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열왕기하 9장 30절~37절 - 이세벨을 내려던지라
    주일설교 요약 2024. 5. 5. 08:46

    이세벨을 내려던지라

    열왕기하 9 30~37

    김양재 담임목사

     

    인간은 뭔가를 이렇게 새롭게 얻는 기쁨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는 고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해요. 좀 유식한 말로 하면 손실 회피 성향 로스 어브존이라고 하는데요. 말 그대로 손실을 피하려는 이 성향을 말해요. 그러니까 며느리를 새로 얻잖아요. 근데 그거보다는 아들을 잃어버리는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니까 이제 고부 갈등이고 또 장서 갈등도 마찬가지예요. 그것은 이 땅에 보이는 연봉이나 스펙이나 외모 등으로 가치를 정하는 데다가, 거기다가 내 새끼는 가치가 다들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들 이렇게 손실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혼이 안 되는 것이고 결혼해도 갈등이 끝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피하고 싶은 손실은 무엇인가요? 요람이 자기 고집 버리기 싫어하다가 말씀대로 갚음을 받았어요. 아하시아는 가족 우상 버리기를 싫어하다가 남김없이 갚음을 받았잖아요. 우리는 이런 손실 회피 성향을 넘어서야 하겠어요거룩을 위해서는 잃어버릴 것은 깨끗하게 잃을 수 있어야 하고 게다가 적극적으로 내버려야 할 게 우리 안에 있죠. 바로 우리 죄악입니다. 오늘은 아합과 결혼한 지 수십 년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물들인 악의 진원지 아합의 집 길, 모든 죄악의 끝판 왕 이세벨이 드디어 심판을 받는데요. 그를 내려 던지라 는 예후의 명령대로 오늘 이세벨이 내려 던져져 죽습니다. 이 시간 이세벨을 내려 던지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가득한 죄악들을 다 내려 던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해요.


    내 안에 이세벨를 던져 내려 던지려면 첫째로 화려하게 꾸민 포장을 분별해야 합니다. 30 31절입니다. 예후가 이스르엘에 온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예후가 문에 들어옴에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

    들어도 바라보는 게 이렇게 달라요. 예후는 이스라엘 성 밖 나봇의 포도원에서 요람을 죽였어요. 또 아하시아를 므깃도까지 추격해서 거기서 죽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스르엘로 돌아왔어요. 거기에 끝판왕 이세벨이 있기 때문이죠. 예후가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외쳤잖아요. 하나님이 드디어 이제 이세벨을 손보실 때가 온 것이에요. 그래서 미친듯이 강한 예후를 사용하셔서 손을 보십니다. 어쨌든 이제 이세벨은요.부자 나라 시돈의 공주예요. 그래서 아버지 엡바 왕을 도와서 바알과 아사라를 섬기는 여제사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왕자 아합과 결혼했어요. 왕비가 되었어요. 아들도 둘이나 왕을 만들었죠. 딸 아달랴는 남유다 여호람에게 시집을 보냈어요. 그리고 여왕이 되었죠. 그 사위도 왕입니다. 외손자 아하시아도 왕이었어요 이세벨은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앞둔 이 순간까지 왕들에게 둘러싸여 살았어요. 그러나 그 수많은 왕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쳤고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가장 많은 대접을 받은 왕 중 왕이었어요. 이세벨은 이스르엘 성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궁궐 안에서 들었어요.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아들 요람도 죽이고 외손자 아하시아도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럼 자기 차례인 것을 알았겠죠. 

    그러나 이세벨은 그동안 최고의 선지자 엘리야, 엘리사가 계속 말씀을 아무리 전해줘도,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려요.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리는 지도자들은 다 이상하게 결정을 하는 거예요. 절대로 안 들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여러분들이 결혼생활하고 직장생활하는 거는 이 최고예요. 그래서 이제 그동안 하나님은 이세벨에게 얼마나 많은 그 회개의 기회를 주셨어요. 그녀는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의 갈멜산 대결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어요. 아합이 회개했을 때 재앙을 아들 시대에 내리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도 보았어요. 그런데도 회개가 안 돼요. 남편은 전사하고 큰 아들은 난간에서 떨어져서 아파 죽고 작은 아들은 화살에 염통이 뚫려 죽고 외손자는 도망가다 죽어도 안 되는 게 회개네요. 그러니까 고난이 왔다고 회개가 되는 건 또 아니에요. 그러니 이세벨이 예후를 기다리며 한 일이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민 거예요. 왕후마마의 화려한 치장을 한 겁니다. 이렇게 다 죽었어. 자기 목숨도 위태로워. 근데 지금 이렇게 화장을 하고 치장을 하고 있다니 이게 제정신 하는 짓입니까?


    근데 이세벨이 어떤 여자죠? 이스라엘의 바알 숭배를 퍼뜨리고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깡그리 없애려고 했잖아요. 그냥 남편이고 자식이고 남유다고 이스라엘이고 예수 믿는 이스라엘을 영육 간에 다 넘어지게 한 아주 무서운 여자 아닙니까? 그러니까 창을 통해 도도하게 내려다보며 드디어 성문을 열고 들어오는 예후를 봅니다. 이런 것만 봐요. 들어도 봐도 해석을 못해요. 보통 사람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무서워서 숨거나 살려달라 그러지 않겠어요? 이세벨은 끄떡없어요. 오히려 예후를 향해 먼저 말을 딱 겁니다.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평안하지 못하니까 날마다 평안을 부르짖어요.


