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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4장 27절~25장 11절 – 성령의 호의주일설교 요약 2022. 6. 29. 07:02
2022년 6월 26일
사도행전 24장 27절~25장 11절
성령의 호의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사람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의 자서전에서 이런 말을 남겼어요. 내게 호의를 베푼 사람이 내가 호의를 베푼 사람보다 나중에 나를 도울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내가 도와준 사람이 나를 도울 가능성이 커야 하는데 거꾸로 한번 호의를 베푼 사람이 또 베풀기 쉽다는 것이에요. 이것을 밴 프랭클린 효과라고 하는데요. 심리학자들이 여러 차례 실험을 했는데 실제로 그런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호의 한번 잘 못 베풀었다가 호구가 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드나요? ‘역시 나한테 잘해준 사람과 더 잘 지내는 것이 답이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시나요? 그것 자체가 다 이기적인 자기 생각으로 결정하는 거죠. 이렇게 호의를 받으면 받을수록 좋은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갚아야 할 빚이 되기도 합니다. 본성이 이기적인 사람들이 호의를 두고서도 보이지 않는 경쟁을 치열하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모습이죠. 인간적인 정이나 계산으로 호의를 베풀거나 받으려고 해서는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성령의 호의는 베풀기도 하고, 거절도 해야 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호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어요.
성령의 호의는 첫째로 ‘죽이는 호의를 분별해야 합니다’. 24장 27절부터 읽을게요.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 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 새’ 벨릭스가 바울에 대한 판결을 미루고 헤룻 궁에 구류한 이유는 오늘 이렇게 마음을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함이라고 해요. 여기서 ‘마음을 얻고자 하여’를 원어로 보면 카리스에요. 이것이 호의를 베풀고자하는 것인데요. 카리스가 하나님께 쓰이면 은혜가 되고, 사람에게 쓰의면 호의가 됩니다. 이게 참 분별하기 어려운거에요. 우리가 호의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호의가 너무 은혜 같아요. 나한테 잘 해주면 너무 은혜에요 이러잖아요. 벨릭스는 왜 호의를 베풀기 원했을까요? 벨릭스는 갇힌 바울에게 사람 만날 자유를 주고는 돈 받을 일을 기대했죠. 그리고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는 마음을 얻고 싶었어요. 내가 가둬놨으니까. 마음을 얻고 싶었어요. 나는 양쪽에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을 했을 거에요. 그래서 이 호의라는 단어가 네번 나와요. 원어로 똑같은 단어가 나와요. 네번을 좀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벨릭스는 결국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했지만 결국 유혈폭동이 일어나고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죽인 것이 알려져서 로마로 소환을 당했고, 불법을 행한 것도 다 드러난 후 사형언도를 받았죠. 마음을 얻고자 댓가를 탐하는 호의는 결국 자기를 죽이는 호의가 되는 거에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래서 시위대 총독 베스도가 부임을 하는데 이 사람은 벨릭스와는 다른 아주 성실하고 유능하고 행정가이고 정치가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이사랴에 부임한지 사흘만에 로마에서 거기로 오려면 얼마나 멀어요. 그런데 사흘만에 성실 감각이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초고속으로 인수인계를 끝내고 유대의 문화적 중심인 예루살렘을 방문했어요. 총독으로서 백성의 마음을 사려면 가장 중심지 예루살렘을 방문해야겠다 생각한 것 같은데 이 사람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같아요. 거기서 대제사장 및 높은 사람들과 면담을 하는거에요. 신임 총독으로서 큰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유대인 대제사장들이라고 복수로 표현되었는데요. 워낙 유대는 우리가 구약성경에 봐도 대제사장은 1명이어야 하고 죽으면 직계자손에게 계승되는 거룩한 직분인데요. 로마가 마음대로 돈 받고 매관매직을 하니까 2년 전만 해도 그 입을 치라 아나니야 대제사장 기억나죠? 그 사람이 이스마엘 대제사장으로 바뀌어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대제사장들인 거에요. 그리고 높은 사람은 산헤드린 공회를 말하니까 지금 입법 사법 종교가 똘똘 뭉쳐 어용이 되었고, 그들의 판결은 이미 공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죠. 그런 그들이 베스도를 만나자마자 한가지 청을 합니다. 3절입니다.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바울이 가이사랴로 오기전 40명의 암살단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매복해서 바울을 죽이기로 결단한 것 기억하시죠? 