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요약

사도행전 28장 11절~15절 - 성령의 담대한 마음

vert_mont 2023. 1. 1. 04:31

2022 12 11

성령의 담대한 마음

사도행전 28 11~15

김양재 담임목사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이제 내년 경제가 매우 이제 안 좋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이 나오고 있죠. 그래서 걱정과 두려움이 어느 때보다도 앞서는 올 연말인 것 같아요. 성령의 기다림으로 성령의 조를 받고 피난처인 멜리대에 도착을 했지만 인간의 특별한 동정이 하나님의 동정과 다른 성령의 공의를 알게 하시고 고침받고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되었다. 함이 없기에 이루어가야 하는 구원 문제에 있어서 시기마다 종류가 다른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고침을 받았기 때문에 때마다 주시는 담대한 마음을 얻고 가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을 하면 담대한 마음이야말로 이제 구원받고 가는 인생이고 또 형제가 있는 인생이고 천국 갈 때까지 이유 달지 말고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 그런 마음이에요. 오늘은 성령의 담대한 마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첫째로 떠나는 인생입니다. 11절이에요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  

멜리대에서 석 달을 보냈습니다. 그 지중해에서는 우리가 알다시피 겨울에는 출항이 금지됐잖아요. 그 날이 이제 석 달이에요. 로마가 목적인 바울의 마지막을 향하는 시간에서 석 달은 대단한 시간인 거예요. 시간을 천히 여기는 것은 예수님을 천히 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은 그냥 불안한 것이 아직도 있습니다. 어쨌든 멜리데는 지금 몰타 섬인데 세계 최고의 휴양지가 되었는데 바울도 그 당시 완전 노인이고 질병 가운데서 또 그곳에서 보빌리오의 대접도 받으면서 이제는 안심하라 한섬에 걸리리라 말씀대로 섬에 걸렸으니까 이제는 좋사오니 여기서 쉬고 정착한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우리가 타고 떠나니 해요. 바울이 떠나니 우리 일행도 떠나야죠. 누구 옆에 누가 있는가가 내 옆에 누가 있는가가 참 너무 중요합니다. 바울 따라 떠나는 거죠. 

그런데 새롭게 만난 알렉산드리아 배는 이전에 알렉산드리아 배와 아주 다른 점이 있는데요. 그 배의 머리 장식이 디오스로라고 돼 있는 거예요. 이건 뭔가 하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와 바람을 핀 레다사이에서 나온 쌍둥이 아들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이름이에요. 이 쌍둥이 형제가 이제 사이가 좋아가지고 뱃사람의 수호신으로 배가 되었는데 그들을 기리는 자리에서는 그들을 구원자라고 불렀다고 해요. 그래서 로마인들도 이 디오스로신을 많이 좋아했는데요. 로마의 수호신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잘 생각을 해보면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은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전부 불륜이에요. 그러니까 지난번에 그레데 의지하면서 해안을 돌 때도 그때도 제우스가 이제 에우로페를 사모해가지고 소가 돼가지고 와서 도착한 데가 그레대고 에우로페가 유럽이잖아요. 그게 유럽에 효시가 됐다고 이제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제우스가 그러니까 자기 부인이 있는데도 지금 또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 하고 또 이렇게 불륜을 해서 난 쌍둥이 아들인 거예요. 결국 힘과 권세를 가지면 인간이 하는 짓은 악하고 음란한 짓밖에 없음을 이렇게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 문화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바꾸고자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바울이 탄 배는 유라굴로 광풍에 파손되었어요. 디오스로를 앞세운 배는 파산하지 않고 게다가 미리 멜리대에서 정박하고 바울까지 태워주게 되었어요. 광풍을 통과하고 여기까지 왔던 배는 난파되었는데 그 배와 출발지가 똑같은 곡물 수송선이 겨울을 그곳에서 나면서 준비되어지고 있었네요. 정말 귀한 일 아닙니까? 똑같이 떠났는데 바울을 싣고 온 배는 파산했고 우상을 섬기는 디오스 배는 이곳에서 정박해가지고 배가 온전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바울이 탔으니까 괜찮겠지가 아니라 바울이 탔기 때문에 배가 다 깨어졌어요. 이런 건 생각 못하셨죠. 그런데 그 깨어짐 때문에 모두가 구조가 됐습니다. 구원이 된 것이죠. 엊그저께 우리 본문 큐티 본문에 질 그릇이 깨어져야 보배가 보이는 거예요. 이 보베가 깨어져서 보이는 그 마음이 바로 담대한 마음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좋고 나쁘고를 우리 생각으로 정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구원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이 있어요. 바울이 타서 우리는 언제나 잘 되고 할 거다 이런 불안한 마음이 있잖아요. 근데 깨어져도 붙어도 이게 구원 때문이다 생각하면 사람이 담대해지는 마음이 생기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 믿었더니 된 것이 무엇이냐 할 때 우리가 담대해지는 것이 구원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딨겠어요. 이 세상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이게 담대해지는 거죠. 바울은 이런 헬레니즘 문화를 표방하는 배를 여전히 타고 로마로 향합니다. 그 배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라는 뜻의 그 물고기 표시인 익투스 아시죠? 그것으로 뱃머리 장식을 하고 떠나야 하는데요.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 물고기 표시가 초대교회 당시에는 비밀 표시고 죽음도 불사하는 표시였지요. 그거를 그냥 딱 걸고 가야 되는데 왜냐하면 지금 다 거듭나서 이제 떠나니까 그걸 좀 보여주고 갔으면 좋겠지만은 이렇게 안 될 때가 있어요.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물고기 표시는 믿는 자에게 다 알려서 자동차의 목걸이에 그냥 다 헬레니즘 문화처럼 곳곳에 달아놓고 그려놓고 그렇지만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기보다는 부적처럼 붙여놓는 시대가 되어서 그게 종류가 다른 또 디오스구로 표시가 된 거죠.  아래에 새 것이 없어요. 이제 타고갈 배야말로 진정한 물고기 표시를 하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거기가 276명이 다 달라졌으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배는 제우스를 신봉하며 디오스로 표시를 하며 로마로 가는 바울 마음이 어땠을까요. 

