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열왕기하 9장 1절~10절 - 선지자의 제자
    주일설교 요약 2024. 5. 5. 08:05

    선지자의 제자

    열왕기하 9:1~10

    김양재 담임목사

     

    여러분은 뵙고 싶은 선생님이 계세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윤찬 아시죠? 2년 전에 유명한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8살로 최연소 우승을 해서 이제 월드 스타가 되었는데요. 그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자기 스승 손민수 교수를 뽑더라고요. 그런데 손민수 교수가 또 인터뷰한 걸 보니까 제자 임윤찬은 평소 자신이 하는 말을 지나치는 법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피식 웃고 넘기는 것 같아도 나중에 보면 반드시 실행을 한다는 거죠. 하다못해 어떤 책을 한 권 소개를 해줘도 그것을 꼭 읽더라는 것입니다. 굉장한 칭찬이죠. 여러분은 어떤 제자였나요? 그리고 지금은 어떤 제자로 살아가고 있나요?


    요즘 요한복음을 묵상하는데요. 예수님을 배신한 가롯유다도 제자 중 하나였어요. 근데 무늬만 제자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 주님의 진짜 제자, 성령의 제자가 돼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엘리사 선지자의 제자 한 사람이 나와요. 스승 엘리사도 주님의 제자죠. 그래서 선지자의 제자는 곧 주님의 제자입니다. 근데 선지자 제자도 제대로 못하면서 주님의 제자라고 할 수는 없죠. 구약에서 제자라는 단어가 제일 많이 나오는 책이 11개 합니다.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 나오는 장면이에요. 제가 성령의 제자, 성령의 제자 양육이라고 설교를 했어요. 근데 선지자의 제자는 처음인 것 같아서 본문은 달라도 날마다 똑같은 설교 오늘은 선지자의 제자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선지자의 제자는 첫째 가장 평범한 사람입니다. 평범한 한 사람입니다. 

    1절이에요.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오늘 본문은 엘리사 선지자가 건강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이에요. 열왕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엘리사 선생님이 정말 수고를 많이 하셨죠. 엘리야 선생님 떠나시고 홀로 고군분투하며 여호람 때문에 고민하고 여호사밧 때문에 고민하고 게하시 때문에 고민하고 정말 속이 새까맣게 썩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 살렸죠. 과부 가정 살리고 수넴 여인 가정 살리고 가뭄에 제자들 살리고 나아만 장군도 살렸어요. 군대도 살리고 도시도 살리고 나라도 살리고 그야말로 쉴 새 없이 전국 아니 이웃 나라 모압과 아람까지 오가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사람 살리는 사역을 했습니다. 이 엄청난 사역도 이제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쇠약해지기 전 마지막으로 완수하려는 일은 무엇인가요? 바로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에게 맡기신 세 가지 임무 중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죠. 세 가지가 뭐였죠? 첫째가 아람의 하사엘에게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장군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그리고 이제 엘리사에게 기름을 이제 부으라고 한 것이었는데요.  3번인 엘리사만 기름 붓고 두 개가 유업으로 남았는데 지난번에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하러 이제 아람의 다맷에게 가서 그 하사엘를 쏘아보며 통곡하고 기름을 부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제 마지막 2번 예후가 남았어요. 엘리사가 이제 이것을 완수하려는 거예요? 엘리사는 어느 나라 사람이죠? 북이스라엘이에요. 북이스라엘 왕이 누구죠? 이제는 요람이라고 불리는 여호람이에요. 남유다의 여호람 왕은 이미 죽었어요. 북이스라엘의 여호람인 요람은 아직 병중에 살아있어요. 지난주일 본문이었죠. 그런데 그러면 이제 엘리사가 뭘 해야 하나요? 예후라는 장군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세워야 하는데요. 예후는 요람의 아들이나 형제가 아니에요. 그냥 장수예요. 그러면 이건 뭐예요? 반역이잖아요. 왕이 살아있는데 그 밑에 장군을 왕으로 세우라니 말입니다. 근데 요람왕이 엘리사를 안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이 반역을 주도하다니 이거 요람왕이 알면은 이건 완전히 살려둘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엘리사는 예후에게 직접 가지 않아요. 저 멀리 있는 이방 아람의 다메섹에게는 직접 갔어요. 그런데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예후에겐 직접 안 가요. 왜죠? 이거는 비밀리에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또 신속하게 행해야 하는 일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노후의 엘리사는 빨리 가기가 어렵거든요. 그런데 여러분이 또 이러는 거예요. 아니 하나님 명령인데 왜 뭘 해요? 떳떳하게 해야지 이러면 또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지켜줄 건데 왜 눈치를 보지? 이게 다 인본적인 생각이에요. 믿음은 상식을 넘어서면 안 돼요. 그런데 믿음은 또 초월적인 거예요. 그래서 어려워요.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지혜와 타이밍이 상황마다 분별이 필요한 것이죠. 이 일이 무슨 정치 개혁이 아니거든요. 옳고 그름 따지고 더 좋은 명분 찾고 자기 쪽의 권세를 위한 정치 싸움이 아니에요. 이 일은요. 아합의 집을 심판하시려는 이스라엘 최고의 악한 왕 아합의 집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이에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돌이켜 보시려고 온갖 수고를 다 하시고 온갖 애를 다 쓰시는 하나님의 일 구원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가기도 어렵고 가기도 싫은 이방의 다메색은 엘리사의 유명세가 사역에 도움이 되는 곳이기 때문에 직접 갔어야 해요. 그런데 직접 가고 싶고 가는 게 쉽기도 한 자기나라 길르앗 라못은 엘리사의 유명세가 임무 완수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방해가 돼요. 그래서 직접 하지 말아야 할 수도 있는 거예요. 예수님도 죽이는 모의가 시작되니까 드러내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엘리사가 어떻게 합니까? 제자 중 하나를 불러요. 여기서 제자는 원래 아들이라는 뜻이에요. 단지 학생이 아니고요. 같이 살면서 돌보고 섬기고 배우는 자식 같은 존재란 말이에요. 엘리사도 그냥 스승이 아니라 아버지 같은 존재라는 뜻이에요.