    시므리는 그때로부터 약 40년 전에 자기가 섬기던 엘라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 사람인데요. 백성이 왕권을 인정하지 않아서 왕이 된 지 일주일 만에 궁에 불을 질러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그러니까 7일 천하로 끝난 왕입니다. 그러니까 이세벨이 예후에게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라고 묻는 것은 니가 지금 반역에 성공해서 평안한 것 같지만7일 만에 끝날 거야. 좋아하지 마. 비꼬고 꾸짖고 저주하는 거죠. 이 여호와 앞에서도 이렇게 단장을 하고 당당하고 이렇게 대단한 이세벨을 여러분들은 멋있는 여장부라고 칭송을 하시겠습니까
    모르겠죠 여러분 중국 사람들의 그 독재를 하는 시진핑에 대한 만족도가 거의 90%에 가깝다잖아요. 지도자에 대한 만족도 최하는 한국이래요. 한국 사람 민족성이 정말 안 좋은 것 같아요. 아합이 그렇게 악을 행하고도 그 악이 아시아 요람까지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 사람은 이렇게 노예 근성이 있어서 이게 세뇌가 되어서 독재를 너무 좋아하나 봐요. 그런데 악한 날의 악한 자를 통해서 예후를 피의 숙청자로 지금 쓰시는 거예요.  여러분 엘리야 엘리사는요. 아무리 말씀을 전하고 너희들이 틀렸다고 해도 요람도 아시아도 이세벨도 처단하지 않았어요. 여러분 아무리 미워도 여러분들이 이렇게 처단을 하면 절대로 안 되는 거 여러분 우리가 다 100% 죄인이기 때문에 사망의 골짜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정상이에요. 인간 타락의 최종 증거는 죽음 앞에서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예요. 그야말로 그러면 영벌받아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 두려운 줄도 모르는 이세벨이니 그러면 끝까지 하는 일이 겉 치장에 치성을 드리는 거예요. 여러분들의 인생의 정점은 언제인가요? 노후 보장 잘 되고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연봉이 많고 이럴 때가 정점입니까? 그리스도인에게 정점은 죽음이죠. 우리 욥기 요새 읽잖아요. 이 땅에서의 수고를 그치고 내 사랑하는 영생의 주님을 만날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설렘으로 이제 맞게 되니까 정점이 맞아요. 여러분들이 죽음에 대한 견해가 이렇게 이제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이 불안한 거죠.  이세벨이 이런 죽음을 맞이하려고 물론 화장을 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꾸밈과 포장에 잘 속아 넘어간다는 거죠. 내가 잘 속으니 남도 속으리라 생각하며 내 눈과 다른 크고 예쁜 눈을 그리고 내 머리보다 풍성하고 화려한 무리를 머리를 꾸밉니다. 눈과 머리뿐이겠어요 옷과 신발과 가방과 자동차와 이런 집처럼 기본적인 것은 물론 학벌과 이력과 지위와 재산 등 내 자신을 포장해 줄 화려한 것들로 꾸미는 게 그냥 죽음이 죽음의 문제가 해결 안 된 이 세상 사람들의 특징이에요. 물론 이런 것들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이고, 사명을 위해서 쓰임받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내 본모습을 감추는 화려한 포장이 되어서 남도 속이고 나도 속는 수단이 될 때가 훨씬 많다는 것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세벨은 화려한 화장을 쥐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 본 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해요. 보려 하지도 않아요. 자존심이 자신의 생명보다 더 높이 있어요. 그리고 내려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또 그래요. 그래서 예후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본 그 순간이 사실 이세벨이 자기 본 모습을 직면하고 회개할 마지막 기회 아니었겠습니까? 근데 화려한 꾸밈 속에 갇힌 이세벨은 소식을 들었으나 자신에게 속아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마는 거예요. 결국 세상만 보다가 영벌에 빠지게 되는 거죠. 따라서 화려하게 꾸민 것들이 다 벗겨져 내 수치가 드러나는 사건은 절대로 저주가 아니에요.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대신해주는 겁니다. 내 본 모습은 본 모습을 직면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스스로 속고 속이는 일을 멈추고 진짜 내려 던져 버려야 할 내 안에 이세벨을 분별하도록 하나님이 도우시는 거예요.그런데 거기서 마지막까지 회개를 못하면 이 기회를 놓치는 거죠.


    적용 질문이에요. 무엇을 제일 열심히 꾸미나요? 왜 꾸미나요? 감추고 싶은 약점은 무엇입니까? 내가 들었으나 내 모습을 보지 못해 내려놓기 어려운 자존심은 무엇인가요?



