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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6장 1절~7절 - 거주할 처소를 세웁시다주일설교 요약 2023. 12. 31. 08:09
2023년 11월 26일 주일설교
열왕기하 6장 1절~7절
거주할 처소를 세웁시다(내 힘을 믿고?)
김양재 목사
백성을 굶기는 지도자가 정찰 위성 발사 성공했다고 두 팔 들고 만세를 부르더라고요. 북한을 생각하면 한 사람 위정자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기게 됩니다. 평양은 한때 조선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정도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영적 부흥이 일어났던 곳이지, 그때로부터 100년이 조금 지난 지금 전 세계의 골칫거리 조롱거리가 되었으니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평양하면 평양 대부흥 운동이고, 또 평양 대부흥 운동하면 장대원 교회인데요. 1894년에 세례교인 8명으로 시작한 장대원 교회는 해마다 부흥해서 예배당 건물을 매년 증축해야 했습니다. 1900년에는 증축으로는 감당이 안 되어 아예 새 예배당을 지었는데요. 한 번에 천 명이 모일 수 있었습니다. 이 예배당을 짓는 데 백두산 인근 압록강 유역에서 밴 소나무 2800그루가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지역 개발권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가 깜짝 놀라서 항의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장대원 교회는 부흥을 거듭해서 1903년부터 1909년까지 남부박교회, 창동교회, 산정현교회, 서문밖교회 등을 분리 개척했고요. 한국 전체에 영향을 미친 평양 대부흥 운동도 이 시기 1907년에 이 교회에서 일어난 이제 일이에요. 북한에 어서 자유가 회복되어 이런 부흥이 다시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부흥과 분리 개척이 나와요. 엘리사가 이끄는 선지 학교 이야기인데요. 선지학교가 엄청나게 부흥해서 이 생도들이 거주할 새로운 초소를 세워야 했어요. 우리가 대구와 광주에 채플을 세우려고 하는 이때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이 되고, 정말 우리는 묵상하는 교회에 맞다고 생각이 됩니다.오늘 말씀을 통해 거주할 처소를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부흥으로 이어지는 양육이 있어야 합니다.
1절이에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처소가 좁대요. 부흥했다는 뜻이죠. 왜 부흥을 했을까요? 이때가 언제입니까? 가난한 과부 여인의 남편이 죽었죠. 과부가 됐어요. 부자인 수넴 여인 남편과 안 통하죠. 이방인 나아만 등 평신도와 이방인은 이렇게 분별을 하고 순종을 했는데요. 엘리사의 수제자 게하시는 도리어 분별을 못합니다. 기회만 되면 스승의 지팡이로 권세를 휘두르고 스승까지 팔아가며 지어낸 거짓말로 큰 돈을 탈취했어요. 평신도들보다 수제자가 가장 골칫덩이가 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게하시가 얼마나 거룩해 보였으면 수제자가 되었을까요? 평신도들은 힘드니까 다들 고정관념 없이 살려고 다들 오셨어요. 근데 이런 성도들을 인도해야 하는 사역자들은 사역하려고 와서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쓰고자 하니 구속사가 도리어 들리지 않고 평신도의 부흥에 비해 사역자들은 구속사의 말씀이 들리지가 않았어요. 대표적인 제자가 게아시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참다 참다 게하시의 탐심을 엘리사가 나병으로 치리했어요. 그랬더니 도리어 이 공동체가 지금 부흥을 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거예요. 게하시를 치리하지 않고 덮고 갔다면 그 당시는 지나갔겠지만 이 공동체에는 부흥은 없고 분열이 기다리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치리하는 이 공동체는 믿을 만하다는 것이죠. 우리도 치리를 하는 교회지 평신도 사역자 모두 치리를 해왔습니다. 물론 치리만 있는 게 아니고 세례, 성찬, 치리가 골고루 있었죠. 바로 이것이 양육이에요. 양육이 제대로 되어지니 부흥이 되어졌어요. 양육의 원칙은 철저히 말씀 적용이었습니다. 결국 부흥을 내려놓으니까 부흥으로 이어지는 양육이 되었어요.
1절에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곳은 선지자와 그의 제자들이 함께 생활하는 단순한 기숙사가 아니에요. 이 원어로 보면 우리가 당신 앞에 앉아 있는 이곳이거든요.4장 38절에도 나왔어요. 엘리사 앞의 제자로 앉아 가르침을 받는 곳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선지 학교예요. 오늘로 말하면 신학교예요. 곧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 말씀으로 양육을 받는 곳이에요. 그래서 또한 교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셨어요. 티칭, 프리칭, 힐링이죠. 그런데 잘 가르쳐야 전파가 되고 치유가 일어나는 거예요. 우리들교회가 치유 집회 한 번도 안 했는데 성경을 제대로 읽히고 가니 매주일 치유가 일어난 줄 믿습니다. 이렇게 선지 학교에서 선생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제자예요. 제자들이 함께 앉아서 뭐 합니까? 선생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게 배움의 기본이죠. 양육의 시작입니다. 그랬더니 이제 양육이 잘 돼요.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께 말할 때도 있더라고요.
