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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5장 15절~19절 -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주일설교 요약 2023. 10. 26. 22:49
2023년 10월 22일 주일예배
열왕기하 5장 15절~19절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김양재 목사
우리 속담에 뒷간 갈 적 다르고 나올 적 다르다는 말 있죠. 이걸 서양에서는 빌릴 때는 천사, 갚을 때는 악마라고 표현을 한다고 해요. 자기가 필요한 거 있으면 너무나 간절하게 부탁하고 매달리다가 원하는 것 일단 손에 넣고 나면 태도가 차갑게 싹 바뀐다는 것이죠. 여러분은 이런 사랑 경험한 적 있으신가요? 떠오르는 얼굴이 딱 있나요? 혹시 여러분이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나아만도 뒷간 갈 적 마음과 나올 적, 마음이 달라졌어요. 그런데 나쁘게 달라진 게 아니라 좋게 달라졌습니다. 요청할 때는 거만한 장군이었는데 은혜를 갚을 때는 완전히 어린아이처럼 바뀌었어요. 그래서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라는 확실한 신앙 고백을 하는 성도가 이제 됩니다. 오늘은 이렇게 확실한 신앙을 고백하는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의 고백은 첫째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15절이에요.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아나이다 청하건데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자기 나병이 깨끗하게 된 나아만은 아마도 전자동으로 모든 군대와 함께 아람으로 직행을 했나 봅니다. 그러니까 도로 왔다고 하지요. 사실 나병 치료에 대해서는 빚진 게 없다고 여길 수 있죠. 많은 예물을 갖고 왔으니까요. 그런데 가다가 도로 와서 하나님의 사람 앞에 섰어요. 나병 걸렸을 때 나아만은 거만한 군대 장군으로서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앞에 당당히 섰었어요. 하지만 나병의 고침을 받고 돌아온 나아만은 엘리사 앞에 그의 종이 되어 섰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아만에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앞은 어떤 자리입니까? 내 생각이 깨지는 자리예요. 자기 생각과 너무 다른 말씀을 들은 자리였어요. 그리고 너무 화가 났던 자리였어요. 분노하며 떠났던 자리였어요. 자존심만 내세웠더라면 절대로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자리였어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자리였어요. 하지만 너무 화가 나고 너무 찌질해서 무시가 되지만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했더니 그 말씀대로 깨끗하게 되는 기적을 경험했어요. 여기서 끝났다면 오늘 본문은 잊지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나아만은 기적 앞에서 생각했어요. 하나님의 사람을 무시했던 자기 거만함을 생각했어요. 아바나와 바르바를 자랑하며 요단강을 무시했던 자랑질을 생각했어요. 아람의 신 림몬을 숭배하며 엘리사가 섬기는 그 신 하나님을 우습게 여겼던 자신의 거만함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또 여기서 끝났다면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나아만은 없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아만은 내 생각이 옳다는 거만함의 자리에서 내려왔어요. 장군의 자존심을 버리고 종으로 섬기는 마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발길을 돌려 하나님의 사람 앞으로 돌아왔어요. 말씀을 들었던 말씀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내 생각에서 벗어난 나아만은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김 받고 삶의 가장 윗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렸습니다.
영육간에 슈브 동사를 써서 돌아 왔다고 했어요. 신앙고백이 있게 된 것이죠. 이것이 바로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의 자리로 돌아오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단지 죄를 깨닫고 죄에 대해서 후회하며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것이 아니에요. 말씀의 자리로 돌아오는 거예요. 말씀 없는 회개는 없어요. 죄를 고백하고 오픈하는 것이 능력이 아니에요. 말씀이 능력이에요. 죄를 드러내는 능력이고 죄를 인정하게 하는 능력이고 죄에서 돌이키게 하는 능력입니다. 말씀이 능력인 이유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듣기 싫었던 말씀대로 일어난 치료의 기적을 보면서 나아만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엘리사에게 돌아와서 감사합니다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가 와서 한 말은 신앙 고백이에요.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의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모르던 걸 알았어요. 희미하게 머리로만 이해하던 것 이해는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기던 하나님을 이제 내 삶의 유일한 주님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이 진짜면요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나아만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예물을 드렸다고 그랬는데 예물은 선물이나 답례품이 아니에요. 예물은 히브리어로는 베라카인데 여러분 바라크 아시죠? 바라크는 동사고 베라카는 명사인 거예요. 무릎 꿇다 예배하다 복을 내리다 이런 동사가 무릎 꿇고 예배하는 이제 복으로 예물을 드린 거죠. 너무 이제 어려우면 그냥 바라크 이 정도로만 기억을 하세요.
