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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6장 17절~23절 - 눈을 여시매카테고리 없음 2023. 12. 31. 08:17
2023년 12월 17일 주일예배
열왕기하 6:17~23
눈을 여시매 (보고 싶은 것만 봅니까?)
김양재 담임목사
대체로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믿으려 한다는 말이 있죠. 로마의 유명한 장군 카이사르가 남긴 말인데요. 그는 신출귀몰한 전략과 작전의 귀재였는데요. 누구나 쉽게 이기길 원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기미가 조금만 보이면 철썩같이 믿고 돌진하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본 것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않는 곳에서 멈추면 결국 원하는 것만 믿으려 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하다가 또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한 자와 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보니‘하나님께서 눈을 여시매’ 여셔야겠죠.
눈을 여시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로, 통회하며 이타적인 기도를 드리게 하십니다. 이것은 사환을 위한 기도에요. 17절입니다.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엘리사 한 사람 잡으려고 아람군대가 한밤중에 들이닥쳐 도단을 포위했습니다. 엘리사의 젊은 사환이 새벽에 이 군대를 보고 큰 두려움에 빠졌잖아요. 그래서 어찌하리까 벌벌 떠는 제자에게 엘리사는 우리와 함께한 자가 더 많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환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이제는 안심하게 되었을까요? 아니죠. 더 어리둥절하고, 동공이 더 많이 흔들렸을거예요.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군인 한명이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아람군대보다 우리와 함께 한 자가 더 많다고 하니 당황스럽죠. 그래도 엘리사 선생님의 말씀이니까 멀리서 군대가 오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어느 방향에서도 원군이 오는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이때 엘리사가 어떻게 합니까? 기도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엘리야나 엘리사나 모두 대단한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기도의 사람이에요. 그러나 두 선지자에대해서 기도했다는 표현을 직접 쓴 곳은 두 곳인데요. 그것도 엘리사에 대해서만 썼고, 한 사건은 수넴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릴때 기도했다고 햇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엘리사가 기도했다고 해요. 지금 아람 군대에 포위당해 두려워 떨고 있는 이 믿음 없는 제자 한 사람 믿음의 눈을 뜨게 하는 일이 죽은 사람 살리는 일만큼 중요하고 긴급하다는 뜻이에요. 사실 엘리사가 굳이 이 사환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해달라고 기도할 필요는 없죠. 사환이 보든 보지 못하든 두려움에 떨든 담대하든 엘리사나 엘리사를 잡으러 온 아람 군대에게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엘리사는 그 다급한 상황에서도 오직 이 사환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자기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타적인 기도예요. 그런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시매 구원의사명에 목숨을 건 선지자의 마음입니다. 정말로 세상 어떤 것보다도 한 사람의 믿음이 귀한 거예요. 이 한 사람이 대화가 통하는 수넴 여인이든, 통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게하시든 상관이 없는 거예요. 우리가 이게 상관이 많아서 인생이 슬픈데요. 누구든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데는 차별이 없어요. 모두가 죽을 것이기 때문이죠. 죽음 앞에 평등하니 구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평등한 거예요. 엘리사가 게하시를 얼마나 내치려고 했겠어요. 아무리 기회를 주고 기다리고 양육해도 전혀 변하는 게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못난 게하시도 구원을 받아야 할 영혼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할 밑동 잘린나무 같은 존재예요. 영의 눈이 열려 천국을 봐야 할 인생이에요. 예수님이 필요한 죄인이에요. 하나님이 눈을 여시니 사환을 위해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하다라는 히브리 단어 팔날에는 통회하다라는 뜻이 있는 거예요. 엘리사가 이 구제불능의 인생을 위해 눈을 열어서 보게 해달라는 기도를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가 게하시를 보며 자기 자신을 직면하며 통회자복했기 때문이에요. 