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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6장 24절~31절 - 나를 에워싼 군대주일설교 요약 2024. 1. 14. 08:40
2024년 12월 24일
나를 에워싼 군대
열왕기하 6장 24절~31절
김양재 담임목사
2023년도가 이제 일주일 남았습니다. 올 1월에 세계경제포럼에 모인 전 세계 지도자들이 2023년을 다중 위기의 해라고 전망을 했었는데요. 올 한 해 질병, 전쟁, 가난, 재해 등 여러 위기들이 동시에 일어나 마치 적국의 군대처럼 우리를 겹겹이 에워싸고 포위하는 것 같지 않으셨어요? 우리가 마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고 또 눈을 여심의 은혜를 받았잖아요. 그럼에도 여전히 여러 위기들에 포위된 상황이 한 계단씩 다가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쌓이지 않는 자유가 우리에게 있는 줄 믿습니다. 이 자유는 육적으로 나를 에워싼 군대를 보며 내 영혼을 에워싼 진짜 군대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걸 발견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어요. 이 성탄에 오늘은 나를 에워싼 진짜 군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를 에워싼 군대는 첫째 그 사람이 어떻게 그래라는 생색과 억울함입니다. 24절이에요. 이후에 아람왕 베나닷이 그의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이후에 이게 항상 중요해요. 1차 공격 때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어려운 순종을 했어요. 그래서 전 구절인 바로 23절에 아람 군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후에 한 절 만에 아람 왕 베나닷이 이스라엘을 다시 쳐들어왔어요. 그것도 예전처럼 한 두 부대가 기습 공격을 한 것이 아니고요. 아람의 온 군대가 쳐들어온 전면전이에요. 이해가 안 되잖아요. 그렇죠? 이스라엘 왕 여호람 왕 입장에서는 말씀대로 적용해서 아람 왕에게 은혜를 베풀었잖아요. 사마리아에서 독안에 든 쥐였던 아람을 보내주었는데 그 아람이 한 줄도 못 가 배반을 해서 전군을 동원해서 총 공격을 한 거예요. 그냥 수도 사마리아까지 그냥 뚫렸어요. 사마리아가 에워싸인 것이죠.
결국 여러분 어떤 사람도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되는데 여호람은 깨어 있지 못해요. 늘 눈에 보이는 것만 따라다니니까 이제 안 쳐들어오겠지 장담을 하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깨어 있지 않으면 갑이 을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예요. 여러분 되었다 함이 없습니다. 영적 실력이 없는 여호람은 그동안 선지자의 도움으로 이겨온 것을 자기 실력으로 착각을 했어요. 그동안 엘리사 선지자가 다 알려주어서 이겼잖아요. 근데 이번에는 엘리사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했어요. 그런데 묻지도 않아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보겠습니다.
25절에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쌈으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의 은 팔십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하니 이스라엘 왕이 성으로 지나갈 때에그러니 에워싸이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란 거예요. 예나 지금이나 전쟁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경우는 그 도시를 에워싸고 공격하는 포위전이에요. 그러니까 사마리아가 요새였기 때문에 도시가 포위되면 물자 공급이 완전히 차단되니까 도시에 먹을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평소에는 폐기물 처리되던 것이 나귀 머리인데 이것 하나 사려면 은 팔십세갤을 내야 하는데 1년 연봉이 한 은 십세겔이었으니까 80세겔이면 한 8년 치 연봉 되는가요? 요새로 말하면은 막 그냥 1~2억 이상 이렇게 되는 거예요. 비둘기 똥도 평상시 같으면은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 불 피우는 연료나 소금 대용으로서는 정말 무가치한 것인데요. 이런 비둘기 똥 한 갑도 아니고 4분의 1 갑 가격이 은 오세겔이니까 무려 6개월 월급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뭐예요? 이제 그만큼 식량과 물자가 동이 나서 살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렇게 힘듭니까? 이거보다 더 힘든 상황이 있겠어요? 이 자체도 엄청난 재앙이었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는데요. 이 재앙을 가져온 사람이 누굽니까? 아람 왕 베나닷이죠. 여호람이 순종의 적용을 했던 대상이에요. 그런데 이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를 포위해서 그냥 이스라엘이 지금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다 끊어 놓았어요. 근데 여기 여호람이 성 위로 지나고 있다고 해요. 성벽에 올라서 지금 순시를 하고 있는 거죠. 자기가 왕이니까. 성위를 다니면서 뭘 생각했겠어요? 아람왕이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러지 않았겠어요? 자신이 말씀에 순종해서 잘해줬는데 살려줬는데 은혜를 베풀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가 있어? 할아버지 오무리, 아버지 아합이 쌓아 올린 모든 게 있는 사마리아 성이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이 지옥이 되어가고 있는 거예요. 여호람이 얼마나 생색과 억울함에 부들부들 떨었겠습니까? 바로 이 생색과 억울함이 우리 영혼을 에워싸고 있는 크고 높은 군대인 거예요. 눈에 보이는 아람 군대 같은 고난은 우리 생활을 어렵게 하고 육신을 괴롭게 할 수는 있지만은 우리 영혼을 죽일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이 사건 앞에서 내 안에 타오르는 생색과 억울함은 우리 영혼을 태워버리고 마는 거예요. 이것이 강도의 굴혈인 거예요. 하나님 자리를 내가 빼앗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여호람은 사마리아를 에워싼 아람 군대는 너무 잘 보고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더 무서운 군대인 이 생색과 억울함을 보지 못해요. 여호람이 곧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남편 군대, 아내 군대, 자식 군대, 부모 군대, 직장 군대, 입시 군대 등 여러 군대에 포위당하는 일이 때마다 이어집니다. 그런데 주님이 여호람 같은 우리 모습을 오늘도 에워싸인 이 내 모습을 말씀으로 오늘 알려주시는 거예요. 그런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에워싸임을 당하는 사건 앞에서 내 영혼을 에워싸고 있는 진짜 원수인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의 생색과 억울함을 직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이럴 수가 라며 생색내고 억울하게 생각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내 생색과 억울함이 회개해야 할 군대 죄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정됩니까?
