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요약

에베소서 5장 21절~33절 - 사랑받고 사랑하고

vert_mont 2022. 5. 26. 05:02

본문: 에베소서 521~33

제목: 사랑받고 사랑하고

설교자: 김양재 목사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제 책 날마다 큐티 하는 여자의 에베소서 부부생활 하는 것이 나와 있어요. 이 얘기를 또 하고 지나가고자 한다. 새가족들이 또 많이 와서 제가 늘 했던 이야기를 못 들은 분이 많이 있어서. 그런데 이제 사랑과 순종의 이야기를 구속사적으로 읽지 않으면 이것처럼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이 없다. 이 땅에서 가족으로 맺어진 이유는 오직 구원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그 말씀이 521절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이다. 사실은 사랑도 경외함도 피차 복종하는 것이다. 피차 복종해서 사랑받고 사랑하려면

 

          첫째로 주안에 갇힌 자가 되어야 한다.

          22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우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41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주 안에서 갇힌 자 되어 부르심에 합당한 적용이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하신다. 남편이 아내 머리 됨이고, 그 남편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하는 것이라고.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고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신다. 그런데 서로 기뻐서 복종하면 얼마나 천국이겠는가. 이것이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이고 세월을 아끼는 방법이다. 오늘 이제 우리가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적용 부분을 많이 다루려고 한다. 땅의 언어를 많이 써 보겠습니다. 무엇에 복종해야 하는가. 우리가 복종하는 것이라고 하면 참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복종하는 것과 참는 것하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죄보다 상대방의 잘못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참지만 복종은 안되는 것이다. 자기 죄를 본다고 해도 이렇게 안되는 사람이 있다. 남편의 인격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에 복종하라고 했다. 그러면 남편의 알콜 중독에 복종하라는 거에요. 그런데 어떻게 알콜 중독에 복종이 되겠어요. 바로 여기서 자기 죄를 못 보면 복종할 수 없어요. 구속사가 안 깨달아지면 제가 설교하는 것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데 그런데 최선을 다해서 설명을 해보려고 하는 거에요. 남편의 무능력에, 백수에, 가정환경에, 약점에 그 무거운 짐에 복종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그 누군들 복종을 못하겠습니까. 좀더 구체적으로 복종이 안되는 이유를 들어보면 남자가 돈 번다고 큰 소리 치는 것은 당연한데 자기 죄를 본다고 하는 직장 나가는 아내가 나는 일하고 왔는데 일하지 않는 남편은 집에서 밥을 안 해 놓고 있는거냐고. 이게 너무 화가 나는 거에요.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복종이에요? 아니에요? 여러분도 좀 think를 해보세요. 여자는 안 벌어도 되는 것을 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본성이 가르쳐주기 때문에 생색이 나는 거에요. 여전히 내 죄보다는 돈이 왕노릇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주님이 왕노릇하지 않는 집안에서 돈 잘벌어오는 남편에게 세상적으로 너무 너무 잘하는 여자는 이게 십자가 적용이 아니라 인간적인 노력으로 잘하는 것인데 이것은 복종인가요? 아닌가요? 잘 생각해보세요. 출세하려고 직장 상사에게 눈가림으로 잘 하는 것도 이것도 복종인가요? 아닌가요? 또 돈을 벌어오는 아내더러 더 많이 벌라고 스스로 작아지는 남편에게 복종을 해야 되나요? 안해야 되나요? 남자는 이렇게 돈을 못벌면 무시를 하고 여자는 안 예쁘면 무시하고. 이처럼 본능대로 살면 양육강식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믿음의 분량만큼 다르다. , 자기 죄를 보는 정도만큼 적용이 다 달라서 옳고 그름은 사실 없다.