 

저는 이제 월드컵을 하면서 믿는 사람도 많지만 얼마나 안 믿는 사람도 많겠습니까 전 세계의 축제라고 하지만은 정치요 돈이요 권세요. 이 모든 것이 지금 모여서 이기면 좋고 죽으면 죽고 싶고 지면은 막 죽고 싶고 이게 스포츠 정신이 정말 실종이 되고 우리는 뭐 치킨 해놓고 그냥 관람만 하면 되지만은 치킨 시켜놓고 그렇지만은 또 많은 사람들이 응원 나가지고 또 이렇게 밤중에 나가니까 또 술을 먹고 이렇게 되는 것도 있을 수가 있죠. 지금 너무 믿음이 좋은 바울이 지금 제우스를 신봉하면서 디오스구로가 장식된 배를 타고 출발을 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형식이 본질이 너무 중요하지만 형식이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 시대의 문화 이런 거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좀 생각하면서 가자고요. 안 그러면 디오스구로고 표시를 다 때려부셔요 그렇지 못할 때도 있어요. 말씀대로 살아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제 바울 일행은 뱃머리의 우상을 모신 우상숭배 배를 타고 있지만은 그 우상숭배를 넘어서 참 하나님을 의지하며 항해를 시작합니다. 속은 다 하얀데 지금 빨간 배를 탄 거예요. 사과처럼 하얀데 그럴 수도 있어요. 우상숭배를 넘어선다는 것은 내 안에 가득한 우상을 발견하여 버리는 거예요. 우상숭배의 죄악을 회개하는 것이죠. 우상숭배를 어떻게 회개하겠습니까 내가 섬기던 우상이 무너지는 사건을 당하고 그 사건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상숭배의 죄악을 회개할 수가 있는 거죠. 

 

적용 질문이에요. 

여러분은 지금 구원받았는데도 여전히 보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디오스 상처럼(그 기호처럼) 아직도 내가 떠나지 못하고 있는 우상이나 미신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아버지가 친정 아버지 엄마가 예수 안 믿어도 그냥 너무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요. 뭐든지 나를 다 공급해주고 너무너무 좋다고 오직 예수만 안 믿어. 그러면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 자리에 이 안 믿는 부모가 가 있겠죠. 그렇죠 근데 문자적으로도 지금 우리가 미신을 또 이렇게 섬기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내 안에 우상이 무너지는 사건을 겪으며 내게 들린 말씀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은 곳곳에서 익투스를 외칩니까 디오스 그로를 외칩니까?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에요? 제우스에요?