    내 안에 이세벨을 내려 던지려면 첫째가 뭐라 그랬죠? 화려하게 꾸민 포장을 분별해야 합니다. 둘째는 그러니까 내 편 네 편이 아니고 말씀 편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오므리 왕가는 아합이 죽은 후에 아들 왕들이 약하니까 이제 이세벨의 영향 아래 들어갔어요. 아람과의 전투가 가혹해지니까 이스라엘은 강력한 지도 체제를 원하게 되었고 이 일을 예후가 하게 되었고, 예후를 세우시는 과정에 아하시아와 요람은 어리석은 결정을 계속 하게 되는 걸 봤어요. 망하려면 어리석은 결정을 한다 그랬잖아요. 그 삶의 결론이 어찌 됩니까?  32절에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이르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이세벨이 끝까지 왕후의 행세를 하며 도발하지만 예후는 데리고 가지 않았어요. 이세벨이 있는 창을 향해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한 번만 해도 될 건데, 이세벨의 부하 한 사람이라도 더 들으라는 듯 누구냐 누구냐 소리칩니다.


    33절에 이르되 그를 내려 던지라 하니 내려 던짐에 그의 피가 담과 마르게 튀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 

    이제 이 외침을 듣고 두어 내시가 예후를 쳐다봤어요. 그러자 예후는 그를 내려 던지라 합니다. 그러자 내시들은 이세벨을 내려 던져 죽게 합니다. 자기들이 모시고 있는 주인이에요. 그러나 예후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예후 편이 되어서 이세벨를 내려 던졌어요. 평생 자신이 하늘보다 더 높은 줄 알고 살았던 이세벨이 자기의 수족 같은 예후에게 배신을 당하고 더욱더 수족 같은 내시들에게 배신을 당했어요. 여러분 배신은 이 세상 사람들은 기초적으로 당하는 거예요. 배신당했다 그런 얘기하지도 말아요. 인생은 배신의 아이콘이에요. 그래서 이제 바닥에 떨어져 죽습니다. 그 떨어진 이세벨 시체 위에 병거가 그 위를 지나갔기 때문에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었죠. 그걸 예후가 가서 짓밟았어요. 이세벨은 방금 전에 조롱하며 저주했던 예후의 발에 자신의 시체가 밟히는 최후를 맞습니다. 이세벨은 바알교를 북이스라엘 국교로 만들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이제 하여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북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로 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로보암 교회예요. 거기가 다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대요. 여로보암이 교주예요. 그러니까 사람은 이렇게 숭배할 사람을 하나 꼭 정해놔요. 사람들은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계속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는 거죠. 이제 거기에서 이제 그걸 해주느라고 이 바알교를 국교로 만들어 버렸어요. 이것을 방해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멸했죠. 대신에 자기 편을 들어줄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먹이며 거느렸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죠. 근데 이세벨이 얼마나 강력하고 무서웠는지 엘리야도 도망갈 수밖에 없었어요. 이세벨은 불신, 우상숭배, 살인, 강탈 등 온갖 악행의 주인공인 거예요. 죄에 중독된 사람이에요. 철저히 세상에 속한 사람이요. 사탄의 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아노라 요한계시록 책에 보면 이세벨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써놨어요. 얼마나 그게 대명사인지 이세벨이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이 있었죠. 그는 정말 그 신천지 이단처럼 교회에 잠입해서 성도들을 깨워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재물을 먹게 했습니다. 2 20절이에요.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도록 충동하고 유혹한 거예요. 믿음의 이스라엘 백성이. 그런데 이게 중요한 것이 믿음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이세벨을 추종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버리고 이세벨을 추종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요. 음행을 저질렀던 침상이 곧 병상이 되어서 거기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신다는 곧 죽음의 심판을 이제 말하죠.


    우리 안에도 온갖 이세벨들이 가득하여 가득해요. 무엇이든지 내 욕심을 채워줄 것 같으면 따라가 섬기는 우상숭배의 이세벨이 있어요. 하나님이 말씀과 사건으로 계속 경고하시고 부르셔도 듣지 않는 이 고집의 이세벨이 있어요.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죽이려 하는 불신의 이세벨이 있어요. 돈이라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얻어내려 하는 탐욕의 이세벨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충동질의 이세벨이 있어요. 왜냐하면 이세벨은 모든 걸 다 했거든요. 그래서 아무리 지금 구체적으로 얘기해도 부족해요. 끝까지 자기 본모습을 외면한 채 화려하게 꾸미고 포장한 모습에 도취되는 자기애의 이세벨이 있어요. 쾌락에 사로잡힌 중독의 이세벨도 있어요. 가장 심각한 것은 이런 게 악인 줄 알면서도 세상에서 힘과 영향력이 있는 이세벨을 너무 부러워하며 이세벨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다들 이세벨 편에 서 있으니까 3대가 내려갔죠. 또 다른 비교의 이세벨이 있는데 남 부럽다 남 부끄럽지 않다. 언제부턴가 남이 기준이 되어버린 한국에서 이 남과의 비교는 비싼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데, 한국의 세계 최저 수준 출산율이 사교육비 지출 시 남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결정과 직접적인 연관이 된다는 사실이 경제학적으로 밝혀졌다는 거예요. 부유층에서 비싼 사교육비를 치르니까 이쪽 밑에 층에서도 그걸 쓰기 위해서 아이를 안 낳는다는 거 비교해서 참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사교육비를 줄이고 사교육에 하는 그 시간들을 정말 나라에서 원천적으로 봉쇄를 하니까 인구가 늘어나더라. 근데 그거의 끝판왕이 한국이라 이거 비교의 1인자 비교 이세벨도 너무 무서운 거예요. 내 안에 있는 이런 모든 이세벨을 오늘 내려 던지라고 하십니다.  
    예후가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여기 여기 붙어라. 그는 예후 편을 말하는 게 아니고요. 적어도 지금 예후는 청년 선지자를 통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도구인 거예요. 아합 집의 악을 심판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병거요 활입니다.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묻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편이 될 자를 찾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세벨이 부럽고 좋은 내 본성 편이 되기를 거부하고 그런 이세벨을 내려 던지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편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구체적으로 말씀 편이 되는 건 뭘까요? 큐티하면서 그날 말씀으로 내 안에 이세벨을 찾아내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라 큐티 책에 쓰는 거예요. 화려하고 화려하게 꾸미고 창문 뒤에 숨어 있는 나의 악함을 말씀으로 불러내어 적는 거예요. 그리고 그 정체를 밝혀서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나로부터 끌어내서 저 멀리 던져버려주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쓰는 거예요. 이것이 말씀 편이 되어서 내 안의 이세배를 내려던지는 적용의 첫걸음 첫걸음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큐티라는 게 내 안에 이세벨를 던져버리는 구체적인 방법이에요.