          그럼 이제 주안에서 갇힌 자의 경우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세상에서는 빚이 많으면 이혼을 하라고, 위장 이혼을 했다가 나중에 합치라고. 그런데 대부분 완전 이혼으로 가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럼 빚이 많은데 내가 어떻게 사는가 내가 다 짊어져야되는데. 그것도 갇혀야 되는 거냐고. 당연히 갇혀야 한다. 여러분이 하나님 때문에 이혼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영육간에 자손대대로 축복을 반드시 주실 것이다. 결혼을 지키기 위해 갇혀야 하는 경우는 장르별로 종류별로 수 도없이 많다. 결혼을 일찍 한 어느 여자 집사님이 남편을 군대에 보내고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몇 달 안되서 고객으로 다가온 여러 남자들과 일회성으로 부적절한 관계를 여러 번 갖았다. 남편이 휴가 나왔다가 이 사실을 알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귀대 날짜를 못 지켰고, 탈영병 신세까지 되었다. 너무나 엘리트인 부부에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아내 집사님은 교회를 다녔는데 남편은 믿는 사람도 아닌데. 이 부인을 알면서도 그렇게 사랑하고 지켜줬어요. 아내는 죄책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새벽기도에 어마어마한 건축헌금을 약정하고 일을 안해도 먹고 살만한대 도우미이건, 어린이집 교사일을 하면서 결국은 가정 경제파탄까지 오게 했어요. 남편은 이렇게 음란과 돈의 문제를 계속 일으키는 아내를 너무나도 오랫동안 참아주고 사랑으로 받아주었어요. 그러니까 이 쪽은 교회 나오고 저쪽은 교회 안나오는데 적용이 거꾸로 되었어요. 남편이 너무 괜찮은 사람인거에요. 그런데 그렇게 그렇게 남편보고 이혼하자고 한 것은 여자였는데 오랫동안 자신을 참아준 남편이 지금은 자신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외도를 하고 있어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거에요. 아내 집사님은 자기가 정작 남편의 외도를 당해보니까 남편이 얼마나 힘든 것을 참아주었는지 알게 되었지만 너무 괴로워서 그렇게 새벽기도와 각종 종교적 열심에 의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들리지 않던 말씀이 남편이 외도를 하니까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니까 남편의 오래 계속된 10년이 넘도록 오래 된 외도에도 할말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주 안에서 갇혀서 가정을 잘 지키면서 복종하게 되었다. 점점 다 없어져서 아내 집사님은 백여만원 가지고 사세요. 여전히 남편은 외도중이다. 그런데 금년 어버이날에는 금일봉을 준비해서 남편에게 주면서 내가 내 어머니와 산날보다 당신하고 산 날이 더 많더라 당신이 내 어머니보다 나를 더 돌봐주고 나를 보호해줬다. 너무 감사해서 어버이날에 당신에게 이 선물을 주고 싶다고 고백했더니 이 남편이 꿈적도 안하다가 감동을 먹었어요. 그래서 모두 압수했던 신용카드를 하나 주면서 비상시에 써라며 비상 카드가 나왔어요. 그동안 돈도 안주고 육체적, 정서적으로 아픈 딸을 간병하느라고 문자적으로도 갇혀서 살고 있어요. 딸 병원 가는 것과 교회 오는 것이 이 분의 삶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주 안에서 갇힌자가 되니까 돈이 없어도 남편에게 백만원 중에서 십만원을 주는 적용을 하게 되고 그동안 불효했던 친정어머니에게도 돈 없는 것 아셔서 안받으시겠다고 하는데도 매달 돈을 드리는 적용을 하기로 하셨다는 거에요. 힘들지만 그 적용을 하기로 했더니 평강이 물밀 듯 몰려왔다고 나누어 주셨다. 이분이 최근에 자기가 왜 그랬을까 검사를 해봤더니 이분의 정신상태는 약간 무개념 이런 것으로 나왔대요. 무개념이니까 끝없이 사랑을 한 것도 아니고 남자를 만났고, 이를 지우려고 대책없이 종교생활을 하고, 이런 분이 우리들교회 오니까 말씀이 잘 들리는 거에요. 그래서 누구를 이쁘다고 하고 누구를 밉다고 그럴까 천국에서. 그 생각을 많이 하는 거에요. 이 분 교회 밖에 없어요. 기쁜 마음으로 이 상황에 복종하고 계시다고 고백하셨어요. 허락 받고 간증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 안에서 남편에게 갇혀서, 또 이제 자녀에게 갇혀서, 이 모든 것이 내 삶의 결론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간증하는 너희를 권하는 자가 된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더 잘 권하는 자가 될까요? 제 이야기를 좀 하면은 제가 남편하고 말이 안 통하죠. 문자적으로 남편에게 갇혔어요. 영육간에 주안에 갇히고 남편에게 갇힌 상태에서 이제 너희를 권하는 자가 되었잖아요. 병원에서 큐티 모임을 하면서 내가 말하는 남편이 아래층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데 3층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큐티 모임을 했는데 내가 남편에게 갇혔다고 나눔을 하는 거에요. 