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요약

열왕기하 4장 8절~17절 - 아들을 낳았더라

vert_mont 2023. 10. 11. 00:37

2023년 8월 27일 주일설교

열왕기하 4장 8절~17절

아들을 낳았더라

김양재 목사

 

지난 본문에서 기름 한 그릇의 기적을 보았죠 그리고 지난주는 사랑도 통합 예배에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오늘부터는 이제 부자 여인인 수넴 여인을 다루는데요. 과부는 가난하나 아들이 둘이 있었어요. 수넴여인은 부유하나 아들이 없었어요. 여러분 누가 더 힘들 것 같아요그 당시 법은 아들이 없으면 마지막은 모든 재산을 몰수해 가고 그야말로 수치는 아들 없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두 가족 모두 결핍을 겪게 하심으로 부자나 가난한 자나 주님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결핍을 겪는 이들이 이스라엘의 주인공들이에요열왕기상에는 엘리야가 회오리바람, 지진, 불로 사역을 했지요. 열왕기하에 엘리사는 장기전으로 일상적인 문제에도 들어가서 가정 문제, 빈곤, , 고침 등의 기적을 다뤘어요. 가정사역 등은 이 회오리바람 사역보다 더 힘들어서 갑절의 영감이 필요한 일이 맞아 보입니다. 이혼을 말리고 가정을 지키게 하는 것은 정말 아들을 낳는 일이에요. 힘듭니다. 아들 낳는 기적은 영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의미하기에 성경에서 계속 불임의 아픔을 다루시면서 예수 씨를 이어가게 하십니다. 결국 구원이 아들 낳는 일이에요. 여러분 아들을 낳아야 되겠죠?

 

첫째로 거룩을 경험으로 알아야 합니다.

8절이에요.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엘리사는 엘리아 스승님을 생각하면서 갈멜산을 선교 본부로 두고 사마리아, 베델, 길갈 등 전국을 다녔는데요. 하나님을 떠난 왕들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직접 찾아가서 전해야 했던 것이에요. 그때도 사람들이 와서 들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근데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위에 둔 왕이 군림하며 무섭게 다스릴 뿐만 아니라 또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해 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무리 왕이 힘들어도 굳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움직이지 않아요. 우리도 회사 대표가 아무리 무섭게 해도 먹고 살게 해주면 말씀이 나와 상관이 없죠. 그러니까 자기 백성을 살리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자 열심으로 엘리사 선지자가 배척을 당해도 말씀을 들고 백성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렇게 순회 사역을 마치고 갈멜로 올라갈 때, 항상 지나는 길에 수넴이라는 성읍이 있었어요. 그런데 수넴에 살던 한 귀부인에게 이 말씀이 들렸어요. 은혜를 받았어요. 그래서 그 귀부인은 엘리사에게 자기 집에서 식사를 하자고 간절히 부탁을 했습니다. ‘강권하여는 굳게에다 달라붙다는 그런 능동 사용 미완료형으로 자발적인 의지로 엘리사에게 계속해서 강하게 붙잡고 청하였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9, 10절에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청하건데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주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다 하였더라’.

이제 식사 대접만 하다가 아예 그 남편에게 엘리사를 위해서 게스트하우스를 짓게 해달라고 청하는 거예요. 근데 그 이유가 엘리사가 엘리아의 후계자래요. 요단강을 갈라지게 했어요. 기름 한 그릇으로 한 과부의 가정을 살렸어요. 엘리사도 우리 가정에도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한 게 아니고요. 물론 그런 이유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은 수넴 여인의 이유는 그게 아니에요. 무엇입니까? 오늘 9절에 보니까 여보, 우리 앞을 늘 지나다니는 이 사람은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인 줄을 내가 알아요. 여기 알아요의 이 야다 동사는 하나님을 경험해서 아는 거예요. 이거는 부부 간에 은밀한 기쁨 그거는 부부밖에 모르잖아요. 그걸 안다고 할 때 야다 동사를 씁니다. 이건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예요. 근데 그처럼 자기가 엘리사를 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은 하나님께 소속된 사람,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구별된 사람이에요. 아합과 아하시아와 여호람의 세상길 따르기를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는 이 거룩함의 가치를 알았어요. 그러니까 엘리사와 같은 거룩함의 가치를 가졌기 때문에 알아본 거죠. 하다못해 춘향이도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하고 기다렸잖아요. 그죠? 그 잘못된 왕의 길을 다 이제 거절하고 거룩을 경험한 사람은 태양을 봤어요. 나 촛불에 관심이 없어요. 이 세상 영광 헛된 관심에서 당연히 돌이키는 거예요. 태양을 본 사람은. 그러니까 사명이 당연히 있어야 돼요. 촛불 보고 놀라지 말라 이 얘기를 해줘야 돼요. 그래서 그 사명을 주시는 거죠. 지금 북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는데 왕들은 백성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이 왕들 때문에 망하게 생겼잖아요. 지금 망해가고 있잖아요. 더군다나 예루살렘에 가면 백성들이 모두 남으로 갈까 봐 북쪽의 베델과 단에서 예배를 드리게 했지만은 이런 거룩함의 예배와는 차원이 다른 거예요.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다를 날마다 외치지만은 여러분은 계속 행복을 외치기 때문에 인생이 공허하고 불행해요. 조금만 붙잡을 것이 있어도 말씀이 안 들리니까 거르기 싫어요. 알기도 싫고 경험하기도 싫어요. 그러므로 고난이 축복입니다.