    청년부 이제 결혼 전에 어떤 자매가 이제 적용을 좀 했는데 부모님이 이제 이혼하고 재혼을 다 했으니까 4명인 거야. 혼주석에 누가 왔는가로 지금 아주 그냥 온거울이 시끄럽다는 거야. 친엄마는 친엄마가 반드시 앉아야 된다. 그러고 새 엄마는 몇 시간 동안 독서를 막 퍼부면서 앉아야 된다고 정말 근데 친엄마가 앉기를 이렇게 바라지만은 근데 그때 이제 목사님이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해보라고 이런 설교를 들었대요. 그래서 제 결혼식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저희 부모님 4명이 어떻게든 죽기 전에 예배를 드리셔야 하니 4명이 모두 결혼 예배에 오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을 해야 하며 그렇다면 친아빠와 새엄마를 앉히는 것이 맞다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대요. 왜냐하면 친엄마는 친엄마라 결국 관계가 끊어질 것 같지 않고 하객석으로도 결혼 외배에 와주실 것 같은 마음이 있었고, 이제 새 엄마는 안 올 거기 때문에 또한 목사님이 죽어도 호적을 물어 죽어야 한다고 늘 말씀해 주셨는데, 호족을 버린 분은 엄마고 호족을 지켜주시고, 현재 제 호적에 있는 분은 친아빠와 새 어머니인 것 또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주셨어요. 근데 이 과정이 정말 순탄치 않아 이제 그때부터 매주 목사님의 말씀이 꿀송이처럼 들렸고 하루도 큐티를 안 하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고통스러워서 믿음이 아닌 붙잡을 것이 없어 매일 말씀을 붙잡으며 살았는데 그러다 보니까 교재를 처음 시작했던 순간엔 남자친구의 세상적인 부족함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는데 부모님과 이렇게 막 그냥 불화가 있고 이러니까 남자친구는 저와 함께 같이 말씀을 보며 각자의 죄만 직면하고 함께 가주니까 이 부모님이 속을 안 썩였으면 정말 중요한 믿음을 보지 못하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분별하려고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 그러니까 어떤 부모가 훌륭한지 예수 믿는 우리는 그렇게 함부로 평가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어떤 아이가 이제 중학생인데 믿음도 별로 없어요. 근데 이 아이가 건국 전쟁을 보고 이승만 대통령이 훌륭하다 그랬대요. 집에 가서 농지 개혁한 거 훌륭하다 그랬더니 아빠가 어디서 그딴 소리를 하냐고 그래서 그게 맞는 얘기라고 그랬더니 그냥 이 저기 국 그릇을 집어던졌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가 너무 놀라가지고 아니 왜 그러냐고 애한테 이러니까 이 아이가 엄마 가만히 있어 이럴 때 말하지 않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이게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 태도가 있잖아. 태도가 구속사적이어야 된다 이거지 우리들 교회 믿음도 없다가 그거 하나 봐가지고 얘가 지금 핍박을 당하고 있잖아. 그냥 그게 아빠가 알고 있는 거하고 달라 이 얘기했다가 그러니까 저는 이런 부모도 말씀이 있는 우리 청년들은 전부 다 이 부모에게 참고 구원 때문에 인내하고 해석하고 이러잖아요. 그래서 저는 구속사의 승리라고 이렇게 박수를 보냅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여러분은 말씀 편입니까? 세상 편입니까? 내게 말씀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외쳐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또 되고 있습니까? 외쳐주는 사람이 있어요. 외쳐주는 사람이 되고 있어요. 내가 내려 던져야 할 내 안의 이세벨은 무엇입니까?


    큐티를 그렇게 했는데 요즘에 새벽에 같이 기도하니까 그 나이에 이세벨를 직면하고 던지기가 참 쉬워졌어요.저도 여러분들을 위해서 늘 같이 그 시간에 기도를 하니까 여러분도 들어오셔가지고 같이 같이 기도하는 힘이 크잖아요. 이세벨를 던지고 말씀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저도 묻겠어요. 여러분에게 다들 여기여기 붙어라 들어와서 같이 기도하시고 그다음에 현장 예배가 예 더욱더 많이 참여하셔서 같이 기도해서 응답을 받으십시다. 요즘 목사님들이 정말 애통하며 이렇게 불같이 기도를 하세요. 하루도 안 빠지고 힘든 분들 아픈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데 막 나을 것 같은 생각이 이렇게 들어요. 여러분 다 같이 기도해서 그러니까 문제만 있을 때 쭈르륵 들어왔다가 문제 해결되면 쪽 나가고 이러지 말고 평소에 기도를 쌓아놔야지 여러분들이 힘들었을 때 딱 그냥 해석이 될 줄 믿어요. 아침에 큐티하고 이렇게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십시다.