 

 

 

성령의 담대함을 위해 두 번째는 언제 떠나야 되냐면 남풍이 일어날 때 떠나야 합니다. 12절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거기서 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내는 난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담대함은 우상에서 떠남에서부터 비롯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러면서도 본을 향해 날마다 떠나야 돼요. 내가 오늘도 또 떠나야 될 것이 있어요. 그러나 바로 이 때를 알아야 돼요 수라구사 레기온 보디올이 구절에 다 나오는데 석 달 동안 가만히 있게 하실 때는 언제고 떠나니까 두 절의 세 지명이 연거푸 나옵니다오늘 설교의 지명을 지도로 좀 보시겠습니다. 이렇게 수라구사, 레기온, 그러니까 지금 저기 장화의 구두코 같은 거기가 시칠리아 우리나라 제주도 같죠. 그렇죠 멜리대에서 그래서 이제 그 시칠리아 섬에 수라구사까지 가는 게 한 백오십 킬로 정도 돼요. 근데 거기서 사흘을 있었고 그 레기온이 드디어 이제 이탈리아 완전히 이제 구 코에요. 그 앞에 그런데 거기에서부터 저기 보디올까지 한 340킬로미터 되는데 거기를 가서 그다음에 거기에서 육로로 압비오 광장에 가가지고 이제 로마로 가는데 거기는 한 이백이십 킬로 정도 오늘 여행을 좀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탈리아 끝부분에 아래 지금 남쪽 아래에 지금 이제 그 섬을 봤는데 멜리데에서 간  라구사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나 지렛대의 원리로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으로 유명하죠. 또 키케로는 모든 도시 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수라구사를 평했어요. 그들이 거기가 아름다워서 사흘씩이나 머문 게 아니고요 그러니까 지금 바울을 영접하는 멜리데도 최고의 휴양지, 수라구사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 계속 아름다운 곳을 가지만 있으면 안 되고 떠나야 되는 거예요. 떠나야 돼요 그런데 왜 사흘이나 머물렀냐 난풍을 기다리나 그랬죠. 기다리느라고. 그러니까 유라굴로 강풍 때도 그 미에서 베닉스까지 서울에서 천안 정도 되는 거리밖에 안 돼 아주 짧은 거리인데 이 바람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조심조심하면서 가는 것이 느껴지는 거예요. 여러분 미항을 떠날 때도 남풍이 불긴 했어요. 
기억나십니까 그래서 
닻을 올리고 루루랄라 하면서 출발했잖아요. 근데 겨울 풍은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시인 거예요. 곧 유라굴로의 광풍으로 변했죠. 그때 바울이 말렸지만 전문가들이 다들 나서서 반대하니까 할 수 없이 또 같이 떠날 수밖에 없어요. 바울은. 그러다가 배가 대파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내가 반대해도 어쩔 수 없는 결혼이 있고 안 들으니까 그런 때가 있어요. 속절없이 기다려야 할 때가 많아요. 근데 지금 기다리는 풍은 겨울 풍이 아니고 봄의 풍이에요. 그래서 완전히 다른 풍인데 이걸 기다려야 돼요 그래도 급하다고 바늘허리 꿰어서 못 쓰는 거예요. 급할 때일수록 돌아가라고 하죠. 

 

저도 남풍이 부는 줄 알고 결혼을 했어요. 결혼을 오래전에 하신 부모님 결혼의 전문가이신 부모님이 하라고 하고 지금 있다면 결혼 정보센터가 전문가라면전문가들이 최고로 치는 트레이드 그 결혼 아니었을까요. 근데 지금 생각하면 저에게 사인을 주셨어요. 제 감정의 말을 안 듣고 또 믿음으로 서로 확인하고 기도하고 한 결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장로님 권사님 양쪽이 다 장로님 아들 딸이지만은 그렇게 말씀으로 인도 안 받고 이런 얘기를 안 했어요. 그러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제가 불안한 것이 있었는데 어떤 사인을 주셨냐 하면은 남편이 130번 선을 봤다 그러는 거예요. 지나고 보면 그거 굉장히 불안한 말인 거죠. 보통 이상한 사람이 아닌 거잖아요. 그런데 이게 이제 남풍에 속아가지고 불어 잊고자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은 그때는 모르니까 그러면 백삼십 번이나 받고 나를 그 다음에 택한 거니까 내가 좋은 거야 이렇게 그러니까 나도 속고 남도 속는 그렇지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6개월 교제하는 동안의 풍은 정말 너무도 잠시의 남풍이었는데 광풍이 분 것은 정말 얼마 안 되어도 아니고 결혼 첫날부터 북동풍이 불어닥쳤어요. 이제 세상적으로 힘들면 광풍이고 좋으면 남풍이고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고요 바울이 떠날 때도 떠나고 나니까 잠시 남풍이 불었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런 얘기를 성령님이 아니고는 해석이 안 되는 거에요. 제가 얘기를 해줘도 해석이 안 돼 그래서 여전히 물신 결혼하고 할 거 다 해요. 여기 와서 들어도. 해석도 안 되고 환경만 바라보고 근거도 없이 영원히 풍이 계속될 것을 바라보고 디오스로 장식을 달고 세상 정력으로 출발하는 것도 모른 채 무서운 항해를 시작하죠. 그러니 금세 저에게 이 북동풍 광풍이 몰아치는데 저에게 담대함이라고는 진짜 일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생각해볼수록 제가 이제 녹초가 되었지만은 주님이 동행해 주셨기 때문에 수많은 모든 과정을 거쳐서 지금 이 자리에 제가 있네요. 그러니까 지금은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하면서 조심조심하며 남풍이 불 때를 기다리며 한 걸음씩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거는 떠나야 되는데 언제 떠나야 되는가 수라구사에서는 사흘 또 여기서는 하루
, 멜리데에서는 석 달 이것 또 저기  보디올에서는 일주일 이거 어떻게 알겠어요. 여러분 결론부터 말하면 그러니까 목장 공동체가 없이는 이건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힘으로는 알 수가 없어요. 한 걸음씩 인도받고 남풍을 기다리며 가니까 레기온에 도착을 했어요. 드디어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던 이탈리아 반도에 도착을 했습니다 모양이 아까 구 앞쪽 호에 해당하는 지역의 항구 도시인데 여기에서 보디올까지는 남풍 덕분에 삼사십킬로니터나 떨어져 있는데 단 이틀 만에 도착을 했어요. 이거는 아무리 해도 5일 이상은 걸려야 되는데 이건 이제 기적인 거죠. 그만큼 남풍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근데 여러분 풍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자연 바람이잖아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아니면 우리는 갈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남풍을 주신다고요 그러니까 전문가가 소용이 없다고요 여기는 보디올은 일찍 발달한 상업 항구 도시인데요. 로마 다음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회당이 있었다고 하니까 이 회당을 중심으로 기독교인들이 생겼겠죠.


