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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왕기하 9장 11절~22절 -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주일설교 요약 2024. 5. 5. 08:07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열왕기하 9 11~22

    김양재 담임목사

     

    해마다 세계 평화 지수가 발표되는데요. 2023년 결과를 보니까 가장 평화로운 나라는 아이슬란드라고 해요. 그리고 163개국 중에서 한국은 43번째인데 북한은 149번째라고 하네요. 북한 뒤에도 있는 나라는 뭐죠? 빨리 북한에도 복음의 등불이 비춰줘서 같이 평화롭게 되면 좋겠어요. 이제 평화, 평강, 평안 이게 다 성경에서 이렇게 말하지만 한마디로 언어로는 샬롬이에요. 우리가 얼마나 평안을 좋아하면 인사말로 이거 이렇게 쓰겠습니까? 우리도 늘 평안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러잖아요. 살면서 세상에 참 평안이 없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되니까 자꾸 엉뚱한 것을 이렇게 쫓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결론적으로 평화는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데 말이죠.  선지자 제자의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된 예후가 오늘 본문에서 계속해서 평안하냐 이 질문을 받는데요. 예후의 주군이었던 요람도 예후를 보자 평안하냐고 물어요. 여기에 예후는 어찌 평안이 있으랴고 찬물을 확 끼었는데요. 그 전령자가 오늘의 주인공 예후에게 또 평안하냐고 물으니까 평안이 네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합니다. 우리가 아들이 죽었는데도 평안입니다 외쳤던 수넴 여인과 너무 다르죠. 그래서 오늘은 이 땅에서 평안이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평안이 나와 상관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첫 번째는 자기가 상황을 만들려 합니다. 그러니까 평안과 상관이 없어요. 11 12절입니다. 예후가 나와서 그의 주인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그에게 묻되 평안하냐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냐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가 말한 것을 알리라 하더라 무리가 이르되 당치 아니한 말이라 청하건데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 하니 대답하되 그가 이리 이리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 하는지라

    본문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나라가 영적으로 심각하게 타락한 시기를 배경으로 해요. 이 어두운 시기 가운데 하나님의 대책은요. 북이스라엘의 군대 장관 예후였어요. 예후는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계시받고 적어도 15년 후에 등장을 했는데요. 엘리야에게 예언을 하시고 사명을 주셨어도 엘리야는 그 일을 때가 되지 못해 엘리사에게 승계했지요. 그러니까 엘리사도 그 얘기를 듣고 계속해서 주목했을 거예요. 누구를요? 하사엘과 예후를요.

    25절에 보면 예후도 여호와가 아합에게 내린 그 심판의 말을 다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모두가 때를 보며 상황이 무르익기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이제 지금은 예후가 이미 반역의 기틀을 다지고 있었어요. 엘리사도 그거를 알고 때를 맞췄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갑자기 불이 내려와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그렇다고 예후가 믿음의 사람이라기보다 그때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예후를 택하셨어요. 그는 남북을 척결한 공을 세웠으나 믿음의 사람으로 분류가 되지는 않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너무 어지러운 시대에 일반 은총의 정의도 실종되었기 때문에 이 잔인함의 개혁으로 쓰임받은 왕입니다.

    그러나 쓰임받았지만은 왜 이렇게 얘기하냐면 이들은11절에 보니까 선지자를 멸시하는 자들이에요. 그러니 선지자의 제자 보고 그 미친 놈이 뭐라고 했냐고 묻습니다. 예후 공동체에게 따라다니는 말은 미친 엑스엑스. 예후는 선지자의 제자가 와서 머리에 기름을 부으니 처음에는 이제 어리둥절했겠지만 신속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했죠. 그래서 어떤 생각이 탁 떠올랐는가 하면은 야 자기 부하들이 자기 몰래 일을 벌였구나. 이것들이 진짜로 거사를 저질러 버렸네. 내가 이 속아주는 척해야겠다. 그리고는 머리에 기름을 잔뜩 묻힌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수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물어봅니다. 그러니까 예후가 아유 알면서 뭘 그래 이러는 거예요 지금. 그러니까 장수들이 아니  의심해요. 우리는 그 미친 놈과 말하지 않았어요. 그제서야 예후가 이게 장난이 아님을 알고 연기가 아니고 실제 상황이구나. 그래서 이제 골방에서 자기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다는 말을 알려줍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미친 놈이라고 무시하면서도 그가 한 말은 굉장히 궁금해하더라고요. 군인들도 깜짝 놀랐죠. 이걸 반역인 걸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요람왕보다는 예후 장군을 자기들의 주군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다들 옳고 그름으로 개혁을 외치면서 이제 쿠데타를 일으키기 직전입니다. 

    13절이에요. 그 말을 듣고 무리가 각각 자기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아람의 왕 하사엘과 맞서서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아람의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부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라엘로 돌아왔던 때라.

