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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삼서 1장 9절~15절 -선한 것을 본 받으라수요예배 요약 2022. 5. 24. 06:53
본문: 요한삼서 1장 9절~15절
제목: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설교자: 한경숙 초원지기
지난 토요일 새벽예배 인도가 끝난 후에 친구가 저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경숙아 너는 참 좋겠어. 어쩜 내일 죽어도 좋을 만큼 인생 정리를 잘했니’ 라고요. 이 문자를 받고 ‘아 그렇구나, 나는 힘들다고 하면서 새벽예배를 준비했지만 그 덕분에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나의 삶을 한번 돌아보게 되었구나. 그래서 감사한데 듣는 분들은 정말 지루할 수도 있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또 지루할 것 같은 말씀을 전하게 되었어요. 저의 찌질한 나눔이 어느 한분께 드리는 성령의 편지가 되게 하여 주시길 간구 드립니다. 매일 아침 담임목사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큐티노트로 시작하실 때 하시는 멘트를 본받아 시작해보겠습니다. 오늘 나눌 큐티인 말씀은 지난 4월 30일 본문입니다. 요한삼서 1장 9절에서 15절까지이며 제목은 선한 것을 본받으라 입니다.
4월 29일 시작된 요한삼서는 사도요한께서 주를 위해 헌신하고 힘쓰는 공동체 지도자인 가이오에게 보낸 편지로 그의 신실한 행함을 칭찬하고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나타내며 영육 간의 축복을 간구하셨다. 오늘 말씀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형제들을 잘 영접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리하지 않는 자들이 있음을 알고 그 당시 로마의 박해와 이단의 미혹으로 힘든 가운데서도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는 가이오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힘들어도 이제까지 해 온대로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권면하며 평강이 있기를 바란다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언급된다. 디오드레베와 데메드리오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이름에 어울리는 수식어가 떠오른다. 그 사람의 행위로 세월이 흐르면서 평판이 쌓이고 소개하는 형용사가 늘어간다. 오늘 디오드레베는 으뜸 되기를 좋아하며 하나님을 뵙지 못하여 악을 행하는 자이고, 데메드리오는 모두에게 선한 증거를 받으며 하나님께 속하여 선을 행하는 자라고 하신다. 여러분은 어떤 평가를 받고 싶으신지요. 참으로 변하기 힘든 저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에 이름이 오른 디오드레베와 같은 저를 데메드리오 같은 성도로 변화시켜 주시려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며 이끌어가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오늘 말씀으로 저의 삶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선한 것을 본 받으며 살아가려면,
첫째, 하나님께서 악한 행위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되겠습니다. (9~10절)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사도 요한이 이전에 어떤 지역교회에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그 교회에 있는 디오드레베가 서신전달자와 여러 지역을 돌아다녀 복음을 전하는 순회전도자를 맞아들이지 않고 악한 말로 비방하며 심지어 그들을 맞아들이려고 하는 교인들에게 그 일을 못하게 하며 교회에서 쫓아낸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순회전도자들은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않았기에 잘 영접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따듯하게 맞아들이고 섬기며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고 위로하며 격려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리하지 않은 디오드레베의 행위를 악행이라고 하신다. 9절에 보면 디오드레베가 이렇게 악행을 저지른 것은 으뜸 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전에 보면 으뜸은 첫째이고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디오드레베는 그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사도 요한의 편지를 가지고 온 형제와 순회전도자들을 맞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저는 문자 그대로 으뜸이 되어 본 적도 없고, 되고자 한 적도 없이 살아왔다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소극적이고 경쟁심과 승부욕도 없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긴장 관계가 되는 것을 힘들어했기에 늘 먼저 양보하고 배려하며 손해 보는 것이 편안했습니다. 