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8장 23절~24절 - 성령의 나라
2023년 1월 1일 주일예배
성령의 나라
사도행전 28장 23절~24절
김양재 목사
2022년 첫 설교의 제목이 성령의 영접이었구요. 마지막 제목은 성령의 이야기였습니다. 광풍으로해도 달도, 별도 보이지 않고 소망도 보이지 않는 정말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바울은 작년 표어인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했기 때문에 안심했겠죠? 그것도 사도행전에 나온 말씀이었어요. 그런데 진리의 성령님이시고 장래일을 알게 하신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성령의 나라는 여전한 방식의 말씀 묵상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 이제는 안심하라 했으니 말슴에 의거해서 안심할 2023년 되기를 바랍니다. 올해 우리들교회가 창립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해요. 2003년 이 땅에 태어난 후,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를 거쳐 어엿한 청년이 되었어요. 집이나 교회나 직장이나 나라에서, 특별히 성령의 나라로 역사에 걸맞게 해 주신 사명을 더욱 힘차게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나라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날짜를 정하고 들어야 합니다. 23절입니다.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유대인들에게 성령의 이야기로 이스라엘의 소망을 이야기하니까 너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니까 모두 듣겠다고 했어요. 쇠사슬에 메인 이유가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이라고 말하니까 무시할 수 없고, 그렇다고 바로 수긍 할 수도 없고. 그렇지만 듣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어요. 사람들에게 전할 때 호기심이 생기게 해야하는 거죠. 그래서 듣고 싶어 졌습니다. 말이 나온김에 날짜를 정했어요. 바울이 감옥이 아니라 따로 마련된 집에 유숙하고 그렇지만 감금상태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기회가 주어지니까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묶여 있으니까 들으러 바울이 있는 곳으로 이들이 찾아간 것 처럼 우리 역시 말씀이 들리는 곳으로 다 찾아가야 합니다. 바로 그때 예수와 하나님 나라가 내 속에 임하는 것입니다.
저도 간증을 하기 시작하니까 듣겠다고 한 사람씩 오니까 한 사람에게 몇 시간을 할 수 없어서 시간을 정하고 와서 들으라고 했었습니다. 들을 때 당시는 믿지 않을지 몰라도 저는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소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제가 터널에서 가신 전기사님이 40년동안 등록도 안하고 그랬지만 들은 말씀이 있어서 마지막에 주님을 부르고 갔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날짜를 정하고 들으니까 여기서 믿은 사람도 있었어요.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때가 중요해요. 여러분도 새해벽두에 날짜 정해서 모이는 주일예배, 수요예배, 목장예배, 울림기도회, 매일 아침 8시 극동방송, 새벽 6시 개인 큐티예배를 드리고 6시 30분에는 새벽기도의 큐티 설교 등 정말 여러분들이 들으셔야 합니다. 날짜 정해서 초청한 큐지칼, 성탄축하컨서트, 송구영신예배 교회가 날짜를 정하면 항상 많이 오셔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현장예배의 감격들을 말씀하세요. 송구영신예배는 앉을 자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고요. 정말 회복의 말씀이 주어졌는데 온 사람들 앞에 주어진다고 생각해요. 집에서 드리는 예배하고는 정말 다르고 하나님이 고쳐주실 때에는 온 사람과 오지 않은 사람하고는 다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멜리데에서요. 여러분이 늘 날짜를 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올해는 내가 10킬로그램을 빼야지. 아니면 몇 킬로를 빼야지 이러면 아마 죽을때까지 다이어트가 큰 프로젝트로, 그것으로 날짜 정하다 천국가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적용해보세요.
새해 첫날 날짜를 정하고 어떤 결심을 했나요?
공예배의 날짜를 잘 지키시나요? 올 한 해 계획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신앙고백이 없이 어떤 축복을 받을 생각은 안했으면 좋겠다.
성령의 나라는 두번째 예수에 대하여 권해야 합니다.