    성경은 이때가 언제인지 친절하게 다시 한 번 알려줘요.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고 왕이 된 때가 언제냐면은 요람이 출전했다가 아람군 공격에 부상을 입고 이스르엘로 돌아와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땐 거예요. 그러니까 왕을 호위하는 친위대만 요란과 함께 이스르엘로 왔고요. 주력 부대는 그대로 전장인 길르앗 라못에 남아 있는 거예요. 총사령관 예후의 지휘 아래 말이죠. 그러니까 요람이 이 부상당해 이스르엘로 피한 사이에 그 예후가 이렇게 반역을 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이 혼란의 시기에 야당적인 지질이 강한 예후와 그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그 모반을 생각하고 있는데 엘리사의 제자를 지금 이 미친 자라 하면서도 이들에게는 이 모반을 위해서 명분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도 아다시피 엘리사가 얼마나 전쟁마다 이기게 해줬습니까? 그러니까 이제 속으로는 엘리사를 인정하는 거예요. 근데 엘리사의 제자라고 하니까 이거는 엘리사에게 책임을 돌리기에 딱 맞는 안성맞춤인 거예요. 이럴 때는 하나님의 계시를 이용해서 이걸 합법적인 혁명이 되게 해야 되겠다. 그러니까 이 부하들은 요람은 아프고 예후는 신뢰하지 않아도 이게 모반이잖아요. 그래도 나에게 유익이 된다면 당장 따라가는 것이 배반이고 기회주의죠. 그리고 인간의 악한 군중 심리인 거예요.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소리를 미친 자가 하는 소리로 늘 정해놓습니다. 자기의 유익한 거는 딱 그 받아들여요. 그러니까 예수 믿는 자 입장에서는 미친 자라는 소리를 들어봐야 하고 이용 당하고 미움을 당하는 거를 당연하게 여겨야 돼요.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소속이 다른 거예요. 세상에서는 미움을 당하나 요한복음에. 그러니까 100% 악하고 음란한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군중은 이 군중 심리죠. 얼마나 이기적인지 몰라요. 철저히 자기의 유익에 따라 움직이죠. 그러니까 돌아가는 거 보니까 예후가 왕이라 나팔을 불면서 예후는 왕이라 외칩니다. 어쨌든 예후는 왕이 된다는 예언을 듣고도 신중하고 지혜롭게 행동을 합니다. 대담하면서도 신중하기는 참 어렵거든요. 소위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을 가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거 그래도 북이스라엘에서 들은 풍월이 있잖아요.  이거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구나 엘리사가 허락했네 막 밀어붙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의로 모반을 일으켰기 때문에 결국 예후 왕조는 이게 4대를 가지만은 믿음의 왕으로 분류되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상황을 예후 스스로 만들고자 했다면 어땠겠어요? 우리가 뭐를 다 아이디어를 내고 회사에서도 다 이기려고 하지만 요람의 부상부터 시작해서 치료하러 이스르엘로 가는 것, 언제 군대를 일으킬 것인지, 아람군은 어떻게 대처할지, 스스로 왕이 되는 명분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니에요. 내가 일조를 달성했으면은 그다음에 이조를 향해서 또 가는 거예요. 언제나 더 하나 더 밤잠을 설치며 교민해야 하고 그렇다고 또 고민대로 결과가 고민한 대로 나올지 확실치도 않아요. 인생은 늘 평안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예후 마음속에 왕이 될 욕심이 있든 없든 지금 이 상황은 예후가 만든 것이 아니에요. 마치 아무 이유가 없이 지금 우연히 일어난 일처럼 지금 만들어진 상황이지만 이 세상에 우연은 없어요. 전혀 없어요. 아셨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런 말은 그거는 정말 그거는 불신의 말인 거예요. 이건 하나님이 만드신 상황이에요. 요람을 전쟁에 나오게 한 분도 하나님. 요람이 부상을 입게 한 분도, 하나님 요람이 군대를 예후에게 맡기고 이스르엘로 치료하러 가게 한 분도 하나님이고 선지자의 제자를 보낸 분도 하나님이고, 장수들과 군대의 마음이 예후를 향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이 상황을 만들어 예후에게 주셨어요. 그래서 예후가 이 엄청난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제 중요한 건 예후는 하나님을 잘 모르니까 자기 스스로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사야 선지자나 악인은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굽은 길 즉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은 평안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악한 자는 꼭 악한 자가 쟁취하게 하신다는 거 이거 아셔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놈이 나빠서 내가 저놈을 물리치겠어. 그건 하나님의 길과 반대되는 아합의 집 길이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무언가를 당했다고 여러분들이 상대방에게 복수하려고 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일이에요. 우리는 내 감정,내 생각대로 원하는 상황을 내 힘으로 이겨야 편하고 행복할 것 같아요. 그래서 그 힘을 키우려고 얼마나 열심히 삽니까? 그래서 밤낮 주제가가 원수 갚자 원수 갚자 복수하자. 

    한 목자님이 어릴 적 어머님이 늘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라. 서울대 가고 판검사 돼서 원수 갚아야 된다. 꼭 서울대 가서 원수 갚아야 한다. 맨날 이 얘기를 주입시켰대요. 왜냐하면 옛날에 많았던 땅을 그 밑에 할아버지가 노름을 해서 다 날렸기 때문에 우리는 옛날의 영광을 찾아야 한다. 서울대학 가는 걸 원수 갚기 위해서 가라고 어려서부터 들으니까 서울대학 가서 다 원수 갚지 않겠어요. 