엄격한 할머니와 아버지, 불평이나 생색없이 절대 순종하는 어머니, 네 살 위의 언니와 살며 제 속에 무슨 감정과 생각이 있는지 돌아보거나 표현하는 훈련이 안되었기에 어디서든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힘들었고 심지어 제 감정과 생각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이렇게 제 생각을 주장하며 관철시키는 삶을 살지 않으니 굉장히 겸손하고 배려하는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살아온 것이다. 남편이 저와 결혼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 제가 제 주장이 강하지 않고 조신하게 보여서라고 했다. 그리고 교회에 가겠다고 했을때 남편은 ‘아니 착해서 자기 것도 못찾아 먹는 사람이 이제 교회까지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며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겸손하고 착하게 산다는 제가 맞아들이지 않은 것이 있었다. 저는 1년에 열두번도 더 제사지내는 가정에서 자랐고 기독교 대학에 다녔지만 교회에는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저와 같은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시던 분이 계셨는데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저만 보면 주님을 전하려고 하셨지만 저는 다른 길로 피해다니곤 했다. 그분은 6.25전쟁 때 부산 피난지 고아원에서 근무하셨는데 치료약이 없어서 늘 간절히 기도하곤 하셨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많은 아이들을 놀랍게 치료해주셨다고 가끔 저에게 말하셨다. 저는 의학을 공부하신 분이 왜 저런 말도 안되는 말씀을 하시는가 하며 속으로 비웃고 무시했습니다. 제가 난소출혈로 개복수술을 했었는데 수시로 오셔서 기도해주셨고, 첫 아이 임신때는 폐렴 앓는 환자가 응급상황이 되어서 그 당시 담당 의사였던 제가 입으로 인공호흡을 해 주었는데 그것으로 인해 패혈증이 생겨서 죽을 지경이 되었었다. 겨우 회복하고 임신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지만 유지해서 출산할 때까지 이 간호사 선생님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셨고 후에 들으니 제가 인공호흡을 했던 그 아기의 엄마가 매일 제 병실 앞에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의 관심과 기도로 순산을 했는데 그저 제 아이에게 별일 없는 것만 다행으로 여겼다. 인간적인 감사는 있었지만 기도에 대해서는 감사도 감동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그분이 전하고자 하는 복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맞아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태어나게 해 주신 아들은 지금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초코파이 때문이라도 군에서 그것 먹으려고 교회 가다가 세례를 받고, 미국에 가서 잠시 교회에 갔었는데 불신결혼으로 교회를 떠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저의 욕심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그들의 구원을 위해 때를 따라 하게 하시는 손발이 가는 섬김을 하며 10년간 큐티 책과 목사님 책을 보내고 구속사의 말씀이 있는 교회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으뜸 되기 좋아하는 교만하고 이기적인 디오드레베는 자신을 교회의 지도자로 자처하며 서신 전달자와 순회전도자를 악한 말로 비방한다고 합니다. 악한 말은 하나님을 배척하는 말, 영적 지도자와 성도들을 비방하는 말, 사도권을 부정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나쁜 말로 헐뜯는 것이지요. 자신을 스스로 교회의 우두머리로 높이면서 사도 요한과 그의 권위를 훼손하는 교만함을 보이는 것이다. 교회는 세력을 장악하는 곳이 아니라 섬기는 곳인데 기득권을 유지하고 세력을 장악하려고 장로 요한과 공동체를 무시하며 따르지 않는다. 그것도 모자라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이들을 거부하고 그들을 영접하려던 교인들을 내어 쫓기까지 하며 복음의 전파를 방해한다. 이런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장로 요한은 잊지 않겠다고 하신다. 저의 윗동서는 대대로 믿는 집안인데 중매로 믿지 않는 저의 시아주버님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잘 나가시던 시아주버님이 일찍이 은퇴하셔서 집에서 술만 마시고 때로는 폭언과 폭력도 하시니 관계가 점점 나빠지고 동서는 몸과 마음이 많이 상해 그림치료와 상담을 받으며 지내다가 그 분야를 더 공부해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돕게 되었다. 