부농이었던 자신을 어느 날 엘리야 선지자가찾아와 사명의 길로 불러주셨잖아요. 엘리야 선생님은 혜성처럼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어요. 엄청난 카리스마로 칠흙 같은 아합 시대를 말씀에 빛으로밝히셨어요. 그 대단한 스승님을 마지막 순간까지 따라다녔지만 함께하면 할수록 엘리사는 스승과 너무 비교되는 초라한 자신을 직면했을 것 같아요. 스승의 뒤를 이어 감당해야 할 선지자 사명이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임을 너무너무 깨닫고 그래서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며 스승을 끝까지 따랐고요. 그래서 드디어 야~ 난 할 수 없으니까 십자가 잘 지기 위해서 갑절의 영감을 한 가지 구할 것으로 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거꾸로 해석하죠. 엘리아보다 갑절의 영감을 받아서 내가 엘리아보다 더 높아지리라 다 이렇게 생각을 하더라고요. 이렇게 아무 자격없는 자신을 사명자로 세워주신 것이 은혜라는 것을 누구보다 알았어요. 하지만 이제 자신이 그 스승의 자리에 있고 보니 제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문제아 게하시를 향한 자신의 이상한 마음을 본인은 너무 잘 알고 있죠. 그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데 대한 실망과 분노, 그래도 버리지 않고 양육하고 있다는 자신에 대한 자랑할 수 없는 이 뿌듯함. 자랑할 수 있느냐 아니고 없는 엘리아 선생님처럼 뭔가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람에 대해 쿨한 모습과 다른 자신의 연약함 등을 동요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이 사환이 게하시었다면 그 의미가 더 클 것 같아요. 탐욕으로 스승의 기대를 져버렸을 뿐만 아니라 사역에 먹칠을 했잖아요. 그래서 큰 징계로 치리를 했는데 그것도 쫓아내지 않고 데리고 있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눈을 열어서 보게 해 주시기를 믿음을 주셔서 담대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은 즉시 응답하십니다. 엘리사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사이에 조금도 지체된 게 없어요. 게하시의 눈을 열어서 산을 가득히 채운채로 엘리사를 둘러 보호하고 있는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하십니다. 지금까지 있었어도 게하시는 못 봤는데 엘리사가 기도해 주니까 게하시가 봤어요. 아람 군대를 압도하고도 남는 불말과 불병거를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데요. 이것은 엘리야가 회오리바람 타고 하늘로 올라갈 때 나타났던 그 불수레와불말이에요. 그런데 이번에는 수가 산을 가득 채울 만큼 많네요. 그냥 군단급 천군 천사가 엘리사의 거처가 있는 산에 불수레와 불말로 지금 가득 찬 거예요. 그런데 이 불말과 불병거 군단이 갑자기 나타났을까요? 아니죠. 하나님이 청년의 눈을 열어 이제 보게 하시기 전부터 이미 그 하늘의 대군단은엘리사를 지키고 있었어요. 아람 군이 도단을 포위하기 전부터, 아람군이 자기들 진영을 출발하기 전부터, 아람왕이 엘리사 체포 명령을 내리기 전부터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 군단은 엘리사를 둘러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시편 기자도 91편 12절에 우리를 위해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내 모든 길에서너를 지키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어떤 길에서만 지키는 게 아니고 모든 길에서 지켜주시는 줄 믿습니다.
엘리사는 이걸 알아요. 그런데 늘 엘리사와 함께 다니는 사환은 몰라요. 눈이 닫혀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육신의 눈은 뜨고 있는데 영의 눈이 감겨 있었어요. 영의 눈은 무슨 신비한 능력 같은 게 아니에요. 육적인 눈과 대조되는 영적인 눈은 바로 믿음이라고 하죠. 이 믿음이 영의 눈이에요. 엘리사는아람의 모든 군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강하신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믿었어요. 근데 사환은 믿지 못해요. 그래서 두려워서 어찌하리까만 외치는데, 그런데 엘리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사환에게 믿음을 주시자 그가 불말과 불병거 군단이 엘리사를 보호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죠. 누구도 뚫을 수 없는 하나님의 강력한 보호하심을 믿으니 이제 이 사환도 담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데요. 우리는 끊임없이 믿고 싶죠. 엘리사는 여호람도 믿고 싶고, 게하시도 믿고 싶고, 그 외로 우리는 다 부모님도 믿고 싶고 형제도 믿고 싶고 다 믿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 사환을 위한 기도를 했다 그랬잖아요. 아람이 쳐들어왔는데 지금 자기 제자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모든 왕들과 위정자들이 가르치지는 않고 기도도 하지 않으면서 나에게 잘하는가 아닌가로 판단을 하니까 배반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거예요.