    이렇게 내 안에 이세벨를 내려던지면 첫째 뭐라고요? 화려하게 꾸민 포장을 분별해야 해요. 둘째는 내 편 남편이 아니고 말씀 편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다시는 찾지 못하게 해주십니다. 생각도 안 나게 해준다는 거예요.  
    34절에요.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이르되 가서 이 저주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아합은 불신 결혼의 끝판왕으로 아합의 집 길이라는 절대 악의 길을 창시했는데요. 열왕기상 21장에서는 아합이 악의 끝판왕이 된 이유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하고 고발을 합니다. 다음에는 또 이제 자기 아들들을 충동질하여 악을 행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그녀는 저주받은 여자 지난번 성경에서는 계집으로 불리우고 있어요. 근데 그녀의 통치가 얼마나 강력한지 지금 3대에 이르도록 계속되었으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예요. 마침내 종말을 지금 구하게 되었는데 악은 끝이 있으니까. 이세벨의 파멸은 우상숭배자, 박해자들의 전형적인 말로 아니겠습니까? 근데 그거를 그냥 일반적으로 이세벨은 나쁜 여자 이렇게 생각하면 이제 적용이 안 돼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물들인 죄악의 끝판왕 이세벨 시체를 밟은 예후가 궁궐에 들어가서 먹고 마십니다. 왕실 신하들 앞에서 이제 약식으로 이제 즉위식을 한 거예요. 이세벨을 내려던진 두어 내시뿐만 아니라 모든 신하들이 이제 이세벨 편이 아니라 자기 편임을 확인하려고 들어가서 먹고 마셨죠. 그리고는 이세벨에 장사를 명해요. 왕의 딸이니까 장사를 해주라고 말은 하는데요. 사실은 그게 아니고 그 입에서는 이 저주받은 계집이라고 하잖아요. 그죠? 직역하면 저주로 메인 여자라는 건데요. 창밖으로 내려 던져진 이세벨의 최후가 저주일 뿐만 아니라 이세벨의 인생 전체가 악의 죄악의 저주로 매여 있었다는 걸 알려줍니다. 그러니까 예후의 의도는 왕후 이세벨을 복권해 주려는 게 아니죠. 그 의도는 다른 데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진짜 예후가 하나님 안에서 개혁을 했다면 우리가 그 선대의 왕들이 아무리 나빠도 이런 얘기를 안 쓴다고요. 우리 우리 집에 부모가 아무리 나빠도 우리 부모님인 거예요. 근데 행위로 해서 우리 아버지 바람 피웠으니까 나빠 뭐 했으니까 심지어 매국노라고 그래도 그 집은 아버지 아니에요. 근데 저 매국노 이러지 않는다고 그 집에 이렇게 내려오는. 그런데 그러니까 예후가 이 사람이 이때 하나님이 쓰시는 거였지 이렇게 그 의도가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35절입니다. 가서 장사하려 한 지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왕명을 받고 부하가 이셉의 시체를 수습하러 나갔죠. 근데 장사할 수가 없었어요. 시체를 두골과 발과 손 외에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 왜죠? 이미 들짐승이 다 훼손한 거죠? 이 보고를 받은 예후가 뭐라고 하죠?


    36, 37절에 돌아와서 전하니 예후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애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더라.


    예후는 이세벨의 시체가 남지 않은 일이 여호와께서 엘리아를 통해 말씀하신 바라고 가르쳐 줍니다.  9 12, 25, 26, 36절에 보면 자신은 이 개혁을 예언의 말씀대로 정확히 행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직 마음으로 이세벨 편에 있는 신하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주는 거예요. 이세벨은 이제 없다. 이 심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이다. 그러니 이제 말씀 편에 서라. 예후가 믿음 있는 선지자가 아니라 이런 걸 다 깨닫고 가르쳐준 건 아니지만 그가 지금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임을 받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그 입을 통해 계속해서 알려주고 계신 거예요. 그러면서 이세벨의 시체는 거름같이 밭에 있을 거라고 하는데요. 거름은 점잖은는 번역이고 원 뜻은 똥이에요. 왕후의 화려한 화장으로 꾸미고 살던 이세벨의 인생인데 결국 똥이 되고 말았다는 거예요. 이것이 이세벨이었는지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어버렸어요.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다시는 찾지 못하게 되었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며 닮고 싶은 인생인 줄 알았는데 포장지를 뜯어보니까 그 실상은 똥이었다는 거예요. 우리가 꼭 죽어서 절대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들, 잃어버리기 너무 싫어하는 것들, 더 많이 움켜지려고 애를 쓰는 것들이 결국은 까고 보니까 다 같이 똥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배설물 그러면 기억이 안 날 것 같아서 교양이 없어야 기억이 남잖아요.