여러분 이런 것이 구속사예요. 이제 이미 이혼 서류는 접수해서 최종 판결은 3월에 나는 이 부부가 목장에 참석을 했어요. 아내가 생색과 억울함이 가득했겠죠. 내가 다른 건 다 봐줘도 바람 피는 거 못 봐주겠다. 뭐 이렇게 된 거죠. 그런데 남편은 이게 이제 너무 갑자기 사업이 잘 됐어요.그러면 남자들이 가는 길이 빤해요. 여러분들 그걸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마세요. 그냥 일 더하기는 이 이렇게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남편이 돈이 많아 놓으니까 미안해서 아내가 원하는 대로 경제적으로 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다 해주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원 목사님께서 그건 회개가 아니다 그렇게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너무나 인본적인 생각이다. 부목자 5년했으면 목자가 되어야지 지금 부목자 내려놓고 목원으로 지내며 편하게 살려고 하니까 이런 사건이 왔다고 막 야단을 치자 그 남편이 인정을 하면서 5년간 죄 가운데 있으니 부목자로 죄를 짓는 것보다는 목원으로 죄 짓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아서 내려놨다. 그래서 음란에 중독되어 죄를 짓고 있으니 말씀이 안 들린 지 꽤 되었다는 것도 고백을 했어요. 그래서 이분에게 처방을 했어요. 중독 관련 정신과 치료를 받아라. 아내 눈치 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분수령적인 회계를 해라. 주일 설교를 녹취하고 듣고 부목자 사명 다시 감당하고 내년에는 예목 I을 받고 매일 큐티해라 그랬더니 글쎄 이 남편이 처방대로 하기로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돈이 많아지면은 그냥 이래요. 그럼 이럴 때 그냥 딱 이혼하는 거예요? 그 석 달 동안 잘하는 걸로 봐서 우리 아내 집사님은 내 안에 둘러싸인 에워싼 군대를 좀 보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지만은 석 달 동안 하는 거 봐서. 그런데 정말 어디 세상으로 떠내려갈 데가 어딨어요? 먼저 장로님도 이걸 지금 내려놓겠다고 장로를 내려놓겠다고 하시는데 그러시면 안 돼요.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나를 에워싼 군대는 첫째는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두 번째는 무엇으로 라는 책임 회피와 불신앙입니다.
26절이에요.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지나갈 때 한 여인이 외쳐 이르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하니라.
성벽에 올라 순시하던 여호람 왕에게 한 여인이 소리를 쳐요. 나의 왕이여 도우소서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자신을 구원해 달라는 간절한 외침으로 소리 지르고 있어요. 그런데 이 호소의 왕은 자기가 도울 수 있는 게 없다고 딱 잘라 말해요. 포위된 성에서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는데 내가 무엇을 가지고 너를 돕겠니? 이것은 왕으로서 직무유기예요. 왕의 책임을 회피하는 거죠. 그러면서 합리화합니다. 책임 회피할 마땅한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내 책임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무엇이 내게 없다는 거예요. 언뜻 보면 무능을 인정하는 겸손한 말 같지만요.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신다는 게 지금 조건이잖아요.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거예요. 말씀에 순종해서 섬기라는 권면을 들을 때 무엇으로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섬겨요? 섬길 수 있는 무언가를 하나님이 주시면 섬길게요. 내가 집이 있어요? 돈이 있어요? 시간이 있어요? 남편이 있어요? 아내가 있어요? 자식이 번듯하기를 해요? 직장이 있어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없어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여러분들 주시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얼마나 챙기심이라고 들었죠.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봐야 백원의 치사함을 알고 자녀들이 그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섭다는 걸 알고 그 다 있는 것만 좋은 게 아니에요. 어려서 고생은 금 죽어도 못 산다 그랬는데 직면하지 않아야 될 너무나 비참함과 치사함을 겪는 거 이게 챙겨 주시는 보약이라니까요. 그런데 날마다 내가 뭐 가지고 섬겨요? 먹고 죽을래도 없네 이러면서 좋다 이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원망에서 내가 섬기지도 않고 떠나면 여러분은 어디를 가실 건데요? 여러분들이 가고자 하는 그곳에는 파괴적인 것 밖에 맞닥뜨릴 것이 없어요. 가보시고 다 후회할 건데 왜 세월을 낭비하시려고.