    엘리야가 혼자 남은 것처럼 외로울 때가 있었잖아요. 아합과 잘 살고 있는 이에 이세벨 왕비가 그 엘리아 선지자를 죽이고자 했을 때 너무 외로워했죠.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물리쳤어도 그냥 이세벨이 죽이려고 하니까 죽기를 자청할 만큼 힘들었어요. 엘리야 때는 거의 자기 편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선지 학교가 부흥해서 이렇게 아들 같은 제자들이 많아졌죠. 이 여러 제자 중 하나를 엘리사가 부릅니다. 여러분 누구일까요? 엘리사 제자 하면 누가 떠오르죠? 역시 이게 이제 쭉 성경을 읽어오지 않으면 대답 못할 건데 아시죠? 그런데 여기에 이름이 안 나오는 거예요. 게하시는 그러니까 아닌 거예요. 게하시가 제자라는 말로 소개된 적이 없거든요. 그는 늘 사환으로 소개가 되었어요. 물론 제자 중 수제자라 엘리사를 옆에서 수행하는 비서가 되었겠죠. 하지만 게하시를 선지자의 제자라고 선지자의 아들 같은 존재라고 성경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이게 작은 일이 아니에요. 게하시는 능력이 있었어요. 인정도 받았습니다. 그러니 스승님을 옆에서 모시는 사환이 되었겠죠. 하지만 그는 늘 자신이 특별하려고 했어요.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물론 게하시가 나병 치료도 받고 많은 큰 일을 직접 보고 겪으면서 나병 걸린 상태에서 회개도 했고, 큰 공도 세웠어요. 요람 왕에게 이 큰 구원의 일도 잘잘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어요. 왜죠? 그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어요. 특별한 사안이었지만 거기서 멈췄어요. 선지자의 제자 선지자의 아들이 되지는 못했어요. 나는 원 오브 뎀이 아니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 나는 나다. 이게 게하시의 태도였어요. 

     

    그러면 누가 선지자의 제자 선지자의 아들입니까? 여러 제자들 중 하나로 그냥 있는 사람이에요.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묵묵히 있는 사람이에요. 자식이 뭡니까? 왜 자식이 귀해요? 그냥 그 자식은 자식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만으로도 귀한 것 아닙니까? 첫째 둘째 셋째 부모 입장에서 차별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죠 아닌가요? 차별이 있으면 문제 부모죠. 믿음이 없어서 우리가 차별할 수는 있어요. 그래도 세상에서 내 새끼는 그냥 모두 다 귀하다고 여기는 본능적으로 그건 있지 않아요. 첫째 둘째 셋째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냥 그렇게 귀하죠. 근데 세 자녀 중 하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 된 거예요. 그런데 더 특별하려고 자녀 중에 싸우고 무시하고 질투하고 그러면 이렇게 속상한 거죠. 그러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나의 차별 당함이 또 혹은 차별함이 객관적인지 주관적인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청년국의 한 청년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따돌림 당한 것 때문에 10번째 음독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 아이는 9년 만에 낳은 아이니까 얼마나 귀하겠어요? 그래서 이 야망이 발동을 해서 이 믿지 않는 시댁에 보일 것이 있게 해달라고 이렇게 기도를 했는데 기대가 너무 커서 아이가 원하는 사랑이 아니라 이 부모가 원하는 사랑을 했다고 이 부모님은 회개하십니다. 참 평범한 집인데 이 가정이 이 아이로 인해 지금 칼날 위의 물방울 같은 훈련을 받고 있어요. 근데 이 아이가 차별당한다고 끝없이 생각하는 게 이제 문제인데 그러면 어떻게 이걸 해석해야 되나요? 이 아이로 인해 이 가정이 하나님이 상급이 되는 거룩한 가정이 돼가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 아이를 거치는 교사들도 다들 회개를 하는 거예요. 우연은 없다고 하시니까 이 과정에 기쁨이 넘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굉장히 평범한 가정이지만은 잘난 사람들은 안 들리는 이 말씀이 부모님도 이 아이도 말씀이 잘 들려요. 아이는 지난주 큐티 캠프에 와서 은혜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눈여겨보시는 줄 믿습니다. 다들 천국 목적지에는 확실히 도착할 것 같아요. 이 가정으로 인해 은혜받는 사람이 많아요. 