한편 신학도 공부하여 목사님이 되었다. 이렇게 하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더 없어지고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목회도 하고 남편 덕에 목사가 되었다고 고마워하는 말도 했지만 시아주버님은 홀로 지내는 시간을 술로 지내며 건강이 점점 나빠져갔고, 관계는 회복되지 못한 채로 지냈다. 그리고 시어머님과 시집의 일에 무심한 동서의 모습에 아니 믿는 사람이 어떻게 저럴까 하는 저의 옳고 그름의 판단이 있었지만 교양이 제가 있으니 말은 못하고 속으로 늘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생각을 하는 남편에게는 때때로 제 생각을 말하며 지냈기에 동서의 목사 안수식에 남편은 ‘목사이전에 집에서나 잘하지’ 하며 가지 않았고 저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남편의 그 말에 침묵으로 동의하고 혼자 가서 인간적인 연민으로 축하의 자리에서 내내 눈물만 흘렸습니다. 저는 친정 아버지의 폐암 투병으로 하던 일을 내려놓고 전업주부로 지내고 있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나 성경 공부하고 교회에 나가고, 세례도 받고, 단기 의료선교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선교를 다녀오면 보았던 환자 중에 한국으로 초청해서 치료해 줄 대상을 교회에 보고하는 것이 있었다. 우선 순위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환자들이 제외되는 것들을 지켜보면서 교회에서 논의된 합당한 결정이라고 여기면서도 뒤에서는 저와 비슷한 의견이나 불만 있는 사람들과 쑥덕거리고 의료선교 자체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복음을 거부하고 다른 일을 정죄하며 쑥덕거리던 저의 언행들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30년 전에 외도했던 남편의 일을 드러내 주시며 찾아와주셨다. 이 당시 남편은 유명한 모 정치인을 수술해준 일로 연일 방송에 나왔다. 미국에서 살던 옛 외도녀가 옆에 있던 자기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과거 일을 말하니까 그 남자가 저희 남편에게 전화와 이메일로 수개월 동안 악한 일로 비방하며 과거의 일을 낱낱히 써서 자기에게 보내고 회개하고 그에 응하지 않으면 직장과 아내에게 다 알리겠다고 했답니다. 이에 응하지 않으니 실제로 수천명 일하는 직장에 악성 메일을 뿌려서 수치스러워 죽고 싶을 만큼 괴롭게 되었는데 세상 방법들을 동원해도 해결할 수 없어서 큰 고통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적용질문]
이것만은 내가 으뜸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있습니까? 그래서 무엇을, 누구를 받아들이지 못합니까? 가정, 일터, 교회에서 누군가를 비난하며 당을 짓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 결과 복음을 맞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둘째, 하나님께 속하여 선을 행하는 자, 증거를 받은 자를 본받아야 합니다. (11절~12절)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선은 무보수로 각지를 돌며 복음을 증거하거나 그렇게 하시는 순회전도자들을 맞이에 돕고 대접하는 것입니다. 데메드리오는 디오드레베에게 거절당한 순회전도자이거나 형제들을 맞이하려다가 쫓겨난 교인이었을 것입니다. 데메드리오는 스스로 으뜸이라고 주장하며 악을 행하는 디오드레베와는 달리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게 사역해 여러 교회와 뭇사람에게 그리고 말씀으로도 칭찬을 받으며 선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장로 요한은 데메드리오를 신실하고 진리 안에서 사랑을 행하는 종들의 모범으로 참된 복음의 일꾼으로 선을 행하는 자라고 증거하며 그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권면하십니다. 11절을 보면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라고 하신다. 우리가 다 큐티하면서 말씀 듣고 본 바대로 하나님께 속한 자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과 피를 지니고 이 땅에 오셨고, 나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임을 인정하고 시인하는 자라고 하셨다. 그래서 선을 행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의 고백이요 영광을 돌리는 것인데 우리 양심의 기준은 언제든지 나의 유익과 즐거움, 또 욕심에 따라 변해서 악을 행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된 성령의 양심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하나님께 속한자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는 선을 행하는 자가 된다고 하십니다.
