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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수아 10장 15절~27절 - 중독
    주일설교 요약 2022. 5. 24. 11:51

    본문: 여호수아 1015~27

    제목: 중독

    설교자: 김양재 목사

     

              지난 1월에 한 컨설팅 업체가 두 차례에 걸쳐 20여만 명의 정보가 담긴 성매매 리스트를 공개했다. 의사, 변호사뿐 아니라 경찰까지 사회 지도층 인사들까지 대거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매체는 이 가운데에 목사로 추정되는 이도 있다고 보도했다. 지도층 인사들이고 심지어 수많은 전쟁에서 이기고 사역자까지 되었을 목사까지 왜 이런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까요. 갈수록 단절되고 깨어져 가는 관계 속에서 수많은 죄의 세력들이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고 있다. 죄가 중독으로 이어지면서 숨겨진 아버지의 죄, 부모의 죄가 자식의 죄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보게 된다. 이토록 무서운 죄와의 전쟁, 중독으로 이어지는 전쟁에서 우리는 어떻게 철저한 승리를 거둘 수가 있을까요. 세상은 끊임없이 속은 자 속인 자가 있고, 속은 자가 속인 자를 끌어안고 가려고 해도 왕급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듯이 속인 무언가와 같이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 기도할 때 해가 멈추고, 달이 멈추는 응답을 받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아직 굴속에 숨은 아모리 다섯 왕이 남아 있다고 했다. 끝이 없는 것 같다.

     