조선왕조의 성군으로 꼽히는 정조대왕은 그의 오른팔인 홍구경을요. 얼마나 총애를 했는지 사나이가 첩에게 혹한 모양으로 총애를 하고 다른 관료들을멀리했다고 해요. 그는 신출기몰하기 어려운 일을 도맡아하며 정조를 도왔어요. 무서운 할아버지 영조에서 왕이 되도록 직위 과정을 도운 일등 공신이고 최측신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도 세자가 죽는 걸 11살 때 봤으니까 정조가 얼마나 무섭겠어요. 자기 편이 없는 거예요. 노론은 정조가 왕이 되는 거를 싫어해요. 왜냐하면은 아버지를 죽였잖아요.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그러니까 아무 편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홍구경이 정조편을 너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은 할아버지가 딱 묻고 수양제가 나오는 그 무슨 책을 뭘 읽고 있냐 그랬더니 그런 책을 읽고 있다고 제가 제목이 생각이 안 나는데 그랬더니 거기 몇 페이지에 뭐가 있는거 그랬더니 그게 수양제가 아버지를 죽이는 장면이라는 거예요. 근데 영조가 자기 아버지아니 아들 죽였잖아요. 이걸 어떻게 하나. 영조도 이상한 사람이잖아요. 불같이 분노가 많아가지고 여호람왕 같아. 그래서 근데 뭐라 그랬냐 하면 저는그 페이지를 읽지 않고 찢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그랬더니 영조가 그대로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그 책을 당장 가져오라 이러면서 부활을 시켰어요. 그래서 서거에 갔더니 홍구경도 과거 급제한 사람이잖아. 그 책의 내용을 알아요. 근데 영조가 가져오라 그러고 거기 정조가 있다고 그러니까 그새 그 페이지를 딱 찢고 보낸 거예요. 왜 안 놀라요? 진짜 왕이 되는데 완전히 일등 공신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정조에게 민심의 동향을 전했던 그는 정세 판단도 탁월했고 외모가 이건 완전히 아이돌 스타고 언변도 수안도 좋아서 여타 책상 물림들과는 다르다고 인상을 확실히 심었다는 거죠. 저는 그게 적어도 진짜였을 것 같아요. 그런 그가 이제 정조가 왕이 되고 나서 도승지의 금이대장의 수기 소장의 지금으로 말하면 왕만 빼고비서실장, 경호실장, 국방장관, 모든 권력을 이제 쥐게 됐어요. 그러니까 예외가 없어서 그냥 분수를 모르고 주제를 모르고 돈과 여자와 권세에 탐닉해서 오만방자하게 굴다가 4년 천하로 끝나서 32살에 탄핵당해서 강릉에서 병사했다고 해요. 근데 20대의 젊은이가 그 대신들을 물리치고 자신을 왕을만들어줬다고 정조가 그에게 계속 끌려다닌 거예요. 그러나 한 많은 한중록을 쓴 어머니 혜경궁 홍 씨는 뭐라고 그때 썼냐 하면, 작은 놈이 홍구경이 간사한 꾀를 내어 동궁께 곧게 충고하는 체 하나. 실은 다 듣기 좋은 말이라 한 번 홍구경이 들어오면 외부 사정에 대해 여쭙지 않는 일이 없고 전하지 않는 말이 없으니 동궁께서 신기하고 귀하게 여겼으니라고 기록했는데 얼마나 정조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근데 부하가 그렇게 잘하다가 배반하면 다 참수를 하고 삼족을 멸하고 그 다음에 부하는 역모를 도모하는 그게 계속되는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우리나라 아니겠어요? 우리나라 역사인 거예요. 가르치지는 않고 잘하기만 원하는 거야.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우리나라에 오죽하면 일본을 동원해서 이호된 훈련을 하게 하셨겠습니까? 일본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이 36년 동안에 온 국민이 딱 하나가 됐다는 거 아니에요? 고려 때도 조선왕조 500년 동안도 절대 못 건드리던 이 양반 상놈의 계급 7천반이 무너져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교육받고 제가 감히 설교도 하는 거 아니에요?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고, 지금도 여자 설교는 이렇게 고정관념 가지고 안 듣고 안 보는 사람들 많아요.
그러니까 선교사들이 예수가 들어오는 길목을 열었고, 그래서 이 백정인 상상도 안 되는 백정인 박성춘이 장로가 되었고, 그의 아들은 박봉출이 세브란스 일기로 개명을 해서 박서양으로 의사가 되었어요. 있을 수 없는 기적이 지금 일어났는데 모두가 악하고 음란한데 이 죄를 모르는 사람이 왕이 되고위정자가 되면 누구도 예외가 없이 성공하려고 악하고, 성공하면 음란하고 모든 위정자들은 그렇게 끝냈어요. 그러니까 자기 죄를 모르고 예수만이 개혁인데 예수가 안 들어갔는데 무슨 개혁을 한다고 그러냐고요. 근데 요즘 이렇게 잘 살게 되니까 이렇게 나라를 살려준 기독교계를 폄훼하고 그냥 다시옛날에 그냥 당파 싸움으로 돌아가니 지금 인구 절벽 등으로 여러 가지로 경고를 하십니다. 자기의 죄성을 보지 못하면 이타적으로 백성들과 부하들을위해 기도하는 위정자가 결코 될 수가 없어요. 이런 분 한 분 세워지기를 늘 기도했지만 또 여전히 기도하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포기하지 말고 눈을 여심에 이타적으로 기도해 줘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를 향한 내 태도에서 통회하며 회개해야 할 마음은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없는 거예요. 기도해야 될 대상만 있을 뿐이에요. 왜 인생이 짧다고요. 다 밑동 잘린 나무라고 수넴 여인은 좋고 게하시는 나쁘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일본을 구속사적으로 봐야 되는 거예요. 일본 놈은 나쁜 놈 하면서 그래서 원수누구한테 갚으려고요. 그래서 일본 놈은 나쁜 놈이라고 그래서 원수 갚아주기 이러시면 이제 안 되는 거예요 해석을 잘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어떤 집사님이 이대 졸업한 친구가 서울대 나온 남편 만나서 미국에서 너무 살고 있는데 너무 부러운데 그 친구는 우리들교회 다니지 못하는 것을 제일힘들어한대요. 그러니까 뭐든지 세상 조건, 영적인 조건도 좋으니까 열등감이 심하게 드는데 인스타그램에 올리려고 가족 여행 영상을 찍었는데 너무나 아이를 데리고 간 그 여행이 힘들었는데 편집된 영상은 너무 행복한 가정으로 보여가지고 인스타그램이 가짜라는 걸 알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너무 이렇게 육의 눈으로 부러워하는 게 다 허상이라는 거를 깨달았다는 거죠. 우리 삶을 진짜 보호해 주는 거는 근사하고 멋지게 나오는 화면이 아니라 치열한 삶을 둘러 보호하고 있는 불말과 불병거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치열한 삶의 간증이 나를 보호하는 거지, 영상 이런 게 보호하는 게 아니에요.