28절에 또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함에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니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여러 왕이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옆에 신하 장군 백성들이 다 보고 있으니까 좀 눈치가 보였나 봐요. 그래서 자기가 또 훌륭한 왕인 걸 알려야 되잖아요. 저 여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라. 그러니까 그 여인이 끔찍한 사건을 고발합니다. 포위가 길어지자 성중에 먹을 수 있는 거 다 먹었어요. 풀도 땅속에 풀뿌리도 하나도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제 급기야 아이까지 먹는 비극이 발생을 했는데요. 그런데 그 와중에 자기들끼리 사기 사건이 생긴 거예요. 서로 아이를 내놓고 먹기로 했는데 내 아들을 받아먹기만 하고 자기 아이를 내놓지 않는 이 사기 사건이 생겼다는 거예요.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여기에 가담한 사람들 모두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 아니겠어요? 이렇게 자기 자녀를 지금 삶아 먹는 기근이 오니까 그래요. 배가 고픈데 무슨 도덕적인 개념이 있겠어요? 윤리가 어디 있겠어요? 그저 배 채우는 게 사흘을 굶으면 도둑질 안 할 사람이 없는데 배 채우는 게 인생의 최고 목적인 그런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요즘도 어느나라 장례식에서 날마다 시체가 없어진다는 거예요. 그게 요즘의 얘기예요. 아주 가까운 나라 얘기예요. 그런데 자기들끼리 더 약한 아이를 삶아 먹고 서로 사기치고 그런 기가 막힌 상황인 거예요. 인간이 100% 악하고 음란하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이게 누구 얘기할 게 없어요. 우리나라도 그렇게 가난했어요. 100% 문맹인데 무슨 도덕 개념이 있었겠어요? 우리나라 6.25 나라잖아요.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는 고파도 부른 척, 있어도 없어도 있는 척하고 아시죠?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그 선교사들이 우리나라 와서 그게 제일 힘들었대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입만 열면 사기를 쳐서. 그러니까 여러분 정말 먹고 살 것도 없는데 우리나라 친일이고 뭐고 논할 게 못 돼요. 그때 살아남기 위해서 못할 일이 뭐가 있었겠어요? 조금 글꼴이나 배웠으면은 뭐 또 하려는 대로 했겠죠. 뭐 저는 지나고 보면 그 당시 조상들이 그렇게라도 살아줘서 지금 우리나라가 어쨌든 이렇게 있다는 것이 지금 이제 감사한 거예요.
사실은 이것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지속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징벌이에요. 레위기 26장에서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데,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7배나 더 징벌하리니 너희가 아들의 살을 먹을 것이오 딸의 살을 먹을 것이며그러니까 아람 군대가 몰고 온 재앙이 우연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호람이 대표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해 하나님이 말씀대로 내리신 징벌이라는 뜻이고 정말 예외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신명기 28장 54절에 보면은 너희 가운데 유순하고 이건 또 이제 온유하고 각종 번역에 고귀하고 인정이 많고 별걸로 다 번역됐어요. 유순하고 연약한 남자라도 형제와 그 품의 아내와 그 남은 자녀를 외면하고 혼자서 자식을 삶아서 혼자 먹는데요. 또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로 땅을 밟아보지도 않던 자라도 그 품에 남편과 자녀를 미워하고 질시해서 거기도 가만히 자기 자녀를 삶아서 혼자 먹는데요.
여러분들은 누구 보고 악하고 착하다고 해요. 그러니까 여기 각종 번역본을 다 보니까 그 유순하고 연역한 걸 뭐라고 번역했냐면 집안 좋고 호강하고 유순하고 온유하고 고귀하고 인정이 많고 한우적거리던 여자, 완전 공주병 왕자병 그냥 너무 인정받아 이랬는데 기근이 닥치자 다 미워하고 내 거야. 그래서 내 자녀 하나 삶아 먹고 딴 자녀도 건드리지도 못하게 했다는 거야.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이렇게 다들 이기적이에요. 자기밖에 몰라요. 여러분들이 누가 누구를 욕할 수가 있어요. 예수가 없으면 다 똑같아요. 근데 언제까지 이렇게 지역 감정 진영 논리에 친일파에 그냥 모두가 구원은 과거 현재 미래가 다 구원되는 건데 맨날 그 당시 살았다는 것만도 기적 아니에요? 이렇게 악한 인간의 속성을 가지고 다 굶어 죽어 맨날 굶어 죽어 그냥 우리나라는 그냥 전공이 굶어.
그래서 그때 BC 1200년에 이 이집트인이 극도의 굶주림 가운데 자녀를 먹기 시작했대요. 그래서 자녀를 그렇게 많이 낳았다고 그러잖아요. 잡아먹으려고. 처음에는 이거를 아주 무서운 범죄로 취급을 했는데 얼마 안 가서 이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자녀 사랑이라는 본능을 주셔서 자녀를 지켜가게 하셨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이상해도 다 친엄마, 친아버지 찾아간다고 했잖아. 이게 본능이에요. 그런데 지금 이집트 같은 나라 완전히 안 믿는 나라잖아요. 이 아람도 안 믿는 나라잖아요. 근데 이제 그것이 무너졌다는 걸, 먹고 살기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다는 거예요. 불신자들에게 기대할 것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기대하지 말고 내가 달라져야 되는 거죠.