              저는 이 끝이 없는 전쟁이 중독과의 전쟁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중독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중독을 끊기 위해서는 첫째, 숨겨진 죄를 처리해야 한다. 죄는 공개된 죄가 있고 숨겨진 죄가 있다. 여호수아 7장부터 보면 아간의 죄는 모든 사람에게 폭로되고 공개적인 처벌을 받아 돌에 맞아 죽었다. 절도, 살인, 험담, 중상, 자랑, 술취 함, 원한, 질투 이런 것 중의 하나만으로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이번에도 7살 난 딸을 암매장한 사건이 이번 주에도 있었어요. 그것도 엄마가... 이런 죄들은 공개된 자리에서 처벌하지 않으면 이 죄를 제해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공개된 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숨겨진 죄가 더 무섭다. 이것은 더 제하기 어렵고 발견하기도 어렵고, 오픈하기는 더 어렵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야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불순종, 자만심, 이기심, 악한 생각, 의심 이런 것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위장할 수 있다. 15절입니다.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지난 시간에 아모리 다섯 왕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물리치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달도 해도 멈췄다. 그래도 여호수아는 길갈 예배로, 길갈 교회로, 길갈 목장으로 돌아왔다. 항상 키는 길갈이다. 우리가 부족해도 승리해도 다 길갈 교회로 돌아왔다. 16절입니다. ‘그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막게다는 예루살렘 남서쪽 32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 많은 지역이다. 100% 기도 응답을 받고 전쟁에서 다 이긴 줄 알았는데 가다 보니까 다섯 왕이 숨어 있는 거예요. 명예와 쾌락과 물질과 정욕과 내가 포기하지 못한 세상 다섯 왕을 다 포기하고 승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숨을 곳이 있으니까 딱 숨은 거예요. 우리가 숨을 곳이 없으니까 숨지 않는 것이지 숨을 곳이 있다면 다 숨게 되어 있다. 사채를 내서라도 마지막 망할 때까지 가는 것이 망하는 사람의 특징이다. 왜냐하면 전쟁이 시작되고 이제 사건이 닥쳐오니까 왕이건, 화려한 집이건, 큰 교회 직분자, 모태신앙이 다 소용이 없다. 인내도 없고, 들은 말씀도 없어서 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감당을 못하니까 자식들, 부하들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목숨만 지키겠다고 굴속에 숨었다. 다섯 왕, 잘난 사람들이 하는 일이 숨는 것이다. 바람을 피우면 자식이건 뭐건 안중에도 없다. 자기만 피해서 숨어버린다. 부도가 나도 숨어버린다. 이것이 대적의 실상이다. 보세요. 진짜 가진 사람들은 나와서 오픈하기 어렵잖아요. 사실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했는데 이렇게 오픈 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정말 그래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화려한 겉모습 때문에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약속의 길갈이 있는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17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이르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들이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니여기서 숨은 죄를 누가 또 고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수요일에는 혈루여인의 혈루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이것은 숨어 있는 깊은 죄, 또 다른 종류의 죄라고 생각해요. 내가 아무리 숨어 있어도 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자만심, 이기심, 음란한 마음과 의심을 얼마든지 숨기고 살아갈 수 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자기 연민과 위선도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 자기 연민은 겸손함과 착한 행동으로 숨기고 자만심과 이기심은 의로움으로 숨길 수 있다. 반대의 겉모습으로 죄를 가장할 때 나도 속고 남도 속는 것이다. 그래서 숨겨진 죄는 공개된 죄보다 발견하기도 어렵고 제하기도 어렵고 스스로 드러내기는 더더욱 어렵다. 사단은 끊임없이 죄를 숨기는 역할을 한다. 숨어서 은밀하게 죄를 행하면 그 죄가 지속적으로 나를 속박하고 중독과 집착에 빠지게 만든다. 차라리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말하고 비밀이 밝혀지면 그 힘을 잃어버릴텐데 계속 혼자만의 비밀로 붙잡고 있으면 중독의 힘은 점점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독은 개인의 약점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털어놓기 쉽지 않다. 누구든 자기 약점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독자가 하는 첫번째 거짓말은 문제는 무슨 문제하는 것이도 두번째 거짓말은 그래 나쁜 습관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언제든지 그것을 버릴 수 있어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독적인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건강하지 못한 관계라는 것 알지, 당장 끝내버릴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밤이 찾아오면 강박적인 충동이 되살아나서 다시 그 사람을 찾고 다음 날 아침이면 사단에게 이용당했다는 느낌으로 스스로를 증오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언제든지 이 관계를 끊을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중독은 생각보다 큰 힘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제랄드 메이의 책을 좀 인용하겠습니다. 중독이 물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알코올 중독, 마약, , 담배 등 비물질적인 중독도 너무 많이 있다. 일과 성취, 책임감, 친밀감, 호감을 얻는 것, 사람을 돕는 것 그것을 누가 중독이라고 하겠는가. 친구 중독도 있고, 거시증도 있다. 호감을 얻는 것이 굉장히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억지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계속하는 것이라는 것, 그것을 안하면 죽을 것 같다는 것이 다 중독이라는 것이다. 