세상에서 우리 힘으로 쟁취하려는 행복이 아니고 하나님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진정한 복이 베라카죠. 그래서 예물을 드린다는 것은 이렇게 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 복을 진짜 내가 만 분의 1이라도 돌려드리는 마음 즉 예배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올려드리는 걸 말해요. 하나님이 고쳐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신 은혜에 감사하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살아나서 예배가 회복된 분들은 헌금 생활이 무릎 꿇고 예배하는 복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헌금이 세금이 되면 예물을 드리는 게 아니고 답례품을 드리는 거죠. 내가 답례했는데 그 다음에 그쪽에서 답례 안 하면 분하잖아요.
이번 주 큐티인 간증에 결혼식에 뿌린 경조사비를 미국 가서 결혼하니까 회수를 못해서 분노와 배신감으로 저주를 했대요. 여러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도 내가 답례품을 꼬박꼬박 드렸는데 그 상응하는 답례품이 안 오면 여호람처럼 탄식하며 옷을 찢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 계집종 어린 소녀는 적국에 잡혀가서도 원수를 사랑하며 나아만의 병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잖아요. 내가 왜 여종인가 이런 말을 안 하잖아요. 이것이 무릎 꿇고 경배하는 복이에요. 소녀가 무엇이 아깝겠어요. 자기가 없어서 못 드리지. 살아난 사람은 없어서 못 드리는 거예요. 여러분이 살아나면 받은 복을 세워보면서 예물을 드리기 때문에 제가 본문에 헌금 본문이 안 나오면 따로 이렇게 헌금 설교라고 거의 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도 이 가난한 환란 당하고 빚지고 온통한 성도들이 10년 만에 특별 부자도 없는데 모든 환경을 역사하셔서 그러나 상식적으로 원칙을 지키면서 개미 군단의 역사로 판교에 10년 만에 8천 평의 성전을 빚 안 지고 헌당한 것이죠. 이것이 바로 베라카의 예물인 거예요. 그것은 여러분의 예물이 신앙 고백이었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명해 주신 거예요. 그래서 건축도 여전한 방식의 일반 재정으로 지었어요. 우리는 특별자 붙는 것은 정말 안 한 것 같아요.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의 여러분의 신앙 고백의 예물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헌금을 해라 이런 얘기를 제가 안 한다고 우리들 교회는 누가 땅도 기증, 건물도 이런 걸 안 하시네 아무도 정말 뭘 기증했다는 소리가 없어요.
아이고 찔리나요? 받은 복을 세워보아라~ 크신 복을 내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워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내가 알리라~ 이게 되면 저절로 예물이 드려지는 거예요. 여러분 겉은 위풍당당 휘황찬란한 대장군이지만 갑옷 속에 나병을 숨긴 나아만의 이전 삶과 갑옷 다 던져버리고 초라한 선지자 앞에서 종처럼 서 있지만 나병이 깨끗하게 치료된 나아만의 이 세상 가운데서 여러분 뭘 선택하시겠어요? 여러분 자녀가 세상이 부러워하는 좋은 학벌, 좋은 직장 좋은 결혼을 하지만 주님을 믿지 않는 영적 나병에 걸린 것과 예수님을 믿고 교회 열심히 다니지만 세상에서 종과 같이 낮은 모습으로 사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좋으세요? 둘 다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고침 받는 것, 깨끗함을 얻는 것 예수님 외에는 온 천하의 신이 없는 줄 아나이다라는 신앙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먼저고 범사가 잘 되는 것은 나중이에요. 학원보다 예배가 먼저라는 뜻입니다. 내가 원하는 일 내 계획대로 하는 것보다 주일 성수가 먼저예요. 내 생각대로 멀리 멀리 떠나는 것보다 말씀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타락한 인간 본성은 잠시 숨어 있다가 때가 되면 다시 고개를 들어요. 즉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인간이 절대 근본적으로 새롭게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수 있어요. 그러니까 기도가 응답되었다면 예배 회복의 그 예물로 무릎 꿇고 예배하는 영과 육의 바라크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베라카의 예물, 바라크의 예물 동사 명사 다 몸으로 예물로 들으시길 바래요.