    우리가 자신의 재능을 살리고 능력을 갈고 닦는 노력은 참 귀하죠. 근데 그 목적이 내 행복에 있으면 결코 평안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다. 그러면 행복은 상관없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목적으로 놔야 평안이 오고 행복이 온다는 거예요. 이거 두 개를 분리해서 생각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평안한 사람은 이제 잘 기다려요. 뭘 기다리겠어요? 하나님이 뜻하신 때를 기다리는 거예요. 내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요. 근데 우리는 내 뜻을 언제 이루어주시나 내가 이렇게 목장 가고 목장을 가고 이러는데 그런데 왜 승진도 안 되고 애들은 대학교 떨어지냐, 하나님이 해주신 일이 뭐가 있냐, 내가 목장에서 밥을 몇끼를 했는데 나는 이 왕이 되고 싶은데 왕이 될 수 있는 상황을 하나님은 언제 열어주시는 거야. 그러니까 이제 이러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이제 하나님 안 믿어 난 떠날 거야 이러는 거죠. 

    선지자의 제자는 내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을 잘 사는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이제 필요할 때가 있죠. 그러나 자꾸 반복적으로 교회를 와도 인생의 목적은 애들 학교 가는 거, 회사 잘 가는 거고 승진하는 거고 건강한 거 물론 건강해야 되겠죠. 근데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면 평안이 없어요. 늘 특별한 것만 꿈꾸니까. 그러니까 나에게 부르심 사명의 그 뜻을 생각하려면 나에게 주신 이 자리가 다 사명의 자리인 거예요. 환경이 바뀔 때마다 거기가 사명의 자리인 거예요. 그걸 자꾸 바꾸려고 그래요. 내 환경을 감사하는 만큼 평안해집니다. 그것이 가장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면 꼭 하나님은 필요한 상황을 만들어 주세요. 그러면 그 상황에 또 순종해서 여전한 방식으로 또 평범하게 살면 되는 거예요. 그니까 오늘도 눈을 뜨면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상황마다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순종하면서 따라가는 것 자체가 진정한 평안입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요즘 평안합니까? 불안합니까? 내 힘으로 만들고자 하는 상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상황에 순종하며 살았더니 평안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지금 첫 번째 뭐라 그랬죠? 자기가 상황을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그냥 맨날 아이캔도 유캔두 위켄드 이것만 이제 두 번째는 헛된 평안을 구하는 거예요. 이런 것들이 평안과 상관이 없는 거를 여러분들은 구하는 거예요. 

    15 6절이에요.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알리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왕이 거기에 누워 있었으니라 유다의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이제 뜻밖의 상황이 열린 예후가 길르앗 라못에서 군대의 충성 맹세를 받고 즉위식을 마쳤는데요. 그냥 왕이 되자마자 권세를 휘두르네요. 환경에 장사가 없어요. 어제까지 후배였는데 오늘은 이제 나는 왕이고 너희들은 신하인 거예요 그러니까 명령을 하면서도 고상한 척하면서 너의 뜻에 합당하거든 뭐 이러면서 명령을 합니다. 그러면서 길르앗 라못에서 아무도 이스르엘로 도망가지 못하게 봉쇄하라. 반란의 소문이 요람에게 들어가지 못하도록 이 상황을 통제하라. 자기 명령으로 자기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고자 하는 거예요. 왜 당장 불안이 시작됐어요. 불안하니까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죠. 그래서 이제 성 출입을 봉쇄하고는 곧장 병거를 타고 요람에 있는 이스르엘로 갑니다. 길르앗 라못에서 서쪽으로 70km 거리인데 번거로 가면은 빠르면4시간 천천히 가도 10시간 안에는 도착했을 거예요.

    근데 예후가 병거를 빨리 몰았을까요? 천천히 물었을까요? 20절에 보니까 파수꾼이 예후의 병거를 보고 미치게 몬다고 하잖아요. 이게 예후의 미치게 모는 게 트레이드 마크인 거예요. 평소에도 미친듯이 빨리 몰고 다니는 스피드광 예후인데 이제 나라를 뒤집어 엎어야 하는 이때 명분이 생겼으니까 요람을 죽이러 빨리 가야 하는 지금은 더 미친 듯이 달려가지 않겠어요 그 미친 듯이 뭔가 심판의 상징이 되었어요. 그런데도 다 너무 명분이 있는 것 같지만은 이게 자기 욕심이 들어간 거잖아요. 그러니까 들킬까 봐 불안하고 실패할까 봐 불안하고 그러니까 이제 다 내려놓지 못하고 자기가 가져야 될 권세 돈 이런 거 생각하니까 뭔가 명분이 있는 것 같아도 문제와 사건이 없는 상태, 그래서 불안해할 필요가 없는 상태를 평안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건 세상에 없어요. 불안을 없애려는 모든 노력과 수고는 결국 더 깊은 불안을 일으킵니다. 문제를 문제로 덮는 거예요. 

    큐티 본문 요한복음 14장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했어요. 근데 세상의 힘으로 평화를 누리고자 하니까 여러분들이 불안하죠. 세상이 주는 평화는 힘에 의한 평화예요. 힘으로 눌러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포장하는 평안이에요. 그러니까 전부 인격이라는 가면을 쓰고 전부 평안해, 아름다우라 집에서 다 싸우는데 인격이 가면이라는 뜻이에요. 인격적이다 가면 쓰고 있다 이 뜻이에요. 근데 그렇게 이 힘을 얻으려고 수고하고 싸웁니다. 헛된 평안을 구하면 참 평안을 얻지 못하는 거예요. 

