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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장 11절~15절 - 성령의 직행주일설교 요약 2022. 5. 24. 12:05
본문: 사도행전 16장 11절~15절
제목: 성령의 직행
설교: 김양재 목사
지난 주 잘 거절당했는가. 바울이 당한 거절은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다. 바울은 항상 한 영혼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일을 구원을 위해 생각한다. 한 사람 디모데를 배려하고 베드로를 인정하는 강한 깨달음이 와서 회개가 되니까 자발적인 떠남이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깨닫는 것은 천지가 놀랄 일이 맞다. 바울이 이타적인 깨달음으로 인하여 유럽이 복을 받고 온 세계가 복을 받았으니 바울 한 사람 살아나는 것 보다 이것이 얼마나 큰 열매인가. 그래서 자기 죄를 보는 것은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위대하다는 말이 맞다. 그런데 마게도니아의 한영혼의 외침에 한마음이 되고 바울과 우리가 이제 떠났는데 이번에는 직행하게 하신다. 지난주에는 막고 허락하지 않고 거절의 복을 주시더니 이번 주에는 직행의 복을 주신다. 그러면 이 직행이 어떻게 어디로 향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성령의 직행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째, 순풍도 허락하십니다. (11절) 드로아에서 마게도니아로 가장 빨리 가려면 배로 에게해를 건너야했는데 최단항로는 드로아에서 네아볼리로 가는 것이다. 당시의 배는 순전히 바람을 이용한 돛단배였기에 바람이 가장 중요했고 역풍이냐 순풍이냐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에게해 북부는 일 년 내내 배가 먼 바다 쪽으로 밀리는 북동풍으로 역풍이 우세했다고 한다. 그래서 거리가 240킬로미터 남짓인데 20장에 보면 돌아오는 길이 닷새나 걸리는 항로이다. 그런데 이번 항해는 드로아에서 네아볼리까지 남동풍의 순풍을 허락하셔서 이틀 걸렸는데 이것은 기적이다. 그래서 누가는 이것을 직행했다고 한다. 뱃길을 통해 이리저리 돌지 않고 곧장 똑바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사명을 향해 달려간다면 우리 모두 인생의 과정이 가지치기하여서 직행하게 된다. 직행이라는 단어는 신양에서 사도행전에서 단 두 번 쓰인 드문 단어이고 일반 문헌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다. 바울에게 미안한 삼위하나님이 총 출동하여 특별히 남동풍의 순풍으로 직행을 하셨다는 것이다. 신자는 인내가 믿음의 결론인데 그만큼 직행이라는 단어는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해서 이렇게 두 번밖에 사용 안 된 것 같다. 불신자에게는 그런 십자가의 직행을 모르기 때문에 거의 사용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생각으로는 거칠고 싫고 역풍은 싫고, 내 인생에서 순풍만 불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내가 원하는 멋진 항구로 거침없이 직행하고 싶지만 우리가 가고 싶은 돈, 성공, 쾌락, 건강의 항구에게는 남동풍이 불면 좋겠지만 거기는 남동풍이 불면 안 되고 거긴 역풍이 와야 한다. 거기는 순풍이 순풍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행복의 항구로 직행하게 하는 순풍은 구원의 관점에서 보면 거절 받는 역풍이 오히려 순풍이다. 오해하지 말라고 직행이란 단어가 두 번 밖에 안 쓰였구나. 순풍의 돛단배라는 뜻인데 이 직행이 바울 같은 상황에서만 쓰일 수 있는 특별 대접 단어이다. 우린 고난이 축복이고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고 질그릇은 깨어져야 보배라고 하는데 내가 사명의 돛을 달아야 순풍이 온다는 것이다. 가치관이 달라져야 한다. 그러므로 이 순풍에도 세상에서 매력적인 것들을 지나쳐야 한다. 이 순풍에 지나쳐야 할 세 지명을 살펴보고 바울은 이것들을 다 지나쳤다. 떠난 것들의 대표적인 특징들을 살펴보자