그래서 이제 기다리다 기다리다 출발을 하면 누구도 갈 수 없는 거리를 이렇게 순풍에 돛단 것처럼 가게 하시는 거예요. 진짜 말씀으로 같이 나누고 이렇게 가는 거
, 저는 사역을 위해서 작전을 짤 수가 없어요. 저희 입장은. 하루하루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러나 날마다 로마에 도착하는 마음으로 전도를 하고 가정 살리고 하다 보니까 수라구사에서는 사흘이나 있게 하셨는데 저도 13년간이나 사람이 많이 모여도 신학도 안 하고 평신도 사역이라고 할 것도 없이 계속 수라구사에 머물러서 수라구사 우리 집에 머물러서 날마다 그냥 큐티 모임 열었어요. 13년 동안 13년이 되니까 남풍이 드디어 불어서 레기온으로 가게 하셔서 이제 큐티 선교회가 창립되게 하셨죠. 그래서 큐티의 남풍이 불었어요. 그게 뭔가 하면 교단을 초월하시는 목사님들께서 자발적으로 이사가 다 되어 주셨어요. 여러분 제가 여자 목사죠 아직도 안수가 안 되는 교단이 많아요. 안수가 안 되는 대표적인 합동 교단 중에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이 장소를 빌려주시고 축도까지 해주시고 큐티 선교회가 창립되었어요. 2000 7 17일에 그리고 또 안수가 안 되는 또 다른 이제 고신, 합신 이런 목사님들 우리 남서울교회도 합동이고 은혜교회는 합신이고 고신의 정지철 목사님 무슨 또 그러니까 우리 홍정일 목사님도 전부 여자 한 수 안 주는 목사님들만 지금 쫙 모였어요. 물론 이제 통합측 목사님도 계셨어요. 근데 이분들이 여성 목회 어쩌고저쩌고도 이사가 되셔서 전폭적으로 밀어주셔서 자연스럽게 지금 이제 큐티 선교회가 시작되게 하셨으니 생각하면 이거야말로 기적 아니겠습니까그런데 레기온에서 보디올은 이틀 만에 340킬로미터를 갔기 때문에 그냥 큐티 선교회가 세워지고 나니까 남풍이 솔솔 불어가지고 그냥 13년 동안 있었는데3년 만에 우리들 교회가 창립이 되었어요. 훨씬 많은 키로를 빨리 오게 된 거죠. 늘 사인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았죠. 그런데 이게 큐티 말씀에 쌓인 대로 움직이면 앞으로 앞으로 나가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주변에서 말리는데도 이 정도면 되겠지 그런 거 없어요. 밀어붙이듯 결정하고 떠나선 안 됩니다. 성령께서 일하실 때는 언제든지 억지로가 아니라 남풍이 불듯 자연스럽게 일하십니다. 옳다고 명분이 있다고 해서 상대방을 무시하고 이렇게 밀어붙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그렇게 일하지 않으세요. 내 생각이 맞더라도 그 생각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감정이 상하고 친다면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해요 물론 여기서 성령의 공의가 또 있어야 되겠지만은. 항상 난풍이 불듯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야 이렇게 순풍이 불듯 목적지에 갑니다.  이 배에는 이제 3개월 동안 역사상 가장 많은 성경을 집필한 위대한 스승인 바울에게 성경 공부로, 현장 학습으로, 강풍 고난으로 그리고 이적과 치료로 훈련을 받은 복음 특공대 276명이 타고 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바울과 죄수들이 아니잖아요. 갇혀 있던 시간 동안 바울에게 들은 그리고 광풍 가운데서도 말씀을 듣고 살아난 복음의 용사들이 이 배를 타고 지금 짐승의 권세 용의 , 세상에 그냥 완전히 그 권세를 향해서 지금 달려가는 거하고 같잖아요.  복음의 폭탄을 실은 배 사람이 폭탄인 거죠. 복음의 폭탄 그러니 남풍이 안 불 수가 없죠. 모든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 남풍을 불게 하셔서 이 배를 빨리 로마로 보내십니다. 여러분들 우리들 교회가 복음 특공대 아니겠습니까?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이지만 우리들에서 고침받고 훈련받고 다들 로마로 향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적용해 보세요. 