그러면 남편이 병원 원장인데 내가 우리 남편을 이상하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요? 안되요? 난 병원이 잘되어야 하는데 그쵸? 우리 남편을 이상하게 보면 병원에 환자들이 오겠어요? 안 오죠. 그런데 병원이 잘되기 위해서 남편 자랑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까 그때부터 그런 나눔을 하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인간적인 욕심을 가지고 남편 자랑만 하는 것이, 제가 여기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저기서는 저렇게 이야기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입니다. 제가 무슨 큐티를 나누고 가르친다기 보다는 말씀으로 내 삶의 아픈 부분을 나눈 것이죠. 병실에 들어가서도 몰래 전도하니까 하나님이 나 잘먹고 잘 살라고 이렇게 병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병원이 잘 되어야한다는 생각이 없어졌어요. 남편이 뭐 돈도 안줬지만은.. 그렇게 생각하고 남편 이야기를 마음대로 하니까 병원이 잘 되던데요? 그러니까 여기서도 원장님들 다 와서 자기 외도도 이야기하던데 그러면 다 승진이 되던데요? 제가 쭉 보니까 그래요. 이게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이에요. 그래서 남편의 구원 때문에 온 총력을 기울이고 가니까 일주일에 한번 하는 모임을 위해서, 그 모임이 저를 살렸어요. 그 모임을 위해서 열심히 말씀을 봐야 하니까. 남편과 말이 안통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왜냐하면 남편이 말 시키지 않으니까 혼자서 성경보기도 하고 너무 좋고, 남편이 TV도 같이 보면은 우리 교장선생님과 학생이 보는 것 같으니까 나쁜 내용 나오면 보지 말라고 하고 들어가라고 그래요. 야한 장면이 나와도 들어가라고 해요. 아예 저를 TV보지 말라고 해서 저는 그때가 공식적으로 성경 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남편에게 핍박받는 것이 내 인생에 집중이 더 잘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것 때문에 성경을 열심히 봐야 했는데 날마다 날마다 사건이 생기니까 성경이 더 잘 깨달아졌고, 하루 종일 순종했고, 그리고 그 사람하고 이야기할 것이 없으니까 시간만 나면 성경 보고 그 다음에 집에서는 순종만 하면 되니까. 그리고 이번주에는 내가 또 뭘 순종했다고 이야기하면 되니까 인생이 온통 기뻐졌어요. 이해하시지요? 그래서 그냥 너무 이게 재미있어서 빨리 밥먹고 환자보러 내려가기만 기다리고 있는거에요. 나는 못나가게 하고 돈도 안주고 불평하다가 이게 발상의 전환으로 기뻐졌어요. 이 세상에 남편보다 더 기쁜게 생겼어요. 그래서 우리 남편과 놀러 가지 않는 것도 너무 좋고 놀러 가자고 하면 너무 싫고 고난이에요. 왜냐하면 거기서 말이 잘 통하면 그렇지도 않았겠지만 통하지 않은 것이 참 축복이었다고 생각해요. 어쩌다가 말 잘 통하는 언니 집에 가게 되면 시간만 있으면 이야기를 했어요. 하루종일 이야기해도 이야기가 부족하니까 그냥 이야기를 하니까 성경을 하나도 안 보는 것 있죠. 그러니까 말이 통하는 사람하고 있으니까 성경을 하나도 안 봤어요. 그러니까 서로 이렇게 좋은 부부끼리는 성경을 안봐요. 우리 초원지기 되시는 여자분들 남편들이 초원지기 인 분이 거의 없어요. 또 남자분이 초원지기인분들이 부인들이 초원지기가 많이 없어요. 그러니까 양쪽이 믿음 좋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말 통하는 사람과 하루종일 이야기하는 것이 악이라는 생각이 안드는 것이 이게 문제에요. 그래서 제가 말하는 것은 좋은 것 나쁜 것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에요. 항상 절제하고 정확하게 살기가 아주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들의 목장 모임을 일주일내내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번 하라는 거에요. 일주일 동안 내 영적싸움을 싸우고 이것을 나누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패한 사람도 있고 승리한 사람도 있어서 일주일에 한번 만나서 나누는 것. 그런데 맨날 만나서 말 통한다고 오늘은 김집사, 내일은 최집사, 모레는 이집사 이렇게 만나면 안되세요. 그래서 제가 다시 생각해봐도 남편에게 여러 가지로 고마운 것이 갇히게 해서 저를 말씀을 보게 해 줬고, 알맞게 눈을 부랴려서 제가 깨어있게 하고 모든 것은 저를 하나님께서 말씀 선포자로 세우기 위한 포석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남편한테 저는 새나라의 어린이처럼 성경보고 너무 경건하고 거룩하게 남을 위해 사는 훈련을 했어요. 제가 다른 것을 하나도 못했어요. 이것이 진정 주안에서 복종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복종한 것이 하나도 손해가 없어서 절 이렇게 쓰고 계세요. 역할이 다른 것일 뿐이므로 이것을 여성 차별이라고 하면 안됩니다. 지도자일지라도 이혼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그렇게 여권을 부르짖는 사람은 창조 질서에 어긋나기 때문에 우리의 본성이 참 싫어한다.