왕사부 엘리야 선생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은 엘리사 선생님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님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이건 걱정의 질문이에요. 엘리사 선생님께 대책이 있는지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또 한 말이 있어요. 엘리야가 떠나고 엘리사가 그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을 가리고 건넌 것을 본 직후에 2장에 엘리사의 성령의 역사, 엘리야의 성령의 역사가 엘리사에 머물렀다. 걱정의 안도로 바뀐 감탄의 외침이 되었어요. 또 제자들이 흉년에 굶다가 겨우 들호박국을 끓였는데 거기 독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또 하나님의 사람이요. 솥에 죽음에 독이 있나이다. 그리고 두려움에 외침의 말을 했어요. 그리고 네 번째 나온 제자들의 말이 오늘 1 2절이에요. 다시 읽어요.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제 좁으니까 이제 요단강 근처에 거주할 초소를 세우자는 제안의 말을 또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맨날 현실의 문제 앞에 걱정하고 두려워하던 제자들, 그리고 놀라운 능력에 감탄하던 제자들이 이제 많이 커가지고요. 자기들의 의견을 제안합니다. 게다가 아주 자랑스러운 제안을 합니다. 제자가 많아져서 선지 학교 건물이 좁아졌으니까 추가로 건물 하나 세우자는 거예요. 신이 나서 당당하게 선생님 앞에 나와서 조르는 제자들의 모습이 그려지시죠. 그러니까 제자들이 엘리사를 회사 사장쯤으로 생각해서 무조건 충성해서 아무 말도 못하면 그 양육은 실패한 거예요. 사부님에게 질문하고 나눔하며 감탄하고 두렵다고 외치기도 하고 드디어 제안을 하게 되는 것이 양육이 궤도에 진입한 거예요. 사실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제자들이 너무너무 기뻐하는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여전히 이스라엘은 악한 왕 여호람의 통치 아래 있었어요. 영적으로는 우상숭배로 육적으로는 가문과 이웃 나라의 침략으로 살 길이 캄캄한 암흑이었어요. 그러니까 대단한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도 이세벨과 아합에게 쫓겨 로뎀나무 아래 홀로 앉아서 죽기를 바랐었죠. 그땐 정말이지 선지자 선생님도 제자도 아무도 없이 홀로 남았어요. 그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엘리사를 제자로 만나게 하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 제자들이 늘었어요. 베델과 여리고 등지에 모여 선지자 학교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승계가 이루어져도 여전히 같이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기 엘리사 공동체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소수였고 비주류였습니다. 하나님을 배척하는 왕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에서 왕따였기 때문에 여전히 생존 자체가 문제인 공동체였어요. 그런데 이런 암흑기에도 엘리야는 끝까지 목숨을 걸고 사역했고요. 후계자 엘리사도 스승 못지않게 전국을 누비면서 최선을 다해 사역을 했죠. 여호와의 손을 힘입어 메마른 개천에서 물이 나오게 하고 기름 한 그릇에 기적을 일으키고 수넴 여인에게 아들을 낳게 하며 그 아들이 죽자 다시 살리고 독이 든 죽을 해독하고 적국 장수 나병을 고치는 등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전했습니다.
그 열매가 이제 게하시의 치리와 맞물려 여지껏 생존이 걱정이던 선지생도 공동체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부흥도 그냥 부흥이 아니고요. 그냥 이 거주하는 처소로는 다 수용할 수 없을 만큼 학생들이 몰려드는 대단한 부흥이 일어났어요. 사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신학교도 이미 두 개가 있잖아요. 베델과 여리고에 있습니다. 그런데 두 곳 모두 엘리사의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두 개의 신학교가 아니라 한 개 신학교의 두 캠퍼스, 두 채플입니다. 이름이 뭘까요? 오늘 본문 12절에 제자들이 자기를 우리라고 말하는 게 네 번이나 나오지까 우리들신학교 하면 딱 맞지 않겠어요? 성경은 늘 우리 편을 들어요. 언제나 그냥 우리는 진짜 묵상하는 교회 많습니다. 신학교는 또 교회니까 우리들교회인 셈이에요. 우리들교회에 베델 채플과 여리고 채플 우리들 교회도 힘은 차고 넘치니 어쩔 수 없이 판교 체플을 세웠잖아요. 엘리사의 우리들 신학교도 한 곳이 차면 다른 곳으로 보냈으면 되었을 텐데요.두 곳 모두 차고 넘쳤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요단강의 새로운 채플 캠퍼스를 세우자고 제자들이 나서서 엘리사 선생님께 요청하는 거예요.