 

어떤 목자님이 이번에 팀장이 됐는데 물질적인 것에는 보탬이 되지만 당장 큐티를 게을리하면서 진실된 큐티 시스템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자신을 회개하고 있다고 또 다른 목자님은 아들은 세상적으로 안 되어서 수치인데 교회를 잘 나간다고 딸은 세상적으로 잘 나가니까 예배를 안 나오고 있으니 교회에서 수치라고 여러분 그래도 교회에서는 수치가 없습니다. 하여튼 이런 나눔들을 하시는 거예요.

 

열왕기상 1장에 다윗이 말년에 전국에서 가장 심히 아름다운 처녀인 수넴 여인 거기도 수넴 출신이에요. 수넴 여인 아비삭을 데려다 놓고 보기만 했어요. 잠을 자지 않았어요. 다윗의 가장 약점인 여자를 끊어내는 모습이 나오는 거죠. 다윗은 전쟁 중에도 후궁을 얻어들여서 자녀들이 계속 문제 일으키는데도 못 끊어낸 약점이 여자였죠. 결국 자기 여자인 후궁들을 아들 압살롬이 백주에 동침하는 것을 보고 드디어 여자를 끊었어요. 그러므로 마지막에 다윗이 그 심히 아름다운 아비삭을 여인이 아니고 지체로서의 사랑을 하다가 갔어요. 정말 아들에게 당한 그 가슴 아픈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거룩의 양이 참 얄팍한 것 같아요. 이 아비삭이 수넴 여인인데요. 이 수넴이라는 뜻이 안식처라는 뜻이 있는데요. 마찬가지로 아픔이 있었던 수넴 여인도 엘리사를 지금 인간적으로 좋아해서 외간 남자에게 집을 지어준 게 아니에요. 이렇게 또 얘기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완전히 수넴여인이 돌은 거 아니에요 이렇게요. 이게 문자적으로만 보면 이해가 안 돼요. 거룩을 경험한 영적 지체의 사랑으로 강권한 것이에요. 이런 사람이 안식처가 되는 것이죠. 우리가 구체적인 기도 제목이라고 육적인 제목을 나열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배우자 만나서 주님을 가까이 할 수 있을까, 나를 깨닫게 해줄 배우자 내가 깨닫게 해줄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제목이에요.그 목적만 확실하면 망했다고 바람 핀다고 때렸다고 이혼하지 않아요. 도리어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야다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니까 태양을 보니까 이 촛불의 시련은 너무 감사한 거예요. 제가 그랬잖아요.

 

지난주에 우리들교회 남친이 계속 30분마다 전화하고 뭐 하는지 보고하라고 그러면 짜증 나잖아요. 여친이 기다려주고 기다려주다가 드디어 이렇게 남친이 병원에 가기로 했다는 그 변화를 너무 기뻐하는 거예요. 청년들이 이러기가 너무 어렵잖아요. 이러니 우리들교회가 이렇게 아파도 이상해도 이혼들을 안 하는 거죠. 다들 조금만 이상해도 결혼하지 마. 또 결혼하고 나서 조금만 이상해도 이혼해가 입에 붙었는데 저 이제 우리들교회 청년들이 눈물나게 감사한 거예요. 하나님을 경험한 거룩한 사람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거예요. 그 한 사람 찾으면 로또인 거예요. 이제 우리들교회가 이렇게 아픈 사람, 없는 사람하고 다 결혼했는데3천 명이 넘은 청년부의 이혼이 거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우리가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일단 내가 믿음으로 결혼을 했어. 그런 사람을 찾고 결혼하기 때문이죠.

 

10절에 청하건데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다 만들고 침상 책상 의자 촛대를 주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러있다 하였더라’.