드로아하면 트로이 목마로 유명하다. 트로이가 드로아이다. 총각인 트로이 왕자와 눈이 맞은 유부녀 스파르타의 헬레나 때문에 스파르타 왕이 그리스연합군을 동원해서 트로이를 침략한다. 그래서 이 전쟁이 10년이나 계속된다. 이 전쟁에서 마지막에 그리스연합군이 거대한 목마에 특공대를 숨겨서 위장전술로 트로이 진입해서 그리스 군이 승리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야드오딧세이가 이 전쟁의 이야기이고 오늘날의 트로이의 전쟁은 트로이목마는 외부에서 들어온 요인에 의하여 내부가 무너지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러나 생각했을 때 트로이전쟁의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의 가정사가 세계대전의 이유가 되는구나. 그러니까 우리들교회의 가정회복 말씀 묵상이 나라를 살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 나라의 왕이 이딴 생각을 하면 세계대전이 된다. 유부녀 왕비를 총각 왕이 납치를 해갔으니까 나도 함 살아봤으면 좋겠네라고 환상을 가지고 있을 텐데 지나쳐야 한다. 그러므로 순풍의 직행을 하면서 그런 여자를 안쳐다보고 지나쳐야 한다. 그래서 사모드라게로 직행을 한다.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에게해 북동쪽에 위치하는 사모드라게는 바다의 이정표가 되는 1600km의 높은 산이 있고 열두 개의 위대한 사원이 있었다. 요즘의 정치가들 중에서 점보는 사람도 많고, 수백만 수천만 원씩 복채를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굉장히 바다 한가운데 있는 신비의 섬으로 불리던 곳이다. 그것만 생각해도 환상이다. 사모드라게의 승리의 여신상 아는가. 얼굴도 두 팔도 없는데 비너스와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여신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교통의 요지인 그곳으로 떠나면서 승리하려고 모두 신상에 절을 한다고 한다. 여기서는 약간 하룻밤을 기약하고 떠난다. 이틀 만에 내아볼리로 간다. 네아폴리스로서 새로운 도시를 의미인데 빌립보시를 위한 항구도시였는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의 에그나이타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선교팀에게는 길이 좋으니까 얼마나 좋아보였겠는가. 바울일행은 이곳에도 머물지 않는다. 1차선교여행 때 수리안디옥의 외항인 실루기아를 지나쳤을 때 네압볼리는 지나간다. 대사도 바울께서 아름다운 곳을 지나쳤다는 것은 슬픈 일인데 그러나 내가 아름다워서 내가 바울사도를 지나치게 하는 이런 드로아 사모드라게 네압볼리는 아닌가 생각해보자. 유럽의 관문 네압볼리에 바울이 도착해서 바울도착기념인 성니콜라스교회에 성령의 환상 성화가 있는 것이다. 유럽으로 들어갔는데 성경 한권가지고 들어가서 재패를 했다. 성경 가지고 들어갔다는 뜻의 그림이다. 성지순례가면 이 얘기 생각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얼마나 이 모든 일의 역사를 모두 해석할 수 있고 재패할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지가 마게도니아임을 잊지 않았다. 순풍으로 밀어주셔서 직행하게 하신 곳이 사모드라게도 네압볼리도 아님을 생각했다. 마게도나이의 첫 성이 빌립보이기에 빌립보에 도착할 때까지 직행을 멈추지 않는다. 다들 돌고 돌아 드로아의 불륜을 꿈꾸며 사모드라게에 하룻밤 머무르며 신비한 이정표같이 우뚝 선 무언가를 사모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꿈들이 있었겠지만 이 모든 것을 직행하게 하셔서 다 지나치게 하셨다. 사명에 돛을 달아야 시간도 알맞게 쓸 수 있다. 이튿날처럼 네압볼리의 짧은 시간 동안 저에게도 남편이랑 짧은 시간이었지만 머무를 수 있었다. 하룻밤 머물렀고 하나님은 저로 하여금 간병으로 며칠 시간을 쓰게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 짧은 시간동안 남편을 섬기며 구원의 선물을 허락하셨다. 남편이 하루아침에 가도 깨닫게 하시고, 아이들이 대학에 떨어져도 깨닫게 하시고 위로도 주시고 회개도 주시고 젊은 나이에 과부도 되게 하시고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여러 거절도 맛보게 하셨다. 이런 거절들이 모여 이 나이에 겉으로 보기에는 상상도 못할 주님이 밀어주시는 순풍을 주셔서 직행하게 하셨다. 물론 지금도 끝없이 거절은 계속되고 있다 순풍에 돛단 듯이 직행하려면 이렇게 지나쳐야 할 곳이 분별이 되어야 한다. 성령의 거절을 많이 맛보아야 떠날 곳 있어야 할 곳이 분별이 된다. 좋아 보이는 명분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설 수는 없다. 열심과 노력이 순종을 능가해서는 안 된다. 말씀을 앞세워 순종할 때 성령의 직행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오직 11절에 우리가 같이 떠났기 때문에, 우리공동체가 이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잘났어도 공동체에 물어봐야 한다.