저희 부부는 의과대학 선후배로 만나 수년간 교제하고 결혼했습니다. 남자라고는 아버지 밖에 몰랐던 저는 따듯하고 배려심 많은 남편이 좋았습니다. 음란의 연고로 혼전 임신을 하게 되었고 부모님과 세상의 눈이 두려워서 망설임 없이 낙태를 했습니다. 결혼 후 둘째를 낳고 나서 자궁내 장치로 피임을 하였는데 그 장치가 자궁 내에 남아 있는채로 임신이 되자 태아와 저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해서 주저하지 않고 또 낙태를 했습니다. 소아과 개업의로 바삐살며세 아이를 낳아 기르고 친정과 시집을 살펴야 했기에 늘 편두통과 감기, 십이지장궤양으로 고생했습니다. 남편을 저의 남편이지 아버지며 유일하게 말을 나눌 친구라고 의지했는데 남편이 대학에 있게 되자 새벽에 나갔다가 한밤중에 들어오는 이웃집 아저씨가 되어 모든 일을 저 혼자 처리하며 지내게 되니 늘 외롭고 우울했습니다. 남편도 저도 아이들도 다 마음 먹은대로 되어가니 남들은 다 부러워하는 환경이었지만 기쁨은 잠깐이고 허무해서 죽고 싶은 마음이 때때로 지냈습니다. 이렇게 지내는 중에 위에 말씀 드린 남편의 과거 외도가 드러난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의 삶을 돌아오며 남편의 배신과 그동안 열심히 만든 제 가정이 허물어질 헛것임에 허무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의사요, 박사, 교수며 원장이면 뭐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날 저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저의 혼전임신과 낙태의 죄를 즉시 생각나게 해 주시며 저의 음란과 살인죄에 대해서 남편의 음란으로 물으심이 깨닫게 되니 저의 죄를 돌아보며 너무나 두려워 통곡했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우리들교회의 광풍목장에 목자님 내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 만남에서 목자님은 저의 남편에게 아내를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착하다고 했더니 착한 것은 바보 아니면 악한 것이라고 하셨다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에게 말해주는데 무슨 말인지 이상하게 즉시 깨닫게 되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양보한 것이 실상은 긴장되고 불편한 관계를 견디지 못하고 빨리 편하고 싶은 저의 이기심에서 한 것이지 결코 상대를 위한 것도, 인간적인 사랑으로 한 것도 아니었음을 알았고, 제가 자존감이 낮아서 남에게 욕 안먹고 흉 안잡히고 살고자 주위 사람들에게 늘 신경 쓰며 사느라고 그래서 고단하고 힘들었구나. 그래서 기쁨이 없는 회색빛의 삶을 살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우리들교회 예배에 참석했는데 창세기 6장 인류의 죄악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내피림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이 바로 저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려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으뜸이 되는 인생을 살려면 인생의 목적이 분명하게 구원이 되어야 하고 세상 욕심을 내려놓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저와 남편 그리고 자녀들이 세상에서 큰 자, 으뜸이 되길 바라며 세상의 방법을 따라 부지런히 살아왔고, 그 결과로 그들도 저와 같은 열심을 내며 살아가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남편과 자녀들에게 문제를 해결해주고 편안 환경만을 위해 살았지 그들의 생각과 감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무정하고 무심한 아내요 엄마였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 미안하고 회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소통 없이 산 결과로 복음도 그들에게 전하기가 너무 어려움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예배와 목장을 통해 저의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이 하나님의 기준과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고 말씀을 적용이 없이 지식으로만 쌓아 온 심령이 더 돌같이 단단해진다고 하셨는데 성경을 보면서 은근히 무시하였던 바리새인보다 제가 더 완악한 바리새인임을 인정하게 되었고, 죄인 중의 괴수인 저를 대속하여 주신 예수님이 저의 그리스도라고 새로운 믿음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일어난 모든 일이 있어야 할 일이며 제 인생의 결론임을 알았고, 남편이 저와 우리가정의 구원을 위해 수고하며 고통 중에 있었기에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큐티 말씀인 사무엘 하 7장 14절~16절의 말씀 ‘네가 죄를 범하면 사람의 매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네 집과 네 나라가 영원히 보존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그 말씀으로 미국에서 우리를 힘들게 한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사용하신 인간 막대, 인생 채찍임을 알게 되고 오히려 그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고, 저와 우리 가정에 대한 구원의 언약으로 받게 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우리 가정에 복음을 들고 온 동서를 저의 의로움과 도리가 으뜸인 것 처럼 함부로 판단하며 정죄했고 그 악한 생각과 말을 남편에게 하므로 남편 또한 형수와 복음을 맞아들이지 못하게 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즉시 동서를 만나 저의 혼전임신과 낙태, 남편의 외도를 말하고 그동안 