 

만들고 주사이다. 머물리다는 이 세게에 미완료 동사로 이루어져서 간접 명령의 의미를 지니는데요. 그 앞에 청하건대까지 들어가서 간절한 소망을 나타내는 거예요. 여러분 이걸 너무 간절히 원하면 그게 거절할 수 없는 명령으로 들리지 않습니까?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서 임시 거처가 아니라 담 벽 있잖아요 벽이 있는 영구 거처를 지어달라고 하는 거예요. 금세 허물집이 아니고 그곳에 구비될 물품들로 소개되는 침상, 책상, 의자, 촛대 아주 기본적인 것들로 보이지만은 엘리사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영구 묵상 아주 쉼터를 위한 세심한 배려로 이것이 이제 필요하다고 한 거예요. 그런데 촛대에 해당하는 메노라라는 단어는 출애굽기 25장이나 레위기 24장에 보면은 성막의 물품을 나타낼 때 쓰는 단어였어요. 우리가 기억나시는지 이렇게 성막 지을 때 촛대를 금 한 덩이를 쳐서 만들었다는 거 기억나십니까? 대단하세요. 그러니까 이제 의자도 보자라는 단어고 책상이나 침상은 또 떡상이 되는 거고 그러면 수넴 여인은 이 다락을 성전의 개념으로 건축하고 엘리사에게 드렸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이스라엘이 무너져가던 그때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안타까워하는 엘리사 한 사람이 나라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성전을 짓는 마음으로 그곳에 엘리사가 있는 것만으로도 성전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북이스라엘 성전이 전부 금송아지만 있으니까 여기 엘리사 같은 사람이 머물기만 해도 성전이다. 요한복음 4장에 사마리아 여인처럼 대단한 예배와 성전의 개념을 지금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렇다고 우상숭배처럼 엘리사를 교주처럼 모신 건 아니고요. 우리 모두도 성령의 전이잖아요. 근데 이것을 그 수넴 여인이 알았다는 것은 정말 왕들을 넘어서는 남은 자인 거예요. 하나님이 이런 남은 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근근히 지켜가시고 있어요. 여러분도 앞날이 안 보이는 콩가루 집안의 암담한 현실 앞에서 남은 것이 없어 보이지만 여러분 자체가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성전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성령께서 동행하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래요. 절망이 되는 가족과 교회와 나라를 맛보십니까? 내가 이동형 성전이에요. 이 성전이 가능한 그 가정에, 교회에, 회사의 나라에 소망이 있는 줄을 믿습니다.

 

한 목자님이 지난주 처갓집으로 이틀간 휴가를 다녀왔는데 처의 작은 아버님이 입원하셨다고 하셔서 가서 손 붙잡고 기도하고 예수님을 전하셨대요. 또 이틀 동안 강원도 횡성의 형님 집에 가서 기도해주고 원주의 큰 누님 집에 가서 기도를 해드렸고 큰누님은 너나 잘 믿으라고 하셨던 분인데 또 작은 누님 집에 가서 기도해 주었고 매형이 알코올 중독자인데 같이 기도를 해줬었대요. 이렇게 형과 누님들에게 방문하고 기도해 주는 것들을 엄두도 못 냈는데 빈 그릇에 기름이 차고 넘쳐서 흘러가다 보니까 제가 가장 막내인데 형과 누님의 손을 잡고 천국 가서 만나자 예수님을 믿으시라고 전하는 용기를 주셨답니다. 저는 요즘 어디로 가든지 제가 믿는 자라는 것을 밝히고 대화를 하며 꼭 복음을 전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요? 이분도 부도가 났지 뭐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그 거룩을 경험을 한 거예요. 이제 태양을 봤어. 촛불이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그러니까 태양 본 사람은 이걸 전해야 돼요.

 
적용 질문이에요

거룩을 경험했습니까? 이론으로 알고 있습니까? 사람을 만날 때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은 무엇이에요? 외모, , 분위기, 직업, 학벌이에요? 믿음과 거룩은 몇 번째 관심사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을 점수로 매긴다면 나는 몇 점짜리입니까? 내가 성전인 것이 믿어집니까?

여러분들이 목장에서 나눌 때 너무 나눔 질문만 나누면 도덕 윤리 그런 것만 돼서 그냥 내용도 잘 몰라서 적용 질문에 다 그냥 내용을 요약했네요. 질문을 좀 그래서 길어도 한번 생각하세요. 이걸 한번 생각해 보시라고 목장에서도 반드시 그렇게 내용을 한 번은 요약을 해주시길 바래요.