두번째는 정해주신 사명의 자리에 수일을 유해야 한다. (12절) 네압볼리에서 빌립보까지는 16키로 정도 되는데 걸어서 이그나티아 도로를 걸어 네 시간 정도 가면 도착한다. 누가는 빌립보가 첫 성이자 로마의 식민지라고 소개를 한다. 주전 42년에 빌립보에서 그 유명한 옥타비아누스가 부르트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래서 옥타비우스가 자신이 황제 아우구스투스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빌립보에서 전쟁을 했기 때문에 빌립보를 특별한 로마의 직할시로 승격시켜줬다. 그래서 여기를 리틀 로마라고 한다. 로마식의 행정사법입법부가 다 들어가고.. 완전 로마이다. 드로아도 로마의 식민지지만 빌립보만 로마의 식민지라고 소개한 것을 보면 이제 바울이 자기도 다소시 출신이었기에 로마의 식민지에서 살았지만 지금까지 보던 것과 다른 문화를 느낀, 로마는 세상의 중심인데 세상을 다스리는 황제의 중심이 있는 곳이다. 그러니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땅 끝이다. 로마를 가장 충성스럽게 대표하고 있는 빌립보를 와서 보니까 이 로마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신 눈으로 확인을 하니까 내가 가서 전도할 곳은 로마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복음을 정했다는 기록은 없이 수일을 유했다고 한다. 전도를 하려면 이곳을 연구해야 한다. 다소시에서 자랐지만 자신이 아는 것과 너무 다르다. 그래서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가 전도할 때 다른 문화권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을 이해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는데 내가 살아온 경험이 어떤 사람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우리의 삶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울고 웃고 고통당하고, 우리를 이해하셨기에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리듯이 너무 다른 문화권에서는 수일을 요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저도 시댁의 문화권이 너무 달라서 수일을 요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거기서 유했기에 지금 여러분들을 절대적으로 도울 수 있다. 내가 시댁의 문화에서 너무 힘들었던 것을 느꼈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체휼이 되는 것이다. 문화가 다른 것은 수일을 요하면서 연구를 하는 것이다. 어떤 자리든 주께서 맡기신 자리는 떠나지 않고 잘 지키는 것이다. 대단한 전도 양육을 하지 못해도 주님이 만나게 해주신 그 한 사람을 만남으로 디아트리보 하는 것이다. 왜 이런 곳에 보내셨나 할 때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리다. 하나님 음성 듣고 가는 것이다. 박상아 집사의 간증처럼 적용하고 가면된다 요즘에는 화제성이 있는 사람이라 그것 안 한다 요즘 밥하고 빨래하는 것이 저분의 주된 임무가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도리어 잘 유하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직행의 비결이 된다. 어떤 집사님 부부가 딸이 결혼한다고 하는데 남자친구가 불신이다. 그래서 그냥 둘이 손잡고 교회 나오기만 하면 엄마하고 아빠는 환영할 건데.. 요새는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두 분이 목자님인데 딸이 하는 말이 아빠가 아직 변하지도 않았는데 교회는 아빠가 변해야 갈거야. 여기서 목자님이 무어ㅅ을 할 수 있겠는가. 딸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이냐 아니면 예비사위를 찾아가 전도하는 것이냐 그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가정에서 아빠의 자리, 남편의 자리를 잘 지키면서 윤이 나게 닦으셔야 되겠다. 그것이 멀게만 보여도 가장 본질적인 일이고 가족구원을 위해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성령의 직행이다.