중독은 좋은 중독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자녀를 신앙생활 시키는 것, 큐티 시키고 교회 오게 하는 것 이것도 사랑으로 해야 되겠는데 그것도 강박적으로 하게 되면 그것이 속박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것도 중독은 좋은 것이 없다. 좋은 중독은 없다. 그래서 수많은 행위들에 중독될 수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중독되어 있다는 것이므로 사람들이 원하지 않은 일에 어쩔 수 없이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이라면 어디든지 중독이 존재한다. 원하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신앙 고백이 없이 이기적으로 하는 모든 착한 일, 모든 것들에 중독이 존재한다. 아모리 다섯 왕들은 많은 전쟁을 치뤘지만 하나님께서 해도 달도 멈추게 할 정도로 강력한 사단의 하수인들이기 때문에 아직도 굴 속에 숨어 있다. 중독도 하루 아침에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집착과 중독의 관계는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다. 뇌는 한번 가졌던 집착을 결코 완전히 잊지 않는다. 그러므로 욕구를 자각하지 않는 다는 것이 곧 집착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우리 마음속에 속임수로 인해 수많은 중독이 오랫동안 숨겨져 있다가 우리를 좌절시킬때나 갈등을 유발시킬때 비로소 집착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는 기회를 많이 갖게 된다. 그래서 다들 내가 그런줄 몰랐어.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어. 이런 얘기 듣고 합니다. 굴속에 숨어있는 아모리 왕은 이미 결박당했다. 그럼에도 화려한 아모리 다섯 왕의 겉모습을 보고 우리가 놀란다. 왜 겉모습에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이 많은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인데 놀란다. 여러분의 숨겨진 중독은 무엇인가요? 저는 내 속의 중독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많이 있겠지만 인정 중독이 제일 심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제가 일생을 살면서 두려워하는 것을 꼽으라고 하면 자다가도 꿈에서 제가 너무 놀라는 것이 피아노 시험 치는 거에요. 실기시험 치는 거에요. 그러니까 수많은 실기 시험을 치고, 또 칠 때마다 몇 분 안되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벌벌 떨었다. 그렇게 대학 입시를 치고 대학에 가서도 수없이 피아노를 치고 실기 시험을 쳤다. 왜 그렇게 떨렸을까요. 너무 떨려서 약먹어야 되요. 그런데 그것이 이제 항상 성적과 연관되기 때문에 그리고 좋은 성적을 안받으면 큰일나기 때문에. 그것이 다 좋은 것 같잖아요. 저는 장학금 받아야 되니까. 날마다 떠는 것이 그게 뭔지 실체도 몰랐어요. 인정받아야 하고, 그것은 철저하게 나의 유익을 위해서 하니까 떨리는 거에요. 입시와 직결이 되어 있고, 최고의 대학과 직결이 되어 있고 나중에 진로와 직결되어 있으니까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날마다 떨리는 겁니다. 그 몇 사람 앞에서 평생 떨리던 제가 구름떼 같은 여러분들 앞에서 설교를 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것이 제가 승진과 진급을 위해서 여기서 설교한다면 옛날에 제가 심장마비 걸려서 죽었겠죠. 여러분만 듣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수많은 청취자들과 시청자들이 보고 듣고 하겠어요. 그런데 설교할 때 떨릴까요? 제가 긴장은 하지만 나의 이해타산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기 때문에 설교할 때 떨리지 않습니다. 아주 안방 같이 앉아서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재대로 살지 못해서 안타깝고 긴장하는 것은 있지만 제가 사람들 앞에 인정 받으려고 부들부들 떠는 것은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 보고 여기 올라와서 설교하라고 하면 부들부들 떨어서.. 할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럼에도 제 뇌에는 인정중독이 기억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도 그런 것이 저에게 조금 남아 있지 않을까 싶다. 항상 최고를 해야 되고 이러니까 설교도 완전주의가 있어서 또 생각하고 생각하고.. 분명히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두려운 것은 항상 욕심 때문이다. 거기에 제 욕심이 없겠습니까? 아무리 힘든 사람도 다 나의 밥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미 이긴 싸움을 하고 있다. 공개된 죄도 처리하고 숨겨진 죄도 처리해주실 주님을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내 힘으로는 중독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거기에서 부터 치료가 시작된다. 가장 첫 단계가 난 알콜 중독자입니다. 나는 인정 중독자입니다 라고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뭐라고 고백하고 싶습니까? 나는 마약 중독자 입니다. 나는 알콜 중독자입니다. 나는 인정 중독자입니다. 속으로 생각해서 한번 다 고백 한번 해보세요. 마지막 단계는 보다 더 큰 힘을 신뢰하는 것인데 바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중독은 본성의 일부인 동시에 본성의 대적자이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를 받는데 가장 방해하는 것이 중독이다 역설적이지만 그 중독이 우리로 하여금 은혜를 깊이 깨닫도록 이끈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억압과 중독 그 밖에 모든 인간의 마음에 자유를 억압하는 내적, 외적 힘들을 다 능가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중독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은혜 밖에 없다. 그 은혜가 우리가운데 있는 거다. 이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힘이다. 저는 큐티야말로 중독치료소라고 생각한다. 매일 큐티하는 사람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고백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매일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힘을 공급해 주신다. 그러나 신앙고백없이 큐티를 문자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문자중독자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큐티를 하는데도 나는 되는 것이 없어 이런 사람들은 글자를 보고 하는 문자 중독자들이다. 우리 가운데 바리새인 같은 문자 중독자들도 많이 있다.