눈을 여심에 이타적인 기도를 하게 하시고 두 번째는 보고 싶은 게 아닌 봐야 할 것을 보게 하십니다. 이거 원수 아람을 위한 기도예요. 18절이에요.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데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함에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이 도단을 포위한 아람군은 아침이 되자 드디어 공격을 개시합니다. 아무 무장이 없는 선지자 한 명을 큰 군대가 죽이겠다고 공격하러 왔어요. 그래서성경은 지형상 도단이 높이 있는데도 아람 사람이 지금 엘리사에게 내려온다고 하잖아요.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와도 영적으로 지금 내리막길을 걸어가고 있는 거예요. 아람군이 엘리사 가까이 몰려왔을 때 엘리사는 다시 기도합니다. 앞절에서는 사환을 위해 기도했는데 이번에는 아람 군을 위해 기도합니다. 내용은 정반대예요. 이 사환을 위해서는 눈을 열어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아람군을 위해서는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어둡게 하옵소서라는 번역은 굉장히 순화한 것인데, 직역하면 눈이 안 보이는 것을 가지고 때리소서 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 기도에도 즉시 응답하세요. 그 기도대로 아람군을 앞을 볼 수 없는 어두움으로 치십니다. 엘리사를 둘러 보호하던 불말과 불병거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신 것이죠. 나를 둘러 보호하는 불말과 불병거는 치열한 삶의 간증이기 때문에 사실은 활이나 창 따위의 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안 보이기 때문에 제자인 유다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뭉치로 잡겠다고 갔잖아요. 그들의 눈을 가려 보지 못하게 하세요. 지금 실명 상태라는 말이 아니에요. 여전히 앞을 다 볼 수 있어요. 근데 자기들은 공격받았는지도 몰라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격 목표였던 엘리사를 이제 알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절 20절입니다.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오.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하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심에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 있더라’
보기는 보지만 멀쩡히 보는데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 됐어요. 엘리사가 온 군대로 자기를 죽이려는 그들에게 지금 있잖아요. 나를 따라오라 그래요. 날보러 와요. 이러는 거예요. 지금 자기를 죽이려는 아람 군대에게 날 보러 와요 이러는 거에요. 엘리사 잡으러 온 군대가 엘리사를 따라서 가고 있어요. 완전 코메디 아니에요? 그리하여 그들의 눈이 어둡게 되어서 이스라엘 군대 본진인 사마리아 한가운데로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아람 군대 누구도 이사실을 모른 채 들어왔어요. 그러니 정치, 경제, 결혼이라는 것이 눈을 뜨고도 자기 믿고 싶은 대로 맹인이 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는 거예요.
한 집사님이 이 나눔을 했는데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는 대졸의 장남이라는 거. 시댁에 집이 있으니까 장남에게 집을 물려주겠다고 믿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그런 결혼을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은 거 아니에요? 언제 주겠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아람 군대가 눈이 어두워져 엘리사를 쉽게 잡게 되었다고 엘리사를 지금 신나게 따라갔잖아요. 사마리아에서는 비상령이 떨어졌겠죠. 경계병이 이미 파악하고 부대가 출동했을 것이고요. 아람군이 사마리아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사인을 줬는지 공격하지 않고 경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 공격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런데 아람군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엘리사를 따라서 룰루랄라 들어갑니다. 그들이 성 안으로 들어갈 때 엘리사는 바로 그때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조금 전에는 감게하옵소서 지금은 보게 하옵소서. 기도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아세요? 그리고 아람군이 사마리아 가운데 도착하자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여셨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타이밍이에요. 착각에서 빠져나와 앞에 있는 현실을 다시 제대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앞에 있는 엘리사도 보이고요. 이스라엘 정례 부대에 의해 이미 포위된 자신들의 처지도 보입니다. 꼼짝없이 무기를 내려놓고 잡혀야 했어요. 이때 내가 속았다고 누구를 원망하겠어요? 근데 다들 자기가 가놓고 속았다 그러죠.