사명이 있어 남풍을 기다립니까 내 환경을 벗어나고 싶어 남풍을 기다립니까
여전히 복풍이 부는데 내 모든 것이 삐걱거리는 잡음이 들리는데 난풍의 환상을 가지고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 기다려야 할 때입니까? 떠나야 할 때입니까?
이거 어떻게 알아요. 일주일 하루 사흘 석 달 여러분 어떻게 알아요. 여러분이 아무리 전문가지만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남풍이 불 때를 어떻게 알아요. 이건 공동체 없이는 불가능한 겁니다. 

 

성령의 담대한 마음은 이제 세 번째 형제들이 맞으러 올 때 이와 같이 로마로 가야 주십니다. 
형제들이 맞으러 올 때 이와 같이 로마로 가요. 14 15절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그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를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아멘 

 

이제 점점 목적지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떠나고 떠날수록 이제 로마가 코앞에 보입니다. 그러니까 담대함이 너무 필요해요. 석 달 동안 멜리데에 있을 때에 보블리오가 대접을 너무 잘해줄 때 천금 같은 그 시간을 보냈어요. 왜 보냈는지 모르지만은 석 달 동안이나 그 토인들과 같이 있게 하셨습니다. 근데 바울이 이 일각이 여삼추인 이때에 그렇게도 가고 싶은 로마, 로마의 결국은 무엇이었나요. 결국은 참수형이 기다리고 있죠. 그러니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인 것이에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성령의 담대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늘 떠나야 되는 거예요. 아름다운 것을 늘 떠나야 하는 거예요. 죽음이 기다리고 있어도 예루살렘으로 떠나야 하고 또 로마로 떠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너무 짧고 우리는 다 죽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잘 죽는 것이 최고의 상 아니겠습니까? 우린 밑둥이 잘려진 나무. 이제 말라갈 일밖에 없어요. 그런데 알렉산드리아 배의 정착 항구인 보디올에서 로마까지는 220km 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부터 로마까지는 그 로마의 도로가 너무 잘 닦아놨잖아요. 팍스 로마나 그냥 모든 길은 로마에, 그 일 국도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쫙 향해 걷기만 하면 그 꿈에도 그리던 로마에 도착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 우리는 우리 같으면 보디오에 도착하자마자 거기서는 육로로 갈 수 있으니까 우리 인생의 최종 목적지인 로마를 향해 걷기 시작했을 거예요. 하지만 바울은 자기 일정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는 죄수 신분이잖아요. 바울에 대한 모든 결정은 후송 책임자인 백부장 윤리에게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지막까지도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목적지가 바는 앞에 있더라도 우리는 묻고 가야 해요. 허락을 받아야 해요. 이것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라도 내 위에 세워둔 질서에게 묻고 가야 해요. 이것이 아무리 구원을 위한 일이라도 내게 허락한 질서 가정에서는 남편 부모 직장에서 또 직장에서도 내 위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 질서에 끝까지 순종하며 묻고 가야 하는 거예요. 굉장히 여러분들은 항상 성경에 토시를 놓치면 안 돼요 바울이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쓸 때 니가 앞으로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그랬잖아요. 예언을 받았으면 바로 로마로 출발했으면 일주일도 안 걸렸을 건데 그냥 그때그때 환경과 질서에 순종하느라고 감옥, 광풍, 돌팔매, 독사 이런 거를 다 거쳐가면서 내게 주신 말씀으로 하루하루 물으며 인도 안 받고 가는 것이 로마로 가는 거예요. 이것이 성령의 담대함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사는 것이 선교이고 천국이고 최고의 담대함의 비결이에요.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지고도 담대함이 없으면은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기서 근데 만난 형제들은 오노상 크리스토 그리스도인임을 알 수가 있어요. 즉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이곳에서도 만나 교제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듣고 흩어진 사람들일 수도 있고요. 바울이 로마서를 보내서 복음이 미리 전해져 받아들인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에도 말씀과 문서를 보내며 가는 것 또한 이와같이 로마로 향하는 길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멜리데인들을 전도하고 지금 오는 길이에요. 근데 그 사람들에게 복음만 전했어요.  그 사람들이 성숙해져 가는 건 지금 못 봐요. 그렇죠? 복음만 전하고 예수가 그리스도다 아멘 복음 제시에서 영접만 지금 했어요. 병만 고쳐주고 떠났어요. 그런데 바울이 만나고 싶은 사람은 형제인 거예요. 주안에서 형제들을 만나서 서로 죄인임을 확인하는 만남은 너무 기쁨이에요. 로마로 가는 담대함의 비결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직접 로마로 갈 수 있지만 가기 전에 먼저 말씀을 전달하는 것도 이와 같이 로마로 가는 길인데요. 바로 이 죄인들의 나눔인 큐티인이 영문판으로 번역이 되어서 점점 선교 현장의 큐티인 영문판을 보급하고 있는데요. 이 또한 로마로 가는 길이겠죠. 바울은 일주일의 시간을 보디올에서 믿음의 형제들과 보내고 이와 같이 드디어 그리도 외치던 로마로 향합니다. 여기서 왜 일주일이 있었을까 백구장 윤리오의 볼 일도 있었을 것이고 우리는 몰라 그거요. 그런데 분명히 그때그때마다 인도함이 지금 있는 거예요.  그 믿음의 형제들과 일주일 보낸 것이 담대함의 비결이에요. 