신앙의 본질은 내 이해와 감정이 어떻든지 지금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나를 하나님이 없으니까 다 나를 의지하잖아요. 말씀에 순종하여 책임지기가 너무 두렵고 싫어요. 책임을 피하고만 싶어요. 남편의 책임, 아내의 책임, 부모의 책임, 자녀의 책임, 선생의 책임, 학생의 책임, 세례교인의 책임, 사역자의 책임, 목사의 책임, 장로 권사의 책임, 평원지기 초혼지기 목자의 책임, 부목자의 책임, 목원의 책임 여러분들이 하도 책임을 모르는 것 같아서 한번 읊었네요. 때마다 일마다 주님께서 내게 맡기신 책임들을 지기 싫고 피하고만 싶어요. 뻑하면 나는 내려놓는다 안 한다 뭐 이거 다 나는 목자 내려놓겠다 뭐 내려놓겠다 장로 내려놓겠다. 초원지기 내려놓겠다 뭐 이래요. 왜요? 주님이 아닌 나를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주님을 사랑한다고 느끼면서 실제로는 나를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이에요. 나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것이죠. 내 생각이 옳다고 무의식적으로 확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녀를 삶아 먹는 거예요. 그 고귀한 공주가 주님의 말씀 이거는 신명기잖아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는 소리예요. 불신자도 아니에요. 믿는 사람들이 이런다는 거 말씀대로 적용을 못해요. 이런 책임 회피와 불신앙에 에워싸인 내 자신을 보게 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내가 아람 군대에 에워싸이는 고난을 허락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제사장 나라로 불림 받았잖아요. 믿는 사람은 그래서 어떤 전쟁도 거기에서 예수님을 보여야 하는 책임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군대 같은 사람과 상황에 사건에 포위되는 고난을 이제 겪으며 내 영혼을 둘러싼 진짜 적군인 책임 회피와 불신앙의 죄악을 봐야 하는 거예요. 불신자들은 이런 거 상상을 못해요. 여러분들이 불신 결혼을 한다는 거는 상상 못할 일에 직면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책임 회피와 불신앙의 죄악이 포위당한 고난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하다는 구원의 진리를 고백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나의 이런 악함과 이거를 보면은 상대방 보고 이놈 저놈 니가 어떻게 그럴 수 이런 얘기 안 나와요. 이게 말씀이 들리는 축복이에요. 2023년 이제 한 주 남았는데 일주일이라도 이런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내일 주일에는 또 다른 설교할 거니까 일주일만 살아봐야 일주일만 일주일만.
적용 질문.
돈 집 학벌 남편 아내 자녀 건강 등 주님이 준 게 하나도 없다고 외치며 책임 회피하는 무엇으로는 무엇입니까? 내가 무엇으로 섬기겠어? 무엇으로 먹고 죽을래야 아무것도 없다 이러면서 무엇으로는 무엇이에요? 올해 마지막 한 주 동안 가정과 교회에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해야 할 순종은 무엇입니까?
정말 저는 한 영혼이 너무 중요하다고 그랬잖아요. 여러분들은 다 기도해 주라고 날마다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몇 주 전에 청년부 출신이 결혼을 했는데 이혼한다고 해서 제가 몇 주 전에 설교로 말렸어요. 기억나시죠? 근데 그게 모든 초원지기 다 들러붙었는데 안 돼서 제가 이렇게 여기서 이제 외치는 거예요. 작년 4월에 결혼하고 1년 살다가 제가 이혼을 요구하고 있으며 올해 4월부터 교회와 목장을 안 나갔어요. 저는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데 담임 목사님께서 제 얘기를 하셔서 들어보니까 내용이 왜곡됐더라고요. 제가 교회와 목장을 안 나가니까 이제 와이프 쪽 얘기로만 전달이 돼서 그래서 이제 이게 목장에서 나눔 한 거예요. 담임 목사님한테 이메일을 썼는데 목사님 답변을 듣고 마음이 녹은 부분이 있어서 한 달 정도 이혼을 유예하고 목장에 나오기로 했고, 교회는 이혼 여부를 떠나서 친구들도 다 있는데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마음은 아직 유효한데 목장은 너무 좋고요. 저는 아내와 3년 연애하고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3년 동안 안 볼 거 볼 거 다 봤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헤어지려고 합니다. 정말 단 한 가지라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못 찾았어요.