적용 질문이에요.여러분의 믿음의 상태는 뒷간 갈 적 마음입니까 나올 적 마음입니까? 즉 간절함입니까? 입을 싹 씻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헌금은 답례품입니까? 하나님께 무릎 꿇고 경배하고 드리는 신앙 고백의 바라크/베레카의 예물입니까? 갔다가 도로 돌아와야 할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의 자리는 어딥니까?(교회, 목장, 양육, 가정, 회사)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의 고백은 두 번째는 첫 번째는 뭐라 그랬죠?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돌아오라고 그랬어 두 번째는 다른 신에게 드리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16절이에요.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나아만이 드리는 예물을 엘리사는 지금 단호하게 거절하는데요. 분명히 하기 위해서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해요. 그러니까 나아만은 다시 강권해요. 서로 몇 번을 반복하다가 끝내 엘리사가 이겼습니다. 나아만의 예물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성이 있기 때문에 엘리사는 예물을 거절했어요. 이게 무슨 말이죠? 사실 받는 것이 훨씬 쉬운 상황이에요. 하지만 엘리사는 구원을 위해 거절합니다.지금 이제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나오는 나아만이잖아요. 그런데 자신이 나아만이 드리는 예물을 받으면 이제 나아만의 믿음이 이제 막 시작되었잖아요. 근데 이 믿음을 하나님을 향하도록 섬세하게 디테일을 챙기면서 인도하는 게 선지자의 사명인데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이렇게 가로채는 것은 선지자가 할 일이 아닌 거예요. 이런 것 하나도 모르는 초신자 나아만이 순수한 마음으로 바치는 예물을 그저 인정만 생각해서 받는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으로 나아만이 착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엘리사는 은혜가 거래할 수 있는 게 아님을 분명히 알려주기 위해서 나아만이 말씀의 자리로 돌아온 회개가 더 큰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믿음으로 자라도록 돕기 위해 끝까지 예물을 거절하여 받지 않습니다. 이렇게 받지 않아야 될 때가 있는가 하면은 수넴 여인의 게스트하우스는 또 받았잖아요. 그러니까 그거를 분별하는 게 구속사적인 그 믿음이에요. 근데 내가 주님을 신앙고백이 없으면 이런 게 분별이 참 안 돼서 여러분들은 목장에서 붙어서 처방을 들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자 나아만이 오히려 다른 요청을 합니다. 17절이에요.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데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나아만은 그러면 이스라엘에 흙을 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노새 한 마리가 실을 수 있는 무게가 한 70kg 정도 되니까 한 이제 140kg 정도의 흙을 가져가려고 하는 거예요. 근데 나아만의 신앙이 갓난 아이의 수준이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신이고 이스라엘의 흙이 있어야 예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런 것을 옳고 그름으로 따지면 안 되는 거예요. 나아만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제는 번제물과 희생 제사를 림몬 같은 다른 신에게 드리는 우상숭배를 멈추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다 오직 여호와만을 예배하겠다. 이 뜻 아닙니까? 근데 이스라엘에 살면서 흙까지 가겠다 그러면 이건 또 우상숭배예요. 언약계 놓고 블레셋하고 이스라엘하고 서로 부적 같이 가져가려고 하니까 뺏기게 하시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이제 부적이 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만일 엘리사가 아무 생각 없이 나아만이 드리는 예물을 받았더라면 어떻게 됐겠어요? 온 천하의 하나님만 참 신이라는 고백에서 딱 멈췄어요. 그 고백으로 드린 예물을 선지자가 받았잖아요. 거기서 그럼 끝났겠죠. 하지만 엘리사가 하나님보다 돈을 섬기지 않았어요. 돈에 자기 마음을 드리지 않았어요. 또 나아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겠다는 그런 인간적인 정에 자기 마음을 드리지도 않았어요. 돈이든 인정이든 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섬기기 쉬운 것 아닙니까? 돈의 정에 다 무너지잖아요. 요즘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발람은 돈에, 인정에 마음을 들이다가 망하잖아요.그러나 엘리사는 이런 우상숭배를 단호히 멈추고 오직 나만의 구원만 생각합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며 이제 예배하는 모습이에요.
코로나 백신 개발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이 억만장자가 됐다고 해요. 근데 백신의 어머니 소리를 듣게 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커리코는 지난해 바이오앤 테크를 떠나서 세게드대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래요. mrna라고 메신저 리보핵산으로 모든 질병을 극복하는 것이 꿈이라는 이유에서예요. 이 여인은 사투리를 사용하는 헝가리 이민자하고 여성 과학자예요. 커리코 박사의 걸어온 길은 정말 험난한 여정이었어. 얼마나 무시를 받았겠어요 헝가리 이민자에다가 여성 과학자인데. 그런데 이제 커리코는 실험광이었다는 거예요. 동료들에게 아무리 무시를 받건 실험은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 당신의 기대가 실수할 뿐이라는 레오날도 다빈치의 말을 자주 들려줬다는 거예요. 미련할 정도로 고집한 그의 신념이 지금 이 코로나를 맞이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했습니까?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거가 그냥 딱 여기서 빛을 발휘해서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학내 정치나 연구비보다는 오직 과학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하는 거예요.이제 그걸 이제 듣고 보니 읽고 보니 제가 그 분을 따라갈 수가 없는 분이지만 여성 목사로서 공감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목회 성공이 아니라 그래도 한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영혼 구원의 가치를 가지고 수도 없이 소그룹의 나눔을 듣고 또 듣는 것이 이게 실험에 참여하는 거 아니겠어요? 이론으로 목회를 한 게 아니잖아요. 수많은 소그룹의 임상이 우리들교회 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정치를 하지도 않지만 끼워주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정치도 안 하고 뭐 그러니까 돈에 연루될 일도 없고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좀 살아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뭐든지 이렇게 한 정말 일에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이 커리코 박사 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그 일을 했잖아요.