15절 읽습니다. 그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앞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아멘 

 맞으러 번역한 헬라어 단어 아판테시스는요 이 마중을 의미합니다. 특히 높은 사람 귀한 사람 황제 황제의 사절 총독 장군 이런 사람을 예를 갖춰서 환영하는데요. 그냥 만나러 나가는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로마의 장군들이 전쟁을 끝내고 개선을 해서 돌아올 때 개선장군을 맞으러 갈 때 그때 사용되는 단어에요. 근데 생각해보세요. 초라하고 병든 늙은 이 바울이 지금 이제 로마로 들어가는 그 순간을 하나님께서는 그러니까 어떻게 보고 계신 거예요. 모든 전쟁을 승리로 끝내고 돌아온 개선장군으로 지금 보고 계신 것이에요. 

사람들이 볼 때는 어때요? 백부장이 호송하는 초라한 죄수잖아요. 죄인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아펜테시스라는 단어를 쓰면서 바울을 하늘나라 최고의 장군으로 맞아 드리시는 거예요. 비록 백부장이 질서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 눈에는 모든 천군 천사 위에 장군으로 보고 계신 거예요. 여러분들이 사장의 질서남편의 질서 그냥 이 모든 질서 가운데 있지만은 여러분들을 하나님 눈에는 천국 천사의 장군으로 보고 계신 인생을 살고 계십니까? 형제들과 죄인들의 나눔을 하면서 이와 같이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무시하는 죄패를 가지고 있고 큰 부와 능력도 없는 초라한 모습이지만 이 말씀 하나 붙들고 오늘도 내 자리를 지키며 살아낼 때 저 천국으로 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최고의 개선 장군으로 맞이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번 주 한 목자님의 나눔인데요. 참 목자님이 자신의 그 연약한 부분들을 이렇게 다 나눠주셨어요. 저는 이게 대단한 나눔 같지 않지만은 그냥 일상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나눔이거든요. 이런 나눔이 주인들의 나눔이에요. 이것이 형제의 나눔이에요. 나는 예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14년 동안 직장을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이 지나갔는데 그냥 미움이 가득한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이전에는 사장님이고 지금은 부사장님이고 인정이 되지 않고 용서가 되지 않는데 늘 불공평하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 또 회사에서 진급이 되지 않는 것에 불공평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아내가 내게 너무 잘해주고 있음에도 남자로서 늘 불만이 많다. 심지어 아들이 외가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선물도 많이 받는데 그걸 즐겁게 생각하기는커녕 질투하고 시기하고 열등감을 가진 아비였다.  새로운 존재가 되었는데 불 붙기 시작한 목장 예배에 불을 꺼뜨리는 존재가 나다 새로운 목장 식구들이 오셨는데 마침 코로나에 걸려 목장 모임을 쉬고자 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왜 목장 모임을 쉬냐고 하는 말에 돌이키지 않고 서운함이 더 먼저 들었다. 늘 내 환경만 생각했다. 여러분 이런 나눔을 어디서 하겠어요. 서로 죄인이니까 하죠. 들어줄 형제들이 있으니까 이 나눔을 하죠.  여러분 이런 죄인의 나눔은 안식이 있어요.  이런 얘기를 뜨신 밥 먹고 왜 하겠어요. 나의 이 치부를 이렇게 얘기를 하면 믿음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까 이게 자기의 죄를 그냥 이런 사람하고 친하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사람하고 불편해서 어떻게 살아 이 얘기를 해야지 저는 이런 분이 개선장군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오늘 왜냐하면 이 본문이 그렇잖아요. 바울을 지금 맞으러 와서 개선장군 맞이하듯이 누가 형제들이에요. 