즉, 구속사로 전하는 나라인 것이다. 여기서 강론의 뜻은 설명하다, 알기 쉽게 해석하다 이런 뜻인데 모세오경과 구약의 선지서들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명확하게 풀어 바울이 설명했다. 성령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에요. 하나님 나라는 감춰졌잖아요. 감춰졌는데 예수님이 오셨어요. 예수를 전해야 해요. 그런데 성령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를 성령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셔서 보이게 해 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나라가 하나님 나라 성령의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구약의 중심사상이고 신약의 중심사상이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이고, 신약은 오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에요. 성경은 지식을 쌓기 위해 읽어서는 안되고 예수를 권하기 위해 읽어야 한다. 구속의 일로 전해야 한다. 오늘 나와 다른 사람의 인생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이야기로 전해야 한다. 어떻게? 오늘 말씀대로 모세오경을 통해서 전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믿는 사람들이에요. 그냥 믿는 정도가 아니라 이 모세오경은 그들의 뿌리, 신념, 역사, 삶의 전부이다. 자신 뿐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의 중심이 모세오경과 선지자들의 글이었다. 그리고 모세오경과 선지자의 글이 말하는 바는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와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이야기인데요. 그들은 모든 것을 믿었다. 바울이 그토록 믿는 모세의 글들과 선지서들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와 메시야이신 예수에 대해 명확하게 사람들이 눈에 보고 손에 만질 수 있을 만큼 풀어서 설명 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말씀대로 이루어졌는지를 전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왜죠? 왜냐하면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메시야,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그들이 바라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이 기도를 해도 내가 바라는 것은 합격이고 붙는 것인데 그것이 바라던 모습이 아니면 안 믿어요. 내가 바라는 것을 정해놓고 믿어요. 바울이 인용한 모세오경에 어떤 글들이 적혀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라고 하니까 항상 거룩한 글들이 적혀 있을까요? 우리는 읽어봐서 알잖아요.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 한 사람을 택해서 민족을 이루시는데 아브라함 이야기가 모세오경이에요. 보면, 아브라함을 존경할 만한 구절이 몇번 있어요. 천사도 대접하고 생명 내놓고 중보기도도 했어요. 그러나 우리가 거짓말로 아내를 두번씩이나 팔아먹고 자기가 살고자 팔아먹었어요. 아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약속하신 아내 말고 첩 하갈을 들였어요. 또 아들 손자 야곱은 태어날 때 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는자, 시기심과 질투가 가득했고, 장자권을 시기했어요. 속이고 거짓말해서 얻고 아버지를 속이고 부모를 속이고 그리고 보니까 삼촌에게 속아 강제노역 하다가 속아서 결혼을 합니다 속이고 속고, 여자 좋아하고 돈 좋아하고 거짓말하고 사기꾼인 이런 야곱의 자녀들이 어떠했습니까? 가계의 저주가 내려간다고 하죠? 자녀들도 첫째는 서모와 동침을 하고 둘째 셋째는 살인자에, 넷째는 며느리와 동침을 하고 딸은 강간을 당했다. 끝에서 두번째인 요셉은 이 형제들이 돈 받고 노예로 팔아먹었어요. 이 아들들 중에서도 제일 압권은 애굽의 총리가 될 요셉을 팔아먹고 며느리와 동침한 유다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가문 중에서 제일 압권인 유다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직계 조상이 되는 거에요. 성령의 나라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주인공인거에요. 이 주인공들의 스토리에요. 오늘 마태복음 1장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가 이러하니라 나오는데 다 이런 계보입니다. 다말과 롯과 여리고 기생 라합과… 세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거죠. 우리도 남편문제, 자녀문제 경제적 문제 등등에서 구원 받기 위한 일로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하고 우리가 읽었으면 알기 쉽게 전해야 합니다. 단순히 교회위해서 집안을 위해서 읽고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문제에서 구원을 위한 일로 읽어보고 듣고 전해야 합니다. 바울이 다말리에의 문하생으로 최고의 율법 교육을 받았어요. 바울이 구약성경을 잘잘 꿰고 외우고 있습니다. 한번 보더라도 이렇게 성경을 잘 외우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아직 이렇게 성경을 받는데도 몇장 몇절 어디가 잘 안나옵니다. 부르심이 각각일 수 있지만 성경을 잘잘 외워서 사람 잡아 죽이는데 쓰일 수가 있더라고요. 성경을 잘잘 외우는데 가기만 해도 무서운 사람들이 있죠. 성경을 알기는 알았지만 사람을 살리고 모든 문제를 구원해줄 수 있는 말씀은 아니었던 것이죠. 