셋째, 기도하니 말씀이 들리는 한사람의 마음을 열어주신다(13절). 바울은 무엇보다도 간절히 기도하고 싶었을 것 같다. 알렉산더처럼 보이는 마게도니아 사람 한명이 도우라고 했는데 빌립보에 와보니 로마의 권세만 밝히 보이고 아무도 못 만나고 있다. 그래서 기도를 하지만 공동체와 함께 기도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늘 기도할 너희와 우리를 기도 요청한 것을 많이 봤다. 수일을 기다리며 연구해보니 빌립보에는 유대인이 많지 않아 회당이 없었다. 로마와 유대인의 관계가 악화되었는데 로마황제가 유대인 추방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빌립보에는 남자 유대인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회당을 세우려면 유대인 남자 10명이 필요한데 말이다. 회당설립이 불가능한 곳에서는 손을 씻고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기도처를 강가에 마련해서 모이는 것이다. 마침 그곳에 여인 몇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들에게 처음으로 바울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한다. 이제 처음으로 성 문 밖으로 나가서 환상에서 본 알렉산더처럼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강가에 모여 예배드리는 소수 여자만 만난 것이다. 여자도 화려한 모습으로 시내에 있는 모습이 아닌 시내 강가에 모여 기도하는 여자들이다.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기까지 수일을 기다리며 이 문화와 상황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의 눈높이와 언어, 그들의 귀에 들리도록 복을 전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부모가 없는 고아에게 부모의 사랑을 주제로 복음을 전하면 안 되겠죠 자녀를 잃어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자신의 자녀를 예를 들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처음에는 피해야할 것들이다. 구원을 생각하면 이런 지혜가 생각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문화와 환경을 수일을 요하면서 이해했다면 이제 우리는 그 사람의 언어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때 우리의 약재료가 빛을 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바울의 인생을 생각해보면서 어떻게 전했을까. 저도 이제 30대 때 60넘으신 과부 에게 내가 과부다 하니까 그 한마디로 제압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냐. 그런 것처럼 바울도 중심에 자신은 스데반을 죽인 살인자임을 알고 죄인중의 괴수임을 전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간증을 했을 때 마음이 열리고 교회가 세워지는데 바울은 자기 간증에 더해 선교사역 때문에 아내와 같이 할 수 없는 아픔을 전했을 것 같다. 아내 이야기가 한 번도 안 나온다. 자기 집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여자들이니까 이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루디아도 과부니까.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과 죄패를 간증했을 것이다. 바울의 사역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내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정말 눈물을 겪은 자만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을 열었다. 아웃리치 갔을 때 우리 아픔을 간증하면 문화가 달라도 아프리카 교도소에서도 놀라서 들었다. 그러니까 고난에는 장벽이 없다. 문화가 달라도 대단한 고난에는 말이다. 우리의 아픔, 약재료를 십자가 앞에 해석하고. 전할 때 주께서 다른 문화권인 한사람의 마음을 여신다. 집집마다 문화가 다르고, 교회도 다르고, 회사도 다르다.
