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8장 16절~24절 - 악을 덮는 등불
2024년 2월 25일
악을 덮는 등불
열왕기하 8:16~24
김양재 담임목사
알라딘과 요술 램프 아시죠? 알라딘이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램프의 요정 지니를 불러내면 지니가 뭐든 다 해결을 해주죠. 그런데 현대인에게는 램프 증후군이 있다고 하는데 일어날 가능성이 하나도 없는 그 일을 마치 램프 요정을 불러내듯이 수시로 생각하면서 걱정하고 근심하고 불안해하는 범불안 장애가 이제 증후군이에요. 듣고 보니 믿음의 불량은 각자 달라도 다들 램프 증후군이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은 불쑥불쑥 걱정이 올라오는 램프 증후군인가요? 늘 해결사 램프 요정을 찾고 계세요.
지난주 엘리사가 통곡하면서 예언한 대로 하사엘이 아람왕이 됩니다. 그리고 이제 오랜만에 무대가 남유다로 바뀌는데요. 북이스라엘 왕 여호람과 이름도 똑같은 남유다의 여호람 왕 이야기입니다. 남유다의 여호람 왕은 너무나도 악한 왕인데요. 북이스라엘의 여호람하고 비교도 안 되게 악한데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등불이 여호람의 악을 비추어서 그 허다한 죄를 덮고 남유다의 왕위를 이어가게 하시네요. 우리가 이해가 안 됩니다.
오늘은 악을 덮는 등불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첫째로 우리 인생은 악을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16절 7절이에요.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오년에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었을 때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니라. 여호람이 왕이 될 때 나이가 삼십이세 예루살렘에서8년 동안 통치하니라
엘리사 시대에 계속 등장하는 북이스라엘의 왕은 여호람 기억하시죠? 그런데 같은 시기 남유다 왕도 여호람인 거예요. 그래서 오늘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셔야 돼요. 이름이 같아 그래서 할 수 없이 열왕기 기자가 헷갈릴까 봐 16절부터 북이스라엘 왕을 요람으로 바꿔서 부르네요. 그러니까 더 헷갈려 갑자기 여호람이 요람이라 이러니까 그래서 아주 굉장히 오늘 어려워요. 신경을 잘 쓰세요. 이 요람, 여호람 5년에 여호람이 왕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열왕기하 1장 17절에 보면 반대로 여호람 2년에 요람이 왕이 되었다고 해요. 3장 1절에서는 여호람의 아버지 여호사밧 18년에 요람이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듣기만 해도 복잡해 성경이 틀린 건 아닌데요. 한마디로 결론만 말하면 여호사밧 16년에 여호람이 공동 통치를 시작했고요. 그로부터 2년 뒤 요람이 북이스라엘 왕이 되었고 다시 그로부터 5년 뒤에 여호사밧이 죽고 여호람이 단독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뭐 이런 얘기예요.
그런데 왜 이렇게 연대를 복잡하게 썼을까요? 일부러 그렇게 썼어요. 이건 굉장한 상징인데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같은 민족이지만은 지금 영적으로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잖아요. 우리 남한과 북한이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여호사밧과 그의 아들 여호람 때 남유다는 아합과 아시아와 요람이 다스리던 북이스라엘과 누가 먼저고 누가 나중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남유다 북이스라엘은 그냥 딱 달라붙어 있다는 걸 상징합니다. 가장 악한 시대라는 가장 분명한 상징이 두 왕의 이름이 똑같이 여호람이라는 거예요. 딱 달라붙어요. 다음 주에 나온 아시아도 이름이 똑같습니다. 가장 악한 시대에 이름이 똑같아 남북 정신 바짝 차립시다.
그러면 왜 영적으로 전혀 다른 두 나라가 이렇게 얽히고 설키게 되었을까요? 18절이에요.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가서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남유다 왕은 누구의 길을 따라가야 하지요? 다윗의 길입니다. 확실히 1부 때 예습이 되니까. 그런데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은 누구의 길을 갔어요? 지금 이스라엘의 왕들의 길을 갔다 그랬잖아요. 그중에서도 가장 악한 왕 아합의 집과 같이 갔다고 해요. 왜죠? 이유가 뭐예요? 다 같이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으니라. 무슨 말입니까? 여호사밧이 자기 아들 여호람을 누가 결혼시켰다는 거예요? 아합의 땅이 아니고 딸과 결혼시켰어요.
여러분 목장에서 이렇게 계속 질문을 하세요. 그러면 믿음이 없어도 대답할 수 있잖아. 그죠? 믿음이 없어도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좀 하세요. 그것도 몰라요. 이러지 말고 다 아는 질문을 계속하세요. 알아도 여러분은 대답 못하고 있어요. 지금 다윗을 반역하고 나가서 나라를 세운 금송아지 섬기는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사돈이 되었어요.
여러분 여호사밧은 제가 열왕기상 때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 악한 왕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 선한 왕이 여호사밧이에요. 그런데 열한기상 22장 43절에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믿음의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한 아주 선한 왕 여호사밧이에요.