로마 지배하에서 모든 유대인들이 꿈에서도 바라는 소원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잖아요. 그래서 매시야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는데 그 메시야가 하나님 나라를 도래해 줄 테니까요.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와 바울이 증언하는 하나님 나라가 똑같은 성경을 읽고 있는데 달라도 너무 다른 거에요. 같이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이 너무 다른 거에요. 유대인들은 칼의 힘으로 임하는 나라를 꿈꾸는데 바울은 십자가의 권능으로 임하는 나라라고 하잖아요. 유대인들은 다윗같은 영웅을 기다리고 있는데 바울은 십자가 형을 받은 나사렛 예수를 메시야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를 대체할 나라를 원하는데 바울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이렇게 가르치는 거에요. 아직 임하지 않은 나라가 있지만 이미 임했다는 거에요. 차라리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바울이 설명하기 쉬웠을텐데 아는 것이 너무 많고 게다가 잘못알고 있는 것이 태반이니까 바울이 말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제가 늘 말하면 어렵다고 하는 거에요. 가치관이 달라서 어려운거에요.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해도 많이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어제 송구영신예배를 짧게 했잖아요. 많이 해서 아는 것이 아니다. 그랬더니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하나님 나라가 거창한 나라가 아니에요. 우리의 이야기로 예수를 권하는 나라에요. 어떻게 권할까요. 때리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어요. 그러나 남편이 때린다고 거기서 나온다면 하나님 나라가 거기서 그치는 거죠. 때리는 훈련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환경에 놓으셨어요. 매맞고 수치를 당해야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아무리 배우자가 이상해도 이혼하고 바람피울 자격은 그누구에게는 없습니다. 어떠한 일을 당해도 인생을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되는 겁니다. 이 땅에서 같이 여행다니고 이것이 행복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큰 행복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안에서 만났어도 온전치 못하기 때문에 100% 천국을 누릴 수 없어요. 온전치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것이죠. 완전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에요. 날마다 실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것이죠. 가장 좋은 부부와 가정은 거기서 서로에게 부족을 느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우리는 신앙생활을 같이 해도 우리가 서로 손 붙잡고 가서 기도하고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자꾸 생각하는 거에요. 아름다운 집, 행복한 집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도 거기서 하나님 나라가 바라 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기분이 나쁜 사람이 있어요. 우리집 이야기인데 어떻게 알지 이러면서요. 예전에 공부 잘하는 아이를 교회도 잘나오는데 큐티도 잘했으면 좋겠다 싶어 큐티 모임에 보내라고 했더니 재수생 모임이라는 것이 재수가 없는 거에요. 어떻게 재수생 모임에 오라고 하냐며 사이가 끊어졌어요. 그 아이가 명문대를 갔어요. 저에게는 오죽이나 기도 안하면 애들이 맨날 대학에 떨어지냐고 저의 믿음에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말을 항상 들으려니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인 거에요. 심판의 클라이막스는 십자가에요.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천국을 누리는 삶을 살라고.. 모세의 율법 선지자의 말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어주신 이야기인거에요. 십자가가 빠지면 구속의 이야기가 될 수 없어요.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창세부터 계시록까지 심판의 메시지가 나오는데 이것이 최고의 축복이에요. 인간은 100% 죄인인데 심판의 말을 들어야지 축복의 들어야 합니까? 심판이 축복을 가져다 주는 거에요. 이것이 하나님 나라, 성령의 나라 이야기인 줄 믿습니다. 좋은 것만 이야기하는데 제 인생 최고의 축복은 이것도 저것도 축복이지만 맞아 본 것이 정말 축복인 것 같아요. 다시 생각을 해도 내가 왜 걸레질만 하고 있겠어요. 저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선생님을 할 수 있는 거에요. 나가기만 하면 선생님을 할 수 있는데 내가 왜 걸레질만 했는가 거기다가 매까지 맞을 수 있었는가.. 그런데 거기서 다른 사람 이야기 듣고 끝냈으면 하나님 나라 거기서 끝났다고요. 여러분들이 제가 매을 맞았다고 하니까 가장 은혜를 받잖아요. 그러니까 이혼할 생각 하지 말아요. 내가 부족해서 산 것이 아니에요.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구속사가 이해되십니까?
아직도 세속사에서 한치도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까?