그러니까 벨릭스 총독이 떠났잖아요. 이제 처음 온 베스도 총독님은 무엇을 알겠어요. 이 사람은 훌륭하기까지 해요. 그러니까 이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주시기를 청합니다 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이제 바울은 죄가 없으니까 재판으로 죽일 수는 없어요. 길에서 매복해서 죽이겠다고 계속 2년 전에 하던 짓을 그대로 하는 거에요. 지금 총독이 바뀌었잖아요. 그리고 대제사장도 바뀌었잖아요. 환경이 다 바꼈어요. 그런데 뭐가 안 바꼈죠? 그들의 마음이 하나도 안 바뀌었어요. 2년전과 똑같아요. 그 대단한 대제사장들과 높으신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2년의 세월동안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제사를, 예배를 드렸겠죠. 예배 전문가인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때문에 날마다 회의를 하겠죠. 그런데 만장일치로 그 전문성으로 바울을 매복해서 죽이고자 하는 거에요. 세상이 변하고 환경이 변했는데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내가 하는 짓은 오늘 이렇게 살인이에요. 학벌과 모든 것을 가지고 살인을 생각하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너무 안변하니까 나를 변하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는 환경, 변하지 않는 남편, 변하지 않는 자녀, 변하지 않는 모든 환경을 우리에게 주는 것은 그 변하지 않는 식구들을 두신 것이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내가 변하지 않고 있는데 호의가 베풀어지면 변하지 않은 내가 하는 것은 살인일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유대인 지도자들이 머리가 너무 좋아서 밴플랭클린 효과를 알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미 인간의 호의라는 것은 한번 베푸는 사람이 계속 베푼다고 했잖아요. 호의를 베풀면서 찾아오고, 자기 도취에 빠져 있는 베스도에게 호의를 구하는 거죠. 이왕 그러시는데..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주면 어떨까요. 매복해서 죽이려는 것이 있잖아요. 내가 변하지 않고 사람의 호의를 받게 되면 사람 죽이는 호의가 되는 거에요. 이게 뭔가 하면요. 남편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다가 남편이 딱 돌아오면 교회를 떠나고 여행 다니면서 흘러 떠내려 가는 거에요. 물질이 없어서 물질이 생기면 중독에 빠져서 예배와 공동체를 떠나요. 그러니까 이것이 바로 물질이 바로 안생겼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결국 죽이는 호의가 되는 거에요. 돈을 좀 잘 못벌던 남편이 갑지가 큰 돈이 생기니까 그냥 남편의 호의로 풍족한 생활을 하는 거에요. 돈이 없어도 있는 것처럼,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사실 구원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풍족하게 누리다가 돈으로 자녀를 유학을 보냈는데 그곳에서 왕따를 당하고 힘들어지니까 다시 한국에 왔는데 적응을 못하고 대인기피와 공황, 불안이 온거에요. 그리고 자신을 버려둔 부모를 평생 원망하며 독이 섞인 말을 부모에게 뱉고 심지어 부모에게 폭력도 행하면서 부모와 연을 끊고 살았다는 거에요. 돈이 있던 것도 자기 탓이 아니라 생긴 것 가지고 자식 위해서 이것 저것 해보려고 했는데 남편의 호의가, 이런 부모의 호의가 자녀를 사랑한다고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의 사랑이 하나님이 없으니까 결국 죽이는 호의가 된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렸을때 부터 말씀을 넣어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선한 것이 없어서 내 돈 생기면 내 자식한테 쓰고 이것 밖에 모르잖아요. 이것이 죽이는 호의가 된다는 거죠. 이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베스도의 호의를 얻었다면,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바울을 보냈다면 바울은 죽었을 것 아니에요. 매복한 그 사람들한테요. 그러니까 이것이 죽이는 호의 맞죠. 결국 사람에게 구하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사람의 평판과 인정을 받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고, 결국은 그 호의로 내가 죽는 거에요.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거에요. 하나님께 구할 때 똑같이 구함이지만 이 호의가 은혜, 카리스로 변한다고 했잖아요. 구원은 항상 하나님이어야 해요. 그러니까 예배를 통해서 날마다 내 환경을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수같은 나의 유익에 반하는 저 바울을 죽여달라고, 회사에서도 나의 유익에 반하는 상사를 죽여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호의인 은혜를 구하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큐티와 목장은 어디서든 답이에요. 보세요 여러분. 지도자가 문제가 아니에요. 지도자가 잔인한 벨릭스에서 훌륭한 베스도로 바뀌었는데 내가 안 변하니까 여전히 미워하고 원망하고 죽이는 것 밖에 안 하잖아요. 지도자가 문제가 아니에요. 가난한 친정아버지 밑에서 부자 남편으로 환경이 바뀌었는데 내가 안 변하니까 이 피해의식으로 나는 가난하게 살았는데 우리 남편은 부자로 살아서 나 가난할 때 넌 뭐했냐. 