 

적용질문

여러분들이 주 안에 갇혔다면, 배우자의 어떤 것에 갇혔다고 해도 갇힌 것 때문에 누군가에게 복음을 권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뜻이 있고 그것도 기쁘신 뜻이 있는데 에베소서 13절에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시려고, 4절에는 거룩하고 흠 없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고 했다.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셔서 예수 믿게 하신 것이다. 행복하게 살라고 예수 믿게 하신 것이 아니다. 남편을 향한 이 일을 아내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한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라고 하지만 이 거룩한 생활을 잘하면 행복한 아내가 되는 거죠. 그래서 구원을 위해서 가는 복종의 길은 사랑받을 만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사랑받는 아내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복종해서 사랑받을 만한 여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여자가 사랑받는 길 첫째는 절대 아름다워야 한다. 여자가 아름답지 못하면 여자가 아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스스로 여생 되기를 선택하고 결단해야 한다. 그때부터 아름다워야 한다. 여자는 여자가 되어야 아름다워지고,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고 후천적인 매력이 있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 자연스러운 매력이 나와야지 열등감 때문에 부단히 꾸미는 것을 노력하는 것을 국시로 삼고 있는 분들은 그것이 열등감으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매력이 없다. 외도한 남편을 가진 집사님들의 특징이 지나치게 외모를 꾸미는 면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매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화장도 안하고 산발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무엇이든지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지 지나치거나 부족한 것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어진다. 남자는 첫째, 둘째, 셋째도 결혼조건이 미모라고 하지요. 남편은 여자하고 구조가 다르고 재료가 다르잖아요. 여자는 뼈고 남자는 흙이잖아요. 그런데 짐승도 흙이잖아요. 그러니까 짐승과 남자는 재료가 같잖아요. 짐승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그러니까 그 원하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노력할 필요는 있죠. 그런데 참 어렵다. 지금 우리가 절대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는데 또 남자가 여자에게 너는 지식을 가지지 말라, 책도 보지 마라,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문자적인 복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죠. 무조건 하라고 하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구원을 위해서 여러 모양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이 사랑받는 아내의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태도이다. 그래서 배우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맞춰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영,육간의 건강을 유지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절대 아름다운 것이에요.

          사랑받는 비결 두 번째는 지혜로워야 해요. 머리 좋은 여자들은 구원의 관점을 가지지도 않았는데 남편에게 여러 모양으로 잘 맞춰주기도 한다. 그러나 구원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런 사랑은 영원히 사랑받을 수 없어요. 일시적이에요. 왜냐하면 사람은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기 때문이에요. 자기 열심으로 한 사랑들이 자식과 배우자에게 배반을 당했을 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고, 헤어나지를 못해요. 인간적인 슬기로움은 영원히 사랑받는 태도가 아니고 지혜로운 것은 십자가 지는 사랑을 의미하고, 십자가는 지혜고 타이밍이라고 했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 맞추는 센스가 있는 것이 바로 지혜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랑은 지혜로운 길로 가야 한다.