유다를 여호와를 섬기도록 가장 아주 그 개혁을 행한 성경은 그의 선함을 역대교에 보면 많이 다루고 있어요.하지만 마지막에 여호사밧이 온전하지 않았어요. 산당을 패하지 않았고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화평했습니다. 영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는 악한 왕과 화평을 추구했어요. 우리가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과 일부러 싸울 필요는 없어요. 평화롭게 지내야 해요. 하지만 여호사밧은 도를 넘었습니다. 아들을 장가 보냈어요. 불신 결혼을 시킨 것이에요.
왜 그랬을까요? 우리가 읽고 있는 열왕기는 역대기하고 관점이 달라요. 그래서 여기 자세히 안 나오지만 여러분은 집에 가서 역대하 21장을 자세히 좀 찾아보시길 바라요. 21장에 보면 여호람의 악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요람 북이스라엘의 여호람은요. 그렇게 악한 거가 오픈이 안 돼져 있어요. 그런데 남유다의 여호람은 한 장에 걸쳐서 그의 악을 다 드러냈어요. 여호사밧은 여호람의 여호사밧은 맏아들 여호람의 착한 동생들 6명에게 은근과 보물과 견고한 성업들을 미리 그냥 선물로 후히 주었어요. 유산을 미리 준 거죠. 그리고 이 장남에게는 왕위만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사밧이 마지막에 하나님을 그리도 신실하게 섬기더니 아들을 위한 답시고, 워낙 세상적으로 아합과 이세벨이 똑똑하니까 자기 아들이 부족한 것을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부자이고 무늬만 크리스찬인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결혼 동맹을 맺으면 내가 동생들 재물을 후히 주었어도 너는 앞으로 돈 속에 앞으로 파묻혀 살 것이라 예상을 했어요. 예상은 깨어지라고 믿는 거죠. 자식은 산당 중에 산당이고 우상 중에 우상입니다.
역대야 18장 1절에 기록된 대로 여호사밧은 너무나 하나님을 잘 섬겨서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어요. 그럼 거기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되는데 사람 마음이 그렇게 선하지가 않아요. 선한 왕도 예외가 아닙니다. 부귀와 영광을 맛보면 다들 더 큰 부위와 영광을 구하게 되죠. 그것을 얻을 방법으로 그냥 반역하고 나갔어도 상하궁에서 너무 잘 사니까 이 아합과 화평을 택한 거예요. 더 확실한 화평을 위해 아주 불신 결혼까지 시킵니다. 일시적인 화평을 택한 것이죠.
조선왕조를 지나면서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만 된다면 공산주의는 상관이 없다. 이것이 많은 지도자의 생각이었어요. 그 당시 누가 자유민주주의를 알았겠어요? 평화가 다가 아니다라고 누가 생각을 할 수 있었겠어요 자유를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면 도무지 알 길이 없죠. 성령도 체험하지 않으면 도무지 알 길이 없어요. 그 좋은 자유를 주기 위해 우리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않게 하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를 주셨어요. 자유를 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십자가를 져야 돼요.
집에서도 말로 해서 자유가 임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도 내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하지만 못 알아들으니까 참고 인내해요. 그런데 이 세상을 따라야 한다고 하면 그건 자유를 주기 위해 참고 있는데 그건 타협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죠? 뇌물을 줘라 뭐 해라 누구를 살인해라 이런 거 따르면 안 되잖아요. 그게 아들하고 화평을 이룬다고 그 얘기를 들어줘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도 자녀가 너무도 말을 안 듣고 나는 안 해주면 죽어 그러면 타협할 때가 많아요. 십자가는 타협하는 화평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호사밧의 마지막 판단 미스로 유다는 악의 구렁텅이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호람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단독으로 다스리게 되자 그 아버지하고 7년이나 같이 공동 이렇게 통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력을 얻은 후 당장에 그의 모든 선하고 착한 믿음 있는 아우들과 아우들을 돌보는 신하 몇 사람을 죽여버립니다. 동생들에게만 재물을 준 것이 너무 분했나 봐요. 아니 이 남유다의 잘 믿는 동생들은 그렇게 미워하더니 아합의 딸과 불신 결혼을 한 후에는 그 악한 아내와는 하나가 딱 되어서 본격적으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러니 소위 잘 살아서 문제인 부부가 얼마나 많겠어 그래서 제가 새롭게 하소서에 아니 안 맞는 부부가 축복입니다. 썸네일을 그렇게 했잖아요. 잘 맞아서 천국 못 가는 부부가 많아요. 선한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에요. 겉으로는 본가의 믿음과 처가의 재물을 다 가진 최고의 환경입니다. 우리가 다 부러워하면서 그냥 얻으려 하는 조건이에요. 우리는 자식들에게 이런 환경 제공해 주려고 열심히 지금 믿고 살아요.