     

    엘리사는 그렇게 제자 자체가 감사하여 여러 제자 중 하나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제자 한 명을 불렀어요. 그리고는 그에게 자기가 완수해야 할 마지막 사명을 맡깁니다. 허리를 동이라고 해요. 영적 무장을 해라. 구원을 위한 막중한 사명이니까 몸도 긴장해서 준비하고 영적으로도 깨어 있으라는 거예요. 그리고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기름병을 건네줍니다. 이 병을 손에 들고 길르앗 라못으로로 가라고 합니다. 어떻게 적용합니까? 이 가정도 늘 깨어 있게 하시니까 딸 때문에 이제 수치스럽지가 않고 이 약재료의 기름병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할 길르앗 라못으로 가셔야 할 것입니다. 오늘 허리를 동미고 이 기름병을 가지고 가야 할 길르앗 라못이 어딘지 여러분들 적용해 보세요.


    그래서 오늘 무슨 말을 전하라고 하나요? 2, 3절입니다.

    거기에 이르거든 님씨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우를 찾아 들어가서 여호사밧은 남유다 여호사밧 왕이 아니에요.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의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그를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 기름병을 가지고 그의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지체하지 말지니라 하니 

     

    길르앗 라못은 요람이 가족 신화 때문에 싸우러 갔던 곳이라고 했지요. 위대한 아버지 아이 죽은 곳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요람도 거기서 부상을 당해 이스라엘로 후퇴를 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주력 부대는 여전히 그곳을 치려고 주둔하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총사령관 예후가 다른 장수들과 그곳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 장수들은 예후와 전장에서 생사를 함께한 형제 같은 전후였어요. 엘리사 무명의 제자 1명을 예우에게 보내며 그를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머리에 기름을 부으라고 해요. 그리고는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삼는다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이 참 중요한데 문 열고 도망가래요. 돌아오라는 거죠. 그러니까 기름을 부어 예우를 왕으로 삼는 것이 목적이니까 그렇게 했으면 그다음 생각하지 말고 딱 돌아오라는 거예요. 이게 굉장히 간단한 것 같지만 사실 아주 아주 위험한 일이죠. 전쟁 중에 군대 장관들이 다 모여 있는 가운데 청년 하나가 와가지고 갑자기 갑자기 머리에 기름을 붓고 니가 왕이다 말하면 이거를 고지 들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반역을 하며 북이스라엘의 요람을 제압한다고 하여도 누가 남아 있어요? 남유다의 아시아와 남유다 본국의 왕족들이 남아 있을 거 아니겠습니까? 두 국가가 혈연으로 뭉쳐 있는 가운데 반역을 한다는 것은 두 나라 왕족과의 싸움이에요. 여러분 남북이 이렇게 연합을 해도 가치관이 안 맞으면은 연합을 해도 예 반역밖에 일어날 게 없네요.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너를 왕으로 임명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니 이스라엘의 장군인데 이건 요람 왕에 대한 충성을 보이기 위해서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을 완전히 매질을 하고 감옥에 가두고 배우가 누구야. 고문을 가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정상적인 생각이라면 그러니까 이 한 제자와 엘리사는 이제 죽을 수도 있는 거예요. 아니 100% 죽겠다고 생각하죠. 그러니까 이런데 개하시는 안 가지 그런데 엘리사는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여러 제자 중 아무나 한 명을 불러서 시킨 거예요. 이 제자가 특별했다면 이름이라도 나왔겠는데요. 특별하니까 게하시는 이름이 나오잖아요. 계속 그러나 그는 그저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예요. 원오브뎀이에요. 여럿 중 하나예요. 가장 평범한 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가장 평범한 한 사람이 엘리사의 마지막 사명을 맡아 완수하는 가장 비범한 인생이 되는 거죠. 왜죠? 평범한 자기 자리를 원오브뎀이 되어서 여전한 방식으로 비비고 닦고 문지르면서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불러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가장 평범한 인생을 가장 비범한 인생이 되게 합니다.그 평범한 인생이 뭐죠? 다들 아픈 아이 부모로 살 때, 내가 질병으로 아플 때 망해서 돈이 없을 때 인간관계로 힘들 때 이때 잘 살면은 하나님이 불러주세요. 이게 평범한 중에 불러주시는 인생이에요. 자꾸 환경이 변하기를 원하지만은 일이 굉장히 위험한 만큼 대가도 크게 기대할 수 있는 일이에요.