그럼 왜 이렇게 거주하는 곳이 차고 넘치는 부흥이 일어났을까요? 사람들이 살아났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들이요? 선지생도인 남편을 잃은 과부 과부이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고, 아까도 말했지만 아들을 낳지 못한 수넴 여인은 부자지만 남편하고 안 통해 나병 걸린 나아만 장군 등 여러 문제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 살아났어요. 그렇게 살아난 입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엘리사가 있는 선지 학교로 몰려들었을 것이고요. 살아나는 역사가 계속 일어났을 것입니다.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이죠. 그러려면 그들을 섬긴 일꾼도 많이 필요하고 이것이 교회 공동체가 부응하는 원리입니다. 부흥은 교회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예요. 교회의 목적은 사람을 살리는 구원입니다. 우리들교회도 그렇잖아요. 저는 목회하려고 교회를 개척하지 않았어요. 어찌 교회 부흥이 제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 이혼하려는 한 사람 찾아가 이혼을 말리고 죽겠다는 사람 날마다 그거 말리고 그렇게 그런 사람들이 모였어요. 오늘도 이혼하고 싶은 사람 꼭 왔어요. 어제 결혼식 주례인데도 이혼하고자 하는 사람 한 사람 왔어요. 목사님 주례에서도 이혼하지 말라 이런 주례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매주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살아난 사람들의 간증을 듣고 살고 싶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저 그날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어요.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니까 20년이 그야말로 수일같이 지나갔어요. 우리는 휘문 때문에 늘 장소 걱정을 해야 하게 되었어요.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것은요. 살아나는 기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기름 한 그릇의 기적, 아들 낳는 기적, 평안을 누리는 기적, 눈을 뜨는 기적, 말씀대로 남는 기적, 나병이 고침받는 기적. 우리가 이 기적의 이야기들은 다 살펴보았어요. 이 기적 하나하나 나오기 위해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을 하셨고, 그 말씀을 들은 선지자와 사람들이 어떻게 순종하며 적용했는지 자세하게 묵상했어요. 공통된 스토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말씀과 사건을 통해서 엘리사도 키워가시고 사람들도 키워가시고, 그들의 그런 성장을 통해 말씀에 담긴 메시지도 키워가시는 것 아니었어요. 기적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그들이 믿음으로 성장하고 구원의 메시지가 풍성해지는 것이죠.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양육이에요. 그래서 엘리사의 선지 학교는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곳이에요.우리가 당신 앞에 앉아 있는 이곳이에요. 우리가 당신 앞에서 말씀을 들으며 배우는 이곳이에요. 다시 말해 우리가 말씀으로 양육받는 이곳이에요. 기적이 부흥을 만드는 게 아니고요. 양육의 부흥으로 이어진다는 거예요. 기적은 일시적이죠. 기적으로 일어난 부흥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말씀에 의한 양육은 말씀이 영원함으로 영원히 이어집니다. 우리가 천국 가서도 하나님께 직접 양육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양육을 받는 것 생각만 해도 설레지 않아요. 그게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기쁨 아니겠습니까? 말씀이 영원한 만큼 양육도 영원하니까요. 양육에서 이어진 부흥 또한 부흥 또한 영원할 줄 믿습니다. 양육을 통해 진정한 부흥이 일어날 때 거주할 초소를 세우게 됩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말씀으로 양육받아 살아난 경험이 있습니까? 내 교회를 사랑합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거주할 초소를 세우려면 양육을 통한 부흥이 일어나야 되고 두 번째는 내 힘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야 돼요. 내 힘을 내려놔야 돼요.
2절부터 4절이에요.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곳에 우리가 거주할 초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데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패더니 이제 전국적인 가뭄이 이어졌기 때문에 이제 성전 건축에 쓸 만한 나무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자들은 그나마 목재를 구할 수 있는 요단강에 가서 나무를 베어 새롭게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자고 하지. 아까 장대원 교회도 압록강에서 소나무 배우다가 지었다고 했잖아요. 대구 채플 낙동강, 광주 채플 영산강에서 나무 조각 하나 가져와야겠어요. 새로운 채플을 세워야 할 정도로 부흥한 것을 누가 가장 기뻐했겠어요? 당연히 엘리사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엘리야 선지자가 외롭게 고군분투하면서 하나님께 충성한 거를 엘리사는 누구보다 자세히 봤잖아요. 그리고 그 외로운 사역을 엘리사가 그대로 물려받아서 이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이제 학교가 차고도 넘치는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처소를 세우자는 제자들의 제안에 고민하지 않고 가라고 허락합니다. 그런데 가라는 엘리사 선생님의 허락을 들은 그들은 자기들끼리 가지 않겠다는 거예요.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결단을 내리시고 종들과 함께 가소서 매우 강력한 요청을 표현합니다. 선생님이 함께 가지 않으면 우리도 안 간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함께하지 않으며, 자기들의 계획이 아무리 좋고 유익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제 제자들이 알게 됐어요. 그럼 제자들이 양육이 좀 된 걸까요? 된 걸까요? 아무튼 제자 한 명의 간청에 엘리사는 주저하지 않고 드디어 이제 내가 가리라 대답합니다. 그리고는 함께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어서 모두 함께 요단강에 도착해서 학교 건축에 쓸 나무들을 베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초소를 짓겠다는 마음으로 열심을 냅니다.
잔뜩 기대에 차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사건이 생겨요. 5절입니다.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후에 외쳐 이르되 내 주여 내 죄인은 피를 흘려온 거예요.