엘리사가 이렇게 이제 예물을 안 받으니까 삶으로 본을 보이니까 나아만도 온 천하의 하나님만 참신이시라는 고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겠다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먼저 믿은 한 사람이 다른 신에게 자기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믿음 위에 서 있으니까 그를 따라오는 다른 사람 역시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리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너무 중요한 거예요.
요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 전쟁 때문에 계속 나라를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정말 너무나도 안타까운 중국 얘기를 좀 하겠어요. 여러분 참 세계사 공부 좀 이제 하시길 바라고 이게 조금 길지만 오늘 들어보세요. 한 사람이 중국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전부 다 제정 러시아, 조선왕조 이게 다 망했잖아요. 청나라도 쇠퇴 갈쯤에 그 링컨에서 힌트를 얻어서 신의 혁명을 일으켜서 민족 민꽃 민생의 산민주의 자유 자유와 평등을 기초로 이 중화민국을 건국한 손문 쑨원 아시죠? 관련이 있는데요. 제가 어려서 중국집에 가면 늘 손문과 장개석의 초상화가 중국집마다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거기 중국 현대사에 가장 유명한 송자매 송애령, 경영, 미령, 그러니까 아이링, 칭링, 메이링 이렇게 이제 중국어로 이셋 모두 첫째 애령은 손문의 비서였다가 당시 상해 최고 재벌인 공상애와 결혼을 했고요. 둘째 경영은 손문과 결혼을 했어요. 셋째 미령은 손문 사후에 중한민국 지도자가 된 장개석과 결혼을 했습니다. 세 자매가 다 영웅과 결혼을 한 셈이에요. 도대체 이런 딸을 낳은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요? 송씨 세 자매의 부친은 송가수인데요. 아주 중국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살 길을 찾아서 11살 때 인도네시아로 가서 어렸을 때부터 외국으로 돌았죠. 14살 때 이제 미국에 가가지고 거기서 예수 믿고 세례 받아가지고 벤더빌트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해서 감리교 목사가 돼 가지고 이제 중국으로 돌아와서 상해에서 전도 사역을 하는데요. 이제 다시 돌아와서 기독교 아주 명문가인 믿음이 좋은 목사 딸을 만나서 결혼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유례가 없는 믿음의 집안끼리 결혼을 했습니다. 근데 결혼 후에 전도가 여의치 않으니까 생계 걱정을 해야 돼서 기독교에 대한 저항이 심하죠. 그러니까 송가수 목사의 마음이 점점 사역에서 멀어지고 그래서 이제 돈 버는 일로 쏠리게 되니까 중국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인쇄를 해가지고 그야말로 떼돈을 벌었어. 그러니까 돈이 벌리니까 송가수 목사가 목사직을 사임하고 이름도 송요여로 바꿨어요. 본격적으로 그리고 이제 손문과 친구예요. 그 손문의 혁명 운동을 경제적으로 후원하게 돼요.세 딸은 모두 10대 때부터 미국 유학을 보냅니다. 아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성공한 신여성으로 이제 키우자고 자녀들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다 해줬다는 거예요. 그 세상에 중국의 가난한 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와 가지고 저택에 기사, 식모, 친모 다 두고 어마어마한 황제처럼 자녀들을 유학 생활을 시켰어요. 모든 인류의, 인생의 모든 희망을 이루어낼 수 있고 세계를 다스릴 수 있다. 그러면서 너희들은 할 수 있다. 아이들 안에 있는 욕심과 욕망을 계속해서 이제 부풀려주었던 거죠. 그리고 세 자매 모두 정말로 역사의 이름을 남기는 유명한 인물이 되었어요. 첫째 딸은 진짜 돈이 많아서 돈을 사랑했고, 둘째 딸 권력에 그냥 또 끝판왕이고 셋째 딸은 이 나라를 사랑했다고 하죠. 그리고 또 더 절세 미녀가 셋이다. 이런 집이 있어요? 죽을 때까지 잘 살았어 그러고. 근데 특히 오늘 둘째 딸 경영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중국을 사랑한 여인 중국의 국모로 추앙을 받아요. 독립심이 아주 강해요. 이 세 딸들은 감리교 대학인 미국의 일류학교 힐러리가 졸업한 웨슬리 대학을 다들 이제 이렇게 졸업을 한 거예요. 그리고 이제 졸업하고 와가지고 손문의 비서가 됐어요. 그리고 아버지하고 나이가 같은 손문과 26년이나 차이가 나는데 결혼을 했어요. 그러니까 손문은 이미 처첩이 있고 결혼을 했는데 둘 다 기독교인인데 그런 결혼을 했는데 경영이 그렇게 권력욕이 그때부터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혼까지 막 시켜가면서 그러니까 다들 결혼을 말리던 교회 지도자들이 원수가 돼가지고 둘이서 일본 가서 둘이 결혼을 했어요. 그 이후로는 그 지도자들 미워하느라고 교회에 둘 다 안 나갔대요. 꼭 우리들교회 얘기하는 것 같지 않아요? 이후 송경령은 손문의 아내이자 비서이자 전략가이자 동지로서 혁명을 함께 했어요. 그리고 손문이 워낙 국부로서 추앙을 받으니까 송경령이 결혼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딱 10년 살았어요. 