너는 누리고 살았잖아라며 부자 남편을 증오하거나 아니면 시댁에서 맨날 무시를 받으면 가난한 아버지를 또 무시하는거에요. 내가 가난하게 살아서 이런 것을 당한다고.. 내가 안 변하면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미워하고 상처 묵상하고 죽이고자 하고 교만하고 이것 밖에 안되는 거에요. 그러므로 아이들을 신결혼 시켜야 하고, 믿음으로 어렸을 때부터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지 않으면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하는일은 원망 교만 미워함, 죽이고자 하는거에요. 유대인 대제사장들처럼요. 높은 산헤드린 공회원의 인생의 목표는 바울 죽이는 거에요. 바울은 어디가 잘못되었어요? 자잘못이 상관이 없어요. 나한테 나쁘면 죽여야 하는거에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죽이고자 하는데 우리는 죽이고자 하는 생각이 없겠습니까? 살인 의지가 활활 불타고 있죠. 바람 한번 피면 다 죽여야 하고.. 그런데 4절 5절에 왠일입니까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베스도는 바울을 옮겨달라는 요청을 듣고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기가 곧 예루살렘을 떠나 가이사랴로 갈 건데 여기 왜 바울을 데리고 오냐. 그러면 군사까지 다 동원해서 100킬로미터 넘는 거리를 데리고 와야 하니까 성실한 사람은 안 맞는 거에요. 바울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너희들도 나와 같이 내려가서 그 사람이 좋지 못한 일이 있으면 고발하라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거절을 했죠. 예루살렘으로 데려갈 것을 말예요. 이 베스도의 거절은 바울을 지켜준 것 뿐 아니라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도 살인이라는 죄에서 지켜준 거에요. 때로는 나의 호의라 생각한 것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영육을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때론 거절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 될 수 있는 거에요. 그래서 성령의 호의에는 거절의 복이 크게 작용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 집안 식구들이 하는데 다 도와야하지 않냐며 뭐가 투자하는데 온 집안 식구가 돈을 돕고 그러는데 목장에서 물어보잖아요. 절대로 그거 하시면 안된다고. 그래서 이 분만 안했어요. 그런데 도와준 사람들 다 물려서 집도 팔고 다 망했는데 이분만 딱 살아남았어요. 우리들교회 500원.. 돈 번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요. 내가 이런 이야기를 안해서 그렇지.. 내가 이런 이야기를 안해요. 이럴때만 해요. 그러니까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 뭔가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늘 축복을 하세요. 그러니까 어떤 집사님이 불륜을 행하다가 불륜남이 집사님이 교회를 오게 되었다고요. 그런데 와서 듣다 보니까 불륜을 끊어 낼 수 있었는데 가끔 연락을 해서 이 남자를 구원해야 되지 않겠는가. 교회에 오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민을 한 거에요. 이러한 호의가 그 사람도 나도 죽이는 거에요. 아셨어요? 헷갈리시는데 복음은 그렇게 값싼 싸구려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케이스 다 다르겠지만은 그 남자의 불쌍한 영혼을 위해서 은혜를 구해야 하는 거지 호의로 해 줄 수 있는 것은 각자 케이스가 다 다른거고, 이것을 목장에서 물어봐야 하는 거에요. 그때마다 잘 모르면 목장에서 잘 물어보시기 바래요.
[적용질문]
나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입니까? 받는 사람입니까?
거절해서 살린 경험이 있습니까? 지금 내가 거절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수없이 예배를 드려도 유대인들처럼 변하지 않는 내 미움, 교만, 상처는 무엇입니까?
성령의 호의 두 번째는 ‘차별하지 않습니다’ 6절부터 9절까지에요.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자기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베스다고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유대인들의 호의에 응답이라도 하듯 베스도는 가이사랴에 도착한 다음 날 바로 바울의 재판을 엽니다. 역시 성실합니다. 이렇게 서로 호의를 주고 받으며 뭔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여기 9절에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이것이 세 번째 호의에요. 이게 카리스죠.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거에요. 베스도의 호의는 이미 바울이 아니라 유대 유력자들을 향하고 있어요. 바울에게는 아직 호의를 베푼 적이 없어요. 그런데 유대 유력자들에게는 이미 찾아가는 호의,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호의, 그들과 8일 이상 머물면서 교제한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에 이제 다시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호의를 베푸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 되었어요. 이것이 바로 벤 프랭클린 효과에요. 한 번 내가 들어주기 시작하면 한번 투자하기 시작하면 계속 해야 되는 거에요. 거기서 결판을 봐야 되기까요.