제가 청소년기에 엇나가도 아버지께서는 이혼으로 인한 미안함 때문에 훈계를 안 하셨는데 그렇게 방관하시게 되었고 그러니 새어머니 속은 타들어갔고 그래서 새 어머니가 훈육하게 되면 집안 분위기가 안 좋아져서 부부 싸움이 났었죠. 그러니까 이런 스토리를 아내가 아니까 그걸로 왜 아버지는 방관하냐며 아버지를 비난했죠. 그런 게 너무 마음에 안 들었나 봐요. 근데 제가 그러지 말라고 해도 전혀 안 들어요. 우리가 신 결혼 후에 서로 죄를 보고 갔으면 좋았을텐데 이 사람은 항상 자기는 맞고 제가 죄인인 거예요. 맨날 나만 죄인이에요. 제 믿음의 한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옛날에는 교회 가면 뜨겁고 좋았는데 요즘은 너무 하나도 안 들리고 지겹게 느껴져요. 똑같은 말씀을 몇 년 동안 들어오는 거예요. 바로 이 남편의 문제는 바로 이거예요. 말씀이 안 들리는 거 왜냐 이 집에 돈이 생겨서 그렇다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진짜 우리는 여호람처럼 끝에 가서 그 맘몬신, 이 돈은 장사가 없는 것 같아요. 목장에 한 달 동안 나오기로 한 거는 담임 목사님과의 의리 때문에 나오는 거예요. 이 집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했는지 몰라. 우리 신랑 어머니 아버지부터 정말 그때 결혼도 제가 주례를 했었고 결혼하지 말라고 그랬지만 했잖아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잘 살아서 지켜야죠. 반드시 지켜내야 되는 거예요. 신랑이 네 번만 우리들교회 나오면 이혼해 주겠다고 그렇게 해서 한 번 나오는 거를 그냥 아주 그냥 금싸라기처럼 여기고 이렇게 나와서 이혼을 철회한 집이 얼마나 많아요. 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이 남편 집사가 목장이 좋다잖아요. 그것 하나만으로도 신랑 자격 천 프로, 만 프로예요. 아내가 복종하라 결혼식 주례에서 들었어요. 복종하라는 군사 용어예요. 내가 헬라어 잊지도 않아요. 휘포타소. 그거는 복종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거예요. 어떤 것도 결혼했으면 얄짤 없는 거예요. 남편에게 절대로 복종해야 되는 거예요. 사랑하고 위로하고 기대해라. 이따위 얘기 다 필요가 없어요. 복종하라. 복종을 해야 사랑과 위로와 기대도 따라오는 거죠. 그걸 거꾸로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교회 한 번만 와주기를 바라는 집이 얼마나 많은데 이 아내가 이렇게 배부른 투쟁을 하나 싶어요. 이뻐서 그래요. 근데 신랑도 문제가 있는 거 알았지만 이쁘니까 3년을 따라다닌 거 아니에요. 알았는데 이제 와서 왜 그래요? 그러니까 구원이 아니 청년부에서 만나서 나눔도 하고 했는데 구원이 소원이 아니고 행복이 소원이면 이런 일에 불행이 따라오는 거예요. 이 세상에 제일 복은 일부 종사하는 게 복 중에 복이에요. 그래서 다른 여자 다른 남자한테 가서 잘해주면은 그때 주님 찾을 것 같아요? 집집마다 교회 한 번 갔다가 팔다리가 부러지고 핍박이 심한데 그런 집은 절대로 이혼 안 해요. 아침에도 제가 그런 편지를 받았어요. 왜냐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했잖아요. 왜냐하면 밑동 잘린 나무기 때문이에요. 맞아 죽으면 순교하고 좋지 뭘 그래요? 이 정도로 가정은 지켜야 될 최고의 것이에요. 여러분들 이렇게 마음대로 유순하고 고귀한 남자 여자가 자기 자식 삶아 먹는다고 그러는데 뭘 기대해요? 인간에게는 선한 것이 일개가 없는데. 그러니까 구원 때문에 살다가 구원 때문에 가야 하는데 구원을 받았으면 과거 현재 미래가 다 구원받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근데 맨날 과거 상처를 들먹이고 이러고 저러고. 맨날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그러면서 오늘 빵점으로 살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이쁜 미모로 결혼 두세 번 하면 좋겠어요? 돈 있어서 결혼 두세 번 하면 그게 좋겠냐고요? 하나님은 법을 주셨잖아요.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이것 때문에 내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거예요. 최고의 법인 거예요. 짝 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느니라. 이게 모든 지금 목장과 이 모든 초원지기 모두가 여러분들이 그렇게 지금 섬겼는데 나한테 벌써 두 번이나 이 얘기를 왔어요. 내가 한 사람을 말리려고 이렇게 애통하는 거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가 있어요? 남편이 목장이 좋다는데. 여기 그래도 목사님 얘기 듣고 네 번 나와보겠다는데 이런 신랑이 어디 있어요? 안 그래요? 그러니까 이제 이 또 아내는 돌아버리네. 오늘 지난번에는 아내 편을 들더니 이번에는 왜 남편 편을 드냐 내가 다 살리려고 그러지. 그러니까 믿음 좋은 사람이 다 양보를 해야 되는 거지. 안 그래요? 복종을 해야 사랑이 따라오는 거지. 남자는 결혼하며 이 잘난 척하는 걸 못 봐준다고요. 오죽하면 군사용어로 복종하라 그랬겠어요 군사용어로. 금세 깨어 있지 못하는 가운데 화살이 와서 다 나를 죽인다 이 말이에요. 복종과 사랑의 언어를 쓰지 않으면 모든 행동의 99%가 쓰레기통에 처박힌다 이거예요. 쓰레기 같은 행동하지 말고 복종하라. 사랑하라. 할렐루야 여기 그 부부만 듣는 게 아니고 이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 가정을 지키시기 바래요.나를 에워싼 군대는 세 번째는 이제 첫 번째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두 번째 무엇으로 내가 섬기겠어 내가 너한테 뭐가 있다고 너하고 살겠냐? 니가 성품이 좋기 하냐 직장이 있기 하냐 잘생기길 하냐 백가지가 없어도 살아야 돼요. 얄짤 없다 그랬죠. 어떤 경우도 살아야 돼요. 무지개 백수의 정신병자의 뭐 다 살아야 돼 알았어요. 내가 그런 편지를 받았어요. 그런 집은 절대로 이혼 안 해 남편한테 일생을 맞아도 난 정말 너무 위로를 해드리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인생이 짧기 때문이에요. 얼마나 자녀들에게 복을 줄 기회고 여러 사람을 축복의 통로로 인도하는 길인데요.