그리고 사후 56년이나 더 살면서 평생 중국을 위해 활동을 했는데요. 이제 손문 사후에 이렇게 손문이 워낙 몸 담았던 국민당 그건 자유민주주의인 거죠. 국민당 우파와 공산당이 그때부터 이제 일어나기 시작해가지고 국민당 공산당이 나뉘어서 싸웠어요. 송경령은 우파인 장개석과 반대해서 좌파 편에 서게 되죠. 당연히 이 장개석의 아내였던 동생 송미령과도 결별을 하게 됩니다. 이 둘은 그때 공산당이 이기고 이쪽 송미령은 장개석과 이제 이렇게 대만으로 이제 이렇게 쫓겨나서 여기서 이제 이렇게 중화민국을 세우게 되고 이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게 되는 거죠. 그 이후로 평생 다시 만나지 않았다고 해요. 송경령은 손문의 미망인이라는 10년 살았지만 그 미망인이라는 간판 하나로 국민당 공산당 모두 함께해 주기를 원했던 사람이에요. 근데 끝까지 공산당 편에 섰어요. 여러분들 그 자유민주주의하고 공산당은 합쳐질 수가 없는데 손문은 그때가 이제 시작이 될 거니까 공산주의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렇게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나 봐요. 모택동을 도와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어요. 두 번이나 부주석이 됐고 유일한 지금 명예 주석 칭호도 받는 사람이 되었어요.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국부인 그 손문이 존경받는 거는 말도 못해요. 중국이나 이쪽 저쪽에서 손문은 다 존경을 받아요. 그 미망인이 지지하는 정권이 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정당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지 몰라요. 제가 지금 좌파 우파 모태동 장개석을 나누어서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고요. 송경령 한 사람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녀의 결정인 모택동이 얼마나 잔인합니까 무자비하게 문화대혁명을 해서 수천만 명을 죽였잖아요. 그죠? 근데 그때 말 한마디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때는 그녀의 부모의 묘소도 또 파헤쳐졌지만 거기서도 손문의 미망인이라고 또 살아남았어요. 아버지도 목사였고 외할아버지도 목사였고 자기도 기독교 교육을 받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근데 사상과 혁명에게 자기 마음을 다 바쳐서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을 버렸어요. 그래서 그 중국에서 그렇게 기독교를 핍박했잖아요. 언니와 동생이 그렇게 말리는데도 인민혁명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부인하는 정권 편에 선 것이에요. 나중에 후회는 후회도 했다고 하지만 역사에서는 가정, 만약에 이프가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가 교훈을 위해서는 think를 해봐야 돼요. 만일 송경령이 공산당 편에 서지 않고 동생과 함께 장개석을 도와 국민당 편에 섰다면 장개석도 이상하긴 하지만 지금 이제 옳고 그름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국민당 편에 섰다면 어땠을까요? 오늘날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모습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거예요.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와 전제주의 선봉으로 주변 국가만 아니라 전 세계 자유주의 질서를 흔드는 현재의 중국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여기는 중화민국, 저기는 중화인민공화국 둘 다 다 중국이라 그러죠? 탁월한 배경과 경력과 능력과 성품과 영향력을 가진 한 사람이 말씀의 자리를 떠나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이념을 섬긴 나머지 멀리멀리 가버린 그 결과가 너무너무 크잖아요. 그죠? 그의 아버지 송요여가 목사의 사명을 버리고 돈을 쫓아자기 이름까지 바꿔가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던 그 선택의 결과가 너무 엄청나잖아요. 송경령은 손문의 아내기 때문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영향력을 가졌어요. 지금도 그 여자는 아주 중국에서 추앙을 지금 받고 있거든요. 더 큰 중국이 한 여인의 영향력 있는 결정으로 공산당이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늘 제가 한 사람 때문에 가고 오고 한다고 했는데 맞는 말 맞습니다. 그 당시는 제정 러시아, 이 제정 중국 다 이때는요 다들 공산당이 평등하니까 공산당을 택한 나라가 많아요.그래서 그 북한을 비롯한 이 모든 나라들은 지금 지나고 보니까 다 독재와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힘든 걸 볼 수가 있잖아요. 러시아 중국이 북한 많잖아요 그죠? 그런데도 시진핑은 요즘 뉴스에 보니까 이 대만을 또 침략하겠다고 그러더라고요. 독재를 택하고 있는 이슬람에 속하는 많은 나라들도 그 왕들은 빈살만 같이 천문학적인 부자인데 백성은 또 가난하잖아요. 