    큐티본문 요한복음 16장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래야만 받으리니 너의 기쁨이 충만하리라. 미치게 병거를 몰라도 예수 이름으로 구한 것이 아니기에 평안이 없어요. 기쁨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왜 기쁨이 없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후가 병거 타고 달려오던 그 시각 이스르엘 상황은 어떤가요? 요람이 누워 있어요. 부상을 치료해야 하기도 하지만은 사실은 병거를 탈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는데 그냥 누워 있습니다. 주력 부대가 전부 전장에 나가 있는데 자기 혼자 누워 있어요. 엘리사와 있었던 여러 사건을 통해서도 봤지만 요람은 진짜 심각한 게 하나도 없어요. 불안이 너무 많아도 문제지만 여러분 요람처럼 하나도 없어도 문제예요. 하나님이 없이도 다 괜찮아 괜찮아 이건 문제예요. 아합의 집 왕자로 태어나 왕이 되었잖아요. 평생 높은 자리에 앉아서 이제 귀하게 살았기 때문에 늘 편한 것만 찾습니다. 어려운 것은 생각도 하기 싫어요. 순간순간 자기 기분대로 떠오르는 생각대로 일을 저지르기만 할 뿐 왕으로서의 책임을 할 줄 몰라요. 분별을 못합니다. 부하들이 요람을 버리고 전부 예후 편에 서는 게 당연해요. 

    성경은 아하시야의 상황도 빼놓지 않고 다시 한 번 강조해서 기록합니다. 삼촌 요람을 보러 이스르엘에 왔다고 다시 알려줘요. 이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죠. 가족 신화에 물들어서 다윗의 길을 버리고 아합의 집 길로 간 아하시야의 인생 마지막 종착지가 요람이 있는 이스르엘이에요. 슬프고 기가 막힌 일이에요. 가족 신화에 젖어 있다가 죽음의 길을 간 거예요. 둘 다 다 고난이 없어서 둘 다 다 완전히 죽을지도 모르고 이렇게 가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가족 신화를 버리라는 경고입니다. 가족을 객관적으로 봐야 되는 거예요. 내 아버지, 내 어머니 완전히 맞을 거야 이런 환상을 좀 버리시기를 바래요. 

    17절입니다. 이스라엘 망대의 파수꾼 하나가 서 있더니 예후의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하니 요람이 이르되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어 맞이하여 평안하냐 묻게 하라 하는지라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니 하시더이다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하니라 파수꾼이 전하여 이르되 사자가 그들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다시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었더니 그들에게 가서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를 따르라 하더라. 

    지금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평안이 지금 몇 번이 나와요 정말 심히 불안하다는 증거예요. 이스라엘 왕의 별궁이 있는 제2의 수도 이스르엘이에요. 당연히 적군을 감시하는 망대가 있죠. 근데 파수꾼이 경비를 서고 있는데 멀리서 병거 부대 하나가 막 달려오고 있는 거예요. 보니까 다행히 적군이 아니고 아군인 거예요. 길르앗 라못에서 오는 부대인 거예요. 바로 왕실에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요람이 한 사람 말을 태워 보내어 맞이하라고 하는 거예요. 평안하냐? 전황이 어때? 물어보라고 하는 거예요. 전황이 궁금하긴 했나 봐요. 여러분 평안이냐고 물을 만한 사람에게 평안을 물어야 하건만 자기를 죽일 사람에게 지금 평안을 물으니 우리는 누구에게 날마다 평안을 물어야 할까요? 계속 나에게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까 하여 평안을 찾지만 참 우스워요.요람 자체가 평안을 물을 자격이 없어요. 우상숭배의 죄 한 가운데 있으면서 평안을 이렇게 엄청 찾네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예수도 안 믿으면 늘 하는 인사말이 아버지 별일 없죠? 엄마 별일 없지? 식사는 하셨고? 그거밖에 물을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어요. 우리는 부모님한테 전화를 딱 하면 오늘 그냥 하나가 되라고 그랬는데 엄마 아버지는 안 싸웠어요? 이렇게 말씀으로. 난 싸웠네. 엄마 며느리하고 싸웠네. 막 이러면서 왜 안 웃어요? 너무 싸워가지고. 