제가 동서에게 가지고 있던 악한 생각들과 동서의 가정과 교회에 무심해 아무런 섬김도 기도도 하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시어머님께서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천국 가신 것과 시집에 온 가장들이 교회에 다니게 된 것들이 모두 형님의 수고와 기도로 된 것이라고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동서는 자기도 나름대로 악한 생각들을 했다고 하며 시어머님께서 저를 신뢰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 주님을 믿고 천국 가신 것이라고 말해 주어서 저는 그동안의 원망과 불평, 생색나던 것들이 단숨에 사라지고 둘이 껴 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이후로 우리 둘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게 되었고, 남편도 복음의 소중함을 알아가며 형수의 수고와 인내와 감사하며 존중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소통의 자유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중에 시아주버님의 건강이 나빠지며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동서가 자신의 남편을 구원에 연약하다고 솔직하다고 말하며 도움을 청하는데 두렵고 떨렸지만 공동체에 중보를 청하고 함께 전략을 짜며 호송을 하니 집사이셨으나 교회를 떠나있었던 시아주버님이 다시 주님을 영접하시고, 우리들교회장으로 천국 환송예배를 드리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지난 날을 돌아보면 남편의 외도사건 이전에는 디오드레베처럼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을 뵙지 못한자, 구원과 관계 없는자, 거듭나지 않은 자로 알을 행하는 자였는데 사건 이후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뵈온자,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자 하나님께 속한자가 되게 해 주셨다고 감히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교회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인생을 살아가며 선한 증거를 받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고 들으며 자기 죄를 보고 내 허물과 수치를 빛으로 내어 놓고 겸손하게 내 곁에 있는 자들을 품고 받아내고 그러므로 인해 한 영혼과 가정을 살리는 창조적이고 선한일을 하는 으뜸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뭇 사람에게도 우리나라와 세계여러교회에서도 선한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공동체에 속하게 되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목사님과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아 따르며 양육과 명하신 역할에 순종하며 부지런히 지냈습니다. 그러는 중에 미국의 그 남자로부터 전화와 메일이 끊어지고 말씀으로 외도의 사건이 해석되니 남편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남편도 코피를 흘려가며 양육을 받고 목자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한말씀을 듣고 부부목장으로 섬기니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공통의 관심사도 대화도 많이 하게 되니 결혼 후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딸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심신이 편안해지다보니 안일함에 빠져 의무적으로 큐티하게 되고 메마른 심령으로 목장을 섬기다보니 힘이 들었습니다. 남편도 영육간의 탈진이 되어 둘이 다 목자를 내려놓고 쉬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 핸드폰에 톡이 울리는데 제가 보게 되었습니다. 문자를 보는 순간,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날 큐티 말씀은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 13절로 제목은 믿음의 경주였습니다. 그 당시 저의 중심과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며 지금의 그런 모습으로는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하지 못한다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하시는 징계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외도 사건은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얼굴을 뵈온자가 되도록 주신 것이고, 이번 사건은 더 온전하게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어 살아가도록 주신 것임을 알았지만 내 상처가 크다고 부를짖으며 목장에서 남편을 계속 고발하고 저의 감정과 생각들을 악한 말로 남편에게 쏟아내며 고의적으로 살인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편을 더 괴롭히고 아프게 하는 악한 말을 할까, 어떤 단어를 쓰면 더 힘들어할까 궁리하느라고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제 교양과 이성을 잠재우기 위해서 땡만 먹으며 아니 더 정확하게는 퍼 마시며 땡만 퍼 마시며 악한 말과 행동으로 두어달동안 남편에게 마구마구 해 댔습니다. 그렇게 해 대는 저를 보며 남편이 놀랐고, 사실 저도 저의 그런 모습에 놀랐습니다. 저의 밑바닥까지 보여준 것이죠. 부부 목장에서도 매주 담임목사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말씀이 매주 달라져도 남편의 바람을 그 말씀으로 끊임없이 고발했어요. 