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2장 12절~21절 - 성령충만주일설교 요약 2022. 5. 24. 12:01
말씀: 사도행전 2장 12절~21절
제목: 성령충만
설교자: 김양재 목사
김영란법으로 나라가 요란하고 3만원 이상을 대접하면 안되기 때문에 2만9천9백원짜리 김영란 메뉴가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법이 생겨야하는 이유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모 교단 총회장 입후보를 부탁하며 2천만 원을 건넨 어떤 목사님이 고발을 당했습니다. 크리스찬이 얼마인지 모르겠는데 눈만 뜨면 크리스찬의 문제와 교계의 비리와 부패로 도배되니 곤욕스럽고 정말 교회가 본을 보이면 좋겠습니다. 개척할 때 우리들 교회의 사명을 생각하며 개혁의 길목을 여는 라합처럼 그 일을 하길 기도했습니다. 한사람이 자유하니 비교적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 같다. 환란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돕게 되는지 경제적인 재물의 문제에서부터 모든 것에 말씀 적용을 하고 온 13년 이라고 생각한다. 성령충만이라는 것은 환상적인 체험 방언은 뛰어 넘는 것이라 했다. 내가 성령 충만한지는 내가 미운 사람과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 이다. 있다면 아직도 성령충만을 받지 못한 것이고 기도원을 열심히 다니고 그래도 아직 싫고 좋은 것이 너무 분명하고 죽어라고 용납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성령 충만 받은것이 아닙니다. 오늘 성령충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유다가 자살해서 멋있어 보이고 좋고 싫은게 분별해 보이니까 그런 사람이 멋져 보인다.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사람들이 모여 사격하는 곳이 교회이고 이런 교회가 진정한 건강한 교회인데 이런 사람들 중에는 상처 많고 이상한 사람들 많고 예수 믿었어도 교회라는 장소는 열등감을 훈련하는 장소고 죽을 때까지 해결이 안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솔직하게 들어내 놓고 진단과 처방 나오는 것이 건강한 교회이다. 정말 건강한 교회는 아픈 사람이 득실득실 하는 곳이다. 저 사람이 오면 어쩌나가 아니라 와서 변화시키는 것이 건강항 목장 아니겠는가 인간의 힘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성령충만은 내가 생각하는 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분이 선물로 받은 자라를 사기그릇에 넣고 여름 내내 봤는데 자라가 미끄러운 그릇을 끝까지 올라갔다가는 떨어지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계속 떨어지는 것을 보니까 정말 안됐더라고 합니다. 성령 충만도 이렇게 잘 고였다 넘어가야 하는데 그런데 잘 넘어서지 못하고 올라갔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자기 열심히 넘어가려고 노력하지만 자기 열심히 문제 해결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제3자가 봤을 때는 못 넘어갈 텐데.. 죽어라고 열심히 살다가 한계상황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잘 넘어가는 무엇이겠는가. 자기 열심히 아닌 누가 넘겨주어야 하고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성령강림이 임한다. 그렇다고 해도 세상은 성령충만 한 이 사람을 조롱한다.
첫째로 성령 충만은 조롱 받을 수 있습니다. 13절입니다. 세상은 이해 못할 방언이다. 바람은 남편이 피었는데 ‘나 때문에 당신이 수고했다.’라고 용서를 구하고 이해 못 할 애통을 하니까 비웃고 조롱을 합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모두 광신같고 낭비 같다. 세상은 성령의 역사에 무지하고 이 성령의 역사를 설명하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불신자에게는 이렇게 설명하고 신자에게는 왜 거꾸로 용서를 구하는지 말씀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대한 백성들의 의문을 주일구약성경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언제라도 대답할 수 있도록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설교를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열한사도와 같이 서서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들 교회 설교인 공동체 고백이라고 하듯이 설교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공동체적인 것이고 함께 서서 소리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들교회 목장과 간증이 같이 서서 소리를 높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설명을 해 줄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내가 성령 받았다고 하니까 식구들이 이해를 못했다. 성령받고 담대해져서 설교하는 베드로를 봐라. 성령충만의 뜻을 성경으로 설명하고 이것이 교회사의 첫 설교이다. 오직 믿음으로 설교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네가 재대로 살면 내가 믿겠다는 시부모님의 말은 네 손주 네 남편 잘 섬기면 내가 예수 믿겠다는 말인데 거기서 악을 느꼈다. 그런데 우리는 행위 이야기만하면 모두 쥐구멍으로 들어간다. 그냥 재대로 잘 살라고 하면 반찬 하나 더 해가야 하고 명절이라고 하면 힘드니까 전하기가 싫은 것이다. 왠만한 사랑이 없이는 가까운 사람에게 전하기 너무 어렵다. 베드로가 유다와 같은 죄를 지었는데 이 세상 사람들은 유다를 더 멋있게 생각한다. 베드로에 대해서는 뻔뻔하다고 이야기한다. 예수 믿는 것이 최고이고 행함으로는 구원 못받는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옳고 그름으로 생각하니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얼만큼 조롱 받았는지 나눠보자. 그 때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같이 서서 소리를 높일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두 번째 성령 충만은 말씀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이 술 취해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온유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화를 버럭 내면 안된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복음을 전했는데 술 취했냐고 한다면 온유하게 대답해야 한다. 세상은 과거를 다 문제 삼는다. 온유하게 대답하는 이것이 세상을 끌고 가는 것이 온유이다. 내가 대단한 간증을 하고 전도했는데 미쳤냐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겠는가? 반복해서 반응하고 있는가. 베드로의 성령충만 결과는 말씀 충만이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 사건은 우연의 사건이 아니다. 누구 때문에 잘못한 것도 잘한것도 아니다. 구체적으로 적용한 이야기만 하고 된 이야기 안된 이야기 모두 한다. 수요일에 평원님이 레위기로 간증을 보면서 남편과의 결혼생활 중 남편의 혈기와 폭력 때문에 힘들었고 그런 생활을 안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교회만 가면 잘해주니 모든 사람들이 좋게만 본다. 7년을 연애해서 결혼했는데 20년동안 남편이 멀리 있었다. 그런 와중에 바닥으로 내려가서 내 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제물로 내어놓았더니 주님이 받으셔서 내 죄가 용서 받는 경험을 했다. 남편의 바람 사건이 나의 죄로 인한 것임을 확실히 보게 되었다. 조롱받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신앙은 세상을 끌고 갈수 있는 능력이다.