    예후를 왕으로 세운 선지자가 되는 일이잖아요. 그러면 새 임금으로부터 큰 선물을 기대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한편으론 유혹이 또 있는 일이에요. 그래서 빨리 도망해야 돼요. 그래서 이 일은 위험하기도 하고 유혹이 있기도 하고 아주 어려운 일이에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근데 우리가 특별해지려고 하다가 다 무너져요. 하나님이 주신 일상을 하루하루 평범하게 잘 살아내야 하는데,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나는 저들과 다른데 외치며 비범만 꿈꾸다가 가롯유다 같은 가짜 제자로 끝나는 거예요. 예수님 옆에 있어도 유다로 끝나요. 끝까지 제자 이름으로 아들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 사환 게하시로 끝날 수 있는 거예요. 엘리사도 평범하게 밭에서 소 몰며 일할 때 불러주셨어요. 평범한 일상을 성실히 잘 살고 있을 때 사명의 자리로 불러주십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엘리아 선생님의 사명을 엘리사가 이어받아 제자가 된 비결은 엘리사의 비범함이 아닌 평범함이었어요. 자기 자리를 잘 지킨 그 평범함이 사실은 가장 비범한 것이에요. 평범이 비범입니다. 가장 평범한 한 사람이 선지자의 제자가 됩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가족 중 한 사람 지체 중 한 명으로 평범하게 잘 살고 있습니까? 특별한 존재가 되려고 애씁니까?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해 슬픕니까? 이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어서 감사합니까?


    불신 결혼을 할 뻔했는데 우리들 교회 아웃리치에서 남편을 만나 이제 믿음의 신결혼을 했어요. 제가 무슨 복이 많아 신결혼을 했는지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같은 믿음의 공동체 내에서 남편과 대화가 통하는 게 너무 감사합니다. 목장 예배 때마다 불신 결혼의 결과로 치열하게 싸우는 부부들의 모습을 보며 신결혼에 감사와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는 교제를 시작하고 10개월 만에 결혼했는데 공동체에서 자기 고백을 하는 남편의 진솔한 모습이 너무 멋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남편을 쟁취하느라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너무 평범한 한 사람 평범하게 교회 잘 나오고 목장 잘 나가면 여러분 이 얘기를 하면 천연기념물 같은 소리라고 하겠습니까? 믿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자꾸 믿음의 결혼을 하라고 그러냐? 아까 교회를 나가도 가치관이 다르면 안 된다 그랬잖아요. 믿는 사람이 너무 희귀해요. 우리들 교회 와서 아이도 빨리 낳아야 되는데 결혼도 해야 되는데 그러니까 데려다가 세례받게 하고 목장에 나오게 하고 딩크 양육까지 받게 하면 불신 딱지를 떼어주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결혼하기 전에가 가장 사랑할 때잖아요. 사랑하면 그것까지는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래서 그것도 안 하겠다 그러면 그건 그냥 딱 자르셔야 돼요. 결혼하고 나면 양육 안 받아 목장도 안 나와 교회도 안 나와 결혼 전에 해야 돼. 반드시 결혼 전에 그래서 불신 딱지는 뛰고 우리들교의 DNA가 이렇게 퍼져나갈 줄 믿습니다.


    선지자의 제자는 첫째 뭐라 그랬죠? 가장 평범한 한 사람이에요. 둘째는 절대 순종합니다. 

    4절이에요. 그 청년 곧 그 선지자의 청년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그 청년 곧 그 선지자의 청년 청년이 두 번이나 나오잖아요.


    근데 이 청년은 사실 사환이라고 번역한 단어와 같은데 사한이라 그러면 우리는 게하시가 생각나잖아요. 여기서는 제자 중에 한 사람을 불러서 보낸 거니까 사환이 아니죠. 말 그대로 결혼하지 않은 젊은 제자 한 명이라는 뜻이에요. 만일 이 사람이 게하시었다면 아니 왜 제가 갑니까? 어떻게 찾습니까? 잡히면 어쩝니까? 말이 많지 않았겠어요. 근데 여러 제자 중 한 사람 무명의 청년이니까 여러분 진짜 정말 대단한 제자예요. 선생님 말씀에 어떤 토도 달지 않아요. 그냥 순종합니다. 가라고 하니까 그냥 가는 거예요. 이게 절대 순종이에요.