아들을 낳으려면 그래서 거룩을 경험해야 되고 두 번째는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합니다. 11 12절입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에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 누웠더니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여인을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10 11절 사이에 그냥 게스트하우스가 다 지어졌네요. 그죠? 그래서 이제 그 게스트하우스에 누워 있다가 자기 비서인 게하시에게 그 여인을 불러오라고 합니다. 우리가 돈과 지위가 있을 때는 누구나 얼굴 도장을 찍고 싶어 하고 잘하고 싶고 좋게 보이고 싶잖아요. 근데 이런 본성과 세상의 방식으로부터도 구별되어야 했습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기 때문에 세심한 배려가 오직 주의 일을 위한 것이며 구원과 거을 거룩을 위한 것임을 알기에 엘리사는 뭔가 자기가 배려나 도움을 받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아요. 난 대단한 지금 도움을 받고 있다 이러지 않아. 상대가 귀부인이니까 오히려 더 조심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가서 이야기하지 않고 비서를 보냅니다. 우리나라 예전에 대갓집에서 내가 내가 왔다고 여쭈어라 서로 종을 놓고 말하잖아요. 그게 정 필요 없는 건 아니에요. 이렇게 막 왔다 갔다 하면은 오해가 될 수가 있는데 알았다고 여쭈어라 들어가도 되냐고 여쭈어라 안 된다고 여쭈어라 뭐 이러잖아요. 그죠? 수넴 여인의 관심이 거룩이 아닌 세상 영광에 있었다면 아니 내가 방까지 내줬는데 어떻게 사원을 보내서 종을 보내서 오라가라 해. 그런데 수넴 여인은 너무 이 엘리사처럼 관심이 거룩해 있기 때문에 생색내지 않아요. 그 종이 오라 그래도 군말 없이 그 앞에 딱 서는 거예요.

 

13절입니다.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너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니 여인이 이르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하니라

세심한 배려는요 히브리어로 문자적 의미가 두려워 떠는 걸 의미해요. 무슨 말입니까? 강자가 약자를 돕는 그런 배려가 아니라 제가 룻기 설교할 때 배려에서 그 얘기를 했었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마음에 떨리는 섬김인 거예요. 이게 세심한 배려예요. 그냥 좀생이처럼 하는 게 셋이면 배려가 아니고 구원은 디테일이라고 누누히 말했잖아요.수넴 여인이 정말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엘리사를 대접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엘리사가 이제 뭔가를 해주려고 해요. 엘리사는 어쨌든 왕이 왕을 잘 알잖아요. 여호람 왕을 골짜기에 개천파라고 그러니까 이제 왕에게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라. 그러니까 너무나 이제 좋은 기회 아닙니까? 자신이 욕심을 내던 일은 아니지만은 세상의 왕에게 부탁할 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저보고 부탁하라. 그러면 교회 터 하나 주시면 지어주기까지, 우리가 질 테니까 교회에 터 하나 주시면 왕님 왕님. 전하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이럴 텐데. 그러니까 일생일대의 기회가 분명한 것이 그때는 선지자 엘리사를 왕도 어떻게 못하는 이제 그런 시대였잖아요. 하지만 여인은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떠나보내요. 저는 부탁해 주실 일이 없네요. 필요한 거 없습니다. 이러지 않고요. 필요한 일은 없지만은 저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그러잖아요. 내 백성 중에. 정말 믿음이 있어요. 내가 귀부인인데 나보고 뭘 필요. 귀부인인 자기에게 있는 걸 자랑해야 되잖아요. 그렇죠? 그 자랑도 하지 아니하고 자신은 백성에게 덕을 입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거예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는데 그 백성을 거룩한 그녀는 사랑합니다. 엘리사도 백성을 사랑하고 수넴 여인도 사랑해요. 중요합니다. 공동체 생활을 잘하는 사람 자체가 세심한 배려를 이미 하는 사람이에요. 목장에 너무 이상한 사람이 꼭 있어요. 그죠? 그런데 그 사람 덕분에 내가 거주하고 있어요. 그 사람 덕분에 나는 살아가는 존재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이 사람이 진짜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에요. 우리가 태양을 보게 되면은 저절로 그냥 그 태양을 만난 그거를 전하고 싶은 거예요. 백성들이 몰라서 저렇게 금송아지 섬기고 있다. 이것이 엘리사하고 딱 맞아떨어진 거에요. 공동체를 잘 섬기는 사람은 이미 모든 사람에게 세심한 배려를 해요.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다 모두에게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목장에 어떻게 좋은 사람이 있겠어요. 우리가 믿음이 다 각자 불량이 다른데. 그러니까 목장은 정말 수넴여인도 인정하는 최고 공동체 맞습니다.

 