[적용질문]
모든 사건을 성경으로 설명하기 위해 늘 말씀으로 예비되어 있는가
세 번째 성령 충만은 내 인생의 말세에 임합니다. 말세는 지금도 그때도 말세이다. 성령이 임해서 나타난 예언과 환상과 꿈은 무엇일까요 환상과 꿈이 우리의 삶과 연결되지 않으면 허상에 불과 합니다. 지금은 성령을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로 임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내 개인의 말세는 나의 한계를 인식할 때 말세가 오는 것이고 재림 사건이 같이 나오게 됩니다. 즉, 오순절 강림사전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말세를 맞이할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말세를 인정하는 것이 제일 축복입니다. 자녀들은 앞날을 모르는 것이 특징이고 젊은이들은 쾌락 속에 사는 것이 특징이고, 늙은이들은 꿈이 없는 게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으로 육체에 부어주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특히 영으로 부어 주다.’는 ‘쏟는다’는 인간 쪽에서 보면 샘솟는 것을 의미하기에 사모하는 자의 입장에서 보면 은혜의 샘이 터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직분이 나의 믿음을 유지시켜 주는 나의 원동력이다. 어른들은 나눔하기 어려워도 아이들은 순수하게 할 수 있기에 어려서부터 성서를 봐야 한다. 그런데 부모가 자기 인생의 말세를 보지 않고 성경을 보지 않으면 자녀에게 무엇을 전해줄 수 있겠는가? 기도가 모두 헛된 기도가 될 것이다. 성령이 임하면 비전을 주시는데 여기에서의 환상이 비전이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오늘과 내일 밖에 없고 오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비전을 세워야 한다. 아이들에게 비전을 주어야 하는데 세상 것만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까? 성령충만은 과거 속에만 사는 사람들에게 꿈꾸는 역사를 준다. 막힌 사람과의 관계를 풀어야 사도행전이 시작된다. 한사람을 해결하지 않으면 평생의 모든 열매가 헛된 것이 됩니다. 즉 막힌 관계가 뚫려야 한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네 번째 성령 충만은 구원의 역사입니다. 성령을 모시면 예언과 환상과 꿈으로 거룩한 삶의 권능을 얻게 되고, 이러한 성령을 얻을 때는 환난의 때가 오게 됩니다. 다시 말해 어두워져야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을 경험하게 됩니다. 구원은 어떤 경우에도 이루어집니다. 피를 흘리는 상황이어도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거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15장에 애굽에게 내린 질병을 믿는 자 들에게는 내리지 않겠다고 한 것처럼 누구든지 회개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고 믿는다면 분명히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한다. 주의 이름을 모르는 자들에게 힘들 때 주의 이름을 부르라고 이야기 해줘야 한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작은 문제도 심판의 문제로 보고 힘들어 한다. 이것은 성령충만 받지 않아서 그렇다. 성령충만은 이해되지 못할 사람이 이해되고 막힌 관계가 뚫린 것이다. 내 인생이 제자리 걸음만 하고 올라가다 툭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툭 떨어지는 것이 은혜일 수도 있다. 주의 이름을 불러서 구원을 받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일설교 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행전 16장 11절~15절 - 성령의 직행 (0) 2022.05.24 사도행전 16장 6절~10절 - 성령의 환상 (0) 2022.05.24 사도행전 1장 1절~8절 -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0) 2022.05.24 사도행전 2장 1절~13절 - 오순절 성령강림 (0) 2022.05.24 에베소서 3장 1절~13절 - 은혜의 경륜 (0) 2022.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