    5절입니다. 그가 이르러 보니 군대의 장관들이 앉아 있는지라. 소년이 이르되 장관이요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나이다. 예후가 이르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누구에게 말하려느냐 하니 장관이여 당신에게 니이다 하는지라.


    기라라모 진영에 이제 도착을 했어요. 장군들이 쫙 앉아 있습니다. 부하들이 멈춰 세웠겠죠. 소리를 지른 것 같아요. 장군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 병사들이 붙잡고 막 말리지 않았겠어요. 근데 청년 제자는 아랑곳하지 않아요. 왜 완수해야 할 임무가 있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은 사악 원동력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막지 못해요. 그래서 더 크게 외쳤어요.


    예후가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이 제자는 선지자 스승님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스승님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니까 말씀보다 더 살아있는 것이 없거든요. 그렇지만은 이건 독재는 아니에요. 믿음은 상식이 있다고 그랬죠. 그런데 또 초월적인 게 있다고 그랬어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이 말을 못 알아들어 그래서 맨날 말씀이 안 들리는 거예요. 그래도 들으라고 또 말하는 거예요. 오늘 본문은 다르나 날마다 똑같은 설교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을 전해야 되니까 체면이나 부끄러움이나 심지어 위험도 개의치 않아요. 이상한 사람, 미친 사람 취급당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요. 왜죠? 선생님이 부탁하신 사명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것이 무엇이든 말입니다. 어떤 것도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우선인 것이 없다는 확고한 결단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게 진짜 제자예요. 선생님 가르침대로 하는 사람이죠. 내 앞에서는 듣는 척하고 좋아하고 존경하는 척하다가 돌아서면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은 제자가 아니에요. 자기가 주인이고 자기가 선생이에요. 결국 자기 생각이 정답인 사람이죠. 제자가 되지 못하는 거예요. 최고의 제자는 배울 수 있는 배울 줄 아는 제자예요. 배우고 싶어하는 제자예요. 배우려면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내가 안다고 생각하면 배우기가 어렵습니다. 배울 줄 아는 것은 곧 들을 줄 아는 거예요. 다른 사람 말을 들을 줄 아는 만큼 배웁니다. 많이 아는 똑똑한 제자도 좋지만요. 가장 훌륭한 제자는 이미 많이 아는 제자가 아니라 잘 듣는 제자, 잘 배우는 제자입니다.


    그런데 진짜 배움은 아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머릿속 정보와 지식으로 끝나면 온전한 배움이 아닙니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실천해야 해요. 적용해야 진짜 내 것이 되는 겁니다. 따라서 진짜 배움은 절대 순종이에요. 상대 순종이 아니에요. 조건부 순종이 아니에요. 절대 순종, 무조건 순종. 네 하나님께 우리가 무조건 순종해야지 상대적인 순종하면 안 되잖아요.


    그죠? 몰라요. 청년부 목자의 나눔이에요. 올해 다시 목자로 불러주셨는데 나는 멀리 이사 가지만 목원들에게는 교회 근처에 집을 구하라고 말하는 이상한 목자임이 깨달아졌대요. 그래서 이제 이사를 안 하는 적용을 하려는 중인데 아파트의 처분에 관해서도 매매할지 말지 목장과 공동체에 묻고 있습니다. 내 고난이 내 죄보다 작다는 말씀처럼 예상되는 금전적 손해가 돈 우상의 노예된 삶을 살았던 죄보다 작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걸 처분하고 나면 지난 4년간 잃은 건 하나도 없고 병만 남은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귀한 시간을 헛되이 쓴 내 삶의 결론임을 깨닫습니다. 청년부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이렇게 회개를 하고 그리고 아무것도 없이 만나도 믿음으로 만나니까 보금자리 주택도 당첨되고 20년 동안 이혼을 안 했잖아요. 이혼을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만나는 게 최고더라고. 20년 동안의 열매를 보니까 믿음이 최고예요. 사람은 선한 게 없다 그랬잖아요. 성경 말씀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되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고 사람은 악하고 음란하다고 그랬어요. 성공하려고 악하고 성공하면 음란하고 그러니까 이 믿음이 없이 결혼을 하게 되면 악하고 음란한 것밖에 안 나오는데, 망해도 학벌이 없어도 여기서 믿음으로 결혼하니까 지금 이렇게 날마다 아이를 낳고 아무도 낙태 안 하고 이혼 안 하고 결혼 빨리하고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창피와 위험을 무릅쓰고 엘리사 선생님 말씀에 절대 순종해서 예우에게 외친 제자는 어떻게 됩니까?