하나님 이게 얼마나 대단한 쇠도끼인지 알아요. 이러는 거예요. 엘리사가 살던 때는 BC 9세기였는데 철기시대 초기인 거예요. BC 11세기에는 이스라엘 왕국에 그 철로 된 무기 가진 사람이 사울하고 그의 아들 요나단 밖에 없었다고 그래요. 우리가 블레셋 철수레 아시죠? 블레셋이 철기 문화를 이제 많이 선도했는데 그래가지고 그들은 대장간을 다 통제했다고 그래요. 무기 가지고 잘못될까 봐 바알을 섬기는 이세벨도 아마 대장간을 통제하고 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했을 것 같아요. 오늘날로 하자면 쇠도끼는 최고급 전기톱일 뿐만 아니라 또 빌려준 사람도 그렇다면 신앙 고백으로 돕고자 한 것일 수가 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돌도끼로 한 그루를 겨우 벨 때, 청동 도끼로는 두 그루를 벨 때 쇠도끼를 쓴 그 생도는 막 열 그루 수복으로 막 벨 수 있었을 거 신나게 열심히 뵀어요. 너무 열심히 베다가 도끼 머리가 자루에서 탁 빠져나갔어요.
근데 도끼머리가 날아가는 거는 사실 흔한 일이긴 합니다. 그러니 점검을 확실히 해야 되는데 그냥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한 사람이 점검을 소홀히 한 거예요.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날아가서 함께 일하던 사람을 마쳤을 수도 있는데, 다행히 사람을 피해서 요단강에 떨어진 거예요. 가뭄이었지만 요단강에는 그때 물이 꽤 차 있었던 모양입니다. 들어가서 도끼머리 찾는 게 불가능해졌습니다. 이 사람은 갚을 돈도 없고 빌려준 사람에게도 은혜를 원수로 갚는 꼴이 되었고요. 선지자로서 사명을 접고 이제 어쩔 수 없이 남의 집 노예가 될 처지가 되었어요. 이 선지 생도에게 쇠도끼가 떨어진 사건, 인생이 떨어진 사건이었어. 내 주여 이런 신음과 탄식이 절로 나오는 아주 위기 상황이에요. 공정의 1단계인 벌목 과정에서부터 가장 중요한 중요하고 필요한 도구인 쇠도끼를 떨어뜨렸어요. 이것만 할 수 있어. 이렇게 내 힘을 신뢰하게 해주는 귀한 도구가 떨어져서 쓸 수 없게 되었어요. 아니 선지학교교 이 채플을 세우는 감격스러운 일을 위해 지금 열심히 나무를 베고 있었잖아요. 손과 팔이 아픈 것도 느끼지 못해요. 너무 신나고 기뻐가지고 도끼질을 열심히 하는데 얼마나 열심히 휘둘렀으면 또 도끼머리가 빠졌겠어요.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기쁨과 감사를 열심히 일하고 있다면 어때야 합니까? 일이 잘 술술 풀리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쇠도끼 능력치의 100% 200%를 발휘해서 작업이 빨리 진행되고 건물이 설계보다 더 크고 튼튼하게 올라가도록 하나님이 책임져 주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지금 교회 개척의 명분이 너무 확실한데 헌신도 대단한데 시작부터 지금 무서운 위기가 왔습니다. 이렇게 가장 의지하던 대상이 떨어지고 내 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일이 생기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내 인생 망했다. 이제 끝이다. 배우자의 신뢰가 떨어지는 사건을 만나면 이혼해야 해 결심하고, 내 인생의 기반이 떨어져 무너져 내리는 사건이 생기면 다 죽어야 한다고 단정하는 것이 모든 인간이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선택하게 되는 인생의 결말이에요. 선악과 먹고 맨날 내가 옳고 네가 틀렸기 때문에. 이 모두 깊은 수렁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간의 종말을 상징합니다. 다윗은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시편 69편에 그렇게 고백을 해요. 그러니까 이제 항상 좋은 일에 마가 낀다는 얘기를 하잖아요. 사단이 역사한다. 한 명의 실수가 지금 전체를 좌우합니다.
그러니까 항상 한 사람이 중요한 거예요. 그러나 한 명의 믿음이 전체를 살리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도 우리는 누구의 실수를 이러지 말고 전체를 살리는 그런 공동체의 사랑이 있어야 해요.
근데 하나님이 왜 이런 사건을 주실까요? 사람의 힘으로 지은 것은 결국 사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요. 목회 개척 사람을 의지하고 했다가는 금세 분열이 옵니다. 우리 힘으로는 우리가 안전하게 거주할 초소를 지을 수가 없어요. 우리 힘으로 기껏 짓고 나중에 잃어버리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예 처음부터 우리 힘을 팍 꺾는 거예요. 우리 힘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떨어뜨려서 기대도 하지 않게 만드세요. 이것이야말로 우리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큰 사랑인 거예요. 우리보다 몇 수 늘 더 앞서 보시면서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어제 우리 초원님이 설교 중에 나오셨던 그 목장의 한 목원이신 변호사님과 아내와 그 자녀의 갈등 중에 그냥 있었는데 그만 그냥 아내가 이 3주 전에 교통사고를 내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쇠도끼가 그냥 날아갔어요. 진짜 망했다. 그런데 그동안의 갈등이 끝이 안 보였는데 이 사건이 온 집안을 하나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운전 속도도 다 제대로 지키고 법을 다 지켰기 때문에 사실은 굉장히 후한 선물을 주신다고 생각을 하는데 우리 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서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후한 선물을 받도록 우리가 목장에서 나누었기 때문에 이게 해석이 되고 여러분들 끝까지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온 가족이 회복되고 그 일도 잘 처리가 될 수 있도록.적용 질문이에요.