그래서 그 당시 우리 목장에 목자님이 저의 나눔에 기승전바람바람바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후 이어지는 호세아 말씀을 통해 남편이 저에게 회개를 한다고 했지만 그 회개가 진정성이 없다고 다그쳤고, 그런 제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회개는 진정성이 있어서 내가 받아준다고 여기느냐 물으셨고 육적인 음란을 저지른 남편보다 안락하고 편안 삶을 누리며 입으로만 거룩과 구원을 외치는 제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더 악하고 가증한 영적 음란한 자라고 하시니 그가 나보다 옳도다 가 되어가며 점점 입을 다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회개할 기회를 주시며 초원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지체들에게 저처럼 교만과 안일함에 빠져 하나님을 뵙지 못한 자처럼 되지 말라는 본을 보이게 하셨습니다. 곧 이어 벌어진 남편의 간 이식 사건으로 지난 40년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며 저는 제가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저 같이 잘난 마누라랑 사느라고 얼마나 남편이 긴장하며 살았는지 온 몸에 성한 곳이 하나도 없는 남편을 보며 미안해서 간이라도 주게 된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수술당일 주신 민수기 25장 1절~18절 말씀으로 우리를 출애굽 시켜주셨는데 여전히 음행하는 저와 남편이기에 병으로 죽고 창에 찔려 죽을 인생인데 배를 째는 수술을 통해 말씀의 창으로 저의 심령을 꿰뚫어 주셔서 이제는 분수령 적인 회개를 시켜주시기를 기도하며 살려주시면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날때까지 우리 공동체에 잘 붙어 가겠다고 부끄러운 서원이지만 서원을 했습니다. 자녀가 공동체의 기도로, 저는 간을 준 자로, 남편은 받는자로 나란히 평안한 마음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간 이식 수술 후 남편은 중환자실에 있고, 저는 병실에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데 친정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응급실에 실려 오셔서 응급으로 뇌 수술을 하신 후에 중환자실에 계시게 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어머니께서 3년정도 병상 생활 하시는 동안 저로 하여금 겸손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있게 하시며 저의 뿌리 깊은 교만과 자존심을 부셔가 주셨고, 어떤 사랑도 위로도 할 수 없는 전적으로 무능하고 이기적이며 부패한 저의 모습을 더 인정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생사화목은 모두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경험하며 고백하게 되었고 저의 회개를 위해서 기저귀를 하고 오래 고생하신 어머니께 너무나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순종과 인내의 온유한 삶을 사시며 기도하셨던 어머니로 인해 제가 이렇게 하나님께 속하여 살아가게 되었기에 저도 어머니를 본받아 살아가리르 다짐하며 천국으로 기쁘게 환송을 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소천 3개월 후에 발견된 저의 유방암을 우리 목사님의 유머로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하라는 붙회떨감의 말씀으로 맞이했는데 하나님께서 초기 암으로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게 하시며 저의 믿음의 현 주소를 보고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열왕기하의 말씀으로 제게 제거하지 않은 산당이 있어서 친다고 하시며 제하지 않으면 불신앙을 자녀들에게 물려준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자녀들이 모두 편안한 가운데 구원받기를 원하는 뿌리 깊은 기복산당이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예수 잘 믿고 성령충만한 부모가 최고의 부모라는 말씀을 늘 들으면서도 아이들에게 힘든 일이 있다고 하면 기도와 말씀으로 나누지 못하고 뭔가 해결해주려고만 한다. 얼마전 저의 딸이 심하게 하혈을 하고 사위는 갑자기 기억 상실 증상이 생기고 손녀는 코로나가 오는 이렇게 연달아서 한꺼번에 일이 있었습니다. 말씀으로 이 일들에 대하여 묵상하며 그들과 나누기 보다는 걱정하며 별일 아니기를 바라는 여전하 저의 기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의 모습을 지체들과 나누고 중보를 받으며 저의 아이들을 위한 올바른 기도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딸과 사위가 우리 교회에 온지 10년이 되어가는데 부부목장에 나가지 않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로 그런 계기가 되기를 바랬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아직 없습니다. 제가 딸에게 이 엄마가 너의 구원을 막는 마귀 사단이야 하니 딸은 아빠 엄마가 자기의 애굽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그나마 통하는 것이 있다고 여겨져서 감사와 위로가 됩니다. 이렇게 말씀을 묵상해도 갈등만 충만할 뿐 적용까지 나가지 못하는 저의 죄성과 연약함을 아시기에 끊임없이 여러모습의 일로 방문해 주시고 말씀으로 저를 고발하여 주시며 공동체에 붙어서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적용질문]
나는 지금 누구를 본받으려고 무엇에 부지런히 노력합니까? 내가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도록 자꾸 오는 일들이 있나요? 그 일 중에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을 간증합니까?