    그러니까 이제 이렇게 날마다 평안 별일 없냐고 이런 이게 완전히 울리는 꽹가리 같은 인사를 늘 이렇게 하죠. 그래도 또 안 하는 것보다는 낫죠. 다급해지니까 이 죄를 짓고 있잖아. 다급해지니까. 그냥 앉으나 서나 평안을 찾아요. 그래서 우리가 그냥 나에게 위로를 줄 사람만 찾아다니고 이런 그 평안이 찾아집니까? 내가 깨끗하고 회개하고 성령의 열매가 있어야 평안을 물을 자격이 있지요. 그러니까 예후는 요람에 이런 연락병에게 네가 평안이 상관이 있느냐 파수꾼은 정확하게 파수꾼의 역할을 하며 미치게 모는 예후에 대해 예고했으나 요람이 들을 귀가 없어요. 이제 자기가 신뢰하던 의지하던 장관도 죽었고 이제 예후에게 배반당해 죽기 일보 직전인데 전혀 몰라요. 자기의 결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후의 병거까지 달려간 연락병은 평안하냐는 왕의 질문을 전합니다. 이거는 아람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물은 거예요. 근데 예후가 뭐라고 합니까?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지금 저것 전황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곳이 전장이다. 구시대의 왕 요람을 새 시대의 왕인 자신이 제거할 거다. 승리는 자기 편이니까 죽기 싫으면 자기 편에 서라고 위협하는 거예요. 연락병은 예후 장관의 카리스마에 압도가 되어서 부대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죠. 이런 거를 어떻게 요구를 하겠습니까? 우리는 그 시대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를 해야 되는데, 늘 결과를 보고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천년이 가도 해결이 안 되는 거죠. 그 시대에 이 상황을 항상 이해를 해야 돼요. 이 상황을 멀리서 살펴본 파수꾼이 곧바로 또 왕에게 보고합니다. 그러자 요람은 연락병을 다시 한 번 보내라고 해요. 근데 하지만 그 연락병도 예후에게 똑같은 말을 듣고 예후 편이 됩니다. 요람은 두 번이나 병사를 보내 평안하냐는 질문을 예후에게 던집니다.


    자기는 이스르엘 궁궐에 누워 있지만 이 전쟁, 아합과의 전쟁만큼은 이겨야 되는 거 아버지 아합의 명예를 살리기 위해 벌인 전쟁이에요. 반드시 이겨야 했어요. 수고 하나도 없이 열매만 딱 바라고 있는 모습이에요.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는데 우리는 십자가는 너무 싫고 영광만 좋아합니다. 그래서 적용 없이 교회 나오게 만들고 만들고 싶어요. 고난 하나도 없이 교회만 나오게 하고 싶어요. 목자 되게 하고 싶어요. 이게 다 문제없는 평안을 바라는 거죠. 헛된 평안을 찾는 거예요. 우리가 육이 무너지는 것만큼 영이 세워지는 거예요. 누구도 예외가 없어요. 그래서 말 한마디에 기뻤다 슬펐다 하고 행동 하나에 마음이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평안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도 목장에서 그냥 믿음의 불량이 안 되면 한마디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이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는데 어떤 말을 들어도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평안하려면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구원을 위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돼요.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 자체가 평안이에요. 십자가 내가 지기로 결정하면 그 순종에 주님이 보혜사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십자가 없이 얻고 싶은 헛된 영광은 무엇입니까? 없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가지게 되니까 불안한 일은 무엇이에요? 내가 주님과 함께 기꺼이 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인가요? 

     

    너무너무 저 아파트를 가고 싶어서 샀는데 가고 나서 보니까 세상에 유치원 가기 전에 횡단보도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횡단보도가 없는 쪽 그 아파트를 샀어야 되는데 내가 이 아파트가 너무 좋아서 샀는데 보니까 그러니까 아이가 유치원에 갈 때마다 불안한 거 끝도 없는 거예요. 학교 가면 또 누구 친구랑 놀까 막상 가지게 되니까 불안한 일이 끝도 없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니까 이 세상이 주는 평화는 하나님이 주는 거하고 비교가 안 되는 거야. 부목자 회의에서 6~70대 부목자님들이 이 십자가 짐 같은 고난 가운데 그 고난이 다 사명이 되고 있는 걸 나눔해주셨어요. 아들에게 폭행당한 부목자님도 있고 이혼 또 재혼해서 또 이혼하고 그리고 또 첫부인 재결합을 한 나눔이 있고 또 딸의 조현병으로 자기의 그 의로운 삶에서 벗어났다. 또 어머니 소천으로 머리 깎고 주님을 대적한 나눔도 있고, 비행 아들이 수감이 됐다 사채 조폭과 건달로 살아오다가 이 목장을 통해서 변했다. 또 어떤 분은 이 공동체의 소개로 50대 늦깍이 교재 중인 부목자도 있는데 참 다 고난인가 봐요. 이분들에게 이 구속사의 말씀이 그냥 나야가라 폭포가 거꾸로 올라감 같은 이런 변화와 새 생명을 얻었다는 나눔을 하는 거예요. 이분들이 지금 얼마나 십자가 지고 있습니까? 그런데 밑동 잘린 나무니까 하나님이 오늘 부르시면 천국의 가장 아랫목에 가실 분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이런 분들을 감히 무시하고 손가락질 하면은 정말 여러분들의 인생을 내가 책임 못 지겠네요. 이제 다 똑같은 거예요. 권세를 가진 예후처럼 하루아침에 이렇게 변하는 상사가 되면 안 되는 거예요. 구원 때문에 만났는데 누구는 높이 보고 누구는 낮춰보고 이러니까 나라고 교회고 다 문제가 많다고 그러잖아요. 또 결혼하면 남편이 아내를 아래보고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여자의 머리는 남자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예요. 여러분들이 말하지 않아도 성경 보면 역할을 잘 알려주세요. 근데 여러분들이 여자의 머리 남자인 거 몰라 이런 얘기를 하시면 밥맛이라 이거예요. 우리 사랑해야 돼. 십자가 십자가 그렇게 역할을 잘 지킬 사람이 얼마나 있어요 그러지 못하니까 그래도 우리는 구원 때문에 살아야 되니까.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첫 번째는 뭐예요? 자기가 상황을 만들려고 해요. 두 번째는 헛된 평안을 구하는 거예요. 세 번째는 악을 끊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제 평안과 상관이 없어요.

