요. 본인의 상태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지금 죽음을 향해서 힘차게 힘차게 나아가고 있어요. 이 장관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살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려면 내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을 의지해야 합니다. 나로 만족하려는 삶을 사는 것처럼 불쌍한 인생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나로 만족하려고 그렇게 다 가지려고 애를 쓰고 살잖아요. 내게 만족하지 못해서 이 땅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하나님의 손을 찾아야겠다는 그 간절함 간절함이 생기는 그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인 줄 믿습니다. 내 손을 의지할 것이 없어서 예 그래서 미친 것 같으나 남는 인생이에요. 팔복의 인생이에요. 이제 새 모두 이런 함께 이런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는 팔복을 받기를 소망합니다.이번 성탄절에 아이가 이제 발표하는 거를 빌미로 아내를 너무 기도 부탁해가지고 전도를 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교회를 밟았는데 아내가 분노가 이제 됐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유치부실 신발장 앞에서 다른 여자 아이들에게 이제 따돌림을 당하고 밀침을 당하는 딸의 모습을 딱 아내가 본 거예요. 분노한 아내가 예배를 드렸지만 저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배 시간 내내 불안하고 두려웠어요. 근데 아이는 2부 행사 무대에 올라왔지만 이미 풀이에 죽어서 율동도 따라하지 않고 그냥 이렇게 멀뚱히 서 있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끝나서 신발을 찾는 과정에서 그 앞에서 제지를 하는 유치부 교사와 결국 소리를 지르며 말싸움을 하고 교회를 나왔어요. 아내의 분노는 그게 달했는데 앞으로 다시는 교회에 데리고 가지 말라고 저는 아이의 교회 참석을 위해서 아내와 싸워야 하는지 입에 재갈을 물리라는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아내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너무 이제 헷갈렸습니다. 침묵으로 고민하고 있는 저에게 아내가 먼저 따지기 시작했는데 아이가 뜻밖에도 오늘만 싫었지 교회 가고 싶을 때도 있어 이렇게 얘기를 해줬어요. 예수님 아내에게 이제 변명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아이가 평소 일부 4세에서 7세 통합반 참석을 하고 이제 2부에는 모르는 친구들이 대부분인데 4세에서 7세 같이 하다가 4세 5세 6세 이 반을 따로따로 지금 이렇게 들어가다 보니까 모르죠. 그래서 이제 일부 선생님들이 얼마나 이 아이를 항상 잘 잘 챙겨주는지 그리고 이 아이가 교회를 얼마나 재미있어 하는지 그런데 아내가 성탄절에 오늘 본 것은 교회가 좁다가 보니까 한 이제 4세 5세 반이 200명이고 선생님이 100명이고 300명이 지금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신발을 또 200명이 찾고 신고 그래서 내년부터는 신발에 덮개를 씌우라고 했어요. 그래서 여기를 좀 늘려야 될 것 같아요. 이게 쓰는 것도 어렵고 그러다 보니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오늘 최악의 경우다. 게다가 또 저기 그 아이 또 이제 데리고 가려고 한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이보 형 외삼촌 다 우리 다 애들이 주인공이니까 그래서 그렇게 해서 설명을 잘하다 보니까 아내가 조금 기분이 풀린 것 같아요. 이 집사님이 우리는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은 새가족은 왕인 거예요. 처음 오신 분 처음 교회 발을 디뎠는데 그것밖에 안 보이게 되고 너무 그날의 상황에 대해서 제가 정말 대표해서 사과를 드리겠어요. 그리고 교회 꼭 오세요. 박수로 이제 한번 격려를 해 주시고요. 근데 이제 이 집사님은 말씀을 이제 들으니까 이제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했다는 거죠. 23년도 연초에 좋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는데 아이가 성장하고 부동산, 재물 회사에서의 성과와 인정, 건강 등 삶의 모든 분야에서 넘치는 성장이 있었는데 이제 기복적인 것과 이 가족 구원이 다 채워질 것 같아서 한 해의 화룡정점으로 아내가 성탄절에 교회에 와서 믿음의 씨앗만 뿌려주면 되었는데 아내를 구원해 가시는 것이 나의 힘이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보게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렇게 말씀을 듣는 사람은 왜 왜 어떻게 해서 너 때문에 이런 얘기를 안 하고 나 때문에 당신이 옳아요. 나 때문에 미안해요. 이러잖아요. 입에 재갈을 물리고 아내에게 팔복의 적용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때마다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바로 이것이 말씀이 들리는 사람의 축복이에요.
적용 질문이에요.
자꾸 의지하게 되는 또 의지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는 누구에게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되려고 애씁니까? 나에 대한 관심이 10이라면 하나님을 향한 관심은 몇입니까?
2023년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2024년도에도 똑같이 말씀의 집에 함께 앉아 있는 복을 같이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말씀 맺어요. 말씀을 들을지어다는 말씀의 집에 함께 앉아 있어야 합니다. 다 망해도 좋아요. 인생이 짧잖아요. 그죠? 우리 장로들이 망해서 와서 함께 앉아 있는 거예요. 미뚱 잘린 나무에 수액을 아무리 주면 뭐 해요? 또 이제 구원을 끝까지 기다려야 돼요. 여호함처럼 하나님 때문에 안 됐다고 그냥 인내를 일도 못하는 이런 사람이 되면 안 돼요. 오늘 이 장관에 내 손에 능력이 많은데 하나님의 손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늘 소망을 두고 가는 이제 내년도와 올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2023년 12월 31일 우리들교회 김양재 담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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