한 권찰님이 예전에 목장이 유람선이 아니고 구조선인데 우리는 유람선 타고 싶어한다. 이런 나눔을 했는데 그냥 부부가 매일 싸우고 울고 불고 할 때 새벽 1 2시까지 자기 부부의 나눔을 다 들어주셨는데 이제 자기들이 목자 부부가 되고 살 만하니까 고난의 얘기가 피곤하다고 느끼는 악함이 있다 이렇게 나누셔서 그래서 너무 수치스럽고 창피하고 그런 일이 생길 때가 많지만 수치 덕분에 하나님을 계속 부르게 하는 그 자리가 공동체인데 아직까지도 저는 흥해서 좋은 기름으로만 자녀에게 붓고 싶은 부모인 것 같아요. 자녀를 낳고 보니 나에게 믿음이 없다는 게 보이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목장, 목장이 아들을 낳는 비결이에요. 공동체를 통해서 깨닫죠. 아무리 좋은 배려도 그 끝에 생색이 있다면 이건 세심한 배려가 아니에요. 그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연기일 뿐이에요. 그러면요 이러한 이렇게 배려로 가장한 연기는 너무 힘든 수고예요. 번아웃 돼요. 지쳐요. 계속할 수가 없어요. 연기는 오래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제가 그래도 부족한 거 많아도 20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올 수는 없는 거죠. 연기를 내가 왜 하겠어요 뭐가 생긴다고 지금 연기를 하겠어요 그죠? 생색이 터져나와서 그럼 연기가 다 드러나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나 이제 목장에서 연기하기 싫어. 하나님 믿어지지도 않는데 왜 믿어지는 것처럼 앉아 있어 나는 이제 다 그만둬. 그래야 됩니까? 난 부부 간에 사랑이다 식었어 내가 근데 연기하고 당신하고 살아야 되겠어 헤어져 아니에요. 그때라도 공동체가 있으면 내가 그동안 연기했다고 그래서 나도 속고 남도 속이는 나의 근본적인 죄악이 있다고 회개하면 되는 거예요. 수치의 시간은 피해야 될 시간이 아니에요. 내 민낯을 보고 회개해야 될 시간인 거예요. 주님도 십자가의 수치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겪으셨잖아요.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물론 공동체가 이 구속사적인 말씀을 이렇게 베이직으로 기초로 좀 갖고 있으면 돌아오는 데 시간이 좀 덜 걸리는데, 지금 그걸 또 여러분들이 분별 잘 못하죠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은혜인데 깨달아지지 않으니까 힘들어요.그러니까 은혜를 아는 만큼 생색이 없어지는데요. 그러니까 분노 조절 때문에 힘든 게 아니고 은혜를 깨닫지 못해서 힘든 거예요. 그러니까 은혜를 깨달으려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니까 예배를 드리고 목장에 가야 돼요. 구속사적인 이 말씀을 듣고 목장에 가야 돼요. 그러면 내가 세심한 배려를 또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지난주도 다들 한 수치 하시는데 다들 내어놓으셨어요. 경찰이 길거리에서 취해 자고 있는 남편을 보여주는데 근데 먼저 생각나는 게 조현병 아버지였어요. 남편이 창피한 게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창피했어요. 남편은 술을 먹고 이성을 잃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병 때문에 이성을 잃은 거잖아요. 제가 남편한테 따지고 나쁜 거라고 말을 해야 되는데 조현병 자녀가 술 먹고 정신 잃은 사람에게 말할 자격이 있나 지금 생각하면 제가 아픈 거였는데요. 그런데 이제 이런 얘기를 목장에서 하셨어요. 그러면 이 마음이 여러분들 공감이 되세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어요? 그죠? 이걸 목장에서 하는 거예요. 할 때와 안 할 때가 하늘과 땅 차이인 거예요. 그래서 목장에서 나눌 때 우리가 아들을 낳을 수 있는 거예요. 구원을 내가 그 한마디에서 딴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는 거죠.

 

또 한 분은 나를 부르시기 위하여 나의 소아마비 장애와 가난과 딸의 1급 발달장애까지 동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또 저는 장애아를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예요. 정신은 멀쩡한데 4살이 되도록 걷지 못하니까 이 아이가 늘 자기 또래들 뛰어노는 놀이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요. 근데 이번에 지난주에 장애부 그 아이가 간증을 했잖아요. 장애부 버디가. 근데 예배 시간에 이 할아버지가 뭐가 부러운가 하면 우리 손주가 저기에 서서 간증할 날이 올 수 있을까 그게 여의치 않은 게 그 부모는 수치가 남아 있어서 그 보여주기 싫어한다는 거예요. 근데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장애인이 있는 집이 힘들겠어요? 회사가 힘든 게 힘들겠어요? 버디들이 장애인으로 태어난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 회사는 이제 달라질 날이 오잖아요 그죠? 그런데 그걸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건으로 해석하며 지금 은혜로 가잖아요. 한계 상황으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이 앞에 희망이 하나도 없으니까 사랑부 아이들 너무 예배를 잘 드리고 나를 너무 좋아하잖아요. 그거 보셨죠? 지난번에. 그러니까 그 장애가 저주가 아닌 거예요. 근데 그렇게 너무 아픈 분들이 많아도 잘 지내시니까 감사하고 그 사랑부 아이들이 너무 그 사모하는 거를 보니까 또 마음이 너무 기쁘면서도 아파가지고 마음이 이제 저리는 거예요. 그런데 영육 간에 아픈 분들이 많이 이렇게 오시니까 자고로 병원은 아픈 사람들이 많이 가야 좋은 병원이잖아요. 우리들 교회 아픈 분들이 많이 오니까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고 계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다 이렇게 달라지고 예배를 사모하니까 사랑부 통합 예배를 통해서 너무 많은 분들이 은혜를 받으셨어요. 우리 교회가 이런 사랑부가 있다는 것에 놀라고 섬기는 목사님, 선생님들에게도 감동을 받았다고 해요. 그전 주일에 또 청소년부 우리가 통합 예배를 또 드렸는데 청소년부 큐페를 갔다가도 이번에 주님을 만났다고 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대표적으로 우리 외손녀들도 주님을 만났다는 거예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할렐루야. 비교적 우리 외손녀들은 모범생이에요. 그런데도 주님을 만나야 돼요. 만났대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굉장한 고정관념들이 있는 것 같아요. 거룩은 세심한 배려예요. 두려워 떠는 섬김이에요.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생색이 아니에요.