그런데 우리가 목장에 오면 지금 빨리 끊으세요. 손해 봐도 여기서 끊으세요. 그래서 우리 목장이 아주 절대로 집을 안 사는데 주식을 이만큼 해 놓고 몇년 전에 집사라고 아줌마들이 얘기했죠? 들고 일어났지요. 그래서 집을 샀는데 주식이 그냥 팍 떨어져서 다시 계약금 물리자고 해서 계약금이 뭐고 무조건 집사라고 이랬더니 그 다음에 보니까 주식이 똥 값이 되고 더 내려간거에요. 그래서 거긴 집을 건졌더라 뭐 이런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그 아줌마들이 뭘 안다고 나한테 그런건지 지금까지 그런다는 거에요. 목장은 훌륭해요. 사실, 이것이 성경에 다 나와 있는 거에요. 호의가 오늘 네번째 나오잖아요. 인간의 호의도 참 무서운 거에요. 사실 로마 총독이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될 대상은 로마 시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초라한 로마 식민 죄수 한명 보다는 자신이 통치하는 유대 사회를 좌우할 힘이 있는 이 유력자들 여러 명이 훨씬 더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되는 거겠죠. 그러니까 공정해야 할 재판정에서도 차별을 하면서 유대 유력자들 편을 드는 거에요. 지도자들이 다 이래요. 인간적인 호의는 이렇게 차별적이에요. 그리고 선택적 호의예요. 어떤 기준을 가지고 도덕적 판단으로 호의를 가지는 게 아니고요, 어떤 이유에서든 네 편, 내 편이 확실해요.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이런 차별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아요. 그리고 힘이 있으니까 더 차별을 확실히 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성실한 베스도도 결국 내 편 따지는 것은 잔인한 벨릭스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네요. 혈연, 지연, 학연 여기서 자유로울 사람이 진짜 하나도 없어요.
[적용질문]
대놓고 차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은근히 차별하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대놓고 차별하는 사람 벨릭스, 은근히 차별하는 사람 베스도. 훌륭한 사람도 차별을 하고 잔인한 사람도 차별을 하고 예수 믿어야되요.
요즘 누구의 마음을 사고 싶습니까?
서울 학생 인권조례 제5조는 교육 영역에서 차별금지법이에요. 이게 통과되면 유치원에서부터 동성애에 대한 교육을 받고요. 스스로 성별 정체성을 선택하는 젠더에 대한 교육을 받아요. 청소년들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교육을 하는데 학생도 임신할 수 있다는 것을 차별받지 않을 권리로 인정하는 거에요. 이것은 결국 청소년들의 성관계, 임신, 출산을 조장하게 되는데요. 결정적인 것은 동성애나 바른 성 가치관에 대한 윤리적 비판도 금지되어 표현의 자유가 박탈당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임신 권리, 낙태 권리 그냥 갖다 붙이면 안되는 것이 없어요. 여러분, 차별을 금지한다니까 듣기에 너무 좋지 않아요? 이 좋은 이름을 만들어 놓으니까 대부분의 국민들은 ‘왜 차별을 금지 한다니까 좋지 않아?’ 이러는 거에요. 이런 차별금지법에 이런 독소 조항이 곳곳에 인권이라는 미명으로 조여오고 있는 거에요. 인간이 100% 죄인인데 죄인이 하고자 하는 것을 다 인정해주는 것이 차별 금지가 아니에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면 이게 망치는 지름길이잖아요. 그런데 기절초풍할 일이 일어났어요. 24일 미국의 연방 대법원이 임신 6개월 이전까지 여성의 낙태를 인정한 로데 웨이드 낙태권 인정 판결을 49년 만에 공식 폐기했습니다. 이번 판결이 동성혼과 피임 등과 관련한 기존 대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 보호법,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우리 기도가 과연 응답이 될 것인가. 우리 기도 너무 위력적입니다. 손 구름이 보이는 것 같아요. 미국도 이거 보수, 진보로 갈려서 6대 3으로 이렇게 폐기가 되었으니까 정치인들이 이 중요한 법을 결정하는 거예요. 지금도 바이든은 너무 슬퍼한다잖아요. 이것이 통과되었다고요. 그러니까 이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하잖아요. 우리나라도 9명 중에서 지금 3명이 반대하고 6명이 찬성했잖아요. 이것을 정치 논리로 이용하면 나라 망하는 거예요. 어제는 6.25 72주년이에요. 나라가 없으면 예배도 못 드리는 거예요. ‘상기하자!! 6.25!!’ 아셨습니까? 그런데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우리가 개혁을 하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기도하다보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고 헌법에 그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거에요.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면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이런 법을 제정하면 안된다고, 그런데도 잘 살아지니까 이런 법이 제정되었다가 아니라는 사람도 있잖아요. 우리는 늘 미국 따라하니까 이것도 미국 따라 했으면 좋겠습니다. .