내가 돈 건강 관계, 재능 자리 등 새도끼처럼 의지하고 있는 사랑과 대상은 누구고 무엇입니까? 그것이 떨어지는 사건이 있었습니까? 그 사건이 사랑으로 느껴집니까?유아부 선생님의 이제 간증인데요. 엄마 아버지가 신혼여행 때부터 아빠의 바람으로 1살이 되던 해부터 이제 별거를 시작하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 다 물건 부수고 때리고 가끔 가다 만나도 그래서 6살이 되던 해인 이제 2009년에 이혼 소송을 진행하셨다는 거예요. 살아본 날이 없는 거예요. 근데 마지막 이혼 도장을 찍기 직전에 엄마가 CTS 방송을 보고 우리 저 교회 한 번만 가보고 안 되면 그때 이혼하자 그랬다는 거야 이 말씀이 중요하죠. 그래서 드디어 이제 처음에는 왔다가 데려다 주고 갔는데 주차장 교인에서 그다음에 이제 운동장에서 교회 문 앞으로 교회 문 앞에서 예배당 맨 뒷자리로 자리를 자꾸 조금조금씩 옮기면서 말씀을 듣게 되고 놀랍게도 가정이 변화하기 시작을 했다는 거예요. 물론 여전히 싸우고 때리고 난리치는 아빠인데 목장의 처방으로 정신과에 다니시고 ADHD 분노조절 장애 진단을 받으시고 지금까지 약 10년째 약을 드시고 계신대요. 엄마 역시도 꾸준히 병원에 다니시며 우울증, 강박,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의 약을 드시면서 회복되고 계시는 중이고 두 분 다 목자로 섬기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이렇게 약을 먹는다는 게 내 힘이 빠지는 거죠. 인정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둘 다 다 10년 동안 약을 먹어도 가정이 안 깨졌잖아요. 이혼하기 직전에서 이렇게 주님이 거주하는 처소가 됐어요. 그러니까 이 아들은 엄마 아버지가 늘 싸우니까 이렇게 갈등을 해결하려고 너무 간절했잖아요. 이거 언제나 모범생인 거예요. 학교 밖에서는 그런데 또 잘 나가는 무리에 속해 일원으로 술, 담배를 일삼고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타인에게 인정을 받으려 했는데 그럼 그렇게 사춘기 시절을 보내도 엄마 아버지는 다 아파서 약 먹고 있는데 얘가 글쎄 서울대학을 갔다지 뭐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까 약 먹고 목장에서 목자만 하고 계세요. 그것만 봐도 아이들은 안도의 감을 느끼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문제는 얘가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자기가 교만해가지고 서울대학 들어가서 교만이 하늘을 치솟아 가지고 그다음에 교회 수련회 갈 때마다 하나님 이번에 일단 누워서 자고 진짜 다음번에 만날게요. 그러고 맨날 가서 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주할 처소가 되는 게 이렇게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하나님께 물어야 하는 것을 알지만 자꾸만 내 힘으로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온다는 거예요. 진로에 대해 매일 기도하고 제가 가진 재능이 그 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일 수 있도록 목사님과 유아부 선생님들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게 어디에요? 그죠? 기도 제목을 이렇게 냈어요.여러분들 이혼하지 않고 살아주는 것이 자녀들에게 주는 최고의 유산이에요. 아프든지 말든지 살기만 해요. 그냥 정 살기 싫으면 호적은 다치지 말고 따로 살아도 호적은 물고 죽어야지 그죠 그것만 해도 다들 이혼 안 한 게 최고의 자란 일이라고 다들 그러잖아요.거주할 처소를 세우려면 세 번째는 사명의 십자가를 내밀어 잡으면 됩니다.