 

적용 질문이에요.

두려워 떨면서도 생색을 내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내게 생색을 내신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거 한번 좀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세심한 배려를 합니까? 정말 디테일해요. 끝까지 거 뭐 사람 무서워서 뭐 못하겠네 무서워서 하시면 안 돼요. 맨날 뭐가 그렇게 무섭냐고 왜 사람 눈치는 그렇게 보냐고 그게 아닌 구원 때문에. 공동체 안에 거주해서 만족합니까? 늘 불평합니까?



아들을 낳기 위해서 세 번째는 첫 번째 두 번째가 뭐예요? 하나님의 거룩을 경험해야 되고 두렵고 떨림으로 세심한 배려를 해야 되고 세 번째는 믿어야 돼요. 14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까 하니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었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하니


엘리사는 수행 여인의 배려를 갖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배려를 받으면 우리가 부담이 되잖아요. 부담 더는 게 목적이라면은 자기가 좋게 여기는 걸 줄 수도 있잖아요. 근데 세심한 배려에 본인도 세심한 배려로 갚고자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여인은 한마디도 아들이 없다는 얘기 안 했어요. 엘리사한테 그런 얘기 안 합니다. 그런데 게하시가 그 사환이 여인에게 그 아들이 없다고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그 많은 제물, 남편 다 있는데 아들이 이게 기업이 이어지는 거니까 그 아들이 없으니까 공허함이 있었어요. 게다가 남편도 늙었어요. 저는 딸이 있어도 아들이 없다고 그리도 힘들어했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게 이해가 됩니다. 저 같은 딸을 낳고도 어떻게 그렇게 슬퍼하실 수가 있어요. 완전히 그냥 저는 사람이 아니무니다. 저의 출생으로 우리 어머니가 예수를 만났다고 한다면 이거 너무나 정말 이거 농담이라고 해야 되지. 아들이 없다고 하면 바람 피는 게 다 합리화가 되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본처가 있고 첩이 있고 온 세상에 드라마가 써지는 거예요. 지금 그 아들 없다는 것 때문에. 그러니까 그 선지생도 아내의 가난함과 이 수넴 여인의 이 그 고난은요 정말 이 수넴 여인이 믿음이 좋으니까 훨씬 더 많이 언급이 되고 있어요. 그죠? 돈 없는 고난이 가장 쉬운 고난인데 세상은 오직 그걸로 옳고 그름으로 하죠. 그래서 포퓰리즘이 그냥 난리를 치고 다 죽여라 살려라 이러죠. 이것이 여인이 행복이 아닌 거룩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인생의 근본 문제이자 한계였어요. 다 가진 기분이었다면 왜 여호람이 아닌 엘리사에게 관심을 가졌겠어요. 왕궁이 아닌 갈멜산을 바라보았겠습니까? 이 고난이 여인의 관심을 행복이 아닌 거룩에 있게 한 계기였어요. 그래서 고난이 축복인 것이죠.

 

그러니까 15절에 이르되 다시 부르라 하여 부름에 여인이 문에 서니라

오라 가라 하는데도 여인이 귀찮아하지 않고 순종을 하는 거예요. 귀부인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엘리사 앞으로 직접 가도 될 텐데 그냥 겸손하게 문에 서서 기다리잖아요. 문 앞에 서서. 이러기가 정말 어려워요. 믿기 힘든 겸손함으로 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엘리사도 사람인데 왜 그래. 정말 자기만 아는 그 야다의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에 지금 이제 하나님 대하듯이 하는 게 있는 거예요. 그래서 믿기 힘든 겸손으로 대하니까 엘리사로부터 믿기 힘든 예언을 지금 이렇게 받게 되는 거죠.


16절입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때쯤에 니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요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정말 엘리사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이상한 처방은 아주 골라서 하는 것 같아. 마른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는 일탄 빈 그릇을 많이 빌려오라는 이탄 이제 삼탄으로 내년에 아들을 안으리라고 말합니다. 아들을 낳을 수 없었고 이제 낳기도 포기한 여인에게 여인에게는 행위로 그릇을 빌려라. 무엇을 해라 그게 아니고 그냥 믿어라 믿어라. 아들을 줄 거니까. 할머니가 된 사라에게 하나님이 내년 이맘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그 말씀을 들은 사라가 속으로 웃었죠. 니가 왜 웃냐 안 웃었는데 니가 웃었다. 그러고 하나님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 스냅 여인의 상황이 똑같은 거예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 엘리사가 가당치 않은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로소이다. 이게 아니로소이다. 점자는 말투로 번역된 것 같지만 사실은 노, 네버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요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이거는 농담도 예술이십니다. 이렇게 얘기한 거예요. 아니 어떻게 그런 농담을 하실 수가 있어요 카트라인이 없는 정도가 아니고 예술이에요.