성령의 호의 세 번째는 ‘둘러서서 고발해도 사과합니다’ 다시 7절로 가봅시다.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그 대단한 사람들이 죄인의 모습으로 나온 바울을 쫘악 둘러서서 이 사람들은 베스도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소동 문제, 이단 문제, 성전 더럽힌 문제 그 부르다가 죽을 그 문제로 또 고발을 했어요. 그런데 끝에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로 했어요. 여기서 ‘능히’라는 원어의 뜻이 ‘능력이 있다’, ‘강하다’, ‘큰 힘이 있다’. 이런 뜻이에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모든 것이 나를 둘러싸도 나를 해할 능력이 없다는 거에요. 우린 이것을 알아야 해요. 눈앞에 천만인이 힘든 나를 둘러싸고 진 칠지라도 그것들이 나를, 내 영혼을 해할 힘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문자적으로도 바울의 모든 사건은 당장 베스도에게 그리고 가이사에게만 그 결정권이 있잖아요. 왜냐하면 바울은 로마시민이기 때문이죠. 시민인데도 그 권을 안 썼잖아요. 지금까지요. 마찬가지로 주변에서 보기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건이, 환경이 너무 중대해 보일 수가 있죠. 갑자기 찾아온 실직이나, 암이나 이혼, 가출 등이요. 너무 중대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크지 않아요. 실제로 나를 해할 어떤 증거도 가지지 못해요. 능력이 없어요. 지금 뭐 식구들하고 불화가 일어났어요? 실직 문제가 아니에요. 이것을 알아야 하는 거에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8절 보십시다.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바울은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해요. 이 8절의 변명은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아폴로게오마이’ 사과 기억나시죠? 그러니까 막 변명하고 변호하면서 내가 잘났다고 논리적으로 치열하게 나는 죄가 없다가 아니라 한결같이 사과에서 시작하는 낮은 자세로 늘 사과하는 것을 말해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그저 있는대로 말하는 것인데 그것이 하루 아침에 그저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둘러서서 둘러싸인 목장에서 늘 있는 그대로 말하는 연습이 된 사람들은 아무리 나를 죽이려하는 고위직들이 나를 둘러싸고 진쳐도 내 죄인가요? 라는 심정으로, 사과하는 심정으로 말하는 거에요. 똑같은 이야기를 바울도 하기 얼마나 지겹겠어요. ‘오해하게 해서 미안해요. 내 뜻은 그게 아니었는데 그런데 사실은요 제가 죄를 범하지 않았어요.’ 직장이나 뭐나 그렇게 옳고 그름을 따져서가 아니라 태도 때문에 안되는 거에요. 이렇게 이야기하시라고요. 이게 목장에서 내공이 쌓여야 되요. 평소에 공동체에 둘러싸여 여러분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사건이 올 때 빛이 딱 나는 거죠. 회사에 다 회의할 때 화가 나서 망치는 거에요. 늘 그럴때 제가 오해를 하게 했군요. 조금 지나서 그래서 다 여러분들이 승승장구하는 거에요. 우리들교회 성도들이요. 승승장구 못하는 사람들은 분노장애 때문에 안되는 거에요. 학벌이 좋으면 뭐해요. 분노조절때문에 안되고 소통이 안되는데요.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별일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목장에서 들었던 사람, 목장에서 부부끼리 겁나게 싸우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늘 듣다가 자기 회사가면 별일 아니구나. 그렇게 싸우던데..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는 것. 목장에서 부부간에 싸운다고 우리가 놀라지 않아요. 싸우나 다음주에 또 오시나 이래요. 이것이 여러분들한테 얼마나 피가되고 살이 되는 공부인지 아세요? 어디서 그것을 보겠습니까?
어떤 집사님이 결혼 전 남편이 다른 여자하고 카톡을 하고 대화한 내용을 결혼 후 봤다는 거에요. 이 사건이 너무 커보이는 거에요. 이 사건에 온전히 둘러싸여 일상을 잃어버리고 입맛도 없어지고, 심지어 이혼까지 결심한 거는 이 남편이 정말 신실한 교회 오빠였기 때문이에요. 너무 커 보여서 이런 것 가지고 세상은 이혼을 해요. 이혼 전에 가볼 때가 있죠. 그래서 우리들 교회 목장에 인도되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그냥 조금 나눴더니 다들 카톡 정도 가지고 왠 일이냐 이러면서 어떤 목사는 여자를 셋 이나 만나던데, 그리고 실바람, 샛바람, 광풍 목장도 있다더라 뭐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들으니까. 아 내가 아무것도 아니고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내가 죄인이구나를 깨닫게 되고, 내 남편이 오늘 바울처럼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내 남편이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구나. 결혼 전이잖아요. 이것을 깨닫게 되는 거죠.
[적용질문]
나를 둘러서서 고발하는 중대한 일들은 무엇입니까? 사과합니까? 맞대응합니까?
평소에 목장에서의 둘러싸임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된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목장을 우습게 여기시면 큰 코를 다치시는 거에요. 여러분들은 제 이야기를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거에요. 교만해서 목장을 안가는 거에요. 내가 학벌로 다 이길 것 같아요? 내 실력으로 이길것 같아요? 여기 변호사 뭐 다 붙었는데 바울을 못 이겼어요. 대제사자들, 유대인들 다 들러 붙었는데 바울을 못 이겼어요.