     

    사도바울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이었잖아요. 이 자격을 위해서 갖추었던 많은 것들이 있었겠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했어요. 근데 이런 장식은 이세벨의 장식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었을 거지만, 사도바울의 장식은 신앙생활 열심히 해서 찾은 그 교회 직분이었다면 그걸로 장식을 했어요. 그래서 그걸로 스데반을 죽였잖아요. 이세벨의 장식은 그야말로 육적이고 세속적인 장식이었어요. 그러나 바울은 이런 모든 것을 어떻게 했습니까? 이 모든 걸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어요. 빌립보서 3장에. 그러니까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편에 서게 되면 사실은 다 똑같은 가치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울며 불며 가지려고 하는 것들이 다 똑같은 가치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밑동 잘린 나무 짧은 인생이기 때문에 주님 외에는 주님의 말씀 외에는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이에요. 주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주님보다 더 높이 여기고 주님보다 더 열심히 섬기면서 쫓아가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모든 수고가 자녀를 위해서 직장을 위해서 온 집안을 위해서 부모를 위해서 근데 모든 수고가 주님보다 위에 있다면 결국 똥만 남을 수가 있는 거예요. 주님을 떠나면 전부 다 똥이 되기 때문이에요. 내가 뭐 때문에 그러니까 아합 집이 얼마나 화목합니까? 식구들이 똘똘 뭉쳤어요. 아주 그냥 가족 우상이에요. 이 집 식구들은. 여기는 싸우지도 않아. 이 집 식구들은.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주님보다 가족이 위에 있으면 결국은 나중에 까보니까 똥만 남았더라. 우리가 잃어버리는 거 너무 싫어하죠. 좋아하는 거 내려 던지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돈 내려 던지는 것 그건 불가능할 정도예요. 그러니 돈 좋아하는 욕심 내려 던지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이세벨처럼 갖고 있는 명품 내려 던지는 것도 어려운데 명품 좋아하고 탐내는 내 허용심을 어떻게 내려 던질 수가 있겠어요? 학벌과 지위 내려 던지는 것도 어려운데 그것을 자랑하고 싶은 내 교만을 어떻게 내려 던질 수 있겠습니까? 작은 습관 하나 내려 던지는 것도 힘든데 자극과 기호에 사로잡히는 내 중독을 어떻게 내려 던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큐티하면서 사소한 적용을 하나씩 하나씩 할 때 큰 것도 내려던질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큐티를 하면서 적용하면서 기도해 보는 이 습관이 여러분들에게 갖춰져야 되는 거 어렸을 때부터 그것이 진짜 고정관념이 될 정도로 큐티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면서 이세벨이 악의 끝판 왕이라고 해도요. 오늘은 그 책임은 아합에게 있는 거예요.

    출애굽기 19 6절에 믿는 우리는 세계 열방에 제사장 나라로 세움을 입었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냥 잘 산다고 이방 여인을 왕비로 데려오더니 이세벨이 시아버지 오물리부터 남편 아합 또 아들 요람, 딸 아달리아를 홀려가지고요. 남유다 성근 여호사바까지 홀렸어요. 그래서 결국 남북 이스라엘을 멸문지화에 빠지게 하지 않았습니까? 예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아이 아니 이세벨이 악녀 같아 가지고 얼굴이 악녀같이 생겼을 것 같아요. 모두가 홀리는 최고의 미녀였을 거예요. 거기다 목소리도 예뻤을 것 같아요. 설득력이 캡이에요. 꼭 저를 닮은 것 같네요. 저는 그냥 완전히 이세벨이죠. 이세벨 이런 사람이 변화된 게 이게 기적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항상 큐티를 하면서 발상의 전환을 하셔야 돼. 그렇게 악녀 같으면 누가 그 말을 들었겠어요? 그 남유다의 성군까지 홀렸잖아요. 그죠? 

    그런데 이게 왜 아합의 책임이냐고요. 아합은요. 그 열왕기상 21장을 여러분 자세히 좀 가서 찾아보세요. 나봇의 토지를 너무 갖고 싶어 했어요. 그 모든 것 상아궁까지 가지고도 그랬는데 나봇이 이렇게 얘기해요. 내 조상의 유업이니 율법에 의해서 팔 수가 없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자기가 그래도 명색이 이스라엘 왕인데 백성들에게 율법을 어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잖아요. 이중 인격자 아합이 근데 그 땅은 너무 갖고 싶어요. 우리도 다 똑같지 않아요. 적어도 내가 예수 믿는데 큐티한다고 그러는데 끙끙 앓았어요. 그러니까 이세벨은 그거에 대해서 부담이 없어 율법에 대해서 그러니까 이세벨에게 해결하라고 딱 거짓으로 이걸 전하는 거예요. 가감해가지고 나봇은 분명히 내 조상의 유혹이라고 팔 수 없다고 했는데 그건 딱 빼고 나봇이 내 포도원을 내게 줄 수 없다 그랬대요. 내 포도원을 내게 줄 수 없다. 그러니까 그 얘기를 딱 듣고 이세벨은 행동대장이잖아요. 가책도 없이 그 언어가 딱 그렇게 나옵니다. 불량자 두 사람을 매수해서 나봇을 높이 앉히고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거짓 증언을 하게 하는 거예요. 이세벨은요. 권력을 위해서 못할 짓이 없어요. 그런데 참 기가 막힌 게 백성들이 그냥 돌로 나봇을 쳐죽였다고 나오는. 전부 이세벨 얘기를 듣고 백성들 너무 악하지 않아요? 다 쳐죽였대. 이세벨 얘기를 듣고. 예수도 없는 이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여인 그냥 그 사람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거예요. 그러나 말씀을 가감해서 전한 아합은 이세벨 뒤에 딱 숨어가지고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합니다.