형제들이요
. 로마에서 비오 광장까지는 64킬로미터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는 49킬로미터 정도니까 각각 걸어서 한 이틀은 걸렸을 거예요. 근데 로마에서 온 성도들을 보자마자 바울이 너무 반갑고 감격스러워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고요 이거는 바울이 난파 직전에 알렉산드리아 호에서 음식을 주면서 하나님께 축사했다고 하는 말과 같은 말이에요. 바울의 소식을 듣고 맞으러 오늘 로마 성도들의 역할이 이렇게 컸어요. 이틀 길을 걸어서 왔으니까 어떻게 보면 큰 수고 같지만 어떻게 보면 또 별거 아니잖아요. 시간만 내면 누구나 또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이 소식을 들을 때 관심을 가지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성김이에요. 그런데 이 성김이 바울의 마음을 가장 감동시켰어요. 로마행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감사와 담대한 마음을 바울에게 주었어요. 우리 성도들의 간증을 듣다 보면 종종 이런 나눔을 하시죠 목장에서 차려준 밥에 마음이 녹았다. 눈물이 났다. 이런 간증을 어렵지 않게 들어요.  큰 고난을 당한 분들일수록 그렇죠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밥 한 끼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 마음을 움직이는 그냥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한 주를 살 수 있는 또한 평생이 바뀔 수 있는 그 담대한 마음을 주는 최고의 응원인 것입니다. 

 

나님께 감사하니까 또한 담대한 마음을 이제 얻게 되는 거예요. 담대한 마음 타르소스는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쓰인 단어인데요. 담대함 용기라는 뜻이거든요. 바울이 예루살렘 공의 앞에서 변론한 날 밤 주님이 바울 곁에 서서 담대하라. 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예의를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기억나시죠? 진짜 매맞고 마음이 춥고 힘든 밤일 텐데 우리 주님이 바울 옆에 서서 담대하라 예수님도 늘 우리 보고 담대하라 이거 명령으로 쓰셨는데 요한복음 16 33절이 중요해요. 담대하는 이유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예 요한복음 16 33절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환란 중에 어떻게 담대합니까 이 환란 많은 세상을 주님이 이기셨기 때문이죠.  어떻게 이겼습니까 그 환란을 어떻게 이깁니까? 바울이 수많은 환란을 당하고 보디올에 딱 도착을 했는데 주님이 개선 장물처럼 맞아주셨는데 누구로 인해 형제로 인해 형제 맞아줌으로 인해 그러니까 어떻게 적용합니까 내가 내 자리 잘 지키면서 남풍을 누가 줘 주님이 주잖아 주님을 붙잡는 거예요. 내가 내 자리 잘 지키고 이 믿음을 붙잡는 것만으로도 옆에 사람에게는 큰 담대함을 주는 거예요. 내가 뭐 대단한 걸 하는 게 아니에요. 목장에서 이렇게 하나 나눠주는 게 옆에 사람에게는 아주 담대함을 주는 비결인 거예요. 기도했던 지체가 공동체에 잘 붙어있고 그러니까 낙태를 고민했던 자매가 큐티하고 돌이켜 생명을 지키고 이혼하려고 밤새 고민하고 지옥의 시간을 보냈던 가정이 가정을 지키고 믿음 위에 서 있다는 소식만 들어도 저도 담대함을 얻는 거예요.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해가 안 되세요. 여러분들이 이혼을 안 하고 낙태를 안 하고 그랬을 때 바울이 오늘 담대함을 얻는 것처럼 저도 이 말씀이 그래도 이 말씀 부드럽구나 제가 얼마나 담대함을 얻겠습니까 이해되시죠 목자 여러분들도 이게 이해가 되실 거예요.