    20 21절이에요. 파수꾼이 또 전하여 이르되 그도 그들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가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하니 요람이 이르되 메우라 하매 (그 병거 준비하라 이 뜻이에요.) 그의 병거를 메운지라 (준비한지라) 이스라엘 왕 요란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그러니까 파수꾼이 요람왕에게 상황을 다시 보고합니다. 두 번째로 보낸 연락병도 돌아오지 않는데요. 추가로 중요한 보고를 하는데 지금 오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예후라는 거예요. 병거 모는 것만 봐도 그렇게 미치게 잘 모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보고를 듣자마자 요람이 병거 타고 나섭니다. 또 같이 있던 남유다의 왕 아하시야도 같이 나서요. 이 가족 신화로 얼마나 둘이 또 두 왕이 꼭 붙었는지 죽으러 가는 길인지도 모르고 같이 나서는 거예요. 이게 아합 집이 특징인 거예요. 우리 형제는 너무 화목해 이 세상에 악하고 음란한 인간들이 모였는데 뭐가 화목해요? 돈 있고 권세 있을 때는 화목해 보이죠. 돈 있는 집들이 더 반복을 해요. 그러니까 지금은 권세가 있잖아요. 그냥 저기 뭐야 외삼촌도 왕 나도 왕 우리 할아버지도 왕 우리 왕 로열 패밀리 할렐루야.

    근데 왜 요람은 직접 병거를 타고 예후에게 갔을까요? 사실 명분상 치료 중이잖아요. 그런데 사마리아 성이 아람군에 포위됐을 때 기억하시죠? 그때 엘리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가 백성들에게 밟혀서 죽은 장관 생각나세요? 근데 요람이 그때 그 장관을 어떻게 했다고 그랬어요? 손에 의지했다고 그의 손에 의지했다고. 그런데 그렇게 요람이 믿고 의지했던 장관이 또 있는 거예요. 바로 예후인 거예요. 예후는 할아버지 때부터 집안의 가신인 거예요. 왕명을 받고 아람으로 간 부하가 지금 둘이나 돌아오지 않았잖아요. 그러면 적어도 왕이 돼가지고 상식이 있어야 되잖아요. 눈치를 채야 하는데 예후를 그냥 철석같이 믿어요. 이 상식적이지 않을 때는 띵크를 해봐야 되는데 둘이나 안 오는데 직접 만나러 가는 거예요.

    요람이 엘리사 말 안 듣는 것 외에 잘하는 게 또 하나 있는데 사람을 의지하는 거예요. 사람을 잘 믿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믿기로 작정한 사람, 그저 끝까지 믿는 거예요. 인간적으로 의리가 있다는 거, 사람 좋아 보입니다. 매력적일 수 있어요. 사람 믿고 의지하다가 망하는 거가 한두 예가 아니잖아.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 불신으로 사람을 믿기 때문에 사람은 선한 것이 한 개도 없다 그랬어요. 100% 죄인이라 그랬어. 근데 자꾸 사람을 믿는대 인간의 정치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람을 믿는다고 하죠. 우리가 친구 아이가 그러죠. 그러니까 자기를 죽일 사람인데 전쟁에서 상처나서 아파 누워 있는 몸이 얼마나 좋았으면 병거 타고 나와서 맞았을까요. 한편 의심을 그래도 할 수도 있지만 설마 설마 내가 나쁜 놈이지 어떻게 예후를 의심해 미숙할수록 정에 이끌립니다.그럴리가 없어 여러분 항상 그럴 리가 있습니다. 항상 이거를 그 남녀 간의 만남, 결혼 회사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100% 있습니다. 아니 이게 경영학 교과서 아닙니까? 큐티가 이거 정치 교과서 아닙니까? 이게 정치하는 거예요? 

    예후는 요람을 죽이러 왔어요. 칼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람은 예후가 그저 반가워요. 그래서 두 사람이 탄 병거가 만나는데 바로 그 장소가 이스라엘 사람 나봇의 토지인 거예요. 아합과 이세벨이 이 토지를 빼앗으려고 나봇을 죽였잖아요. 바로 그 땅이에요. 아합 집의 탐욕과 교만이 폭발한 바로 그곳 하나님이 그렇게 악을 행했어도 그 하찮아 보이는 나봇의 토지 하나 뺏었다고 이 집을 심판하잖아요. 여러분 내가 오늘 사소한 거 하나 잘못했다고 이 모든 죄를 그냥 넘어갔어도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시는 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병거의 속도와 시간까지 계산하셔서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는 예후와 요람입니다. 하나님의 정확, 모호하심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게 말씀이 응하는 인생이에요. 그래서 날마다 큐티로 경고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도 요람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22절이에요. 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내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히 있으랴 하더라. 