세 번째는 가만 놔두지 않겠어라는 분노와 미움이에요.
30절입니다.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그가 성 위로 지나갈 때 백성이 본 즉 그의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여호람 왕의 특기 중 하나는 옷을 찢는 거예요. 나아만 장군이 나 병 고쳐달라고 왔을 때도 내가 하나님이냐 이러면서 옷을 찢었어요.
지금 여인으로부터 끔찍한 상황을 듣자. 또 여라면 옷을 찢습니다. 찢으니까 속옷이 보였어요. 근데 속옷이 굵은 배로 만든 옷이었어요. 그러니까 옷을 찢고 베옷을 입는 건 다 모두 사실은 회개를 표현하는 행위잖아요. 그러니까 아버지 아합도 너무나 무서운 심판의 예언을 듣고는 한 번 딱 회개한 적이 있어요.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했다고. 근데 그때 아합은 그래도 회개한 것 같은데, 여호람도 드디어 회개를 하며 옷을 찍고 굵은 베로 만든 속옷을 입은 것일까요? 아까 본문 읽었잖아요. 그렇지 않아요.31절입니다. 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회개한 사람의 특징은요. 혈기를 부리지 않는 거예요. 회개한 만큼 화가 없어져요. 화낼 수 없는 존재,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이 죄인임을 깨닫기 때문에 고귀한 공주보다 나은 게 내 죄를 보는 사람이에요. 칼빈의 5대 강령이 인간의 전적 무능, 전적 부패 전적 선택, 선한 게 하나도 없는데 뭐가 그렇게 여러분은 여러분이 옳아요. 옷을 찢고 굵은 베의 속옷을 입은 여호람은 어떻습니까? 옷을 찢자마자 한 행동이 혈기예요. 생색내고 억울하다가 책임 회피의 불신앙으로 이제 이제 미움과 분노 분노와 미움. 여호람이 이제 뭐라고 하냐면 엘리사가 죽일 놈이다. 지금 이러는 거죠. 엘리사를 가만 놔두지 않겠어 이 불 같은 분노를 뿜어냅니다. 그래도 이렇게 불같이 뿜어내도 너무나 찌질하고 이런 여호람의 모습이 우리 모습이에요. 아람왕한테는 이런 전쟁을 허락하지 않아요. 깨닫지도 못하니까.
그런데 여호람이 왜 이렇게 엘리사에게 분노합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게 했잖아요. 제발로 걸어 들어온 아람 군대를 죽이지 못하게 했잖아요. 아람을 잘 대접해서 보내라고 했는데 그 결과 사마리아 성이 완전히 포위돼서 다 굶어 죽고 있어요. 끔찍한 범죄까지 일어나요. 저주받은 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결혼했더니 된 게 뭐가 있어요? 직장이 있기를 해요. 뭐가 있기를 해요. 게다가 때리기까지 해 먹을 것도 없어. 그런데 무슨 신결혼. 신결혼 좋아하시네. 신결혼 시킨 저 목사를 잡아죽이자 하는 얘기를 제가 얼마나 많이 들었겠어요. 그 다음에 이혼 말리면 얼마나 엘리사 저 죽일 놈, 김양재 저 죽일 이런 얘기. 제가 괜히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에요. 이혼을 하나 맞고 신결혼 하나 시키려면 얼마나 설득을 해야 되고 그래야 되는지 몰라요.
그러니 여호람은 이제 겉으로 보이는 거 이 땅이 영원할 것 같으니까 엘리사를 살려둘 수가 없어요. 오늘 당장 죽이겠다고 해요. 아니면 하나님이 내게 벌의 벌을 내리시라고 해요. 이건 무슨 말인지 모르고 갖은 저주를 나한테 다 퍼붓습니다. 벌 안 내리시면 하나님도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사람도 죽도록 미워하고 하나님께도 화를 내며 미워합니다. 분노의 끝판왕이 되어버렸어요. 바로 이 분노와 미움이 지금 눈앞에서 나를 에워싼 아람 군대보다 더 심각한 죄악의 군대라는 거예요. 나를 에워싼 사탄의 총 공격이에요. 아무리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는 행위로 가리려고 해도 결코 가릴 수 없는 나의 죄악이에요. 거긴 평강이 없어요. 성도의 삶이 눈만 뜨면 이렇게 종류가 다른 전쟁이 계속 쳐들어오는 거예요.