셋째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여자는 혼자 못 있는 것이 문제에요. 자기 인생을 못 살아요. 시간이 있고 없고 할 일이 없으면 책 읽거나 자기 삶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맨날 어디 가야 하고, 새로운 것을 하고 싶고, 혼자서는 즐기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여기도 저기도 못가고 종속적이에요. 그러면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종속적이 되라는 것이 아니에요. 자기 삶을 못 사니까 자기 인생을 만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매일 남편과 자녀들에게 들이대고 남편 타령 애들 타령 하다가 애들이 크고 남편이 바쁘면 주제가가 자기 혼자 버림 받은 것 같다는 아내가 많다. 내가 인생을 헛 살은 것 같아 불안하고 못 견디겠어. 정말 매력 있는 여성은 혼자 잘 살 수 있는 여성이다. 예전에 남편이 술 마셔서 힘들고, 욕해서 힘들고, 나가지 못하게 해서 힘들고 그러다 제가 혼자 성경 깨닫는 것이 너무 좋아서 이렇게 생각하나 바쁘니까 성경보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순종만 하면 되지!’ 이렇게 하니까 일주일 만에 내가 가서 적용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 있잖아. 그러니까 이것이 혼자서 시간을 너무 잘 쓰는 비결인 거에요. 늘 생각할 것이 있는 거예요. 남편의 태도 하나 생각할 것이 있고 나도 생각할 게 있고. 생명 내놓고 기도하는데 제가 또 무슨 탓을 하겠습니까. 저절로 큐티를 하니까 혼자서 전도를 하게 되는 거에요. 큐티 책 펴 놓고 있다가 전화 오면 오늘 말씀으로 이러구 저러구 합니다. 저녁때 되면 본문이 다 외워지니까 점점 더 저에게 영이 가득 차게 되잖아요. 병실에 들어가도, 전화가 와도, 그날 본문으로 나누고 큐티하니까 오늘날 내가 큐티 사역을 하는 것은 그렇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만나지 말라고 해도 혼자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니까 시장에 가도 그날 말씀으로 전도를 하게 되고, 약국을 가도 하게 되고 집에 전화가 와도 하게 되고, 병실에서 하게 되고, 남편은 나가지 말라고 해도 내가 큐티를 하고 말씀을 하니까 이렇게 전도의 장이 열리더라는 거에요. 여러분들도 이것이 혼자 잘 사는 비결이에요. 남편이 돈도 안 주고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이 생각만 하면 너무 남편에게 종속되어 있는데 제가 이렇게 말씀을 보고 깨달아지니까 돈도 안주면 안주는대로 주면 주는대로 십 만원 주면 십만원에 복종하는 거고. 욕을 하면 그러냐고. 당신 십만원 밖에 안 줬잖아 이런 이야기 안해요. 그냥 가만히 있어요. 그러니까 자유함이 100%, 1000% 생겼어요. 참 홀로 있는 시간을 잘 쓰게 되었습니다. 같이 있어도 외로운 사람이 있고, 따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오직 그것은 주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남편이 있어도 외로워하는 사람은 사별한 후에는 더 외로워 합니다.