    요람은 예후가 그저 이제 믿을 수 있는 장군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길르앗 라못의 전황만 궁금해요.  이겨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야 되니까. 그래서 이제 계속 묻다가 직접 이제 평안하냐 물었어요. 그렇게 물어도 답이 오지 않는데 평안에 미련이 남아가지고 평안이 너무너무 갖고 싶은 거예요. 어떤 수고나 헌신도 하지 않았는데 평안이라는 열매를 꼭 손에 넣고 싶은 거예요. 계속 평안하냐 또 묻고 또 묻고 또 물어요. 이 질문에 대한 예후의 대답은 이제 무섭고 단호합니다.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떻게 평안하겠느냐? 예후는 직선적이고 잔인하고 개혁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에요. 병거를 몰고 가도 미친 스타일로 몰아요. 금방 알아볼 정도의 스타일이 그 사람의 스타일이에요. 왜죠? 예후는 이제 요람의 부하가 아니잖아요.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경쟁자가 되었어요. 옛 주인이 하늘처럼 오시는 태후마마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음행과 술수를 지적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후의 입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요람이 가족 신화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이 엘리사를 보내 그렇게 말씀하시는데도 대대로 내려온 악을 인정하지도 않고 죄악 가운데 있으니 이제는 반역자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스라엘에 말할 사람이 없는 거라. 엘리사를 통해도 말을 안 들어. 그러니까 이제 반역을 통해서 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도 너무 말을 안 들으면은 이제 전쟁을 일으키실 수도 있어요. 예수로 이렇게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됐는데 계속 예수를 개독교라 그러고 아주 요새는 예수 믿는다 그러면 왕따당하는 이 시대에 살면 그러니까 다 모든 사람을 보내봤는데 이스라엘이 회개를 안 하잖아요. 이세벨의 음행은 우상숭배고 술수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나봇 같은 하나님의 백성을 죽인 악행이에요. 요람 당신이 이 악을 끊어내야 하는데 끊지 않고 여전히 악행을 이어가면서 이제 유다까지도 악으로 물들이고 있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외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예후가 하나님의 사람이에요? 로마서 1 3절에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사람들은 자기 의를 가리려고 자기 의를 그렇게 세웁니다. 믿음의 반대는 그래서 열심이에요. 그것이 힘써 하나님에 의해 복종하지 않는 열심인 거예요. 예후에게 이 일을 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엘리사가 그렇게 말을 안 듣는다고 피를 묻히면서 요람을 처단할 수는 없잖아요. 악한 일은 악한 자에게 하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문제 많은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다 나가서 처단해야 되는 게 아니에요. 평화의 사도 본 회퍼 목사님이 너무 히틀러가 이상하니까 히틀러 암살에 가담을 하셨잖아요. 이거 미리 발각이 돼서 이제 게스타퍼 감옥으로 옮겨져서 이제 저기 뭐야 해방되기 일주일 전에 총살을. 그래서 순교자가 되신 것이 얼마나 본 회퍼 목사님에게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이 돼요. 히틀러를 심판할 다른 악의 세력을 하나님은 준비하세요. 아무리 아합과 요람이 악을 행해도 엘리사가 그들에게 총을 쏠 수는 없는 거라고요. 믿는 사람이 해야 될 일, 안 해야 될 일이 있는 거예요. 도리어 그 역할을 할 예후에게 기름을 부을지언정 이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그래서 이 세상 왕도 하늘이 낸다고 하잖아요. 선지자는 선지자의 제자는 부름받고 예후는 그 제자에게 기름부음을 받아서 각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명령이에요.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어요. 좋은 역할 나쁜 역할로 쓰임을 받습니다. 예후는 너무도 악한 시대 심판의 역할로 필요한 역할이었어요. 우리는 히틀러만 없으면 평안할 것 같죠 각자 역할이 있습니다. 근데 구원을 위한 역할이에요. 정권을 위한 역할이 아니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북한보다 잘 살아야 될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근데 하나님은 아직 이 약한 북한을 위한 심판의 도구를 보이지 않으세요. 그렇다고 우리 남한이 그들을 쳐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 믿잖아요. 훨씬 항상 악한 자는 악한 자가 치는 것이 맞아요. 그러니까 어떤 경우도 내가 복수하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들교회 의사 선생님이 절대 순종이라는 말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나 혼자 살겠다고 남아 있는 것은 나하고 안 맞지만 이것조차 인본주의적 사고이고 내가 돌보는 환자에 대해서는 마무리하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환자들을 케어하는 게 맞는 것 같고 순종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고 마음은 아니지만 적용으로라도 사직하지 말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절대 순종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국민 한 사람으로 보면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는 게 맞겠구나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 이것만 있으면 평안할 것 같은 게 많아요. 돈이 그렇죠 그죠? 이게 돈이 평안의 조건처럼 보여요. 이것만 주시면 제가 주를 위해 뭐든지 하겠어요. 이렇게 찾는 이것이 우리에게 다 있어요. 이것이 바로 이세벨의 음행과 실수예요. 끊어야 할 욕심이에요. 이 약을 끊지 못하면 평안할 수 없어요. 남편과 아내 바꿔 타면 평안할 것 같지만은 그래서 자꾸 딴 사람이 눈에 들어오죠. 그게 바로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예요. 끊어야 할 악이에요. 교체 선수는 절대 평안을 줄 수 없어요. 헛된 평안입니다. 아예 생각도 하지 말아요. 이세벨의 남편인 아합뿐만 아니라 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오늘 1부에 기도하신 분 여기서 10 20년 있다가 이혼하고 그런데도 목자가 됐어요. 그런데도 서로 아직 솔로로 있어요. 그래서 조금 이따가 결합할 건데 그래서 무조건 이혼하면 우리들교회에서는 사람 노릇 못하는 게 아니라 목자가 됐다 이거예요. 그러면 끊을 수 없는 악을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악과 정반대에 있는 구원의 일에 동참하는 거예요. 교회에서 여러 가지로 봉사하는 거는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고 여러분을 위한 거예요. 왜냐하면 주님의 몸을 함께 섬기며 같이 주님 안에 거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끊어지지 못하던 악이 봉사하면서 다 끊어지는 거예요. 참 평안은 주님 안에만 있기 때문에 주방 봉사, 주차 봉사, 청소 봉사, 주일학교 봉사, 예배 봉사, 목장 봉사 여러 가지 이것이 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고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딱 붙어 있을 수 있는 봉사입니다. 반드시 여러 봉사에 함께하시면서 끊어지지 않는 악을 다 끊어내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집사님은 양육 과제를 하면서 말씀을 듣기만 하다 녹취를 하니까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녹취록을 작성하는데 그래도 부부 목장이 참석했더니 2.5일 걸렸는데 전에는 4일 걸려서 그랬는데 굉장히 지금 2.5일 걸려서 뿌듯하다고 이렇게 나눔을 하셨어요. 여러분 며칠 걸리세요 