이스라엘의 지난주 설교 시몬 페레스 한 사람의 결정으로 오슬로 회담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두 개 국가로 가기로 합의를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 네타냐후가 아주 근본주의가 돼서 강경 세력이 되어서 팔레스타인 사람을 무시하는 거예요. 선민주의에, 이스라엘 선민주의에 빠져서요.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하냐고요 1973년 이후에 전쟁이 없었다고요 없는데 이렇게 무시를 하니까 우리 강자는 항상 죄인이에요. 아셨어요? 강자는 약자를 도와야 되는 거예요. 송경령에 기가 막힌 결정을 보면서 저는 이제 우리 어린 소녀 같은 우리들 교회 성도 여러분의 결정 하나마다 얼마나 지혜로운가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그 역사의 현장에 가 있었다면 그런 결정을 하지 않을 거잖아요. 그죠? 우리들교회 목자님들은 적어도 그런 결정을 안 한다고. 그러니까 여기에 다 구속사가 들어가야 된다고 전도를 해야 된다고요. 이스라엘도 전도해야 되고 하마스도 전도해야 되고 시진핑한테도 전도를 해야 돼요. 전도를 해야 돼요. 알았어요? 그러니까 송경령은 전도를 해야 되겠는데 예수 믿다가 권력을 택해서 그리로 가면 되겠냐고요? 다른 신에게 드리는 일을 멈추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에서 뺄 수 없는 적용이에요. 여러분들이 결정하는 것을 늘 자녀들이 이렇게 보는 것이 최고의 신앙교육이고 최고의 유산인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구속사는 역사를 알아야 돼요. 서론, 본론, 결론이 있는 거예요. 맨날 그날 어떤 본문만 하나 딱 알고 우리 인생을 몰라. 우리 처음부터 읽어야 돼. 그러니까 그냥 마태복음도 1장부터 읽어야 되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그래야지 서론, 본론, 결론을 알고 우리의 인생에 전부 다 구속사를 알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난 성경만 보지 나라 돌아가는 건 몰라. 이러는 건 별로 성경적인 얘기가 아니에요. 나라는 다 나라님들이 하는 거지 우리하고 뭔 상관이야 나라가 있어야 우리가 예배도 드린다 그랬잖아요. 나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기도를 해야 되니까 아셨죠?
적용 질문이에요.
내 선택의 목적은 돈입니까 구원입니까? 구원을 위해 거절해야 하는 이익이 있습니까? 기복적인 욕심인 것을 애써 외면하며 아직도 끊지 못하고 다른 신에게 드리는 제사는 무엇입니까?(사상, 이념, 명예, 돈, 자식 등) 여러분 한 사람의 결정이 가정과 교회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에 얼마나 동의하십니까?
그래서 저는 우리들교회 청년들 많이 나와야 돼요. 전도해야 돼요. 아셨어요? 요새 mg 세대에 이런 거 역사를 모르니까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예요.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의 고백은 세 번째 첫 번째는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돌아와야 되는 것이고 다른 신에게 들리지 말아야 되고 세 번째는 그러면 죄사함의 평안을 누리게 되는 거예요.
18절이에요. 이제 예물을 안 받겠다고 이제 이러니까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길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비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심에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하니
이제 나아만이 걱정이 태산이에요. 하나님만 섬겨야 되는데 아람으로 돌아가면 림몬신을 섬겨야 되잖아. 국가의 녹을 먹고 있으니까. 얼마나 걱정이 많은지 여기 림몬이 몇 번 나오는 줄 아세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러잖아요. 나 예수 믿었는데 제사 드리는 거 어떻게 해요 당장에 우리 중조 할머니 제사고 고지 할머니 제사고 어떻게 해요 그때 난 어떻게 해야 돼 난 이런 질문 많이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흙을 달라고 부탁한 나아만은 이제 한 가지 일을 더 부탁하는 거예요. 이렇게 거기서 내가 제사드릴 수밖에 없는데 용서하라는 거예요. 이게 훨씬 중요한 부탁입니다. 집에 돌아가면 아람의 대장군으로서 국가 행사에 참석하게 되잖아요. 그때 어쩔 수 없이 아람신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서 절을 할 수 있는데 그때 내가 몸은 어쩔 수 없이 우상에게 절하지만 자기 마음만은 하나님을 향해 있으니 나를 용서해 달라고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너무 귀엽지 않아요?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거예요. 용서가 필요한 인생 용서가 필요한 인생임을 인정하는 거예요.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등장했던 얼마 전 모습은 이제 나아만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고요. 하나님의 사람 앞에서 그저 한 사람의 죄인으로 용서해 주셔야만 살 수 있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거룩한 인생이에요.