하지만 여호람은 선한 길을 가지 않았어요. 악한 길을 갔어요. 어떻게 해요? 악한 길을 간 단 하나의 이유라고 주님이 알려주시는 것이 바로 불신결혼 인 거예요. 여기서 여호람의 모든 악이 다 나왔어요. 불신 결혼만큼 우리의 본성적인 악을 증폭시키는 게 없어요.
생명을 이어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불신의 악으로 채우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부귀와 영광을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목적이 된 인생의 끝은 자기 아들을 우상에게 바치는 자기 아들 우상에게 바치는 불신 결혼이에요. 깊이 생각해야 돼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미취학부터 불신 결혼은 안 돼요. 진짜 진짜 안 돼요. 이거 다 외우고 있어요.
믿음이 있던 여호사밧이 너무나 사소하게 생각하고 저지른 불신 결혼이 아들 여호람의 인생을 악으로 채웠습니다. 그래서 남유다도 악으로 거덜이 날 뻔했어요. 진짜 망하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여로함이 그 좋은 배경과 조건으로 결국 한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어요. 남 이야기가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잘 먹고 잘 살면 전부 하나님을 배반해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요. 여호람의 조건을 우리가 다 갖고 싶어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여호람의 결론도 우리의 결론입니다.
적어도 남유다에서 믿음의 결혼을 했다면 이런 악이 저질러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장모 이세벨도 그 딸 아달랴도 이 권력을 위해 사람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 예수가 없으면 나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 죽이는 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여호람이 완전히 이 처가에 빠졌어요. 그냥 좋게 빠진 게 아니고 악하게 빠졌어요. 그런데 이 여호사밧의 장남은 자기 믿음의 집에서 전혀 영향을 못 받고, 악하디 악한 처갓집의 영향을 오롯이 받고 믿음의 종갓집을 증오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동생들한테만 돈 줬어 이러는 거지. 여러분 선한 영향력보다 악한 영향력이 훨씬 핵폭탄이에요. 믿음으로만 살았는데 그냥 찬란한 상황을 보니까 여호람이 정신이 뻑이 갔어요. 큐티 다 잊어버렸어요. 이게 남의 집 얘기가 아니에요.
아람 이방의 베나닷 왕도, 믿음 없는 북이스라엘의 요람 왕도, 다윗의 후손인 남유다의 요람 왕도 인생이 자기 힘으로 애쓰고 노력한 결과는 악일 뿐이에요. 예수가 없는 결과는 악일 뿐이에요.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 좋고 자랑스럽고 화려하겠죠. 하지만 최종 심판자는 하나님이세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이면 게임 끝이에요. 다 의미가 없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차이가 없어요. 예외도 없어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되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 로마서 3장 23절. 우리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항상 생각하는 것이 모든 계획조차 항상 악하다고 그랬어요. 창세기 6장 5절에 말이야 주님이 아세요? 우리 양심이 압니다.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리 인생에 소망이 없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게 믿음이에요. 내 존재가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아는 게 내 자신이 악을 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제대로 아는 거예요. 인정하십니까?
적용 질문이에요. 이래도 불신 결혼 시키시겠습니까?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불신 결혼을 시켰다면 어떻게 회개의 적용을 하겠습니까?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내 죄성은 무엇입니까?
악을 덮는 등불. 첫째는 뭐였죠? 악을 행할 수밖에 없다고 그랬어요. 인생이. 두 번째는 그러나약속의 말씀 때문에 멸하지 않으십니다. 이게 너무 중요해요. 19절이에요.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
이스라엘의 여호람보다 훨씬 더 악한 여호람인데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대요. 이게 너무 소망 아니에요. 북의 여호람의 악이 클까요? 남의 여호람의 악이 클까요? 처음부터 속썩이던 자식이 잘못한 것과 모범생 자식이 잘못한 것 중에 무엇이 더 아프죠? 원래 날 싫어했던 사람과 날 너무 좋아하다가 배신한 사람 중 누가 더 미워요? 다윗의 후손 여호라함의 악기 훨씬 크다고 할 수 있어요. 믿음을 배신하고 아합의 집과 같이 악을 행한 여호람을 하나님이 100번 멸하신다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멸망당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당연히 심판하셔야 하는데 왜 그럽니까? 그의 종 다윗을 위해서라 그래요. 다윗에 대한 의리요 다윗의 선행 업적 때문입니까? 예. 아니요. 하나님이 다윗과 다윗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에요.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고 하자 하나님이 사무엘라 7장 17절에 그 마음을 받으시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어요. 내 집과 내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내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그런데 약속을 주고 솔로몬이 범죄하자 하나님이 나라를 쪼개 북쪽을 여러 보함에게 주시잖아요. 그런데 남유다를 다윗 왕조에 남겨두시는 이유를 열한기상 11장에 이렇게 설명하세요. 그의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거기에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읍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이 항상 내 앞에 등불을 가지고 있게 하리라.