세번째는 믿든지 안 믿든지 선택해야 합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한가지 선택해야 합니다. 24절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사도 바울이 이처럼 구속사로 성경을 꿰었지만, 이분은 8년이나 안 들리고 어제 그 기사 아저씨는 40년이 안 들리고.. 수도 없이 제가 전도한 친구도 들리는 것이 아니죠. 그럼에도 마지막에 꼭 들렸음을 믿어요. 베드로 시대가 지냈습니다. 사도행전 12장까지 베드로 시대였고 13장부터 바울 시대가 왔습니다. 엄청난 1,2,3차 전도 여행을 통해서 엄청난 열매를 맺고 있는데 바울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먹다가 할례자들을 두려워 하여 외식했다고 하면서 바울이 책망했죠. 그래서 바나바도 미혹케 했다고요. 그러면 그 자리에서 야단 맞으니까 베드로가 기분이 나빴을까요? 안 나빴을까요? 베드로는 수제자 맞아요.
베드로후서 1장 20절에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이거 바울에게 한 이야기한 것이에요. 우리가 지금은 이 이야기가 맞죠. 그땐 성경을 읽는 사람도 없고 성경도 없었죠. 그럼에도 사사로이 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예를 들어 큐티를 하지 말라고 했죠. 큐티하면 주관적으로 해석하게 되고 사사로이 풀게 되니 위험하다고 했어ㅇ. 이러면 하란 이야기에요? 말란 이야기에요? 중세시대에는 평신도가 성경 읽으면 교만해져서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그런데 바울이 성경 박사잖아요.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않고 하나님께 씌여지는 구속사로 풀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나님은 이 기가막힌 지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풀어 놓기 위해서 수많은 고난을 허락하셨죠. 얼마나 고난의 인생을 살았는지 사도행전을 통해서 한절 한절 다 읽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해가 100% 되실 거지만 안들은 사람은 50% 전혀 안들은 사람은 10% 이해 되겠죠. 바울의 고난에 대해서 몇 프로 이해 되십니까? 100% 이해 되시죠?
고후11장서부터 바울의 고난을 읊어보면, 23절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그러니까 모든 지도자들한테 이야기하는 거에요. 24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고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절: 여러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중의 위험을 당하고 27절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절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수많은 고생하는 것 보다도 바울이 교회를 많이 세웠잖아요. 그런데 그 교회 잘못되면 어떻게 해요. 저도 부족해도 생명 걸고 우리들교회에 오는데, 말씀 묵상 운동 잘못하면 어떻게 하냐 이런 생각 하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려면 분초를 다투는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 나라를 담대하게 능력 있게 전달 할 수 있는 거죠. 인간은100% 죄인인지라 아주 고난이 없으면 금새 우리 마음에 살이 찌기 때문에 예수의 일로 전하기 어려워지는 것이죠. 내 나라의 일로 자꾸 전하게 되는 거죠.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고난이 있는 사람일 때가 많고, 그 고난가운데 십자가를 튼튼히 붙잡는 사람이에요. 거꾸로 고난이 없는 사람은 믿기가 어렵죠. 안 믿어지면 핍박까지 합니다. 우리나라도 초창기에 초대교회처럼 어렵고 힘든 시절에는 예수의 일로 권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냥 힘들고 어려우니까 예수의 일로 전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이었습니다. 그때는 핍박당하던 시기였기 떄문에 어떤 목사님이든 은혜가 넘쳤어요. 오시는 분 마다 은혜를 끼쳤습니다. 강사가 풍년이던 시절이었어요. 그러나 지금 유학파, 공부 많이 하시고, 성공적인 목회전략 이 시대는 그때만큼 유명한 강사가 흔하지 않아요. 우리가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가지 않으면 십자가 이야기 하기기 힘이 드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말씀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해주는 이유가 우리가 너무 잘 살아졌기 떄문에 말씀이 많고 교회가 많으나 복음이 없는 시대라고 말하는 것이 지금하고 똑같은 스바냐 시대, 아모스 시대, 망하기 직전과 같은 거에요. 형편이 똑같은 거에요
아모스 8장 11절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밀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이 선지가 활동하던 이 시대에 곳곳에 기도 처소가 많고 산당도 많고 말씀을 재대로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까 말씀이 들리지가 않는 거에요. 교회사를 보면 늘 똑같아요. 잘 먹고 잘 살면 십자가가 없어지고 쾌락의 길을 걷는 것을 볼 수 있으니ㄲ 그때에는 집회와 율법과 전통만 남게 되어 버리는 거에요. 개신교도 전통이 되어버릴지경이 되엇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나의 모든 사건을 예수의 일로 보낼 수가 없는거에요. 설교를 듣기만 해도 은혜를 받는 시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고난의 종류가 바뀌었어요. 예수 믿는다고 핍박 받는 것이 아니라 잘 먹고 잘 살아서 모든 고난이 자녀 고난, 배우자 고난, 바람피고, 주식하고 그러다 보니까 그 자녀때문에 힘들고 배우자 때문에 힘들고 이러니까 이 시대가 평신도 시대 잖아요. 