아까 집사가 결혼하고 보니까 남편은 대학 중태고 시댁 가족은 다 술 중독이고 시댁집도 담보를 잡혀서 얻을 것이 하나도 없고 완전히 사기 결혼을 당했다고 그건 자기 얘기죠. 눈이 열려 제대로 보니까 적군의 소굴, 사마리아 한가운데 포위되어 있음을 딱 알게 된 거. 그럼 이제 여러분은 그때부터 주제가가 내가 속았다 속았다 이게 주제가죠. 자기 눈이 감겨져서 지금 그렇게 간 것은 생각 안 하고요. 앞서 아람 왕 부하들에게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고 했어요. 왕의 명령대로 엘리사의 소재를 파악한 부하들도 왕에게 보라고 하면서 엘리사가 도단에 있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때쯤 그 보고한부하는 진짜인 것 같아요. 엘리사는 침실의 얘기도 다 들을 수 있다고 그랬는데도 엘리사를 죽이러 가겠다고. 그 도단에 가면 이 아람 왕들이 엘리사를찾아볼 수 있다고 당연히 그렇게 여겼어요. 의심도 전혀 안 하고 우리는 늘 정보를 찾아 삼만리하니까 이 정보가 나를 살게 해주고 이 사업은 성공할 거야. 이들이 당연시 여기는 그 시력도 하나님이 엘리사의 기도에 응답하여 어둡게 하시니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어요.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이 여전히제대로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완전 착각이라는 거예요. 내 예상과 기대는 빗나가라고 있다고 했죠. 그 장담은 어디서도 금물인 거예요. 망하는 사람의 특징이 그렇게 장담을 잘하는 거예요. 오늘이 뭐가 계약이 돼서 끝나기까지는 입을 다물어야 되는데. 내가 그거 다 샀다니까 완전히 내가 그냥 흡수했어. 흡수 좋아하시네요. 그러고는 맨날 내가 계약만 남겨놨는데 계약만 남겨놨는데 그것이 나를 속였네. 그러시면 안 되는 거야.
아람왕이나 군대나 이스라엘 군대 몰래 엘리사를 보고 잡아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만일 그들이 자기 원대로 엘리사를 알아보고 체포하려 했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엘리아를 잡으러 왔던 50명의 군사들이 다 불태워져서 죽인 거 기억나죠. 그러니까 여기도 불말과 불병거의 공격을 받아 전부 불에 탔을거예요. 그들이 볼 수 있다고 확신했고 보고 싶어 했던 대상은 엘리사였어요. 근데 엘리사는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어요. 그 기도대로 엘리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가 인도하는 대로 지금 따라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난 거예요. 그들이봐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인도함입니다. 체포해야 할 원수 엘리사를 보고 싶어 했지만, 그들이 살기 위해 바라봐야 할 것은 그들이 따라야 할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입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것 같은데 너무 다른 거예요. 원수 엘리아가 아니고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인 거예요. 원수 엘리사가아니고. 그래서 오늘이라도 예수 믿으면 여러분들의 인생이 달라지는 거예요.
저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라는 엘리사의 기도는 그들이 보고 싶은 걸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한 기도예요. 기도예요. 봐야 할 것은 착각으로라도 보고 따라오게 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인간은 100% 악하고 음란하기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따라간다면 결말은 멸망과 죽음입니다. 누구도 벗어날 수없는 공식이에요. 죄악의 삯은 사망이에요. 그래서 구원은 보고 싶은 거 보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보고 싶은 게 아닌 봐야 할 것을 보는 것이 구원이에요. 그런데 고생, 고난 없이 인생이 술술 풀리면 계속해서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보고 싶은 것이 늘어나고 그걸 추구하다가 인생이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어려서부터의 고생은 금 죽어도 못 사는 거예요. 불쌍한 게 아니에요. 고난이 와서 내가 원하는 것이 막히고 꺾이면 보고 싶은 것 볼 수 없는 한계를 알게 됩니다. 억지로라도 말이죠. 그리고 그 환경에 매워서 봐야 할 주님의 십자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다 알지 못해도 여러 사람과 사건에 매여서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 주님을 따라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매인 환경이 축복입니다. 십자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고난이 선물이에요. 그렇게매여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되는 주님만이 우리를 살리고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이제 여러분들 나는 말씀도 어렵고 힘들고 그러면은 여러분들은 항상 하고 싶은 거 반대로만 하면 중간은 가요. 가고 싶은 데는 안가고 먹고 싶은 거는 안 가고 보고 싶은 사람은 안 보고 그러면 여러분들의 믿음이 이제 일천하면 그렇게 하면 중간은 가요. 아니 맞아요. 봐야 할 것들을 우리는 안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우리의 믿음에 그 지수예요.