여기서 등불이 나오네요. 하나님이 다윗과 다윗의 후손에게 항상 주시겠다고 한 등불이 뭐라는 거예요? 이게 왕권이요 나라요 다윗 당국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해요.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인데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반역하니까 결국 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죠. 그리고 나라도 빼앗겼어요. 다윗 왕조도 막을 내렸어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가 끝난 건가요? 아니죠. 육으로 세운 성전이 무너지는 고난을 통해 영의 성전이 세워지는 거룩의 과정이 시작된 거예요. 그 정점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지금 우리에게 오신 거죠. 그런데 지금 그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까지도 회개를 하지 않아서 계속 지금도 하마스 전쟁을 하고 그러죠.
그러면 다윗 왕조가 뛰어나서 예수님이 오셨습니까? 예수님이 그 계보를 통해서 오셨기 때문에 다윗 왕조가 귀한 거죠. 사실 얼마나 그 집안이 콩가루 집안인지 우리가 구속사의 메시지를 통해 너무 잘 알잖아요. 유다에 대해서 다윗에 대해서 우리가 다 묵상을 했어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동침한 집 유다 다윗의 조상 마태복음 1장 족보를 통해서 기생과 과부하 다 성적으로 범죄한 이런 사람들이 전부 다 조상으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따라서 다윗에게 항상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등불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육의 성전이 무너져야 영의 성전이 세워진다는 구속사인 거예요.
계시록 21장 22절 23절도요. 제가 설교를 했습니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화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시니라 그 성은 헤나알에 비침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고 어린 양이 그 다 같이 등불이 되심이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비추는 등불이 되신다고 해요. 이것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등불과 똑같은 단어입니다. 등불 즉 램프는요. 요정 나오는 도구가 아니고 등불에서 제일 중요한 건 빛이에요. 요한복음 8장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어요. 주님이 참빛 바로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1장 5절에 빛이 어둠의 빛입니다. 빛은 어둠을 비추기 위해 존재해요. 어둠의 빛이 빛일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빛으로 환하게 덮여서 어둠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납니다. 그런데 가장 짙은 어둠은 악이에요. 성경에 그랬어요. 4장 19절에 악인의 길은 어둠 같다고 했어요. 요한복음 3장에서도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함으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그래서 교회에 오기도 싫어요. 목장 들어가기도 싫어요. 양육받기도 싫어요. 빛이 왔는데 자기 행위가 악함으로 어둠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따라서 다윗의 자손에게 항상 주겠다고 약속하신 등불은 인간을 깜깜하게 덮고 있는 악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모든 악을 비추시는 등불이세요.
여호람이 망하고 싶어서 이스라엘 왕들의 악한 길을 갔겠습니까? 그도 유다 왕으로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겠어요? 잘해보려고 하지만 그가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악을 행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게 모든 인생의 한계예요. 그래서 슬픈 인생이에요. 인간은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에 다 죄인이기 때문에 생각하면 죄밖에 짓는 게 없어요. 어떻게 예수도 믿지 않는 인간에게 여러분은 무엇을 기대합니까? 그런데 우리 주님이 이 악을 비춰주셔야만 덮는 등불로 우리 가운데 오시는 것이에요.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자격을 갖춰서 그래 오신 게 아니에요. 예수님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오셨어요. 무조건 은혜로 오셨어요. 우리를 가득 채운 허다한 죄를 비추시고 그다음은 최고의 사랑으로 덮으셨어요. 구원의 약속을 이루셨어요. 비교적 우리들 교회 성도들이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주님이 약속을 나에게 지키신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킬 수 있게 된 것이에요. 큐티하는 것은 주님과 날마다 약속하는 거예요. 아셨습니까?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내가 주님과 약속했기 때문에 주님이 나를 위해 약속을 지키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냥 무조건 아침에 일어나면 큐티하는 거예요.
기도하는 거예요. 이렇게 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이 어마어마하게 보람 있는 일을 날마다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감사하세요. 이 약속마저도 우리가 원하거나 계획한 게 아니죠. 주님이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돌아보셔서 손을 내밀어 약속해 주셨어요. 여러분들이 잘 나서 큐티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잘났어요. 이 약속 때문에 악을 덮는 등불로 오셨습니다. 우리 모든 악이 그리스도의 등불로 덮였기 때문에 우리가 멸망을 면하고 살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 번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어둠이 짙게 들여온 것 같은 상황에 내가 있고 회사가 있고 나라가 있고 이렇게 얼마든지 될 수 있어요. 우리는 요새 나라의 악을 보고 쏘아보고 통곡했다 그랬잖아요.