          어떤 목장에서 사별한 분이 재혼한 분의 나눔을 듣기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니까 흔히 핍박과 외로움의 사별은 핍박의 외로움과 사별의 외로움은 차원이 다르다고 하죠. 저의 경우 핍박과 사별의 외로움에서 언제나 말씀 안에 갇혀 있어서 그런지 지금 생각해 보면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 물론 슬픔과 연민의 감정은 있었지만 내 안방에서 장례식을 치뤘지만 그 자리에 누워도 두려움과 무서운 감정은 없었어요. 주님이 신랑 되니까 구원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순종했는데 또 떠난 사건에도 순종해요. 주님이 신랑 되지 않으면 있을 때도 남편을 그렇게 무시하고 그 다음에 간 다음에는 지게꾼이라도 살아 있어야 한다고 그러고. 평소에는 남편을 죽자사자 우상처럼 여기면 죽으면 따라간다고 죽는다고 난리를 치고. 양쪽이 주님의 신랑이 되지 않으면 어디서도 혼자 있는 시간을 쓰지 못한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얼굴이 예뻤어도 한없이 외로운 표정을 짓고 이 세상에서의 고난의 표정을 다 짓고 있었는데 남들이 보고 우수에 젖었다 좋아하시네. 혼자서 시간을 잘 쓰게 되니까 구원 때문에 제가 이렇게 신비한 표정을 짓게 되고 아름답고 지혜롭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가장 사랑받는 비결입니다. 그러니까 점점 우리 남편이 나를 연구하게 되었어요. 저 사람은 돈을 주어도 안 주어도 좋아할까 왜 나가지 못하게 해도 불평을 안할까. 전 이것이 만입이 있어도 전하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에요. 그러나 내가 홀로 있는 시간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이 되게 해야 된다는 거에요. 남편하고 안 통한다고 그래도 남편이 나를 보고 기분 나빠하거나 이게 아니고 기쁨이 되니까 같이 있고 싶어했겠죠. 스스로 있을 수 있고 홀로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해도 그 즐거움이 남과 더불어 연결되지 못하면 결국은 또 행복하지 못해요. 혼자서 즐거운 것은 없어요. 저는 남편하고는 그래도 남들하고는 즐거웠잖아요. 시장에 가서, 교회, 큐티모임 만나는 사람에게는 정말 기쁨이 되었어요. 우리 남편이 주님을 만나지 못하니까 영과 육의 대화를 하니까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영적인 어떤 외로움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간 거잖아요. 육적인 것하고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네 번째는 사랑스러운 여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복종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자기 남편을 존경할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해요. 그리고 똑똑한 사람은 그렇게 만들려고 별 것을 다하지만 내 힘으로는 안된다. 남편을 존경하려면 나부터 바라봐야 하고 나부터 변해야 한다. 남편이 변하고 안 변하고는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할 때 남편이 변하게 되요. 내가 노력하면 남편이 변할 거야 이런 것을 내려 놔야 힘이 빠지고 독기가 빠져서 사랑스러운 여인이 되는 것이다. 남편이 존경스럽지 않아도 복종하면 남편이 존경받을 만한 존재가 된다. 정말 절세미녀들이 많은데 사랑스런 여인이 되지 못하는 것은 그 아름다움이 남성의 노리개 감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절대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을 잘 이해해야 한다. 예수 안에서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너무나 이쁜 것으로 빨리 꺽여지고, 이쁜 것 때문에, 교만하기 때문에 사랑스런 여인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예쁜 사람이 박복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과부가 불쌍하고, 이쁜 과부는 더 불쌍하다는 현실을 즉시하는 것이 사랑스런 여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거꾸로 이쁘지 못해서 늘 비교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든다. 지혜로우면서 사랑받아야 하는데 사랑받을 수 없는 아내의 아름다움은 남자를 무능하게 하는 잔소리꾼이 되는 것이다. 여자에게 주눅 드는 남편이 되게 하는 여자는 똑똑하기만 하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한다. 맨날 여자에게 주눅 들어 따라다니게 되면 결국 그런 여자는 남편의 앞길을 가로막게 된다. 사랑받지 못한 아름다움이나 사랑받지 못한 지혜는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여인이다. 성경이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것을 여러분의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들으시지만은 결론은 이거에요. 자기 죄를 못 보면 분노가 일어날 거에요. 죄를 보는 것만큼 깨달아지겠지만, 여러분은 반드시 깨달으셔야 한다. 하나님이 여성을 만든 이유는 남편 기죽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남편 열등감을 풀어주려고 창조하셨어요. 여자는 뼈고 남자는 흙이잖아요. 근본적으로 이렇게 되어 있어요. 아내 사명은 남편을 칭찬하는 것인데 버릇이 되게 칭찬이 되어야 하는데 립서비스로 칭찬하면 안되고 꼭 근거가 있는 것들을 하나씩 발견해서 칭찬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지혜인거죠. 큐티로 가능해요. 그러면 존경받을 만한 남자가 된다. 존경할 남자여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고 존경할 남자로 만들어서 존경하시기를 바래요. 애초부터 이렇게 존경받을 사람을 존경하는 것 보다는 부인이 존경할 남편을 만드는 것이 훨씬 위대하게 보인다. 존경 못 할 남편이면 그것은 아내의 책임이다. 존경 못 받는 남편은 그 아내가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사랑스러운 여인은 열등감과 좌절에 빠져 있는 남자를 존경스런 남자로 바꿔주고 그 존경스런 남편에게 복종하면서 사는 지혜를 가지는 겁니다. 그래서 복종은 사랑의 일부분이다. 요즘은 남편이 집에서 아내보다 직장의 여성동료에게 더 존중받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집에서 무시당하는 남편은 이런 유혹에 너무 쉽게 넘어갑니다. 직장배우자라는 용어가 만연한데 플라토닉 사랑을 나누는 이성동료와의 관계는 여러면에서 진짜 부부관계와 비슷한 점이 많다. 아내는 남편을 이런 유혹으로부터 잘 보호해야 하는데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 이것이 유혹에서 그래도 막는 비결이라 생각해요. 베드로전서 3장 보면은 1. 아내들아 이와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으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쭉 나오면서 사라가 아브라함을 복종한 것 같이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않고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그러니까 사라가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남편에게 복종했기 때문에, 남편에게 복종했기 때문에 남편이 갑작스럽게 갔는데도 두려워하지 않았잖아요. 남편에게 복종한 것이 내가 살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주었어요. 베드로전서 31절서부터 나온 이야기에요.

 

적용질문

절대 아름다운것과 지혜롭고, 홀로 있고 사랑스러운 여인이 되는 것 중에서 여러분들이 사랑받기 위해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은 좀 잘되고 있습니까?