지난주 이제 나눔에 이런 어떤 모임이 제일 싫고 좋으냐 이런 거 나누었어요. 어떤 집사님이 어떤 모임이 제일 싫어요? 여기요. 제일 모이기 싫은 모임은 또 무엇이에요? 여기요. 나오라고 권해야 할 그 한 사람은 누구예요? 저요. 왜 이렇게 모이기 싫어하세요? 교만해서요. 그랬더니 남편한테 나 진짜사탄이 든 것 같아 그랬더니 맞아 그런 것 같아 그랬대요. 그런데 이렇게 그래도 이런 얘기를 나누니까 오늘 반은 빠져나간 것 같다고 그래서 무슨 얘기든지 가서 해야 돼요.
또 한 분은 태생이 인정받고 뭐 그런 거 상관없고 학벌도 상관없고 근데 내가 왜 이리 외로울까 생각했는데 늘 혼자 있었고 혼자 모든 걸 결정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교회 가도 외롭고 뭘 해도 외롭고 아무것도 즐거운 게 없는데 딱 하나 즐거운 것이 골목 포장마차에서 고등어 조림에 소주 한 잔 하는 거 그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늘 혼자 있어서 옆에 누가 있는 게 괴롭습니다. 꼭 저희 남편 얘기하는 것 같아요. 그게 제가 또 공감이 되잖아요. 이제 어두운 가운데 아직 시력이 열리지 않으신 거예요. 그래도 이런 분도 이런 얘기를 나와서 한다는 거.
누구는 그 하나님 앞에만 아뢰지 왜 목장에서 자기 얘기해가지고 그렇게 내가 믿고 얘기했더니 니가 이럴 줄 몰랐다면서 교회에서 싸움판이 난다고 그거 좀 나가서 얘기 좀 하지 말라고 이러는데 이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좁은 길을 가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구속사적인 가치관을 가지지 않고 오픈하면안 되는 거죠. 그죠. 근데 여러분들이 구속사가 깨달아지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으니까 끊임없이 충돌이 있어요. 눈을 여셔야 돼요.
이 똑같은 질문에 한 부장판사이신 집사님은 제일 좋아하는 모임이 목장이라고 하시네요. 그리고 부장판사이면서도 집에 돌아가면 쓰레기 봉투가 5개가 넘고 집안일을 7시간을 넘게 한다는 거예요. 환경에 잘 메워서 주님 잘 따라가십니다. 그럼에도 저기 또 금수저가 되셔서 요셉과 유다가 잘 이해가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렇게 목장에서 기도 제목을 올리는데 그 집을 위해서 유다의 축복을 받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제목을 올렸더니 그거 삭제해 주세요. 우리는 유다의 유자도 싫어 그냥 앉으나서나 요셉의 요자가 좋은 거예요. 이렇게 할 때 여러분들은 이해해야 합니다. 믿음의 종류가 지금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교회 나오고 목장에 나오는 게 어디예요? 항상 그런 생각을 가져야 되는데옳고 그름으로 생각하니까 수넴 여인은 좋고 저 개아시는 나쁜 놈이고 이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맨날 저 일본 놈은 나쁜 놈이고 우리나라는 좋은 놈이고 이렇게 해요. 사실 얼마나 얼마나 구속사적으로 큰 역할을 또 했는데 과거에 사로잡히면 안 돼요.
또 한 부목자님은 정말 우리 교회 좋다고 왔는데 아들이 예배를 드리더니 그냥 시끄러워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고. 근데 좀 시간이 지나니까 제가 우리들교회에서는 모범생이에요 라며 우리들교회는 역시 ADHD 천국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양육받으면서 우리 가족은 회복됐고 아들이 우리 아빠가 여기 와서 변한 걸 보니까 진짜 하나님이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그래서 우리 가족은 우리들교회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그러니까맨 처음에 와서 이러고 저러고 할 때 그냥 들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각자 부장 판사님이 있으시고 이 땅에서 행복한 게 포장마차의 소주 한 잔이라는 분도 있고, 제일 오기 싫은 모임이 여기다 이런 사람도 있고 그저 각자 시력이 다르지만 각자의 눈을 열어서 봐야 할 것을 보게 되기를 기도해야될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보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준 어둠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자녀의 성공과 구원 중 무엇을 더 보고 싶습니까?
눈을 여심에 이타적인 기도를 하게 통해 자복하며 이타적인 기도를 하게 하시고 보고 싶은 것이 아니고 봐야 할 것을 보게 하시고 그러면 세 번째는 이스라엘에게 순종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죠 그러니까 믿는 우리에게 순종이 필요하고 열매를 이제 맺게 하시는 거예요. 게하시를 위해서 기도하면또 아람 원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며 나에게 열매 있게 하신다 이런 뜻입니다.