그런 일을 제가 좀 봐서 1월 24일 날 한 국회의원께서 국회에서 공동 주최한 토론회 찾아보시기 바래요. 그런데 거기 평화통일센터 이사장님이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저는 그냥 기사 그대로 읽으니까 저보고 또 뭐라 그러지 말아요. 북의 전쟁관은 다들 아시다시피 정의의 전쟁관입니다.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 거죠. 영토 완정을 통해서 점령하고 평정하고 수복하겠다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통일 전쟁이 일어나 그 전쟁으로 결과의 평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 전쟁관도 수용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미 제국에 반대하고 북한 주적을 철회하고 흡수통일을 포기해야 합니다. 국회 회의장에서 약 15분간 이런 발언이 이어졌음에도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도 항의도 없고 그 발제가 끝나자 돌려 박수가 터져 나왔다는 거 아니에요. 또 평화 어머니의 이사장님께서는 북은 완전 자주 국방이고 교육 의로 죽는 남쪽은 경쟁인데 북은 무상이라며 친일 청산도 남쪽은 완전히 실패하고 북쪽은 성공했다. 어디가 제대로 사는 것이냐 또 한신인데 이렇게 평화통일 연구센터장은 한반도 전쟁 위기는 실제한다. 실제하는 근원은 북 때문이 아니라 한미 동맹 때문이다. 이런 토론이 국회에서 행해졌다는 거 아니에요 나라의 정체성을 흔드는 이것도 토론의 자유라고 다 가만히 보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옛날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 이런 얘기를 하면 이거를 이거를 뭐라고 해야 되는지도 아무도 몰라요. 그냥 그만큼 70년 전이 어쨌는지 여러분은 몰라요. 보고 들은 대로 이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것 같아요. 말씀의 등불로 나를 비추셔야 내 악이 보이고 나 같은 죄인을 알게 되니까 즉 말씀이 들리는 것이 나 같은 죄인을 알게 되는 것이 나의 허물을 덮어주시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가 없이 이걸 누가 알 수가 있겠어요? 영원한 등불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내 안에 오셔서 은혜로 채워주시고 빛으로 밝혀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그러면 주님의 빛을 받아 악에서 돌이키기 위해 해야 할 적용은 무엇입니까?
아직 나를 덮고 있는 어둠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이 어둠에서 벗어나고 싶습니까? 악을 나라의 악을 보고 울어야 된다는 게 여러분들 이해되십니까?
이해되세요? 왜 목사님은 정치를 하 이게 정치입니까? 말씀으로 교육도 말씀으로 내가 해야 되고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전부 다 하나님 말씀 따로 삶 따로가 아니잖아요. 그죠? 이거를 누가 내가 어떻게 적용해야 된다고 그 누가 가르쳐줍니까? 우리가 큐티하는 게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하잖아요. 그죠? 내가 없는 얘기를 한 게 아니고 그냥 그렇게 일어난 일들 또 신문에 난 거가 잘못됐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은 그대로 제가 적용을 해드렸어요.
악을 덮는 득불 첫째는 뭐죠? 우리 인생은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두 번째는 약속의 말씀 때문에 멸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세 번째는 그러면은 어떻게 약속의 말씀이 임합니까? 배반을 당함으로 등불이 되어 주시는 거예요. 배반의 축복인 거예요.
20절부터입니다. 여호람 댐에 에돔이 유다의 손에서 배반하여 자기 위에 왕을 세운 거로 여우람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사일로 갔더니 밤에 일어나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장관들을 치니 이에 백성이 도망하여 각각 그들의 장막들로 돌아갔더라.
이와 같이 에돔이 유다의 수하에서 배반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였으며, 그때 립나도 배반하였더라. 지금 이 짧은 구절에 배반이 세 번이나 나오는 거예요. 세 번 다윗이 에돔을 점령한 뒤 에돔은 줄곧 유다의 속국이었어요. 자기들이 왕을 세울 수도 없었고요. 유다 왕실이 지정한 섭정왕이 다스렸어요. 그래서 얼마 전에 본 것처럼 3장에서 이스라엘과 유다 연합군이 모합을 치러 출정할 때 에돔이 함께 갔어요. 에돔은 유다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갈 수밖에 없는 속국의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여호람왕 때 에돔이 독립을 선언한 거예요. 자기들이 왕을 세웠습니다.유다가 세운 섭정왕은 쫓아냈겠죠. 여호람왕이 화가 머리끝까지 닿았어요. 모든 병거를 동원하여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정벌을 갑니다. 유다와 에돔의 경계 지역인 싸엘에 도착해서 진을 쳤어요. 여러분 나라의 전쟁을요. 자존심 상한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여호람은 지금 실력이 하나도 없어요. 자존감이 있는 게 아니고 자존심만 하늘을 찌릅니다. 에돔에 베반은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계였기 때문이에요.
전군을 동원한 작전이었지만 에돈군은 밤에 기습해서 유다군을 포위했어요. 깜짝 놀란 여호람은 총력전을 펼쳐 포위망을 뚫었지만 전의를 상실한 유다 군사들은 도망하고 맙니다. 그냥 각자 집으로 돌아가 버려요. 결국 에돔은 독립에 성공해요. 다윗 같은 카리스마가 믿음의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가 있을 때는 엄두도 못 내요. 예 그런데 여우람이 저렇게 믿음도 없고 세상을 좋아하니까 블레셋 경내에 있던 립나도 이때 다음에 유다의 반기를 들고 독립했어요.