셋째, 서로 문안하는 공동체가 있어 끊임없이 서로 문안하여야 합니다. (13절~15절) ‘내가 네게 쓸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사도 요한은 디오드레베로 인하여 붉어진 문제를 바로 잡으려면 편지보다는 직접만나 교제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속히 보기를 바라며 가이오에게 평강길을 축원하고 여러 친구의 문안을 전합니다. 사역자, 선교사, 교사 등 복음의 일꾼은 외롭고 여러가지 문제들로 매우 힘이 듭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관심과 기도와 손발이 가는 섬김, 물질의 후원 등 위로와 격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믿음의 소식에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는 우리와 너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섬김으로 성도들은 주님의 사업에 동참하게 됩니다. 특별히 영적지도자의 관심과 인정은 더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저는 실버공동체에 속해 있습니다. 오랫동안 코로나로 대면할 수 없어서 모두 외롭고 힘들어합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영상예배와 목장예배도 자유롭게 드리지 못하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서로 올바른 소통이 안되 오해하며 관계가 틀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속히 보기를 원합니다. 대면해서 마음놓고 수다떨 수 있기를 모두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도 살고 남도 살리기 위해 주안에서 형제요 동역자이며 친구로서 애정 어린 인사를 주고 받으며 공동체 속에 끝까지 붙어 가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특별히 저는 60여년을 세속사로 살았고, 구속사의 말씀을 들은 지는 10여년 밖에 안되었습니다. 나이는 70인데 10살 먹은 초등생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는 저보다 나은 은혜 충만한 초등생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땅을 떠날때까지 여기에 더 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디오드레베도 처음에는 하나님을 뵈 온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스스로 으뜸이 되고자 했지만 처음에는 어느 정도 선한 평가를 받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날마다 큐티하고 모여 올바른 말씀으로 서로 문안하는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 나홀로 신앙으로 지냄으로 점점 하나님을 뵙지 못한 자가 되어가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15절에 평강이 있기를 바라시는데 말씀으로 알게 된 내 죄와 악을 다 들어내고 회개하며 받은 은혜를 나누는 최고의 평강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교회의 지체들은 먼저 망가지는 적용을 합니다. 이렇게 말씀 안에서 무장해제 된 것이 큰 기쁨이 되어 평안해지기에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우리모두 세상에서 해결책을 찾느라 고생하지 말고 완전한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 그리고 우리들목장으로 피하여 영적전쟁을 잘 치르며 평안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서로 문안하고 기도하며 격려와 위로를 주고 받을때 선한 것을 본받을 수 없는 중에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가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따듯하게 문안하고 기도하면 위로와 큰 힘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저는 사실 지금도 혼자 있는 시간이 제일 좋고, 혼자서도 잘 지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기적인 저를 목자로 초원으로 역할을 주셔서 늘 깨어있어 지체들과 문안하게 하는 구조속에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 역할을 도리와 책임으로 흠잡히지 않으려 하는데서 나아가 감사와 기쁨으로 사명을 다하며 지내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날마다 말씀으로 저의 죄를 보며 주님의 대속에 사랑을 품고 다른 이들을 대하므로 데메드리오와 같이 성령님께 딱 붙들려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제 사촌여동생 내외는 의료선교사로 오랫동안 세계 각처를 다녔습니다.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여기저기 옮겨다니느라 참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이 많이 들어서 정신과 치료들도 받으며 지냈습니다. 이제 자녀들은 커서 각자 흩어져서 외국에서 일을 하고 이들 부부는 한국으로 들어와 잠시 안정된 생활을 하나 했는데 제부가 대장암으로 일년만에 소천했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동생이 우리 교회에 와서 공동체 생활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권하지만 지금이 제일 편안하고 평안하다고 하며 맞아들이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동생의 예배가 속히 회복되고 공동체와 함께하는 기쁨을 맛보며 또 사명으로 살아가도록 그 심령이 외롭고 가난하여지기를 기도하며 문안하고 있습니다.
[적용질문]
교회와 가정, 직장에서 관계가 틀어지고 서먹해진 사람이 있습니까? 찾아가 문안해보면 어떻겠습니까?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기도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