성령의 호의 네 번째는 ‘아무도 나를 내줄 수 없는 특권이기 때문이에요’ 10절이에요.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예루살렘에 가서 심문을 받겠냐는 베스도의 호의가 잔뜩 어린 이 질문에 바울은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신문을 받아도 가이사가 있는 로마에서 받아야 한다고 해요. 원어를 보면 바울은 지금 자신이 2년째 가이사의 재판 자리에 앉아 있음을 강조하는 거예요. 가이사의 재판을 12절까지 지금 세번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바울은 이 사건의 시작부터 자신의 목적지가 로마임을 생각하고 있어요. 이미 성령께서 에베소를 떠나기 전부터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19장 21절에 알고 있죠? 로마가 자기의 최종목적지라는 것을 알아요. 이렇게 성령의 경영에 따른 목적지를 분명히 알았는데 방법을 모르겠는 거예요. 어떻게 로마로 가야 하는지를요. 저도 매일 가정중수 말씀 묵상 목적지를 알지만 방법을 늘 몰라요. 방법은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 뭔가. 이것이 방법이에요. 11절에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여기서 ‘내줄 수 없다’에 내주다가 호의에요. 카리스에요. 네 번째 호의가 나왔죠. 하나님께서 나를 내어줄 수 없는 이 상황, 다시 말해 묶여 있는 환경, 갇혀 있는 이 환경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죄인으로 갇혀 있어요. 가장 상급 기관인 황제 가이사 앞에 가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바울을 건드릴 수가 없어요. 그런데 감옥에 갇혀서 2년을 지내면서 생각을 해보니까 바울을 죽이려고 온 힘을 다하는 대제사장, 산헤드린 공회원들, 그를 죽이려고 결심한 40명의 자객들이 2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바울은 이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했겠죠. 그래서 갇혀 있는데 2년 후에 나와보니까 그들이 하나도 안 변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전에 풀려났으면 내가 풀려나서 자연인이 되었으면 100% 내가 죽었겠구나를 알게 되는 거죠.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만 그때는 풀려나면 안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죠. 내가 갇혀 있는 것이 은혜인거죠. 하나님께서 내어 줄 수 없는 내 환경이 성령의 호의에요. 다시말해 묶여 있는 환경 갇혀 있는 환경이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라는 것이 하나님은 100% 옳으시기 때문이에요. 큐티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100% 옳으시기 때문이에요.
어떤 목장에서 ‘성령의 자유가 준다면 자유가 주어진다면 뭘 하고 싶냐?’ 그랬더니 거의 다 ‘여행 간다’를 이야기 했어요. 그런데 한 목장에서는 어떤 집사님이 ‘난 남편과 함께 여행을 간다’라고 했더니 다들 ‘남편과 함께요?’ 그러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듣는 남편 집사도 너무 싫어하더래요. 그러니까 보세요. 당장 여행이 아니라 집 밖 카페도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학교 다녀오면 첫째 밥 먹이고 학원 보내고 둘째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야 하고 셋째는 내 등에 늘 업혀 있기 때문에 지금 묶여 있잖아요. 아무도 그 집사님을 문자적으로도 내어줄 수가 없는 거예요. 시간 없고 돈 없고 몸 아프고 이 묶여 있는 환경들이 많아요. 그런데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어줄 수 없는 이 환경은 나를 지금 가이사에게로 이끄는, 바울이 갇혀있었잖아요. 황제에게로 인도하는 성령의 호의, 하나님의 용서이며 은혜라는 거에요. 카리스에는 자비, 용서, 은혜 뜻이 다 있어요. 제가 용서를 생각했어요. 카리스는 용서라는 뜻이 있어요. 이 세상의 호의는 무서운 거에요. 결혼도 직장도 공짜의 호의는 없어요. 이 세상에 공짜는 하나도 없어요. 다들 이해타산을 무섭게 숨겨두고 발톱을 감추고 호의를 베풀어요. 그러니까 다 빼앗기는 거에요. 한 사람도 이해 타산 없이 덤비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믿음이 없는 사람의 말은 믿으면 안되요. 사람은 착하지 않아요. 100% 죄인이에요.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호의, 하나님의 은혜는 빼앗길 수 없어요. 우리 청년들이 아무도 이혼을 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은혜, 청년들이 잘난 것이 뭐가 있어요. 은혜가 있는거죠. 우리는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이기 때문에 사단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우리의 영혼을 요구합니다. 그때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바울이 오늘 내가 죽을죄를 지었으면 내가 죽겠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내 아들이 십자가에 대신 죽었으니까 어느 누구에게도 너를 내어줄 수 없다고 대답하시겠죠. 