21절부터예요.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하니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하는지라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이제 원수 아람 군대가 뭔가에 홀린 듯이 사마리아 한가운데 와서 아군에 의해 포위를 당했으니까 여호람 왕이 원수 갚을 절호의 기회를 잡았잖아요. 바로 공격하여 이제 전멸해 버릴 수 있었지만은 자기가 한 게 하나도 없고 은인이신 엘리사 선지자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까 갑자기 엘리사 선지자를보고 내 아버지여 이러고 불러요.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두 번이나 반복해서. 얼마나 공격하고 싶으면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사람이 그러면 안 돼요.
그래도 여호람은 이렇게 칠 것인가 물었는데 또 우리들교회 집사님은 배송 일을 하시나 봐요. 근데 침을 뱉고 욕을 하는 아주머니와 시비가 붙게 되어서 그냥 자기도 모르게 저도 똑같이 쌍시옷 욕을 해줬다는 거예요. 금새 회개는 하셨지만, 아니 여호람은 그래도 물었는데 아무리 원수래도 물었는데우리들교회 성도가 여호람에게 밀리면 되겠어요? 우리들교회 성도가 여호람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 믿으시죠? 그러니까 물어야 돼요. 하나님께 묻는 거 목장에게 묻는 거예요.
여호라함이 치이리까 물어보니까 엘리사가 공격을 막습니다. 전쟁에서 사로잡은 포로를 죽이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님을 상기시키면서 전쟁 없이 제발로 걸어 들어와 잡힌 포로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음식을 주라고 해요. 뿐만 아니라 자기 고향 아람으로 돌려보내라고합니다. 여호람 왕이 얼마나 고집이 센지 우리가 지금까지 쭉 봤어요. 통치하는 12년 동안 엘리사가 그렇게 전국을 다니며 사역을 했는데 아합이 만든바알의 조상 하나는 없앴죠. 그거 하나 없앴다고 엘리사가 이렇게 여호람을 도와주잖아요. 그러나 금송아지 우상은 그대로 두었어요. 겉으로는 개혁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아합처럼 여로보함처럼 우상숭배를 계속했어요. 이 땅의 개혁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어요. 어떤 경우도 예수님을 만나지 않는사람은 개혁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 성품대로 했다면 고집세고 어리석은 여호람은 엘리사의 말을 듣지 않고 아람 군대를다 죽였을 거예요. 그러나 여호람이 웬일로 엘리사의 말에 순종합니다. 떡과 물을 주라고 한 말에 순종해서 음식을 많이 베풀었어요. 잔치를 열어주었어요. 그리고 그들을 엘리사야의 조언대로 돌려보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람 군대만 산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이스라엘도 살게 되었습니다. 여호람 왕이 어떻게 물론 문자적으로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됐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영원히 불화도이길 수가 없게 되었다 이 말입니다.
여호람왕이 어떻게 생명을 가져오는 순종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의 성품 때문도 믿음 때문도 아니에요. 오직 엘리사 선지자가 통회자복하며 제자를위해서 기도하며 이타적인 기도를 드리고, 또 자신을 잡으러 온 원수 아람 군대를 위해서도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보다 봐야 할 것을 보기를 기도를구하는 기도를 드린 결과 그런 기도에 즉각 응답하신 하나님이 이제 그 기도의 능력이 고집센 왕에게까지 미치게 하신 것이죠. 왕이 자기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순종을 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 곁에 있는가가 너무 중요합니다. 여러분 엘리사가 형편없어 보이지만 아람 왕, 이스라엘 왕 그 위에서 전쟁을 지휘하고 있잖아요. 엘리사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가까이서 받으니까 그러니까 겉으로 사람을 무시하면 안 돼요. 학벌과 스펙으로 초라한 믿음 있는 사람을 무시하면 그것이 웃기는 짬뽕이에요. 근데 여러분들은 이게 눈이 블라인드가 돼가지고 겉으로만자꾸 평가를 하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제가 창자가 끊어집니다. 직분이 아무리 있고 그래도 그 영의 눈이 다 이렇게 감겼어요. 옆에서 엘리사 바로 옆에 있는데도 불말과 불병거를 보지 못해요. 이게 너무 애통합니다. 누구 곁에 있냐 어떤 공동체 안에 머무는지가 너무 중요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이제기도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이제 아무리 연약하고 고집센 사람도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순종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엘리사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생기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게하시처럼 무시되는 가족과 지체와 이웃을 보면서 내 죄 때문에 통회자복하면서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나를 공격하고 괴롭힌 아람 군대 같은사람을 향해 내가 치리이까 할 것이 아니라 그도 밑동 잘린 나무 같은 죄인임을 알고 보고 싶은 거 쫓다가 망하지 않고 봐야 할 것 볼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 모두가 사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여호람 왕처럼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부르짖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나도 살고 너도 살기 위해 고집을 꺾고 순종해야 할 생명의 적용은 무엇입니까?