     

    적용질문

    오늘이라도 끊을 수 있고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중독과 숨겨진 죄는 무엇인가. 내가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나의 죄를 드러내게 하시는 것이 축복임을 믿습니까? 그렇게해서 드러나게 하신 것이 있습니까?

     

              두 번째는 중독에서 해방되려면 우선순위를 판단해야 한다. 18절부터입니다.‘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그들을 지키게 하고 너희는 지체하지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이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다섯 왕이 숨은 것을 여호수아가 알았다. 그런데 그들을 바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굴 어귀를 막아 지키게 하고 그리고 무엇을 지시하는가 보니 남은 적군들을 가서 물리치라고 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여리고 전쟁 아이 전쟁 다 겪다보니까 어떻게 전쟁을 해야 하는지 여호수아가 알았다. 저 같으면 다섯 왕이 숨었다고 하면 부하 장병들 앞에서 내가 이 아모리 다섯 왕을 물리쳤다고 자랑할 것 같다. 예를 들어서 대통령, 장관, 국무총리 이런 다섯 명이 우리들교회와서 설교를 듣고 목사님이 가서 복음 제시만 하면 영접하게 생겼어요. 목사님 빨리 찾아가세요. 그러면 제가 의시대고 가지 않겠습니까. 여호수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만히 내버려두라 그들보다는 남은 적군을 먼저 물리쳐라. 결국 여호수아는 사단의 모든 것을 알고 장악하고 있다. 중요한 일과 급한 일 중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알고 있다. 어느 때는 두목부터 쳐야 되고 어느 때는 졸개부터 쳐야 되는 것이 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인도함을 잘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 전쟁에서는 이 두목들이 이빨 빠진 호랑이이기 때문에 내버려두라고 하는 거다. 언제나 이것이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뒤에 또 그 이유가 나온다. 20절부터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살육하여 거의 멸하였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들로 들어간 고로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혀를 놀려 대적하는 자가 없었다는 것은 비방하는 사람이 그 동안에는 있었다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욕심이 많아서 이것도 포기 못하고 저것도 포기 못하고 하니까 어떤 것도 진멸을 못한다. 그래서 자꾸 욕심을 남겨두니까 혀를 놀리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부하, 남은 적군들을 다 물리치고 나니까 혀를 놀려 이스라엘을 비방하는 사람이 없다고, 대적하는 자가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대단한 왕같은 사람을 전도해서 나를 비방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 힘든 사람 찾아가서 전도할 때에 나를 비방하는 사람이 지금 없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중독을 이야기하면서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 정말 힘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서 돕는 것이 얼마나 중독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모른다 이 이야기다. 제가 설교하는 것은 아모리 왕의 입장, 여호수아의 입장, 군졸의 입장 다 입장에 따라서 자기가 여호수아 입장도 되어 보고, 아모리 왕의 입장도 되어 보고, 군졸의 입장도 되어 보는 것이 큐티고 그 말씀이 나에게 임하는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고 들으시면 됩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아모리가 뭐야 이러실 텐데 목장에서 설명을 들으시길 바래요. 환난 당하고 빚진자 한 영혼은 대통령 한 영혼과 똑같은 영혼이다. 일년 내내 환난 당하고 빚진자 보내달라고 기도했더니 우리들교회에 모든 비방 거리에 대해서 조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줄었는지 모른다. 저는 여성 목회자이다. 얼마나 비방할 일이 많겠습니까. 우리나라가 1600여년 경에 불교문화와 500년의 유교의 제사 문화 이런 여성 비하 문화에 익숙한 문화사회이다. 그리고 지금 기독교가 들어온 지 130년 정도 밖에 안된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고정관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다. 이런 가운데 여성목회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비방받고 조롱 받을 일 밖에 없다. 그런데 제가 계속 힘든 사람, 어려운 사람들 오라고 하니까 비방거리가 자꾸 줄어드는거에요. 우리 예수님도 계속 어렵고 힘든 그런 곳만 찾아다니셨다. 예수님 믿는 목적이 그것 아닙니까. 우린 핑계 댈 것이 없다. 우리나라가 틀렸어, 교회가 틀렸어, 집안이 틀렸어 할 것이 없다. 자기 할 일 열심히 하고 있으면 혀를 놀려 비방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맨날 왕들하고만 놀려고 하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숨어 있는 왕들은 내버려 두고 내 할 일 부터 하십시오. 지금 제가 일대지 숨겨진 죄와는 완전히 다른 부분에 적용을 다루고 있다.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들으시기 바란다. 영혼은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섯 왕 보다는 군졸들을 전도하기가 훨씬 쉽다. 괜히 시간 낭비 하지 마십시오. 동창회 가서 전도하는 것도 좋겠지만 정말 힘들고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전도하면 비방을 덜 받는다. 혀를 놀리는 사람이 줄어든다. 세상에서 핍박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지만 세상에서의 일을 다 쓸데 없다 이러면 안된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핍박 받는다고 핍박 증후군에 속하는 것도 중독이다. 저도 이런 중독에 노출되어 있다. 여성이라서 핍박받는 것은 팩트이다. 그러나 제가 주제를 인정하고 알고 받아들이기 떄문에 제 자존감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누가 핍박을 합니까? 자기가 자기를 핍박한다. 그러므로 그런 열등감의 소리는 할수록 무시 받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목에 힘을 줍니까? 그것도 아니다. 혀를 놀려 비방할 때 나의 잘못인가 의의 핍박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혀를 놀려 비방당할 때 상처가 되면 숨게 되어 혼자의 세계로 가서 중독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비방 당하지 않기 위해 낮은 자 힘든자를 먼저 돕고자 하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평생학교 가도 상처, 교회 가도 상처 이 교회 가도 상처. 그런데 저도 평생 다녔지만 상처 때문에 어디로 옮긴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남편 옮기거나 시어머니를 옮기거나 제가 교회 사역을 하면서도 무엇이든 다 틀려서 그런 점은 평생에 없는 것 같다. 항상 그냥 사역을 하면서도 이 교회도 틀렸고, 저 교회도 틀렸고, 우리나라가 틀려서 이민을 가야겠고 이 남편이 틀려서 남편을 바꿔야겠고 아내 바꿔야겠고 그러시면 안되요. 내가 낮은자를 돕고자 하는 마음만 먹어도 중간은 간다. 나의 잘못으로 비방당한다는 것을 인식하면 혼자만의 세계에서 중독으로 괴로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를 잘 알아야 한다. 급한 일인가 중요한 일인가. 영적인 일인가, 육의 일인가. 우선 순위를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구원을 목표로 놓지 않으면 분별이 안된다.