시간이 흘러서요. 17절입니다.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때쯤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엘리사가 말한 대로 낳았잖아요. 엘리사가 예언한 대로 잉태하고 아들을 낳았어요.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이 되었어요. 기름 한 그릇의 기적에 이어 말 한마디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은 우리에게 구속사를 가르쳐주는 상징이 되는데요. 여인이 아들을 낳은 것을 선지자 잘 섬겼더니 아들을 낳았네. 인생의 문제가 다 해결됐어. 거기로만 이해하면 안 돼요. 이런 문자적인 적용도 필요하긴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무르면 안 되고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남에게 말할 수도 없는 문제를 이고지고 살지 않습니까? 우리 가운데 사실 예수를 믿고 싶어서 믿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하루도 맹정신으로 살기 어려워 포기하고 절망한 채 지금 죽지 못해 살고 있잖아요. 이것이 죽음이고 지옥이에요. 그래서 이혼하고 자살하고 그래야 합니까? 그건 너무 이기적인 것이죠.

 

여러분 내가 태양을 봤는데 촛불 보고 이혼하면 되겠어요? 촛불 보고 자살하면 되겠어요? 태양을 본 사람은 태양을 봤다고 말해야 될 사명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은 태양보다 더 크신 분인데 그러니까 경험하지 못하면 끝까지 그까지껏 촛불 때문에 이혼을 하고 자살을 하고 뭘 다 생 이러면 안 되는 건 너무너무 정말 이기적인 거예요. 아니 내가 결혼을 했는데 또 자녀도 있는데 아니 무슨 생각으로 이혼을 하는 거예요 나 혼자서 행복하자고 아닌 거죠. 하지만 이 태양을 본 사람은 이 절망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거예요. 거룩이 인생의 목적이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말씀이 받아들여지면 이제 주님을 경외하여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사람을 또 찾아 섬겨요. 그게 목장이잖아요. 내가 뭔가 바라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말씀대로 섬겨야 하루를 살 수 있기 때문에 섬겨요. 여러분. 내가 목장이었고 말씀이 없음 살 수가 없어요. 근데 조금이라도 뭐가 있으면 목장 안 가요. 근데 그 모든 시간과 과정 절망과 슬픔 순종과 적용을 우리 주님이 다 보고 계세요. 나는 나를 모를 거야. 하나님이 내가 이렇게 아픈 걸 모를 거야.

 

어제 권사님이 예수 믿다가 불공 드리러 갔는데 하나님이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를 알까 그랬대요. 하나님 다 아세요. 머리털보다도 더한 세 신바 됐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태양을 봐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니까 드디어 생명을 낳게 하는 거예요. 구원의 열매가 맺히는 거예요. 어제 그 권사님 간증에 자폐인 현호가 정규직 시험에 불합격되었대요. 근데 그동안의 과정을 너무 계약직으로 오랫동안 취직 생활을 잘했어. 그 자피아가 그렇게 취직생활을 할 수가 없잖아요. 완전히 정상인이야. 이렇게 보니까 수준이 높은 것이죠. 많은 자폐아들에게 또 우리들에게 얼마나 은혜를 어저께도 끼치셨는지 몰라요. 아무리 성품이 좋아도 성품이 사명으로 가지는 못해요. 성품 좋은 사람이 전도하는 거 봤어요?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 좋아하는 열매를 맺지 못하지. 근데 내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내 옆에 내 속의 결핍들이 수고를 하는 거예요.  아무리 잘 살아도 사명 감당하지 않는 가족들은 말씀이 안 들리는 가족들이에요. 그러면 아들을 낳을 수가 없어요. 구원으로 이어지지 못해요.겉으로는 좋아도 앞으로 남고 뒤로 미져요. 그리고 결국은 영생이 없어요. 그럼 지옥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전도하지 않으면 중간 가는 게 아니에요.