6절이에요.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함에 그것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새 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엘리사가 새 도끼가 어디 빠졌는데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그 장소 그 상황 그 환경을 피하지 말고 직면하라는 요구예요. 그것을 보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제 망했다면 환경에서 벗어나고 피하려고 하지 말고 즉시하고 받아들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목장에서 내놔야지 알지 그죠? 그걸 보이라는 거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가만히 있으면 다 아파서 이 사람들 병들어서 죽잖아요. 그죠? 그러고 그냥 다 휘두르겠죠. 오죽하면 6년 동안 이렇게 날마다 싸웠겠어요. 말씀이 참 위대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새도끼가 떨어진 장소를 딱 보여줬어요.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냥 솔직하게 내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상한 행동을 하죠.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고 물에 던져요. 물구원에는 소금을 던져서 나쁜 물을 고치고 솥에 가루를 던져 해독이 되니까 해독 공동체고 그죠? 나뭇가지를 불에 던져 깊이 가라앉은 새 도끼를 떠오르게 합니다. 지금 아무리 무거운 쇠두끼가 없어지고 가라앉았어도 나뭇가지를 넣으니까 떠올랐잖아요. 모세가 홍해 바다를 건너는 대단한 기적을 행했는데 사울 길을 걷고 물이 써서 못 마시니 백성이 원망했다고 하는 거예요. 내가 예수 믿어도 환경이 조금만 안 좋으면 그렇게 원망을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여호와께서 산나무를 가리키시니 모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다고 해요. 제가 오래된 나무가 아니에요. 나무를 물에 던지려면 나뭇가지를 베어서 던져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것으로 일상에서 십자가를 던지면 쓴 물도 달아지고 새 돋기도 떠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부들도 이 장면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했다고 해요. 저는 병원에서 문밖 출입을 못할 때 날마다 나는 나가지도 못하고 돈도 안 주고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만 부르짖다가 제가 이 출애굽기 본문을 묵상하면서 금은 내 주위에 나뭇가지를 넣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그렇게 아니 우리 병원에서 전도를 하면 되지 그 생각이 안 떠올랐어요. 그래서 사모들에게 들어가서 열심히 전도를 했어요. 그 당시 산모들은 딸만 낳으면 슬퍼서 아이고 곡성을 내요. 그 병실에 들어가면 사모가 밥도 안 먹는 거예요. 그때 제가 들어가서 위로하고 내가 딸 부잣집 막내딸이다 하면서 간증과 전도를 하는 거죠. 여러분 학교도 잘 가고 피아노도 잘 치고 소위 성공했을 때는 제가 지옥을 살다가 병원에서 전도하고 양육하니까 천국을 살더라고요. 사명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결혼을 지키는 비결인지 아세요? 내 만족 때문이 아니고 이 결혼을 지키는 것이 내 자신의 죄를 직면하는 비결이 되더라고요. 결혼을 지켜야 되니까 사명을 감당하는 거예요. 내 자식 때문에 힘들어서 남의 자식 가르치면 하나님은 내 자식 꼭 천국에 가게 할 줄 믿어요. 그게 이 원리입니다.7절에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쇠도끼가 떠올랐으니까 집어야 되잖아요. 집으라 집으니라. 물에 뜬 쇳덩어리를 보고 선지생도 이게 꿈이야. 생시야 그렇게 넋이 나갔을 그에게 너는 그걸 집으라 들어올리라. 죄와 사망의 맹인 옛 사람은 떨어뜨려버리고 주님이 살려주신 이 세 사람을 들어올려야 되는 거예요. 나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으니 이제 그거 생각하며 아쉬워하지 말고 나를 살리신 주님의 십자가를 높이 들어올리라는 거예요. 내게 맡기신 사명의 십자가를 들어올리라는 것이죠.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라는 거예요. 지라 그랬더니 지으이라는 잡았다, 뽑았다 가졌다 이런 뜻이에요. 지으라 하니까 집어서 무슨 뜻입니까? 도저히 들어올릴 수 없을 것 같은 사명의 십자가를 맡기실 때 나 못해요. 들어올릴 수 없어요. 주저앉지 말고 그저 손을 내밀어 잡기만 하라는 뜻이에요. 들어올릴 힘은 없어도 손은 내밀 수가 있잖아요. 손 내밀어 잡을 수는 있잖아요. 뭘 하려는 게 아니에요? 내가 열심히 하다가 떨어뜨린 거, 내가 내 힘 믿고 덤비다가 실패한 거, 교만하게 나대다가 넘어진 거 그런 것들이 내 눈앞에 다시 떠오르면은 우리는 상처 이러면서 다 도망가고 싶잖아요.