여호람으로서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에요. 우리가 읽고 있는 여왕기에는 그 여우람의 악이 자세히 나오지 않는데 역대기에는 그 여호라미아가 얼마나 큰지 다 오픈해 놓았다고 했어요. 자기 왕권을 빼앗을 수 있는 경쟁자를 모조리 제거한 거예요. 게다가 유다 여러 산에 산당을 더 많이 세웠고요. 백성으로 음행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남한이 훨씬 더 북한보다 산당을 많이 세우고 백성을 훨씬 더 음행하게 하는 게 이 남한이에요. 그야말로 이스라엘의 장인인 아합과 같이 악행을 저질렀어요.
그때는요. 아직 엘리아가 살아있을 때였어요. 아버지 여호사밧과 공동통치를 시작한 직후였을 것입니다. 여호람의 악정으로 남유다에는요. 제대로 된 선지자가 등장하질 않아요.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은요. 아예 아예 하나님이 안 계시니까 엘리아 엘리사가 가서 계속 말해주잖아요. 그래서 힘도 없는데 전쟁마다 승리를 하잖아요. 유다는 이 다윗의 허락하신 등불이 가는 나라니까 혹독하게 대우하세요. 여긴 선지자도 안 보내요. 예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더 악한 것이 막 드러나고 하면 하나님이 수준을 높게 보셨다 이 뜻입니다.
그 악이 얼마나 심했으면 북쪽의 엘리아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이 남유다의 열람 에게 편지까지 썼어요. 엘리아는 북쪽에서는 이세벨과 혈전을 벌이고 남쪽의 여람에게까지 경고하느라고 참으로 힘든 인생을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가 저지른 우상숭배와 살인의 죄를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무서운 심판을 예언해요.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의 여호함보다 남유다의 여호람이 훨씬 악해 세상적으로 보면 행위로 보면 훨씬 악해.
여호람은 역대 21장 12절에서부터 쭉 읽어가면 선지자 엘리아가 여호람에게 기를 보내어 이르되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니가 니 아이 여호사밭의 길과 유다 왕 아사의 길로 행하지 아니하고, 오직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음행하게 하기를 아합의 집이 음행하듯 하며, 또 내 아버지 집에서 너보다 착한 아우들을 죽였으니, 여호와가 니 백성, 니 자녀, 니 안에 니 모든 재물을 큰 재앙으로 치시리라. 또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중하여 창자가 빠져나오리라.
여러분 북이스라엘의 여호람에게는 이런 얘기 한 번도 안 한 거 아시죠? 남유다 여호람에게는 이렇게 하나님이 너 그러면 안 된다. 이 세상에 니 게 어디냐 심지어 내 몸도 내 것이 아닌데 니가 니 백성, 니 자녀, 니 안에 니 재물이라 그러는데, 아달리하고 천년만년 살고 지고 했지만은 다 뺏겼다고 하는 거예요.
16절에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켜서 여호함을 치셨대요. 하나님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 마음을 격동시켜서 칠지 몰라요. 여우라함에게는 이 편지를 받은 뒤에도 돌이킬 시간이 10년 이상 있었어요. 그 10년의 시간, 북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 곳곳을 다니며 사역하는 엘리사 소문을 듣지 못했을 리가 없죠.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 꾸짖은 엘리아의 제자라는 것도 알았을 겁니다. 다윗 할아버지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은 몰랐을까요? 몰랐을 리가 없죠. 등불의 약속 때문에 하나님이 이 나라를 살려주고 계신다는 것도 너무 잘 알았을 거예요.
그런데 여호람은 그 등불로 자신을 비추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유다의 등불을 주셨다는 것만 믿고서 그 등불 안으로 자신이 들어가는 적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등불을 멀리서 보기만 하고 거리를 좁히지 않은 채 자신은 등불 바깥에 머무르며 10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23절 4절 여호람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람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잠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시아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유다 왕과 다름없이 인생을 마친 것 같은데요.
역대기에 보면 그 최후가 아주 비참한 거예요. 동생 6명을 모두 죽이더니 재물 아들들, 아내들을 다 탈취당하고 그게 끝이 아니에요. 엘리사 선지자가 엘리아 선지자가 편지로 예고한 대로 그는 창자에 불치병에 걸렸어요. 2년 동안 고생하다가 결국 창자가 빠져나와서 죽었대요. 이런 걸 왜 구체적으로 설명했을까요? 너무나 그 비참함을 알라는 상징이에요. 창자가 빠져나와 죽었다 이런 얘기를 특별히 북이스라엘 왕한테 그렇게 안 했어요. 그게 끝이 아니에요.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대요. 여호람이 죽었을 때 아이고 그놈 잘 죽었다 이러는 거예요.