     

    적용질문

    복음을 전하기 위한 영적전쟁에서 나에게 가장 우선순위는 어떤 사람입니까? 가난한 형제와 친구는 부담스러워서 피하고 교회 데리고 왔을 때 내 체면을 살려줄 사람만 전도하지 않습니까? 나의 그런 태도 때문에 믿는 자로서 비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세 번째, 중독에서 철저하게 승리하려면, 실제로 삶에서 목밟기 적용을 해야 한다. 24절입니다.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며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시폄 1101절에는 내가 내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 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원수로 내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는 원수의 목을 밟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설교를 해도, 집안에서도 살아 있는 교육을 해야 교회도 가정도 성장한다. 로마서 1620절에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이 말씀을 믿어야 한다.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의 분장들이 사탄을 상징하는 다섯 왕의 목을 밟았다. 은밀한 죄는 거듭거듭 우리를 미혹시키고자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죄를 발 아래 놓고 밟아야 한다. 그런데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외도나 부정을 행한 것이 알려지는 것이 너무 두렵다. 그래서 배우자가 바람을 처음 피웠을 때는 찾아가서 모두에게 알리는 방법이 효과가 있다. 굴욕을 당해야 딱 끊는다. 인간이 연약하기때문에 그래야 끊어질 수 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처럼 불륜이 드러나서 수치를 당할 수 있는 것이 죄를 끊어 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는 수치를 당했지만 그것 때문에 천국 간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것도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직업에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가서 아무리 난리를 피워도 끄덕도 안한다. 그래서 그것을 또 분별을 잘해야 한다. 어쨌든 다섯 왕이 발로 밟히는 굴욕을 당하면 빨리 끊어질 수도 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발로 밟을 수 있는데도 전쟁에 참가했던 군장들을 불러서 밟으라고 했다. 승리를 직접 체험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나 혼자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들의 양육과 훈련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목사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교회를 목사 혼자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성도들이 각자의 삶에서 끊지 못했던 죄의 목을 밟고 왕 같은 세상 가치관들을 물리치는 이런 승리를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럴 때 교회가 성장하고 한 영혼이 성장한다. 큐티는 단순히 시간을 내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내 죄를 발견하고 그 죄에 대한 목밟기를 날마다 행하는 것이다. 우리들교회의 예배 특징은 각 부서 설교 뒤에 적용 시간을 갖는 것이다. 어떤 성도는 여자 문제를 일으켰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고백을 했다. 어떤 학생은 왕따 당하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는데 자신도 따돌림 당할까봐 못했다. 이제 말씀을 듣고 용기를 내어 도와주겠다고 했다. 어떤 청년은 담배를 끊지 못했는데 끊을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했다. 그냥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강대상에 올라와서 지체들 앞에서 그런 적용을 한다. 이것이 목밟기 적용이다. 외도의 목을 밟고, 왕따 문제의 목을 밟고, 끊기 힘든 술, 담배, 음란 이런 목을 밟겠다는 것이다.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적용을 하고 결단을 하니까 하나님이 더 힘을 주신다. 그것을 보고 끊지 못한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낸다. 멀리서는 목을 밟을 수 없다. 가까이 가서 다섯 왕 죄의 실체를 보고 내가 적용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 하는 것을 보기만 해서도 안된다. 그래서 직접 가서 적용해보라고 여호수아가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제자훈련이다. 25절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같이 하시리라 하고그런데 지금 아모리 왕들은 죽은 상태가 아니다. 한때 위세를 떨치던 다섯 왕들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두려워서 어떻게 목을 밟겠습니까? 목밟기 적용을 하려니까 두렵고 떨리고 자존심과 체면이 말이 아니다. 도저히 못할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여자 문제를 적용하겠어, 목자가 어떻게 아직 술 담배를 못 끊었다고 하면 어떻겠어. 난 못해 못해. 돈의 목을 밟고, 쾌락의 목을 밟고, 명예의 목을 밟고 체면의 목을 밟는 적용을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교만한 자들이다. 그래서 땅 끝까지 내려가야 한다. 아모리 왕들처럼 모든 것을 갖춘 사람들은 돈으로 숨고, 지연으로 숨고, 학연으로 숨고 끝까지 숨는 것 밖에 못한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 가기 어려워요. 아주 확률적으로 갖은 사람들은 드러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죄를 짓고 드러내지 못하면 최후는 멸망과 심판이다. 그래서 숨을 때가 없는 것이 축복이다. 나를 숨겨줄 돈과 지위와 학벌이 없어야 목밟기 적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두려워 말라고 군장들을 격려했다. 목밟기 적용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죄를 고백하고 죄를 끊도록 적용하는 것을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내서 죄의 목을 밟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다른 이들을 돕게 되면 여호수아와 같은 리더십이 저절로 주어진다.