그런데 도망가려는 것은 여전히 내 힘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내가 의지하던 쇠도끼가 완전히 떨어졌으면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맞아요. 이 사람이 어디로 도망가겠어요? 근데 우린 그렇게 이혼으로 어디 해외로 멀리멀리 이 환경으로 자꾸 피하고 싶어 하는데 이제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피하고 싶은 사명 다시 보여주시면서 집으라 들어올리라고 말씀하실 때 믿음으로 손을 내밀어 잡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명의 십자가를 손 내밀어 잡는 게 무엇입니까? 순종입니다. 사명을 맡기실 때 거부하지 말고 순종하며 받는 것이 손 내밀어 잡는 거예요. 연말 연시에 여러분들에게 또 사명이 가고 직분이 갈 때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높이 높이 들어올려주실 줄을 믿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거주하실 처소가 되려면은 우리들 교회의 정체성은 늘 가정이잖아요. 어떤 설교를 해도 교회가 부흥돼야 된다 이게 아니고 오늘 가정에 대한 설교를 한 주일도 안 한 적이 없어요. 한 줄도 안 한 적이 없어요. 근데 교회가 부흥이 됐잖아요.교회 부흥 그건 진짜 저하고 관련이 없는 일이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6학년 아이 집으로 이제 신방 갔다 온 보고를 받았는데요. 그러니까 이제 어떤 정신과 검사 결과로 인해서 양육 태도에 대한 문제로 인하여서 이제 신방을 다녀오신 사역자가. 근데 이 남편 집사님은 우리들 교회가 어떤 틀에 가둔 것 같아 가두는 것 같아 힘들다고 하시면서 안 나오신다는 것. 근데 이 아내 집사는 무기력 우울증에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를 전혀 지키지 못하고 계셨는데 그래도 이 아내의 간절한 한 가지 소원은 남편이 부부 목장 나가는 거래요. 2시간 동안 신방을 했는데 남편이 너무 이제 우리들 교회가 싫다 힘들다. 이래서 이제 다 실패한 줄 알았는데 마지막 기도 제목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이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아빠가 부부 목장 나와서 자신이 부부 목장 간식 먹는 것이 소원이라고 우리 초등학교 애들도 대단해요. 정말 대단해요. 그랬더니 막 다음 날 아침에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를 지켜야 할 이 세 가지 원칙을 조건부로 제시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절대 부부 목장에 안 나가겠다고 그래서 아내 집사님이 적용으로 아침밥 빨래 등을 잘하며 지금 지켜나가고 있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이런 일들이 정말 갖곳에서 한국교회 전체에서 세계적으로 가정을 살리는 교회가 돼야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우리들 교회는 시작부터 교회 자체의 생존이나 부흥이 목적이 아니었고 오직 말씀 묵상과 가정 중수 운동으로 한 사람 한 가정 살리는 게 목적이었어요. 우리들교회 프로그램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시대적 뜻이 있으셔서 큰 부흥을 주셨습니다. 분리 개척을 해도 정말 너무나 하고도 하고도 넘칠 부흥이었어요. 하지만 말씀 묵상이 행여 오해와 방해를 받을까 봐 지금까지 20년 동안 지교회 또 세우거나 분리 개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교회 부흥을 위한 부흥회나 행사는 하지 않았어요. 오직 큐티 무브먼트가 널리 전해져 그 한 사람 살리는 물결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섬겼죠. 여러분의 헌신과 섬김으로 띵크 목회 세미나를 10년 동안 열었는데요. 예 그러니까 교인 부흥회는 한 적이 없고 목회자 부흥회를 1년에 두 번씩 이 엄청난 섬김이에요. 매번 섬길 때마다 말씀이 들려 반응하는 그 한 목회자 한 교회가 나오기를 기도하면서 아낌없이 나눠주고 여러분의 헌신으로 지금까지 오고 있어요. 이제 이제 곳곳에서 열매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말씀 묵상 운동의 동력자가 되신 여러 목사님들을 우리가 강단에서도 지금 계속 보고 있지. 다음 세대에 이제 대안이 될 줄 믿어요. 하지만 이렇게만 하기에는 너무 더디네요. 제가 20년을 한국교회의 눈치를 보면서 이 운동 일어나기를 바라는데 반면 시대는 너무도 빠르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어요. 요새 판사들의 이혼 판결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까? 이혼 전문 변호사들이 나온 지 한참 되었고요. 가정을 해체하고 창조 질서를 부인하는 소용돌이가 너무도 급속도로 세지고 있습니다. 세속사적인 가치관의 태풍과 해일이 몰아닥쳐서 많은 영혼들과 많은 가정들을 흘러 떠내려가게 하고 있어요. 여러분 출산율이 0.7이에요. 출산율 아기가 없으면 나라가 없고 예배는 어떻게 드려요? 지금 누구 눈치 볼 때가 아닌 거 있죠? 나라가 없어지게 생겼는데 집집마다 형제 자매 중에 이혼 안 한 사람이 거의 없을 지경이에요. 우리가 구속사 말씀의 방파제를 목회 세미나만 가지고 세우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0년 동안 멀리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이곳까지 매주 오가며 예배 처소에 거주하신 양쪽의 한 수백 분의 합쳐서 성도님들이 계세요. 휘문이 교회 건물이 좋아서 오셨겠어요 다 여기 모이신 분들과 마찬가지로 살고자 오셨어. 피투성이라도 살려고 오셨어요. 내가 그분들에게 목회자 한 번 파송하면 교회가 되는데 이곳에 교회 개척하지 않기가 더 힘들었어요. 그러나 처음부터 개척했다면 그냥 우리들교회 부흥으로 끝났을 거예요. 20년을 기다리고 기다렸어. 이제 우리가 이분들에게 나뭇가지를 던져 떨어진 것이 다시 떠오르게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대구와 광주에 제일 먼저 세우게 된 것은 가장 어려운 영호남 지역 감정의 본산지들이잖아요. 