 

          피차 복종하기 위한 세 번째는 사랑하는 남편이 되어야 한다. 25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아내는 복종이고 남편은 사랑인데요. 남편은 워낙 단순하기 때문에 짧게 할게요. 남편은 흙이 잖아요. 남편은 생각이라는 것이 없어요. 생각은 여자들이 다 해야되요. 본 차이나가 생각을 하지 뭔 흙이 생각을 하겠어요. 주는대로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자고 그러는 거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끝까지 사랑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사랑하셨어요. 이것이 참 사랑이에요. 남편이 아내를 죽기까지 사랑한다면 뭐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있겠습니까? 순종보다 어려운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복종은 자기 마음의 감정을 담지 않고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랑은 마음대로 안되기 때문에 인간적인 사랑조차도 노력해서 되기는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사랑은 그 대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에요. 나에게 화난다고 욕을 퍼붓고 무시하는 사람을 어떻게 귀하고 가치 있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와야 되요.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나에게 잘해라 복종해라 이런 이야기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가 들어와야 되니까 그냥 예배로 인도하고 공동체를 오고 양육을 받고 자기 죄를 봐야 되요. 죄를 봐야 사랑 복종이 되는 것이지 문자적으로 사랑해라 복종해라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에요. 얼마나 자기가 죄인인지 깨닫게 되어야지 사랑을 하게 된다. 이것이 세월을 아끼며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비결인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랑 할 줄 아는 남편이 되려면 남자는 첫째로 실력을 키워야 한다. 남자는 실력으로 살아요. 어리숙해 보여도 키도 작고 못생겨도 돈이 없어도 아내에게 저사람 대단한 사람이다 이 소리를 들으면 실력있는 사람이에요. 여자가 남편을 언제 가장 존경하는가 하면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해요. 공부 지식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너무나 프라이드를 가지고 세상에서 제일 잘하려는 노력을 하는 이것을 보고 존경을 해요. 힘들고 지치면서도 신나게 출근하는 남편을 존경한다. 그래서 실력이 있다는 것은 그러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실력이 있다는 것은 잘 나가는 것이나 돈을 많이 번다는 뜻인가. 그러면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고 직장에서 잘리면 실력이 없다는 것인가. 또 이런 식으로 맹렬한 분노가 일어나잖아요. 그죠? 남자가 영적으로는 실력이 있는데 세상 실력은 없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열등감을 교회 직분으로 포장하는 경우도 있죠.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목자로 세워진 분들도 있어요. 우리들교회에 초등학교만 나와도 목자가 되신 분이 계세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남자는 왜 목자가 되면 목자답게 실력이 갖추게 되는 걸까. 남자가 실력을 키우지 못하고 정체될 때를 보면 대부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팩트보다도 자기 생각이 더 옳다고 생각해서 결국은 다시 확인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아요. 누가 그 틀을 깨부수지 않는 이상 그 실력이 자라지 않아요. 세상 실력은 있는데 영적 실력은 없어서 목장에서의 오픈을 듣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실력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실력도 키워야 되요. 아내들은 남편이 자신처럼 예수믿고 영적인 삶을 살아주길 바랍니다. 남편이 영적으로 편안하면 온 집안이 편안할 수 있지만, 또 흔들리면 다 흔들리죠. 큐티나 일대일 목장 예배에서 이제 자기를 진솔하게 양육도 받고 훈련도 받지만 목장이나 자기를 진솔하게 오픈하는 것은 이 남편들의 대단한 영적 실력인 것이다. 그러면 아내가 존경하게 되어 있어요.