바로 아모스가 평신도인거에요. 어제 유다말기 스바냐 말씀처럼 패역하고 더럽고 포악한 사람들이 방백과 지도자들이라 그랬잖아요. 아모스가 7장 14절에 아모스가 아마사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그런데 6장 4절부터 보면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아모스 평신도가 적용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가다가 전체적인 구속사가 깨달아 지는 것이죠. 이것이 누구를 탓하는 것이 아니에요. 배부르고 등 따신 시절이 찾아오게 되고 십자가를 싫어하던 그 시절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거에요. 꼭 우리 같지 않습니까? 시대적으로 멸망 포로 회복이 로테이션 되는 거에요. 이 시대의 예레미야, 에스겔 모두 너희들이 우상처럼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바빌로 포로로 잡혀갈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내가 바란 하나님 나라하고 예레미야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너무 다르니까 믿지를 않는 거에요. 그래서 전쟁이 안난다고 하는 거짓선지자 하냐냐를 다 쫓아 다니는 거죠. 우리나라도 얼마나 하나님께서 복을 베풀어 주셨는데 정신 못 차리면 전쟁을 한번 더 허락하실 수도 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날 때는 징후가 여러 번 있었고 나서야 그 일이 진전된답니다. 정말 우리가 포로로 가야할 때가 있다.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아요. 아모스 선지자 같은 말은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은 거에요. 이혼하지 말라고 이혼하라는 곳 찾아가는 거죠. 각자 자기 지위에서 자기 노릇 잘해야 하는데.. 예수의 일로 전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내 삶에서 십자가를 잡아야 하는데 믿든지 안 믿든지 택해야 합니다. 바울의 긴 강론을 듣고 믿는 사람도 있었지만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믿기로 한 사람은 설득이 된 사람인데 유대인들의 고정관념이 대단하잖아요. 그런데 선입견과 편견을 버렸다는 것이죠. 내가 잘못 알고 있었네. 내가 틀렸어라는 고백이 있었다는 거죠.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것이죠. 지도자들이잖아요.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책임감이 대단했으니까요. 자기 확신을 버리는 것은 더욱 어려웠을 겁니다. 더욱이 그들은 세상의 중심 로마에 살고 있었잖아요.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는 또 다른 자부심이 있었죠. 내 나라가 너무 견고한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하나님 나라가 임하려면 내 나라가 무너져야 하고 내 나라가 무너지는 만큼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데 성령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성령의 나라라고 명명을 한 거에요. 하나님 나라는 감춰져 있어서 효과적으로 도와주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나라가 무너져야 합니다. 성령의 나라가 임하기 위해서는 내 나라가 무너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무너지지도 않았는데 바울의 말에 설득이 되었어요. 바울이 전하는 성령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틀렸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기적이에요. 대부분은 자기가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아요. 믿기를 거절하는 거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안 믿기로 작정하고 그 결심을 지켜가면서 내가 이겼다. 내가 내 민족의 정체성, 지도자로서의 책임감 내 자부심을 나는 다 지켰어 스스로 어깨를 두드리면서 자기 확신의 함정에 빠진지도 모르고 생명의 주님을 거절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믿어야 하는데.. 어떻게 성령의 나라로 초청할 것인가. 어제부터 오늘 계속 이어지는 말씀이잖아요. 하나님을 불러야 하는데. 유대인들이 신앙고백이 없는 거에요. 성경은 많이 알지만요. 이 이야기를 바울이 젖먹던 힘까지 다 내서 한절에 지나갔잖아요. 하나님 나라를 전했다고요. 제가 생각했을 때 적어도 이렇게 전했을 것이다 생각하면서 한절이지만 한 시간에 걸쳐서 한절을 가지고 설교를 했어요. 그러나 제가 이야기를 해도 여러분 중에 믿는 사람도 있고 안 믿는 사람도 있겠죠. 그렇죠. 이것이 나의 슬픔이라 이것에요. 내가 40년을 이야기해도 안 믿는 사람이 있어요. 내가 얼마나 애통이 되겠습니까. 성령의 나라가 대단한 나라인데. 아이고 어른이고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하는데 그 인정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중등부 선생님께서 지난 주에도 저희반 아이에게 다음주에 교회 나올거야 하고 물으니까 선생님 저 다음주에 아플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나같은 사람이 왜 중등부 선생님을 하고 있는지 몰라 그냥 다 때려칠까봐. 너희들도 선생님 보고 싶어하지 않는데 내가 왜 선생님을 하냐 나는 그냥 때려칠까 그랬더니 그 아이가 선생님 다음 주일에 교회 나올게요. 내년에도 선생님 해 주세요. 그러니까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라고 나눴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담대함이라고 나눠줬어요.