한 집사님은 세상 모임이 많아서 남편과 친구들 모임을 가는 것이 삼삼오오 모이는 세상 모임이 있는데 목장에서는 그런데 가지 말라고 하니까 반감이들었다는 거예요. 내가 전도도 할 수 있는데 왜 못 나가게 하지 그런데 1년 동안 목장 가고 양육받고 이제 그러다 보니까 세상 친구들하고 벽이 생기는느낌이 들어서 그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대요. 여자 목장이 올해 너무 좋았고 부부 목장도 좋았답니다. 그러니까 말을 잘 들어야 돼요. 가지 말라는게 아니고 가야 돼요. 올해 다 열심히 가세요. 전도하러 가야 돼요. 그런데 이렇게 너무 좋아서 니나노 할까 봐 이제 흘러 떠내려갈까 봐 조심을 하라고믿음이 완전히 반석 위에 올라가면 그게 전도가 되는데 그러지 못할 때는 자꾸 열등감 느끼게 되고 가서 있는 게 불편하고 그러니까 조금 이제 쌓아서가라는 거죠.
또한 집사님은 다른 목자님은 다 화를 잘 낸다고 하는데 저는 화를 안 내고 무시합니다. 그래서 분노보다 무시가 더 나쁜 것 같은데 싸움이 싫어서 겉으로 잘 지내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상대방의 말에 거기까지만 하면서 무시를 합니다. 이런 저를 보며 권찰은 이제 본인의 지저분하고 더러운 이야기는 안하고 점잖은 척하니 당신이 정말 쓰레기다라고 합니다. 목장에서 이런 고발을 할 때 옳소이다 잘하시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죄악들을 깨달아서 늘 고백하는 순종을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목장이 너무 좋은 거예요. 대구에 채플이 생긴다고 하니까 그냥 완전히 목장에서는 대구 사투리 연습을 다 나눔을 했다는 거예요. 뭐라 카노 캐라 이거 말해 그런 뜻이래요. 내내는 자자고 여어라 주머니에 여어라 넣어라래요. 여라 뭐라카노 캐라 우리들교회는 너무 정말 귀엽지 않아요? 다들 너무 사랑하는 거예요. 이게 우리가 돼가지고.
그러니까 저는 이제 이게 구속사로 역사 정치 경제 세계 결론을 이렇게 다 봐야 하는데, 그럼 예수도 없는 왕들이 옳고 그름밖에 생각할 게 뭐가 있었겠어. 내 편은 최고고 아니면 죽여야 되고. 지금 예수 믿지 않는 우리나라 정계가 똑같지 않아요. 맨날 저쪽은 죽여야 되고 어떤 한 사건 가지고 계속 물고뜯고 다 지났는데 이제 자자손손을 살펴봐도 후손들이 없는데도 계속. 그러니까 이것이 내가 눈을 열어서 뺏겨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정말 우리들교회에 이 청년들이 이렇게 매주일 결혼을 하고 유아 세례를 받는 것이 여러분들 이것이 불말과 불병거 아닐까요? 내가 불말과 불병거에 이 간증이 있기 때문에 이 치열한 간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나를 보호하는 거예요. 저의 불간증이 여러분들을 보호하고 여러분들의 불간증이저를 보호하고 그러는데 그게 보이지 않는 거예요. 여기 눈을 뜨고 있는데도 간증할 때마다 저 찌질한 얘기는 왜 해 안 보이는 거예요? 들리지 않아요무시해요. 난 그런 걸 무시하는 사람을 제일 정말 제가 통탄합니다. 통탄해요.
내가 교회하면서 잘난 사람 부자 좋아해서 제가 생기는 게 뭐예요? 부자가 천국 가기가 제일 힘들다고 했는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진짜 공평하게 이렇게 봐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구속사인 줄 믿습니다. 요새 청년들이 여기에 얼마나 호응을 하면 이렇게 모이겠냐고요. 여러분들이 나가서 이거를전하고 정말 개혁의 아이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될 줄 믿습니다. 성탄절 송구영신 이 연말에 우리 모든 사랑하는 식구들을 전도해야 될 줄 믿어요.
말씀을 맺습니다. 눈을 여심에 게하시 같은 사람을 위해서 통의하며 자복하며 이타적인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아람 같은 원수를 위해 그들도 보고 싶은 게 아닌 봐야 할 것을 보게 하십니다. 억지로라도 목장에 착각을 해서라도 따라오게 하셔서 어느 날 내가 깨달았다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러면여러분들에게 열매를 맺게 하시는 거예요. 그 순종의 열매를 맺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근데 우리 영적 시력이 생겨야 되잖아요. 이게 어두움 하나님이어둡게도 하시고 열게도 하시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돼요. 그러니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고 빛나고 높은 저 곳을 날마다 바라보는 영적 시력이 참으로 회복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찬송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출처: 2023년 12월 17일 우리들교회 주일 설교 녹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