왕이 죽었는데 잘 죽었다 이러는 거. 그런데도 그는 부모의 기도로 다윗 성의 장사가 되었어요.
그런데 왕의 묘실에는 들어가지 못했답니다. 부모의 기도로 다윗 성에 장사되지만 자기의 행실로는 다윗의 후손 유다 왕으로 인정받지 못한 거예요. 여호라함은 아버지와 공동통치 7년, 단독 통치 8년 총 15년의 시간을 왕으로 보냈는데 아버지가 쌓은 부위와 영광을 다 이뤘어요. 자신의 건강도 잃었어요. 불과 40세에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어요. 왕으로 인정도 못 받고 말이죠. 그러니까 아무리 북이스라엘의 부자나라 아합의 사위가 되었지만 아니 40세에 죽을 건데 이게 무슨 고생이에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등불을 멀리서 보기만 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를 거절한 결과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등불 안으로 들어가 등불로 자신을 밝힌 인생은 결코 허무하게 끝나지 않아요. 정말 아기가 폐가 없다는데 낙태하지 않았잖아요. 이게 하나님이 하신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의 축복을 여러분들이 하찮게 보는 거예요. 여호람의 악은 이렇게 배반을 당함으로 나라에 경각심을 가져왔겠죠. 나라의 악을 보고 울어야 하는데 울지 않으니까 반역을 당하게 하시는 거예요. 이것을 삶의 결론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배반당하는 것을 후손들이 보며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거죠.
그리스도의 등불로 내 자신을 밝힌다는 것은 말씀을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거예요. 말씀의 빛으로 내 자신 구석구석을 비춰야 하는 거예요. 저는 옛날부터 30년 40년 전부터 늘 훨씬 더 자세하게 모든 거를 제가 적용을 했어요. 그런 얘기해도 다 괜찮았어요. 그냥 근래가 가장 힘든 거예요. 내가 그렇다고 정치를 한 것도 아니고 뭐를 지금 무슨 어디 당에 당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평생에 어떤 내가 이렇게 저출산을 해도 무슨 저출산 뭘 한 것도 아니고 말씀으로 내 자신 구석구석을 그런데 자기 자신을 구석구석을 비추니까 여러분들이 이혼도 안 하고 낙태도 안 하고 결혼도 빨리 하는 거 아니겠어요
나한테 주신 음성으로 들으니까 말씀을 비춰야 절망뿐인 내 자신을 아는 거예요. 그래야 주님께만 소망이 있는 것을 아는 거예요. 등불로 밝힌 인생은 절대로 허무하지 않아요. 악을 덮는 등불이 되려면 이렇게 배반을 당하고 한계 상황이 와야 되는 것 맞습니다. 여러분 북이스라엘은 선한 왕이 하나도 없어 남유다에는 선한 왕이 몇 명 있어 가장 성군 아사도 마지막에 발에 중병이 들었어요.
여호사밧도 배가 파손을 했어요. 여우람도 창자의 중병이 들었어요.
여호람은 성군이 아니지만 히스기야도 바벨론 사자에게 내탕고를 보여줬어요.
그렇게 종교개혁을 했는데 그런데 바벨론이 진짜 쳐들어왔어요.
그런 바벨론이 매국노 매국노입니까? 예수 밖에 판단의 근거가 없는데 그래도 이 북이스라엘 왕들처럼 이 성군들이 바 세부 똥파리 신을 찾지 않았어요. 아팠기 때문에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갔다는 거예요. 항상 등불을 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빼앗겼는데 역대 얘기에 보면은 다 아들이 아들을 다 탈취당했는데 막내 아들 한 사람을 남겨두었다고 이 표현이 나와 막내 아들 한 아이 여아스가 남았다. 아마도 창자가 빠져나와 마지막에 회개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 왕위를 대신할 아들을 남기셨다고 오늘은 대신하여 왕이 됐다 이랬는데 역대 기에 보면 동생들 아들들 다 죽었어요. 하나가 남았어요. 이것이 악을 덮는 등불이 된 것입니다.