    이런 일은 이 세상 정치에서 비일비재하죠. 충동질은 사탄의 특기잖아요. 사탄이 다윗도 충동했고 욥기에서는 하나님도 충동을 했어요. 그러나 그들은 충동을 안 당했잖아요. 근데 아합은 충동을 당했어요. 그리고는 그냥 이세벨만 악녀라고 계속 얘기를 하는 거죠. 합리화를 합니다.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이세벨이 한 일이다. 내가 그때는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시네. 결혼을 할 수밖에 없어. 그게 너무 이뻤고 왕의 딸이잖아. 불신 결혼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만 결국 그 결혼을 하는 것은 불신이라는 것 자체가 믿는 우리가 들어가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 결혼을 하는 것은 믿는 우리 아니겠어요? 아합은 이세벨과 혼인함으로 무슨 이익을 얻었을까요? 정치적 이익을 얻었을 수 있죠. 잠깐. 그러나 그것은 모든 악의 발단이 되어서 가고 오는 세대에 가장 악하고 가장 악한 시대를 열은 그 결혼이 되었어요. 우리가 학교와 직장과 배우자를 선택하려고 할 때 그래서 심사숙고해야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이세벨을 너무 좋아하는 거야.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적용이 안 되는 거예요. 산수갑산을 가도 이쁜 여자만 해야 되는 거야. 다시 말하면 예쁘고 돈 많고 말도 잘하고 사근사근하고 설득도 잘하는데 누가 싫어하겠어. 근데 그 이세벨은 믿는 내가 택한 거예요. 그래서 계속 들을 끌려다닌 것은 나라고요. 내가 끌려다녔어. 그래서 우리가 이제 결혼 예비 학교를 이렇게 5주간 하는데 이 가정에 불화가 있는 집안의 자녀들은 화평함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 같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 화평함이 없어도 붙어갈 수 있는 공동체가 있고 말씀이 있다 보면 다른 것보다 믿음을 가장 큰 교재의 조건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이런 피드백을 하는 거예요. 또한 커플은 자기가 불신 교제도 해보고 남친의 적극적인 구애로 오랜 신교제 중에 결혼 날짜 잡고 결혼 예비학교에 왔는데 이렇게 공동체에 붙어가고 말씀이 있고 목자와 엘더님들께 물어가면서 교제를 하게 되는 것이 아주 불신 교재와 큰 차이고 불신 교재에 비해서 이렇게 붙어가고 물어볼 수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불안한 불신 교제보다는 신교제를 추천하고 싶다고 하면서 은혜가 되었다고 이거 비교가 안 되죠. 이 세상이 짧기 때문이라 그랬어. 온 나라가 이세벨를 숭배하죠. 돈과 권력과 화려함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근데 그걸 내가 너무 못 죽여요. 너무 끌려다니니까 내가 제사장 나라로 내 속에 요람 아시아 이세벨을 죽이고 내려 던지라고 피의 사자 예후를 보내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해석을 잘해야 되는 거예요. 국그릇을 집어던지는 아빠가 나쁜 게 아니고 걔 때문에 우리 애들이 다 믿음이 없는데 걘 믿음이 있어 다 잘해주는 부모보다는 너 생각을 하는 거 이럴 때는 조용히 해야 돼. 엄마한테 이런다는 거예요. 최고야. 제가 이세벨 좋아하죠. 밑동 잘린 나무 같은 인생에서 우리 집 망해서 잘 살아보겠다고 안간힘을 다했어요. 제가 얼마나 잘 살아보고 싶었겠어요 입시도 성공했고 결혼도 성공한 것처럼 보였죠. 근데 예후 같은 남편을 붙여주셔서 저를 마구 밟아주니까 제가 13년 동안 최고의 훈련이 된 거는 있어도 안 쓰는 훈련하게 하신 거예요. 이거 최고의 훈련이 그래서 우리 교회에 돈이 있어도 저는 전혀 몰라요.정말 몰라요. 그런 것이 근데 말씀 사역을 시작하니까 저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큐티하면서 제 안에 이세벨을 자꾸자꾸 보여주시니까 제가 이세벨 같은 사람인데 그게 왜 안 보이겠어요?그런데 큐티 사역을 하니까 내 죄를 보고 적용했던 소소한 것들이 후회가 되지 않고 던져버렸으니까 생각도 안 나게 하신 거예요. 내가 그렇게 노력해서 예고 강사가 됐는데 그걸 어떻게 던져버리기가 쉽겠어 그런데 그런 것들을 그럼 던져버렸으면 후회가 돼야 되잖아요. 근데 적용해서 던져버리니까 그리고 제 말씀은 부자들은 생각 안 나는 말씀이잖아요. 내 모임에 오는 사람들은 다 힘들어요. 그들이 은혜를 받으니까 생각이 안 나는 거야. 내가 이게 던져버려도 그래서 이제 오늘 말씀대로 내 안에 이 모든 이세벨들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써서 내려 던지겠다고 결단하고 한 가지라도 작은 적용을 한다면 이세벨을 내려 던지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우리의 적용을 다 책임지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내 안에 이세벨들을 내려 던지는 순종을 할 때 주님이 그 이세벨들을 우리가 다시는 찾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앞에 이세벨이 거대한 권력으로 다가올 때 나보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그러나 던져버리리라는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반드시 도우시며 이뤄주실 줄을 믿어요.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 줄 모르고 자신의 삶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모르는 것만큼 절망적인 인생은 이 세상에 없어요. 