 

이 바랄 수도 없던 생명을 낳은 여인과 이 남편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그 기록할 필요가 없어요. 그죠? 그런데 구원의 기쁨이 그렇게 큰 거예요. 제가 피아노 치고 성공하면 뭐 하겠어요. 우리 남편 한 사람 구원되니까 내가 얼마나 이혼과 자살을 생각했어요. 정말 그런데 우리 남편이 구원받았어요. 그 구원의 기쁨이 얼마나 컸으면 이렇게 35년을 한결같이 왔겠습니까? 한 사람, 그냥 내 고난 하나 감당하기도 어려운데35년 동안 수많은 사람의 아픔을 들으면서 왔잖아요. 이게 사람의 힘으로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게다가 내가 그냥 13년 모두 우리 집을 이렇게 오픈하면서 그 태양을 본 사람은 사명이 있는 거예요. 거기서 촛불 봤다고 나 혼자 행복하겠다고 내가 태양이고 내가 성전인데 그 촛불을 그냥 끌어당기겠다고 이제 그러시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 성전이에요. 태양보다 더 큰 성전이에요. 근데 내가 그런 마음으로 오니까 남편 한 사람 고난으로 지금 전 세계가 살아나고 있잖아요. 할렐루야 이 말이 맞잖아요. 여러분들이 조금 힘들다고 지금 이혼하고 죽고 자살하고 이딴 생각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잘 살면 얼마나 잘 살겠어요 제가 예고 선생에서 피아노 가르치면 세상적으로는 잘 살았겠죠 그래서 지금 35년 동안 삶은 얼마나 잘 살았겠어. 이렇게 여러분들 살려내는 이거하고 비교가 되는가요? 비교가 안 되죠.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제가.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그 목장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내 얘기를 살려내는 것이 결국 아들을 낳는 비결이 되는 줄 믿습니다. 도저히 주님을 믿을 수 없는 우리를 각자에게 꼭 맞는 방법으로 부르셔서 거룩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입니다. 그러게 우리도 세심한 배려로 아들을 낳았더라고 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말씀으로 오늘 니가 아들을 낳겠다 하시면은 아멘으로 믿으시면 되는 거예요. 아멘.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내가 하라고 그래서 하는데 사랑과 애들은 지난 주일에 그냥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아멘 하잖아요. 아멘하잖아. 걔네들은 진짜 저를 좋아해요.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걔네들만큼 날 안 좋아해요. 이것이 나의 슬픔이에요. 그러니까 맨날 이혼하고 부도나고 떠나고 목장 나가 안 나가 이런 얘기를 날마다 하는 거예요.

 

아내가 이혼 서류를 준비했는데 그날 큐티 책을 펴니까 네가 나무 멍에를 피하면 철멍에를 질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말씀이 나와서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이혼하려고 하는데 왜 이혼을 못하게 하냐며 엄청 분이 났는데 다시 보니까 큐티 본문이 한 달 전 거였대요. 그래서 이제 다시 그 날짜를 폈더니 그날은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그래서 큐티 책을 그냥 던져버렸다고 하더라고요. 말씀이 무섭다는 걸 아니까 던져버렸지. 그래서 결국 합쳐서 살잖아요 지금. 그러니까 말씀이 싫어도 말씀의 위력이에요. 그죠? 또한 목자는 제 기도 제목은 다 이루어졌어요. 저는 그냥 남편이 교회 나오는 게 소원이었는데 8년 만에 남편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목장만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것도 이루어졌어요. 그리고 남편보다 딸은 교회 나오는 게 더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딸도 일부 예배를 드리다가 이제 혼자 3부 예배를 드리고 딸도 목장을 가는 건 상상 못했는데 목장도 들어가고 게다가 출근하게 된 딸이 딩크 일대일 양육을 진작은 상상도 못했는데 신청까지 했대요. 제 기도 제목을 다 들어주신 것이 신기하다 그랬는데 근데 안 들어주신 건 뭔가 하면 3년째 남편의 사업이 잘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목장에 이렇게 온 가족의 예배가 회복되니까 너무 기뻐서 경제적 고난이 빨리 끝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지만 그 중요한 게 아니더라. 저희 목장에서도 보면 고난이 끝나자마자 제일 먼저 목장이 끊어지더라. 그래서 이걸 보면서 고난이 왜 차야 하는지 알겠고 남편과 딸의 믿음이 굳건해지려면 차야 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질이 힘들어도 영적으로 너무나 넘치는 시간이다. 이제 기적은 믿고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주신다고 하니까 제게도 그런 믿음이 생겼으면 좋겠다. 나는 말씀을 그대로 믿으시니까 이 가정은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분은 갑자기 로또라도 당첨되면 왜 나를 속이세요? 하나님 농담하지 마세요. 그럴 것 같은데요.이 고난의 축복을 거룩으로 경험하시면서 이런 나눔을 하는 게 목장이에요. 너무 놀랍지 않아요?

 

적용 질문이에요.

여러분에게 엄청난 물질의 축복이 온다면 농담도 예술이십니다 하고 거절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계속 농담해 주십시오 하시겠습니까? 오늘 주시는 말씀을 믿습니까?


여전히 문제가 많고 사는 게 힘들지만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를 기억하시고 아들을 낳기 위해 이번 한 주 모든 일을 넉넉히 감당하시기 바랍니다.