(14절) 바울이 전한 이 말씀을 루디아가 미완료로 듣고 또 들었다는 것이다. 아니 들렸다. 다른 여자들도 다같이 들었지만 루디아 한사람이 성령의 직행의 종착점이 된 것이다. 이 한사람을 만나게 하시려고 이 아시아를 다 지나고 지나 여기에 도착한 것이다. 환경이 안 좋다고 다 들리는 것도 아니다. 믿음은 선물이다. 그래서 이제 순풍으로 시작했다고 첫 번째 사역지가 빌립보였다고 엄청난 사역의 열매가 생기는 것이 성령의 직행이 아니다. 그래서 잘 들어야 한다. 만난 사람이 화려한 군인도 귀부인도 아닌 그 당시 숫자에 치지도 않았던 여인, 이방인, 과부 그리고 낯선 땅에 돈 벌러 온 자색옷감 장사꾼 이 여인을 어떻게 만났나. 여전한 방식으로 안식일에 예배드리러 나온 여자이다. 이방인이고 과부가 되서 만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돈은 벌었지만 이방인, 과부였다. 그냥 비단 치마속의 넝마 같은 인생이지 않았을까. 경건하지만 주님을 만나지 못한 상태였을 것이다. 바울이 자기 이야기를 해주고사울의후손임을 이야기해주고 아내가 믿음전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1차2차 혼자 다니면서 등등 이야기하며 루디아가 들은 것 아니겠는가. 말씀이 꽃이니 마음이 열렸다. 누가 복이냐 바울이냐 루디아냐 서로가 복이다. 말씀이 들리니 마음을 여셨다. 마음이 열리면 그 말을 따르게 된다, 정말 생각지 못한 한 사람이다. 루스드라에서도 전혀 생각지 못한 디모데를 만났다. 한 사람은 이런 사람들 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 옆에 있었지만 우리들교회를 세우기 위해 일한 사람들은 망하고 힘들고 자식 때문에 힘든 사람들이었다. 환경이 남들보다 못하다고 그들의 열매가 많은데도 외적인 것만 보고 무시하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사람을 바울이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바울처럼 구원 때문에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동역자를 허락하신다. (15절) 여기서 유하라는 것은 거하다는 것이다, 마음이 열린 루디아는 그 집 또한 활짝 연다. 그 집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루디아로 인해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게 한다,. 여리고 기생 라합 한사람의 결단으로 그 집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았듯이 루디아 한사람으로 인해 모두가 세례를 받고 빌립보 교회가 된다. 집이 예배의 처소로 열린 곳으로 우리의 마음이 열린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내 집이 열리는 것이 마음이 열리는 것이다. 목장처소로 내놓는 것이 어려우면 마음이 닫혀있고 말씀이 안 들이는 것이다. 집안 식구 전체가 믿으니까 루디아는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머물도록 강권한다. 선교사들의 숙소로 드리는 것이다. 빌립보에서 사역하는 동안 생계를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바울 일행이 강하게 거부하는데 계속 부탁하고 설득해서 강권한다. 이 빌립보는 유일하게 재정지원을 받은 곳이다. 바울이 늘 텐트메이커인데 빌립보를 신뢰해서 재정지원을 받는다. 강권하는 이유는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오라고 한다. 바울과 함께 주 믿는 자가 되었기에 한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바울이 복음전하는 사명에 함께 참여하는 동역자가 되겠다는 결단을 하는 것이다. 사실 타지에서 온 남자 네 명을 자기 집에 들이는 것을 여자인 루디아 입장에서는 너무 어려운 일 아닌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부탁을 받더라도 피할 수 있는 이유였다. 부탁받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강하게 거부하는데도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부탁한다. 그만큼 마음이 열린 것이다. 루디아 고난과 바울의 고난이 맞았다. 말씀의 동역자로 세워지는 데까지 나아간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여기까지 계속된다. 목장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를 보면 목자님들 너무 수고하신다. 찾아가고, 수고하고 안타까워하고. 우리들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수 없다. 날마다 아픈 이야기들이 보고되는데 어떻게 목장에서 돕고 초원 평원님이 돕는지 보고 받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성령의 직행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사도바울이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아시아에 살던 루디아를 지금 유럽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거절하심에 순종하니까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다보면 만날 사람을 다 만나게 하신다. 너무 가고 싶은 아시아였는데 하나님 막으셨고 복음을 위해 직행하며 나아가니까 아시아에 살던 루디아를 유럽에서 만나게 하시는 것이다. 내 자녀 내 가족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달려갈 때 내 자녀의 심령과 그 가정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천국에서 꼭 보고픈 얼굴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하늘 소망이 확실해지는 것이다. 꼭 이 땅에서도 만나게 되지만 결국 우리는 내가 남의 자식위해서 애쓰고 힘쓰면 천국에서 다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빌1:5에서 첫날은 루디아가 마음을 열고 집을 연 그날이고 이제까지는 3차 여행을 끝나고 빌립보 감옥에서 편지 쓸 때이다. 복음으로 인해 성령의 그 집이 되어 바울과 함께 이 위대한 사명을 이룬 빌립보 교회가 되었고 이 일을 끝까지 예수께서 이루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만나지 못한 보고 싶은 사람 또한 이집에서 만나게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교회고 공동체이다. 영원한 만남이 허락되어 있다. 바다에서의 순풍에 이어 만남에서의 순풍도 허락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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