     

    적용질문

    오늘 어떤 목밟기 적용을 할까요. 중독의 목을 밟기 위해서 우리가 대단한 것부터 하라는 것 아니다. 커피를 줄이시는 것이 어떨까요. 우리는 말도 안되는 이 나라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에 너무 비싼 커피를 날마다 마신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우리들교회 카페부터 좀 줄이시길 바래요. 카페가서 그 비싼 커피를 오시면 모두가 한잔씩 먹고 그럽니다. 커피를 좀 줄이세요. 얼마나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아세요? 그럼 우리가 술을 안먹는데 커피나 마시자 그런 대체하는... 정말 그게 대단한 수입원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마시려면 자판기 커피 그리고 이제 다방커피도 있고. 어떻게 목사님은 자기는 안마시면서 그러실 수가 있는가. 아니요. 너무나 다방커피 좋아합니다. 중독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저는 하루에 한 잔 먹기를 참 즐거워하는데 저는 먹으면 안되기 때문에 그것도 중독이라고 생각해요. 이 땅에 좋아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커피 한잔 매일 오락가락 해요. 저한테 중독이라고 생각해요. 게으름의 목을 밟기 위해서는 운동을 시작하고 충동의 목을 밟기 위해서는 신용카드 두고 외출하기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시작해보시길 바래요.

     

    26절입니다.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 채로 두었다가죽인 왕을 나무에 매달고 선포하는 것이 목장나눔이다. 우리의 숨겨졌던 죄에는 저주받은 자리, 십자가에서 처형되어야 한다. 주일마다 처형되어야 한다. 도와달라고, 나의 중독을 끊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면 그 사람은 이미 구원받은 자리에 가는 것이다. 내 죄는 십자가의 자리에서 처형되어야 한다. 저주받은 자리, 목밟기로 처형 되어야 한다. 힘들게 하는 아이가 집을 나갔습니다. 이 엄마가 나눌 때가 없습니다. 나눌 때가 없어서 우리들교회 와서 나누니까 나누기만 해도 그냥 너무 기뻤는데 게다가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나누고 기도하고 돌아오니까 다들 나의 일처럼 기뻐해줍니다. 아까 거식증 온 목장 식구들에게 영광을 돌리잖아요. 애들이 얼만든지 나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냥 무엇을 조금 가진 아모리 왕 같은 사람들은 그것을 다 숨기느라고 바빠요. 아들이 나간것도, 남편이 바람 핀 것도 매일 숨기는 것도 바빠요. 그렇게 막게다 굴에 숨으시면 치료가 안되요. 내가 목밟기를 통해서 나무에 매어 달고 두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우리의 모든 저주의 죄를 대신해서 달리셨다.