    6절입니다.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청년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자신을 부른다는 걸 예후가 알았죠. 이제 그래서 예후가 다가갔어요. 그러자 제자는 선생님이 시킨 대로 예후를 골방에서 이제 따로 보겠다고 해요.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러자 이 청년이 뭘 합니까? 선생님이 준 기름병을 예후 머리에 그냥 기울여서 기름을 붓습니다. 여러분 이것도 참 정상은 아니에요. 새파랗게 어린 청년 선지자가 와서 이스라엘 총사령관을 따로 독대하겠다고 불러내더니만 머리에 기름까지 부어요.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죠. 그러나 이 제자는 선생님 말씀에 절대 순종을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적어도 선생님이 자기보다 옳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 자기보다는 옳기 때문에 저는 제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말씀대로 무조건 적용하겠다는 것이죠. 이것이 절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제자예요.

     


    적용 질문이에요.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고 싶습니까? 배우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지는 않습니까? 공동체의 권면을 잘 듣나요? 듣는 척만 하고 무시하나요? 그래서 지금 가정에서 절대 순종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또한 나눔이에요. 저는 골수라고 우리는 이렇게 적용을 해야 하고 또 늘 배우려고 하잖아요. 골수라고 할 만큼 진보적 성향이 강한데요. 근데 이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만 선이라는 생각이 이제 들었답니다. 성령님이 제 마음을 움직이셨는지 그런 생각이 들었대요. 진짜 중요한 선은 영혼 구원이구나 생각이 들고 그것만이 하나님이 저를 부르신 이유라고 느꼈대요. 그래서 비판하던 나 자신에게 회개가 되고 내려놓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이제 정치 유튜브 보던 것들도 많이 정리했고 조금 더 말씀에 집중하기 위해서 즐기던 것들을 잘라내는 적용을 했다고 해요. 요즘 요한복음에 큐티하는데 사도개인도 바리새인도 그러니까 그때로 보면 보수 진보인 거겠죠. 그죠? 전부 다 예수 죽이는 모이를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두개파 바리새파 말고 예수의 길이 있다고 그랬잖아요. 예수의 길 목장에서 남편과 아내가 이혼하려고 서로 옳다고 해요. 근데 서로 옳다고 하는데 예 거기서 어떻게 답이 나오겠어요? 이혼이 답인데 근데 이 부부를 위해 목자가 무릎을 꿇고 아내에게 빌고 남편에게 빌고 하니까 목원들이 다 무릎을 꿇으니까 그 이혼이 막아졌잖아요. 이것이 예수의 길인 줄 믿습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니고 예수의 길 예수밖에 선한 것이 없어요. 이쪽저쪽 예수 믿는 사람 있을 거 아니에요 그죠? 그러니까 한쪽이 예수 믿어도 지금 이렇게 지금 아까 이혼을 감행했잖아요. 예수 믿는데 그 2년 만에 항상 예수의 길을 따라가야 되는 거예요.

    선지자의 제자는 첫째 뭐라고요? 가장 평범한 한 사람입니다. 둘째 절대 순종합니다. 그러려면 셋째는 들은 말씀이 있는 사람이어야 되는 거죠. 들은 말씀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6절에서 10절입니다.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내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노니 너는 내 조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주리라.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자나 노인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르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이아의 아들 바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이스라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그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


    엘리사가 제자에게 하라고 한 말은 3절 한 절이었어요.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내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노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말하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제자가 예후에게 실제로 한 말은 6절부터 10절까지 다섯 절이나 되는 거예요. 그러면 제자가 지금 선생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지 않고 많이 보태서 한 건가요? 보태긴 보탰네요. 그러나 자기 생각, 자기 말을 통한 게 아니고요. 이미 선생님께 들은 말씀 듣고 기억한 말씀으로 예후에게 더 분명한 메시지를 주는 거예요.



    6절에서는 예후에게 말씀하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죠. 그리고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백성임을 또한 분명히 합니다. 무슨 말이에요? 예후 너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내 왕이신 하나님이 너를 자기 백성의 왕으로 삼으신다. 영적인 것을 하나도 모르는 예우에게 지금 확실하게 알려주는 거예요. 7절에서는 예우를 왕으로 기름 부으시는 목적이 아합의 집 죄악 심판에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이 엘리아에게 처음 이 세 가지 인물을 주실 때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우가 죽일 것이오.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고 하셨잖아요. 이세벨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멸했고요. 나복 같은 사람들을 죽이고 자기 욕심을 채웠어요. 이 죄악을 갚는 심판의 도구로 예후 너를 왕으로 세웠다. 그러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임무를 다해라 이런 뜻입니다. 엘리사가 보낸 제자는 그러니까 자기 생각으로 아무렇게나 더해서 말하는 게 아니고요. 선생님께 들은 말씀을 기억해서 예우에게 딱 맞게 전한 거예요.