두 번째는 마음이 넓어야 되요. 남자는 여자에게 굴림하고 싶어하고, 고집을 가지고 있어요. 남자는 무서운 경쟁병에 걸려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예외없이 열등감에 허덕여요. 엄청난 스트레스, 암의 97%는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대요. 첫째로 우선순위가 없고 일은 반쯤하다가 말고, 늘 회사에 지각하는. 정신없는 삶을 사는 사람. 두 번째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보다는 남들이 원하는 대로만 따라가는 삶을 사는 사람. 세 번째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반항하고 윗사람들의 뜻을 무시하는 반항가, 독립가, 미성숙가, 자조 어리석음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 이런 삶을 살다가 우울증이 생기면 여자들은 우울증이 오면 슬프지만 남자들은 심술내고, 짜증내고, 의기소침하고 화내고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니까 우리 연구할 필요가 있어요. 뭐가 안되는 구나. 내면의 상태가 치유되지 않으면서 열심히 대속신앙 생활을 한다고 해도 도저히 건강한 아내와 남편이 되기가 어렵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제일 나쁜게 자기 비하거든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자신과 과정에 대해서 올바른 진단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비뚤어진 좁은 마음으로 그러니까 내가 아버지 때문에 이렇게, 어머니 때문에 이렇게 되었어,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어 이러는데 무슨 난 집안의 저주야 이러는데 무슨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에게 적용되겠지만 남자가 마음이 참 넓은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남자가 더 마음이 좁고 비뚤어지고, 경쟁병에 시달리고 있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26절부터에요.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럽고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 없이 거룩하게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런데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티나 주름이 너무 많은 거에요. 그런데 좋은 남편 아내가 만나 티나 주름이 깨끗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힘든 남편 힘든 아내를 만나서 이제 티나 주름이 나를 위해서 수고하니까 티가 하나씩 씻어지는 거에요. 좋은 남편, 좋은 아내라는 것은 없어요. 베드로전서 37절에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아내보고는 남편을 주라 칭하고 복종하고 아무일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남편들보고는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영적 생활이 막힌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아내의 복종보다 굉장히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연약한 그릇이라는 것은 영적인, 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약할 때가 있도록 여자를 지으셨는데 그렇게 연약한 아내를 돌보고 전적인 책임을 지라는 말이다. 결혼을 하면 언제든지 자기 육체가 된다는 거에요. 자기 육체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사랑의 책임을 남편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것이 사랑이고 어떤 것이 미워하는 것인지 몰라요. 사랑하라고 하면 같이 있는 것이 사랑인줄 알고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그러니까 말했지만 상대방이 그러면 같이 있지만 저는 제 할 일 할 수 있잖아요. 남편하고 늘 같이 있지만 난 성경보고 그 남편 원하는 것을 해주면서도. 보니까 정말 카이로스의 시간인거에요. 시간과 공간을 무진장하게 내가 자유하게 쓸 수 있더라고요. 여러분들이 이랬으면 좋겠어요. 남편 탓 아내 탓 하지 말고요. 사랑의 책임은 남편에게 있기 때문에 사랑은 남편으로부터 아내에게 흐르게 되어 있어요. 요즘은 남녀의 구조가 바뀌어져서 아내가 너무 무서운 사람도 많은 거에요. 그래서 남편이 복종해야 하고 아내가 사랑해야 하는 집도 많아요. 이 모습을 어쩌면 좋아요. 완전히 구조 자체가 틀려서 그래서 아내가 먼저 온 사람들은 참 좋지만 남편이 우리들교회 먼저 온 사람들은 아내가 참 힘든 아내라고나 할 수나 있을가요. 아내를 이제 어쨌든 사랑하기 시작할 때 자녀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자녀가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 이런 것을 아는 것 보다는 아빠가 엄마를 사랑한다를 아는 것이 자녀의 정서에 더 유익하고 안정감을 주는 거에요. 사랑하기에 여러분 실력이 있습니까. 마음이 넓은가요.

 

          네 번째는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은 큰 비밀이다. (31~33)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부부에게 한 육체가 되는 즐거움이 커지면 이제 자연히 부모를 떠나게 되고, 결혼을 하면 경제적으로 부모를 떠나야 하는데 처음에 둘이 살다가 거기서 비밀을 얻어야 하는데 설명할 수 없어요. 그 비밀이 크면은 떠나지 못할 것이 없잖아요. 육체의 비밀이 없으면 떠나지 못해요. 그래서 자꾸 이제 비밀이 없으니까 성격차로 이야기하는데 성격차가 아니고 성의 격차를 자꾸 표현해요. 주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표현하지 못할 비밀이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비밀이 크고 즐거움이 크면 어떤 이세상 것에서 떠날 수 있어요. 교회에서 직분을 안줘도 다닙니다. 비밀이 없는 사람은 직분 안주면 교회 떠납니다. 잔소리 합니다. 맨날 뭘 기대합니다. 처녀도 총각도 이 자리에 있어요. 미리 들어두면 앞으로 결혼생활에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긍흉이 부족해요. 도저히 못 살 것 같은 상황에서 남편을 붙잡고 당신은 절대로 가정을 포기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사랑인지 아십니까. 지혜는 십자가고 십자가는 타이밍이라고 했어요.

여러분은 사랑받고 하기 위한 비밀이 있습니까? 주님과의 비밀이 있습니까? 부부간의 육체의 비밀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