내가 계속 떠내려 가면서도 공동체가 있으니까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를때에도 붙들려가면서 아이에게도 물어보고 그 아이는 금새 자기가 틀렸다고 이야기한 거잖아요. 애고 어른이고 큐티를 하면 내가 틀렸다고 금새 인정하니까 거기가 성령의 나라에요. 제발 여러분 틀렸다고 인정 좀 하세요. 우리 주님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내가 틀렸다 이거 정말 어려워요. 칭찬을 많이 받아서 영육간에 부자인 사람들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정말 낙타가 바늘귀를 들어가는 것 만큼 어려웝요. 택자들에게는 사건을 주시고 마음이 가난할 수 밖에 없는 고난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래서 내가 좀 제발 틀렸다고 100% 옳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소리외쳐 부르시는 거에요. 주목할 점은 바울의 당론을 듣고 있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딱 두부류 밖에 없다는. 거에요. 믿는 듯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 믿는 것도 아니고 믿지 않는 것고 아니고 믿으려고 노력하는 중간 단계도 없어요. 회색지대는 없어요. 믿느냐 믿지 않느냐. 죽느냐 사느냐 그것밖에 없어요. 믿으면 그냥 믿는 거에요. 나머지는 다 믿지 않는거에요. 99.9% 합격이란 말이 가능해요? 이것은 합격이에요? 불합격이에요? 회색지대는 없다구요. 정말 모 아니면 도에요. 여러분들이 날짜 정해서 가는 예배 안드리고 올해 성령의 나라가 임했는데 아직도 집에서 진도가 청년의 까지 이르기에 멀었으면 우리는 다 똑같잖아요. 하루 아침에 갈 수 있잖아요. 터널에서 어떻게 갈 수 있어요. 우리 인생이 그럴 수 있다고요. 제가 수많은 모임을 하면서 구속사를 열심히 가르쳤지만은 vip모임도 10년 했어요. 그러나 유지가 안되요. 십자가 이야기는 아무나 듣는 것이 아니에요. 저는 너무 경험이 많아요. 모임을 13개를 했다고 했잖아요. 어떤 사람도 이해가 되지만 날마다 말씀이 들리시냐 성령 받으셨나고 묻고 있다. 내 생각을 좀 내려 놓으시고 내 나라에서 빠져 나와야 되요. 우리가 알면 얼마나 알겠고,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고, 명예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천하보다도 귀한 구원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내가 조금 있다고 성령의 나라에 들어오지 못하면 얼마나 손해겠어요. 이것을 인정 하시면서 한해를 시작하시고 성령의 이야기로 사는 여러븐을 초대합니다 주님이 옳으세요. 저를 인도해 주시옵소서란 고백이 2023년 시작하는 첫걸음 첫 단추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적용질문
남이 내게 대해 뭐라고 할 때, 그게 아니고요와 그러게요 중 어떤 말을 더 많이 합니까?
나에 대해 이것만은 잘 안다며 확신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백프로 옳으심을 믿습니까? 믿으려 하는 중입니까? 믿기를 거부합니까? 믿는 듯 믿지 않는듯 나도 나를 몰라 그러고 있습니까?
출처: 김양재 목사님 주일설교 말씀 녹취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