자신이 영적인 나병 환자임을 깨닫는 것, 하나님의 죄사함이 필요한 인생임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늘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삶이 된 것이 나병이 깨끗하게 되는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진정한 깨끗함을 얻는 구원입니다. 몸에 아무 질병이 없어도 이 영혼의 나병에서 깨끗함을 받지 못하면 사는 의미가 없죠. 그 끝이 죽음이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그 좋은 정말 공부를 하고 그 좋은 권력을 가지고 미국과 중국에 그래도 그 사람들이 예수를 안 믿었으면 그 끝이 뭐예요 그죠? 우리한테 여러 가지를 시사하잖아요. 하지만 몸이 질병으로 가득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 가운데 있어도 자신이 영적인 나병 환자임을 알고 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 날마다 하나님께 돌아와 용서를 구하는 것 자체가 그런 인생이 바로 깨끗한 인생, 천국을 향해 달려가는 복된 인생인 거예요.그런데 우리 송경령에게는 죽을 때까지 공동체가 없었겠죠. 절대로 사과를 안 하는 거예요. 잘못됐다는 얘기를 절대로 안 하는 거예요. 근데 미령은 나중에 언니가 아파서 송미령은 106살에 돌아가셨어요. 2천년대에 돌아가셨어요. 근데 경령이 아플 때 동생 보고 싶어 했지만 중국이 자기네들을 이용할까 봐 안 갔어요. 그래서 이렇게 갈 때와 안 갈 때를 구분을 이제 또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공동체가 있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부주석하면 뭐 해 모택동 맨날 맞다고 해야 되는데 그게 행복한 삶이었을까요? 모르죠. 그러니까 자신이 영적인 이제 몸이 질병으로 가득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 가운데 있어도 영적인 나병 환자임을 알고 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 날마다 하나님께 돌아와 용서를 구하는 것 자체가 그런 인생이 바로 깨끗한 인생 천국을 향해 달려가는 복된 인생입니다. 이런 겸손한 부탁에 엘리사는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19절이에요.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용서해 달라는 부탁에 대해서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답은 평안히 가라입니다. 여러분 오늘 기도할 때 저를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이 평안하니 가라 해주실 줄 믿습니다. 죄사함의 평안이에요. 거만하면서 돌이켜 하나님만 섬기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결단했으니까 이제 자신이 살던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지만 이제 불안과 걱정과 염려를 버리고 평안을 가지고 샬롬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가 누려야 될 평안입니다. 어떤 인생이든 고난 가운데 이제 말씀을 듣고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여 하나님께 나오면 평안입니다.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수넴 여인이든 나아만이든 똑같아요. 차별이 없어요.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저주의 인생에서 평안의 인생으로 바뀝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사건은 하나님께 돌아와 평안을 얻으라는 이정표이자 알람입니다. 사건이 올 때 내 판단과 내 감정으로 오르락 내리락 울그락 불그락 할 게 아닙니다. 사건이 오면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께 돌아가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때 샬롬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샬롬을 주실 줄 믿습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그 남자들이 너무 그 승진이 안 되면 다들 우울증에 걸리는 것 같아요. 남자들은 오직 그 직장, 직장 승진에 인생의 한계를 이렇게 맛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분이 이제 승진이 돼야 되는데 승진이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추석에 닷새나 쉬게 되니까 그 다음에 회사에 나가기도 싫고 그다음에는 술 중독에 또 빠져서 하루는 큐티를 하면서 말씀이 해석되다가도 하루는 하나님께서 내게 왜 이러시나 그리고 오늘은 점심에 너무 밥이 먹기 싫어 혼자 사무실에 있었는데 내가 왜 일을 해야 하나 최근 회사 일로 많이 지치고 집에서도 귀찮아 하지만 말씀 듣는 큐티와 예배의 자리는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게 중요한 나눔이에요.