우리가 이북에 그 위정자께서는 우리나라 대통령과 맺은 919 군사합의 조항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기를 해버렸어요. 약속을 하고도 같은 민족에게 온 군대를 모아 늘 미사일을 발사합니다. 그러면은 죽일 놈이라고 이만 갈면 됩니까? 우리 믿는 사람이 많은 우리나라는 이 일이 왜 왔을까 생각을 해봐야 되죠. 저기만 나쁘다고 난리를 치지 말고 하여튼 여러분들은 다 옳고 그름밖에 몰라. 왜 왔을까. 항상 주인공은 믿는 나인 거예요.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모든 민족 중에서 그 이스라엘이 네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스라엘이 잘난 게 뭐가 있어요? 아무 공로 없이 전적으로 택해 주셨는데요. 세계를 이끌어갈 나라로 이스라엘을 택하셨는데 그 자격이 거룩이래요. 그러니까 거룩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모르니까 늘 이렇게 전쟁으로 알려줘야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만 양육해 가시는 거예요. 전 세계 제사장 나라로 내가 뽑혔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 싸움에서 내가 보여줘야 될 것은 그냥 진짜 내 속에 내 속에 악을 보는 거예요. 이게 성도의 삶이에요. 그러니까 내 앞에서 악인이 득세를 하면 그때 이스라엘과 여호람이 자기 믿음의 상태를 직면해야 되는 거예요. 누가 옆에 악하면 나를 직면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 전에도 힘들 때 내 아버지요. 내가 아람을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이렇게 물었잖아요. 그게 금방인데 이스라엘의 여호람왕은 이길 때뿐이고 전혀 안 바뀌어지는 게 금송아지 숭배인 거예요. 겉으로는 바울 조상을 제했어요. 즉 베옷을 입고 예배드리고 회개의 모습을 보이지만은 겉으로는 예배드리는데 속으로는 돈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끊임없이 전쟁이 오게 하시는 거예요. 그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여기지 마라. 우린 감옥 갔다 오고 뭐 망하고 이혼 이래서 지금 예수 믿게 된 사람 너무 많잖아요.
이번에는 아람과의 그 승리가 있은 다음에 이번에 알려주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알려주라고 사인을 보내주지 않으신 거죠. 항상 무슨 전쟁이 나면 내 상태를 돌아봐야 하는데 아람에게 베푼 것만 기억하고 있으니까 회개가 안 되는 거예요. 너무 미워서 없애고만 싶은 거예요. 여러분을 에워싸고 있는 진짜 군대는 그 악인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게 분노하고 미워하는 바로 여러분의 마음이에요. 여러분의 그 미움과 분노를 회개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말씀에 순종해서 내 안에 있는 이 분노와 미움을 깨닫고 회개할 때 아무리 에워싸여도 에워싸이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주실 줄을 믿습니다. 왜냐고요? 우리 인생이 짧기 때문이라고요. 죽음은 다 공평하게 오기 때문이에요. 그때 하나님 백성으로 천국에 입성을 해야 되잖아요.
근데 여러분들은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이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게 너무 두려워요. 돈이 없어질까 남편의 사랑이 없어질까 자녀가 공부를 못할까 우리나라 인구 절벽이 해결되지 않는 제일 큰 이유가 입시래잖아요. 자녀 입시 때문에 다 죽어 그냥 교회를 아무리 나와도 우리 애들은 어떻게든지 학교를 붙여야 돼. 그래서 지금 다 이것도 저것도 안하고 아이도 안 낳고 지금 그런다는 거 아니에요. 분노와 미움 시기 질투가 하늘을 지금 찌르는 거예요.
개혁의 아이콘이신 주님이 예수만이 개혁이라고 히브리서에 딱 하나 써 있어요. 주님이 승리와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참으로 이렇게 그 어린 주 예수 누울 자리가 없는데 우리를 위해서 말고 위에 오셨어요. 이 땅에 이렇게 천한 모습으로 오셨어요. 이것이 성탄의 의미입니다. 나를 둘러싼 군대를 깨닫고 회개하여 진정한 승리와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
절대 가만 놔두지 않겠어라며 분노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분노와 미움을 회개하며 내가 찢어야 할 옷과 입어야 할 굵은 베는 무엇입니까? 그래서 이 성탄의 복을 누구에게 전하시겠습니까?
처음에 탁 치면 나오는 불말과 불병거의 간증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믿는 사람 하나 저기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거예요. 우리가 그 부부가 어디 가서 어떤 믿는 사람을 정말 자꾸 인생의 목적이 행복인 거예요. 하나님을 몰라서 그래요. 하나님만이 영원한 사랑인데 인간의 사랑에 목이 말라가지고.