지금이 바로 회개할 때입니다. 더 늦기 전에 돌아오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내어버렸다가도 내려버렸다가도 금방 다시 찾고 싶은 습관과 중독과 죄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똥을 다시 찾으려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게 인정됩니까? 이번 주 다시 내려버리는 적용으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이세벨의 회개가 이렇게 어렵지만 우리들 교회는 이 기적 같은 회개가 너무나 많이 일어나잖아요. 너무 참 감사한 공동체예요. 한 분이 저는 평소 하나님의 말씀이 기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저희 남편은 젊어서부터 요양원에 있었고 저 홀로 가정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에요. 너무나 매너가 좋은 남편이 좋아서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일을 하다가 낙상 한 번 했는데요. 그런데 그게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거예요. 그래서 치료 시기를 놓쳐가지고 전두엽이 90% 이상이 손상이 돼서 뇌병변 6급 장애 환자가 되어서 그 낙상 한 번에 일을 못하고 지금 17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는 거예요. 근데 이제 사고를 당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요. 그냥 화를 내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고 돌발 행동을 하는 바람에 이제 너무 두려웠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고난이 지속되니까 지칠 때가 많았는데 그런데 이제 이 구속사로 남편이 저의 구원을 위해서 수고해 주고 있다는 말에 은혜가 되었는데 여전히 이렇게 돌발 행동을 하고 힘들게 하지만은 여기 교회 와서 공동체의 처방으로 남편에게 영접 신방을 갔는데 그날 그새 순한 양처럼 주님을 영접했다는 거예요.예배도 드린다는 거예요. 17년 만에 이런 일이 일어났어.최근에 남편의 생일날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날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얼굴이 평안하더니 그렇게 화를 내던 남편의 모습이 아니라 갑자기 저를 보더니 남편이 너무 수고가 많아 힘든 남편 만나서 젊은 시절 다 보내고 고생을 하네 이런 얘기를 여러분 이게 이해가 안 되겠지만 주님께서 방문하셔서 마리아야 불러주신 것처럼 눈물을 닦아주시는 것까지 너무 감사했다는 거 얼마나 기적입니까?제 남편 한 사람의 회개로 말미암 제 인생이 달라지고 우리 모두가 달라지는 기적을 보지 않습니까?이 남편은 이 세상 어떤 남편보다도 훌륭한 남편인 거예요.사는 건 쉽지가 않아요. 우리 남편도 너무 훌륭하지만 다시 이 땅에 내려와서 살려고 그러면 저는 힘들 것 같아요.그만큼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 땅에 결혼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라고요.그래서 사명 감당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감사하지만은 그렇게 힘들었으니까 제가 사명자가 된 거야.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인생의 해석을 잘하라고 끊임없이 로망을 그냥 어디 가고 눈이 오는데 누구랑 같이 만나서 나는 너무 불쌍해.너무 그딴 소리 좀 하지 마시고 여기 누워 있는 남편 훌륭한 남편이고 나를 괴롭혔던 우리 남편 너무 훌륭한 남편이고 다 너무 감사하잖아요.이 부인이 이렇게 집사님이 이렇게 우리들 교회를 좋아하고 댕기시는 것만도 이 남편은 가장 좋은 일을 한 거예요.그러니까 이거 어떻게 난 마음이 터져서 이게 어떻게 설명을 할지를 모르겠어요.여러분들이 왜 이혼을 하는 거예요? 왜 죽는 거예요?



    그러시면 안 되는 거예요. 미동 잘린 나무 이런 게 확신을 가지고 얘기를 해야지 내 옆에 사람들이 다 변화될 줄 믿습니다.이 비밀을 알아야 돼요. 말씀 맺어요. 오늘 이 세대를 내려 던지라고 하세요.정말 첫째로 화려하게 꾸민 포장을 분별해야 되는 거예요.그리고 이제 내 편 네 편이 아니고 말씀 편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그런데 내가 던져버린 그 소소한 적용들 그다음에 이런 것들 다시는 찾지 못하게 해주시는 거예요.내가 던져버렸으면 같이 또 가세이고 마약도 다시 하고 그 여자도 다시 찾으러 가고 그 남자도 다시 찾으러 가고 그것 생각도 나지 않게 해주시는 것.그러나 이 땅의 이세벨과과의 싸움은 생각만 해도 예 무거운 짐이고 시험이에요.그래서 내 모든 시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르면 불쌍히 여겨 날 구원해 주리가 주 예수밖에 없는 거예요.오직 예수,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이 땅의 싸움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날마다 말씀 보고 공동체에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그렇게 갈 때 내려 던져버리게 될 줄 믿습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