    적용 질문이에요. 절대 믿었다가 배반당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것만 있으면 평안할 텐데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직 끊지 못한 악은 무엇입니까?교회에서 어떤 봉사로 섬기고 있습니까?

    요람왕이 평안과 상관이 있는지, 이 집사님이 평안과 상관이 있는지 한번 들어보세요. 이분은 법대 나와서 의사 공부하고 의사였던 집사예요. 이 부부가 다 의사인데 이 독후감 이제 양육 숙제 면접을 쓰고 느낀 점이에요. 작년에 저는 목요일마다 일하는 기회를 가졌어요. 아이가 셋인데 쌍둥이가 졸업하고 중1로 올라가니까 공부방 비용이 올랐고 딱 맞게 꾸려지던 당시 남편의 병원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어 남편에게 상의했더니 남편이 금세 구직 사이트에서 내과 진료를 맡아줄 파트타임 의사를 구한다고 수요 예배, 목장 예배에 지장 없으니 해봐. 그래서 이 인간은 자기가 더 주는 병원으로 이직할 생각은 안 하고 날 부려먹을 생각만 하는구나 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해주실 거라 생각해서 솔직하게 이력서를 썼습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 썼는데도 면접을 보러 오라고 그래가지고 면접날 말씀이 마태복음 주의 길을 예비하라였고 가서도 그 이력서 쓴 대로 똑같이 얘기했어요. 나는 검진센터에서만 일해서 외래 경험이 적고 휴직 기간이 길다. 내가 일하느라 애들의 애착도 잘 형성이 안 되었고, ADHD에 소아 우울이 있어서 쌍둥이 데리고 정신과 가수 주 2회씩 놀이 치료받고 ADHD 약 먹이고 생전 처음 해보는 살림과 육아에 올인하느라 배운 걸 다 까먹었다. 소아 진료 경험도 거의 없다. 코로나 독감 검사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또 변화를 싫어하고 소심해서 지금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것도 두렵다. 그렇지만 쌍둥이가 한꺼번에 중학생이 되니 교육비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 그랬더니만 목요일 말고 다른 날도 가능하냐고 묻길래 저는 교회를 안 가면 살 수가 없고 다른 날은 교회 가야 하니까 목요일만 가능하다고 그랬더니 바로 다음 주부터 일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는 거예요.

    참 당황했지만은 왜 뽑았을까 생각을 해보니까 여러분 이 땅에 이렇게 진실한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가서 내가 나 오라 그런다고 그랬더니 목자님이 면접 책대로 면접하셨네. 그러니까 이제 남편은 말해줬더니 그게 일하겠다는 사람의 면접이냐 근데 어떻게 붙었지 의아해 했다는 거예요.  1회에 근무는 너무 힘들었고 그 하루를 위해 전날이면 집안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아이들을 일찍 재우기 위해 전쟁이 없고 셋이서 전화질을 이제 해대니까 너무 힘들었는데 또 잘 모르니까 개떡같이 처방해도 주님이 찰떡같이 고쳐주시라고 날마다 간절하게 기도하며 오고 갔는데 그래도 이제 일하는 동안 직원들에게 큐티 책을 다 전해줬고 그래서 이제 굉장히 길게 재미있게 많이 썼는데 제가 줄이느라고 인생이 힘드네. 그래서 정말 그 이력서를 쓸 때부터 마지막 진료일까지 말씀과 기도로 주님을 붙들었다고 이분이 요람왕보다 어떻게 평안과 상관이 있는 분 같지 않습니까? 이게 평안과 상관이 있는 분의 태도예요. 말씀 맺을게요.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평안과 상관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상황을 만들려고 해요. 그리고 헛된 평안을 이제 구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악을 끊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스스로 너무 자기 위를 쌓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는 거예요. 하나님의 의를 힘써 방해한다고 그러잖아. 자기 의가 하늘을 찌르는 사람은 자기 죄를 가리려고 그런다잖아요.그죠 평안은 하나님이 주는 평안밖에 없습니다. 찬양하고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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