 

제가 이번 주일에 또 편지를 하나 받았어요.
날마다 큐티하며 성령의 고침을 받고 새로 태어난 이 집사예요.  재혼 가정으로 또 이혼의 길목에서 이제 부부 목장에 한 번 참석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이혼하자고 남편과 처음으로 부부 목장 탐방을 간 이후 지금까지 부부 목장 개근하며 드디어 남편이 주차 봉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365일 술 마시며 골프의 당구의 축구에 정신없이 군대 구신 들린 자처럼 살며 폭언에 폭행을 하여 경찰서까지 다녔던 남편이 지금은 술을 주 1회 정도 마시고 운동장 교인이었는데 한 달 전부터 예배당 안에서 온전히 예배를 보고 사계절 내내 슬리퍼를 신고 나다니던 사람이 며칠 전부터 처음으로 슬리퍼를 신지 않고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남편이 이렇게 멋있는 사람으로 변했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하루라도 큐티를 안 하면 눈에 가시가 생기는 죄가 됐어요. 저는 일주일 동안 부부 목장 남목장 사수하고 수요 예배 주일 현장 예배를 위해 하루하루 삽니다. 주일은 새벽에 일어나 남편 깨우다 딸아이 깨우다 식사 챙기며 같이 가는 지체까지 데리고 힘은 운동장에 도착하는 것이 미션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함께 로마로 가는 거예요.

형제의 맞아줌으로 이와 같이 이 복음은 저 혼자만의 사역이 아니죠. 우리들 교회는 이와 같이 서로 감사하고 담대함을 얻어 함께 로마로 가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누구 한 사람의 업적이 아니라 우리들의 상급이며 우리들의 행전인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누구의 소식을 들을 때 감사와 담대함을 얻었나요?
로마가(목적지가) 코앞이라고 지금 내 방법대로 가나요? 아니면 질서와 교제와 순종을 통해 이와 같이 로마 (목적지)로 가고 있나요. 

여러분 부동산도 모두 계약하기 전에는요 아무것도 믿으시면 안 돼요 계약서에 도장 찍을 때까지는 코 앞이라고 내 방법대로 가면 안 돼요 로마는 날마다 나의 로마가 달라지죠 그렇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불안할 때마다 떠나야 되는 거예요. 붙들고 있는 게 많아서 불안한 거예요. 떠나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잘못될까 봐 부들부들 떨어요. 잘못되면 우리가 예수 믿다가 순교받기에 더하겠어요. 이해가 안 돼요?근데 진짜 우리가 인생이 짧잖아요. 제가 그 이런 나눔을 삼십 년 사십 년 전부터 했는데 하나님이 저를 아직 살려두고 계시잖아요.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나를 빨리 데려가시지 않더라고요 내 생명 걷어가라고 그랬는데 그렇게 기도 안 한 우리 남편을 먼저 데려갔어요. 우리 남편이 정말 병원을 아주 그냥 전문가처럼 얼마나 얼마나 성실하고 열심히 환자들에게 근데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해야죠 그렇죠 예 두려움 없이 두려움 없이 근데 두려움이 또 어떻게 없겠어요. 있지만은 이렇게 날마다 하나님 방법대로 질서와 교제를 통해서 한 목사님이 유수한 신학대학을 나오시고 목회하시는 중에 우리들교회 목회자 세미나와 양육을 다 받으셨어요. 근데 그때 충격을 받고 이 목회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그대로 녹아져야 된다고 생각을 하셨는데 그러다가 어느 주일 아침에 목사님과 다툰 사모님이 우리들 교회로 도망쳐와서 등록을 하셨어요. 그래서 이 목사님이 그다음 주일에 성도들을 전부 한 차에 태워서 우리들 교회 등록시키시고 본인도 등록을 하시고 지금은 부목자가 되셨어요. 저는 이제 뭐 이렇게 다 오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이 부목님은 예 사모님 사모 두 명의 자녀를 입양했어요. 아내도 또 이혼하기 전에 이 목사자님을 만났는데 그 후 이혼하고 두 분이 재혼을 했어요. 얼마나 상처가 많으시겠습니까 이제 저는 아 이 정도 돼야 우리도 교회 말씀이 들리는구나 유다와 요셉 얘기를 하잖아요. 시아버지하고 며느리하고 동침한 유다가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됐다고 하는데 훈련 많이 받으셔가지고 빨리 나가서 제대로 된 목회하세요. 여기서 이제 훈련 다 받으셔가지고 그 성도들 그대로 데리고 나가셔가지고 여기 이제 훈련 받으러 왔다고 생각을 지금 이제 하시고 이게 너무 너무 많으면 이제 못 오셨겠는데 진짜 우리들 교회에 간증은 종류와 장르가 정말 이제 끝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쪽에서 또 마음이 또 이제 또 아프기도 하고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