    27절입니다.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령하매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들이 숨었던 굴 안에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까지 그대로 있더라그렇게 내가 매달면 우리의 죄는 영원히 기억도 되지 않게 소멸되어진다. 굴 속으로 영원히 던져진다. 죄가 죽음에 넘겨지면 그 다음에는 승리의 행전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후로는 여호수아가 이기는 전쟁만 하게 된다. 지난 수요예배에 많은 목장 나눔을 읽어드렸어요. 듣기도 숨이 가뿐 이런 나눔을 읽어 드렸어요. 목밟기 적용을 했습니다. 읽어줬을때 그 당사자들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면 어떻게 라고 생각한다면 나눔을 안 하는 것이 낫다. 그것은 아직도 십자가에서 죄가 처리되지 않은 것이다. 죽지 않은 것이다. 내가 한번 오픈한 것을 주님께서는 기억도 안하시고 오늘 굴속으로 집어 넣으셔서 도말하신다고 한다. 세상의 모임과는 절대 다른 것이다. 영원히 굴에 던져놓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아놓고 오늘날까지 있더라고 했다. 절대로 하나님은 기억도 안하신다. 죄는 용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정복하길 원하신다. 자백은 했는데 아직도 굴에 끼고 있으면 열매가 없다. 이제는 목을 밟고 십자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야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한번 매달면 승리와 부활 밖에 없다. 내가 목밟기 적용을 했어도 26절에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 죽어 다섯 나무에 매달고 있다. 군장들이 다섯 왕의 목을 밟았어도 마지막에 진짜 죽인 사람은 여호수아이다. 내가 적용했다고 하루 아침에 다 죽지 않는다. 누군가가 적용을 했다. 내가 계속 그것을 적용의 재료로 삼아서 설교를 했다. 그랬더니 자기가 적용했더니 목사님이 그것을 십자가에 매달아서 읽어주셨다고 목장모임에 가서도 또 이제 목사님이 읽어 주셨으니까 목장 모임에서도 십자가에 대롱대롱 매달렸다고 너무 고맙다고 하는 거에요. 우리가 나눔을 하면 제가 설교에서 다시 한번 인용하면서 목을 밟아주죠? 진멸해야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서로 나누고 해석하고 선포하고 가는 것이 죄를 이겨가는 방법이다. 다른 것이 없어요. 큐티가 중독 치료소라고 했다. 28절입니다. ‘그 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모든 사람을 진멸했다고 했다. 진멸의 원어가 헤렘인데 이것이 아간과 같은 단어이다. 우리도 헤렘이다. 우리는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진멸 당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이다. 21가지 죄의 목록에 의해서 사형에 해당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진멸, 헤렘의 종지부가 예수님이다. 우리를 위하여 진멸 당하시고, 우리를 위해 살아나셨다. 예수님의 이 헤렘 사상이 하나님의 복음을 더 은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여호수아를 7장부터 쭉 보면 그 죄의 핵심 내용이 다 들어있다. 죄의 실체는 탐욕이다. 아간의 탐욕이다. 탐욕때문에 죄를 짓기 시작한다. 그러나 죄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심각하지 않다.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다. 이 다섯 왕들은 숨었다가 죽었다. 멸망 포로에서 회복되지 못했다. 그냥 죽었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눈물을 흘리면 돈이 보이고 다른 것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죄가 보이는 것이 해결 과정이다. 드디어 이때부터 여호수아가 죄의 실체를 알고 심각함을 알고 해결의 결과를 알았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여호수아는 이후로 계속 승리의 전쟁을 한다. 그 다음부터 지는 법이 없었다. 계속 이겼다. 죄와의 전쟁은 이렇게 이겨가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중독되었다는 것이라고 아까 표현했는데 이 중독에서 철저한 승리를 하려면 끊임없이 말씀을 통해서 죄에 대한 연구를 하고 묵상을 하고 적용을 하고 나눔을 하고 선포를 하고 이것이 바로 완전히 이기는 비결이다. 어디서도 그 치료책이 없다. 바로 이 말씀, 공동체, 길갈 공동체가 죄의 중독의 치료소라고 생각한다. 한 중년 법률가가 특정 성관계에 중독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한 동료에게 매력을 느껴왔는데 어떤 장기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여 밀접한 관계로 일하게 되면서 사랑에 빠졌다. 그는 이 사실을 아내가 모르게 하면서 아내를 속이는 것이 싫었지만 그의 연인은 그에게 수 년만에 처음으로 내가 정말로 살아있고 자유롭다고 느끼게 해줬대요. 그녀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그것이 중독으로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진짜 로맨스였다. 