    8절부터 10절은요. 나보 사건 이후 엘리아가 아방에게 내린 심판의 말씀을 세 절로 간추린 말씀인데요. 아합의 집은 이미 하도 악을 행해서 이미 멸망하기로 작정이 되어 있었어요. 돌아올 기회를 하나님이 주실 만큼 주셨고, 기다릴 만큼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기회가 없어요. 아합 이전에 있던 여러 보아 왕조, 바사 왕조가 멸절된 것처럼 이제 아홉의 집을 멸절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예후에게 확실히 알려줘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너는 그들의 집처럼 하지 마라 이 얘기인 거예요. 아합의 집처럼 너는 그렇게 하지 마라. 근데 개혁했다가 또 그렇게 하죠. 나중에 사람은 정말 믿음의 대상이 아니에요. 이렇게 선지자의 제자는 예우 장군에게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자기 말을 덧붙인 게 아니라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예후 수준에 맞춰서 잘 전한 거예요. 임무를 완수한 겁니다.

     

    말씀을 다 전한 다음 어떻게 해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곧 문을 열고 도망갑니다. 그러니까 말씀대로 하는 거예요. 말씀대로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요. 근데 지난번에 게아시는 말씀대로 안 했잖아요. 내 물에 탐이 나가지고 그러니까 여기서도 선물 좀 안 주나 한 자리 주지 않으려나 이런 생각으로 기웃거리지 않아요. 말씀을 전하자마자 곧 문을 열고 도망해요. 끝까지 자기를 특별히 여기지 않는 거예요. 끝까지 절대 순종하는 거예요. 이게 진짜 제자예요.


    여러분 이렇게 이렇게 정치를 하고 이렇게 경영을 하면 이게 성경이 얼마나 이타적인 정치 경제 경영, 교육 등의 교과서인지 몰라요. 근데 이기적인 정치를 하니까 분이 나는 거죠. 자기 자기 편으로 들으니까 이게 전부 백성 살리는 게 정치고 다 우리가 이타적으로 살려고 가장이 돈도 벌고 우리 가족만 잘 살게 도 우리 교회만 잘 되게 이 우리 그러니까 날마다 이 진영 논리가 있고 지역 감정이 있는 거죠.

     

    특별한 것 하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시키는 대로 무조건 순종하면 순종하는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이 사람이 어떻게 엘리사의 진짜 제자가 되었을까요? 어떻게 엘리아에서 엘리사로 이어지는 마지막 그러나 가장 막중한 이 사명을 완수하는 제자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지금 살펴본 것처럼 들은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엘리아 선생님으로부터 엘리사 선생님으로부터도 말씀을 들었어요. 그런데 듣고 잊어버리지 않았어요. 들은 말씀을 생각하고 되새기고 기억을 했어요. 이 재미있는 말을 지금 졸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안 들려 안 들려 그죠 그러니까 졸지 그랬기 때문에 예후 앞에서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예우에게 필요한 말씀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인생을 비벼나 비범한 사명의 인생 되게 하는 힘은 오직 주님의 말씀이에요. 엘리야도 엘리사도 오늘 주인공인 선지자의 제자 한 명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영적으로 완벽한 한 팀이 되어서 대를 이어 사명을 완수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웃었는데도 줘라 스승과 제자만 그런 게 아니죠. 교회도 진짜 교회로 존재하려면 말씀으로 하나가 돼야 한몸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피가 아무리 진하다고 해도 말씀이 없으면 사람이 다 이기적이에요. 부부가 하나 하나가 될 수가 없어요. 인간은 그냥 100% 이기적이에요. 절대로 하나가 되지 못해요. 이 조그만 나라에서 이혼율이 1위고 자살률이 1위 전부 자기가 옳기 때문이에요. 감정 때문 아니고 돈 때문에 싸우고 가족, 신화 때문에 갈라지고 좌건 우건 우리로부터는 선한 것이 하나도 나올 수가 없어요.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그 말씀으로 부부가 하나가 되고 가정이 하나가 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야 구원의 사명으로 나아가는 진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무명의 제자 한 사람이 엘리아도 엘리사도 직접 하지 못했던 엄청난 일을 완수했어요. 가장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삶을 겸손하게 잘 살았던 것이고요. 그랬기 때문에 절대 순종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게 그 사람의 환경이나 성품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 들은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양육의 계절이 돌아왔는데요. 양육을 통해서 말씀이 들리는 복을 받으시기를 바래요. 이번만 아니라 다음 양육, 그다음 양육, 또 그다음 양육에서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말씀이 들리는 복이 이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들은 말씀이 우리 삶을 가장 귀한 사명의 삶으로 바꿔놓을 줄 믿습니다. 저도 우리들 교회에 평범한 성도님들이 이런 사명을 감당한다고 감당한다고가 아니고 감당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엘리사의 가장 위대한 마지막 사명을 무명의 제자가 한 것처럼 우리들 교회 성도님들 목자님들도 그렇겠죠. 어떻게 해요? 아이 낳는 적용으로 힘든 아이 돌보는 삶으로 망한 집 살아내기로 외도 배우자 용서하기로 하나님은 부르셨어요. 가장 비범한 삶을 살아내시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20년 동안 제가 잘난 게 뭐가 있어요? 한국에서 무시받는 여자 목사인데 근데 여러분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제자가 되어서 선지자의 제자가 되어서 자기 삶에서 다 용서하고 청년부가 이 3천 명이 넘는데 이혼을 안 했다는 거 다 적용한 거잖아요.