아무리 우울증이 걸려도, 아무리 궁시렁궁시렁거려도 하루는 말씀이 해석되다가 하루는 하나님 왜 이러시나 이랬대잖아요. 큐티 했다는 거죠? 잘 들어요. 어제도 소주 한 병 먹고 누워서 유튜브를 보며 웃는데 딸과 아내가 싸운 타이밍이었다. 중간에서 조정을 해줘야 하는데 내가 힘드니 그게 안 되었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며 내 마음에 악이 있어서 승진이 안 된 거다 이렇게 얘기를 했대요. 그래서 오늘도 회사에 가기 싫고 과업도 하기 싫고 밥도 안 먹혔다. 그런데 큐티를 하는데 가나안으로 가라는데 기분이 좋았다. 큐티를 이렇게 그래도 하시네요. 날마다 최근 많이 했던 기도가 승진과 믿지 않는 누나 가족의 구원인데 마음으로는 승진에 대한 것을 우선시에 두었지만 그래도 기도상으로는 누나 가족을 우선시에 두고 기도했다. 이게 또 어디예요? 마음으로는 그래도 누나 가족부터 기도를 했다잖아요. 그래서 다행이 조카가 교회 등록을 했고 2주 연속 교회 나왔다.저 가족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에 대한 이 사명감을 느끼지만 내 스스로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승진이 안 된다고 하니까 해보지 않은 길이지만 가야 할 길임을 느끼는데 회사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일에 집중해서 가야 할 새 방향을 찾아야 하는데 방황하고 있다. 이거 진정되려면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러니까 아내가 이렇게 나눔하더라고요. 전 세계를 가보고 시스템을 도입하고 상도 받았었고 회사에서도 인정을 해줬는데 그래서 지금 상황이 너무 힘든 것 같다. 그런 나눔을 하니까 목자님께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예배에 목숨 걸라고 주신 사건인데 남자는 직장 고난이 가장 큰 고난이라고 하는데 사명도 있지만 이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아내 집사님이 옆에서 사명 잘 감당할 수 있게 도와주셔야겠다. 목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목장에서 사람 살리는 한 사람이 중요하고 그분들의 눈물이 있어서 우리가 살아있다. 그러면서 육도 영도 안 무너지면 좋겠다. 예언 같은 소리를 했어요.
그랬더니 아내가 그래도 남편이 술을 먹던 찜질방에 가던 하나님을 꼭 찾아요. 저는 여러분들이 우울증도 걸리고 이러는데 이거를 목장에 나와서 이렇게 길게 나눔을 했다는 것에 너무 점수를 주고 싶은데요. 우리가 연약하잖아요. 불안하고 힘들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데 혼자서는 힘들다고요. 목장 가서 하나님을 찾아야 되잖아요. 그러면 용서해 주소서 그러면 샬롬을 알려주신다고요. 그런데 이게 이제 추석 후에 지난주에 나눔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걸 좀 여러분들이 너무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하셔서 이렇게 이제 이거를 원고에 넣었는데 이분이 글쎄 수준이 낮으신지 이게 승진 안 된다고 그걸 받았는데 이게 2주 만에 뒤집혀서 있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서 어지의 임원으로 승진이 되었다고 하네요. 여러분은 꼭 이럴 때만 박수를 치더라. 역시 기복의 끝판왕들이에요. 근데 사실 제가 읽어주려고 했는데 임원으로 승진했다고 그러니까 너무도 기쁘더라고요.
그런데 궁시렁궁시렁하면서 계속 큐티하고 목장 가고 했잖아요. 찜질방 가서도 하나님 찾고 그냥 어디를 가도 그냥 이렇게 이렇게 찾았다고 하니까 이 분 수준이 낮지만 수준이 좀 높으신 분들은 승진이 안 되는 거예요. 아셨죠? 아니 그 송가수가 돈 벌어서 뭐 했어요 그죠? 그러니까 그때 도리어 목사를 계속했으면 자녀들에게 그 이쁜 얼굴과 학벌로 이렇게 만나서 결혼을 했어도 그러지는 않았을 건데 아빠가 그냥 완전히 목사를 버렸어. 그냥 세상적으로만 키웠어요. 그러니까 힘들어도 이제 이렇게 큐티하고 목장 나가니까 그 목자님 말대로 육도 영도 안 무너지게 해 주셨잖아요. 참 말은 또 중요하더라고. 육도 영도 안 무너지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죄에서 이렇게 말씀의 자리로 돌아오고 다른 신에게 드린 일을 멈추고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하겠다고 결단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가 필요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니 죄사함의 평안을 주셔서 평안히 돌아가게 하십니다.
적용 질문이에요.하나님의 용서 없이 살 수 없는 인생임을 얼마나 인정합니까?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남입니까? 자신입니까?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하고 얼마나 부르짖습니까? 죄사함의 평안을 얼마나 누리고 있습니까?
말씀을 맺어요.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이건 신앙고백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나병이 나아도 떠날 수가 있어요. 근데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말씀으로 도로 돌아오라고 하세요. 다른 신에게 드리는 일을 멈추라고 하세요. 죄사함에 평안을 이제 누린다고 하는 거예요.
출처: 2023년 10월 22일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 주일설교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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