이것이 성령의 호의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돈이 아무리 많은 부자가 바울을 정말 자유롭게 해준다고 한들 그렇게 배를 빌려서 로마까지 갈 수 있어요? 어림도 없어요. 유대인들이 다 죽이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최고의 군사를 붙여서 삼엄하게 경비를 세워서 이 바울을 로마까지 가게 할 수 있는 건 이땅에서 로마 황제밖에 없는 거에요. 그 길을 지금 인도하니까 최고의 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것이고 이제 그 말을 할 때를 아는 것이에요. 그 말을 할 수 있도록 로마 시민권이 있었고, 그것을 쓰는 거죠. 그때는 네로가 선정을 할 때였다고 하더라고요. 저 또한 갇혀 있던 13년이 성령의 호의였지요. 저야말로 자유를 주었더라면 아주 100% 이혼하고 자유 부인의 삶을 살았을 거예요. 그러나 갇혀 있었던 것이 죄인이에요? 이게 성령의 호위였고 갇혀 있었던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용서였는지 몰라요. 은혜였습니다. 저를 용서하시기 위해 그 시간이 필요 했어요. 인간의 악한 호의로 인해 여러분들이 당한 것이 많아요. 속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호의인 은혜를 사모하게 된 줄 믿습니다. 인간의 호의도 그렇게 쓰입니다. 오늘 서로 인간들이 그냥 계산하면서 네번이나 호의가 나왔는데 이 호의로 성령의 호의, 은혜로 용서 받고 용서하면서 그렇게 성령의 호의로 나가게 된 줄 믿습니다. 나를 갇히게 한 것이 얼마나 사단에게 내어주시지 않은 성령의 호의고 이것이 하나님의 용서이고 은혜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의 갇힌 것이 하나님의 용서에요. 그래서 이 자리에 와서 있는 거에요. 내가 뭐가 잘나서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적용질문]
갇혀 있는 자리가 하나님의 가이사 황제보다 더 큰 주님에게로 인도되는 길인 것이 믿어지십니까? 여러분들의 지금 갇힘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용서고 호의인 것이 믿어지십니까?
가장 급할 때 쓸 수 있는 로마 시민권은 무엇이 있을까요.
제가 이제 다음 주 초에 워싱턴 중앙장로교에서 열리는 세계 선교사 대회와 또 이제 크라이스트 커뮤니티 교회에서 열리는 목회자 세미나를 섬기러 이제 워싱턴에 이제 1차적으로 갑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어젯밤 한 목사님이 편지를 보내셨어요. 먼 길 오셔서 감사합니다. 구속사를 위해 목회자와 가정을 살리는 이 놀라운 워싱턴 목세 사역에 저와 아내가 쓰임 받게 될 줄은 저의 아내 말대로 너무 놀랍지 않아요. 목사님의 말투까지 닮아가는데요. 여기 워싱턴에 또 진실이가 있네요.저는 목사님과 이분이 목사님이에요. 그런데 목사님과 우리들 교회에 딱 붙은 딱풀 성도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아내도 오직 그것만이 살 길이라면서 머나먼 이곳이지만 휘문 성전이나 판교 성전 옆에 사시는 성도님들보다 더 사랑하고 사모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일 진실 양의 소원이 자기와 똑같은 내용이어서 우리 아내가 너무 놀랍고 하염없이 울며 요리를 했다 했습니다. 요리 마치기까지 QTM의 나를 살린 그때 그 말씀을 두 편이나 더 듣고 예배를 드렸어요. 이민 생활과 사역자와의 결혼 또 4년 만에 낳은 세 자녀 그중 가운데 아들 아이는 자폐 아이로 가정과 교회 직장생활에 갇혀 지내기를 29년이 다 되었는데 드디어 작년 2021년 10월 유투브로 들은 베델교회 부흥회 말씀에 하늘이 열리고 말씀이 들리는 수지맞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서점에 있는 목사님의 책을 18권을 오도해서 듣고 읽고 큐티인으로 큐티하며 그리고 이제 당장 목회자 띵크 목욕탕 세미나를 수료하며 회개의 역사로 특별히 아내가 매사에 살아나고 아내대신 말씀을 먼저 깨달으시고 그 때문에 죽도록 수고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의 큰 절을 드려도 부족하다고 아내가 외칩니다. 저 또한 매일매일 말씀을 묵상해도 내적치유, 감정치유, 인지치유를 한다고 해도 그렇게 말을 그렇게 치유를 한다고 말을 해도 바꿔지지 않는 그 이유를 발견했어요. 그것은 죄에 대한 회개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제 목사님의 말씀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이렇게 적나라하게 고백하면서 그 죄의 문제에 직면하고 그 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해결 받은 바를 나누는 역사가 있었음을 깨달으신 것인데요. 그 말씀을 듣고 저 자신도 어렸을 때 겪었던 제 아픔을 솔직하게 성도들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죄를 자백하니 성도들도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목회자 성경 연구 워싱턴 사지역 성경 연구 모임이 있던 날이었는데요. 모임 후에 목사님의 목세 포스터를 모두 보셨는지 확인했는데 목사님들이 모두 등록하시는 깊은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힘입어 힘 닿는대로 워싱턴목세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최하시는 교회 위치가 아침과 오후의 교통 체증이 최고인 곳입니다. 2시간 30분 막 이렇게 걸리는 곳에 메릴랜드 교회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정은 세미나를 호텔에서 2박 3일 숙박하며 듣기로 이렇게 했다고 하니까 등록하신 목사님과 사모님들도 다들 함께 숙박하며 수련회처럼 하겠다고 하십니다.