저는 어제도 주례를 했지만 우리 청년들이 너무 귀한 거예요. 이런 청년들이 성탄의 복을 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신랑은 이제 저한테 이제 결혼하려면 꼭 간증문들을 보내죠. 5대째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당시 불신 결혼을 하셨던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고 결국 제가 초등학생 때 이혼하셨어요. 저는 아버지와 살았고 어머니는 재혼을 하셨는데 이번 결혼식을 통해 22년 만에 처음으로 부모님을 같이 뵙게 되었어요. 전 어머니의 부재로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에 파묻혀 살았고 그것을 사람들의 인정으로 달랬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망하셨다가 몇 년 전에 작은 택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셨고 올해는 드디어 신용회복 절차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망한 집에서 절대 불가능해 보였던 영국으로 석사 유학을 갈 수 있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이 석사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여 지금은 박사 과정 전액 장학금을 받아 다시 유학 준비 중에 이제 두어주 후에 출국을 이제 합니다. 저는 2015년 목사님이 주례하시는 결혼식에 참여했다가 우리들교회의 뜰을 밟았고 공동체에 붙어가게 되었어요. 여러분 결혼식이 너무 중요하죠. 그래서 얘가 간증문에 이번 결혼식에도 그 한 사람에게 말씀이 들리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하며 구원 잔치가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영국에 가서도 목사님의 말씀사역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여자친구와 함께 큐티하고 유학생들과 큐티 모임을 하는 적용을 하겠습니다.
항상 결혼식이 구원 잔치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아이들이 다 있는 거예요. 또 이 신부는 얘가 이 똑똑한 애가 직장도 좋은 아이가 또 이제 박사를 그냥 공짜로 가서 사는 아이가 어떤 신부를 만났나 보세요. 신부는 제가 몹시 아팠던 어느 날 언니는 저의 약을 사러 뛰어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며 먼저 하나님 품으로 갔어요. 그러니까 그걸로 인해 죄책감이 말도 못하게 들었고, 그 후에 어머니와 갈등을 벌이다 위협을 가하려는 남동생을 막아서다가 그 휘두른 주먹에 한쪽 눈의 망막이 찢어지면서 시력을 거의 잃게 되었어요. 이제 보이지 않는 눈으로 책조차 볼 수 없고 제대로 걷는 것에서도 어려움을 느끼며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었고, 인생의 목적을 이뤘다 생각하던 그즈음에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어요. 그런데 오던 날부터 일어날 힘이 없는 그 한 사람을 기다렸다는 말씀에 큰 위로를 받으며 그 죄책감이라는 짐을 지으며 제 힘으로 될 수 없는 순결하고 착한 아이가 되고자 하였음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 죄책감을 착한 아이로서 면죄부를 받으려고 그거를 우리 애들은 다 여기 와서 착한 걸 다 회개했다고 얘기를 해요. 그리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니 평생 숨기고만 싶었던 이 다친 눈과 이 가정사를 목장에서 이렇게 나누다 보니 그걸 귀하게 여겨주는 한 형제를 만나 교재를 시작해서 이 형제하고 결혼을 한 거예요. 우리들교회 결혼을 보면 정말 믿음으로 해요. 다 믿음으로 해 그래서 다 잘 살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결핍이 있는 아이들이 너무 잘 살아요. 이 아이들이 어제 결혼식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엄마 아버지 다 이혼하고 그래서 얼마나 힘들었어요. 그런데 부모님에게 예수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저께 다 저 예수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백했어요. 그 둘이 계속 눈물을 흘리니까 여기가 결혼식인지 부흥회인지 그냥 다들 눈물이 다 흥건해진 거예요. 결혼식에 오면 아무도 밥 먹으러 안 가고 다 예배드려요. 그냥 꽉 차가지고. 그러니까 신랑 엄마가 20년 전에 그렇게 이제 이혼을 하러 나갔는데 역시 이쁘시더만요. 이쁜 사람하곤 하지를 말아요. 진짜야 살아보면 석 달을 안 가는데 그렇게 쫓아댕기고 지금 1년이 안 돼서 이러잖아요. 그죠? 그 신랑 어머니가 제 어저께 주례를 듣고 20년 전에 목사님을 만났어야 한다고 회개한다고 당장 목사님 팬이 됐다고 소감을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거 봐요. 안 들어서 그렇게 이혼을 하는 거예요. 말씀을 못 들어서 또 신부 부모님도 결혼식에서 한 영혼을 위해서 이렇게 복음을 전하신 목사님이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을 하더라고요. 나는 이런 청년들이 세상적인 거 이런 거 안 보고 이렇게 서로 목장에서 나누어서 믿음이 통하면 이렇게 이제 결혼을 하고 몇 주일 전에도 우리 미스코리아 같은 자매가 그냥 고등학교만 나온 셰프하고 결혼했잖아요. 왜 했냐 주일 예배 목장 예배, 수요 예배 큐티하는 거 오직 그거 하나 보고 했다고 그랬는데 몇 주 전에 했는데 이제 벌써 임신을 했다고 어저께 와서 이제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들교회는 잘 돼가는 교회 구석이에요. 결혼도 잘하고 아이도 잘 낳고 이렇게 이혼도 안 하고 할렐루야 말씀 맺어요. 나를 에워싼 군데는 그 사람이 어떻게 해라는 이 생색과 억울함에 무엇으로라는 책임 회피와 불신앙입니다. 가만 놔두지 않겠어라는 분노와 미움이에요. 나를 에워싼 군대를 이제 정말 하나님께서 이거를 내가 나를 직면하기 위해서 그 어린 주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신 오늘 성탄절입니다. 그 어린 주 예수 누울 자리가 없어요.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출처: 2023년 12월 24일 우리들교회(김양재 목사) 주일 설교 말씀'주일설교 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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