일주일에 한번씩 연인을 만났습니다. 그녀에게 선물을 주고 그녀는 그의 가슴속 열망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그 관계에 강요된다고 느꼈다. 그는 매주 한번씩 찾아오는 자존감과 성적 해방을 위한 마약 주사를 갈망했으나 만남 후에는 매번 우울해졌다. 가고 싶지 않지만 왠지 가야만 한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그들은 셀 수 없이 여러번 불륜을 끝내려고 결심을 했으나 또 다시 상대방의 품속으로 돌아가게 될 뿐이었다. 진지하게 떨어져지내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아내에게 들키거나 연인이 앙심을 품게 될까봐 점점 두려워졌다. 이때 잘한 것이 그가 의사를 만나고 믿을만한 친구에게 이 비밀을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오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에게 오픈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한 두사람에게 꼭 숨겨진 죄를 오픈해야 한다. 그의 행동을 변화시키는데에는 도움이 될 수 없었지만 그들은 뭘 가르쳐줬냐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일은 고통이 되었다. 드디어 마지막, 이제 마지막이라고 그래서 안 만나기로 했대요. 그렇게 끝이 났대요. 싱겁죠. 나중에 그는 말했어요. 그냥 다시는 만나지 않기로 했어요. 그게 다였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그녀를 생각하고 그녀에 대해 감탄하고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회상하게 되더군요. 그러나 그것보다 내 자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녀도 그녀 자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나는 그저 되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 법률가는 믿음도 없는데 불륜 사건 이후에 수년동안 계속해서 다른 여성에게 끌렸지만 자신의 감정을 재빨리, 단순하게 처리하게 되었다. 그 여성과 함께하는 환상을 물리치려고 싸우거나 마음속에서 몰아내려고 애쓰지 않았대요. 그러나 거기에 빠져들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면 그것은 지나가버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술을 커피로 대체하려고 그러면 안되요. 중독의 큰 것이다. 법률가의 특징은 솔직한 연약함으로 자신의 마음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교부 안토니우스는 유혹을 경험해보지 못하는 자는 아무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바람을 폈는데 끊는다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부부간에도 적용을 잘 해보세요. 저는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중독에 노출되어 있을거다. 그러나 우리들교회가 뭐가 다르냐하면 우리들교회는 목장에서 날마다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나누다보면 없애려고 노력하지 않고, 내가 그런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나누다보면 중독의 마음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고 있다. 사람 좋은 것 누가 말려요? 가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지나가게 되는데 우리가 공사장 팻말에 들어가지 마시요 하는데도 거기에 다 들어가보고 싶은, 아무것도 팻말이 없으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것. 끊임없이 목장에서 나누면서 여러분들의 음란의 중독들이 어느날 보니까 사그러지고, 있으면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목장이 얼마나 중요한 중독치료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독을 즐기고자 하기 때문에 절대로 목장에 나오기 싫어하는 것이다. 죄의 싹이 딱 숨어 있기 때문에 아주 일류일수록 목장에 나오기 싫어한다. 일류일수록 빨리 나와서 어느날 시작되는 중독을 치료해야 한다. 누구든지 아무 문제가 없을때 더욱더 중독이 시작될 수 있다. 저는 신앙공동체에는 모든 흔들림을 지탱해내는 위대한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중독을 끊기 위해서 반드시 목장에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처방이다. 그냥 나와서 있는 모습그대로 팩트를 이야기하면 된다. 내 감정에 직면했다고 이야기 하다보면 종잇장처럼 한장씩 없어지는 것이다. 우린 예외없이 중독과 더불어 살고 있다. 그러나 오늘 이 본문은 결국은 끊어 낼 수 있는 것을 여호수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여전한 방식으로 너무나 길갈 공동체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떤 상담을 하고, 어디를 가도 영원히 끊어질 수 있는 것이 없다. 예배 공동체 신앙공동체만이 끊어낼 수 있는 엄청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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