저도 모르는 목사님 내외가 어저께 주신 편지예요. 이거 너무 성령의 호의 아니에요. 이렇게 워싱턴 크라이스트 커뮤니티 교회에서 7월 5일에서 7일까지 띵크 목회자 세미나가 있고요. 7월 25일에서 27일에는 동부의 랄리 한인 장로교회에서 목회자 세미나가 열립니다. 그리고 이제 8월 1일에서 3일까지는 서부에 우리 그 베델교회에서 또 목회자 세미나가 이렇게 열려요. 세 번 열리고 그 외에도 여러 교회 집회도 제가 한 5곳쯤 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관심 있는 사역자 또 평신도 사역자들 많이 많이 모여주세요. 그리고 흩어져 있는 우리들교회 성도님들도 목세에 참여할 기회를 드리겠어요. 왜냐하면 다들 평신도 사역자들이니까요. 미국은 우리와는 조금 이제 다르게 그렇게 이제 관심 있는 사역자들의 동참을 원해요. 미국에서 지금 처음하는 띵크 목회자 세미나라 누가 알고 오실까 지금 염려가 참 많이 돼요. 그래서 많이 많이 알려주시라고 제가 이제 이번 주일에 먼저 광고를 좀 해야 되겠다고 그리고 특별히 정말 이 담임 목사님이 오시면 누구나 다 다 와도 돼요. 많이 데리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목회자 한 분이 변하면 교회가 변합니다. 여러분들 기도 너무 너무 많이 많이 해주세요. 알려주세요. 그리고 이 목사님이 기도 제목을 낸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 작은 교회 목사님들인데 글쎄 그 숙박도 다 자기네들이 해야 되는데 다 거기 이제 인근 지역에서 오시는데 멀다고 호텔을 정하신다는 거예요. 이게 호텔 잘 정하고 이동이 안전하고 저녁 식사 잘 이루어지게 저보고 기도를 해달라는.. ^^ 2박 3일을 성령님 부어주옵소서. 등록이 더 이루어지고 목세 그날 그 자리에 한 목회자들도 리더들도 빠짐없이 불러주시며 마른 뼈가 살아나는 쓰나미의 회개의 역사가 목세가운데 넘치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누가 목회에 성공했냐에 세상 가치관에 좀 먹혀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 이곳 워싱턴 지역 목회자들을 살려주시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저 같이 기도했네요. 구속사로 인생과 가정과 목회를 해석하고 살아내게 함께해 주신 하나님께 김양재 목사님과 우리들 교회 공동체에 사랑과 감사를 전합니다. 큐티인을 번역해 주신 얼바인 베델교회의 구속사를 더욱 창대케 해주시옵소서. 골고루 골고루 다 감사를 전하고 여러분 이분이 그냥 말씀 듣고 큐티인 하나 하면서 목회가 지금 이렇게 달라지고 이 사모함이 막 대단하죠? 지난 주일에는 성도로서 진실이가 은혜를 끼치시더니 이번에는 이렇게 정말 제가 이 교회가 작은지 큰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은 이게 얼마나 성령의 호의로 저를 격려하는 일입니까? 여러분 저 없다고 화내지 마시고 정말 이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엄청난 역사를 위해서 여러분들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저희를 통해서 등록이 확인이 되신 목회자와 권사님들 명단입니다. 이러면서 이렇게 이게 몇 명이야? 아직 한 15번째 이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셨죠? 제가 가도 막는 데도 있는데 그래서 저 가기 전에 굉장히 하나님께서 제가 너무 눌려 있으니까 이거 누가 오겠나.. 제가 처음 가는데 누가 오겠나 했더니 이렇게 격려를 해주신다고 생각을 하고 이 교회가 이제 또 와서 이제 한 번 더 설교할 날이 가까워 올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막 자발적으로 이렇게 섬기시는 거예요. 지금 그 목회자 세미나를.. 여러분들도 섬기실 거죠?
말씀맺습니다. 성령의 호의는 그래서 죽이는 호의를 분별해야 합니다.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둘러서서 고발해도 사과를 해야 합니다. 아무도 내줄 수 없는 특권이에요. 인간의 호의에 여러분 속으시면 안 돼요. 인간의 호의는 예수 안 믿는 사람의 호의는 정말 100번 1000번 의심을 항상 하셔야 되는 거예요. 공짜가 없어요. 이 세상에는.. 반드시 나한테 원하는 게 있어요. 그거를 찾아보셔야지 사업이고 뭐고 다 실패하지 않는 거예요. 그냥 잘해주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길을 하나님의 은혜인 걸 알지만은 우리는 이제 주의 길을 가야 되는 거예요. 어떤 환경에서도 주의 길을 가리라! 찬양하고 기도할게요.'주일설교 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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