이제 적용 질문이에요. 에돔의 배반 같은 사건이 내 삶의 결론인 것이 인정이 됩니까? 여전히 주님의 등불을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등록도 안 하고 목장에도 안 들어가고 큐티도 안 하고 양육도 안 받고 그러니까 이 말씀이 들리지를 않아요. 망한 가운데 한 사람 남긴 것을 보고 있습니까? 반드시 남았더라. 인생이 될 것을 믿습니까? 나에게도 남은 거 너에게도 남은 거 이거를 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오직 우리를 판단하는 거는 예수밖에 없다는 거
이번에 이제 신임 목자 간증문을 하나 읽어드리려고 하는데, 네 등불이 나를 비추면 내 악을 덮어주시잖아요. 그러면 내 악에게 증인된 삶이 되는 거예요. 이분은 교회 생활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었고 고3 때 의사가 되면 의료 선교사가 되겠다고 했대요. 막연한 그래서 결혼 초부터 주일 목장 예배 11조 빠짐없이 하였던 저는 스스로를 아주 괜찮다고 여기며 아내에게 고난이 없어도 신앙이 좋은 사람도 있는데 왜 고난이 축복이라고 함부로 일반화를 하시냐 말씀 구절은 매주 달라지는데 결론은 왜 똑같냐며 답을 정해놓고 하는 설교는 나도 할 수 있겠다야 아내에게 설교 교회의 비판을 그냥 자주자주 하였습니다. 목장에서는 술 마시고 도박, 바람으로 가정을 깨뜨리고 열심히 일하지 않는 지체들이 무시가 되었고, 기센 여자 집사님들의 나눔은 듣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화가 나서 내가 늦은 이 귀한 시간에 도대체 왜 여기서 이런 나눔을 듣고 있어야 하느냐는 자괴감이 자주 들었지만, 괜히 이 교회를 떠나면 왠지 망해서 돌아올 것 같은 무서운가 청년 때부터 수없이 들은 붙어만 있으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큰 부담이 되어 떠나지를 못했습니다.
아내를 무시하고 판단하고 갖은 혈기로 힘들게 했지만 나는 집 교회 직장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며 도박과 바람은 무슨 주식 코인도 안 하고 제때제때 돈 벌어다 주는데 술, 담배까지 단번에 끊고 게다가 신앙까지 좋은 우리들 교회에는 흔치 않는 최고의 남편이라고 자부하였기에 가끔씩 나오는 아내의 불만에 너는 내가 바람이라도 한 번 펴줘야 말씀이 들리겠냐 하며 아내는 목장에서 나눌 고난조차 행복에 겨운 사람으로 치부하며 아내의 말에 공감도 인정도 하지 않으며 왕처럼 군림하며 살았습니다. 그래도 붙어 있는 게 어디예요? 이렇게 붙어 있다 보니까 드디어 이리 왔어요. 수술 중에 운동 신경이 손상되어 한 환자분이 수술 직후에 걸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어요.
손상된 신경이 재생되는 것을 그저 기다릴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한계 상황에 도달하자 10년 넘게 공동체에 붙어 있으면서도 무시하고 한 귀로 흘러듣기만 했던 수많은 말씀들과 간증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꿰 맞추어지며 비로소 내 말씀이 되어 이 사건이 나와 함께 가기를 원하시는 주님이 주신 사건이라 인정이 되며 납작 엎드려지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머리로만 이해됐던 말씀들이 처음으로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들려 회개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이후부터 공동체와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들고, 목사님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이 들고 매일 큐티하는 습관이 생겼고, 이제 드디어 결혼 10년 만에 설거지와 빨래 개는 일을 조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4개월 만에 환자분이 회복되니까 다시 또 교만이 올라오고 육이 무너져야 영이 세워졌다는 걸 처절히 깨달았는데, 그럼에도 혼자 해외 학회를 갔다가 완전히 끊었다고 생각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그래서 다시 와서 예모 강의를 받으면서 공동체의 도움으로 이제 끊게 하셨다는 거죠.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의인인 줄 알고 열심히 살다가 심판의 날에 영문도 모른 채 수치를 당할 인생인데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이분의 워딩이에요. 이 시대 선지자 김양재 목사님의 말씀을 라이브로 듣고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심에 감사하고, 그러니까 이 고백을 우리들 교회에 온 지 지금 15년 만에 그리고 15년 만에 목자가 된 거예요. 이번에 똑똑할수록 이게 교회는 오는데 등불이 비춰지질 않아 등불을 남에게만 비춰 나에게는 안 비춰. 그러면서 또 그다음에 교회사에 길이 남을 우리들 교회의 목자라는 타이틀의 자부심이 들고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어떤 부문이 나오더라도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시는 목사님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15년을 참았더니 이런 얘기를 제가 듣네요. 자 여호람의 할아버지 아사, 아버지 여호사밧이 다 성군이었지만 그들의 본으로 선한 아우들은 다 믿음을 가졌으나 하나님은 악한 장자인 여호람을 왕에 앉게 하셨어요. 이럴 수도 있는 거예요. 아우들 입장은 뭐냐 미똥 잘린 나무 같은 인생에서 순교의 축복을 누린 거죠. 여호수아밭의 선한 영향력은 동생들에게는 끼쳐졌어요. 순교했다고 하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시기를 바라요. 이게 바로 구속사입니다. 악을 덮는 등불 구속사적인 해석이고 설명인 거예요.
말씀 맺어요. 악을 덮는 등불은 첫째 우리 인생은 악을 행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남유다에 흘러내려오는 다윗에게 허락하신 등불은 그 약속의 말씀 때문에 우리를 멸하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뭐라고요? 악하기는 남유다의 여호함이 훨씬 악했어. 그런데 이 땅에서 배반을 당함으로 이 등불이 나에게 찾아오는 얼마나 배반이 축복인지 몰라요. 빛을 비추심으로 찬양하고 기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