그리고 제가 계속 지역 감정 기도한 거 아시죠? 여기는 유입인구가 거의 없어서 아주 배타적이고 목회의 불모지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qtm이 같이 가서 그곳에 목장이 세워지고 영원함의 양육 훈련을 담당하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또한 분리 개척도 병행할 예정인데요. 구속사의 말씀 묵상, 가정 중수 운동이 들풀처럼 일어나야 되겠습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세요. 말씀 묵상과 가정 중수의 사명을 잡으라고 말씀하세요. 너무나 무거운 십자가죠. 세태를 볼 때는 불가능해 보이는 사명이에요. 그리고 그러나 또한 너무 귀한 사병의 십자가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살린 십자가예요. 이 십자가를 오늘 손을 내밀어 잡으라고 하세요. 이 마음으로 이 순종의 믿음으로 대구와 광주를 향해 손을 내밉시다. 지금까지 구원 때문에 고민하고 주저하고 망설였던 개척을 손을 내밀어 잡았어요. 이 작은 순종을 통해 주님이 일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만물을 붙드시는 능력에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십자가 지는 사명을 높이 들어올리셔서 한 영혼 한 가정 구원하시는 기적을 대구와 광주에서도 이어가실 줄 믿습니다. 대구는 송구영신 예배를 첫 예배로 드리고자 합니다. 한 달도 한 달 조금 남았죠. 광주도 동시에 매입은 했지만 리모델링으로 몇 개월 더 기다려야 합니다. 다 같이 기도해 주시길 바라고 여러분들이 멀리서 살려고 온 것뿐인데 얼마나 힘들면 그 먼 곳에서 20년을 오셨을까 생각하며 그분들은 새 도끼 잃어버렸다고 망연자실해 하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20년을 사모하고 오셔도 건축 헌금하는 분은 아무도 안 계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들교회는 여전한 방식의 일반 재정으로 가장 힘든 지역에 큰 재정으로 나뭇가지를 베어서 던집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고 가정 살리려고 가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끝에는 항상 돈이 있잖아요. 이분들이 돈을 하나도 안 내고 그야말로 마중물 헌금한 분도 안 계셔서 이제 반드시 그냥 이 돈 때문에 분열이 생길 수가 있어요. 왜냐면 내가 아깝게 돈 낸 거면은 그런데 우리가 거절 지금 해주는 거죠. 그러면 이제 정말 분열이 나기가 딱 십상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가면서도 새 도끼 잃어버렸다 그러잖아 위기가 왔다 그러죠.그리고 이제 개척을 해도 기득권을 절대로 주장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들교회가 갔던 그 길을 똑같이 걸어가셔야 되는 거예요. 어떤 것 하나님이 미리 이렇게 경고를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진짜 그 힘든 거를 아시고 엄청난 구원이 그냥 선물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광주와 대구 땅에 떨어졌는데 어떤 불평도 있으시면 안 되고 여기는 이제 채풀이기 때문에 지도를 이렇게 잘 받으시고 가시면 되겠습니다.저는 이 불모지에서 힘든 사람들이 살아난다면 차세대 목회자들에게 이 구속사 큐티 목회의 진술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구속사 날마다 선택하는 구속사 오늘 큐티에서 히브리서 7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유다에게서 난다는 구절이 있잖아요. 이 유다 이게 구속사예요. 이것이 곳곳에 전해져야 되는 거예요.제가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에게서 나셨다고 해요. 오늘 맞춰서 저는 그냥 아니 어떻게 우리는 말씀도 이렇게 주실 수가 있어요. 하나님의 뜻인 거죠. 그러니까 진짜 갑 없이 건축이 되는데 우리는 히브리파 헬라파 가부들이 막 싸웠잖아요. 구제받은 거 가지고 그런 일들이 전혀 일어나시면 안 되고 우린 정말 깨어서 한 사람의 그 점검 못함 때문에 그냥 온 공동체가 위기가 왔잖아요. 말 한마디도 조심하셔야 되고 이제 다 기득권 내려놓으시기를 바래요.
적용 질문이에요. 주님이 내게 집으라고 명령하시는 사명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외면하고 있습니까? 피하고 있습니까? 손을 내밀어 잡고 있습니까?
너무 사실은 제가 신중하다 못해 이제 굶뜬 거죠. 그런데 오늘 보니까 그동안 기다리고 기다리기 너무 잘했어요. 오늘 말씀이잖아요. 딱 보면 말씀으로 인혀주는 게 딱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일은 누구 때문도 아니고 우리가 뭐 하려고 여기에서 생돈으로 우리의 재정으로 거기다 그렇게 그걸 이제 교회를 건축하겠습니까? 이거는 정말 우리가 지금 이혼율이 많고 다 죽고 이거에 정말 안타까움이 있는 거예요. 지역 감정 때문에 진영 논리 때문에 나라가 지금 이제 망할 지경이 진짜 우리 말씀 묵상하는 우리들은 그게 아니라고 좀 외칠 수 있는 이 각 채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운동이 일어나야 돼요. 말씀 맺어요. 거주할 처소를 세우려면 첫째 부흥으로 이어지는 게 양육이 있어야 돼요. 양육이 있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다 가정을 살리는 거예요. 말씀을 열심히 읽혔더니 그냥 부흥이 됐어요. 치유가 있었어요. 그러려면 내 힘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야 합니다. 사명의 십자가를 손내부임이라 잡으면 되는 거예요. 진짜 교회를 교회 되게 예배를 예배 되게 이런 소원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될 줄 믿습니다.출처: 11월 26일 우리들교회 주일 설교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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