    그죠 다 제자가 되 여러분들 가운데도 적용 질문이에요. 들은 말씀으로 살아난 경험 살린 경험이 있습니까? 우리 가정은 말씀으로 하나가 되고 있나요? 요즘 말씀이 잘 들립니까? 안 들린다면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목사님이 지금도 CEO인데 아주 그냥 더 큰 세계적 글로벌 기업 CEO 면접에서요. 이제 화상으로 모든 외국의 CEO도 다 들어와서 다각도로 면접을 보는데 이런 질문을 했대요. 회사에서 가장 하고 놀랄 때는 언제인가 질문을 했는데 이분이 교회에서 들은 말씀이 있으니까 문제가 보이면 놀라서 문제가 아니고 문제가 안 보이면 문제다 이걸 영어로 쫙 했대요. 그러니까 문제를 알면 문제가 아니고 문제를 모르면 문제다 이 얘기인 거죠. 우리 날마다 들었던 말이잖아요. 그랬더니 그냥 그 외국에 그냥 그 높은 CEO 면접관이 놀라면서 받아 적더라는 거예요. 그거를 그리고 압도적인 점수로 그CEO에 합격을 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 면접을 위해서 평소에도 듣지만 지난주는 설교를 그냥 15번을 들었다는 거예요. 이런 마음이 말할 것을 그때 생각나게 해주시는 거죠. 이분에게 맡겨진 일이 교회에서도 너무너무 많아요.

    그런데 늘 교회에서 들은 말 가지고 회사에 가서 쓰면 다들 칭송을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평범한 일을 잘 감당하니까 이렇게 자꾸자꾸 올라가네요. 여러분들도 늘 교회에서 들은 말로 회사 가서 좀 잘 써먹고 승진 좀 하세요. 졸지 좀 말고 근데 이 CEO도 그냥 뭐 그렇게 됐겠어요? 다 이혼하고 힘든 일 겪고 와서 말씀이 들리니까 지금 정말 돈은 회사에서 주고 일은 교회 와서 하고 우리 다 그래 다 돈은 회사에서 주고 와서 맨날 사람 살리는 일을 하잖아요. 이혼 법정에 막 찾아가서 이혼 말리고 그냥 이 바쁜 분이 그냥 가정법원까지 찾아가고 이게 괜히 선지자의 제자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막 있던 회사도 더욱더 가지 말라고 지금 말리고 그런데 몸값이 자꾸 올라가시네. 여러분들도 몸값 좀 올리시기를 바래요. 근데 정말 예수 믿으면 자존감이 자존심 말고 자존감이 높아서 사람이 매력이 있잖아요. 근데 이때 할 말을 이게 창조적인 말이니까 다 놀라는 거예요. 우리 날마다 이렇게 듣는 얘기인데 네 말씀을 맺어요.


    선지자의 제자는 가장 평범한 한 사람이라고 해요. 우리가 이 평범한 삶을 사는데 아프지 않고 부어나지 않고 망하지 않은 사람 어디 있어요? 그 환경을 잘 사는 한 사람이 마지막에 그 몇천 년을 내려오는 이 막중한 사명을 감당한 사람이 됐어요. 이 사람은 절대 순종합니다. 적어도 스승이 나보다는 낫다 이 생각을 하니까 스승은 또 하나님의 사람이니까 그러려면 이게 들은 말씀이 있어야 되는 줄 믿어요.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는데 여러분들이 아프고 힘들지 않았으면은 교회 왔겠습니까? 육이 무너졌으니까 영이 지금 세워졌지 그러니까 이 부르심에 이 모든 환경은 하나님은 후회하심이 없는 거 여러분들의 모든 환경은 하나님의 창조하심의 환경인 거예요.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